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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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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353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3.11.0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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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레드 드래곤(1)

DUMMY

사람은 죽기 전에 주마등을 본다고 한다.

자신이 살아왔던 세월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건 대체 어떤 느낌일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죽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니 알 것 같다.


내가 살아왔던 순간들이 사진으로 때로는 영상이 되어 스쳐지나갔다.

어떤 게 좋았던 기억인지, 나빴던 기억인지 선택할 권한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 것들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저 가만히 바라만 보면 됐다.


“그런 걸 왜 아저씨가 마음대로 정해요?”


눈을 감고 금방이라도 눈앞에서 벌어질 것 같은 생생한 기억들을 되새기고 있자니 미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니 어이없어 하는 미혜의 얼굴이 보였다.


그건 화가 난 것도, 슬픈 것도 아닌 말 그대로 어이가 없어 보였다.

혹은 그 모든 것들이 합쳐진 표정일지도 모르겠다.


미혜의 옆에서 제천이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의 시선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옆에서 함께 죽겠다고 말했던 녀석에게 향하고 있었다.


“죽어도 같이 죽어야지!”


당당하게 말하는 제천의 말에 미혜가 옆구리를 주먹으로 찔렀다.

어디선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화란이 급하게 뛰어왔다.


“그게 아니지. 애초에 왜 누가 죽어야 하냐고요. 잡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저걸?”


내 시선이 레드 드래곤을 향하자 다른 이들의 시선도 그를 향했다.

인간의 마지막을 기다려주겠다는 듯이 공격은 하지 않으면서 위협적이게 마력을 뿜어내고 있는 녀석.


드래곤은 지능이 높다고 하니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혹시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피부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느껴지는 드래곤의 살기는 우리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네. 두려움은 생존을 위해 필요하지만 과한 두려움은 패배의 길이라고 했어요.”

“누가?”

“선생님이요.”


미혜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라면...

석 씨인가.

말수가 없어 보이면서도 은근히 할 말은 다 하고 사는 사람이야.


“맞아. 형의 커피도 있고, 힐러도 있잖아.”


부러진 갈비뼈가 회복된 제천이 미혜의 곁에서 떨어져 내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내 능력은 접촉이 없으면 사용하지 못하는데요?”


화란 씨가 곤란한 듯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능력은 분명 어느 회복 능력자들 중에서도 뛰어났지만 능력을 사용하기 위한 전제가 까다로웠다.


회복을 시키고자 하는 자와의 접촉.

회복을 위해 후방에 있는 화란 씨가 앞으로 나서는 것도, 앞에 있던 사람이 회복을 위해 뒤로 물러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사람이 시선을 끌 동안 회복하면 되지!”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우리 같이 인원이 적은 상태에서 그렇게 했다가는 분명 빈자리가 날 것이고 그러면 그 부담감은 남은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넘어간다.


결국 누군가 한 명 다치는 순간 악순환이 시작될 것이다.


“최대한 다치지 않는 선에서 합시다.”

“그런데 아저씨... 저 녀석 왜 우리 공격 안 해요?”


이야기를 듣던 미혜가 이상하다는 듯이 곁눈질로 레드 드래곤을 가리키며 물었다.


“드래곤은 최상위 몬스터로 지능이 높다고 하지.”


지금은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있지만 드래곤의 시선을 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설명했다.


“인간의 언어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어.”

“그러니까. 지금 우리 대화를 듣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


물론 드래곤을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이라면 죽을 때까지 만날 리도 없었고, 탑이 생기기 이전의 세계에서는 그저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오는 생명체였으니까 말이다.


“나도 소설에서 읽은 게 전부지만.”


탑이 생긴 이후에도 드래곤을 만났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우리 대화를 들어서 어디다 쓰려고? 아니면 말이 통한다면 우리에게 뭔가 원하고 있어서 저러고 있는 거 아냐?”

“그 생각도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이 뿜어져 나오는 마력에 대해서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아까의 위압감에 재촉하는 듯이 빨라지는 움직임까지.


지금이야 기다려주고 있겠지만 인내심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겠지.


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드래곤으로부터 먼저 반응이 나타났다.


[인간들이여. 부질없는 짓은 끝났나.]


에스프레소가 머릿속에 직접 말하는 것처럼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주변을 보니 다른 사람들도 같은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인간이기에 기다려주었지만. 나의 시간은 너희들의 시간과는 가치가 다르다.]


직역하자면 시간낭비 하지 말고 죽으라는 소리인가?


[도망갈 녀석이 있다면 조금 더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다 죽이겠다는 거잖아.


[어리석은 인간의 부름에 응해 왔지만, 재미있구나. 죽음을 앞둔 인간은 보통 제대로 된 생각을 하지 못하는데 말이지.]


콰아아앙-!


우리가 서 있던 자리가 파여 깊은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드래곤의 꼬리가 떠오르는 순간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약속이라도 하듯 꼬리가 움직임과 동시에 뛰어올라 자리를 피했다.


“저걸 제대로 맞으면 죽겠는데.”


제천이 자신이 서있던 자리가 처참한 모습으로 변해있는 것을 보고는 침을 삼켰다.


[그래. 재미있는 인간이 둘이나 있구나.]


그 말을 끝으로 드래곤이 말하지 않을 때 들려오던 희미한 잡음마저 사라졌다.

아마도 이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라는 뜻이리라.


“약점. 약점을 찾아야 해.”


최대한 차분하게 생각하기 위해 말을 되새겼다.

여전히 등급에 맞지 않는다는 상태창이 뜰 뿐 정확한 위치가 나타나지 않았다.


“레드 드래곤의 두 뿔에서 나오는 불길은 그의 생명력과 같다.”

“네?”


갑작스럽게 입을 연 첸 씨 때문에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무너지면서 다리에 힘이 풀렸다.


크지는 않지만 또박또박 들려오는 발음에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다음 이어지는 말들은 중국어였다.


“뭐래...요?”


도움의 손길을 바라며 화란 씨를 바라보자 그녀는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첸이 어렸을 때 치하이 할아버지가 해주시던 이야기들이 있는데 거기서 레드 드래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대요.


다만 지금 드래곤을 마주하고 나니 조금 놀란 것 같은데...

별 다른 방법이 없다면 저 뿔을 꺼보는 건 어떠냐고 하네요.”


첸 씨의 이야기를 다 들은 화란 씨가 아나운서 같이 설명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이 상황에 대한 두려움도 초조함도 더 이상 묻어나지 않았다.


이건 연륜에서 나오는 힘일까, 그녀 특유의 여유로움일까.

놀라움과 함께 존경심이 생기려는 상황에 곤란한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저 불... 어떻게 끄죠?”


보통 불은 장작과 같은 매개체가 있어야 타오르는 법이다.

그럼 저 레드 드래곤의 뿔은 무엇을 매개체로 타오르고 있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인간들이 사용하는 불과는 전혀 별개의 것일까?


내 말에 5명의 시선이 첸 씨를 향했지만 그는 그저 웃는 얼굴로 양손을 들어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어깨를 으쓱 올렸다가 내렸다.


모르는 듯 했다.


“능력으로 끄는 건 어때요? 신이 주신 능력인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고서우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빈정거림이 느껴졌다고 한다면 그건 내 기분탓일까.


“그러니까... 우리 중에 불을 끌만한 능력이 없다는 거지.”

“저요! 저!”

“...”


눈을 가늘게 뜨고 녀석을 바라봤다.

고서우의 능력은 분명 [풍운]이었다.

바람 앞에 약한 불은 꺼지지만, 큰 불은 그 몸집을 부풀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서우 씨... 바람 능력자 아니었어요?”

“아뇨! 저는 풍운인데요?”


손을 들며 밝게 말하는 녀석과 달리 듣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한 고서우는 실망스럽다는 듯이 들었던 손을 내리고는 입술을 삐죽였다.


“바람도 바람인데... 구름도 만들 수 있다는 거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설명하면서 딴 곳을 바라보는 모습이 삐진 듯 했다.


“구름을... 구름... 비도 만들 수 있어요?”

“아뇨! 구름! 근두운 같은 걸 만들 수 있는 거예요!”

“그럼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거 아냐?”


자신의 질문에 정말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고서우에게 야무지게 꿀밤 한 대를 먹이고 싶은 표정의 미혜였다.


“아뇨... 혹시 모르죠. 구름이란 거 자체가 수증기가 모여야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저 녀석을 모두 덮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구름을 만들어낸다면... 혹시 모르죠.”

“엑! 그건 무리에요. 기껏해야 어... 자동차? 정도 만하게 밖에 못해요.”


내 말에 고서우는 양손을 흔들며 부정했다.

그러나 이내 마주 잡은 내 손에 의해서 움직임을 멈춰야만 했다.


“아뇨. 해야 해요! 능력에 한계는 없어요! 힘들뿐이지!”


말하면서도 스스로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별다른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의견을 내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여기서 죽나, 능력을 쓰다가 말라 죽나 같지 않겠어요?”

“어...”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지만 마주 잡은 손을 바라보던 고서우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듣긴 한 건가...


“그럼 저희가 시간을 끌 동안 구름을 만들어주세요.”

“시간이라고 해봤자 정말 잠깐이겠지만 잘 부탁해요.”


옆에 선 미혜가 손목을 풀며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듣고 있는 건지 멍한 표정의 고서우는 고개만 천천히 끄덕일 뿐이었다.

녀석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지만 그 표정의 뜻은 알 수가 없었다.


유난히 속을 읽기 힘든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향해 가볍게 웃어 보이자 그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더 생각할 시간이 있다면 좋겠지만 기다려주지 않을 것 같네요.”


뒤에서 가만히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레드 드래곤과 눈을 마주쳤다.

첫 번째 공격 이후 녀석은 앞서 보여줬던 모습과 별개로 이상할 정도로 조용히 우리의 대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대한 진을 빼놓자고. 화란 씨랑 첸 씨는 서우 씨를 도와주세요.”

“네~”


화란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 능력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제대로 만들어본 적은 없어서...”

“아뇨. 무조건 해야 합니다.”


칼을 들고 뛰어올랐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작은 생명체가 신기한 듯 레드 드래곤의 거대한 눈동자를 움직이며 그 시선이 피부를 소름끼치게 감쌌다.


“아니... 이게...”


곤란하듯 말하던 고서우였지만 그의 입꼬리가 실룩거리며 올라갈 듯 말 듯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해 본적은 없지만 해보고 싶은 욕망이 느껴졌다.

그걸 증명하듯이 이전까지는 조용하던 고서우의 마력이 사방으로 뻗어 나오고 있었다.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라니까.


있는 힘을 다해 뛰어올랐지만 고작해야 드래곤의 앞발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높이였다.


역시 머리까지 오르는 건 무리였나...


칼을 직각으로 들어 올린 다음 내리 꽂았다.


까앙-!


생물의 피부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피부를 뚫지 못한 칼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깨져버린 칼은 가벼웠고, 대상을 뚫지 못한 진동이 손끝을 따라 흘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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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여제(1) 23.11.24 29 0 11쪽
121 야경이 보이는 곳(3) 23.11.22 23 0 11쪽
120 야경이 보이는 곳(2) 23.11.20 27 0 12쪽
119 야경이 보이는 곳(1) 23.11.17 30 0 12쪽
118 레드 드래곤(4) 23.11.15 30 0 13쪽
117 레드 드래곤(3) 23.11.13 24 0 12쪽
116 레드 드래곤(2) 23.11.10 22 0 11쪽
» 레드 드래곤(1) 23.11.08 26 0 12쪽
114 검은 꼬리 잡기(5) 23.11.06 25 0 12쪽
113 검은 꼬리 잡기(4) 23.11.03 20 0 13쪽
112 검은 꼬리 잡기(3) 23.11.01 21 0 12쪽
111 검은 꼬리 잡기(2) 23.10.30 23 0 11쪽
110 검은 꼬리 잡기(1) 23.10.27 32 0 11쪽
109 빼앗긴 지상(5) 23.10.25 23 0 13쪽
108 빼앗긴 지상(4) 23.10.23 27 0 13쪽
107 빼앗긴 지상(3) 23.10.20 25 0 15쪽
106 빼앗긴 지상(2) 23.10.18 27 0 13쪽
105 빼앗긴 지상(1) 23.10.16 31 0 12쪽
104 에스프레소(3) 23.10.13 37 1 13쪽
103 에스프레소(2) 23.10.11 29 0 12쪽
102 에스프레소(1) 23.10.09 31 0 13쪽
101 검은 옷의 사람들(6) 23.10.06 29 0 13쪽
100 검은 옷의 사람들(5) 23.10.04 34 0 11쪽
99 검은 옷의 사람들(4) 23.10.02 37 0 11쪽
98 검은 옷의 사람들(3) 23.09.29 3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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