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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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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80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3.11.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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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검은 꼬리 잡기(5)

DUMMY

“아는 분이에요? 한국인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 사람이기는 한 건가?”


옆에 선 고서우의 목소리가 아득히 멀게 느껴졌다.

내 시선과 감각이 앞에 있는 남자를 향했다.

고서우의 말대로 진 쉬에는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빈 말로라도 인간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 위화감을 느끼게 했다.


눈과 이는 까맣게 물들어 있었고, 피부는 핏기를 잃은 듯 창백했다.

무엇보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방대한 흑빛의 마력은 그가 더 이상 인간의 영역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했다.


“그간 인간의 탈마저 벗어 던진 건가?”

“하하. 여전히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 군. 하찮은 인간이나 계속 하고 있기에는 우리에게 찾아온 기회가 너무 아깝잖아.”

“...”


웃음기 가득한 진 쉬에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칼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당장이라도 저 시끄러운 입을 막고 싶었다.


“마치 몬스터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네.”

“저 녀석이야. 소원을 삼켜버린 탑을 관리하던 게.”


소원을 두고 왔을 때의 일을 떠올린 미혜의 얼굴도 무섭게 일그러져 갔다.

옆에서 듣고 있던 제천의 표정도 굳었다.


“그 말로만 듣던...”


눈치가 없는 제천이었지만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없진 않았다.


중국에 다녀온 이후 사라진 팀원과 소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암울한 분위기의 사람들을 보던 제천이 얼마나 무력감을 느꼈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더 나쁜 생각을 하지 않도록 되도록 소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럼에도 간간히 범람하는 강처럼 감정이 흘러넘치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황혼이라는 집단과 그곳의 보스인 남자.

진 쉬에.

중국의 숲에서 발견된 수상한 탑을 처리한 덕분에 탑을 오를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그때의 일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줬다.

그 크기에 차이가 있다하더라도 의미는 다르지 않았다.


“탑에서 사라진 사람들은 너희가 데려간 거지?”


품고만 있던 생각을 입 밖으로 던졌다.

지금까지는 물어도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소원이 죽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가능성 하나만을 믿고 있었다.


“내가 그런 것 까지 말해줘야 하나?”


진 쉬에의 얼굴에서 빙글거리던 웃음이 사라졌다.

기분은 상했지만 소원의 행방에 대해서 숨길 생각은 없는 듯 했다.


“어딨어?”

“그러니까. 내가 그런 것 까지 말해줘야 하냐는 거지. 뭐... 재미있는 구경을 시켜준다면 말해줄 지도 모르고.”

“뭐?”


다시금 방긋 웃는 모습이 너무 빙글거리는 탓에 진 쉬에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자니 희미한 멀미감이 밀려왔다.


“그나저나... 인애단도 여기에 합류하고 있던 건가?”


진 쉬에의 시선이 나를 지나 일행들의 뒤쪽에서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두 남녀를 향했다.

팔짱을 끼고 못마땅하다는 듯이 서있는 화란 씨와 진 쉬에 만큼이나 표정의 변화 없이 웃고 있는 첸 씨였다.


“인애단도 별 수 없네. 이런 작은 나라의 별 볼일 없는 능력자가 없으면 임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양이지.”


도발하려는 듯이 빈정거리는 말투였지만 두 사람의 표정에서는 일말의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뭐... 아무래도 좋아. 여제님을 위해서. 이 한 몸 바치리.”


진 쉬에가 다른 사람들이 듣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이 하늘을 향해 혼잣말을 하듯 외쳤다.


여제. 최근에 그 단어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역시 블랙과 관련되어있을 뿐 아니라 이들에게 지시를 하는 존재가 따로 있는 건가.


“내 몸 바쳐! 여제님께 접근하는 벌레들을 모두!”


만약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들었더라면 기도문을 외우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진 쉬에의 혼잣말은 점점 무게감을 갖고, 표정은 진지했다.


하늘을 향해 뻗어 있던 양팔을 거둔 그는 이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양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일행들이 당황해하는 기척이 느껴졌지만 내 눈에는 확실히 보였다.

진 쉬에가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


진 쉬에에게서 흘러나오던 흑빛의 마력이 이제는 위협적으로 터져 나왔다.

마력에 둘러싸인 그는 마치 마력에 먹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다들 조심해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예상이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곧 위험한 일이 일어날 것이란 건 알 수 있었다.


“뭔가 나타날 것 같아요.”


진 쉬에를 갉아 먹고 자란 마력이 그의 주변으로 거대한 마법진을 그렸다.


오늘 지상에 올라와서 봤던 다른 마법진과는 그 크기와 질이 비교가 되지 않았다.


최소한 상급... 혹은 최상급. 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무언가가 나타날지도 몰랐다.


“새로운 세계가! 우리의 앞에 있으리!”


쥐어짜내듯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하늘을 향해 외치는 진 쉬에의 눈빛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모습을 기이함에 등골이 저렸다.

곧 바닥에 쓰러지더니 진 쉬에의 육체가 검게 탄 재처럼 흩어져 하늘로 사라졌다.


“죽은... 거예요?”


미혜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려움과 복수를 하지 못했다는 분함이 섞여든 떨림이었다.


“저 녀석... 자신을 제물로 삼았어.”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자세히 설명할 순 없지만 이건 확실했다.

진 쉬에는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거대한 마법을 시전했다.


그가 있었던 자리를 중심으로 뻗어나간 마법진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형... 바닥이 뜨거워.”


제천이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날이 어두워진 탓에 다른 일행들의 눈에는 마법진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 어쩌면 진 쉬에를 바라보느라 보지 못했던 것일까?


“설마 이거... 마법진이에요?”


뒤늦게 발견한 미혜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마법진... 불길한데.”


검은 마법진의 빛이 더 이상 밝아 질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볼 수 있었다.

마법진의 중앙에서 나타나고 있는 무언가의 머리를.


단단해 보이는 비늘과 머리 위쪽으로 뿔처럼 자라 일렁이고 있는 두 개의 화염, 길게 뻗어 나온 굵은 이빨까지.


머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건 레드 드래곤이다.


머리까지 소환된 무언가는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발을 꺼내 지면을 딛고 일어났다.

단편적으로 나타나던 존재가 순식간에 나타났다.


어두운 하늘을 비추듯 불타오르는 두 개의 거대한 날개가 바람을 일으키며 펼쳐졌다.


“으아아악!”


바람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미혜의 몸이 살짝 떠오르더니 뒤로 밀려났다.

뒤이어 고서우와 제천 그리고 나도 바람에 휩쓸렸다.

뒤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던 첸 씨가 아니었다면 다들 어디까지 굴러갔을지도 모를 정도로 강한 바람이었다.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드래곤의 꼬리가 바닥을 내리쳤다.

보도블록이 좌우로 갈라지며 파편이 튀어 올랐다.

드래곤은 10층 정도 높이는 될 것 같은 거구였다.



탑이 나타난 이래, 드래곤을 직접 마주한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최소한 대한민국에서는 지금 우리가 처음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드래곤이 소환된 시점에서 이미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뭐...뭐가 저렇게 커? 우리 여기서 죽는 거야?”


제천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답지 않은 목소리라고 생각하며 첸 씨를 바라봤다.

이런 상황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향한 걸 보니 무의식적으로 그를 의지하고 있던 건가.


첸 씨의 얼굴을 보자 그 잠깐의 믿음과 동시에 이곳에서 살아남을 거라는 생각이 깨졌다.


항상 웃고 있던 첸 씨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멍하니 드래곤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빛에는 두려움도 여유로움도 없었다.


마치 너무 큰 시련 앞에 멈춰 버린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그는 능력자가 아니다.

압도적인 강함을 가지고 있지만 일반인이었으니까.


우리가 그에게 의지한다는 건 웃긴 일이다.


“형? 형! 내 말 듣고 있어?”

“어?”


제천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불렀다.


“형. 무슨 방법이 있을까?”

“드래곤은. 어디서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


몬스터에 대한 공략도 결국은 누군가의 시행착오를 통해 얻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니 다른 그 어디에서도 나타난 적이 없는 몬스터라는 것은 공략이 없다는 것과 같았다.


가방을 뒤져 음료 하나를 꺼내 들었다.


[검술의 밀크티]


검술을 배우지 않은 사람도 검을 휘둘러 상대를 제압할 수 있게 가이드 해주는 음료.


기본적으로는 검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지만 이 음료의 근본적인 속성은 약점간파.


캔을 따서 마셨다. 익숙한 맛이 혀를 지나 목을 스쳤다.

새삼 목이 말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료가 위에 도착하는 느낌과 함께 언제나와 같은 안내창이 눈 앞에 나타났다.

다만 평소와 달리 안내창 하나가 더 나타났을 뿐이었다.


[해당 음료의 등급이 대상의 등급보다 낮을 경우 마법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평소에는 본 적도 없는 안내창이었다.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지금 와서 나타났다는 것은 레드 드래곤 때문이라는 거겠지.


“표정이... 별로 안 좋은데.”


옆에서 미혜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집중하지 않았다.

거의 유일했던 믿고 있던 방법이 의미가 없었다.

빨리 생각해 내야 했다.

우리 모두가 여기서 살아서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을.


족히 30m는 되어 보이는데...

저 녀석이 날지 않고 뛰기만 한다고 해도 우리보다 빠르겠어.

아니면 누구하나가 시선을 끌어서... 다른 사람들이 공격을 한다면?

방심하면 드래곤이라도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방법을 찾기 위한 생각이 수도 없이 튀어올랐지만 금방 가라 앉아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최대한 밝게 웃으며 뒤를 돌아봤다.


“내가 시선을 끌 테니까. 도망가.”


누구 하나 희생된다면 다른 사람들은 살 수 있다.

물론 잠시 시간을 버는 수준일 것이고 이만한 몬스터가 지상에 남아 있다면 대한민국은 물론이거니와 인류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금방일 것이다.


그래도.


잠시라도 시간을 벌어서 모든 능력자가 붙어서 싸운다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


그것의 시작을 위해 아주 작은 희생을 치루는 것뿐이다.


“저도 그럼 남을래요.”


내 말에 침묵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고서우였다.


“저 이제 인간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거든요.”


쓰게 웃는 표정에서 평소의 장난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의 손으로 어머니를 죽였다는 죄책감,

돌아가도 돌아갈 곳이 없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 녀석의 표정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그런 류의 감정들이었다.


“그래... 너나. 나나. 살아 돌아가서 뭐하니.”


미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던 친구들도,

괴로운 인생을 보내게 했지만 그래도 어린 자신을 돌봐주었던 부모라고 부를 수 있던 존재들도 모두 자신의 곁을 떠났다.


그런가.

이건... 죽고 싶은 마음이구나.


그저 허무하게 죽기에는 아까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희생했다는.

죽어버렸네. 어쩔 수 없지 하며 떠나고 싶었던 걸지도 몰랐다.


나마저 포기한 목숨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쓰고 싶었던 건가.


내가 이 세상을 떠날 수 있게 해주는 마지막 면죄부가 되어줄 것이라는...


그런 생각을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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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야경이 보이는 곳(3) 23.11.22 24 0 11쪽
120 야경이 보이는 곳(2) 23.11.20 27 0 12쪽
119 야경이 보이는 곳(1) 23.11.17 30 0 12쪽
118 레드 드래곤(4) 23.11.15 31 0 13쪽
117 레드 드래곤(3) 23.11.13 24 0 12쪽
116 레드 드래곤(2) 23.11.10 22 0 11쪽
115 레드 드래곤(1) 23.11.08 26 0 12쪽
» 검은 꼬리 잡기(5) 23.11.06 26 0 12쪽
113 검은 꼬리 잡기(4) 23.11.03 21 0 13쪽
112 검은 꼬리 잡기(3) 23.11.01 22 0 12쪽
111 검은 꼬리 잡기(2) 23.10.30 23 0 11쪽
110 검은 꼬리 잡기(1) 23.10.27 33 0 11쪽
109 빼앗긴 지상(5) 23.10.25 23 0 13쪽
108 빼앗긴 지상(4) 23.10.23 27 0 13쪽
107 빼앗긴 지상(3) 23.10.20 25 0 15쪽
106 빼앗긴 지상(2) 23.10.18 28 0 13쪽
105 빼앗긴 지상(1) 23.10.16 32 0 12쪽
104 에스프레소(3) 23.10.13 38 1 13쪽
103 에스프레소(2) 23.10.11 30 0 12쪽
102 에스프레소(1) 23.10.09 31 0 13쪽
101 검은 옷의 사람들(6) 23.10.06 30 0 13쪽
100 검은 옷의 사람들(5) 23.10.04 34 0 11쪽
99 검은 옷의 사람들(4) 23.10.02 37 0 11쪽
98 검은 옷의 사람들(3) 23.09.29 3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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