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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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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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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69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3.10.1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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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에스프레소(2)

DUMMY

“에스...프레소...”

“그래.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마. 여기 와서 차라도 한 잔 마시지?”

“...”

“짐도 좀 내려두고. 힘들잖아. 이곳은 안전해. 몬스터들은 주인을 물지 않으니까.”


이전에 봤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지금까지는 그저 소년의 모습에, 소년의 말투였다고 한다면 지금은 어른같은 모습.


아니, 그 보다 더 오래된 존재의 느낌.


“나라고 언제나 어린애로만 남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말해도 소년의 모습은 어디로 봐도 어린애였기에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그래... 모습은... 어쩔 수 없지. 이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다른 모습은 상상할 수도, 해서도 안 되네. 그저 시간의 흐름을 따를 뿐.”

“그게 무슨 소리야?”

“일단 차라도 마시라는 소리네.”



소년은 조리대에서 내려와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해둔 주전자에서 차를 따라 내 앞에 두었다.


“이런 진지한 분위기에는 어울리지 않겠지만 내가 오늘 이게 끌려서 양해 좀 해주게.”


그렇게 내밀어진 차에서는 진한 김이 나고 있었다. 김에서 나는 냄새로 맡아보아...


“애플티군요.”


정말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달콤하고 상큼한 맛이 매력인 차였다.


“이 또한 어쩔 수 없지. 마시고 싶을 때 마시지 못하면 미련이 남아버리니까.”


그렇게 말하며 한 모금 마시는 모습이 조금은 쓸쓸해 보인다면 그저 기분 탓일까?


“동정하지 않아도 돼. 인간인 형에게 동정 받을 정도로 안타까운 신은 아니니까 말일세.”


어딘가 중심을 잃어가는 말투에 웃음이 튀어나올 뻔 했다.


“그래서 왜 탑으로 오라고 했죠?”

“차가 식기 전에 우선 마시게.”

“...


급한 건 나뿐이라는 듯이 소년은 천천히 음미하며 차를 마셨다.

그런 소년과 ‘부엌’이라 불리는 이 공간을 가는 눈길로 훑었다.

마음만 먹으면 어느 가정에서라도 볼 수 있는 흔한 모습이었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창문 하나 없어 앞에 있는 소년의 모습조차 실루엣과 목소리 정도로만 구분할 수 있다는 것 정도.


처음과 다를 것 없이 여전히 어두운 곳이었다.


“하~ 정말 좋은 차였어! 내가 이 맛에 인간들의 차를 끊지를 못해.”

“...”


인간의 음료에 중독된 신이라니.

어이가 없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는 내뱉지 못했다.


“중독되지 않기에는 정말 다양한 차가 존재하지 않는가. 고상한 신들은 취미 같은 건 가지지 않으니까 말이야.”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소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고상한 신들’이라는 표현에서 가시가 느껴졌다.


“형이 레시피를 개발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


그렇지. 모를 리가 없다.

어쨌거나 소년이 능력을 준 존재니까.

만약 그가 모르고 있었다면 그건 그것대로 실망스러운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전혀 진전이 없지?”

“...”

“자 형은 이미 답을 알고 있어. 그 능력의 기반이 뭐라고 생각해?”

“음. 카페인?”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현재 인간들이 다루는 ‘능력’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일도 아니고...

그걸 내가 알고 있다면 아마 여기 있지 않았겠지.



“그건 커피에 속한 성분이고. 진지하게 생각해봐. 집중해보라고. 레시피를 개발할 때 아무 생각 없이 많이 만들어내기만 하는 건 의미가 없어. 단순히 양피지 낭비일 뿐이야. 환경파괴! 그건 겪어 봐서 알잖아.”

“윽.”


소년의 말이 맞았다.

며칠간 수많은 레시피를 만들어냈지만, 그 중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없었다.


“레시피를 개발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뭘까.”

“...음.”


그간 만들었던 레시피들을 떠올렸다.

실제 전투에서 쓰일 법한 것들도 있었지만 일상생활에서도 쓰기 어려운 것도 꽤 있었다.


그중에는 저글링을 잘하게 도와주는 음료도 있었다.


눈을 감으니 그간 봤던 정말 많은 수의 레시피 이름이 스쳐지나갔지만 그 중에 진짜 원하는 건 없었다.


“잘... 모르겠어.”

“그렇지. 알았다면 그렇게 많은 양피지를 가져다 버리지는 않았겠지.”

“윽...”


정곡을 찌르는 말에 심장이 아파 괜히 가슴을 쓸었다.

그도 그럴 것이 레시피를 만들 때 필요한 양피지는 소년이 준 것이다.


그걸 말도 없이 신나게 썼으니 양심이 찔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꽤 많은 양이었는데 이제는 몇 장 남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낭비하라고 준 게 아닌데...”


뭔가 어느 순간부터 혼나고 있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인데.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돌려가며 혼나 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은 직설적인 사람들이었고, 잘못에 대해서는 나이가 몇 살이든, 상황이 어떻든 신경 쓰지 않고 혼냈었다.


“그거 모으는데 700년이 넘게 걸렸는데... 참...”


소년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700년...?”

“괜찮아. 인간에게는 영겁의 시간과 다를 것이 없겠지만 나한테는... 나한테는... 에휴.”

“미안해!”

“아니야 괜찮아. 어쩔 수 없지. 그럼 그 능력의 기반이 뭐라고 생각해?”

“...”


장난스러운 기분을 접고 진지하게 질문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능력에 휩쓸리듯이 사용했기 때문에 자세히 바라본 적이 없었다.


보통 능력자들에게는 능력을 사용하는 일종의 방아쇠 같은 행위가 있다.


누군가는 일정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이미지는 형상화시키기도 한다.

가끔 특이한 경우에는 민서처럼 능력을 사용하려는 대상의 눈을 바라보는 것처럼 모든 능력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능력자는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한다.


그것이 눈에 보이는 행동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커피를 내린다든가 양피지에 레시피를 쓴다든가 하는 것이라면 묻지 않았겠지.


최근에 만족스러운 레시피가 나오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을텐데...


이런 타이밍에 소년이 직접 나타나서 그것도 방까지 찾아와서 할 이야기라면 그런 것 뿐일텐데.


만약 신으로서 인간에게 원하는 것이 있었더라면 직접적으로 말했을 테니까.


“...”

“알겠어?”

“나 역시 이미지가 필요하구나.”


처음 검술의 밀크티를 만들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급한 상황이라서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 순간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력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시간도 꽤 지나고, 혼란스러웠던 상황이라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충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거지?”


등골을 따라 서늘한 기운이 올라왔다.

왜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

며칠간 쏟아 부은 마나와 체력, 양피지를 생각하면 이 간단한 것을 몰라 그것들을 낭비한 나에게 소년이 화가 나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긍정을 구하듯 소년을 바라봤다.

소년은 여전히 아랫입술이 삐죽 튀어나왔지만 분위기는 한결 느슨해졌다.


“이게 나한테 얼마나 큰 결심이었는지. 형이 알까.”

“또... 무슨 얘기를 하려고.”

“우리 그동안 못한 이야기가 많잖아? 이런 날 아니면 언제 하겠어?”

“...”


나도 할 말은 많았다.

사실 능력자라고 해서 능력을 준 신과 직접적인 대화를 하는 능력자는 거의 없다.


캐롤라인 세일리같은 경우가 아주 희귀한 경우고 보통은 인간의 삶에 직접적인 간섭을 하지 않는다.


존재 자체를 인지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종종 내 물음에 대답도 해주고, 종종 나타나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내뱉고는 사라지는 소년이었으니.


나도 할 말이 제법 되지 않겠나.


차라리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대화조차 해보지 않았다면 덜 답답했을 텐데.

대화도 번듯이 하고, 이번에는 이렇게 눈앞에 나타나서 자신의 부엌으로 초대까지 하는데.


그런데도 내가 원할 때는 수없이 찾아도 인기척... 아니 신기척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 한 번 보여주지 않은 야속한 소년이었다.


“그거 다 대답해줬다가는 나도 죽고, 형도 죽어.”


그리고 만나서 한다는 소리는 저렇게 밑도 끝도 없는 수수께끼 같은 말뿐이니까.

답답하지 않고 버티겠냐고.


“어쩔 수 없잖아.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이렇게라도 답해줄 수 있는 거에 감사하라고!”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생각을 읽고 있는 듯 조근조근 말하고 있던 소년은 이내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리고 진정하겠다는 듯 손으로 얼굴에 부채질을 하며 내 앞으로 걸어왔다.


앉아 있는 나와 비슷한 키를 하고 있던 소년 덕에 우리는 눈높이가 맞았다.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어. 지난번에 형에게 줬던 버프를 만들어보지 않겠어?”

“나에게 줬던 버프?”


얼마 전에 동물원에서 생명력을 깎아가며 수인을 상대했던 일에 대한 이야기다.

당시에는 상황에 맞지 않게 과한 버프라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 확실히 그런 버프를 줄 수 있는 커피를 만들 수 있다면 앞으로의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것은 분명했다.


다만 걸리는 것은...


“그거 생명력을 담보로 쓰는 거잖아.”

“맞아. 대가 없는 결과가 어딨어.”

“...”


그렇게 된다면 만들어도 문제가 된다.

대체 누가 이 커피를 마시는가.


마음 같아선 누구에게도 마시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직접 마셔본 결과 얼마나 위험한지 피부로 느꼈으니까.


그런데 그걸 타인에게 모두를 위한 희생을 해야 한다며 건넬 수 있을까?


나는 이에 답할 수 없다.

아니 물어본 이를 칠지도 모른다.


“뭐. 그건 형이 하기 나름이겠지. 내가 만든 건 말 그대로 신의 영역이야. 인간이 먹기에는 버거울 수밖에 없다고.”

“아...”

“아이 참. 형 쓸데없이 밖에서 시간 낭비, 마나 낭비하면서 연구하는 거! 내가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거잖아!”


답답하다는 말하는 소년에게 느낄 고마움보다 강렬한 의문이 머릿속을 채웠다.


‘대체 왜?’



솔직히 신들이 인간에게 왜 능력을 주려는 지도 모르겠다.

왜 탑을 만들었지?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그렇다면 왜 탑을 오를 수 있는 능력을 주었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 탑의 신이라고 말하고 있는 소년은 무엇을 위해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하겠다고 나서는 걸까?

혹시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가 아닌 것은 아닐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중에 따가운 시선에 정신이 들었다.

앞에서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한껏 드러내고 있는 소년의 얼굴이 보였다.


“왜...요?”

“형이 의심하는 것도,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알겠는데. 나도 인간들이 이 승부에서 이겨야 얻는 게 있으니까 도와주겠다는 거야.”

“승부...?”

“아차.”


소년은 실수했다는 듯이 양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하지만 일어나 소년의 앞으로 다간 내가 조금 더 빨랐다.


“승부라니?”

“더 이상 말해줄 수 없어. 그랬다가는 나는 정말 소멸하고 말거야!”

“신이라며... 누가 너를 소멸시킨다는 건데?”

“...”


더 이상은 말할 수 없다는 듯이 소년은 양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나중에. 나중에 알게 될 거야. 하지만 나는 형 편이야.”

“그걸 어떻게 믿어.”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내가 형에게 불리한 일을 한 적이 있어?”


물론 없었다.

도움을 준다면 줬었지 잘못되라고 그런 적은 없었다.

다만 그 방식에 있어서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너무 많았을 뿐.


“일단 탑에서 원두를 구해오면 내가 커피를 내리는 걸 알려줄게.”


소년은 대화의 주제를 바꾸겠다는 듯이 황급하게 다음 말을 이었다.


“원두?”

“응. 형이 잃어버린 신의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말이야.”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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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야경이 보이는 곳(2) 23.11.20 27 0 12쪽
119 야경이 보이는 곳(1) 23.11.17 3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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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검은 꼬리 잡기(2) 23.10.30 23 0 11쪽
110 검은 꼬리 잡기(1) 23.10.27 3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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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빼앗긴 지상(2) 23.10.18 27 0 13쪽
105 빼앗긴 지상(1) 23.10.16 31 0 12쪽
104 에스프레소(3) 23.10.13 38 1 13쪽
» 에스프레소(2) 23.10.11 30 0 12쪽
102 에스프레소(1) 23.10.09 31 0 13쪽
101 검은 옷의 사람들(6) 23.10.06 30 0 13쪽
100 검은 옷의 사람들(5) 23.10.04 34 0 11쪽
99 검은 옷의 사람들(4) 23.10.02 37 0 11쪽
98 검은 옷의 사람들(3) 23.09.29 3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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