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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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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365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3.1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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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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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검은 꼬리 잡기(3)

DUMMY

마지막 촉수가 육중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다들 괜찮아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하늘은 처음 벙커에서 나올 때처럼 여전히 짙은 검은색을 띠고 있었고, 바람은 겨울치고는 따뜻했지만 매서웠다.


“저는 괜찮아요.”


건틀렛을 벗은 미혜의 손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일단 나도.”

“저도 괜찮습니다.”


마지막 촉수에서 칼을 빼내는 제천과 고서우가 답했다.

첸 씨와 화란 씨 쪽을 바라봤다.

소매에 손을 넣고 조용히 웃고 있는 첸 씨나 상처를 살피는 화란 씨도 별다른 부상은 없어보였다.


하긴 내가 저 사람들 걱정할 입장은 아니지.


원래부터 둘이서만 움직이던 사람들이었다.

내가 가진 눈만 아니었다면 두 사람이 나와 함께 할 이유가 없었다.


“형 저기.”


멍하니 서서 주변을 살피고 있자니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부터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는 소년은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보통 신들이 인간의 앞에 이렇게 자주 나타나곤 하나?”

“지금 한국은 신들이 사는 세계와 별반 다를 바가 없어. 오히려 인간들이 힘들어 하면 모를까.”

“그런가...”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크게 불편함을 느끼진 못했다.


“아직은. 하지만 최대한 빨리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걸 추천해. 시간이 지날수록 드러날 테니까. 그나저나 빨리 저기나 뒤져봐.”

“아...응.”


소년은 귀찮다는 듯이 대충 설명을 하고는 내 소매를 잡아끌며 자신이 가리키고 있던 방향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형한테 밖에 안 보여. 아무한테 다 보이면 신으로서의 위엄이 없잖아.”


진지한 얼굴로 말하고 있지만 이제는 그게 소년 나름의 말장난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여기 뭐가 있다는 건데.”


소년이 이끌고 간 곳은 마지막 촉수가 튀어나왔던 지면이었다.

산산조각이 난 아스팔트를 보니 촉수와 마주한 사람들이 스탯이 없는 일반이었다면 죽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건...”

“이 몬스터의 핵 같네.”

“핵...? 몬스터한테 그런 게 있었어?”


수많은 몬스터를 잡고, 그들이 빛이 되어 사라지는 것을 봤지만 이런 건 본 적이 없다.


“아니. 우리는 몬스터를 ‘키울 땐’ 불순물이 생기지 않도록 섬세하게 돌보거든.”


어디서부터 의문을 표해야할지 모를 말을 하는 소년을 바라봤지만 상대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이정도 크기면... 일부러 남겨놨다고 봐야지.”


소년이 들어 올린 몬스터의 핵이라는 건 성인 남성의 주먹 두 개를 합친 것 같은 크기로 파랗게 빛났다.


오히려 소년이 말하기 전까지 이 물체의 존재를 알지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의 존재감이었다.


“파란색 ...”


흔하디흔한 색이었지만 이 빛을 어디선가 봤다.

아니 굉장히 자주 보는 것이었다.

내 생각을 읽었다는 듯이 소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인간의 기준으로 보는 세상일 뿐이지만 형의 생각이 맞아.

신의 힘은 수많은 여과과정을 거쳐서 인간에게 도착해.

그렇게 인간도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최적의 힘은 백색에 가까운 빛.”


보통 사람의 눈에는 마력의 색이라든가 마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이템이나 마법진의 색을 보고 공통점을 찾아냈다.


그러나 그 중에 파란색은 없었다.

다만 내가 이 색을 알고 있는 것은 당장 내 앞에 거울이 있다면 볼 수 있는 빛이기 때문이었다.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진 힘... 그런 것들은 푸른색으로 보이는 거구나?”

“예외는 있지만... 맞아.”

“그런데 이건...”


순간적으로 떠오른 추측은 두 가지였다.

이 중 무엇하나 맞지 않기만을 바랐다.


하나는 이 몬스터가 신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매개체가 인간이었다.


속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어두운 감정들을 손으로 막았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소년의 시선이 느껴졌다.


“인간... 그래... 인간이구나. 우리는... 사람을 죽인 건가?”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더 이상의 긍정은 할 수 없다는 듯이.

그저 조용히 바라보다가 검은 하늘에 동화되며 홀연히 사라졌다.


“아저씨? 괜찮아요?”


소년의 모습이 사라지자 차가운 바람이 뺨에 닿았다.

그제야 신이라고 자청하는 그가 아무렇지 않게 인간 앞에 나타났던 게 아니란 걸 알았다.


“아...응...”

“그건 뭐에요?”

“글쎄... 네 눈에는 어떻게 보여?”

“음... 돼지 심장? 중학생 때 해부해봤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돼지 심장도 해부하는 구나... 다른 건? 뭐... 빛이 보인다거나.”

“글쎄요...? 넌 보이냐?”

“은근슬쩍 말 놓고 있네. 꼬맹이가.”


미혜에 이어 다른 일행들도 몬스터의 핵을 확인했지만 별다른 특이점을 발견한 사람은 없었다.


희미한 우울감이 밀려왔다.

그 중에는 외로움도 일부 포함되어있는 듯 다른 사람들과 있으면서도 홀로 떨어져 있는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려니 누군가의 짧은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그거 사라져요!”


손에 들고 있던 핵이 푸른 빛의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어디선가 끌어당기기라도 하듯이 빛은 한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그 속도가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고, 방향만 겨우 알 수 있었다.


“지혁씨. 뭔가 보인 거죠?”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일행들 사이에서 화란 씨가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확실하지는 않은데... 저기로 가면 될 것 같네요.”


이전의 몬스터들은 죽으면 모두 하늘을 향해 흩어졌다. 그건 바람이 부는 날도 비가 오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랬는데 이번에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어느 한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마치 우리를 부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


“형. 나 배고파.”

“...”


여전히 어두운 하늘 때문에 시간을 체감할 순 없었지만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제법 오랜 시간을 걸었다고 말해주었다.


몇 번인가 만난 몬스터가 사라져 가는 방향을 찾아 왔지만 아직까지 어디로 향하는 지 알 수 없었다.

빛이 사라지는 속도가 아직도 빠른 것으로 보아 꽤 먼 곳을 가리키고 있다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빛을 따라가는 게 답이 아니었나.


이쯤되니 내 판단에 의문이 들었지만 이것 말고는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이 방향을 찾기 위해 잡은 몬스터의 수가 몇이었나...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다시금 속이 거북해졌다.


내 추측이 맞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소년의 반응으로 봐서는 맞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블랙을 찾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몬스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저 두 사람은 알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앞으로 만날 몬스터가 모두 인간이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몬스터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선배 괜찮아요? 안색이 안 좋은데요.”

“...”


감기는 시야가 중성적인 목소리에 천천히 떠졌다.

진심을 알 수 없는 녀석이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네...”


짜낼 수 있는 최대한의 목소리를 쥐어짜내어 대답했다.

몬스터를 잡은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난 탓에 슬슬 다음 몬스터를 찾아야 했다.


또 한 사람을 죽여야 한다.

그것이 몬스터의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더 이상 아무도 죽길 바라지 않아서 블랙을 찾으려고 했던 건데.


물론 일면식조차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서 죽일 수 있겠나.


한편으로 그렇기에 더더욱 앞장서서 몬스터를 잡았다.


혹여 누군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최대한 죄책감을 가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슬슬 방향을 알아봐야 할 것 같지 않아요?”


미소 지으며 말하는 화란 씨 또한 악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밀려오는 역겨움은 어쩔 수 없었다.

몬스터를 잡을 때마다 빨리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해졌다.


“찾아보고 있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몇 군데에서나 찾았다.

몬스터가 소환될 때 나타나는 빛의 기둥은 얼마든지 보였지만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아저씨. 안색이 진짜 안 좋은데요?”

“괜찮아.”


애써 웃으며 답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미혜만큼은 이 사실을 몰라야 했다.

이미 한 번 소원을 잃은 뒤 미혜가 얼마나 괴로워했는데... 이런 사실까지 알아서는 안됐다.


그런 마음 약한 아이가 자신의 손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잡다한 생각을 떨치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당장의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내가 천하의 나쁜 놈이 되더라도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보이지 않는 진실은 눈 감을 수 있어야 ... 한다.


“가까운 곳에서 한 마리에요. 크기는 작아요.”


가까운 곳에서 가벼운 발소리가 들렸다.

보통 한 무리의 몬스터를 만나면 모두를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최대한 소수로 다니는 무리만 찾았다.


“잠시만요...”


건물 외벽에 붙어 사람들을 세우고 벽 너머로 살짝 머리를 내밀었다.

몬스터는 이 너머에 있을 것이었다.


“...”


벽 너머에 있는 것은 염소 정도 크기의 검은 털을 가진 머리가 셋 달린 몬스터였다.


“케로베로스네요. 새낀가 봐요.”


상황을 살피고 있는데 턱 아래로 고서우의 얼굴이 나타났다.

놀라 터져 나오는 비명이 다른 몬스터를 불러들일까봐 입술을 깨물며 참았다.


“어머... 귀여워라.”


이번에는 고서우의 아래로 미혜의 얼굴이 나타났다.


“지금 여러분 모습도 케로베로스 같아요.”


화란 씨가 입을 가리며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첸 씨가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왜? 다른 남자 보면서 웃는 게 마음에 안 들어?”

“헛소리.”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첸 씨에게 화란 씨가 장난을 치자 더 이상은 구겨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인상이 한 층 더 불쾌한 기색을 뿜어냈다.


“이런. 정말 매정한 남자라니까.”

“죽을 일 있냐.”

“후후...”


화란 씨의 눈이 아름답게 휘었지만 첸 씨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눈길도 주고 마음도 줬을 아름다움이었지만 역시 직장 동료이기 때문인가.


“그래서 저거 죽여야 해요? 너무 애기 아니에요? 다른 몬스터 찾는 건 어때요.”


3단으로 쌓인 머리 중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머리가 말했다.


“오히려 작고 한 마리 뿐이니까 금방 끝나지 않을까요? 아니면 미혜 씨. 위험을 즐기는 타입이에요?”


두 번째에 있는 머리가 말했다.


“아니거든요. 그냥 불쌍하니까요.”

“그냥 불쌍하다기에는 저 몬스터들한테 당한 사람들은 안 불쌍하고요? 어느 쪽이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요. 쟤들이 어린 인간이라고 봐주는 거 봤어요?”

“그건 그렇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가 열띤 논쟁을 벌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두 번째 머리의 일방적인 설득에 가까운 대화가 오갔다.


“미혜 생각에 동의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머리의 대화를 들으며 침묵을 지키고 있던 첫 번째 머리가 입을 열었다.


“시간이 얼마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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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여제(1) 23.11.24 29 0 11쪽
121 야경이 보이는 곳(3) 23.11.22 23 0 11쪽
120 야경이 보이는 곳(2) 23.11.20 27 0 12쪽
119 야경이 보이는 곳(1) 23.11.17 30 0 12쪽
118 레드 드래곤(4) 23.11.15 31 0 13쪽
117 레드 드래곤(3) 23.11.13 24 0 12쪽
116 레드 드래곤(2) 23.11.10 22 0 11쪽
115 레드 드래곤(1) 23.11.08 26 0 12쪽
114 검은 꼬리 잡기(5) 23.11.06 25 0 12쪽
113 검은 꼬리 잡기(4) 23.11.03 20 0 13쪽
» 검은 꼬리 잡기(3) 23.11.01 22 0 12쪽
111 검은 꼬리 잡기(2) 23.10.30 23 0 11쪽
110 검은 꼬리 잡기(1) 23.10.27 33 0 11쪽
109 빼앗긴 지상(5) 23.10.25 23 0 13쪽
108 빼앗긴 지상(4) 23.10.23 27 0 13쪽
107 빼앗긴 지상(3) 23.10.20 25 0 15쪽
106 빼앗긴 지상(2) 23.10.18 27 0 13쪽
105 빼앗긴 지상(1) 23.10.16 31 0 12쪽
104 에스프레소(3) 23.10.13 37 1 13쪽
103 에스프레소(2) 23.10.11 29 0 12쪽
102 에스프레소(1) 23.10.09 31 0 13쪽
101 검은 옷의 사람들(6) 23.10.06 30 0 13쪽
100 검은 옷의 사람들(5) 23.10.04 34 0 11쪽
99 검은 옷의 사람들(4) 23.10.02 37 0 11쪽
98 검은 옷의 사람들(3) 23.09.29 3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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