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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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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373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3.10.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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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빼앗긴 지상(1)

DUMMY

“괜...찮아요?”


말을 건다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짓인지 알면서도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 이랄까 사람이었던 것을 그냥 둘 순 없었다.


아무리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런 곳에서 직접 생포한 생명체의 생각이나 읽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괜찮냐고 한 질문에 생각의 방향이 바뀌었다.

물론 그 내용은 대상이 자신에서 남으로 바뀐 것뿐이지만.


“당신은... 사람인가요?”


이전에 그가 사람의 말을 했던 것이 떠올라 물었다.

그러나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같은 말만을 되풀이했다.


“블랙과 관련이 있는 거야?”


그 순간 수인의 생각이 멈췄다.


[그들에 대해 어떻게...? 저런 놈이...]


수인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긴 누가 봐도 상거지 꼴이니 로운이 와도 못 알아보려나.


“네가 말하는 신은 누구지?”


[... 내 생각을 읽고 있는 건가.]


미쳐버렸다고 생각했지만 블랙이라는 한 마디에 정신이 든 듯 눈에 서려있던 광기는 사라지고 경계심만 남았다.


[어떻게 된 건지 몰라도 대답할 생각은 없다.]


정신이 좀 들었는지 상황을 파악한 녀석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들려오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너는 인간이었나?”


다음 질문에도 미동도 없는 모습은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강한 의지였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더 이상의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


그러던 중 문이 열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도 지상에 남아 있는 사람이 있었단 말이에요?”


다정하지만 나긋나긋한 목소리.


“로아씨!!”


제복을 입은 로아 씨가 내가 갇혀있는 철장 앞으로 오더니 놀란 얼굴이 되었다.


“지...혁씨? ㄲ...아니 모습이 왜 그래요!”


자신도 모르게 꼴이 왜 그러냐는 말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나도 모르게 쓴 웃음이 흘러나왔다.


급하게 말을 바꾸기는 했지만 현재 내 모습이 얼마나 처참한지 알 수 있었다.


“그... 어쩌다 보니...”

“아... 그러고 보니 로운에게 들었던 것 같아요. 지혁 씨가 탑에 간다고 하고 사라지고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그나저나 저쪽은...”


내 시선을 따라 로아 씨의 시선이 반대편에 있는 수인을 향했다.


이에 로아 씨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최근에 살벌하게 호통 치는 소년밖에 보지 못 봤더니 그 미소가 무척 따뜻하게 느껴졌다.


아니면 탑에서 나온 이후로 팔을 잡고 끌고가는 관리자의 무표정한 얼굴이나, 수인의 적의가 드러나는 얼굴만 봐서 그랬을 지도.


“첸이 관리소에 맡기고 갔어요. 정확히는 저에게 맡겼지만 지금 당장은 여기만큼 안전한 곳이 없거든요. 지금 하는 임무에 상당히 중요한 존재라고 하더라고요.”


로아가 천천히 나긋한 목소리로 그간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관리소에서는 예정에 따라 지하 벙커에 대해 발표했고 거처에 살던 사람들의 이주가 시작되었으며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하로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지상에 있던 임시 거처와 달리 벙커로의 이주는 사람들의 재력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강제적인 것이었다.


이주를 원치 않는 사람들은 더 이상 관리소에서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고 내보냈다고 했지만 거의 대부분은 죽음을 맞이했다.


“무슨 일이 있던 거예요?”


여기까지 오는 길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오히려 너무 조용한 탓에 세상에 나와 무서운 남자 두 명만 남은 거는 아닌가하는 의문도 들었던 차였다.


조금 고민하는 것 같더니 로아가 자신의 뒤에 서 있던 관리자들을 내보냈다.


“밤에... 몬스터들이 나타나요. 아니... 요즘 들어서는 낮에도 발견된다는 거 같아요.”

“마법진이 나타난다는 거예요?”

“아네요. 마법진은 발견되지 않았어요.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벙커로 이주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몬스터가 나타났어요. 그것도 전국 곳곳에서 동시에 나타났으니...”


마법진 없이 몬스터가 나타나는 현상.

그렇게 낯선 일은 아니었다.

다만,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


“의심스러운 것도 이해해요. 너무 타이밍이 맞아 떨어졌죠? 관리소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어요. 하지만... 믿어주세요. 저희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


말없이 생각하는 모습이 의심하는 것이라고 느꼈는지 로아 씨가 작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의 좁은 인간관계 내에서도 비능력자는 많다.

그들에게 마법진은 위험한 신호였지만 한편으로는 몬스터로부터 보호해주는 마지막 방파제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마법진과 무관하게 몬스터가 나타난다면 일반 사람들은 살아남기 어렵다.


“알아요. 로아 씨도, 다른 관리자 분들도. 나아가 관리소도 모두의 안전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걸요.”

“...다행이에요.”


당황해하는 로아 씨에게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보지 못했다.


친구들은, 지인들은... 그리고 부모님은 안전한 건가?


“일단은 빈 방으로 안내해드릴게요. 지혁 씨 짐은 로운이 맡아서 옮겨뒀어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있자니 로아 씨가 철장의 문을 열어 주며 말했다.


새삼 관리소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이변이 일어난 이래로 대한민국의 인구는 많이 줄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국민이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단 몇 년 만에 만들어내고, 단 몇 주 만에 아니... 단 며칠 만에 이주시킬 수 있다고?


“이쪽으로. 짐은 제가 들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것저것 담겨있는 배낭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지던 차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로아 씨에게 짐을 들어달라고 하는 것이 민망했지만.

지금은 무언가 할 기력이 없었다.


최근 몇 년간 깨달은 게 있다면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도움을 주겠다는 사람을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


로아 씨의 안내를 받아 온 방은 이변이 일어나기 전에 살았던 반지하의 방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성인 남성이 눕고 최소한의 짐만을 둘 수 있을 정도의 공간.


그마저도 짐 중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었던 탓에 당장은 편하게 누워서 자는 것은 무리였다.


에스프레소 한테 다시 가져가라고 할까?


“공간이 좀 좁죠... 수도권은 사람이 많아서 일부는 지방으로 갔지만... 여전히 여유 있는 방은 거의 없어요...”


듣자 하니 조금 넓은 방은 어른들의 케어가 필요한 아이들이 있는 가정이 배정되었고 어느 정도 혼자 지낼 수 있는 나이부터는 각방이 주어졌다고 했다.


비상사태는 비상사태구나...


몬스터의 수가 갑자기 늘어났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보지 못했으니.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체감이 되지 않았다.


“그럼 쉬세요.”


벙커의 구조에 대해 이야기해준 로아 씨는 쉬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업무로 돌아갔다.


이후 안내 받은 공용 샤워실에서 씻고 나서 돌아오니 방 앞에 몇 명이 서 있었다.


“지혁씨!”

“아저씨!”

“형!”


이야기를 하고 있던 세 사람이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로운 씨나 미혜는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는 좀 의외다?”


면도도 깔끔하게 하고,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간만에 개운하게 씻었더니 기분이 좋았다.

거기에 내가 왔다고 바로 찾아온 사람들이라니.


그래도 제법 잘 살았다는 게 아닐까.


“나도 걱정했다고.”

“그렇다기엔 본인 살기 바빠 보이던데.”

“크흠. 그간 바빴으니까 말이야.”


시선을 회피하며 말하는 모습을 보니 본인도 민망한 듯 했다.

이미 사전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찾지 않았다고 해도 서운하지는 않았다.


사실 사전에 전해들은 게 없다고 해도 사실 서운할 건 없었다.

각자 바쁜 일이 있던 거겠지.


“뭐. 그럴 수 있지. 나야 조용하고 좋지 뭐.”

“헐. 너무해. 형. 그렇게 말하면 나 서운해.”

“그래그래. 서운하든가. 그런데 어쩌지. 이 방에 4명이 들어오기는 버거울 것 같은데.”


투덜거리는 제천에게 대충 대답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로운이 입을 열었다.


“아. 저는 지혁씨 안부를 확인하러 온 것도 맞는데. 지시가 있어서 데리러 온 거예요. 제 볼일은 맨 마지막에 볼게요.”


손을 들어 올려 손바닥을 보이더니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래서 둘은 무슨 일이야.”

“그냥 어디 아픈 곳은 없나, 잘 지냈나, 인사나 하러 왔죠.”

“나도 마찬가지.”

“그럼 확인했으니까. 가볼까요?”


뒤를 돌며 머리 위에 얹어 두었던 수건을 대충 아무데나 얹어 두었더니 로운이 이를 주워 다시 머리 위에 올렸다.


그리곤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머리에 남아 있는 물기를 털어냈다.


“백 소장님이 부르십니다. 이러고 가면 곤란해요.”

“아. 그래요?”


제법 능숙하게 머리를 털어주는 손길에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집은 아니었지만 있어야 할 곳에 돌아온 기분.


“아무튼 저는 아저씨 멀쩡한 거 봤으니까 가볼게요.”

“어디 가는데?”

“이제 곧 해가 지니까요.”


미혜의 설명에도 멀뚱거리며 쳐다보자 로운이 말을 보탰다.


“밤이 되면 갑자기 몬스터의 수가 늘어나거든요. 낮에는 비교적 활동이 적은 편이라서. 아마도 탑과 비슷한 환경에서 많이 돌아다니는 것 같아요. 입구 주변으로 순찰을 하는 거예요.”

“아. 그런데 미혜가 왜 가?”

“저 관리소에 들어갈 거예요!”

“갑자기?”


“뭐... 당장 들어가겠다는 건 아니고. 그래도 사람을 구하기에는 거기만한 곳이 없잖아요. 그리고 당장은 일손이 부족하대요. 능력자로서 도와야죠.”

“그렇구나. 조심히 다녀와.”


양팔을 크게 흔들며 뛰어가는 미혜를 보니 녀석도 꽤 변했다.

마법진 안에서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던 미혜가 이제는 앞장서서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능력을 썼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모두가 변하고 있다.

그것도 제법 좋은 방향으로.


“음. 이정도면 되겠지. 갈까요?”

“아. 고마워요.”

“천만에요.”


로운에게 건네받은 수건을 대충 아무데나 던져두고는 방을 나왔다.


“형 저러면 수건에서 냄새난다?”

“응.”


제천이 순진한 얼굴로 말했다.


처음엔 이 녀석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도 좋아하지 않는 인간상인 제천이 사고를 칠 때면 두통이 밀려왔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철이 없지만 자신의 역할을 다하려는 기특한 동생정도로만 보였다.


외동으로 살았기 때문에 동생을 가져본 적이 없었지만.

동생들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만 해본다.


“그나저나 백 소장님이 왜 부르세요?”

“그러게요... 그 분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서요.”


로운은 입맛을 쓰게 다시면 대답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쉽게 입을 떼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러더니 뒤를 돌아 앞장서 걸었다.


+++


“소장님. 지혁 씨를 데려왔습니다.”


한참 걷던 로운이 다른 문과 다를 바가 없이 내구성에만 정성을 다한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다.

두꺼운 금속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오렴.”


문 안에서는 작지만 점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뉴스에서 여러 번 들어본 목소리였기에 목소리 주인의 얼굴을 쉽게 그려볼 수 있었다.


문을 열자 다른 방과 다를 바 없이 작은 방안에 책상 하나만을 두고 한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50대 정도 될 것 같은 남자는 같은 남자인 내가 보더라도 각진 턱 선과 선명한 눈매가 잘 생겼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의 외모를 지녔다.


“어서 오게. 나는 관리소의 장을 맡고 있는 백 환이라고 하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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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여제(1) 23.11.24 29 0 11쪽
121 야경이 보이는 곳(3) 23.11.22 23 0 11쪽
120 야경이 보이는 곳(2) 23.11.20 27 0 12쪽
119 야경이 보이는 곳(1) 23.11.17 3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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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레드 드래곤(3) 23.11.13 2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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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검은 꼬리 잡기(5) 23.11.06 25 0 12쪽
113 검은 꼬리 잡기(4) 23.11.03 2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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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검은 꼬리 잡기(2) 23.10.30 23 0 11쪽
110 검은 꼬리 잡기(1) 23.10.27 3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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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빼앗긴 지상(4) 23.10.23 27 0 13쪽
107 빼앗긴 지상(3) 23.10.20 25 0 15쪽
106 빼앗긴 지상(2) 23.10.18 27 0 13쪽
» 빼앗긴 지상(1) 23.10.16 32 0 12쪽
104 에스프레소(3) 23.10.13 38 1 13쪽
103 에스프레소(2) 23.10.11 30 0 12쪽
102 에스프레소(1) 23.10.09 3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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