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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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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3.10.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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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빼앗긴 지상(4)

DUMMY

벙커의 복도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지친 얼굴의 여인과 그 손을 잡고 있는 신난 아이.

먼지를 뒤집어 쓴 얼굴에 피곤이 묻어나는 남자 둘.

무언가를 소리치며 뛰어가는 관리자와 젊은 여인.


지상 밖으로 밀려난 일상의 여전히 소란스러운 소리들.

걸을수록 그런 익숙한 소리들은 점차 멀어져 갔다.


“블랙...”


백 소장도, 화란 씨도 이전부터 조사했다고 말하는 조직. 오랫동안 존재해왔던 것을 뒤늦게 마주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


당황스러움, 허무함,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얼얼함,

허탈감, 배신감, 소외감,


로운의 방에서 아주 잠깐 걷는 동안에도 수많은 감정들이 스쳐지나갔지만 가장 크게 느껴지는 감정은


의아감.


그동안 잘 해오던 일을 이제야 나에게 부탁하는 이유.

굳이 관리소의 영향 밖에 있는 나에게 까지 밝히며 부탁해야만 했던 이유.


백 소장은 미래에서 무언가 본 건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미래의 내가 할 어떠한 행위에 대해서 현재를 배팅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걸 지금의 나에게 말해도 뭘 할 수 있지?


현실도 살아가기 벅찬 상황이다.

이전처럼 평화로운 세계도 아니고, 당장 내일 내가 혹은 내 주변의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세계에서.


굳이, 그런 부탁을, 이런 타이밍에,


풀리지 않는 의문이 조금만 더 생각하면 존재를 드러낼 것 같으면서도 쉽게 잡히지 않았다.


아주 조금이면 되는 생각은 느닷없이 등장한 충격에 그간의 노력을 무시하듯 흩어져 사라졌다.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도망가세요!”


나와 부딪친 상대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던 방향으로 뛰어갔다. 저 남자뿐만이 아니다.

부모를 찾아 울고 있는 5살 정도 될 것 같은 아이,

주저앉아 잘린 다리를 붙잡고 울고 있는 사람,

목이 쉬도록 사람들의 대피를 돕는 사람,


흡사 그 모습은 지옥과 닮아 있고, 지옥에 흐르는 성질 급한 파도처럼 흘렀다.

그리고 나는 그 가운데 서서 파도를 가르고 있었다.


“방해된다고!”


누군가 내 어깨를 쳐 벽으로 밀고 달려갔다.

앞만 보며 뛰어가는 사람들의 얼굴에 짙게 내려앉은 공포.


생각에 빠져 걷고 있던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무슨 일이에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묻기에는 사람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있었던 탓에 근처에 있던 관리자를 붙잡고 물었다.


“벙커 내에서 몬스터가 나타났어요.”

“네?”

“벙커 안에서... 그럴 리가 없는데... 아무튼 어서 대피하세요.”


관리자 청년은 그렇게 말하고는 근처에서 넘어져 울고 있는 아이에게 뛰어갔다.

사람들이 뛰어오고 있는 방향을 역으로 달렸다.


어디로 어떻게 뛰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뛰었다.

뛰면 뛸수록 절규에 가까운 비명소리가 점차 크게 다가왔다.


“아저씨!”


비명 소리 사이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혜야? 미혜지!”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돌아보며 물었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비명의 근거지로 다가갈수록 사람들의 수가 많았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도망가지 못한 거지?


“여기에요!”


그때 옷자락 끝이 누군가에 의해 잡아당겨져서 보니 땀범벅의 미혜가 있었다.


“미혜야! 괜찮아? 너...”

“아 뭐. 저는 괜찮은데. 아저씨는요?”


“나도 괜찮아.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어요... 순찰 돌고 돌아왔는데 갑자기 뭔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 상황이더라고요.”


확실히 소리만 들어서는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아까 그 관리자의 말대로 낮게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이곳은 지하다. 그것도 꽤나 깊은 지하.

지상에서 마법진이 생기면 지하에서도 생길 수 있는 건가.


“아저씨 지금 표정 완전 웃긴 거 알아요?”

“응.”

“이제 놀리는 재미도 없어졌네. 나이를 먹으면 세상사 다 재미없어진다더니...”


미혜가 정말 측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입은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도 눈은 분주하게 주변을 살폈다.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을 하다니. 많이 여유로워졌네.”

“... 그럼요.”


희미한 미소와 함께 미혜의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갔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몬스터가 소환 된 거야?”

“소환? 아니에요. 소환이 아니라...”

“소환이 아니야?”

“음... 최초로 상황을 발견한 관리자 오빠 말에 의하면 갑자기... 몬스터가 됐다던데?”

“몬스터가 됐다고?”

“나도 자세한 상황을 몰라요. 그래서 가던 길이에요.”


더 이상의 말은 의미가 없었다.

나와 미혜는 약속이라도 한 듯 사람들을 제치고 나아갔다.


+++


이번 달에 들어온 신입 관리자는 처음으로 관리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때를 떠올렸다.


제복을 입고 현란한 손놀림으로 탑의 입구를 조작하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관리자들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그랬기 때문에 몇 년간 준비하던 취업활동도 멈추고 관리소에서 관리자를 모집한다는 공고에 지원했다.

애초에 이런 세상에서 취업이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쩌면 이런 세상이기 때문에 관리자는 이전의 공무원과 같으며, 하나의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했다.


나름 취업을 위해 준비하던 것들이 플러스 요인이 되어 운이 좋게도 붙었고, 두 달간의 교육을 받고 이번 달에 처음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근무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벙커니 뭐니 하며 일이 많아지더니 해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며 히스테릭한 사람들을 달래는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이에 ‘이런 일들을 하려고 관리자가 된 게 아닌데.’

라며 푸념을 하던 그간의 자신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은 신입이었다.


‘그게 오히려 선녀야!’


크르릉-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내뿜는 기분 나쁘게 따뜻한 콧김이 신입의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밀어냈다.


‘죽은 척 해야 돼. 죽은 척!’


곰을 만난 것도 아니지만 혹시라도 이러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냄새에 묻혀 지나갈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던가.


‘오늘은 의무실 담당이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벙커 내 미화나 식당 일손 돕기 등의 일은 신입 관리자들의 몫이었다.

신입들 담당 중에서 의무실 일이 그나마 그가 생각하는 가장 관리자다운 일이었다.


오늘만을 기다리며 보낸 일주일이었는데...

하필이면 자신이 담당하는 날 이런 일이 생기다니...


신입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서 오전 내내 말 많은 선배의 업무 교육을 받고 오후 중에는 서툴지만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던 중 일이 일어나 버렸다...

시간은 마지막으로 시계를 본 것이 8시 10분 무렵이었으니까.

대충 8시 반 무렵이었을 것이다.


무리해서 밖에 나갔던 능력자 중 하나가 몬스터 무리를 만나 홀로 살아남아 돌아왔다.

등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는 상처가 보기만 해도 아파보였다.


‘왜 나가서 고생이지...’


관리소에서 만든 벙커는 밖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안전했다.

식량도 충분히 있었고 정해진 일손만 분담해서 한다면 따로 요구하는 것도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관리소에서 알아서 위의 상황을 살피고 안정되었다 싶으면 다시 지상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신입은 그렇게 전달 받았다.


남자의 낮은 울음소리는 아픔으로 인한 신음 같기도 했고, 동료를 잃은 슬픔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절대.

자신이 보면 안 될 모습일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 아프시면 진정제 좀 드릴까요?”


꽤나 오랫동안 앓는 소리가 들려 걱정되어 물어본 신입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상처가 났던 부위에서 근육으로 둘러싸인 4개의 가시가 튀어나왔다.


정면에서 보면 마치 팔이 6개인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크으으윽-


신입은 들고 있던 진정제를 떨어트렸다.

반쯤 열려있던 약통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하얀 알약을 흩뿌렸다.


환자의 눈동자는 새까맣게 변했고 좌우로 길게 늘어진 입가에서는 침이 흐르고 있었다.


그건 더 이상 그의 기준에서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무언가였다.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주변에 누워있던 환자들도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첫 번째 환자와 같이 변하더니 새까맣게 변한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을 둘러 봤다.


그리고는 가장 가까이에 있던 관리자들부터 공격하기 시작했다.

신입 관리자였던 그의 옆에 있던 환자가 관리자를 공격하려다가 그 위에 있는 선반을 내리친 덕분에 그는 살 수 있었다.


‘으... 다리에 감각이 없어.’


물론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선반뿐만 아니라 벽까지 무너진 모양인지 그의 다리 위로 벽의 파편이 떨어졌다.

비명이 나올 것처럼 찌르던 통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뎌졌다.


‘무뎌진 건 내 머리인가...’


숨죽이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여기서 살아서 돌아갈 순 없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다리의 상처가 곪아서 죽든, 쇼크사를 하든, 몬스터에게 들켜서 죽든 결말을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두려움에 차마 나설 생각은 하지 못하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아주 낮은 확률의 희망에 기대어 숨죽여 숨어 있었다.


잔해 사이의 틈을 통해 본 의무실 안은 이미 지옥이었다.

처음 몬스터가 된 사람들에게 당한 관리자들도 시간이 지나자 점차 기괴하게 변하더니 의무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이어 이어지는 비명소리는 원하지 않아도 밖의 상황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죽는 구나... 어머니... 아버지... 이 불효자를 용서하세요.’


그래도 관리자로서 사람들을 보호하다가 가는 아들이니 자랑스럽게 생각해주셨으면 했다.

물론 이 상황이 빠르게 마무리 된다는 전제하였다.

그의 부모님도 자신과 멀지 않은 벙커에 함께 들어왔으니 말이다.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는 관리자의 귀에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후에 그는 그 목소리를 천사의 목소리였다고 회상했다.


“와. 완전 난장판이네. 여기서 시작된 것 같죠?”

“그러게. 여기가 가장 처참하네.”


좁은 틈 사이로 분명히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두 남녀가 들어오고 있었다.

도움을 청하려던 신입 관리자는 자신의 목소리가 마음처럼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쉿. 조용히 해봐.”

“저는 조용히 있었거든요.”

“어디서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아?”

“밖에서 들리는 소리하고 헷갈리는 거 아니에요?”

“아니야. 여기 안이야.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귀가 아프게 들릴 리가 없어.”

“밖에서 몬스터들이 활보하고 있으니 그 정도 소리면 여기서도 충분히 크게 들리지 않을까요?”

“아니라니까 글쎄. 일단 조용히 해봐.”


몇 마디 주고받는 것 같더니 여자 쪽에서 남자의 말에 따라 입을 다물고 의무실 안을 살폈다.


“여기...같은데...”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자가 말하는 소리가 자신일 것이라고 믿고 싶었던 신입 관리자는 낼 수 있는 최대의 소리를 냈다.

그것이 인간의 소리가 아니라 그저 앓고 있는 동물의 울음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있네.”


그의 노력이 닿았던 것일까.

그가 쓰러져 있는 잔해 쪽으로 다가온 남자가 천천히 잔해를 치우며 말했다.


“괜찮아요?”


+++


상황은 새벽 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 되어서야 일단락되었다.


“마치 좀비 영화의 좀비마냥 사람들이 몬스터가 되어갔다는 거죠?”


신입 관리자를 포함해 살아남은 몇 사람들의 증언에 의해 사건의 진상이 알려졌다.


이에 다수의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몬스터가 된 사람의 지인들도, 몬스터로 변한 사람들에 의해 죽은 사람들의 지인들도, 그저 듣고만 있던 사람들도.


하지만 가장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사람들은.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가족을, 친구를.


몬스터라고 판단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치한 이들이었다.

그중 몇은 정신이 나가 울음조차 터트리지 못했다.

나는 그저 바라보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블랙...”

“네?”


인간을 몬스터로 만드는 실험.

모든 게 사라진 세계에서 그걸 가능하게 하는 존재는 몇 없다.


그리고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탑에서 나가라고 등을 떠밀었던 에스프레소도,

굳이 오늘 나에게 블랙에 대해 이야기 했던 백 소장도,


바로 오늘, 이 일에 대해 알고 있었으리라.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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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에스프레소(2) 23.10.11 2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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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검은 옷의 사람들(4) 23.10.02 3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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