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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메의 서재입니다.

흑룡이 나르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왕잼
작품등록일 :
2021.03.28 11:18
최근연재일 :
2021.05.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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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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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령계망(花靈啓蟒): 화령이 이무기를 깨우쳐 주는구나

DUMMY

‘드디어 잠룡을 보는 날인가.’


이단은 도성으로 향하기 전, 마달 등과 함께 연잉군 접선에 관한 일을 최종적으로 논의했다. 역천대계를 세우고 하나씩 단추를 꿰어가고 있는데, 이번 일은 상당히 중요한 단추였다. 꼭 성사시켜야 했고, 그리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 모두 나에게 달렸구나.’


애쓰고 있는 흑결주 이하 결원들에게 보답을 해주고 싶었다. 조선을 다시 세워 ‘흑조선’이라 칭하고, 이들과 함께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 날 선계안에서 정신을 잃었던 도방은 다행히 하루만에 깨어나 수행준비를 하고 있었다. 화령이 분사한 화향의 정수는 화독(花毒) 그 자체였는지 해독에 애를 먹었다고 했다.


-치명적인 독은 아니지만, 조금만 더 늦었으면 후유증이 오래 갈 뻔 했습니다.


영매 무방이 보고한 내용이었다. 후각뿐 아니라 전신의 감각이 둔해져 회복기간이 길어졌다면 이단과 흑결의 입장에선 큰 손실이 될 뻔 했다. 이단은 며칠 전 밤의 믿지 못할 일이 떠올랐다.


백회혈 깊숙한 곳에서 발견한 두 개의 영편(靈片:영의 조각)은, 화령과 삽살이의 잔재였다. 어떻게 완전히 소멸되지 않고 잔존하고 있었는지,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그것들도 알 수 없는 노릇일 것이다. 그것들은 자신을 보자마자 광분했고 험악한 욕을 퍼부어댔지만 그뿐이었다. 그것들은 백회혈 구석에 깊이 박혀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였다.


찜찜한 마음에 제거해보려 했지만, 자신도 그것들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허! 세 개의 영이 몸속에 있다니···’


하나의 영이 두 개의 몸을 지배하게 된 것만큼 비정상적인 현상이었다. 전례라도 있다면 문헌을 뒤져보겠건만, 누구도 들어본 적 없을 일일 것이다. 꽤 견문이 넓다고 자부하는 흑결주 마달도 일령이체(一靈二體)에 대해 경악할 정도였으니, 일체삼령은 더 믿기 힘들어 하겠지?


결국, 마달에겐 아직 이 새로운 비밀을 얘기하지 못했다. 괜한 걱정을 남기긴 싫었다. 찜찜함은 있지만 잘 활용하면 의외의 큰 자산이 될 수도 있었다. 몸에서 화향을 제거하는 방법을 물었을 때, 화령이 해준 얘기가 머리에 맴돌았다.


<내가 여기 있는 한, 그 향은 사라지지 않을거다. 내 능력을 삼킨 거니까. 젠장, 분하지만 어쩔 수 없군. 근데 그 좋은 능력을 왜 버리려고 해? 만약 네가 그럴 자격과 자질이 된다면, 그 향을 다루는 능력이 큰 무기가 될 수도 있거늘. 특히 인간들은 향에 취약하더군. 미혼, 최면, 마비, 중독 그리고 뭐, 살상까지도 가능할거야.>


화령의 말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능력을 흡수한 셈인데···


그때, 문을 두드리며 도방이 들어왔다.


“주군! 가실 시간입니다.”

“자네, 괜찮겠는가? 조금 더 몸을 추스르게. 도일을 데려가도 되네.”


도일(刀一)은 도방의 수하이지만 실질적으로 칼패를 이끌고 있는 실력있는 사내였다. 하지만 도방이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군을 모시는 건, 오직 접니다.”

“······.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네.”


두 사내의 눈빛에 웃음기가 잔뜩 묻어있었다.


*****


흑문(黑門)이 열렸다. 한양 창덕궁 주변에 대기하던 무일과 쌍선봉의 무방이 직접 길을 연 것이다. 공간술사들이 흑문을 열고 유지하려면 꽤 많은 진기와 집중력이 소모되기에 빨리 진입해야 한다.


흑결주 마달과 수하들의 목례를 뒤로하고, 이단과 도방이 흑문에 진입했다.


이단은 흑문을 드나들 때마다 이질적인 기분이 들었다. 수백리 떨어진 두 공간이 술법에 의해 하나의 공간으로 접혀지고, 그 압축된 공간 속을 몇 보 걸으면 전혀 다른 공간으로 나오게 되는 이 술법은, 몇 번을 다녀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어찌 보면, 흑선께서 인간들에게 금단(禁斷)의 도구를 선물한 게 아닐까? 인간계의 결계가 무너지지 않게 보호하는 게 선계의 신선들에게도 그리 중요한 일이었을까? 혹시···, 선계를 보호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면?


그 순간, 백회혈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소리라기 보단 울림에 가까웠다.


-생계의 미천한 존재치고는 촉이 좋구나. 정확한 추리야. 선계의 고고한 것들이 자기네 영역을 지키려고 너희를 지원해주는 거라구. 더 알고 싶나? 그래 잘 들어봐.


화령이었다. 흑문과 흑문 사이 몇 걸음을 걷는 동안 화령이 전해준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이 세계가 어떻게 이뤄져있는지, 자신들의 암종가가 벗어나지 못하는 굴레가 어디서 비롯됐고 무슨 목적이었는지···, 새롭게 알게 된 진실들이 섬광처럼 각인됐다.


이단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 세계의 모습은 이러했다.


[세상은 크게 다섯 개의 차원계로 이뤄져 있다.


...........................신계(神界)

.............↙↗............↓

선계(仙界) ↔ 생계(生界) ↔ 영계(靈界)

..................................↑..........↙↗

...........................마계(魔界)


한가운데에 인간과 생명체가 사는 생계(生界)가 있고, 방향은 의미 없지만 그 한편의 접경에 선계(仙界), 그리고 반대편에 영들의 터전인 영계(靈界)가 있다. 위로는 신계(神界), 아래로는 마계(魔界)와 직접 연결된다. 생계는 오계(五界)의 중심이니 그만큼 중요한 곳이다. 나머지 사계는 생계로부터 근원을 얻고 균형을 유지한다.]


빛과 어둠을 상징하는 차원계들이 생계를 중심으로 마주보는 모양새였다. 신계나 마계는 서로를 직접 침범할 수 없지만 다른 두 개의 차원계로는 진출이 가능하다. 선계와 영계 역시 상대편 세계를 넘보려면 무조건 생계를 통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결국, 선계의 신선들이 인간을 대리인으로 세워 생계와 영계간의 결계를 유지하려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었다.


화령의 설명을 접한 뒤의 놀람이 얼마나 컸는지, 반대편 흑문으로 나오던 이단은 휘청하고 넘어질 뻔 했다. 앞서가던 도방이 놀라 얼른 부축했다.


‘흑선이나 백선이나···, 자신들의 영역과 이익을 침해받지 않기 위해 생명계의 인간들을 이용했단 말인가? 우리 가문 역시 그들의 꼭두각시였고?’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다.


도방은 깜짝 놀랐다. 도성 모처에서 흑문을 열고 있던 무일과 칼패 수하 몇몇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군인 이단이 흑문으로 나오자마자 휘청거리더니 곧 노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말이다. 거기에 또 하나 이상한 점.


“이게 무슨 향기지?”


얼마 전, 화향에 중독돼 곤욕을 치렀던 도방은 진한 화향을 느끼고는 본능적으로 호흡을 차단했다. 주위에 있던 흑결원들은 난데없는 꽃향기에 영문을 몰라 했다. 도방은 화향의 출처를 곧 알아내고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출처는 이단이었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혹시 화향에 중독되신 겁니까?”


이단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에게서···, 화향이 풍겼는가?”

“네, 갑자기 진하게 느껴져서 놀랐습니다.”


사실 쌍선봉을 출발하기 전부터 도방은 이단의 체향이 평소와 달라진 걸 느꼈다. 은은한 화향이 흘러나왔지만 크게 신경쓰진 않았다. 부자나 양반들이 주머니에 넣어 차고 다니는 사향(麝香) 정도의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방금 전의 향기는 상당히 공격적이고 위험스럽게 느껴져, 혹시나 이단이 화령에게 중독된 게 아닌지 염려한 것이다.


“중독된 건 아닐세. 염려하지 마시게.”


충직한 도방을 안심시켜놓았지만, 돌아가면 자세히 설명을 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보다, 화령으로부터 얻게 된 충격적인 진실과 이상한 능력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되기 시작했다. 화령을 떠안게 된 것이 과연 득이 될지 화가 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


변일은 익위사 무관 한명과 함께 궐 밖에 나와있었다. 평복 차림의 두 사람은 어디론가 바삐 향하는 중인데, 변일의 뒤를 따르는 무관은 바로 한종로였다.


박광이 연잉군에게 추천해 익위사 좌시직(左侍直)에 임명됐으니, 하위직이긴 하나 연잉군이 믿을 수 있는 무관이 되어버렸다. 박광이 세제 곁을 떠나면서 한종로에게 당부했었다.


-한형이 분골쇄신(粉骨碎身)하듯 모셔주세요. 백성을 헤아릴 줄 아는 분이지만, 궐에서는 참 외로운 분입니다.


이후 한종로는 근무에 성심을 다해왔고 연잉군의 눈에도 그런 마음이 보였는지, 이번 은밀한 일에 변일을 수행하게 했다. 변일은 같이 나가면서도 출타 목적을 설명해주지 않았다. 단 한마디 당부만 했을 뿐.


“좌시직에게 요구하는 건, 단 하날세. 묵언(默言)”


뭘 보고 듣든지 입을 다물라는 얘기였다. 무예실력은 봐줄만하나 겁이 많은 한종로에겐 나름의 처세술이 있었다.


<위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무관심하라.>


어떤 일을 목격하건 관심을 두지 말자고 생각하며 그가 변내관을 따라 도착한 곳은, 낙산(駱山)이었다.


낙산은 한양의 틀을 이루는 내사산(內四山)의 하나로, 주산(主山)인 북악의 좌청룡 역할을 하며 우백호인 인왕산과 마주보고 있었다.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낙산의 능선을 따라 솟아있는 성곽은 한양의 동쪽을 든든히 지키는 관문이었고 그 남쪽 자락 끝에 흥인지문(興仁之門:동대문)이 우람하게 서있었다.


낙산의 중턱 부근에 이화정(梨花亭)이 있다. 낙산 기슭에는 배나무가 많이 자랐는데, 그래서 이곳에 지어진 정자의 이름도 이화정이었다. 배꽃은 볼 수 없지만, 수확을 덜 마친 배들이 탐스럽게 열려있었다.


‘더위가 길어지니 열매가 실하기 짝이 없구나.’


이화정에 올라있는 두 사람, 이단과 도방이었다. 평소의 검은 도복 대신 백색 도포에 정갈한 갓을 쓴 이단의 모습이 이채롭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면서 예를 갖춘 복장이었는데, 누가 봐도 준수한 서생의 모습이었다.


산 위에서 바라보니 그리 멀지않게 창덕궁이 펼쳐져 있고 그 너머에 멀리 인왕산이 보였다. 한양을 수호하는 네 개의 산봉우리···, 남방을 담당하는 목멱산도 보였다.


‘명류장은 잘 있을까?’


부친이 역모에 휩쓸려 억울히 가신 이후, 명류장엔 아무도 남지 못했고 당장 가볼 수도 없었다. 관인들이 주시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단은 입술을 깨물며 애써 생각을 돌렸다.


“도방, 여기 낙산과 저기 인왕산이 북악의 좌청룡, 우백호라는 것을 아는가?”

“그렇습니까? 청룡은 나지막이 누워있는데, 백호는 기세가 참 거세보이는군요.”

“하하. 자네 눈이 정확하군. 게다가 그런 느낌의 표현이라니.”


이단의 칭찬에 도방이 민망한 듯 손을 내저었다.


“용은 숨죽이고 있는 걸세. 상대에게 방어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함이지. 없는듯하다가 한번 자신을 드러내면 모든 것을 앗아간다네. 그래서 용은 무서운 존재일세.”


도방이 감탄한 듯이 말했다.


“그럼 어서 주군께서 용이 되셔야겠군요.”


이단이 씩 웃으며 도방의 어깨를 툭 치고 돌아서니, 배나무 숲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새하얀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어느 봄날이 떠올랐다. 잠깐 수연의 옆집에 살던 때 배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함께 그 나무아래서 배꽃을 보며 행복했던 시절, 수연은 배꽃처럼 순수했고 향기로왔다. 그 배꽃향이 아직 기억에 선명했다.


“아직 배꽃이 피어있나 봅니다. 진한 배꽃향이 갑자기···”

“······? 배꽃향이 느껴진다고?”


이단은 후각에 집중해 봤지만, 그 향을 느낄 수 없었다. 후각이 고장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생각한 그 향을 주위 사람들이 느낀다는 것인가?


그는 자신의 추측을 확인하기 위해 도방에게 더 시험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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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3 21.05.18 40 2 12쪽
53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2 21.05.17 32 2 11쪽
52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1 21.05.16 32 2 12쪽
51 자아독대(自我獨對): 자아와 마주하다 21.05.15 41 2 11쪽
50 흑룡비상(黑龍飛上): 흑룡이 나르샤 21.05.14 33 2 12쪽
49 오오낙락(烏烏樂樂): 까마귀들이 좋아 죽는구나 21.05.13 31 2 11쪽
48 귀궐애사(歸闕哀事): 궐로 복귀하니 슬픈 일이 생겼구나 21.05.12 32 2 11쪽
47 쌍룡대면(雙龍對面): 두마리 용이 마주하다 21.05.11 62 2 12쪽
46 야심심조(夜深心躁): 밤은 깊어 가고 마음은 바빠진다네 21.05.10 34 3 12쪽
45 풍전왕실(風前王室): 바람 앞에 왕실이어라 21.05.09 46 2 12쪽
44 목멱지자(木覓之子): 목멱의 아들아 21.05.08 49 2 12쪽
43 탐색망흔(探索蟒痕): 이무기의 흔적을 찾아서 21.05.07 44 2 12쪽
42 해오집맥(解誤執脈): 오해를 풀고, 맥을 잡노라 21.05.06 52 2 11쪽
41 반월혹인(半月惑人): 반월이 사람을 혹하게 하는구나 21.05.05 43 2 11쪽
40 기린휘능(起鱗揮能): 비늘을 세워 권능을 휘두르다 21.05.04 50 2 12쪽
39 백호각성(白虎覺醒): 백호의 능력을 각성하니 21.05.03 59 2 11쪽
38 복수불수(覆水不收):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지 못하오 21.05.02 42 2 12쪽
37 생사기로(生死岐路): 생사의 갈림길에 서다 21.05.01 41 2 11쪽
36 작우금적(昨友今敵): 어제의 벗이 오늘의 적이라 21.04.30 42 2 11쪽
35 상호취원(相互取願): 서로 원하는 바를 취하노라 21.04.29 60 2 11쪽
34 이인심란(二人心亂): 두 사람의 마음이 어지럽더라 21.04.28 77 2 11쪽
33 흑침백노(黑侵白怒): 흑이 침범하니 백이 노하다 2 21.04.27 45 2 11쪽
32 흑침백노(黑侵白怒): 흑이 침범하니 백이 노하다 1 21.04.26 100 2 11쪽
31 취명사암(取明捨暗): 어둠을 버리고 빛을 누릴 것이다 21.04.25 67 2 12쪽
30 괴수대전(怪獸大戰): 괴수끼리 크게 한판 붙다 21.04.24 69 2 11쪽
29 사탐유육(蛇耽油肉): 뱀은 기름진 고기를 좋아한다 21.04.23 55 2 13쪽
28 용망동주(龍蟒同舟): 용과 이무기가 한 배를 타다 21.04.22 46 2 12쪽
» 화령계망(花靈啓蟒): 화령이 이무기를 깨우쳐 주는구나 21.04.21 9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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