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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메의 서재입니다.

흑룡이 나르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왕잼
작품등록일 :
2021.03.28 11:18
최근연재일 :
2021.05.18 18:00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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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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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글자수 :
277,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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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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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흑침백노(黑侵白怒): 흑이 침범하니 백이 노하다 1

DUMMY

이단은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다행이기도 하지만, 좀 아쉽긴 하군.’


환단계의 본거지 마을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환단계원 다수가 마물을 처리하러 나가 있을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너무 싱거웠다. 혹시 모를 저항에 대비해 오십에 가까운 정예들을 동원해 마을에 침입했는데 싸움다운 싸움을 해보지도 못했다.


도방의 칼패 수하들이 부락 주민들을 하나 둘 포박해왔다. 흑의인들의 갑작스런 등장에 놀란 이끼부락 주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했다. 실력 있는 환단계원들은 모두 출정을 나간 상태였고, 마을에 남은 사람들은 무기력했다. 개중에 수련중인 제자 몇몇과 풍대 장로가 완강히 저항해 봤지만 중과부적이었다.


환단계 본거지 제압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다. 대장로 풍대의 목이 날아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모자란 손을 채우기 위해 밖에서 모집한 낭인무사들 가운데 하나가, 칼을 떨구고 무기력하게 서있는 노인의 목을 쳐버리고 킬킬거리고 있었다. 모두 할 말을 잃고 바라보는 가운데, 갑자기 어디선가 엄청난 기운이 솟구쳤다.


그 기운의 주인은 이단이었다. 평화롭게 부락을 제압하고 정보를 캐낸 다음 주요 인질 몇몇만 데리고 돌아가는 게 그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수하 놈들이 무방비의 노인을 베는 꼴을 보자 분노가 폭발했다.


“쓸데없는 살상을 피하라고 했다!”


분노와 함께 그의 정수리에서 시커먼 기운이 솟구쳐 올랐다. 칠흑같은 이무기가 놈을 향해 날아갔다.


노인의 목을 베고 킬킬거리던 무사가 기겁을 하고 본능적으로 방어의 칼질을 해댔지만 강력한 영육의 혼합체인 이무기를 벨 수는 없었다. 굵직한 몸통의 이무기가 입을 쫙 벌리더니 그 무사를 삼켜갔고 놈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계곡 사이로 퍼져나갔다.


이무기가 무사를 삼키는 순간, 그 느낌이 이단에게 생생하게 전달됐다. 더러운 이물질이 몸속으로 들어가는 불쾌감이었다.


무사가 있던 자리에는 그가 들고 있던 칼 한자루만 덩그러니 떨어져있고 존재의 흔적은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완전히 소멸된 것이다. 분노의 기운으로 펄럭대던 이단의 검은 도복이 점차 진정됐다. 이무기가 하늘을 한바퀴 선회하더니 이단의 옆에 서서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도방을 위시해 이무기를 알고 있던 흑결원들은 고개를 숙였고, 새로 들어온 낭인무사들은 겁에 질려 바짝 엎드렸다. 포로가 된 이끼부락 주민들도 경악한 채 모두 얼어붙어 있었다. 이무기를 몸에 가둔 사내라니···,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다른 한편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눈도 있었다.


-투툭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이단의 눈에 앳된 처녀가 들어왔다.


*****


미리내가 빨래를 마치고 마을로 들어서는 순간,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마을 사람들의 비명소리였다.


‘대체··· 무슨 상황인거지?’


비현실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제자들과 주민들이 포박된 채 무릎 꿇려져 있었다. 그중엔 어머니도 보였다. 엄마가 자신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오지 말고 숨으라는 뜻 같았다. 검은 옷을 입은 낯선 사내들이 마을 사람들을 윽박지르고 있었다. 마음은 도망가라고 외쳤지만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한 무사가 풍대 할아버지의 목을 베었다. 할아버지의 머리가 공중에 떴다가 빙그르르 돌며 떨어지더니 데굴데굴 굴러왔다. 그 눈과 마주쳤다. 마치 자신을 걱정하는 눈빛 같았다. 입이 벌어졌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이어지는 광경에 그녀는 아예 몸이 얼어붙어버렸다. 자신을 등지고 서있던 검은 도복의 사내에게서 시커먼 괴물이 튀어나가 그 무사를 삼켜버렸다. 들고 있던 빨래바구니가 손에서 떨어졌다.


-투툭


이무기를 뽑아낸 사내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본다. 그순간 미리내는 정신을 잃었다.


‘이건, 이건 꿈일거야···.’


빨래바구니에서 튀어나온 하얀 도복에 검은 얼룩이 번져갔다.


*****


환단계주 마루한 일행은 부락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정선을 거쳐 오대산을 타고 북쪽을 탐색할 예정이었지만, 중간에 사상자들이 생기고 말았다.


오대산 자락의 한 마을에서 괴이한 기운을 감지했다. 마을에 사람 기척은 없고 독(毒)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 조사를 해보니 마을 곳곳에서 인골이 발견됐다. 죽은 지 오래된 유골이 아니었다. 군데군데 살점이 붙어있었으니까. 무언가에 녹아내린 듯한 시신들이었다.


일행 중 조츠라비 어울개가 시신을 조사하다 놈에게 당하고 말았다. 갑자기 시체 뒤편에서 그놈이 땅거죽을 뚫고 솟구쳐 올랐다. 사람 몸통 굵기에 길이가 이장(二丈:4~5미터)에 달하는 대왕지네가 튀어나와 어울개를 덮쳤다. 다섯의 계원들이 있었고 계주인 마루한까지 있었음에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순식간에 당해버렸다.


공기에 자욱한 독기운이 영기(靈氣) 탐색을 어렵게 했고, 더구나 놈이 땅속에 숨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급히 주문을 준비하는 넋재비들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라비 철견이 대왕지네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방심한 사이 꼬리가 등에 박히며 큰 독상을 입고 말았다. 미처 준비할 틈도 없이 벌어진 기습에 두 명이 당해버린 것이다.


노발대발한 마루한이 지네의 대가리를 쪼개버리면서 소멸시켜버렸지만, 임무수행은 거기까지였다. 대왕지네의 독즙에 녹아내린 어울개의 시신을 정성껏 묻어주고 독상을 입은 철견을 응급치료한 뒤 부락으로 철수해 오는 길이었다.


해가 중천에서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을 때 부락에 당도한 마루한은 사뭇 달라진 분위기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한창 사람들이 활동할 시간이건만 지나치게 조용했다.


큰소리로 아내 미투리를 불렀더니 그제서야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밖으로 나오는데 모두 침통한 표정이었다. 불안감에 집으로 달려갔다. 아내는 눈이 퉁퉁 부어 있었고, 미리내는 보이지 않았다.


“부인, 어찌된 일이오?”


미투리가 갑자기 나타난 남편을 보더니, 겨우 멎었던 눈물을 다시 펑펑 쏟아낸다.


“미리내가, 미리내가··· 그놈들에게 잡혀갔어요.”


아내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마루한의 심경은 놀람과 비통함을 거쳐 분노에 이르렀다. 놀란 것은 흑의인들의 등장이었고 비통한 것은 미리내가 납치됐다는 것, 그리고 분노한 것은 스승이자 대장로인 풍대의 죽음 소식이었다.


“정말, 그놈들이 흑결 놈들이란 말이오?”


이렇게 대놓고 침범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기에, 마루한은 끝까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러자 미투리가 그에게 서찰 한통을 건넸다.


[환단계 계주에게


이런 식으로 조우하게 돼 매우 유감이오.

따님은 잘 모시고 있을테니 심려하지 마시오.

다만, 조건이 있소.

환단계에서, 이번 사태에 손을 떼었으면 하오.

본인이 도모하는 뜻이 성취될 때까지 모든 제자를 불러들이시오.

흑백양선이 마지막 현신하신 것도 백오십년,

과거의 사명이나 책임 따위 기억하는 자도 없을 거요.

따님의 안녕을 기원한다면, 부디 현명한 판단을 하길 바라오.

최대한 화평하게 다녀가고 싶었으나

불의의 사고로 장로 한 분이 희생된 것은 참으로 비통하게 생각하오.

본인의 뜻이 아니었다는 것을 헤아려주기 바라오.

일이 완성된 이후에 따님을 정중히 모셔다 드리겠소.


- 제 십구대 암종 이단]


과연 그들이었다. 설마 했지만 현실로 다가오니 더욱 더 혼란스러워졌다. 암종과 흑결이 실존했고 여기까지 찾아내 다녀가다니···


‘그들이 도모하는 것은 분명 위험한 일일 것. 막아내야 한다. 미리내가 위험에 처할지라도 계의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흥분을 가라앉히자 머리가 맑아지면서, 해야 할 수순이 정리됐다. 마루한은 계주의 신물인 혼혼령(混魂鈴)을 꺼내들었다.


*****


미리내가 눈을 뜬 것은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때였다. 낯선 곳이다. 나무를 층층이 쌓아 만든 목옥(木屋) 내부였다. 문을 열어봤지만 잠겨 있었다. 정신을 잃기 전 상황이 떠올랐다. 꿈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꿈속일까?’


“아, 아!”


소리를 내자, 제 목소리가 목벽을 튕기며 울렸다. 현실이었다. 부락에서 본 끔찍한 광경도 실제였구나 싶자 몸서리가 쳐졌다. 풍대 할아버지의 부릅뜬 눈이 잊혀지지 않았다.


결계를 뚫고나온 마물을 퇴치하는 게 환단계의 사명이니 괴물을 잡는 건 봤지만, 사람이 그리 처참히 죽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친할아버지처럼 자신을 예뻐해 주던 어른의 죽음이었으니 크나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여기가 어딘지 알아야했다. 나무창살이 박힌 창이 하나 있었다. 창밖을 보니 탁한 하늘 아래 두 개의 바위 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그녀의 머릿속이 새까매졌다.


마루한과 아내 미투리는 혼혼령을 흔들며 빙의를 시작했다. 납치된 딸 미리내를 떠올리며 혼백을 이탈시킨다. 무릇, 빙의술을 펼칠 때는 고도의 집중이 요구되고 엄청난 진기가 소모된다. 마루한의 혼백이 빛의 속도로 빠져나갔다.


이윽고 눈을 뜨니, 탁한 하늘과 봉긋하게 쌍을 이뤄 솟아난 바위봉우리가 보였다. 고개를 움직여 몸을 살펴보니 묶여있지도 않았고 아무런 상처도 없어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안심이 됐다.


‘두개의 봉우리 아래 목옥 안에 미리내가 있다.’


빙의의 순간은 짧다. 더 오래 머물기 위해선 진기를 보태줄 조력자들이 필요했다. 마루한의 혼백은 순식간에 미리내를 놓아두고 다시 태백산으로 돌아왔다. 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뜬 마루한의 이마엔 진땀이 흘러내렸다.


“우리 미리내는 괜찮은가요?”


역시 힘겹게 호흡을 고르는 미투리가 다급히 물었다.


“휴! 무사하오.”

“어딘가요? 있는 곳이?”

“역시, 그곳 같소. 쌍선봉!”


흑백양선이 조선의 개국자 이성계에게 처음 모습을 보인 곳이다. 환단계에서도 성지처럼 여기는 곳이고, 마루한 본인도 한번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확신할 수 있었다. 마루한은 생각에 잠겼다. 암종이라는 자의 서찰에 담긴 정중한 경고가 마음에 걸렸다.


“이제 저들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소. 어쩌다 운명의 궤를 이탈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무엇을 감수하더라도 막아야하오.”

“······, 그럼 미리내는요?”


마루한은 딸의 안위와 사명감 사이에서 잠시 갈등했지만, 결국 사명(使命)이 우선이었다.


“꼭 무사히 구해내겠소. 부인은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아내를 안심시키는 말을 해주긴 했지만, 실로 막막한 상황이었다. 당장 달려갈 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루한은 그쪽으로 향하고 있을 계원들을 떠올렸다. 보낼 사람은 보내고, 부를 사람은 불러들여야 한다. 마루한은 다시 혼혼령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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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3 21.05.18 40 2 12쪽
53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2 21.05.17 32 2 11쪽
52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1 21.05.16 32 2 12쪽
51 자아독대(自我獨對): 자아와 마주하다 21.05.15 41 2 11쪽
50 흑룡비상(黑龍飛上): 흑룡이 나르샤 21.05.14 33 2 12쪽
49 오오낙락(烏烏樂樂): 까마귀들이 좋아 죽는구나 21.05.13 30 2 11쪽
48 귀궐애사(歸闕哀事): 궐로 복귀하니 슬픈 일이 생겼구나 21.05.12 32 2 11쪽
47 쌍룡대면(雙龍對面): 두마리 용이 마주하다 21.05.11 62 2 12쪽
46 야심심조(夜深心躁): 밤은 깊어 가고 마음은 바빠진다네 21.05.10 34 3 12쪽
45 풍전왕실(風前王室): 바람 앞에 왕실이어라 21.05.09 46 2 12쪽
44 목멱지자(木覓之子): 목멱의 아들아 21.05.08 49 2 12쪽
43 탐색망흔(探索蟒痕): 이무기의 흔적을 찾아서 21.05.07 44 2 12쪽
42 해오집맥(解誤執脈): 오해를 풀고, 맥을 잡노라 21.05.06 51 2 11쪽
41 반월혹인(半月惑人): 반월이 사람을 혹하게 하는구나 21.05.05 43 2 11쪽
40 기린휘능(起鱗揮能): 비늘을 세워 권능을 휘두르다 21.05.04 50 2 12쪽
39 백호각성(白虎覺醒): 백호의 능력을 각성하니 21.05.03 59 2 11쪽
38 복수불수(覆水不收):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지 못하오 21.05.02 42 2 12쪽
37 생사기로(生死岐路): 생사의 갈림길에 서다 21.05.01 41 2 11쪽
36 작우금적(昨友今敵): 어제의 벗이 오늘의 적이라 21.04.30 42 2 11쪽
35 상호취원(相互取願): 서로 원하는 바를 취하노라 21.04.29 60 2 11쪽
34 이인심란(二人心亂): 두 사람의 마음이 어지럽더라 21.04.28 77 2 11쪽
33 흑침백노(黑侵白怒): 흑이 침범하니 백이 노하다 2 21.04.27 45 2 11쪽
» 흑침백노(黑侵白怒): 흑이 침범하니 백이 노하다 1 21.04.26 100 2 11쪽
31 취명사암(取明捨暗): 어둠을 버리고 빛을 누릴 것이다 21.04.25 67 2 12쪽
30 괴수대전(怪獸大戰): 괴수끼리 크게 한판 붙다 21.04.24 69 2 11쪽
29 사탐유육(蛇耽油肉): 뱀은 기름진 고기를 좋아한다 21.04.23 55 2 13쪽
28 용망동주(龍蟒同舟): 용과 이무기가 한 배를 타다 21.04.22 46 2 12쪽
27 화령계망(花靈啓蟒): 화령이 이무기를 깨우쳐 주는구나 21.04.21 9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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