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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메의 서재입니다.

흑룡이 나르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왕잼
작품등록일 :
2021.03.28 11:18
최근연재일 :
2021.05.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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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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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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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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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백호각성(白虎覺醒): 백호의 능력을 각성하니

DUMMY

모두가 잠든 밤.


마루한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걱정스럽게 박광의 상태를 살펴보다가 탁기가 퍼지지 않게 타혈(打穴:혈도를 두드려줌)을 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쉽게 갈 놈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스승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무예를 익히는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무엇보다 선기를 흡수하는 호흡이 탁월했다. 백선께서 환단계를 마련한 이래 가장 출중한 재목(材木)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제자였다.


“이놈아, 어서 눈만 떠다오. 네가 이렇게 약한 놈이 아니잖아? 스승이 누군데 감히 누가 널 데려가겠니. 일어나기만 한다면···”


제자가 잘 이겨내고 깨어난다면, 얼른 미리내와 혼례를 올려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광은 깨어날 기미가 없다.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계속 인상을 쓰는 것이 무슨 악몽이라도 꾸는 것 같았다.


*****


꿈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번엔 햇살이 좋은 어느 날 계곡 폭포에서 놀고 있는 어린 시절이었다. 수련이 게으르다고 사부에게 혼찌검이 나고 나서 혼자 폭포로 나와 자맥질을 했다.


물에서 나와 햇살에 몸을 말리는데, 갑자기 눈앞에 흰 수염이 탐스럽고 인상이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가 서있는 게 아닌가. 산신령이나 신선 할아버지가 있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싶을 만큼 기분 좋아지는 인상이었다.


그 옆에는 정말 황소만한 백호가 하품을 하며 앉아있었다.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면 간이 떨어질 일이겠지만, 무슨 영문인지 그 눈부시게 흰 호랑이는 전혀 겁나지 않았다. 인상 좋은 할아버지 옆에 얌전한 개처럼 앉아 있었으니까.


용기를 내 다가가서 백호를 만져 보려는데, 백호가 귀찮다는 듯 꼬리로 툭툭 밀쳐냈다.

할아버지가 껄껄 웃으며 백호에게 손을 뻗어 쓰다듬었다. 그러자 갑자기 백호가 사라지고 할아버지의 손 위에 하얗게 빛나는 구슬이 생겼다.


어린 박광이 깜짝 놀라 백호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두리번거리는데, 할아버지가 기특하다는 듯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그 순간, 무언가 청량한 기운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기분이 상쾌해졌다.


-헐헐헐, 참 좋은 아이로구나. 훗날, 다룰 능력이 된다면 백호를 볼 수 있게 될 거란다.


그러더니 할아버지가 사라지고 눈앞이 까매지면서 정신을 잃어버렸다.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건···, 꿈이 아니었구나?


지워졌던 기억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꿈을 통해 기억의 봉인이 벗겨지면서,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그날이 떠오른 것이다.


-이건, 분명 겪었던 일이었어.


갑자기 신선 같은 할아버지가 다시 나타나더니 자신을 나무랐다.


-제자 광아! 무엇하고 있느냐? 백호는 네가 불러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단다.]]


‘아! 이것이 실체를 몰랐던 몸속 기운의 정체였던가? 백호가 내 안에 있었구나.’


그렇게 자각하는 순간, 몸속에 꽁꽁 숨어있던 백색의 기운이 광채를 내며 머리로부터 혈맥을 타고 질주하기 시작했다. 심장과 몸통을 거쳐 사지의 말단으로 치닫는다. 흉부로부터 번져가던 이무기의 시커먼 탁기를 덮쳐버렸다. 온몸 구석구석을 달리며 탁한 기운을 말끔히 씻어버리고 맑은 기운을 되살려냈다. 형언할 수 없이 청량한 기분이 들었다.


휴우! 꿈은 끝났다.


박광이 사흘만에 눈을 떠 처음 보게 된 것은, 진땀을 흘리며 자신의 몸을 타혈하고 있는 사부 마루한의 옆모습이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기척을 하려고 하는데 마루한이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다시 눈을 감았다.


“아, 검은 기운이 많이 사라졌구나. 그런데 왜 정신이 돌아오지 않아? 광아, 제발 깨어나기만 해다오. 일어만 난다면, 바로 미리내와 혼례도 올려줄게.”


그 순간 박광이 벌떡 일어났다.


“정말이세요. 사부님? 아니 장인어른?”


잠시 얼빠진 얼굴로 박광을 바라보던 마루한이 제자를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다가 갑자기 뺨을 꼬집고 성을 냈다.


“얌마! 너 언제부터 깬 거야? 이게 감히 사부의 억안조마(抑按調摩:안마)를 즐겼단 말이지? 엉?”


*****


박광이 깨어났다는 소식에 계원들은 잔치라도 벌일 기세였다. 박광은 기뻐서 펄쩍 뛰는 미리내를 힘껏 안아줬다. 노심초사 걱정해준 공대와 조생원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궁금증 많은 조생원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삼라만상의 이치로 볼 때, 자네는 분명 저승문 앞에 거의 다다랐던 몸이라 이거지···”


순간 주위에서 조생원을 힐난하는 눈빛들이 반짝거렸다. 기적적으로 깨어난 사람을 앞에 두고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느냐는 뜻이었다. 하지만 조생원은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근데 어찌, 저승문턱에서 다시 이승으로 끌려왔을까? 누가 그리했을까?”

“백선(白仙)님이요. 그리고 백호가요.”


박광이 서슴없이 대답해버리자, 조생원을 힐난하던 눈빛들이 박광에게 옮겨갔다.


“백선? 백호라고? 무슨 소리야 너?”


의문을 품은 눈빛들을 대표해 마루한이 박광을 쏘아붙였다. 어쩔 수 없이 박광은 자신이 꾸었던 꿈을 계원들에게 얘기해줬다. 앞에 꾸었던 악몽 부분은 빼놓고서.


“에이··· 설마?”

“개꿈치고는 화려했구만? 뭐, 굳이 해몽을 해보자면···”


공대와 조생원의 반응이었고,


“오라버니, 정말 백호가 몸 안에 있어?”


미리내는 철석같이 믿는 눈치였다. 하지만 마루한은 침묵했다. 환단계 제자들이지만 누구도 백선을 본 사람은 없었다. 백오십 여 년 전 명종 임금 때 잠시 다녀갔다는 게 마지막 목격담 기록이었다.


박광이 꿈에서 만났다는 신선의 용모와 백호 이야기에 마루한은 혼란스러웠다. 계주에게 대대로 전해지는 환단계 비사(祕史)에 기록된 내용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백호는 바로 백선의 수호령(守護靈)이자 분신이었다.


마루한은 제자 박광의 영력이 예민해 현몽(現夢)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제자놈은 그게 꿈이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실제로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일이라지 않는가.


‘이놈이 온전히 깨어난 게 아니구나. 후유증이 큰 게야. 며칠 사경을 헤매더니 몸뚱이만 돌아오고 정신은 일부 두고 왔구나. 이를 어쩐다?’


별의 별 생각이 다 들면서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뒤통수를 한 대 쳐줄까 싶었는데, 미리내가 깡충깡충 뛰면서 백호를 보여 달라고 졸라댔다.


박광은 난감했다. 백호가 몸 안에 깃든 건 분명한데, 어떻게 불러내야 할 지 들은 바가 없는 것이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미리내는 물론 반신반의하던 마루한과 계원들도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


박광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몸을 비비꼬기 시작했다. 꼴깍! 사람들이 침을 삼켰다. 박광이 갑자기 눈을 뜨더니 미리내에게 덤벼드는 시늉을 했다.


“어흥!!!”

“어마, 깜짝이야.”


그 순간, 박광의 뒤통수에 마루한의 손찌검이 작렬하며 별이 반짝 튀었다.


*****


박광이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사부로부터 암종과 흑결의 변절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들었다. 그는 이미 큰 충격을 받은 바 있었다. 벗이 되고 싶었던 왕도사가 바로 암종이라는 사실, 왕단이 아니고 이단이라는 이름을 그에게 직접 듣지 않았는가.


그의 몸에서 발출된 이무기를 봤고 그 끈적하고 독한 탁기를 몸소 겪어봤으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 정말, 전국적으로 생긴 결계의 균열과 마물들의 침입이 그들의 소행이라는 거죠?”

“확실해졌지. 아마 우리 환단계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나라 전체를 뒤흔들려고 했던 것 같구나.”

“그건,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네요.”


암종이란 자가 역심(逆心)을 품으면, 세상이 멸망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걸 여실하게 깨달았다. 지금 왕실이 변변치 못해 자신도 원망하는 처지였지만, 결국 그는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 결계를 깨부수면서 백성들의 삶까지 피폐하게 만들었다. 아니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끔찍이 혐오스러운 위선자의 전형이었다.


‘백선께서는 이 사태를 정말 예견하신 걸까?’


십년 전, 분명히 자신을 찾아와 백호의 힘을 심어준 게 틀림없었다. 환단계의 첫 번째 사명인 암종의 변절에 대비하라는 뜻이었을 거다. 자신에게 부여된 막중한 사명을 생각하자, 몸속에 응축된 백호의 기운이 강렬하게 사지를 휘감는 게 느껴졌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암종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백호를 불러낼 방법도.


박광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계원들에게 전했다.


“암종이 일을 벌인다면 마지막은 결국 도성일 것입니다. 마침 제가 궐 출입을 하고 있으니 방비를 할 수도 있겠죠. 모두 한양으로 올라가야겠습니다.”


마루한이 잠시 생각하더니 박광의 말에 동조했다.


“그게 옳겠다. 나도 오랜만에 우림위장을 좀 봐야겠구나.”

“아! 그런데 사부님, 우림위장과는 무슨 인연이신가요?”

“이중원 그 친구···, 한때 태백산에서 수련했던 동문이란다.”

“예? 위장님이요? 한번도 그런 내색을 안하셔서···”

“허허, 뭐 내세울 수는 없었겠지. 선기를 수련하기에 너무 혈기방장해서 중도 하산했으니까. 그 스승이 바로 우이 장로님이었지.”

“아, 그랬군요. 근데··· 그 인연만으로 제 취직을 부탁하기엔 좀 약한데요?”

“짜식, 눈치도 밝네. 그 친구, 나한테 목숨 빚도 있지. 선대 왕 시절, 그 친구가 평안도에선가 초년 무관시절에 나라의 큰 도적을 소탕하다가 위기에 처했는데 내가 구해준 적이 있거든. 그 도적은···, 너희도 잘 알거다. 장길산이라고.”

“예? 장길산이라면, 신출귀몰했던 엄청난 분이잖아요? 끝까지 잡지 못했던···”


마루한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박광과 미리내가 그 내막을 몹시 궁금해 하는 눈치였으나,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아내인 미투리와 만나기 전, 평안도에서 있었던 아련한 추억을 잠시 회상하며 빙긋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아, 나도 왕년 그 시절엔 참··· 풍류남 소리 좀 들었는데 말이지.’


이렇게 환단계 일행은 모두 한양으로 올라가기로 정해졌다. 미리내는 태백산으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같이 안 가면 절대로 가지 않겠다는 미리내의 생떼에 마루한도 두 손 들고 말았다.


‘저 고집, 많이 보던 건데···’


박광은 미리내의 고집 하나는 사부와 똑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앞날이 조금 걱정스러워졌다.


공대가 박광에게 칼을 내밀었다. 육두의 칼이었다.


칼날의 군데군데 이가 빠져 있었고 손잡이에는 피가 배어있었다. 얼마나 악전고투했는지 느껴졌다. 육두는 결코 약한 사내가 아니었다. 누구보다 강한 힘과 용맹을 가진 사내였다. 어떻게 최후를 맞이했는지 모르지만, 분명 상대도 온전치는 못했을 거라 생각하며 육두의 넋을 기렸다.


박광은 이를 악물고 다짐했다. 육두와 두루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암종의 음모를 막아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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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3 21.05.18 39 2 12쪽
53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2 21.05.17 31 2 11쪽
52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1 21.05.16 31 2 12쪽
51 자아독대(自我獨對): 자아와 마주하다 21.05.15 40 2 11쪽
50 흑룡비상(黑龍飛上): 흑룡이 나르샤 21.05.14 33 2 12쪽
49 오오낙락(烏烏樂樂): 까마귀들이 좋아 죽는구나 21.05.13 30 2 11쪽
48 귀궐애사(歸闕哀事): 궐로 복귀하니 슬픈 일이 생겼구나 21.05.12 32 2 11쪽
47 쌍룡대면(雙龍對面): 두마리 용이 마주하다 21.05.11 62 2 12쪽
46 야심심조(夜深心躁): 밤은 깊어 가고 마음은 바빠진다네 21.05.10 33 3 12쪽
45 풍전왕실(風前王室): 바람 앞에 왕실이어라 21.05.09 46 2 12쪽
44 목멱지자(木覓之子): 목멱의 아들아 21.05.08 48 2 12쪽
43 탐색망흔(探索蟒痕): 이무기의 흔적을 찾아서 21.05.07 43 2 12쪽
42 해오집맥(解誤執脈): 오해를 풀고, 맥을 잡노라 21.05.06 51 2 11쪽
41 반월혹인(半月惑人): 반월이 사람을 혹하게 하는구나 21.05.05 43 2 11쪽
40 기린휘능(起鱗揮能): 비늘을 세워 권능을 휘두르다 21.05.04 50 2 12쪽
» 백호각성(白虎覺醒): 백호의 능력을 각성하니 21.05.03 59 2 11쪽
38 복수불수(覆水不收):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지 못하오 21.05.02 42 2 12쪽
37 생사기로(生死岐路): 생사의 갈림길에 서다 21.05.01 40 2 11쪽
36 작우금적(昨友今敵): 어제의 벗이 오늘의 적이라 21.04.30 42 2 11쪽
35 상호취원(相互取願): 서로 원하는 바를 취하노라 21.04.29 60 2 11쪽
34 이인심란(二人心亂): 두 사람의 마음이 어지럽더라 21.04.28 77 2 11쪽
33 흑침백노(黑侵白怒): 흑이 침범하니 백이 노하다 2 21.04.27 44 2 11쪽
32 흑침백노(黑侵白怒): 흑이 침범하니 백이 노하다 1 21.04.26 99 2 11쪽
31 취명사암(取明捨暗): 어둠을 버리고 빛을 누릴 것이다 21.04.25 67 2 12쪽
30 괴수대전(怪獸大戰): 괴수끼리 크게 한판 붙다 21.04.24 69 2 11쪽
29 사탐유육(蛇耽油肉): 뱀은 기름진 고기를 좋아한다 21.04.23 55 2 13쪽
28 용망동주(龍蟒同舟): 용과 이무기가 한 배를 타다 21.04.22 45 2 12쪽
27 화령계망(花靈啓蟒): 화령이 이무기를 깨우쳐 주는구나 21.04.21 9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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