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그르메의 서재입니다.

흑룡이 나르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왕잼
작품등록일 :
2021.03.28 11:18
최근연재일 :
2021.05.18 18:00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5,151
추천수 :
140
글자수 :
277,754

작성
21.04.25 18:00
조회
66
추천
2
글자
12쪽

취명사암(取明捨暗): 어둠을 버리고 빛을 누릴 것이다

DUMMY

“사라졌다니?”


중전이 머무는 대조전에 호위청 부장(部將)이 중전 어씨 앞에 부복해 있다. 그녀의 반응은 질문이 아닌 질책에 가까웠다.


“그게···, 분명 추적에 재주 많은 수하를 보냈는데, 갑자기 종적이 사라졌고 이제껏 아무 연락도 오지 않고 있사옵니다.”


중전이 인상을 찡그리자, 눈치를 살피던 부장이 아뢰었다.


“마마, 혹 위험한 자이옵니까? 용모파기는 돼 있으니 수배를 내려서라도···”

“그만 됐네. 위험한 인물이라니? 함부로 입 열지 마시게.”

“네, 마마.”

“그 수하에게서 연락이 오면 바로 알릴 것이고, 이만 물러가게나.”

“송구하옵니다. 마마”


호위청 부장이 나가며 문이 열리자, 밖에서 부원군 어유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아버님.”

“찾지 못한 모양이군요. 그런데, 정말 중전이 보신 게 그가 맞습니까?”

“백년 천년을 못 봐도 잊을 수 없는 얼굴입니다. 확실히 그 사람이었어요.”

“흠···,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누명이긴 하지만 역모사건으로 사사된 이의 자제가 어찌 대담하게 궐을 드나들 수 있을까요? 그것도 연잉군을 무슨 의도로?”

“함부로 처신할 사람이 아니지요. 분명, 무언가를 도모하고 있는지도···”


중전 어씨가 말을 맺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운 사람을 눈앞에서 보고도 부르지 못하고 이제는 찾지도 못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진 것이다.


“중전, 그래도 살아있음을 확인했으니 그걸로 되지 않았습니까. 마음에서 좀 내려놓으세요.”


딸의 마음을 달래주려는 아비, 어유구도 큰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


시커먼 이무기가 쌍선봉 일대를 유영(遊泳)하고 있다.


이단이 선계안에서 이무기를 타고 날아왔던 날, 많은 흑결원들이 목격한 상황이라 이제는 굳이 감출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이무기가 보일 때마다 수하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전의(戰意)를 불태웠기에, 일부러라도 드러내주기를 흑결주 마달 등 수뇌부는 희망했다.


“주군이 주군을 바라보고 계셨군요?”


마달이 처소로 들어왔다. 이단은 창을 통해 또하나의 자신인 이무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분이 어떨까요? 두 가지 행동을 동시에 하는 분신술이라··· 이런 얘기는 본적도 들어본 적도 없으니, 그 기분을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허허!”


이단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그 능력에 대해 틈틈이 연구하며 과거 기록들을 찾아봤지만 어떤 사례도 찾을 수가 없었다. 제천대성(齊天大聖:손오공)이나 홍길동 같은 허무맹랑한 소설 속 인물들이나 가능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젠 어지럼증도 거의 없고 적응이 되고 있습니다. 눈도 두 개고 뇌도 두 개로 갈라져 있다 하니 두개의 몸에 적응 못할 것도 없겠죠. 다만 두 몸이 각자 상황판단을 해야 할 순간엔, 과연 둘 다 내가 맞는지 확신이 들진 않네요.”


이단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이단을 바라보는 마달의 표정은 이제 걱정보다는 흐뭇함을 더 담고 있었다.


“너무 조급해하진 마십시오. 시간이 모두 해결해 줄 겁니다. 그건 그렇고,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

“흠, 꼬리가 실토했습니다.”


며칠 전, 연잉군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꼬리가 붙었다. 궁궐을 감시하는 세작(細作) 까마귀가 그 꼬리를 발견했고, 이단을 수행한 도방이 제압해 쌍선봉까지 끌고 온 것이다. 취조를 강하게 했으나 입을 굳게 다물고 도무지 발설하지 않고 있다 했는데, 드디어 그 입을 열게 한 것이다.


“중궁전에서 보냈다 합니다. 알고 보니, 중궁전에 딸린 호위청 무관이었습니다.”

“중궁전이라고요?”


이단은 조금 놀라웠다. 연잉군이 보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매사 신중해 보이는 양반이었고, 역천의 음모를 함께 하는 것이다 보니 아무리 손을 잡기로 했다 해도 철저히 이쪽을 확인하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궁전이라니···


“이유는요?”


꼬리붙은 자의 실토를 듣고 마달 자신도 놀랐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어찌해야할지 잠시 고민하기도 했다. 자신의 주군인 이단에게 <중궁전>은 금기어와도 같았으니까. 하지만 있는 사실을 숨길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그자도 모르는 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저 명을 받고 추적했을 뿐.”


마달이 그렇다면 확실할 것이다. 자기 앞에선 충성스럽기 그지없지만, 부하들 앞에선 성난 멧돼지마냥 빈번히 폭발하는 성격이었다. 하물며, 제 주인을 미행한 자에 대해 얼마나 족쳐댔을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일말의 자비심도 없었을 것이니까.


‘그녀가 날 본 것인가? 수연···, 역시, 날 잊지 않았구나.’


그의 인생에 첫 번째 좌절을 안겨준 수연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번에 동궐 잠행을 하면서 혹시나 그녀를 볼 수 있을까 하고 상상해보기도 했지만, 정말 그녀가 자신을 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중전이 머무는 대조전과 거리가 먼 후원이었으니.


선친의 참변 소식을 들었다면, 분명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을 확인한 것 같아 내심 반가웠다.


‘하지만, 정작 내 마음을 모르겠구나···’


이단이 흑장도(黑藏刀)를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만지작거렸다. 수연이 준 유일한 정표라고 여기며 품에 간직하는 물건이었다.


이단의 상념이 길어지자, 마달이 끊고 들어왔다.


“그밖에도 보고할 것들이 있습니다.”


참 적절한 순간이라고 생각한 이단이 수연에 대한 상념을 털어내고 마달에게 집중했다.


마달은 먼저 소환된 마물들의 행적을 보고했다. 마물들은 소환한 영매들과 교감이 실처럼 이어져 있는데 하나 둘 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환단계나 도력을 가진 사람들이 마물을 제거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에··· 특이한 것은, 불가사리입니다.”

“불가사리라면···, 무방이 직접 끌어온 놈 아닌가요?”


무방은 영매의 우두머리 여인이었다. 소환마물의 등급은 영매들의 역량과도 비례하는데 무방이 끌어냈을 정도면 단연 최상급 마물이었다.


“이게 특이한 게, 소멸된 것은 아닌데 무방과의 교감을 외면하고 있답니다.”


이단이 호기심을 보였다.


“자발적인 의지를 갖게 됐다는 건가요?”


마달은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확실한 이유를 대지는 못했다. 하나의 가능성이 있긴 했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약에 누군가 그 통제권을 가로채지 않았다면야···,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흑백양선의 능력쯤 된다면 모를까요.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겠습니다.”

“관심있게 봐주세요. 그리고···?”


마달은 눈빛을 빛내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보고사항을 전했다.


“그들의 본거지를 찾아낸 것 같습니다.”


드디어 환단계를 찾아낸 것이다. 소환한 마물이 가장 많이 소멸됐던 태백산 구석구석을 탐색한 결과였다. 이끼가 특히 많이 자란 깊은 계곡 안에 작은 부락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 선기를 수련한 자들이 여럿 포착됐다는 보고가 들어온 것이다.


“잘됐군요. 서둘러 흑문(黑門)을 열어주세요.”


이단의 명을 받은 마달이 설명을 이어갔다.


“태백산에 이미 공간술사가 나가있으니 언제든 문제없습니다. 다만 투입 인원을 정해야할텐데, 우선 태백산 인근을 수색중인 결원들을 한곳에 결집하게 했습니다.”


이단과 마달은 쌍선봉에서 데려갈 인원 구성을 의논했다. 총책임자로 마달 본인이 가려했지만 이단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 같은 뿌리였지만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백선의 후예들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


미리내는 텅 빈 부락이 싫었다. 아버지를 비롯해 부락민 절반 이상이 빠져나갔다. 일년 넘게 못 봤던 광 오라비도, 와서 잠깐 있더니만 바로 출동해 버렸다. 더군다나 꼬리가 백 개쯤 달려보이는 요사스런 여자와 함께 떠났다. 오라비가 그녀의 비밀을 귀띔해줘 안심은 됐지만, 그래도 남녀 관계는 모르는 거 아닌가.


-퍽!


빨래방망이가 반토막이 나버렸다.


‘쳇, 너마저 반토막이니?’


반토막난 빨래방망이가 자기 마음 같았다. 마음이 이러니 넋재비 수련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녀의 스승은 바로 어머니, 미투리였다. 아버지 마루한이 환단계 최고이 싸우라비라면, 어머니는 최고의 넋재비였다. 그야말로 환단계 내에서 최고의 선재(仙才)들이 짝을 이룬 결실이 바로 미리내였다.


소질이야 타고났지만, 기분에 따라 진도가 들쭉날쭉이다. 계원들이 대거 출동한 날부터는 아예 기본적인 호흡수련마저 거르고 있었다. 툭하면 씩씩거리기 일쑤였고 한숨만 푹푹 쉬면서 말수도 줄었다. 매사 의욕없는 딸내미를 바라보는 엄마의 속은 오죽 답답하겠는가.


미리내는 반토막난 빨래방망이를 집어던지고, 의욕없이 쪼물거리던 빨래를 챙겨 집으로 향했다.


*****


이단은 수하들에게 엄명을 내렸다. 절대로 불필요한 살상을 하지 말라고. 이번 출정은 마물을 퇴치하는 것도, 토적을 토벌하는 것도 아니었다. 역천대계의 유일한 장애물이 될 수 있는 존재들을 잠시 묶어두기 위함이었다. 출발하기 전, 흑결의 수뇌부와 논의한 끝에 결정한 내용이었다.


-대계 실행 전에 모두 제거해야하지 않을까요?

-괜히 잠자는 호랑이를 건드리는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 호랑이가 뒤에서 덮치면 어쩌게요? 미리 깨우더라도 잡아놓아야···

-그들도 결국 우리처럼 사명의 굴레를 지고 있을 뿐이잖습니까? 게다가 같은 뿌리입니다.

-그러면, 일단 그들을 잠시 묶어두기로 하죠.


흑문을 통해 이끼부락에 당도한 이단이 처음 느낀 기분은, 형언할 수 없는 상쾌함이었다. 계곡 사이로 초록의 이끼가 푹신한 요처럼 싱그럽게 깔려있었다. 지기(地氣)는 풍만했고 선기(仙氣)는 청량했다.


역천대계 실행 이후 탁기(濁氣)가 자욱해진 쌍선봉 흑결의 본거지와는 빛과 그림자처럼 너무나 달랐다.


‘질투가 나는군.’


흑선의 후예들은 수 백 년 세월동안 어둠의 결계 속을 헤매왔는데, 백선의 후예들은 이런 곳에서 신선놀음이나 하고 있나 싶었다. 역대 수많은 암종들이 탁기를 몸속에서 정화하다 자신을 해쳤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자신은 적어도 그리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둠을 버리고 빛을 누릴 것이다.’


그 순간, 백회혈에서 작은 울림이 느껴졌다. 화령(花靈)이 깬 것이다.


-키키키, 여긴 어디? 완전 내 취향인 곳이네.

=또 깨어났나? 어찌하면 널 내보낼 수 있을까?

-키키, 거의 소멸된 내가 불쌍하지도 않나? 내가 사라지면 내 능력도 없어질텐데 상관없고?

=꽃향기 따위 발산하는 게 능력이더냐? 조용히 있어라. 환단계를 만나러 왔으니.

-아! 네 천적(天敵)이 될 놈들? 다 쓸어서 영계(靈界)로 보내버려.

=영계? 네가 왔다는 곳 말인가? 인간이 죽으면 거기로 가는 건가?

-흠···, 꼭 그렇진 않아. 선택된 영만 올 수 있지. 영력이 뛰어나다면 말야. 어떤 영은 선계로 가기도 하지만 대개는 소멸된다네.

=영계에 혹시···, 아니다. 이제 그만 조용해다오.


이단은 영력을 집중해 화령의 조각을 재워버렸다. 큰 불편은 아니지만, 간헐적으로 깨어나 말을 거니 신경이 쓰였다. 중요한 순간에 깨어난다면 집중에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다 문득, 화령에게 묻고 싶었던 말을 되새겨봤다.


‘아버님도 혹시 영계라는 곳에 계시지 않을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흑룡이 나르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공지 2 21.05.18 64 0 -
공지 연재 공지 21.03.28 131 0 -
54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3 21.05.18 39 2 12쪽
53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2 21.05.17 31 2 11쪽
52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1 21.05.16 31 2 12쪽
51 자아독대(自我獨對): 자아와 마주하다 21.05.15 40 2 11쪽
50 흑룡비상(黑龍飛上): 흑룡이 나르샤 21.05.14 33 2 12쪽
49 오오낙락(烏烏樂樂): 까마귀들이 좋아 죽는구나 21.05.13 30 2 11쪽
48 귀궐애사(歸闕哀事): 궐로 복귀하니 슬픈 일이 생겼구나 21.05.12 32 2 11쪽
47 쌍룡대면(雙龍對面): 두마리 용이 마주하다 21.05.11 61 2 12쪽
46 야심심조(夜深心躁): 밤은 깊어 가고 마음은 바빠진다네 21.05.10 33 3 12쪽
45 풍전왕실(風前王室): 바람 앞에 왕실이어라 21.05.09 46 2 12쪽
44 목멱지자(木覓之子): 목멱의 아들아 21.05.08 48 2 12쪽
43 탐색망흔(探索蟒痕): 이무기의 흔적을 찾아서 21.05.07 43 2 12쪽
42 해오집맥(解誤執脈): 오해를 풀고, 맥을 잡노라 21.05.06 51 2 11쪽
41 반월혹인(半月惑人): 반월이 사람을 혹하게 하는구나 21.05.05 42 2 11쪽
40 기린휘능(起鱗揮能): 비늘을 세워 권능을 휘두르다 21.05.04 49 2 12쪽
39 백호각성(白虎覺醒): 백호의 능력을 각성하니 21.05.03 58 2 11쪽
38 복수불수(覆水不收):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지 못하오 21.05.02 41 2 12쪽
37 생사기로(生死岐路): 생사의 갈림길에 서다 21.05.01 40 2 11쪽
36 작우금적(昨友今敵): 어제의 벗이 오늘의 적이라 21.04.30 41 2 11쪽
35 상호취원(相互取願): 서로 원하는 바를 취하노라 21.04.29 60 2 11쪽
34 이인심란(二人心亂): 두 사람의 마음이 어지럽더라 21.04.28 76 2 11쪽
33 흑침백노(黑侵白怒): 흑이 침범하니 백이 노하다 2 21.04.27 44 2 11쪽
32 흑침백노(黑侵白怒): 흑이 침범하니 백이 노하다 1 21.04.26 99 2 11쪽
» 취명사암(取明捨暗): 어둠을 버리고 빛을 누릴 것이다 21.04.25 66 2 12쪽
30 괴수대전(怪獸大戰): 괴수끼리 크게 한판 붙다 21.04.24 68 2 11쪽
29 사탐유육(蛇耽油肉): 뱀은 기름진 고기를 좋아한다 21.04.23 54 2 13쪽
28 용망동주(龍蟒同舟): 용과 이무기가 한 배를 타다 21.04.22 45 2 12쪽
27 화령계망(花靈啓蟒): 화령이 이무기를 깨우쳐 주는구나 21.04.21 98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