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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메의 서재입니다.

흑룡이 나르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왕잼
작품등록일 :
2021.03.28 11:18
최근연재일 :
2021.05.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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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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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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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7,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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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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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생사기로(生死岐路): 생사의 갈림길에 서다

DUMMY

“조장, 어찌해야 하오?”


숲으로 박광과 미리내를 들여오긴 했지만 조생원은 주저하고 있었다. 아직 육두와 두루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장인 공대가 결정해야 했다. 공대는 두루의 마지막 몸짓에서 그녀의 각오를 읽을 수 있었다. 조원들을 위해 희생을 각오한 눈빛이었다. 시야에서 사라진 육두마저 잃은 게 아닌지 초조했지만, 젊은 계원들을 돌보는 게 급선무였다.


보아하니 박광의 용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쇄골 밑 흉부에 난 상처가 꽤나 컸다. 특출한 잠력을 가진 녀석이지만, 시간을 끌면 위태로울 수도 있었다. 어렵게 구해낸 미리내는 다행히 상처는 보이지 않았지만 떨어지면서 정신을 잃은 듯 했다.


“인질은 구했으니, 일단 빠져서 합류장소로 가세. 발동해 주게나.”


조생원이 두루의 뒷모습을 흘깃 쳐다보는데, 눈빛에 물기가 배어있었다.


‘두루 처자, 꼭 살아야하오. 처녀귀신 되기 싫으면···’


그가 손에 들고 있던 돌조각을 나무 틈에 끼워 넣자 숲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조생원이 아는 한 가장 깨기 힘든 <역오행진법(易五行陣法)>이 발동된 것이다.


“조장, 절대 다른 데 밟지 말고 나만 잘 따라오시오.”


조생원이 미리내를 들쳐 업고 앞장서 가고, 공대는 박광을 업은 채 조심히 뒤를 따랐다.


*****


무지막지한 돌비로 인해 인근이 초토화되었다. 이무기로 몸을 감싼 덕에 충격을 면한 이단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를 바드득 갈았다. 수하들 대부분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한 듯 보였다. 큰 바위에 깔린 몇몇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사이 마달과 도방이 달려와 이단의 안위를 살폈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면목 없습니다.”


마치 중죄인이 된 것처럼, 흑결주 마달이 무릎을 꿇었다.


이단은 환단계의 잠재력에 크게 놀랐다. 일개 넋재비로 보이는 여인 하나가 한순간에 수십 명의 부하들을 전투불능으로 만들어 버렸다.


위험한 자는 제거하는 게 옳다. 이무기가 두루를 향해 날아가 덮쳐버렸다. 두루에게 깃들어있던 산신령이 기겁을 하고 두루의 몸에서 빠져나갔다. 눈동자가 제대로 돌아온 두루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칠흑의 암흑이었다.


이단은 흑결주와 도방 등과 함께 숲으로 들어간 순간 또 한 번 크게 놀랐다. 앞서 가던 추격조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진 것이다. 뇌안을 열고 숲을 보니, 묘한 진법이 발동돼 있었다. 파훼하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이단이 한숨을 내쉬었다.


“결주, 이게 무슨 진법인지 아시겠습니까?”

“글쎄요. 이런 진법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흠···”

“그만 둡시다. 무작정 들어가면 길을 헤매다 미쳐버릴 것이요, 파훼하자면 몇날 며칠이 걸릴지 알 수 없겠소.”

“네, 이 숲 전체를 뒤집어엎지 않는 한 어렵겠군요···”


싸늘한 분노와 함께 공허감이 찾아왔다. 자신의 정당성을 보여주려 한 미리내는 놓쳐버렸고, 태어나 처음 벗이 될 뻔한 자는 결국 큰 장애물이 돼버렸다. 다만, 박광에게 탁기의 상처를 크게 입혔으니 목숨을 잃거나 회복하더라도 몸을 제대로 쓰긴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 해도, 결국 자신들의 패배였다. 기껏 대여섯 명의 환단계원들에게 수십 명의 흑결원들이 죽거나 전투불능 상태가 돼버렸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본거지가 노출된 것도 뼈아팠다.


‘목에 큰 가시가 걸린 기분이구나.’


발길을 돌려 목옥으로 돌아가면서도, 환단계를 어찌 처리해야할지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저들도 방비를 하고 있을 터, 다시 쳐들어간들 큰 희생이 따를 것이다. 목에 걸린 가시를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상황이지만 일단 역천대계는 완성시켜야 한다.


목옥 근처 공지에서 둔탁하게 생긴 괴물 둘이 엉겨붙어 싸우고 있었다. 저거 하나 어쩌지 못하는 수하들이 순간 한심해 보였다. 옆에서 송구스러워하는 흑결주에게 명했다.


“여길 버리고 명류장(明流莊)으로 돌아가겠소. 최대한 서두르시오.”


이단의 목소리는 많이 지쳐보였다.


*****


쌍선봉을 빠져나온 환단계원들이 이동한 곳은 변산의 해안으로 향하는 한 마을이었다. 도주에 성공했을 경우, 흑결 패거리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내륙이 아니라 오히려 바다 쪽으로 합류장소를 잡은 것이다. 흑낭봉이라는 봉우리 아래 폐허가 된 성황당이 그들의 현 위치였다.


오는 길에 표식을 남기고 육두와 두루를 기다렸지만 마냥 있을 수는 없었다. 박광의 상태가 꽤나 위중해 보였다. 상처부위에 물든 검은 탁기가 점점 번져가면서 오른쪽 상반신을 뒤덮었고 이제는 자칫 머리까지 타고 올라올 지경이었다. 온몸에 고열이 나면서 박광은 혼절 상태에 빠져있었다.


환단계원들은 기본적으로 약초나 의술 지식을 익힌다. 특히 넋재비들은 의술이 필수였기에 시중의 웬만한 의원보다는 나을 것이다.


하지만 조생원은 외(外)제자로 정식 제자가 아니었고 미리내는 아직 수련생이었다. 공대가 인근 마을까지 내려가 봤지만, 조그만 산골에 제대로 된 의원이 있을 리 만무했다.


“오라버니, 정신 좀 차려. 강한 사람이잖아. 제발요.”


미리내는 깨어나자마자 박광의 상태에 충격을 받았는지, 물 한모금 마시지 않고 그를 보살피고 있었다. 공대가 그녀에게 물이 든 대통과 곡식가루를 건넸다.


“자네도 좀 쉬어야 해. 아무 것도 먹지 않았잖아. 지금으로선, 열 내리는 약초를 캐서 바르고 선기를 주입해서 탁기가 번지는 걸 막는 게 최선일세. 일단 우리 셋은 기운을 차리고 있어야하네.”


“네, 알겠어요.”


미리내가 받아든 대통을 열면서 눈물을 찔끔거렸다. 저는 마시지도 않고 수건에 물을 적시더니 박광의 입에 넣어주었다. 조생원이 그 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런데 조장, 과연 태백산의 계원들이 우릴 찾아올 수 있겠소? 온다 해도 시일이 꽤 소요될 것인데···”

“계주가 기다리라고 했으니, 아마 적잖은 인원을 데리고 오고 있을 걸세. 표식을 남겨뒀으니, 조츠라비가 있다면 이곳을 찾는 건 쉬운 일이겠고.”


미리내는 식은땀을 흘리며 잠들어있는 박광의 얼굴을 빤히 살폈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위험을 무릅썼다. 그렇게 빨리 오게 된 과정을 공대에게 들어 알게 됐지만, 달걀로 바위치기도 정도껏이지, 어찌 그리 무모하게 들이닥쳤을까 싶었다.


같이 탈출하지 못한 계원들에게 죄스러웠다. 우락부락한 육두 아재에게 미안했고, 특히나 요물같다고 조심하라 했던 두루 언니를 생각하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광 오라버니의 등에 업혀 탈출할 때 마주쳤던 두루의 눈에는 기쁨이 맺혀 있었다.


만약 그 두 사람이 잘못 됐다면, 자신은 평생 죄인처럼 살아야 할 것 같았다. 멎었던 눈물이 다시 핑 돌았다.


박광의 얼굴을 만지고 가슴을 쓰다듬다가 무언가 손에 닿아 꺼내보니 자신이 줬던 은장도였다. 은장도를 꺼내보니 날이 시퍼렇게 잘 벼려져 있다. 어머니 방물함에서 몰래 빼내와 박광에게 줄 때 했던 말을 생각하니 자신이 얼마나 철없는 아이였나 싶어 죽고 싶을 지경이었다.


광 오라버니마저 잘못돼 깨어나지 못한다면, 이 은장도가 꼭 필요할 것이다. 품안에 잘 갈무리해 집어넣었다.


*****


박광은 꿈을 꾸었다.


[[ 돌아가신 부모가 나타났다.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세 식구가 도란도란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개울가에서 가재를 잡아 집으로 뛰어간다.


-엄마, 이것 봐요. 큰 가재 잡았어요. 헤헤


엄마에게 자랑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악!!!


황소만한 거미가 아버지를 잡아 올리더니 거미줄로 동동 감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미 숨이 끊어진 듯했다. 엄마가 놀라 비명을 지르다가 어린 아들을 얼른 툇마루 밑에 숨겼다.


그 순간, 거미의 앞다리가 엄마의 몸을 관통했다. 쓰러진 엄마의 눈과 마주쳤다. 엄마는 눈을 부릅뜨고 소리 내지 말라고 입을 가리는 시늉을 한다. 아이는 너무 놀라 입을 손으로 막고 툇마루 밑에서 벌벌 떨고만 있었다. 그리고 엄마의 모습이 시야에게 사라졌다.


갑자기 장면이 바뀌어, 미리내와 계곡 웅덩이에서 놀고 있었다.


-오빠, 나 잠수질도 잘한다? 나랑 견줘볼까?

-꼬맹이가 감히 이 사내대장부를 이겨볼라구? 아서라.

-치이, 맨날 꼬맹이래. 안하면 지는 거다? 자신없으면 하지 마. 나 먼저 들어간다.


미리내가 제 코를 꼭 잡고 물속으로 쏘옥 들어갔다. 코웃음을 치면서 박광도 코를 막고 잠수했다. 한참이 지나 물 밖으로 나왔는데 미리내가 보이지 않았다.


-미리내야! 설마 아직도 잠수하고 있어?


두리번거리는데 갑자기 투명했던 계곡물이 시커멓게 탁해지더니 웅덩이 속에서 괴물이 솟구쳐 올랐다. 칠흑(漆黑)의 이무기였다. 이무기는 사라진 미리내를 입에 물고 있었는데, 갑자기 꿀꺽 삼켜버렸다. 덜덜 떨던 어린 박광이 이무기에게 달려들었다.


-이 괴물아, 미리내를 내놔. 뱉어내! 어서


그런데 이무기가 점점 사람 모양으로 변해간다. 검은 옷을 입은 이단이 입맛을 다시고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다.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박광을 향해 이단이 입을 벌려 혀를 쏘아냈다. 뱀같은 혀가 어깨에 달라붙더니 온몸을 칭칭 감아버렸다. 숨이 턱 막혔다.


-빨리 여기에서 벗어나야 해. ]]


*****


환단계주 마루한이 쌍선봉에 도착한 것은 태백산을 떠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출정했던 계원들 일부는 쌍선봉으로 직접 호출하고 나머지는 부락으로 집결하도록 했다. 부락의 위치를 저들이 알고 있으니 또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었다. 방비만 해둔다면 충분히 막아낼 역량이 있었다.


쌍선봉에 모인 계원들의 수는 스물 남짓이었다. 흑결과의 싸움을 대비해 싸우라비 위주로 불러 모았다.


공대가 남긴 표식들이 보였다. 어떤 조직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환단계 역시 자신들만의 신호와 표식이 있었다. 따라가 보니, 흑결의 본거지로 보이는 목옥들이 나타났는데, 어쩐 일인지 인기척이 전혀 안 느껴졌다. 사람은 없었지만 곳곳에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기다리라고 했건만···’


공대의 조원들이 참지 못하고 일을 벌인 것 같다. 조장 공대의 신중함을 생각해 봤을 때, 분명히 제자 박광이 못 참고 나섰을 것이다.


목옥 앞마당에 몇 개의 봉분(封墳)이 보였는데, 유독 하나가 눈에 띄었다. 묘 주인의 이름은 <육시랄 놈>이었다. 봉분 위에 눈에 익은 칼이 하나 박혀 있다. 육두가 차고 있던 백정도(白丁刀)였다.


‘육두가 당했는가···?’


나머지는? 미리내는 어찌 됐을까? 불안감이 밀려왔다. 조츠라비 서바우가 뭔가 흔적을 발견한 것 같다. 숲으로 이어지는 표식들이었다. 이 끝에 미리내가 있을까. 박광 등은 어찌 되었을까.


마루한은, 계원들을 재촉해 표식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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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공지 21.03.28 132 0 -
54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3 21.05.18 40 2 12쪽
53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2 21.05.17 32 2 11쪽
52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1 21.05.16 32 2 12쪽
51 자아독대(自我獨對): 자아와 마주하다 21.05.15 40 2 11쪽
50 흑룡비상(黑龍飛上): 흑룡이 나르샤 21.05.14 33 2 12쪽
49 오오낙락(烏烏樂樂): 까마귀들이 좋아 죽는구나 21.05.13 30 2 11쪽
48 귀궐애사(歸闕哀事): 궐로 복귀하니 슬픈 일이 생겼구나 21.05.12 32 2 11쪽
47 쌍룡대면(雙龍對面): 두마리 용이 마주하다 21.05.11 62 2 12쪽
46 야심심조(夜深心躁): 밤은 깊어 가고 마음은 바빠진다네 21.05.10 34 3 12쪽
45 풍전왕실(風前王室): 바람 앞에 왕실이어라 21.05.09 46 2 12쪽
44 목멱지자(木覓之子): 목멱의 아들아 21.05.08 49 2 12쪽
43 탐색망흔(探索蟒痕): 이무기의 흔적을 찾아서 21.05.07 44 2 12쪽
42 해오집맥(解誤執脈): 오해를 풀고, 맥을 잡노라 21.05.06 51 2 11쪽
41 반월혹인(半月惑人): 반월이 사람을 혹하게 하는구나 21.05.05 43 2 11쪽
40 기린휘능(起鱗揮能): 비늘을 세워 권능을 휘두르다 21.05.04 50 2 12쪽
39 백호각성(白虎覺醒): 백호의 능력을 각성하니 21.05.03 59 2 11쪽
38 복수불수(覆水不收):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지 못하오 21.05.02 42 2 12쪽
» 생사기로(生死岐路): 생사의 갈림길에 서다 21.05.01 41 2 11쪽
36 작우금적(昨友今敵): 어제의 벗이 오늘의 적이라 21.04.30 42 2 11쪽
35 상호취원(相互取願): 서로 원하는 바를 취하노라 21.04.29 60 2 11쪽
34 이인심란(二人心亂): 두 사람의 마음이 어지럽더라 21.04.28 77 2 11쪽
33 흑침백노(黑侵白怒): 흑이 침범하니 백이 노하다 2 21.04.27 45 2 11쪽
32 흑침백노(黑侵白怒): 흑이 침범하니 백이 노하다 1 21.04.26 99 2 11쪽
31 취명사암(取明捨暗): 어둠을 버리고 빛을 누릴 것이다 21.04.25 67 2 12쪽
30 괴수대전(怪獸大戰): 괴수끼리 크게 한판 붙다 21.04.24 69 2 11쪽
29 사탐유육(蛇耽油肉): 뱀은 기름진 고기를 좋아한다 21.04.23 55 2 13쪽
28 용망동주(龍蟒同舟): 용과 이무기가 한 배를 타다 21.04.22 46 2 12쪽
27 화령계망(花靈啓蟒): 화령이 이무기를 깨우쳐 주는구나 21.04.21 9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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