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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메의 서재입니다.

흑룡이 나르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왕잼
작품등록일 :
2021.03.28 11:18
최근연재일 :
2021.05.18 18:00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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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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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7,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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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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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해오집맥(解誤執脈): 오해를 풀고, 맥을 잡노라

DUMMY

오해는 오해를 낳는 법이니, 빨리 풀어버리는 게 상책이다.


지금 두루의 점집 방 한 칸에 네 남녀가 마주앉아 있는 이유였다. 다 자란 딸 앞에서 아비의 체신을 구긴 마루한이 미리내와 박광, 그리고 반월을 한자리에 모았다. 그리고 그의 과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옛날 옛적, 그가 혼인도 하기 전 떠꺼머리총각 시절에 계의 수련을 마치고 팔도를 주유한 적이 있었는데, 평안도 일대에서 한때 동문이었던 우림위장 이중원을 구한 이야기와 이어지는 대목에 반월이 등장했다.


목숨을 구해준 고마움에 이중원이 마루한을 끌고 평양의 이름난 기루인 매죽루에 갔던 적이 있는데···,


“아, 그럼 거기서 아버지랑 이···분이랑 정분이란 걸 나눈 거예요?”


미리내가 툭 끼어들었다. 남녀의 육체적인 관계를 아직 모르지만, 어디서 남녀 간에 정분이 난다는 얘기는 들은 모양이다. 더군다나 반월이란 여인은 마루한을 보자마자 낭군이라 호칭했으니 이미 확신에 찬 의심을 하는 터였다. 언젠가 박광과 혼인하면 꼭 불러보고 싶은 그 호칭이 아니던가.


“어머머, 따님이 아주 상상이 야무지시네? 호호호! 정분···, 아! 그리운 시절이어라.”

“어허, 반월 자네, 그 입 좀 다무시게.”

“어, 그래서요? 그럼 두 분이 그렇고 그런···거였어요?”


박광도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그러자 마루한이 다상(茶床)을 잡고 부르르 떨었다.


“야 이눔아, 넌 또 왜 끼어들어?”


한바탕 어수선한 분위기는 반월의 이야기로 정리가 됐다. 그녀가 매죽루에 갓 들어가 견습하던 시절에 마루한과 이중원이 기루를 방문했는데 두 사내의 멋진 모습에 매료된 그녀가 졸졸 따라다녔다는 얘기였다.


즉, 마루한과는 아무런 염문이 없었다는 이야기에 미리내의 표정이 서서히 풀려갔다.


“아, 중원 낭군님도 참 멋지셨더랬지요. 흥! 그 양반 높이 되더니만, 이제 이 소첩 따윈 만나주지도 않사와요.”


-오라버니, 낭군병이란 병도 있어?


미리내의 귓속말이었다. 반월의 하는 말씨를 보니, 본인 마음에 들어온 사내에게는 죄다 낭군 호칭을 붙여버리는 거였다. 박광이 선물로 사온 옥빗과 옥가락지를 팔아준 방물점의 주인이라는 사실까지 듣고 나서야 안심이 된 미리내가 예의바른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사연인 줄도 모르고 괜히··· 죄송해요.”

“아니, 뭘! 그나저나 이런 인연이 있을까 싶사와요. 귀한 물건을 사간 장부님이 갑돌 낭군님의 사윗감이었다니요.”

“사위는 무슨? 어험, 그나저나 갑돌이란 이름은 그만 좀 쓰오. 듣기 민망하구려. 이제 마루한이오, 마루한.”

“오마! 오마? 그럼 우리 두루가 얘기하던 그 비밀조직의 왕초 마루한이··· 낭군님?”

“네? 두루 누님을 아세요?”


박광이 놀라 묻자, 반월이 반색했다.


“알다마다요. 제 의자매랍니다. 계의 호출을 받고서 잠시 자리 비운다더니 떠났는데, 지나다보니 웬 이상한 방문이 붙어있기에 들어와 봤지요. 그나저나 두루는 어디 가고 객들만 계시와요?”


박광은 갑자기 두루 얘기를 꺼내려니 비분한 마음이 울컥했지만, 반월에게 그간의 일을 차분히 설명해줬다. 물론 일반 백성이 믿지 못할 얘기인 마물들의 이야기는 생략했다.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좌중은 숙연했다.


“아니, 그러면 우리 두루 동생이 정말 죽었다는 말씀이여요? 어찌 그럴 수가···”

“네, 저희 남녀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셨습니다.”


두루의 사망 소식에 반월은 오열을 터뜨렸다. 그녀의 요란한 겉치장이나 말투를 다 잊게 할 만한 진심어린 통곡성이 방안에 울려 퍼졌다.


“대체 그놈들이 누군가요? 낭군님이 지금 그놈들 잡으려는 거지요? 내 물심양면으로다 모든 걸 지원해 드릴 테니 꼭 잡아서 우리 불쌍한 두루 원(怨) 좀 풀어 주시와요.”


영반월 주인 반월은 알고 보니 상당한 재력가였고 두루와의 우정이 남다른 사이였다. 박광 일행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든든한 후원자가 생긴 셈이다.


*****


김일경의 북촌 저택.


김일경은 그의 호출에 부리나케 달려온 최측근 목호룡과 마주 앉아있었다. 교활하고 탐욕스럽지만, 팔도의 지세(地勢)를 보러 다니며 식견이 풍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각하는 길이 고지식한 정통 사대부들과는 다른지라 파격적인 문제를 상의하는 데는 제격인 인물이었다.


한마디로 쓸모가 많은 수족이었기에, 조금 전 망원정에서의 믿기지 않는 일을 목격하고는 바로 호출한 것이다.


“대감! 몸살은 괜찮으신가요? 무슨 일로 급히 부르셨습니까?”


김일경은 묵묵히 목호룡의 면상을 응시했다. 목호룡이 무안한 듯 헛기침을 하자 입을 열었다.


“동성군, 자넨 나를 믿지?”

“네에? 그걸 물음이라고 하십니까? 제가 대감을 못 믿으면 세상 누가 믿겠습니까?”


순간 목호룡의 얼굴에 긴장이 스쳐갔다. 앞에 있는 노대감이 이렇게 진지한 표정을 보이고 나면 항상 누군가의 목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혹, 노론의 잔당입니까. 아니면··· 세제입니까?”

“예끼 이 친구, 내가 무슨 저승사자인가? 허허”


목호룡은 순간 긴장이 풀렸다. 자신이 도화선이 된 사화(士禍)들로 인해 죽어간 인명이 얼마였던가. 하늘과 땅의 무서움을 잘 아는 지관이기에, 요즘도 잠자리에 귀신이 드나들며 오줌을 지리는 날이 있었다.


“어쩌면··· 우리의 동아줄이 되어줄 인물이 나타났다네.”


김일경이 망원정에서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쭈욱 이야기해줬다. 경청하고 있던 목호룡의 칠공(七空: 얼굴의 일곱 구멍)이 활짝 열렸다. 심지어 괄약근도 풀려 아랫도리 항문까지 열려버릴 정도였다.


“대, 대감의 말씀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그게 사실입니까?”

“이 사람, 날 못 믿는 게 맞구만?”

“아닙니다요. 다만, 정말 믿기 힘든 기사(奇事)로군요.”

“동지사는 지관 출신이니, 보이지 않는 것들의 힘을 믿지 않는가?”

“······ 믿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대낮에 실제 이무기가 날뛰는 것은···”

“실재하는 것이 확실했네. 관련해서, 자네에게 두 가지 일을 맡기려 하네.”


목호룡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에게 주어진 일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좌포장을 만나 망원정 주변에서 그 일을 목격한 사람들을 입단속 시키는 것과 스스로 명종의 적통이라고 밝힌 이단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는 것이었다.


김일경의 집을 나온 그는 돈줄과의 접선 장소로 갔다. 김일경의 일거수일투족은 그에게 짭짤한 부수입이 되었다.


그의 머리 위로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


북악의 응봉(鷹峯) 정상에서 남쪽을 바라보니 창덕궁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치 누워서 고개를 살짝 들어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멀찍이 발끝에는 그가 방금 떠나온 목멱(남산)이 삐죽 솟아 있었다.


이단은 응봉의 맥점을 찾기 위해 애쓰는 결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흑문(黑門)을 거쳐 도착한 참이었다. 응봉은 북악의 오른쪽으로 흘려 내려 동편 성곽을 이루는 낙산과 연결돼 있었다.


이무기를 꺼낸다면 힘들지 않게 오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사람 눈이 많은 도성에서 함부로 영물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망원정에서 꺼내 보인 것도 이미 주변 사람의 눈에 들어갔을 것이다. 물론 입소문 돌지 않도록 김일경에게 단단히 주지시켰지만, 세상에 온전한 비밀 유지는 불가능했다.


“주군, 오셨습니까?”


이곳 현장을 지휘하는 무일(巫一)이었다. 맥을 찾기 위해 탐지작업을 하던 결원들이 일손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진척이 있는가?”

“아직은 시간이 좀 걸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이쪽 성곽을 순시하는 병사들과의 충돌도 피해야 하고···”

“그 문제는 해결됐네. 이제 병사들과 마주치더라도 자연스레 일을 하면 되네.”


김일경에게 얘기해 놓았으니 지금쯤 수도의 성곽을 지키는 오군영의 북소(北所) 위병들에게도 전달됐을 것이다. 이조판서를 맡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소론이 장악한 병부에도 막대한 영향력이 있었으니까. 옆에 있던 도방이 거들었다.


“자네들은 이제 이조판서의 명으로 지맥을 탐사하는 일꾼들일세.”

“허허, 그렇군요. 그럼 좀 더 속도를 낼 수 있겠습니다.”


이단은 도성의 북문인 숙정문부터 휴암(鵂巖)을 거쳐 응봉에 이르는 능선을 훑어봤다.


“선초(鮮初)에 이곳이 주산(主山)이 됐어야 했다고 주장한 이가 있었지. 북악을 주산으로 정하고 주궁(경복궁)을 세운 게 잘못됐다고 말야.”


풍수에 해박한 무일이 이단의 말을 받았다.


“풍수사 최양선이었지요. 당시 풍수계에서 참 이단적인 양반이긴 했습니다.”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지. 지금에 와서 보면, 본궁(창덕궁)의 주산 노릇을 하고 있으니 말야.”

“그건 그렇군요. 허허”

“맥점이 어디쯤인지 내가 한번 살펴보겠네.”


말과 동시에 이단의 몸에서 이무기가 쭈욱 빠져나왔다. 그러자, 무일을 비롯해 결원들은 다시 한 번 고개를 푹 숙였다. 처음 보는 것이 아니었지만, 볼 때마다 경외감을 느끼는 것이리라. 무일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외람되오나, 처음 봤을 때와 많이 달라지셨습니다.”

“······?”

“이전보다 검은 기운이 더 짙어지고 돋아난 뿔이 더 자란 듯하여, 마치 흑룡을 보는 것 같사옵니다.”

“허, 흑룡이라··· 그렇게 보여진다니 다행일세.”


칭찬을 들어 기쁜 것인지, 이무기가 검은 비늘을 활짝 세운 뒤 공중을 한바퀴 선회했다. 이단 자신과 이무기의 몸체가 같은 영(靈)에 의해 지배되고 있고, 심지어 이무기가 이단의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하들에게는 비밀 아닌 비밀로 해두고 있었다.


봉령술에는 익숙한 그들이지만, 아무도 이룬 적 없는 합령지체(合靈之體)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창덕궁을 결계로 수호하고 있다는 응봉의 정상에서도 이무기는 큰 지장 없이 활동할 수 있었다. 그럼 이제 궐 쪽으로 가볼 생각이었다. 만약 활동에 제약이 크게 없다면, 이 번거로운 작업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니까.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능선을 따라 저공으로 활공했다. 눈앞으로 울창하게 자란 활엽수들이 스쳐갔고, 그 안에 둥지를 튼 산새들이 놀라 날아올랐다.


‘아, 갑갑하군.’


확실히 동궐에 가까워지자 활동이 부자연스러웠다. 무언가에 의해 호흡과 기혈의 흐름이 단절되는 느낌이었다. 눈앞에 동궐의 후원이 들어왔지만, 더 이상 다가서기 힘들었다. 가슴이 뻐근하면서 현기증까지 나타났다.


‘역시, 힘든 것인가?’


산 정상 쪽으로 돌아온 이단(이무기)은 기혈을 진정시키고 산 능선을 따라 움직였다. 아마 응봉의 맥점 근처에 간다면 분명 기감(氣感)이 반응할 것이다.


차를 한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 바위 근처를 지날 때였다. 몸이 갑자기 경직되는 게 느껴졌다. 눈앞에 있는 뾰족한 바위에서 자신을 밀어내는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바로 여기로구나.’


산 위에서 수하들과 대화를 나누던 이단이 갑자기 움찔하더니 빙긋 웃었다.


“찾은 것 같네. 응봉의 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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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3 21.05.18 40 2 12쪽
53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2 21.05.17 32 2 11쪽
52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1 21.05.16 32 2 12쪽
51 자아독대(自我獨對): 자아와 마주하다 21.05.15 41 2 11쪽
50 흑룡비상(黑龍飛上): 흑룡이 나르샤 21.05.14 33 2 12쪽
49 오오낙락(烏烏樂樂): 까마귀들이 좋아 죽는구나 21.05.13 31 2 11쪽
48 귀궐애사(歸闕哀事): 궐로 복귀하니 슬픈 일이 생겼구나 21.05.12 32 2 11쪽
47 쌍룡대면(雙龍對面): 두마리 용이 마주하다 21.05.11 62 2 12쪽
46 야심심조(夜深心躁): 밤은 깊어 가고 마음은 바빠진다네 21.05.10 34 3 12쪽
45 풍전왕실(風前王室): 바람 앞에 왕실이어라 21.05.09 46 2 12쪽
44 목멱지자(木覓之子): 목멱의 아들아 21.05.08 49 2 12쪽
43 탐색망흔(探索蟒痕): 이무기의 흔적을 찾아서 21.05.07 44 2 12쪽
» 해오집맥(解誤執脈): 오해를 풀고, 맥을 잡노라 21.05.06 52 2 11쪽
41 반월혹인(半月惑人): 반월이 사람을 혹하게 하는구나 21.05.05 43 2 11쪽
40 기린휘능(起鱗揮能): 비늘을 세워 권능을 휘두르다 21.05.04 50 2 12쪽
39 백호각성(白虎覺醒): 백호의 능력을 각성하니 21.05.03 59 2 11쪽
38 복수불수(覆水不收):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지 못하오 21.05.02 42 2 12쪽
37 생사기로(生死岐路): 생사의 갈림길에 서다 21.05.01 41 2 11쪽
36 작우금적(昨友今敵): 어제의 벗이 오늘의 적이라 21.04.30 42 2 11쪽
35 상호취원(相互取願): 서로 원하는 바를 취하노라 21.04.29 60 2 11쪽
34 이인심란(二人心亂): 두 사람의 마음이 어지럽더라 21.04.28 77 2 11쪽
33 흑침백노(黑侵白怒): 흑이 침범하니 백이 노하다 2 21.04.27 45 2 11쪽
32 흑침백노(黑侵白怒): 흑이 침범하니 백이 노하다 1 21.04.26 100 2 11쪽
31 취명사암(取明捨暗): 어둠을 버리고 빛을 누릴 것이다 21.04.25 67 2 12쪽
30 괴수대전(怪獸大戰): 괴수끼리 크게 한판 붙다 21.04.24 69 2 11쪽
29 사탐유육(蛇耽油肉): 뱀은 기름진 고기를 좋아한다 21.04.23 55 2 13쪽
28 용망동주(龍蟒同舟): 용과 이무기가 한 배를 타다 21.04.22 46 2 12쪽
27 화령계망(花靈啓蟒): 화령이 이무기를 깨우쳐 주는구나 21.04.21 9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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