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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메의 서재입니다.

흑룡이 나르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왕잼
작품등록일 :
2021.03.28 11:18
최근연재일 :
2021.05.18 18:00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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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6
추천수 :
140
글자수 :
277,754

작성
21.04.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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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이인심란(二人心亂): 두 사람의 마음이 어지럽더라

DUMMY

미리내의 믿음대로, 박광 일행은 변산 쌍선봉 부근에 도착해 있었다. 마루한의 목소리를 듣고 미친 듯이 내달려 여기까지 오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괴수답게 지치지도 않고 쉬지 않고 밤길을 달려온 불똥이 덕분이었다. 물론, 길안내를 잘해준 공대의 공도 컸지만.


불똥이는 여전히 쌩쌩하지만, 조원들의 얼굴엔 핼쑥한 기운이 역력했다. 하루 온종일 한 번도 쉬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는 괴물을 타고 왔으니, 속이 얼마나 울렁거렸겠는가.


-우웩, 웩!!


조생원은 내리자마자 토를 하기 시작했고 육두도 어질어질했는지 한동안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두루만 실실거리고 좋아했는데, 오는 동안 박광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공대는 벌써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쌍선봉까지는 잘 찾아왔지만 그들의 본거지를 빨리 찾아야 한다. 박광과 공대는 일단 정상에 올라 주변을 살펴보기로 했다. 기특한 불똥이에게 큼직한 쇳덩이를 하나 던져주고 다른 조원들과 함께 쉬게 했다.


박광은 오는 동안 사부가 남긴 말을 곱씹어 봤다. 결국 흑결이 존재하는 건 확실해졌고 그 배후에 있는 암종이라는 자가 미리내를 납치해 간 것인데, 조심하라는 경고가 마음에 걸렸다.


조원들의 실력이 뛰어나지만, 영물을 상대하는 것과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결국 저들과 맞섰을 때 제대로 싸울 수 있는 건, 자신과 육두, 공대 정도일 것이다. 넋재비들은 그저 영물을 봉인하는 술사일 뿐이었으니.


갑자기 노고산에서 마주쳤던 술사 일행과 궐내에 침입했던 검은 복면인들이 떠올랐다. 특히 자신과 칼을 맞댔던 칼잡이는 아주 위협적인 실력자였다.


‘만약 그 자가 흑결의 무사였다면··· 녹록하지 않겠는데?’


그들의 본거지가 정말 이곳이라면, 어디 그런 놈들이 한둘이겠는가.


“공대 형님!”

“광 아우, 왜 부르시나?”

“저들도 우리와 같은 양선(兩仙)의 후예들이잖아요. 그런데 왜 갑자기 적이 됐을까요?”

“글쎄다···. 결국 사람이기 때문 아니겠는가. 사명의 세월도 워낙 오래 흘렀고. 언제든 마음이 흔들릴 수 있는 것이지. 사람이기에 변할 수 있다는 걸 백선께선 미리 예견하고 우리를 안배하셨겠지. 막으라고 말일세.”


이미 짐작했던 대답이지만, 그 순간 박광의 머리에는 도탄에 빠져 생명을 잃어가는 백성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사람이기에 변할 수 있다는 건 십분 이해하겠는데, 정말 많은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리는 건 아니지 않나? 미리내를 구하고 나서, 반드시 놈들을 응징할 것이다.’


유난히 탁한 기운이 자욱한 쌍선봉 정상을 향해 두 사람이 걸음을 총총 옮겼다.


*****


박광이 봉우리를 오르는 동안, 이단은 미리내의 목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특별히 할 말은 없었지만, 환단계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미리내에 대한 알 수 없는 관심이 발길을 이끌었다.


“흠···, 불편한 점은 없었소?”

“네, 덕분에요.”

“······”


딱히 할 말이 궁색해 돌아설까 하는데 미리내가 불쑥 물었다.


“좋은 일 하시는 분인데, 왜 이런 일을 벌이시는 거에요?”


미리내는 무륙을 통해 이 조직과 이단의 정체를 알게 됐지만 궁금증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환단계와 마찬가지로 흑결도 오랫동안 사명을 완수하며 존재해왔을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러는 것인지, 미리내의 순수한 생각 안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하늘이 무심해서···, 세상이 모순이어서, 바로 잡고 싶을 뿐이오.”


자신도 모르게 말을 뱉어낸 이단이 숨을 들이켰다.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고 말았다.


그가 무슨 일을 함에 있어 주위의 어떤 사람도 토를 달지 않는다. 그가 명령하면 부하들은 충실히 따를 뿐이다. 행동의 이유를 설명해 본 기억은···, 수연이 궐로 들어간 뒤 잠시 삐딱했던 시절, 부친에게 했던 이후 처음인 것 같았다.


괜히 찾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에, 미리내의 순진해 보이는 입이 야무지게 움직였다.


“세상을 바로 잡으면,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이 되나요?”


번쩍 하고 번개를 맞은 기분이었다. 왕실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면 과연 살기 좋은 세상이 될까? 지금의 왕보다 더 좋은 왕이 될 수 있을까? 그동안 가져보지 않았던, 아니 어쩌면 외면해왔던 물음들이 둑 무너지듯 쏟아져 나왔다.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나가려는데, 미리내의 음성이 또다시 뒷덜미를 잡았다.


“환단계가 막을 거에요. 그게 계의 사명이라고 아버지에게 들었어요.”


그러자 이단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를 악물고 그녀의 말을 되받았다.


“막으려 한다면···, 당신의 부모도, 당신도 모두 다치고 말 것이오.”


분노가 섞인 어조였지만 미리내의 눈동자엔 전혀 두려움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당차 보이는 눈빛으로 대꾸했다.


“결국, 당신들을 안배하신 흑선께서 틀리셨네요. 백선께서는 이미 다 예견하셨던 거고.”


-불끈


몸속의 이무기가 꿈틀거렸다. 저 당돌한 입을 다물게 하고 싶었다. 순간 백회혈의 불청객들이 조잘거렸다.


-키키키, 독향(毒香)을 뿜어서 저 경망스런 입놀림을 멈춰버려!

=크크크, 날 다시 돌려놔 주인. 내가 다 삼켜버려줄게!!


백회혈이 찌릿찌릿해지며 몸속의 이무기가 꿈틀거리자 이단은 혼란스러움에 참을 수가 없었다. 무언가 쏟아내려고 하는 순간, 미리내의 손에 끼어진 가락지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평범한 옥가락지인데 왜 눈에 익은 걸까? 박광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설마···, 그 녀석의?’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박광을 물어보려 하는데, 그때 문기척 소리가 들려왔다.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는 도방의 신호였다.


혼란스런 마음을 수습하고 냉정해진 모습으로 목옥을 빠져나오는 이단, 그녀에게 내뱉고 싶었던 말을 삼켜버렸다.


‘흑선께선, 이리 될 줄 알고 계셨다. 이무기는 아무나 품을 수 있는 게 아니니 말이다.’


몸은 벗어났지만, 마음은 아직 잡혀 있었다. 우연히 세 번을 만났지만 결국 벗이 되지 못했던 자, 박광에게 느꼈던 밝은 기운과 미리내에게서 느낀 맑은 기운이 하나로 겹쳐졌다.


설마 이런 우연의 중첩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과민한 생각일 것이다. 그녀와 마주할 때마다 마음속 평정이 깨지고 확신마저 흔들렸다.


‘서둘러 대업을 완성하고, 하루라도 빨리 돌려보내야 한다.’


이단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내공에서 뽑아낸 탁기환(濁氣丸)을 담은 자기병을 품에 잘 갈무리하고 도방과 함께 술사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팔방진(八方陳)을 펼치고 주문을 외우는 공방(空方)과 술사들. 곧이어 결계를 찢으며 검은 문이 열리고 이단 등을 빨아들였다.


*****


공대와 박광이 쌍선봉 일대 정찰을 마치고 합류한 이후, 일행은 수색 방향을 정하고 함께 움직였다. 불똥이를 앞세우니 잡목을 헤집으며 길을 만들어준다.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괴물이었다.


그 사이 조생원도 마음이 좀 누그러졌는지 말문을 열기 시작했는데, 일행은 곧바로 침묵하던 조생원이 그리워졌다.


“아니, 두루 처녀! 자네 몸속의 그 산신령에게 부탁하면, 이 산중을 뒤지는 것쯤은 천자문 첫 문장 읽는 격 아니겠는가?”


지리산 산신령을 통하면 <하늘 천, 따 지> 읽는 것만큼 쉬운 일 아니겠냐는 소리였는데···, 일리가 있어 보이니 다들 오랜만에 동조를 해줬다.


“이 영감탱이, 변산 산신령하고 원수지간이래요. 죽어도 부탁같은거 못하겠다네.”

“거참 우라질 영감탱이네. 좀 나와보라고 하슈. 진짜 죽여줄랑께.”

“사람 목숨이 달렸는데, 거 산신령이 무슨 체면 생각을 그리 하시나?”


“잠깐만요들!”


박광이 소란스런 일행을 집중시켰다. 앞서가던 불똥이가 갑자기 코를 킁킁대더니 혀를 낼름거리며 어디론가 발길을 돌리는 게 아닌가. 분명 쇠냄새를 맡았을 때 보이는 행동이었다.


“어? 저놈 무슨 냄새를 맡았나보네?”


불가사리가 흥미를 보일만한 냄새라면 쇠냄새 뿐이니, 흑결 무인들의 무기에서 풍기는 냄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행은 조용히 뒤를 따랐다.


무성한 수풀을 헤치고 깊은 계곡을 내려가니 숨겨져 있던 너른 공지가 나타났다. 그리고 계곡 암벽에 다닥다닥 붙여지은 몇 채의 목재 건물들이 보였다.


“저기다.”


박광이 한달음에 달려 내려가려는 걸 공대가 잡아끌었다.


“이봐, 저기에 몇 놈이 있을지 모르는데 개죽음 당할 일 있나?”

“죄송합니다. 너무 반갑고 흥분돼서요.”

“저놈이나 단속하시게.”


공대가 불똥이를 가리켰다. 놈은 코를 벌름거리며 환장하기 직전이었다. 그래, 쇠냄새가 무척 고팠을 거다. 가끔 일행의 무기에 눈독 들이다 박광에게 호되게 협박을 당한 뒤부터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박광이 눈을 부라리며 불똥이를 진정시켰다. 큰 맘 먹고 봇짐에서 쇠국자 하나를 꺼내 던져줬다. 뱀나무골에서 가져온 마지막 간식이었다. 놈은 씹지도 않고 낼름 삼켜버렸다.


한번은 시험 삼아, 놈이 싸놓은 쇠똥을 줘봤는데 바로 코를 돌려버렸다. 일행이 보기엔 똑같은 쇳덩어린데 놈은 제 똥인줄 아는 모양이었다. 그때 짐승 전문가를 자처하는 육두가 한마디 했었다.


-개돼지 보단 낫구만. 지 똥은 안쳐먹는 거 보니까.


공대는 시력에 집중했다. 목옥을 주시하다 보니 검은 옷을 입은 무사들이 여럿 지나간다.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유독 한 채의 목옥 앞에만 두 명의 보초가 서있다는 것이었다.


‘두목의 거처이거나 미리내가 갇혀 있는 곳이렷다.’


한 식경쯤 지켜보니 그 수가 꽤나 많아 보였는데, 어림잡아 백 명은 넘어보였다. 저 정도면 소규모 군대였다. 일행들의 논의가 시작됐다.


“흠, 일단 중과부적이네. 너무 많아. 계주께서도 기다리라고 하셨고···”

“미리내가 어떤 모진 고문을 당할지 모르는데 기다리자고요? 조장님 부인이어도 그럴 수 있겠어요?”


순간 박광은 아차 싶었다. 공대의 부인은 이미 오래전에 야반도주를 하셨으니까.


“아, 미리내가 자네 부인이었나 보군. 몰라봐서 미안하네.”


공대는 박광이 무안해하자 농을 치며 넘어가줬다.


결국 조원들 다수결로 정하기로 했는데, 언제나 겁 없이 돌진하는 육두는 당연히 무조건 진격에 손들었고 신중한 조생원은 공대의 손을 들어주며 기다리자고 한다. 찬성과 반대가 같자 모두의 시선이 두루를 향했다. 두루는 색기있게 웃으며, 그걸 물어서 뭐하냐는 듯 박광의 팔짱을 끼고 있다.


박광은 처음으로 두루에게 고마움을 느꼈고, 공대는 똥 씹은 표정으로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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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3 21.05.18 39 2 12쪽
53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2 21.05.17 31 2 11쪽
52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1 21.05.16 31 2 12쪽
51 자아독대(自我獨對): 자아와 마주하다 21.05.15 40 2 11쪽
50 흑룡비상(黑龍飛上): 흑룡이 나르샤 21.05.14 33 2 12쪽
49 오오낙락(烏烏樂樂): 까마귀들이 좋아 죽는구나 21.05.13 30 2 11쪽
48 귀궐애사(歸闕哀事): 궐로 복귀하니 슬픈 일이 생겼구나 21.05.12 32 2 11쪽
47 쌍룡대면(雙龍對面): 두마리 용이 마주하다 21.05.11 62 2 12쪽
46 야심심조(夜深心躁): 밤은 깊어 가고 마음은 바빠진다네 21.05.10 33 3 12쪽
45 풍전왕실(風前王室): 바람 앞에 왕실이어라 21.05.09 46 2 12쪽
44 목멱지자(木覓之子): 목멱의 아들아 21.05.08 48 2 12쪽
43 탐색망흔(探索蟒痕): 이무기의 흔적을 찾아서 21.05.07 43 2 12쪽
42 해오집맥(解誤執脈): 오해를 풀고, 맥을 잡노라 21.05.06 51 2 11쪽
41 반월혹인(半月惑人): 반월이 사람을 혹하게 하는구나 21.05.05 42 2 11쪽
40 기린휘능(起鱗揮能): 비늘을 세워 권능을 휘두르다 21.05.04 50 2 12쪽
39 백호각성(白虎覺醒): 백호의 능력을 각성하니 21.05.03 58 2 11쪽
38 복수불수(覆水不收):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지 못하오 21.05.02 42 2 12쪽
37 생사기로(生死岐路): 생사의 갈림길에 서다 21.05.01 40 2 11쪽
36 작우금적(昨友今敵): 어제의 벗이 오늘의 적이라 21.04.30 41 2 11쪽
35 상호취원(相互取願): 서로 원하는 바를 취하노라 21.04.29 60 2 11쪽
» 이인심란(二人心亂): 두 사람의 마음이 어지럽더라 21.04.28 77 2 11쪽
33 흑침백노(黑侵白怒): 흑이 침범하니 백이 노하다 2 21.04.27 44 2 11쪽
32 흑침백노(黑侵白怒): 흑이 침범하니 백이 노하다 1 21.04.26 99 2 11쪽
31 취명사암(取明捨暗): 어둠을 버리고 빛을 누릴 것이다 21.04.25 67 2 12쪽
30 괴수대전(怪獸大戰): 괴수끼리 크게 한판 붙다 21.04.24 68 2 11쪽
29 사탐유육(蛇耽油肉): 뱀은 기름진 고기를 좋아한다 21.04.23 55 2 13쪽
28 용망동주(龍蟒同舟): 용과 이무기가 한 배를 타다 21.04.22 45 2 12쪽
27 화령계망(花靈啓蟒): 화령이 이무기를 깨우쳐 주는구나 21.04.21 9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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