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그르메의 서재입니다.

흑룡이 나르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왕잼
작품등록일 :
2021.03.28 11:18
최근연재일 :
2021.05.18 18:00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5,166
추천수 :
140
글자수 :
277,754

작성
21.04.27 18:00
조회
44
추천
2
글자
11쪽

흑침백노(黑侵白怒): 흑이 침범하니 백이 노하다 2

DUMMY

다섯의 사람과 하나의 괴물. 특이한 조합의 일행이 금강 지류를 따라 서향(西向)하고 있다.


평소 같으면 끊임없이 음양오행과 삼라만상을 설파하던 조생원이지만 지금은 웬일로 조용했다. 뱀나무골에서의 충격은 조생원의 입을 꾹 다물게 했다.


조생원이 입을 닫으니 일행은 오히려 어색하고 불편했다. 조생원이 뱀나무골에서 경험한 일은 실로 양반 가문의 수치였을 것이다. 벌거벗겨진 채 온 몸에 들기름이 발라져 있었으니 말이다. 모두가 쉬쉬하는데, 눈치 없는 사람 하나는 꼭 있는 법.


“에이, 우라질! 왜 날 안 깨워서 그 좋은 구경을 못하게 했냐고?”

“우리 백정 아재는 술만 우라지게 쳐드시고 꿀잠 푹 쳐잤으면 됐지, 남들 개고생한 얘기 못 들었어요?”

“아··· 아니, 그저 내가 한심해서···”


육두의 푸념을 두루가 곧바로 박살냈다. 험악한 체격의 육두가 자신의 반절도 되지 않는 여린 여인에게 꼼짝 못하는 모습을 보고 박광이 피식 웃었다.


‘참 재미있는 분들이야.’


다섯 명의 조합이 마치 조생원이 떠드는 오행의 이치와 비슷해 보였다. 공대는 조생원의 말을 잘 들어주고, 조생원은 육두에게 꼼짝 못하고, 육두는 두루에게 쳐발리고, 두루는 박광에게 푹 빠져있고, 박광은 공대의 말을 잘 따른다. 그리고, 오행을 벗어난 저 괴물, <불똥이>는 오직 박광만을 무서워한다.


불똥이는 불가사리에게 박광이 지어준 이름이었다. 지난 번 뱀나무골에서의 활약을 보면서 모두가 새로운 조원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조장인 공대가 박광에게 이름이라도 하나 지어주라고 했는데 별 생각 없이 붙여준 게 그 이름이었다.


-불 뿜으면서 똥만 싸대잖아요. 불똥이죠. 더 좋은 이름 있어요?


아무튼 불똥이의 활약 덕에 모두가 무사했고 신녀(神女)라고 불린 명순도 신기가 풀리면서 제정신이 돌아왔다. 마을 촌장과 주민들에게 호된 경고를 하고 왔으니 다시는 미련한 짓을 하진 않을 것이다.


일행은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나무그늘 아래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금강 본류가 내려와 네 갈래로 갈라지는 특이한 곳이었다.


“이 땅에 이런 멋진 곳도 있었다니 말야. 내 전국 팔도를 다 휘젓고 다녔다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나보네 그려.”


멋진 풍광에 감탄한 듯 공대가 슬쩍 조생원에게 말을 걸었다. 공대와 조생원은 나이도 얼추 비슷해서인지 어느덧 친구처럼 말을 놓고 있었다. 양반과 평민의 신분 따위는 계원들 사이에선 아무 상관이 없었으니까.


환단계의 제자가 되는 순간 나라가 정해놓은 신분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모두 똑같은 신선의 제자일 뿐이다. 유교적 예법도 한낱 거추장스런 제약일 뿐이었으니, 아마 나라에서 눈을 켜고 살폈다면 패륜적 조직으로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모두가 조생원의 눈치를 살폈다. 이제 말문을 열 때가 되지 않았나 해서였다. 사람이 너무 변하면 주위 사람들이 불안해진다. 아무리 정신 충격이 컸다 해도 본성은 어디 가는 게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조생원이 눈을 까뒤집더니 몸을 벌벌벌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입을 천천히 열었는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변산··· 쌍선봉··· 아래 목옥··· 이동··· 흑결 등장··· 미리내 납치··· 암종 조심··· 기다릴 것”


분명 계주 마루한의 목소리였다. 빙의술로 조원들에게 명을 전한 것이다. 박광이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더니 조생원에게 달려가 멱살을 잡고 거칠게 흔들어댔다.


“뭐라고요? 미리내가 어찌됐다고요? 납치? 어떤 놈이야 대체?”


그때 빙의에서 풀려난 조생원이 이게 웬 봉변이냐는 표정으로 켁켁거렸다. 조장 공대가 박광을 진정시키자, 조생원이 울먹이며 한탄을 했다.


“아니, 내 아무리 양반 체신을 떨궜어도 그렇지, 이젠 새파란 놈한테 멱살까지 잡히는구나. 조상님 뵐 면목이 없습니다요.”


조생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공대가 조원들에게 말했다.


“분명, 태백산에 큰 일이 났던 것 같네. 흑결과 암종이라는 이름이 나왔어.”

“미리내가 납치됐다잖아요. 젠장, 흑결 이놈들이 정말···”

“우라질 것들, 당장 쳐들어갑시다. 다 박살내버려!”

“아니아니, 좀 차분해져 봐요. 변산 쌍선봉이 어디에요?”


목적지는 정해졌다. 변산에 있는 쌍선봉.


“변산이면 부안에 있는 서쪽 끝이고, 쌍선봉이면···, 내변산 쪽이겠군. 산길을 탄다 해도 여기서 얼추 사백리길은 될 것인데···”


공대가 머리를 굴리며 가장 빠른 길과 방법을 궁리하는데, 박광이 벌떡 일어났다.


“얘 타고 가죠.”


뭔가 바라보니, 박광이 불똥이의 뿔을 잡고 있었다. 불똥이가 멀뚱멀뚱 눈을 꿈벅이며 투레질을 하자 다들 기겁을 했다.


“우라질, 말도 아니고 소도 아닌 저놈을 어찌 타누?”

“동생, 타고가다 통구이 되면 어쩌려고?”

“다른 방법 있어요? 불은 못 뿜게 할게요. 어서요.”


미리내가 납치됐다는 소식에 박광은 이성을 잃을 지경이었다. 낭비할 촌각(寸刻)이 아까웠다. 다들 달리 방법이 없으니 따를 수밖에.


공포의 불가사리가 졸지에 펑퍼짐한 마차가 돼버렸다. 볏가마니를 얹어 안장 삼고 다섯의 조원들이 올라탔다. 맨 앞에 올라탄 박광이 다그치자 불똥이가 쏜살같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조원들은 서로의 허리를 꼭 껴안고 눈을 질끈 감았다.


*****


변산 쌍선봉. 미리내를 가둔 목옥 안으로 이단이 들어선다. 미리내는 흠칫 놀라 그 사내를 바라봤다.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봤던 남자, 이무기를 꺼냈던 그 남자였다. 이단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검은 도복을 입고 있었다.


“불편한 데는 없소?”


이단이 차분한 시선으로 미리내에게 물었다. 미리내는 대답없이 이단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산골에 살면서 이렇게 잘난 사내는 본 적이 없었다. 남녀간의 규율 같은 것도 배운 적이 없는지라 외간 남자의 얼굴을 이리 뚫어지게 쳐다보는 게 결례인지도 몰랐다.


오히려 민망해진 이단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제서야 미리내도 정신을 차린 듯 궁금했던 걸 묻기 시작했다.


“여긴 어딘가요? 절 왜 데려왔어요? 우리 어머니는, 부락 사람들은 어찌 됐죠?”

“······ 궁금한 게 많을 거요. 어디라고 밝힐 순 없지만···, 여긴 우리의 거처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단이 설명을 이었다.


“그대를 모시고 온건, 일의 평화로운 해결을 위해서라고 말해두겠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오. 그리고 부락 사람들은 모두 무사하오.”


말투는 좀 딱딱했지만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가 말할 때마다 기분좋은 꽃향기가 났다. 달콤한 배꽃의 향기에 취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문득 목이 베어진 풍대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미리내는 몸서리를 치며 풀어지던 마음을 바짝 조였다.


“풍대 할아버지는 무사하지 못했죠.”


미리내가 경계의 눈빛으로 차갑게 묻자, 이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른의 일은 진심으로 사과하오. 본의가 아니었소.”


이단의 진심어린 말투에 미리내는 상반되는 감정을 느꼈다. 불안감과 안도감. 평화롭던 마을에 침입해 사람들을 위협하고 목숨을 빼앗고 자신을 납치한 사람이지만, 그 사람이 설명해주는 이야기를 듣자 이상하게 마음이 안정되는 걸 느꼈다.


그리고 풍대 장로를 죽인 자를 이 사람이 처단하는 걸 보지 않았는가.


“그래도···, 풍대 할아버지의 복수를 해주셨잖아요. 고마워요.”


이단은 마음속의 무언가가 탁 깨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릴 때 수연을 왕실에 빼앗기고 나서 한번도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여자에게 마음을 주는 것은 후회와 아픔만 남을 일이라고 여겨왔다.


같은 왕족의 피를 갖고 있으면서, 모든 걸 다 가질 수 있는 쪽과 한순간에 모든 걸 빼앗길 수 있는 쪽으로 갈라지는 모순을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가문의 숙명을 거부할 용기도 없었다. 수연을 잊기 위해 더 수련에 매달렸고 부여받은 사명을 착실하게 수행하며 암종이 되기 위한 수업을 받아왔다.


이제 부친의 죽음으로 모든 상황이 어그러졌지만, 여자에 대한 생각만은 변함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인질로 데려온 산골 여인과 단 일각(一刻)을 마주하면서, 마음 속에 봉인돼 있던 무언가가 깨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위험 신호가 울렸다. 심신에 농축된 탁한 기운이 희석되는 이 기분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했다.


‘이 여인은 위험스럽다.’


이단은 순간 표정을 차갑게 굳히고 냉랭한 눈빛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면서 차갑게 한마디를 던졌다.


“얌전히 있으시오.”


이단은 알 수 없는 마음의 흔들림을 느끼며 목옥을 나섰다. 길지 않은 인생이었지만, 평생 다른 차원계의 존재들 얘기를 듣고 접하고 다스리면서 살아왔다. 자신의 몸속엔, 아무나 감히 불러낼 수 없는 거대한 이무기가 완성돼 있다.


역천을 결심한 뒤, 그 어떤 것도 그 의지를 흔들지 못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합령의 술]까지 완성시켰다. 물론 일부 변수가 남긴 했지만. 몸속에서 키운 탁기(濁氣)는 그의 역심(逆心)을 먹이로 더 무럭무럭 증폭되고 있었다. 그런데 저 여인을 잠깐 만난 사이, 완성돼가는 기운에 흠집이 생긴 기분이 들었다.


일을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하는데, 흑결주 마달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궐 까마귀의 급보를 가져온 것이다.


“주군께서 요구하던 것을 잠룡이 손에 넣은 모양입니다.”


이단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탁기의 씨앗을 사용할 때가 된 것이다.


“내일 찾아가겠다고 전하세요.”


******


손님 같은 인질생활을 한 지 이틀째로 접어들었다. 지내는 데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문을 두드리면, 밖에서 보초를 서는 두 명의 무사가 깍듯이 인사하며 필요한 걸 갖다 주었다. 식사도 괜찮았고 이야기 상대도 있었다. 무륙(巫六)라는 여인이었는데 언니처럼 친절히 대해줬다.


그녀를 통해 이곳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들었던 <흑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신비스럽게 잘생긴 남자가 조선의 결계를 지켜온 암종이라는 것도 듣게 됐다.


-흑결이나 암종의 존재가 아직 있는지는 확실치 않구나. 그저 어디선가 결계를 잘 수호하고 있기를 바랄 뿐이지.


아버지 마루한도 확신하지 못했던 그들의 실체를 보게 되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무륙은 조직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비교적 숨김없이 해주면서도, 정작 이곳이 어딘지는 입을 다물었다. 미리내도 더 이상 묻지 않았지만, 답답함이 밀려왔다. 잡혀온 자신도 모르는 곳인데, 부모님이나 계원들이 자신을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


부모가 얼마나 걱정하실지 염려됐고, 광 오라버니가 이 사실을 알고나 있을지 궁금했다. 만약 오라비가 알고 있다면···


‘당장 날 구하러 올 거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흑룡이 나르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공지 2 21.05.18 64 0 -
공지 연재 공지 21.03.28 132 0 -
54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3 21.05.18 40 2 12쪽
53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2 21.05.17 31 2 11쪽
52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1 21.05.16 31 2 12쪽
51 자아독대(自我獨對): 자아와 마주하다 21.05.15 40 2 11쪽
50 흑룡비상(黑龍飛上): 흑룡이 나르샤 21.05.14 33 2 12쪽
49 오오낙락(烏烏樂樂): 까마귀들이 좋아 죽는구나 21.05.13 30 2 11쪽
48 귀궐애사(歸闕哀事): 궐로 복귀하니 슬픈 일이 생겼구나 21.05.12 32 2 11쪽
47 쌍룡대면(雙龍對面): 두마리 용이 마주하다 21.05.11 62 2 12쪽
46 야심심조(夜深心躁): 밤은 깊어 가고 마음은 바빠진다네 21.05.10 34 3 12쪽
45 풍전왕실(風前王室): 바람 앞에 왕실이어라 21.05.09 46 2 12쪽
44 목멱지자(木覓之子): 목멱의 아들아 21.05.08 49 2 12쪽
43 탐색망흔(探索蟒痕): 이무기의 흔적을 찾아서 21.05.07 44 2 12쪽
42 해오집맥(解誤執脈): 오해를 풀고, 맥을 잡노라 21.05.06 51 2 11쪽
41 반월혹인(半月惑人): 반월이 사람을 혹하게 하는구나 21.05.05 43 2 11쪽
40 기린휘능(起鱗揮能): 비늘을 세워 권능을 휘두르다 21.05.04 50 2 12쪽
39 백호각성(白虎覺醒): 백호의 능력을 각성하니 21.05.03 59 2 11쪽
38 복수불수(覆水不收):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지 못하오 21.05.02 42 2 12쪽
37 생사기로(生死岐路): 생사의 갈림길에 서다 21.05.01 40 2 11쪽
36 작우금적(昨友今敵): 어제의 벗이 오늘의 적이라 21.04.30 42 2 11쪽
35 상호취원(相互取願): 서로 원하는 바를 취하노라 21.04.29 60 2 11쪽
34 이인심란(二人心亂): 두 사람의 마음이 어지럽더라 21.04.28 77 2 11쪽
» 흑침백노(黑侵白怒): 흑이 침범하니 백이 노하다 2 21.04.27 45 2 11쪽
32 흑침백노(黑侵白怒): 흑이 침범하니 백이 노하다 1 21.04.26 99 2 11쪽
31 취명사암(取明捨暗): 어둠을 버리고 빛을 누릴 것이다 21.04.25 67 2 12쪽
30 괴수대전(怪獸大戰): 괴수끼리 크게 한판 붙다 21.04.24 69 2 11쪽
29 사탐유육(蛇耽油肉): 뱀은 기름진 고기를 좋아한다 21.04.23 55 2 13쪽
28 용망동주(龍蟒同舟): 용과 이무기가 한 배를 타다 21.04.22 46 2 12쪽
27 화령계망(花靈啓蟒): 화령이 이무기를 깨우쳐 주는구나 21.04.21 98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