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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메의 서재입니다.

흑룡이 나르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왕잼
작품등록일 :
2021.03.28 11:18
최근연재일 :
2021.05.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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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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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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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7,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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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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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1

DUMMY

국상 엿새째 해가 밝았다. 진시(辰時: 아침7~9시) 무렵 한양 하늘에는 둥근 햇무리가 졌다. 백성들은 상서로운 징조라고 좋아들 했다.


목멱산 명류장에서 차분하게 아침을 맞이한 이단 역시 햇무리를 보고 있었다.


“승천하시기 딱 좋은 날씨로군요. 허허”


흑결주 마달이 경쾌한 아침인사를 건네 왔다.


“결주도 좋은 꿈 꾸셨소?”

“꾸다마다요. 시커먼 용 한 마리가 옥새를 물고 용상을 떡 하니 차지하는 꿈을 꾸었습죠. 흐흐”


마음에 드는 날씨였다. 일찍부터 준비를 마친 흑결원들은 저택 마당에 도열해 있었다. 며칠간 어색해 보였던 흰 옷을 벗어던지고 모두 원래의 흑의 차림이었다.


인원 점검을 마친 흑결주가 이단에게 출정사(出征辭)를 청했다. 이단은 검은 옷의 수하들을 둘러보고는 비장하게 선언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오늘은 그 끝을 보도록 하자. 모두 가서, 흑조선을 세우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라!”


“존명!!!”


일사분란하게 대답이 돌아왔다. 사기충천한 수하들을 미덥게 응시하던 이단이 마달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아무런 문제없겠지요?”

“네, 염려 마십시오. 동궐 결계의 맥점은 이미 다 풀어놨고 지금은 금천(錦川)의 물도 싹 말랐답니다. 공방(空方)은 김일경을 통해 진즉에 들여보냈고 오방(烏方)도 침투 위치 점검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환단계의 움직임은 더 포착된 게 없습니다.”


너무 완벽해 오히려 불안할 정도였다. 즉위식이 열리는 오시(午時)까지는 이제 한 시진 정도가 남았다.


*****


아무런 변고 없이 즉위식 날이 밝았다. 하지만 박광은 긴장으로 예민해진 상태였다. 엊그제 사부로부터 온 기별 때문이었는데, 김일경 대감 자택의 집사가 품고 있던 쪽지에서 즉위식을 가리키는 수상한 문구가 발견됐다.


[午時入龍]


오시에 용이 든다는 것. 즉위식이 열리는 시각에 새로운 용, 국왕이 든다는 건 너무나 상식적인 일. 국장도감 제조인 김일경에게 그 댁 집사가 전할 내용이 아니었다.


‘검은 용, 암종 그자를 의미하겠지.’


사부의 말로는, 동궐 자체가 하나의 완벽한 결계여서 술법 자체가 통하지 않는다 했다. 하지만 임금이 승하하시는 날 검은 용을 봤다는 장광기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백선기(白仙氣)를 운용해 보니, 막힘없이 세차게 기운이 팔딱였다.


-그들의 흑선기는 우리 환단계의 선기와 결은 같지만 성질은 완전 다른 것이니라.


마물의 탁한 기운을 흡수하고 부리기도 하는 그들의 기운은 제대로 운용할 수 없다 하셨으나 만약에···


‘결계를 깼다면?’


즉위식이 난장판이 될 수도 있다. 즉위식이 열리는 인정문 출입 무관들은 무기를 패용할 수가 없었다. 국장도감에서 정한 규칙이라는데, 박광으로선 무언가 느낌이 싸했다.


한참 복잡한 생각에 빠져있을 때, 옆에 있던 환관 변일이 햇무리를 보더니 상서로운 징조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늘을 보니 유독 선명한 햇무리가 해를 품고 있었다.


‘젠장, 비를 쫄딱 맞게 생겼구나.’


아침에 햇무리가 지면, 그날은 꼭 비가 오는 거다.


*****


이조판서 김일경은 즉위식 당일 매우 분주했다. 국장도감 실무책임을 맡아 국장을 지휘하면서 한편으로 암종의 지시한 바를 이행해야 했다.


금위영과 금군에 지시해, 즉위식 때 인정문 안에 드는 무관들은 무기를 패용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암종이 보낸 수하 몇 명을 즉위식 업무를 돕는 도감 일꾼으로 위장시켜 궐내로 들여놓았다.


‘오늘은, 조선 건국 이래 왕이 두 번 즉위하는 최초의 날이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김일경의 손이 떨려왔다. 노론 일파를 숙청하면서 수백 명의 피를 묻힌 손이었다.


즉위식을 앞두고 궐문 밖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눈빛에서 새로운 임금에 대한 기대를 읽을 수 있었다. 병약한 임금의 병든 조선이 아니라, 건강한 임금이 통치하는 강건한 조선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마루한과 환단계원들은 많은 인파에 놀라고 있었다. 어제 도착한 계원들까지 모두 오십여 명의 계원들이 인파를 헤치며 궐로 향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마루한의 아내인 넋재비 미투리도 있었다. 딸과 남편이 모두 도성에 있으니 혼자 산중에 있을 수가 없어 내려온 것이다.


환단계 일행은,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으로 마중 나온 우림위장 이중원의 안내를 받으며 궐내 모처로 이동했다. 돈화문을 지나 진선문으로 향하는 금천교를 지날 때였다.


“어머, 가물었나 봐요. 개천에 물이 말랐네?”


미리내가 아니었으면, 누구도 금천(錦川)의 물이 마른 것을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이중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금천은 풍수에 입각해 설계된 개천이었다. 어지간하면 마를 일이 없었기에 좀 이상하다 싶었지만, 가던 발걸음을 급히 옮겼다.


*****


드디어 오시가 되고,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문무백관과 왕실의 종친 모두 하얀 상복을 입고 있었다. 용상에 오르는 연잉군만이 상복을 벗고, 면복(冕服: 임금의 정복)을 입었을 뿐이다. 기나긴 의식은 순조롭게 진행됐지만, 박광은 죽을 맛이었다.


연잉군의 최측근 호위였지만, 오늘만큼은 멀찍이 떨어져 배례했는데 해가 중천에 뜨면서 날이 점점 더워지고 땀이 차올랐다.


‘아무 일없이 끝나고 나면, 시원하게 멱이나 감아야겠구나.’


하지만 곧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연잉군이 인정문 앞에서 즉위식을 마치고 새로운 임금으로서 인정전 용상에 앉은 순간이었다. 인정전 앞에는 문무백관과 궁인들이 가득 도열해 있었다.


박광의 몸 안에 담긴 백호의 기운이 갑자기 날뛰기 시작했다. 불길한 기분에 인정전 구역의 사방을 둘러보니, 인정문 오른편 담 귀퉁이에 네모난 검은 문 같은 것이 생겨있고 거기에서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꾸역꾸역 튀어나왔다.


흑결주 마달을 선두로 한 흑결 무리였다.


살기를 품은 검은 무리가, 흰옷을 입고 도열한 사람들을 가르며 인정전 쪽으로 달려나갔다. 문무백관들이 대경실색하며 우왕좌왕했다.


검은 옷의 무리 중에 눈에 확 띄는 인물이 있었다. 윤기가 도는 검은 비단으로 지은 흑룡포를 걸치고 검은 흡기척을 들고 흑문(黑門)을 통과한 사내, 이단이었다.


뒤늦게 나온 이단은 궐내를 둘러보았다. 공방과 공간술사 몇 명이 열어놓은 흑문을 통해 흑결의 무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찍 빠져나온 무방과 수하 영매들이 결계를 일그러뜨리고 마물들을 소환해냈다.


인정전 앞 허공에서 생전 처음 보는 괴수들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사람들을 덮쳐갔다. 조정 대신들과 궁녀들이 비명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인정문 안에 있던 금군 무관들이 흑의인들과 마물을 향해 달려갔지만 무기도 없는 맨손으로 막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잠깐의 시간만 끌어줄 뿐이었다.


이단은 용상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연잉군과 눈이 마주쳤다. 꽤나 놀란 표정이었다.


‘잠룡이여! 잠시 그 자리에 앉은 기분이 어떠했는가.’


비웃음을 지어보이고 나서, 거의 흑룡으로 변해있는 이무기를 불러냈다. 그리고 인정전 임금의 어좌(御座)를 향해 날려 보냈다. 그리고 이단은 누군가를 찾아 눈을 돌려 보았다. 멀찍이서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여인이 보였다. 중전 어씨, 수연이었다.


박광은 미친 듯이 용상 쪽으로 달렸다.


‘역시 결계가 무너졌구나.’


마음의 준비는 했으나, 이렇게 속전속결로 치고 들어올 것을 예상하지 못한 걸 자책했다. 흑룡포를 멋지게 걸친 이단을 발견했지만 그를 상대할 겨를이 없었다. 용상 위의 새 임금을 보호하는 게 최우선이다.


-카오오···


이단이 쏘아 보낸 검은 용이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인정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임금을 지키기 위해 호위청과 내금위 무관들이 앞을 막아섰지만, 선기를 익히지도 않은 그들이 마물을 막아낼 방법은 전혀 없어 보였다.


박광의 몸 안에서 백호의 기운이 꿈틀거렸다.


-제자 광아! 무엇하고 있느냐? 백호는 네가 불러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단다.


백선 할아버지의 말이 뇌리에 떠올랐다. 정신을 집중해 사지에 퍼진 백호의 기운을 뇌전(腦田)에 모았다.


‘백호야, 나와다오. 제발!’


박광이 뇌안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그의 이마에 엄청나게 빛나는 백색 광채가 생겨나더니 밖으로 폭사되었다.


-크르릉


그것은 실제 호랑이보다 배는 커보이는 거대한 백호였다. 검은 줄무늬조차 없는 순백의 호랑이, 놀랍게도 날개까지 달고 있었다. 날개를 펄럭인 백호가 인정전을 향해 섬전처럼 날아갔다.


마루한과 환단계원 일행은 인정전 담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비명 섞인 아우성을 들었다. 마루한이 지체 없이 계원들에게 소리쳤다.


“월담!!”


환단계원들이 일사분란하게 담을 넘었고, 이중원이 지휘하는 우림위 위사들이 담장 위로 올라섰다. 활로 무장한 위사들은 각자의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 먹였다.


담을 넘어온 마루한이 처음 본 것은 임금을 향해 날아가는 시커먼 용이었다. 그의 동공이 한없이 확장됐다. 이어서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흑룡을 향해 날아가는 거대한 백호였다. 마루한의 입이 쫙 벌어졌다.


흑룡은 어좌 앞에서 걸리적거리던 궐의 무관들을 이미 반(半)시체로 만들어놓고 연잉군을 노려보고 있었다. 흑룡의 얼굴이 이단으로 변하자 연잉군이 눈을 부릅떴다. 어좌를 움켜쥔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오랜만이오. 세제 저하. 왕이 되시니 기분이 좋으십니까?”

“이, 이공······. 대체 이러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건 자네의 복수가 아니지 않은가.”

“복수라···, 그것만 생각했다면 이미 끝냈을 것이오. 나는, 하늘을 바꾸려 하오.”

“사람 사는 세상을 넘보는 것은, 자네 암종가의 금기라 들었네.”

“허! 그런 사실까지 알게 되셨소? 충직한 수하를···”


이단의 얼굴이 사라지고 다시 사나운 흑룡이 나타났다. 뒤로부터 엄청난 기운이 느껴져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저건 뭐야?’


엄청난 크기의 백호가 앞을 가로막는 마물들을 찢어발기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눈부시게 날아오는 거대한 호랑이에게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위압감을 느꼈다.


흑룡이 잠시 머뭇거렸다. 눈앞에 있는 연잉군의 목숨은 당장이라도 앗을 수 있었다. 하지만, 흑룡은 새 임금을 해치지 않았다. 다만 그의 귓가에 다가가 무슨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연잉군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캬오오오


흑룡이 몸을 돌려 포효성을 지르더니, 백호를 향해 날아갔다.


동시에, 수연을 응시하던 이단의 시선도 백호를 향했다. 그는 분신인 흑룡과 오감(五感)을 공유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전신의 솜털을 곤두세웠다. 주위를 둘러보니, 박광이 범 같은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며 다가오고 있었다.


도방이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이단이 제지했다.


“친구! 잘 회복되었나 보군. 설마, 저 호랑이를 부른 게 자네였나?”

“친구라··· 이 하급 졸자가 감히 귀한 분의 친구라 불릴 수 있겠소? 그나저나 암종 전하의 이무기는 언제 저렇게 팍삭 늙어버린 거요? 수염도 나고 털도 나고, 더 징그러워졌구려.”


운명이 꼬인 탓에 벗이 되지 못한 두 사내가 팽팽히 눈싸움을 주고받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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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공지 21.03.28 132 0 -
54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3 21.05.18 40 2 12쪽
53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2 21.05.17 31 2 11쪽
»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1 21.05.16 32 2 12쪽
51 자아독대(自我獨對): 자아와 마주하다 21.05.15 40 2 11쪽
50 흑룡비상(黑龍飛上): 흑룡이 나르샤 21.05.14 33 2 12쪽
49 오오낙락(烏烏樂樂): 까마귀들이 좋아 죽는구나 21.05.13 30 2 11쪽
48 귀궐애사(歸闕哀事): 궐로 복귀하니 슬픈 일이 생겼구나 21.05.12 32 2 11쪽
47 쌍룡대면(雙龍對面): 두마리 용이 마주하다 21.05.11 62 2 12쪽
46 야심심조(夜深心躁): 밤은 깊어 가고 마음은 바빠진다네 21.05.10 34 3 12쪽
45 풍전왕실(風前王室): 바람 앞에 왕실이어라 21.05.09 46 2 12쪽
44 목멱지자(木覓之子): 목멱의 아들아 21.05.08 49 2 12쪽
43 탐색망흔(探索蟒痕): 이무기의 흔적을 찾아서 21.05.07 44 2 12쪽
42 해오집맥(解誤執脈): 오해를 풀고, 맥을 잡노라 21.05.06 51 2 11쪽
41 반월혹인(半月惑人): 반월이 사람을 혹하게 하는구나 21.05.05 43 2 11쪽
40 기린휘능(起鱗揮能): 비늘을 세워 권능을 휘두르다 21.05.04 50 2 12쪽
39 백호각성(白虎覺醒): 백호의 능력을 각성하니 21.05.03 59 2 11쪽
38 복수불수(覆水不收):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지 못하오 21.05.02 42 2 12쪽
37 생사기로(生死岐路): 생사의 갈림길에 서다 21.05.01 40 2 11쪽
36 작우금적(昨友今敵): 어제의 벗이 오늘의 적이라 21.04.30 42 2 11쪽
35 상호취원(相互取願): 서로 원하는 바를 취하노라 21.04.29 60 2 11쪽
34 이인심란(二人心亂): 두 사람의 마음이 어지럽더라 21.04.28 77 2 11쪽
33 흑침백노(黑侵白怒): 흑이 침범하니 백이 노하다 2 21.04.27 45 2 11쪽
32 흑침백노(黑侵白怒): 흑이 침범하니 백이 노하다 1 21.04.26 99 2 11쪽
31 취명사암(取明捨暗): 어둠을 버리고 빛을 누릴 것이다 21.04.25 67 2 12쪽
30 괴수대전(怪獸大戰): 괴수끼리 크게 한판 붙다 21.04.24 69 2 11쪽
29 사탐유육(蛇耽油肉): 뱀은 기름진 고기를 좋아한다 21.04.23 55 2 13쪽
28 용망동주(龍蟒同舟): 용과 이무기가 한 배를 타다 21.04.22 46 2 12쪽
27 화령계망(花靈啓蟒): 화령이 이무기를 깨우쳐 주는구나 21.04.21 9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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