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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메의 서재입니다.

흑룡이 나르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왕잼
작품등록일 :
2021.03.28 11:18
최근연재일 :
2021.05.18 18:00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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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7
추천수 :
140
글자수 :
277,754

작성
21.04.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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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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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괴수대전(怪獸大戰): 괴수끼리 크게 한판 붙다

DUMMY

조생원으로 짐작되는 사내의 비명소리가 일행을 긴장시켰다.


“아, 정말 저 양반 멱따는 소리 못 들어주겠네. 여우같은 년에게 홀딱 반해서 헬렐레할 때부터 알아봤어”


두루가 짜증 섞인 투로 조생원을 탓했다. 하지만 그녀의 짜증 속에 동료에 대한 걱정이 쌀가마니 속의 쌀벌레만큼은 들어있을 거라고 박광은 생각했다.


육두는 여전히 코를 골며 깨어날 생각을 못하고 있고, 공대는 공력(功力)을 양악(兩顎:상하 턱뼈)에 모아 박광의 결박을 풀어주려고 입을 놀리고 있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우라질, 칡끈이 질기기도 하네.”


마음이 급했는지 공대의 입에서 육두의 말투가 튀어나왔다. 마음이 급하니 집중이 되지 않는다. 갑자기 박광이 두루에게 말을 걸었다.


“누님, 묶여있어도 그 산신령 불러낼 수 있죠?”

“지리산 영감? 당연하지, 아···,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마을을 다 갈아엎을까?”

“아뇨. 조생원님 상황을 모르고··· 우리도 위험해질걸요?”

“그럼···?”

“산신이니 인근 산의 것들과 소통이 되겠죠? 그놈을 불러오세요.”

“아! 그놈? 알았어.”


박광의 말이라면 뭐든 다 들어줄 두루였으니, 흔쾌히 따랐다. 그녀가 집중하자 눈동자의 동공이 사라지고 흰자만 가득해졌다.


지리산 산신이 그녀를 지배하자 박광은 그 기감(氣感)이 확연히 느껴졌다. 곧, 기의 느낌이 지맥(地脈)을 타고 밖으로 쭉 뻗어나갔다. 그놈이 머물고 있을 산굴(山窟) 방향이었다.


*****


돼지 멱따는 소리를 연상케 하던 조생원의 비명소리는 곧 멎었다. 혼절해버린 것이다. 거대한 황구렁이가 몸을 꼿꼿이 세우고 마치 교주가 신도들을 보듯 마을 사람들을 내려다봤다.


신녀 명순이 황구렁이 앞으로 다가가 구렁이의 몸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구렁이가 그녀를 감싸 안고는 꼬리를 흔들어대는데, 주인 만난 강아지 꼬리질 같아보였다. 황구렁이가 이제 자신에게 바쳐진 제물을 바라보더니 혀를 낼름거렸다.


뱀은 혀로 냄새를 감지한다는데, 고소한 냄새를 맡고 흥분했는지 아가리를 쫙 벌리자 끈적한 침이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자 곁에 있던 명순이 두 손으로 구렁이의 침을 받아 자신의 얼굴에 정성껏 발랐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비위 약한 사람이 이 장면을 봤다면 구토감을 일으킬만한 것이었겠으나, 마을 사람들의 표정은 기대감에 차 있었다.


-존엄하신 황구렁이시여! 제물을 받아주시오.

-뱀나무시여, 마을을 굽어 살피시길 비나이다.


그들의 기도에 부응하듯 황구렁이가 쫙 벌린 아가리로 제물을 삼키기 시작했다. 들기름칠 된 조생원의 두 다리가 매끄럽게 삼켜졌다. 놈이 꿀렁거리며 삼킴질을 하자 어느새 조생원의 하반신은 모두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몸으로 전해지는 느낌이 특별했는지, 혼절했던 조생원이 그 순간 정신을 차렸다. 황구렁이의 번들거리는 눈알과 눈이 딱 마주쳤고 자신의 하반신은 보이지 않았다.


“아아아악!”


조생원은 다시 정신을 잃었다. 하지만 그가 비명을 지른 순간, 신녀 명순이 눈을 번쩍 떴는데, 동공이 반으로 갈라진 사안(蛇眼)이었다. 흰자는 붉게 충혈돼 있었다. 사람들의 기도가 더 들떠올랐다.


-신녀시여! 예지를 내려주시오.

-우리 신녀께 능력을 보여주소서.


그들의 신열(神熱)이 제단이 놓인 수호목 주위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그런데 갑자기 신녀가 하던 짓을 멈추고 마을 어귀를 휙 돌아봤다. 황구렁이도 삼킴질을 멈춰버렸다. 촌장과 주민들도 덩달아 그쪽을 바라봤는데···


-퍼벅 퍼벅


지축을 흔드는 소리가 나면서 시뻘건 불덩어리가 마을을 향해 질주해오고 있었다. 산굴 결계에서 풀려난 불가사리였다. 놈이 짓쳐밟은 초목이 검붉은 불똥을 날렸다. 놈은 주민들이 모여있는 제단과 황구렁이를 향해 일직선으로 폭주했다. 그 진로에 있던 싸리나무 울타리들이 불에 훨훨 타올랐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 악마다.

-신녀를 보호해!

-능사(능구렁이)신이여, 저 마물을 물리쳐주시오.


순간 황구렁이가 반쯤 삼킨 제물, 조생원을 토해내고는 달려오는 불가사리를 향해 몸을 세웠다. 황구렁이가 꼬리로 신녀 명순을 휘감아 뒤로 빼내더니 똬리를 틀어 제 몸을 보호했다. 그리고는 모든 걸 집어삼킬 듯 아가리를 쫙 벌렸는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게 벌어졌다. 두 괴물이 맞부딪혔다.


-퍼어억!!!


*****


그 시각, 박광 일행은 열심히 결박을 풀고 있었다. 무기는 다 어디로 치웠는지 날카로운 쇠붙이가 아쉬웠는데, 마침 박광의 품속에 있던 은장도가 요긴하게 쓰이고 있었다. 태백산에서 미리내가 건네준 그것이었다. 그녀가 생각했던 용도와는 달리 쓰이고 있지만 박광은 미리내에게 또한번 고마워했다.


-투둑


공대가 은장도를 입에 물고 애쓴 덕에 박광의 손을 묶은 칡끈 결박이 떨어져나갔다. 육두는 아직 정신이 혼미하고 두루는 산신에게 몸을 내줘 실혼상태였지만, 두 사람은 마음이 초조했다. 그 사이 밖에서 들려온 소리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조생원의 절박한 비명소리가 또 있었고 주민들이 열광적으로 기도하는 소리에 이어 비명소리까지 들려왔다.


“놈이 왔나봅니다.”

“그런가보네. 조생원이 무탈해야할텐데···”


미우나고우나 벌써 정이 많이 든 동료들이었다. 박광 역시 걱정되기는 마찬가지, 빨리 나가봐야했다. 박광이 공대의 결박을 풀어준 순간, 지맥을 타고 강한 기감이 쇄도하더니 두루의 몸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두루의 눈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휴우! 영감이 제대로 한 건 했네. 그놈도 왔죠?”

“산신 영감 고생했소. 누님도요. 우리도 놀진 않았어요.”


박광이 두루의 결박을 풀어주며 씩 웃었다. 공대가 일행을 독려했다.


“어서 나가보세.”


곯아떨어진 육두만 남겨두고 밖으로 나온 일행은 아래쪽 마을 공터에서 벌어지는 일세의 마물대전(魔物大戰)을 목격했다.


거목만한 황구렁이가 집채만한 불가사리를 휘감고 있었는데, 불가사리가 불길을 활활 내뿜으며 사방으로 날뛰었다. 여느 생물체 같았으면 벌써 통구이가 됐겠지만, 황구렁이도 만만찮은 세월을 잡순 영물인지, 뜨거운 불기운에도 조임을 풀지 않고 버텨내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 세간살이는 죄다 불타버릴 지경이었다.


“에? 어디서 뱀 굽는 냄새가 난다 했더니··· 저건 무슨 괴물이지?”


박광이 혀를 내두르자, 공대가 받아줬다.


“웬 나무가 용틀임, 아니 뱀틀임하는 모양이더니, 저게 그 수호목에 깃든 놈이었나 보네.”


다행히, 수호목 근처에 쓰러져있는 조생원이 보였다. 벌거벗긴 했지만 몸이 상한 곳은 보이지 않아 안도하는데, 난리를 피하던 마을 촌장과 주민들이 그들을 목격하고는 주위로 모여들었다. 사내들 손엔 몽둥이와 쇠스랑이 들려있기도 했다. 공대가 나섰다.


“촌장, 설마 우릴 모두 저 놈에게 바치려 했던 거요?”

“어쩔 수 없었소이다. 우리가 살려면···”

“아직도 우릴 해칠 생각이오?”

“입막음은 꼭 해야 하오. 관병이라도 끌고 오면 우린 죽소. 이해하시오.”


그때, 듣고 있던 박광이 끼어들었다.


“이해요? 목숨을 앗을테니, 네네! 이러면서 이해하고 내주라는 거요?”


박광이 일갈하며 두 다리에 힘을 모았다.


“두 분은 어서 조생원님을 챙겨주세요.”


공대와 두루에게 조생원을 부탁하고 박광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살살 하시게”


공대가 부탁을 던지고 내려가는데, 슬쩍 돌아보니 이미 마을 주민 절반 이상이 쓰러져있었고, 촌장은 벌벌 떨며 엉덩방아를 찧고 있었다.


공터에서 힘겨루기를 하던 두 괴물은 슬슬 지쳐가는지 움직임이 둔해져 있었다. 불가사리의 힘과 화기(火氣)를 버티는 황구렁이와, 도무지 삼킬 수 없는 괴물 불가사리였으니 서로 짜증이 날만 했다.


불가사리가 잠시 난동을 멈추고 투레질을 하는 사이, 황구렁이가 갑자기 떨어져 내리더니 도망치듯 수호목을 휘감고 올라갔다.


한편, 공대와 두루가 제단에 다가와 조생원을 살펴보니 다행히 숨은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콩깍지를 씌웠던 촌장의 딸은 저 옆에 쓰러져 있었는데 머리칼과 옷자락이 불에 그슬리긴 했지만, 생명엔 지장 없어 보였다. 두루가 코를 킁킁 거리더니 말했다.


“이거이거···, 남녀가 무슨 깨를 볶았나? 군침 돌게 고소한 냄새 아니에요?”


조생원 몸에 발라진 들기름 냄새가 워낙 진했던 것이다. 공대가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는데, 갑자기 구렁이가 스며들어간 수호목의 가지들이 강렬히 떨리더니 불가사리를 향해 가지를 내려쳤다. 마치 힘을 더 얻기 위해 자신의 은신처인 나무와 합체한 꼴이었다.


굵직한 가지들이 불가사리의 몸을 가격했지만 조금씩 밀려나기만 할뿐, 상처 하나 만들지 못했다. 대신 잠잠해져가던 불기운이 더 강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바람을 만나 불길이 거세지는 것처럼.


“쿨럭, 결국 구렁이가 질 거요. 화금(火金)이 상존하는 괴물에게 목토(木土)의 기운을 가진 구렁이가 절대 이길 수 없지. 목생화(木生火)요 토생금(土生金)이니 괴물의 기운만 북돋울 뿐···, 쿨럭”


제 버릇 개 못준다고, 조생원은 깨어나자마자 오행상극을 떠벌이기 시작했다.


“생원 나리! 입 좀 쉽시다. 죽다 살아난 양반이··· 참 나”


박광이 마을주민들을 모두 제압하고 내려오면서 한마디 했다. 그의 손에는 촌장의 멱살이 잡혀있었다. 발버둥치던 촌장을 내려놓자, 쓰러져있는 딸에게 냉큼 달려가더니 통곡을 한다.


“며, 명순아, 이년아 정신 차려 명순아! 어어엉”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공대가 한숨을 쉬었다.


“타인의 목숨 가벼이 여기던 자도, 제 피붙이의 생명은 소중한가 보구나!”


이제 괴물들의 난투극도 매듭지어야했다. 박광이 끼어들까 하는 참이었는데, 공격을 피하기만 하던 불가사리가 갑자기 힘찬 투레질을 하더니 격렬하게 돌진했다. 그리고 수호목의 밑둥을 들이받았다.


-쿵!! 뻐거거억!!!


큰 충격을 받은 수호목이 굉음을 내면서 넘어가기 시작했다. 한아름은 되는 굵은 나무가 한방에 동강난 것이다. 나무가 통째로 쓰러지자 허물을 벗듯 황구렁이가 벗겨져 나오는데, 정신이 멍한 모양인지 흐느적거렸다.


의기양양해진 불가사리가 구렁이를 향해 다시 돌진하려는데 두루가 막아섰다. 그녀가 품에 있던 침통에서 붉은 바늘 같은 것을 꺼내 주문을 외더니 황구렁이를 향해 던지자 놀랍게도 황구렁이가 사라졌다. 두루는 아무렇지도 않게 황구렁이 있던 곳에 가서 무언가를 줍더니 머리에 꽂았는데, 뱀 모양의 나무 비녀였다.


“그게 뭐하는 거요? 소멸시키는 게 낫지 않나?”


공대의 물음에 두루가 호호 웃으며 말했다.


“얘는 다른 계에서 온 게 아니에요. 이 세상에서 자란 영물이랍니다. 봉인해두면 나중에 써먹을 데가 있을 거예요. 호호”


휘황찬란한 괴물극의 결말을 목격한 조생원은, 도대체 누가 괴물인지 모르겠다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혼절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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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공지 21.03.28 132 0 -
54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3 21.05.18 39 2 12쪽
53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2 21.05.17 31 2 11쪽
52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1 21.05.16 31 2 12쪽
51 자아독대(自我獨對): 자아와 마주하다 21.05.15 40 2 11쪽
50 흑룡비상(黑龍飛上): 흑룡이 나르샤 21.05.14 33 2 12쪽
49 오오낙락(烏烏樂樂): 까마귀들이 좋아 죽는구나 21.05.13 30 2 11쪽
48 귀궐애사(歸闕哀事): 궐로 복귀하니 슬픈 일이 생겼구나 21.05.12 32 2 11쪽
47 쌍룡대면(雙龍對面): 두마리 용이 마주하다 21.05.11 62 2 12쪽
46 야심심조(夜深心躁): 밤은 깊어 가고 마음은 바빠진다네 21.05.10 33 3 12쪽
45 풍전왕실(風前王室): 바람 앞에 왕실이어라 21.05.09 46 2 12쪽
44 목멱지자(木覓之子): 목멱의 아들아 21.05.08 48 2 12쪽
43 탐색망흔(探索蟒痕): 이무기의 흔적을 찾아서 21.05.07 43 2 12쪽
42 해오집맥(解誤執脈): 오해를 풀고, 맥을 잡노라 21.05.06 51 2 11쪽
41 반월혹인(半月惑人): 반월이 사람을 혹하게 하는구나 21.05.05 42 2 11쪽
40 기린휘능(起鱗揮能): 비늘을 세워 권능을 휘두르다 21.05.04 50 2 12쪽
39 백호각성(白虎覺醒): 백호의 능력을 각성하니 21.05.03 58 2 11쪽
38 복수불수(覆水不收):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지 못하오 21.05.02 42 2 12쪽
37 생사기로(生死岐路): 생사의 갈림길에 서다 21.05.01 40 2 11쪽
36 작우금적(昨友今敵): 어제의 벗이 오늘의 적이라 21.04.30 41 2 11쪽
35 상호취원(相互取願): 서로 원하는 바를 취하노라 21.04.29 60 2 11쪽
34 이인심란(二人心亂): 두 사람의 마음이 어지럽더라 21.04.28 77 2 11쪽
33 흑침백노(黑侵白怒): 흑이 침범하니 백이 노하다 2 21.04.27 44 2 11쪽
32 흑침백노(黑侵白怒): 흑이 침범하니 백이 노하다 1 21.04.26 99 2 11쪽
31 취명사암(取明捨暗): 어둠을 버리고 빛을 누릴 것이다 21.04.25 67 2 12쪽
» 괴수대전(怪獸大戰): 괴수끼리 크게 한판 붙다 21.04.24 69 2 11쪽
29 사탐유육(蛇耽油肉): 뱀은 기름진 고기를 좋아한다 21.04.23 55 2 13쪽
28 용망동주(龍蟒同舟): 용과 이무기가 한 배를 타다 21.04.22 45 2 12쪽
27 화령계망(花靈啓蟒): 화령이 이무기를 깨우쳐 주는구나 21.04.21 9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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