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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메의 서재입니다.

흑룡이 나르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왕잼
작품등록일 :
2021.03.28 11:18
최근연재일 :
2021.05.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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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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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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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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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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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탐색망흔(探索蟒痕): 이무기의 흔적을 찾아서

DUMMY

조생원이 산통(算筒)을 흔들고 있다.


“오행의 깊은 뜻을 보여주시어 부디 몽매한 백성들을 깨우치게 하소서.”


그의 앞에는 퇴기(退妓)로 보이는 한 여인이 찾아와 앉아 있었다. 산통에서 산가지가 뿌려지고 조생원이 손가락 마디를 더듬는다.


“자, 보자··· 흠! 지금 이름으로는 도저히 못 이기오. 아무래도 이름을 바꿔야겠소.”


퇴기 동월은 한때 잘 나가던 기방 동월루(冬月樓)의 책임자였다. 한양의 방귀 깨나 뀌는 한량들이 제집처럼 드나들었는데, 연전에 춘심관이 들어서면서 매출이 절반으로 뚝 떨어지고 운영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춘심관의 기녀들을 빼오기도 하고 삿된 풍문을 만들어 퍼뜨리기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해서, 용하다고 소문난 점집에 찾아왔더니, 처녀무당은 어디 가고 웬 쥐생원 같은 작자가 앉아있지 않은가.


‘오행 생원이라고? 별의별 사기꾼들이 많다더니’


잘못 찾아왔다고 그냥 나가려는데, 개점 후 첫 손님이니 공짜로 봐준다기에 속는 셈치고 점을 보는 중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남의 가게 이름을 바꾸란다. 십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간판을 바꾸라니 그게 내키겠는가.


동월이 못 미덥게 바라보자 조생원이 혀를 끌끌 찬다.


“에헤! 거, 사람 말을 참 가려 믿는 여편네로구먼. 내 설명을 해 주겠소.”


동월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경청하겠다는 나름의 성의 표시였다.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오는 봄을 이길 수 있겠소? 겨울은 지고 바야흐로 봄의 시절이로구나.”


듣고 보니, 그도 그럴 듯 했다.


“생원님, 그럼 어떤 이름이 적당하겠시오?”

“하.일.루(夏日樓)!”

“네? 하일루···요?”

“그렇소. 여름의 이글거리는 태양으로 봄의 기운을 불살라 버려야하오.”


이게 과연 용한 점쟁이가 맞는지, 아리송했다. 동월은 이래 망하나 저래 망하나 할 판이니, 속는 셈치고 이름이나 바꿔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를 일어서려는데···,


“에헤! 복채는 주셔야지.”

“아니, 첫 손님이라 공짜라면서요?”

“복채가 꼭 돈만 있나? 내, 돈은 받지 않겠소. 다만 재미있는 풍문이라도 있으면 하나 들려주고 가시오.”


조생원은 나름 정보를 수집하는 중이었다. 한양 올라와 며칠간 계원들이 사방을 돌아다니고 있지만, 흑결의 종적을 찾는데 실패하면서 생각한 복안이었다. 돈을 주면 돈을 받고, 아니면 저자의 풍문이라도 수집할 요량이었다.


동월은 잘되었다 싶었다. 별로 믿음도 가지 않는 점쟁이에게 피 같은 돈을 주기는 아까우니 말이다. 가장 최근에 들은 믿기지 않는 얘기를 해주기로 했다.


“그럼, 잘 들어보시우···”


동월의 이야기에 조생원은 깜짝 놀랐다.


그녀의 이야기인즉, 어제 오시(午時)경에 양화진 나루에 시커먼 이무기나 나타나서 뱃놀이하던 한량들과 기녀들을 삼켜버리고 사라졌다는 풍문이었다. 그 이무기는 망원정 쪽으로 사라졌는데 배에서 화물을 내리던 짐꾼들이 다수 목격했지만 포청 포교들이 출동해 입단속을 시켰다는 것이다.


“마침, 목격한 짐꾼 중에 하나가 저희 동월루에 물품을 대는 자여서 들을 수 있었지요. 호호. 참 별의별 풍문이 다 있지요?”


이야기를 해주면서도 그녀는 그 풍문을 믿지 않았다. 세상에 어느 정신 나간 괴물이 대낮에 한양에 나타나 행패를 부리겠는가 하고, 웃어 넘겼을 뿐이다.


그런데···, 이 겁쟁이 같은 쥐생원은 그 말을 정말 믿는 것 같다. 놀라서 벌벌 떨더니만 자신을 떠밀 듯 내보내고 문을 걸어 잠갔으니 말이다.


*****


박광은 저자거리를 배회하다 점집에 돌아와 있었다. 이단과 마주쳤던 길거리를 떠올리며 훑고 다녔지만 오늘도 아무 소득이 없다. 지금은 미리내와 함께 방안에 굴러다니던 <홍길동뎐>을 펼쳐놓고 흥미진진하게 보는 중이었다.


“이야! 얼마나 멋진 협객이고 술사야? 홍길동 이분 얼굴이 아마 박광 오라버니 닮지 않았을까? 헤헤.”

“흠흠, 그렇지? 성품이나 능력이나 이 오라비를 빼닮았네. 헤헤.”

“아! 오라버니, 혹시 이분도 환단계의 전대고인(前代高人)이 아니실까?”

“그러게? 이따가 사부님한테 한번 물어보자. 히히”


남녀가 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데, 조생원이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이보게들, 찾았네! 찾았어.”

“생원 형님, 무얼 찾아요?”

“거, 있잖아. 자네를 해친 마물, 이무기말야. 한양에 나타났다 하네.”

“뭐라고요?”


이무기라는 말에 박광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이단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조생원이 방금 들은 풍문을 자세히 얘기해주는데 마침 공대가 들어왔다. 그는 대장간에 맡겨둔 것을 찾아오는 길이었다. 육두의 유품인 백정도와 불가사리가 남긴 쇠똥을 녹여 만든 새로운 칼로, 쌍선봉에서 도주하며 무기를 잃은 박광을 위한 선물이었다.


‘육두 형님을 위해서라도, 꼭 이 칼로 복수를 해드리겠습니다.’


동료들의 유품(?)으로 만들어진 새 칼을 받게 되니 박광은 감회가 남달랐는데, 조생원이 또 초를 쳤다.


“명검에는 걸맞는 이름이 있어야지. 내 공짜로 지어주겠네. 킁킁! 냄새는 나지 않지만 육분도(肉糞刀)가 딱 좋겠구먼.”

“햐! 좋네요. 고기와 똥의 조합이라. 역시 생원 형님의 작명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십니다.”


박광이 흔쾌히 맞장구치자, 공대도 흥겹게 외쳤다.


“자, 나의 분전궁(糞箭弓)과 아우님의 육분도로 흑결 놈들한테 구린 똥맛을 제대로 보여주자구!”


공대 역시 불가사리 쇠똥으로 몇 대의 화살촉을 만들었던 것이다. 더럽게 끈끈한 동료애로 뭉쳐진 세 남자가 결의를 다지며 집을 나섰다.


*****


동궁전 성정각.


세제의 거처에선 요즘 한숨소리를 들을 기회가 많아졌다. 밖에서 번을 서는 한종로는 한편 궁금하기도 했지만 절대 길게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윗사람 일에 관심 가져봐야 피곤한 일만 닥칠 것이라, 그냥 신경 끄고 사는 게 오래 사는 방편이었다. 그는 애써 오늘 퇴궐 후에 들를 주루를 상상했다.


요즘 듣자하니 청계천변에 군칠이집이라고 끝내주는 개장국집이 문을 열었다는데 오늘은 거기나 가서 목이나 축이고 몸도 보(保)하고 오리라. 입맛을 쩌억 다시다가 갑자기 그 녀석 얼굴이 떠올랐다. 우림위 직속 후배이자 자신을 특진시켜 익위사로 영전시켜준 고마운 녀석, 박광···,


‘짜식, 잘 지내고 있으려나? 대관절 무슨 중차대한 일이기에 세제 저하의 곁을 훌쩍 떠났나 몰라.’


그러다 한종로는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생각할 여인네가 한 둘이 아니건만, 어찌 사내 얼굴을 떠올리고 있지? 이건 아니지.’


한종로 뒤편 창살문을 사이에 두고 앉아있는 연잉군의 머릿속에도 ‘그 녀석’이 떠올라 있었다. 연잉군은 요즘 한숨을 푹푹 쉬며, 자신의 성급한 실수를 후회하고 있었다. 수시로 변내관을 불러 채근하는 게 일상이 됐는데, 지금도 그의 앞에는 변내관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엎드려 있다.


“저하, 아무리 연통(連通)을 넣으려 해도, 이제 그 접선인과 맞닿을 수가 없습니다요. 송구하옵니다.”

“갑자기 연통을 끊고 잠적하다니··· 애초부터 사악한 의도로 접근한 것 아니냐. 대체 그런 인간을 연결해 준 자네가 그자의 거처도 모른다는 게 말이 된단 말인가?”

“송구하기 짝이 없사옵니다. 저하! 소신이 무슨 악의가 있어 나쁜 의도를 가진 자를 알고 저하께 소개했겠사옵니까. 그저 저하의 앞날에 적으나마 도움이 될까 싶은 충심이었을 뿐이옵니다. 헤아려주시옵소서 저하.”


연잉군은 손으로 이마를 지근지근 눌렀다. 믿었던 변내관마저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큰 부담을 안겨줬다. 이 순간 떠오르는 건 박광이었다. 미관말직의 무관이지만, 그 녀석의 선량한 기운과 듬직한 실력이 간절히 필요했다.


“달포가 다 되어 가는데, 우시직에게선 아직 아무 연락이 없는가?”

“네, 저하, 아직 어떤 기별도 받아보지 못했나이다.”

“후우우우!”


한숨이 습관이 되면 점점 길게 늘어진다. 느는 건 한숨이요, 커지는 건 불안감이었다. 자칫, 형님인 주상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긴다면 용상에 앉게 되더라도 평생 악몽에 시달릴 것이었다.


“내일 익위사 인원을 다 풀어서라도, 우시직이 어느 먼 곳에 가있는지 찾으라 할 것이다. 좌익위를 들라 하게.”

“네, 알겠사옵니다. 저하.”


물러나는 변내관의 귓가에 연잉군의 한숨 소리가 또 들이박혔다.


*****


양화진에 도착한 박광 일행은 나루에서 일을 하고 있는 짐꾼들을 먼저 탐문했다. 포청의 엄명이 있었다더니 처음엔 입을 꾹 다물던 자들이, 박광이 뭔가를 들이밀자 술술 불기 시작했다. 익위사 신분을 기재한 동그란 목패(木牌)였다.


“세제 저하의 엄명이니라, 감히 우릴 속이려 하는가. 다 알아보고 왔으니 사실대로 고하도록 하시게.”


세제 저하를 팔았더니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몇몇의 일꾼들이 잠시 서로 눈치를 보더니만, 한 명이 입을 열자 다른 자들도 큰 목소리로 목격담을 불기 시작했다.


“여럿이 함께 본 것이니 허튼 풍문은 아니었군요. 확실히 한양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었네요.”


이무기가 근처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되자, 박광의 몸 안에 잠재해 있던 백호의 기운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역시, 익위사의 명성이 포청보다 위에 있구먼. 광 아우님 참 대단한 분이었네.”


공권력의 힘에 감탄한 조생원이 박광을 추켜세웠고 공대가 씨익 웃으며 맞장구쳤다.


“아무렴! 환단계 유일의 현직 관리 아니신가. 흐흐.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동생”

“에이, 됐고요. 형님들, 저 망원정이나 한번 올라가보죠. 이무기가 저쪽으로 사라졌다 했으니 뭐가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망원정으로 올라간 세 남자는 의외의 광경을 보게 됐는데, 무슨 중대사건 현장 마냥, 새끼줄로 접근 못하게 막아놓고는 두 명의 포졸이 지키고 서 있었다. 하지만 박광이 익위사 목패를 보여주자 그들도 순순히 입장을 허락했다.


“이거 뭐, 목패 하나면 만사형통일세? 일 끝나면 우리한테도 하나씩 만들어주게나.”


입 놀리는 게 취미인 조생원의 실없는 농을 씨익 흘려버리고, 공대에게 부탁했다.


“조장 형님이 자세히 좀 봐주시죠. 형님 주특기니까요.”


환단계의 조츠라비는 일반적인 추적 전문가에게는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바로 영(靈)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 박광이 뇌안을 열고 둘러봤지만 어떤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제부터는 특별한 능력을 키운 조츠라비 공대의 소관이다.


공대는 망원정에 올라 한강변을 바라보더니 마치 무엇을 보고 있는 것처럼 시선을 옮겨 정자 마루를 응시했다. 뇌안을 열어 마루 전체를 훑어본 그가 이번엔 계단을 내려가 주변 흙바닥을 살피기 시작했다. 박광과 조생원은 정자 위에서 한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마나 풍요로운 도성의 젖줄인가. 저곳을 마음껏 누볐다는 건, 놈들이 이미 상당히 준비를 마쳤다는 것인데···”


조생원의 말에는 진지한 초조함이 실려 있었고, 박광도 그 느낌을 이어받았다. 한시라도 빨리 찾아내야 놈들의 불순한 의도를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 공대의 음성이 들려왔다.


“확실히 찾은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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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공지 21.03.28 132 0 -
54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3 21.05.18 40 2 12쪽
53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2 21.05.17 31 2 11쪽
52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범이 맹렬히 싸우다 1 21.05.16 31 2 12쪽
51 자아독대(自我獨對): 자아와 마주하다 21.05.15 40 2 11쪽
50 흑룡비상(黑龍飛上): 흑룡이 나르샤 21.05.14 33 2 12쪽
49 오오낙락(烏烏樂樂): 까마귀들이 좋아 죽는구나 21.05.13 30 2 11쪽
48 귀궐애사(歸闕哀事): 궐로 복귀하니 슬픈 일이 생겼구나 21.05.12 32 2 11쪽
47 쌍룡대면(雙龍對面): 두마리 용이 마주하다 21.05.11 62 2 12쪽
46 야심심조(夜深心躁): 밤은 깊어 가고 마음은 바빠진다네 21.05.10 33 3 12쪽
45 풍전왕실(風前王室): 바람 앞에 왕실이어라 21.05.09 46 2 12쪽
44 목멱지자(木覓之子): 목멱의 아들아 21.05.08 48 2 12쪽
» 탐색망흔(探索蟒痕): 이무기의 흔적을 찾아서 21.05.07 44 2 12쪽
42 해오집맥(解誤執脈): 오해를 풀고, 맥을 잡노라 21.05.06 51 2 11쪽
41 반월혹인(半月惑人): 반월이 사람을 혹하게 하는구나 21.05.05 43 2 11쪽
40 기린휘능(起鱗揮能): 비늘을 세워 권능을 휘두르다 21.05.04 50 2 12쪽
39 백호각성(白虎覺醒): 백호의 능력을 각성하니 21.05.03 59 2 11쪽
38 복수불수(覆水不收):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지 못하오 21.05.02 42 2 12쪽
37 생사기로(生死岐路): 생사의 갈림길에 서다 21.05.01 40 2 11쪽
36 작우금적(昨友今敵): 어제의 벗이 오늘의 적이라 21.04.30 42 2 11쪽
35 상호취원(相互取願): 서로 원하는 바를 취하노라 21.04.29 60 2 11쪽
34 이인심란(二人心亂): 두 사람의 마음이 어지럽더라 21.04.28 77 2 11쪽
33 흑침백노(黑侵白怒): 흑이 침범하니 백이 노하다 2 21.04.27 44 2 11쪽
32 흑침백노(黑侵白怒): 흑이 침범하니 백이 노하다 1 21.04.26 99 2 11쪽
31 취명사암(取明捨暗): 어둠을 버리고 빛을 누릴 것이다 21.04.25 67 2 12쪽
30 괴수대전(怪獸大戰): 괴수끼리 크게 한판 붙다 21.04.24 69 2 11쪽
29 사탐유육(蛇耽油肉): 뱀은 기름진 고기를 좋아한다 21.04.23 55 2 13쪽
28 용망동주(龍蟒同舟): 용과 이무기가 한 배를 타다 21.04.22 46 2 12쪽
27 화령계망(花靈啓蟒): 화령이 이무기를 깨우쳐 주는구나 21.04.21 9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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