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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활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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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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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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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쪽

239화

DUMMY

한 참의는 영혼이 빠져나간 얼굴로 되물었다.


“하······ 함께 가자뇨?”


이게 대체 무슨 난리인지 모를 노릇이었다. 미쓰이 사토시 사장은 자신이 사기꾼에 상하이 가정부 소속이라고 밝히고, 이사들은 몰려와 항의하고 주주들은 격노해 날뛰었다. 여기에 갑자기 헌병들이 들이닥쳐서 같이 가자고 하니 한 참의는 그저 얼떨떨할 뿐이다.


“조사할 게 많으니 가자는 얘깁니다, 참의 나리.”


기타무라 소좌가 입술을 할짝인다.


“뭘 조사할 거냐고 묻고 싶으신 모양인데, 이미 책상 위에 잘 올려져 있지 않습니까?”


소좌의 손가락이 툭툭 건드리는 것은, 책상 위에 놓여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감사장이었다. 한 참의는 그걸 보자 정신이 번쩍 들며 가뜩이나 핏기가 가신 얼굴이 더더욱 백지장처럼 창백해진다.


“이······ 이건 아닙니다! 가정부 놈들이 날 모함하는 거예요!”


그러나 소좌는 그저 씨익 웃을 뿐이다. 재밌는 놀잇감을 본 아이처럼.


“그건 조사해 보면 될 일입니다, 나리. 본관도 이런 게 여기 있을 줄은 몰랐으니. 하여튼 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기타무라 소좌의 뒤에 있던 건장한 헌병 두 명이 앞으로 나섰다. 이렇게 된 이상 덜덜 떠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며 일어설 수 밖에 없었다. 이사들과 주주들,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헌병에 질질 끌려가는 것보다는 그래도 자기 두 다리로 가는 게 나았으리라. 이미 그들은 사기도 모자라서 이젠 헌병 조사까지 받느냐고 힐난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런데 이를 제지하는 자가 있다.


“잠깐 기다리시오!”


한 참의는 그가 와카마쓰 경부임을 이제야 알아본다. 경부는 갑작스럽게 헌병소좌와 헌병 병력이 난입해 천장에 실탄을 쏘자 땅바닥에 엎드리는 것과 대응사격 자세를 동시에 잡으려다가 영 엉거주춤한 꼴이 되었었다. 하지만 헌병들이 그가 막 조사하려고 했던 한 참의를 눈 앞에서 데려가려 하자 허리를 쭉 피고 가슴을 세운다.


“뭐요, 당신은?”


소좌가 안경 너머로 짜증난다는 듯 쏘아본다. 와카마쓰 경부는 경찰수첩을 꺼내어 보여준다.


“저는 종로서 고등계의 와카마쓰 코스케 경부입니다.”


“아. 그렇구만. 어쩐지 짭새 냄새가 난다 했더니.”


지극히 무례한 반응이 돌아왔지만, 경부는 일단 개의치 않았다.


“지금 우리 경찰은 한덕만 참의님을 중요참고인으로 조사하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오셔서 이렇게 참고인을 데려가려 하시면 매우 곤란······”


“중요참고인?”


소좌가 눈살을 찌푸린다.


“뭔 사건의 중요참고인이기에 그러쇼?”


기타무라 헤이스케는 와카마쓰 코스케보다 20살 가까이 연하지만, 그 태도는 전혀 연장자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와카마쓰 경부도 그걸 모르진 않아서 속에서 불이 일어남을 느끼지만, 그래도 상대가 헌병소좌인 만큼 계속 경어를 쓴다.


“볼령선인 강도사건과 사기사건입니다. 한 참의님은 이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분이라······”


그러나 소좌는 경부의 말을 다 듣지도 않는다.


“뭔가 했더니. 그게 간첩사건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쇼?”


“가, 간첩이요?”


와카마쓰 경부는 처음 듣는 소리에 당황한다. 소좌가 안경을 손으로 올리며 비웃음을 흘린다


“경찰은 아직 정보가 부족한 모양이군. 여기 이 참의 나리가 연관된 사건은 말이오, 중대 용의자가 지금 로스케 총영사관으로 도주한 정황이 있다 이거요. 대공용의점이 아주 확실한 놈이라고.”


“뭐? 어디로요?”


와카마쓰 경부는 완전히 새로운 정보에 돌아가야할 머리가 삐걱거리며 녹슨 기분이었다. 갑자기 여기서 로스케 놈들이 왜 나온단 말인가? 상하이 가정부가 소련과 협조하고 있었단 말인가? 가정부가 레닌의 20만 루블 사건 때문에 소련과 손을 끊은지 10년이 넘었음은 이 바닥에서는 상식인데?


“할말 더 없으면 됐고. 그쪽 일이나 잘 보쇼.”


소좌는 그러며 갈 길을 가려고 하는데, 경부가 다급하게 또 불러세운다.


“잠깐 기다리십시오!”


“또 뭐요?”


소좌가 짜증이 잔뜩 난 얼굴로 돌아본다. 와카마쓰 경부가 식은땀을 훔치며 묻는다.


“혹시 카라스마 준이치로 백작, 또는 한주리 학생과 관련된 일입니까?”


경부는 소좌가 난데없이 한 참의의 사무실에 헌병 병력을 이끌고 찾아온 이유는 그것밖에 없다고 직감하였다. 저 체포실적에 미친 소좌가 그 질문에 소좌가 눈썹을 일시적으로나마 눈썹을 까닥였다. 와카마쓰 경부는 이게 필경 긍정의 뜻이라고 짐작하였다.


소좌는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고 “알아서 판단해 보쇼. 하지만 이건 군의 일이니까 더 알아보려 하지 말고.”라고 딱딱하게 대답한다.


이때 제3의 목소리가 끼어든다.


“주······. 주리라뇨?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목소리의 주인은 한 참의였다. 그의 얼굴이 더더욱 질려간다. 카라스마 준이치로 백작과 미쓰이 상무가 사기꾼이었다는 걸 안것만 해도 충분히 치명적이었다. 그런데 주리의 이름은 왜 나온단 말인가?


“그건 조사실에 가서 알게 될 거니 벌써부터 알려 하지 마십시다.”


소좌는 딱 자르고는 발걸음을 재촉하려 했다. 그러나 경부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 아무래도 우리가 찾는 용의자와 그쪽에서 찾는 용의자가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럼 잠깐이라도 여기서 우리가 한 참의님의 증언청취를 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니 30분만 청취하고 넘겨드릴······.”


그러나 소좌는 말로 대꾸하지 않았다.


탕!


“아이고야!”


또 다시 들린 총소리에 헌병들을 제외하고는 또 다들 바닥에 엎어질 기세가 되었다. 대답한 쪽은 소좌의 권총 총구였다. 소좌는 심드렁하다는 듯 다시 권총을 뽑더니, 방아쇠를 천장에 대고 한 차례 더 당기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네발 쐈고, 아직 탄창에 4발 더 남았수다. 딱 거기 형사 나리들이 네 명이네.”


소좌가 총구에서 피어오르는 화약연기에 입김을 훅 분다. 코를 찌르는 화약냄새가 입김에 날려 흩어진다.


아무리 헌병이라도 이런 식의 협박은 금지되어 있다고 말하려던 경부였지만, 눈 앞에서 총이 발사되는 걸 똑똑히 본 이상, 그리고 그를 보는 소좌의 눈에 온 몸이 저릴 섬뜩함을 느낀 이상 입술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한 마디라도 더 했다가는, 머리에 총탄이 들이박힐 것 같았다.


“더 할말 더 없으면 가겠수다. 열심히 뺑이나 치쇼..”


소좌는 히죽히죽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사라졌다. 한 참의는 경찰들을 잠깐 보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헌병들과 함께 회사 사무실을 나가버리고 말았다. 실로 지붕 위에 올라간 닭 쫓던 개 신세가 고등계 제1과 형사들의 모습이었다.


“구, 군바리 놈들! 정신 나간 거 아닙니까!”


마쓰우라 순사가 헌병이 다 나가고 1분 후에야 분통을 터트렸다.


“왜 우리 중요참고인을 놈들이 채간단 말입니까! 왜!”


“그렇습니다! 이건 정식으로 항의해야 할 문제입니다!”


오오이시 순사도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방약무인한 놈들은 혼좀 나봐야 합니다!”


이들은 기타무라 순사가 권총을 들이밀 때는 찍 소리도 못하다가 다 가고 나서 성을 내니, 이들의 행태를 보는 직원들 중에는 퍽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었다.


“전 그보다도, 대체 헌병이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기에 한 참의님을 조사하겠다고 데려갔는지가 더 걸립니다.”


노무라 순사부장의 판단이었다.


“이 사건은 우리가 두달 가까이 매달려 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헌병 놈들이 나타나 채갈 수도 있게 된 겁니다. 그럼 우린 뭐가 됩니까? 사이온지 공작의 압박까지 직접 받았던 우리입니다. 그런데 결국 아무것도 못 건진다면 남은게 없습니다!”


“나도 그건 아네.”


와카마쓰 경부의 얼굴이 여지없이 구겨졌다. 사법계에서 3년간 해결하지 못한 사건이었다. 이걸 사상사건의 틀로 접근하여 2달 내에 종결할 수 있을 과정을 밟아왔다. 그것은 정식으로 백작 작위를 승계한 화족 용의자를 수사하는 심대한 부담의 과정이자, 원로대신의 개입으로 완전히 끝장나 버릴 위기를 맞기도 했던 과정이었다. 이제 거의 놈들의 덜미를 잡기 직전의 결정적 단서를 확보하기 직전이었는데, 그걸 헌병이 채가 버렸다.


절대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선 여기 모인 사람들에 대한 사정청취부터 해 보지.”


경부는 소좌가 해대던 바람에 놀라서 생각하지 못하던 걸 지금 떠올렸다. 이곳에 모인 양복장이들의 고성에서, 그는 한 참의가 마침내 사기를 당해 크나큰 손실을 입었음을 추리해 낼 수 있었다. 이곳의 사람들이 한 참의 회사의 중역이자 주주, 또는 직원인 것이기에 이들을 조사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게 분명 많을 터였다.


한 참의에게 항의하던 이사들과 주주들은 이리하여 졸지에 경찰 조사를 받게 되었다. 이들은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면 무엇인가 돌아올 것이라도 있을 거라 예상했는지 모든 질문사항에 순순히 대답했다.


형사들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 여러 개를 알았다. 카라스마 준이치로 백작과 미쓰이 사토시 사장은 확실히 사기꾼이었다. 이들은 만주 흑룡강성에서 석유개발을 한다는 핑계를 대고 한 참의의 회사로부터 거액의 투자금을 받아내었다. 이들은 귀티가 흐르고 교양이 넘치는 태도를 보이며 완벽한 일본말을 구사해 그 누구도 그들이 화족이나 재벌가의 일원이 맞는지 의심하지 않았다.


그 투자금 규모와 투자 의결을 시행한 이사진도 그들에게 완벽히 속았다고 한탄했다. 카라스마 백작과 미쓰이 상무의 태도에 혹하기도 했지만, 사장인 한 참의가 투자안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였기도 하지만, 이사들 또한 백작과 사장이 미국인 교수와 기술자, 그리고 백계 러시아인 귀족까지 데려와서 연 사업설명회에 매료되었던 것이었다. 미국 텍사스 유전 만큼의 막대한 매장량을 갖춘 유전을 미국인 지질학자와 석유시추기술자가 발견했다고 하니 믿을래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백계 러시아인 귀족도 거액의 자금을 투자했고, 광산업계의 큰손인 최필성 사장도 상당한 금액을 투자했다고 하니 투자에 대한 신뢰성도 높다고 판단했던 터였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사기였던 것이다.


경찰수첩에 미국인 하워드 교수와 기술자 모하임 씨, 그리고 러시아 귀족 무라비요프 공작의 이름이 적혔다.


“기가 막히는군.”


경부가 혀를 내둘렀다. 내지나 조선이나 백인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사람은 여럿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미국인 교수와 기술자를 보여주며 정말로 채산성 있는 유전을 개발하겠다고 하니 믿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정말 미국인인지, 그리고 교수와 시추기술자인지 따져 물을 생각을 한 사람도 없었다. 백인에 대한 동경이 어디든 넘쳐난다. 이들에게 백인이 하는 말은 무엇이든 신뢰할 수 있는 말로 들리던 것도 당연하였다. 이렇게 치밀한 사기수법은 흔치 않았다.


정리해보면, 이들은 가정부의 자금확보를 위해 고의적으로 한 참의에게 접근했다. 묘엔이라는 정체불명의 승려를 통해서 사전에 신뢰를 확보한 후. 그리고 흑룡강성에서 석유개발을 할 거라는 주장으로 한 참의를 속여넘겼다. 미국인들이 그들과 함께 한다고 보여주어서 더더욱 믿게 만들고.


여기에 문제의 여학생 한주리가 끼어든다. 오재두 경부보가 오늘 다급하게 잡아 처리하려고 예상되는 이 여학생은 부잣집 자제가 사상범이 되는 전형적인 단계를 밟았다는 정황이 있다. 한주리 학생이 카라스마 백작과 미쓰이 사장과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진 그걸 확인해주는 증거는 아직 없다.


여기에 더불어 소좌가 말해준 대로라면, 이 카라스마 준이치로 백작은 소련 총영사관으로 도주했다. 그러나 이게 정말인지는 알 수 없다. 아직은 정황증거밖에 그것을 입증할 수단이 없다. 분명히 그들에게는 밀정의 유력한 증언이 있었다. 가정부의 첩자들인 연쇄강도들이 가정부에서 파견된 밀사와 시흥군 영등포의 한 폐공장에서 회합을 가진다고.


카라스마 준이치로 백작이 정말 소련 총영사관에 있는 건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헌병이 용의자들을 낚아 채가기 전에 먼저 다 체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이 기회를 잘 살린다면, 오늘 헌병에게 당한 굴욕을 바로 되값아 줄 수 있는 것이다.


와카마쓰 경부는 서로 돌아와 고등계장에게 이 사안을 보고했다. 고등계장은 헌병에게 한 참의를 빼앗겼다는 말을 듣자 성을 냈다.


“군바리 놈들이 어찌 이리 오만방자할 수 있나!”


“원래 그런 놈들이 아닙니까? 이놈들이 우리 실적 뺏어서 자기네 실적으로 만든 적이 한두번입니까?”


실은 와카마쓰 경부 본인 또한 헌병의 방첩사건 용의자를 단순 사상범이라고 우기고 속여서 그들의 실적으로 채운 적이 있으나, 이곳에서 언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군바리 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계획이 있습니다!”


와카마쓰 경부는 그러며 밀정 주 선생이 가져다 준 정보에 의거해 오전에 수립한 체포계획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고등계장은 계획안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고개를 살짝 갸웃거린다.


“확실히 대단한 정보일세. 이대로 놈들을 체포한다면 3년 넘게 끌어온 이 사건을 종결할 수 있을 걸세. 하지만,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 이 주이한 선생이란 밀정이 제보한 정보가 확실한 건가?”


“일전에 헛다리를 집었던 자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증언의 자세함을 미루어 보면 충분히 신뢰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자는 중요 용의자들과 접촉한 이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치안유지법과 보안법 위반 혐의로 감옥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요. 확실한 정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긴 한데. 밀정 한명의 정보에 의존한다는 것이, 조금 느낌이 이상해서 말일세.”


고등계장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금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것 외에 딱히 방법은 없으니······..”하며 계획안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와카마쓰 경부는 이를 살짝 갈았다. 이 망할 군바리 놈들에게 자기 실적을 내줄 생각은 결코 없었다. 내일 오전, 이 망할 강도단은 자신의 손에 소탕되고, 자신은 경시로 진급한다. 이후 일은 적절히 부하 녀석들에게 맡겨 놓고 정년퇴임 때까지 유유자적하게 보낸다. 내 인생계획을 망치려 한 군바리 놈들, 두고 봐라!


물론 경부는 그의 인생계획이 이미 망쳐지고 있었음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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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220화 +12 20.11.01 261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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