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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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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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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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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232화

DUMMY

막 출근해 집무실 의자에 앉은 나카하라 가즈오 경무국장의 머릿속은 조카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조카와 수 시간동안 대화를 나눴다. 백부와 조카 사이에 일방적인 덕담이나 칭찬, 잔소리나 훈계가 아닌, 서로의 견해와 시야가 오고가는 대화는 정말로 처음이었다. 아마도 나카하라 국장의 머리가 너무나도 혼란스러워진 탓에 그가 손윗사람으로서 가진 권위를 내세울 정신이 없었던 것을 원인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운 조카가 처음부터 자신을 속여오고 불령성인들에게 정보를 넘긴 원인을 알고자 하는 욕구가 개입하고 있었다.


왜 히로요시가 동생 지로의 길을 걷고 있단 말인가? 왜 동생처럼 반역무도한 짓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히로요시는 그 이유를 막힘없이 전개하였다.


“지금의 일본은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폭주기관차입니다. 이 녹취에서 백부님이 들었듯이, 군부의 많은 인사들은 거침이 없습니다. 자신들이 하는 짓이 뭔지도 몰라요. 오직 그들의 위세를 세우고, 그들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도발할 생각 밖에는 없습니다. 이것은 비단 군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나라가 동학란을 명분으로 조선땅에 군대를 상륙시키고 청나라와 전쟁을 벌이고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괴, 종국에는 조선을 집어삼킬 때 부터 예정되어 있는 거였어요. 제국의 안전을 위해, 국익을 위한다며 다른 나라를 희생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던 사고가 요시다 쇼인과 후쿠자와 유키치, 오쿠보 도시미치와 사이고 다카모리, 이토 히로부미와 가쓰라 타로를 비롯해 메이지를 일군 모든 이들에게 내재되어 있었어요. 자신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것을 거리낌 없이 하는 행위는 백부님이 가장 경멸하시는 행위로 압니다. 바로 강도, 범법자의 행위죠!”


히로요시는 백부의 면전에서 일본이야말로 범법자라고 단호히 선언했다. 안경 뒤의 그의 총명한 눈은 흔들림 하나 없었다. 그러나 나카하라 국장도 그 비판을 수긍하려 들지 않는다.


“범법행위라고 하였느냐? 그게 어찌 범법행위더냐? 당시의 정부는 만국공법, 그러니까 국제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조선과 외교조약을 맺어 왔다! 조선과 맺은 조약들은 모두 두분 군주께서 동의하신 거였어! 세계 국가들은 그러한 조약이 유효함을 알기에, 제국의 조선 통치에 대해 시비를 걸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약화가 이득이 되는 지나와 세계적화를 노리며 우리의 혼란을 꾀하는 소련을 제외하고! 두분 군주의 조약이 여전히 유효한데, 어찌 그걸 범법행위라 하느냐!”


“예. 참 합법적인 조약이었죠.”


히로요시의 말이 더욱 신랄해진다.


“관리의 대부분을 제국의 말을 잘 듣는 자들로 교체하게 강요하고, 궁성 안에 병력을 진주시키고 대포로 궁궐을 겨누고, 언제든지 죽여버릴 수 있다는 신호를 황제에게 주며 합법적인 조약을 체결했죠. 참 합법적입니다. 그렇데 그렇게 합법적이라면, 만국평화회의에 조선 특사단 참석은 왜 막았는지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가네요.”


“쓸데없는 것만 아는구나! 놈들이 그렇게 가르쳐 주었더냐? 불온서적들에 그렇게 적혀 있다더냐!”


“조선 사람들은 다 아는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모르지만요. 그리고 그 이전에, 두 나라 군주가 합의했다는 것 만으로 수천만 명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 아닙니까?”


“됐다! 여기서는 너와 말이 안 통하는구나!”


나카하라 국장은 양국 간의 조약이, 조선 외교권 박탈과 통감부 설치, 조선 군대의 해산, 그리고 조선의 합병이 어떤 경위로 합의에 이르게 되었는지에는 관심을 절대 보이고 싶지 않았다. 맺어진 조약을 지키느냐가 어기느냐가 그에게는 더 큰 문제였다. 이는 그의 성격 까닭이었지만, 다른 문제도 있었다. 조약을 맺게 된 과정을 알게 되면, 마음이 흔들릴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불현듯 끼쳤기 때문이었다.


“이 범법행위를 당장 그만 두거라! 넌 국가안보와 이 나라 치안유지에 심각한 위해를 끼치고 있어! 네 행동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떨지 모르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볼지 모르느냐?”


국장의 다그침에도 히로요시는 흔들림이 없다.


“백부님이 많은 이들이 평안과 안정을 위해 치안유지에 힘을 써온 것은 잘 압니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부당한 압력과 회유도 거부하신 것은 존경스럽고요. 하지만 백부님이 지키고자 하는 이 나라의 법질서 속에는, 오히려 법망 속에서 옥죄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들임에도, 오히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법질서의 유지로 보호받는 자들에게 합법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또는 범죄에 내몰리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지경에 몰리게 되지요. 백부님이 지키시는 법질서가 그런 사람들을 보호해 줄 수 있습니까? 그들의 삶을 보장해 줄 수 있습니까?”


“그건 범죄자의 자기변호 논리에 불과하다! 난 형사 생활하며 그런 자들을 숱하게 봐 왔어! 넌 불령선인 사상범들이 그런 강력범이나 잡범들과는 다르고 무슨 숭고한 사명감이라도 가진 것으로 아는데, 범법행위자는 본질적으로 똑같다! 오히려 사상범들이 더 위험한 놈들이야! 그들은 범법행위를 정교하게 정당화시키고 사람들을 선동해 질서를 뒤엎으려 하지! 이 땅에 혼돈과 파괴, 무질서가 횡횡하게 하여 수도 없는 사람들의 생활을 불안의 극치로 몰아넣는 것들이야! 불령선인들은 조선인이 근대국가를 건설하고 유지할 만큼 개화되지 않았음에도 조선인의 독립국가를 만들자고 선동하고 있어! 그들의 권력욕을 충족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세상을 네가 원했더냐? 범죄자들이 살맛 나게 날뛰고, 평범한 이들이 괴로워하는 세상을 원한 것이더냐?”


그 순간, 히로요시는 국장의 말문을 일시적으로 막히게 할 한 마디를 말했다.


“도쿠가와 막부의 사람들도 유신지사들을 그렇게 봤을 겁니다.”


그 말에 나카하라 국장은 선뜻 반박하고 나서지 못했다. 그는 유신 이후에 출생한 사람이었다. 메이지 정부의 교육체계와 선전 아래 자란 사람이었다. 메이지 유신이 도쿠가와 막부로부터 권력을 폐하께 돌려드리며 이 나라의 개화와 발전, 근대화를 가져왔다고 배운 사람이었다. 가쓰라 코고로, 사카모토 료마, 오쿠보 도시미치 같은 유신지사들은 그들의 세대에서 본받고 존경받을 위인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막으려 한 도쿠가와 막부와 그들에 충성하는 신선조는 일본의 발전을 가로막으려 했던 자들이라고 학습해 왔다. 그런데 히로요시는 이 두 세력에 대한 인식을 지적하는 것이다.


“저는 유신지사란 자들을 기본적으로 싫어합니다. 남의 나라를 빼앗는 데 거리낌이 없던 자들이니까요. 하지만 그들의 공도 적지 않다고 생각하며, 유신의 당위성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과 조선처럼 비교적 공평한 기회 아래 치르는 시험으로 관리를 선발하지 않고, 무사의 아들은 평생 무사이며 농민의 아들은 평생 농민이고 상인의 아들은 평생 상인이며, 농민이 어떤 작물을 재배할지도 다이묘에게 허락받아야 하는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느낀 사람들이니까요. 하지만 도쿠가와 막부의 이이 나오스케와 신선조의 수장 곤도 이사미 같은 자는 백부님께서도 아시다피시, 그들을 질서와 안정을 뒤흔들고 혼란을 일으키려는 자들로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요시다 쇼인을 죽이고 존황양이를 입에 담는 자들을 죽였죠. 하지만 그들이 성공했습니까?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후손이 지금도 쇼군으로서 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습니까?”



나카하라 국장은 잠시 입을 열지 못하다가, 탄식하듯 내뱉었다.


“넌 자신을 유신지사로 보는 거냐?”


“아니요.”


히로요시가 백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한다.


“백부님이 이이 나오스케와 같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이 나오스케. 내가 이이 나오스케라? 막부의 다이로(大老)로써 존황양이파를 수도 없이 탄압하다 사쿠라다몬 앞에서 존황파에게 참살당한 이이 나오스케라? 내가 그렇게 무자비하단 말인가? 내가 그렇게 무정한 사람이란 말인가?


혼란에 빠진 국장의 얼굴을 본 히로요시의 굳은 표정이 누그러진다.


“백부님이 모든 평범한 이들의 안정된 삶을 위해 싸워왔음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하지만 법질서의 무자비한 집행만이 그 길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가 붕괴한다면 그건 프랑스나 러시아에서처럼 아래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위에서 시작되지요. 더 많은 힘을 가진 자들, 그러고도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결정은 그러지 못한 자들의 결정보다 더 강한 영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수의 결정이 다수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태를 막아야 합니다. 저는 조선의 독립이 그것을 위한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다시 자유를 되찾아 줌으로서, 우리는 더 끔찍한 길로 가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히로요시는 뒤이어 양 손을 내밀었다.


“만약 백부님께서 저를 여전히 심판받아야 한다는 범죄자로 생각하신다면, 이 자리에서 체포하셔도 좋습니다.”


그 말에 국장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괘씸했다. 참으로 괘씸했다. 동생처럼 사상범의 길을 선택한 조카가 너무나도 괘씸했다. 엄벌에 처하고 싶었다. 그의 대원칙, 폐하의 신민인 이상 모든 법집행은 동등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기묘한 감정이 흘러왔다. 대견했다. 조카가 대견스러웠다. 믿을 수 없는 감정이었지만 분명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이제까지 그저 착하고 말 잘듣는 어린 조카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조카가 이제 자신과 대등한 위치에 서서 눈을 똑바로 뜨고 자신을 설득하려 들고 있었다. 처음 거둘 때 13살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히로요시는 이제 그조차 압도감을 느낄 정도의 사나이로 성장해 있었다.


이 두 가지 감정이 마음 곳곳에서 충돌하자, 국장은 결국 선택을 내리지 못하고 가래 끓는 목소리로 절규하듯 말했다.


“어째서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느냐!”


국장은 그 말을 끝으로 대화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카하라 가즈오는 늦은 시간에 집무실로 복귀했다. 무라타 경부보를 비롯한 부하들이 계속 찾아다녔는데 어디 계셨냐고 물어볼 때, 국장은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서 좀 쉬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부하들은 일중독 국장님이 잠깐 한계가 온 모양이라고 납득하고 더 묻지 않았다.


나카하라 국장은 잠을 청하면서도, 출근해 집무실에 앉은 와중에서도 머릿속에서 충돌하는 감정과 생각 때문에 번민하였다. 평생 살며 이렇게 번민한 때는 동생 내외의 체포 소식을 들었을 때 뿐이었다. 그때의 번민은 간단히 해결되었다. 동생이 불온사상에 빠져들어 헛짓거리를 한 것이 나쁜 거라고. 하지만 지금의 번민은 간단히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 보안과장이 노크하고 들어온다.


“실례하겠습니다. 어제 지시하셨던 사항, 완료되어서 전달해 드리려 합니다.”


어제 내가 지시한 것? 내가 뭘 지시했지? 엉망진창인 두뇌에서 기억을 끄집어내 보았다. 수 초 정도 생각하다가 갑자기 기억이 났다. 그때 국장은 보안과장에게 지시했다. 총독 집무실 전화기에 연결된 전화선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라고. 총독이 대체 관동군사령관과 나누는 대화내역을 알아야 사건의 진상을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 그래. 수고하셨소.”


서류철을 공손히 올리는 보안과장의 표정은 상당히 불안하단 느낌이었다. 총독의 전화를 도청했다는 두려움 때문이겠지만, 다른 이유도 있어 보였다.


“저, 혹시 말입니다.”


“뭐요?”


보안과장은 잠시 망설이더니,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이걸 보시고 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음?”


보안과장은 그 말을 남기고 경례를 붙이고는 집무실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경무국장은 부하의 그 태도에 불안감을 느꼈다. 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그런 말을 한단 말인가?


감청반원들이 타자기 여러 대로 받아적어 재구성한 녹취록은 이리하였다.


화가 잔뜩 난 목소리의 우가키 총독이 먼저 말했다.


“사령관!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요! 왜 당신네들이 해군 예산을 빼돌리는 공작 같은걸 하고 있는 거요? 해군대신이 화가 단단히 났소! 대체 이 사태를 어떻게 책임질 거요?”


날이 잔뜩 선 호통에, 혼조 관동군사령관은 대단히 쩔쩔매는 목소리였지만, 변명을 멈추지 않았다.


“각하. 이게 다 우리 쪽 정보 업무에 필수적인 공작을 위해서였습니다. 소련의 위협수준을 사전에 낮추고 지나의 운신의 폭을 넓히고, 또 감히 폐하를 시해하려 든 불령선인 무리들을 제압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공작을 하려면 관동군 예산으로 하던가, 아니면 육군성에서 추가예산 편성을 청원하던가 해야 하는게 정상이잖소! 왜 해군 예산을 빼돌려서 이 난리를 만드오! 그것도 내 관할구역을 통해 그 돈을 이송시키다니!”


나카하라 국장도 같은 생각이 되었다. 대체 관동군은 뭐가 급해서 다음 분기를 기다리지 않고 해군 건함예산 횡령이라는 무리수까지 동원하며 자금을 마련해야 했던 건가?


거듭된 호통에 관동군사령관은 “면목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왜 이랬어야 했는지 계속 필요성을 납득시키려 하였다.


“하지만 육군성은 예산편성이 어렵다면서 다음 회기연도 예산에 편성하자고만 했습니다. 우리는 이번 분기 내에서 어떻게든 그 자금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빼돌렸다는 예산은 해군 건함계획에 심각한 지장을 줄 수준도 아닙니다.”


“해군성이 그렇게 생각해줄 것 같소? 예산액이 어쨌던 그 돈이 어디론가 빠져나가는데 그 종착점이 관동군이오! 관동군 예산이 어디로 빠져나가는데 들어가는 곳이 해군군령부의 어느 특수한 부서라고 칩시다! 사령관 같으면 열 받겠소, 안 받겠소?”


“하지만······. 반드시 이번 분기 내에 그 돈을 전달해야 했습니다!”


돈을 전달한다? 이 대목에서 나카하라 국장이 멈칫했다. 분명 횡령된 돈은 관동군으로 전해지게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관동군이 그 돈을 또 어디로 전달한다는 것인가? 육군성이나 참모본부? 그럴 리는 없다. 육군성에서 예산을 내주지 않는단 이유로 이런 일을 터트렸으니.그럼 대체 어디로?


국장은 다음 대목에서, 돈의 최종 목적지를 확인하고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그 지나 조직들 말이오? 아편밀매 조직들?”


왜 여기서 지나의 아편밀매하는 범죄조직들이 언급된단 말인가? 왜 관동군이 그런 더러운 암흑가 조직들에 돈을 대고 있단 말인가? 그러나 국장이 놀라는 것도 잠깐이었다. 그의 눈은 또 혼조 사령관이 말한 대목에 붙박혔다.


“그렇습니다. 지난번에 직접 뵙고 말씀드렸던 그 조직들 말입니다. 그쪽에서 이번 분기 내에 돈이 전달되지 않는다면 계약은 없던 것으로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이러면 각하께서 받으실 것도 못받으실 수 있던 거 말입니다.”


받을 것도 못받아? 총독이 뭘 받는다고? 이건 대체 무슨 소리인가?


“기가 막히는군! 한낱 지나 범죄단체들에 어떻게 폐하의 황군이 휘둘릴 수 있단 말이오?”


“그게······ 그중 가장 큰 조직이 그러고 나서자 다른 조직들도 그러겠다고 하는 통에······. 그쪽에서 빨리 계약금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고 나서는지라······.”



“그런데 그 돈은 불령선인들에게 넘어갔지! 그럼 다른 조직들로 바꾸면 될 게 아니었소?”


“대안을 찾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데다가 시기상 공작을 미뤘다가는 기회를 다시 잡기 어렵다는게 특무기관의 평가였습니다. 그래서 빨리 돈을 전달하지 않으면 곤란한 것입니다. 그리고 각하께서도 잘못하다가는 약속하신 금액을 못받게 되실 겁니다.”


충격적이게도 우가키 총독은 이 대목에서 더 역정을 내지 않았다. “끄응······”하고 불편한 신음을 내며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 틈을 타 혼조 사령관이 계속 말한다.


“자금이 도난당하고 해군성에서 이 일을 알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만, 어떻게든 그 금액을 매꿀 자금을 마련해 보겠습니다. 다음 분기 예산에서 빼거나, 아니면 저번에 말씀드렸던 대로 나진 부동산 사둔거 오르면 그 차익으로 매꾸던가 하겠습니다. 각하께서 해군과 중재를 좀 해주십시오. 이거 밖으로 흘러나가면 제국육군의 명예가 지극히 실추되고 적들은 배일 선전거리가 생겼다고 좋아할 겁니다.”


“이 문제를 조용히 끝내야 한다는 건 본관도 동의하오.”


총독의 목소리에 어느 새인가 분노가 잦아들었다.


“그리고 나도 그 돈이 반드시 필요한 건 맞고. 제길, 대장성에서 예산을 적절히 편성했으면 그런 놈들과 손잡지 않아도 되었을 것인데. 그리고 이시와라 중좌의 말이 상당히 솔깃해서 그랬건만···.... 지금으로서는 하는 수 없군. 이쪽 헌병대를 통해 반드시 그 돈을 회수하도록 하겠소. 불령선인 놈들은 이런 수작을 부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오.”


“예, 각하. 부디 부탁드리겠습니다. 반드시 회수해야 합니다!”


“알겠소. 놈들이 뛰어봤자 벼룩이오. 이 좁은 반도에서는 도망갈 곳도 여의치 않소. 헌병과 경찰을 있는 데로 풀어서 반도 전체를 다 뒤지겠소. 여튼 이 문제 때문에 요나이 제독이 경성으로 오겠다고 하오. 해군성에서 추가로 조사위원을 선임해서 이쪽에 보낼 수도 있고. 나도 중재에 노력을 기하겠지만, 해군 쪽에서는 지금 화가 잔뜩 나 있소. 해군을 달래려면 사령관이 직접 내려오는 게 좋다고 생각하오.”


이 말에 혼조 사령관의 목소리가 난처해진다.


“저······. 그것이······ 본관은 내일부터 국경지대 시찰 일정이 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출석하긴 어렵고, 참모장을 대리로 보낼······.”


“뭐? 하시모토 도라노스케(橋本虎之助) 소장을 보낸단 거요? 그 친구는 부임한지 1달, 아니 3주도 안되었잖소! 사태 파악을 잘 하고 있긴 하오? 아니, 그보다도, 국경시찰도 물론 중한 일이긴 한데 이것만큼 중한 일이오? 그건 참모장에게 맞기면 되잖소?”


“아······. 그게······. 본관의 일정조정도 어려운지라······.”


“그냥 사내답게 솔직하게 말하시오! 해군 쪽 사람들 얼굴 보기 불편한 거잖소!”


우가키 총독이 참지 못하고 다시 고함을 지르자, 혼조 사령관은 다시 “죄송합니다. 면목없습니다.”를 반복한다.


“내 답답해서 원!”이라고 쏘아붙인 총독은,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쉰다.


“좋소. 사령관이 오든 하시모토 참모장이 오든 상관 않겠소. 이 일을 수습하기 위한 성의만 좀 보이시오! 이만 끊겠소!”


통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국장은 이 대화 전문을 보고 몸이 무섭도록 떨려옴을 느꼈다. 명백히 부패가 암시되고 있었다. 검은 돈의 뒷거래가 암시되고 있었다. 지난번 총독이 주최한 만주사변 참전 장병들을 위문하기 위한 연회에서 이들이 만나 무언가를 거래했다. 결코 깨끗하지 않은 것을. 최고위 공직자로서 해서도 안되고, 권유를 받는 것 조차 안되는 그런 거래가 일어났다. 총독과 관동군사령관은 아편밀매 조직들의 더러운 사업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지엄하신 폐하의 위임을 받아 조선을 통치하는 조선총독이 이런 일에 연루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국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당장 총독에게 따져야 한다. 이게 사실이냐고. 왜 이런 검은 거래에 가담하고 있냐고 말이다.


그때 국장은 히로요시의 말을 떠올렸다. 이 나라가 붕괴된다면 아래에서부터가 아니라 위에서부터일 거라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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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Lv.64 ja*****
    작성일
    20.11.29 00:26
    No. 1

    덴노는 힘이 없고 방관 하면서 군부와 번벌과 재벌세력은 나대고 민중은 지배계층을 따르고 반성은 하지 않으니 제국의 몰락은 시간문제...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8 PKKA
    작성일
    20.11.29 06:44
    No. 2

    결국 군부가 모든걸 틀어쥐고 고노에 같은 민간정치인이 같이 폭주하며 멸망의 길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7 나래로
    작성일
    20.11.29 01:42
    No. 3

    국장은 좋은 사람이지만 자신이 태어나서 학습하고 자라 온 사회 질서를 일거에 부정하기엔 무리가 있었겠죠. 이제 그 명분이 생겼군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8 PKKA
    작성일
    20.11.29 06:45
    No. 4

    그렇습니다. 국장이 어찌 행동할지는 다음에 계속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7 PnPd
    작성일
    20.11.29 16:53
    No. 5

    결국 서구근대의 껍데기만 쓰고 내용물을 취하지 못한게 우리 대일본제국 아니겄습니까 ㅉㅉ....위나 아래나 마찬가지인 것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8 PKKA
    작성일
    20.11.29 16:56
    No. 6

    기독교 인구만 봐도;;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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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230화 +4 20.11.24 261 10 15쪽
229 229화 +8 20.11.22 265 9 15쪽
228 228화 +8 20.11.21 261 11 17쪽
227 227화 +6 20.11.20 261 9 17쪽
226 226화 +6 20.11.18 259 10 20쪽
225 225화 +12 20.11.15 266 11 19쪽
224 224화 +10 20.11.14 260 9 17쪽
223 223화 +4 20.11.12 263 10 13쪽
222 222화 +8 20.11.08 262 11 19쪽
221 221화 +8 20.11.04 259 10 14쪽
220 220화 +12 20.11.01 260 10 15쪽
219 219화 +8 20.10.30 262 9 16쪽
218 218화 +4 20.10.27 263 10 14쪽
217 217화 +12 20.10.25 260 10 15쪽
216 216화 +8 20.10.24 261 13 19쪽
215 215화 +8 20.10.21 261 1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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