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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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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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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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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화

DUMMY

장교들은 자신들이 겪은 일을 털어놓았다. 자금 운송 중 불령선인 강도들의 속임수에 걸려 현금을 다 털렸다고. 그리고 헌병사령부 감찰실 소속 헌병대좌라 자처한 그자는 현상수배서 속 천남건과 인상착의과 일치했다고.


물론 핵심적인 것은 빼놓았다. 그들이 해군 건함예산에서 빼돌린 자금을 비밀리에 운송하는 임무는, 육군성에서 할당받은 예산을 운송하는 임무로 뒤바뀌었다.


“예산액을 은행이 아니라 현금으로 보냈다고요?”


오재두 경부보가 증언에서 이상함을 눈치채고 눈썹을 까닥인다. 후지무라 중위는 당황하지 않고 바로 둘러댄다.


“실은 할당된 예산 처리를 은행 쪽에서 잘못 해서 난리가 난 이후로, 예산을 보험 차원에서 현금으로 수송하는 일이 있습니다.”


와카마쓰 경부가 “육군성은 그런 식으로 일하나?”하고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더 추궁하지는 않았다.


여하튼 고등계 제1과 형사들은 어쩐지 이놈들이 지형직 목사의 교회를 털고 목사를 납치해 굴욕을 준 이후 행적을 추적하기 어렵다 싶더니, 실은 관동군의 군자금을 노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관동군 장교들의 제보는 천남건과 그의 일당들의 행적을 재구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점에서 손해 볼 것은 아니었으나, 그다지 이익이 될 것도 아니었다. 계속해서 허위나 오인 신고만 들어오던 마당에 드디어 신뢰할 수 있는 신고를 받게 된 것에 들떴던 것에 비하면 오히려 실망스럽기까지 했었다.


“그러니까 여러분 말씀, 더 정확히는 후지무라 중위님의 제보에 의하면 놈들이 파주 방면에서 트럭에 타고 도주했다고 하셨습니다. 맞지요?”


“그렇습니다.”


“이후 계속 열차에 계셔서 정확히 어디로 도주했는지는 모른다고 하셨고.”


타자기로 진술서를 적던 와중, 쿠스노기 중위가 기다리다 못해 걸걸한 목소리를 낸다.


“그러니까, 우리도 놈들을 잡는데 협조하고 싶습니다. 우리 명예가 땅에 떨어질 지경이 되었다고요. 여기 이 토비는 실로 셜록 홈즈같은 친구이니, 이 친구에게 이제까지의 수사 정보를 다 넘겨 주시면 그 천남건이라는 놈을 잡아다 여러분에게 대령을······.”


“자. 자. 중위님. 상황은 십분 이해하겠고요.”


와카마쓰 경부가 말을 끊는다.


“하지만 그 정도 제보만 하시고 수사정보를 넘겨달라는 것은, 적잖이 곤란한 일입니다.”


“뭐, 뭐라고요?”


쿠스노기 중위가 성미 급하게도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일단, 여러분은 수사권이 있는 헌병대 분들도 아니고, 아니면 헌병 측에서 발부한 수사협조 공문을 가지고 오신 것도 아니잖습니까? 헌병에서 관련 공문을 받은 적도 없고요. 소설 속 탐정처럼 직접 천남건이를 찾아다니는 것을 말릴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권한 없으신 분들께 수사정보를 넘겨달라는 건 곤란합니다.”


와카마쓰의 말은 후지무라 중위와 우에스기 중위가 보기에 반박의 여지가 딱히 없어 보였으나, 성미 급한 쿠스노기 중위에게는 다르게 다가온다.


“지금 이걸로 우리 목숨줄이 간당간당한단 말입니다! 그거 회수 못하면 우리 다 깜방 가게 될지도 몰라요! 우리가 놈들 잡아다 넘겨준다는데 왜 이리 비협조적으로 나옵니까! 공적을 우리가 가로채는게 두려운 거요?”


그 발언에 경부의 얼굴에 잠깐이나마 무안함이 스쳐지나갔다. 설령 헌병에서 수사협조 공문이 날아오고 헌병 수사관이 오더라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수사정보를 넘겨주지 않으려 하는 마음을 먹은 건 맞았기 때문이었다. 고등계는 여러 차례 헌병 특무대에 수사하던 사상범을 방첩사건 연루자라며 빼앗긴 적이 있었고, 반대로 그런 적도 있었다. 그만큼 헌병이 아니라도 군인에게 웬만큼 값진 거래조건이 아니면 수사정보를 넘겨줄 생각이 없는 것이었다.


“모토스케. 진정 좀 해라. 우리가 경찰에 별반 도움이 안되는 정보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잖냐.”


우에스기 중위가 친구를 타이른다.


이때 오오이시 순사가 한 마디 한다.


“솔직히 딴 곳도 아닌 관동군 쪽에서 수사정보를 넘겨달라는 것도 우리 입장에선 좀 그렇습니다. 지금 관동군이 우리 관내에서 영 부적절한 일을 하고 있는 마당에······.”


“예? 우리가 뭘요?”


우에스기 중위가 친구를 말리다 말고 반문한다. 관동군이 조선 관내에서 부적절한 일을 한다고?


“아, 모르셨습니까?”


노무라 순사부장이 입을 연다.


“우리 관할은 아니긴 한데, 윗선에서는 그쪽이 조선은 물론이고 내지까지 밀수조직들이 이끄는 아편거래 중개에 연관되어 있다는 수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세 장교는 얼어붙었다. 우리가 뭘 한다고? 아편거래? 이게 무슨 말인가?


“우린 처음 듣는 말씀입니다.”


장교들의 표정이 무섭도록 굳어졌다. 그들이 몸담고 있는 관동군이, 제국육군 최정예이자 소련 붉은 군대를 최전방에서 상대하는 관동군이 뭘 거래한다고? 아편을? 마약을? 그들도 군대조직이 항상 규칙대로만, 명예롭게만 돌아가는 곳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암암리에 선물 명목으로 오고가는 고가의 물품과, 출신지역에 따른 인맥의 형성, 그리고 사관학교 출신이냐 갑종장교 출신이냐에 따라 갈리는 암묵적인 진급 상한선에 대해서도 보고 들은 바가 있었다. 그들이 운송하는 돈도 끈을 맺어 둔 중국 폭력조직들에게 들어갈 돈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관동군이 아편거래 밀수조직들과 연관되었다는 것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건 우리 쪽에서는 봉천 특무기관에서 주관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고. 다른 부서에서는 모를 수도 있겠네요.”



와카마쓰 경부의 입에서 봉천 특무기관이 언급된 순간, 후지무라 중위의 눈이 매섭도록 날카로워졌다. 이시와라 간지 중좌는 그날 그 조직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은 것인지 물어보는 질문에, 그것은 알바 아니라고 대답을 회피했었다. 그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특무기관에서 아편거래 중개를 주관한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기 위해?


“여튼 그런 문제도 있고 하니, 여러분의 제보 만으로 우리 내부 수사정보를 함부로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정 알고 싶으시면 헌병대의 수사권 위임을 받았다는 공문이라도 가져 오시길 바랍니다.”


장교들이 순간 멍해진 틈을 타, 와카마쓰 경부가 간접적으로 이제 나가 달라는 신호를 보내었다. 후지무라 중위는 오 경부보를 쳐다보았으나, 그는 퍽 사무적인 얼굴을 한 채 “규정상 어쩔 수 없습니다.”라며 고개를 돌린다. 후지무라 중위는 “실례 많았습니다.” 한 마디를 하더니 친구들을 이끌고 사무실을 나갔다.


“아편 거래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대체!”


쿠스노기 중위는 경찰서를 나오자마자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믿을 수 없었다. 특무기관이 범죄조직들을 이용하는 건 직무상 어쩔 수 없고 또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납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넘어서서 폭력조직들의 아편밀수에 관여한다는 것, 그리고 특무기관이 이런 일을 진행하며 관동군사령부의 허가 아래 움직인다는 것을 생각하면 머리가 쪼개질 정도로 아파왔다. 명예로운 황군이 아편거래라니!


“아직 다 밝혀진 건 아니잖아.”


우에스기 중위가 다시 친구를 진정시킨다.


“경찰에서 그렇게 의심한다는 거고, 특무기관에서 그런 것을 했다고 확정되지는 않았어.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경찰의 수사정보를 얻어오는 거잖아. 그런 데 신경쓰다가는 시간만 지나.”


이에 후지무라 중위가 친구를 거든다.


“사부로 말이 맞다. 경찰과 정보거래를 하려면, 부서 전체가 아니라 한 명을 노릴 수 밖에.”


중위는 그러며 경찰서 앞 공중전화 박스로 가서 전화를 건다. 경찰서 대기실에서 보고 기억해 둔 고등계 제1과 사무실의 번호였다. 전화 연결을 부탁한 사람은 오재두 경부보였다.


후지무라 중위의 목소리를 단번에 알아챈 오 경부보는, 메마른 목소리로 응대한다.


-뭡니까? 수사정보 얘기는 방금 끝나지 않았습니까?


“경부보님께만 말씀드려야 할 정보가 있습니다.”


-저한테요?


후지무라 중위는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갔다. 앞서 사무실에서는 의도적으로 밝히지 않았던, 그리고 관동군의 아편거래 정보에 놀라 밝힐 생각도 못했던 제일 핵심적인 정보를 입에 담는다.


“우리는 한주리 양이 이 사건에 연관되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을 한 직후, 수화기 속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1분 정도 흘렀을까? 오 경부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목소리에서 이례적인 당혹감이 흘러 나왔다.


-누가 연관되었다고요?


“한주리 양 말입니다. 경부보님 사촌여동생. 그리고 우리 친구의 약혼녀.”


다시 침묵이 흘렀다. 이번에는 30초 정도였다. 그의 한층 격앙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울린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왜 걔 이름이 중위님 입에서 나옵니까?


“아, 전화로 다 하기에는 좀 곤란하고요. 일단 따로 만나서 얘기하시죠. 어디가 좋겠습니까?”


-서 옥상에서 얘기합시다. 내가 안내할 테니 지금 당장 서로 올 수 있습니까?


“아. 예. 그러죠.”


후지무라 중위는 그러고 전화를 끊었다. 눈이 여러 개 있는 곳에서 오재두 경부보의 사촌여동생이 불령선인 사건과 연루되었다고 말하여 그를 지극히 곤란한 지경에 몰아넣는 것 보다는, 따로 혼자만 알도록 말하는 것이 더 확실히 정보를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후지무라 중위의 판단이었다. 눈과 귀가 여러 개가 있는 곳에서는 핵심적인 정보 교환이 불가능할 터이니.


약속대로 서 내로 들어가자, 오재두 경부보가 맞이해 주었다. 그의 얼굴은 방금 전의 사무적인 태도는 온데간데 없었다. 몸의 핏기라고는 전부 빠져나간 듯한 비정상적으로 창백한 얼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동공. 후지무라 중위는 곧바로 한주리 양의 이름을 언급한 게 이 신중하고 냉혹한 경부보에게 일약 충격을 준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들이 옥상에 올라가자마자, 오 경부보가 달려들듯 소리친다.


“대체 왜 걔 이름이 나옵니까? 그것이 뭘 어쨌길레요?”


“자, 일단 진정하시고.”


장교들은 왜 한주리 양을 그들이 의심하고 있는지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상관으로부터의 송금 지시는 한 요릿집에서 받았는데 그곳은 바로 한주리 양이 추천하고 예약까지 대신해 준 곳이라고. 그곳 외에는 송금 정보가 새어나갈 곳이 없는데, 그 요릿집 방의 병풍 뒤에 축음기를 숨길 수 있을 공간을 발견했다고 말이다.


막상 말해 놓고 나니 그것만으로 어떻게 관련되었다고 추리할 수 있냐며 따져 묻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경부보의 반응은 우려와 달랐다. 그의 얼굴이 대번에 험악하게 변한 것이었다. 흡사 에도 시대나 그 이전 시대 이야기책에 나오는 오니의 얼굴이었다.


“그 년이! 그 미친 년이! 누구 죽는 꼴 보려고!”


오 경부보의 입에서 격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생각보다 우리 말을 잘 받아들이시는군요?”


우에스기 중위가 놀란다. 오 경부보가 극히 사무적인 사람이라고 느끼긴 했지만, 그래도 친지가 의심을 받는데 반박이라도 할 줄 알았던 것이었다.


“그 년은 예전부터 수상했어요! 작년 겨울에 요양 갔다 온 이후 그냥저냥이었던 년이 우울증 직전 증세를 보이며 방에 틀어박혔습니다! 며칠간 식사를 거부하고 방에서 울기만 했죠! 대체적으로 있는 집의 학생 사상범들이 밟는 단계와 유사했습니다! 아랫것들이 거지같이 사는 게 자기들 잘못이라고 착각하고 질질 짜는 거 말입니다! 수상하다 느꼈을때 잡아 족쳤어야 했는데! 강도사건 수사 때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


오 경부보의 안면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일그러진다. 주리에게 느껴진 꺼림칙함을 당장의 수사 때문에, 그리고 후견인인 외숙부 때문에 한 편으로 치워놓았던 오 경부보였다. 그런데 그 주리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정보누출 장소로 의심되는 요릿집을 예약해 주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일전에 가지고 있던 옅은 의심이 확신으로 뒤바뀌었다.


장교들은 오 경부보의 이런 모습에 제법 놀라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외사촌인데, 친족에 대한 애정 하나 없이 분노를 불태우는 광경은 지극히 생소한 것이었다. 혼자 벽을 칠 기세로 격노를 태우던 오 경부보가 장교들에게 고개를 확 돌린다.


“혹시 고것이 사건에 연관되었다고 다른 곳에 흘린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경부보님에게만 알려드리는 겁니다.”


오 경부보는 머리가 뜨거워진 와중에도 재빠르게 계산한다. 만약 주리가 이 사건의 용의자 중 한 사람임이 알려지면, 그의 앞날에 어마어마한 장애물이 가로놓이게 된다. 치울 수 없는 장애물이. 당장 경부보 자리를 잃지는 않겠지만, 그에게 보장된 승진의 길은 깨끗하게 지워져버릴지도 모른다. 불령선인 부모가 있었다는 걸 한사코 숨겨왔던 그였다. 그런데 여기에 불령선인 사촌누이가 더해지면, 부모의 일까지 드러나는 것도 시간문제다. 불령선인 친족에게 둘러싸인 조선인 경찰을 누가 믿어 주겠는가? 그리고 설령 그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려면 얼마나 더 많은 고생을 해야 하겠는가? 얼마나 더 많은 노력을 경주해야 하겠는가?


경부보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푹 수그린다.


“장교님들.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디 이 사실을 다른 곳에 알리지 말아 주십시오!”


사실 이들이 다른 곳에 그런 말을 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지만,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진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랬다간 경부보님 사정이 곤란해질 것은 우리도 잘 압니다. 그러니 우리가 알고 싶은 것만 조금 알려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후지무라 중위가 기대한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상대가 자신에게 빚을 지게 하는 것. 오 경부보도 그 의도를 모르진 않았다. 평소라면 언짢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걸 느낄 겨를도 없었다.


오 경부보의 입에서 이제까지의 수사 정보들이 줄줄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베이징의 조선인 폭력배였으나 불령선인 홍범도의 부하가 된 천남건이 근래 경찰을 괴롭히는 연쇄강도 사건들과 경성방송국 아나운서 협박을 통한 불령한 방송 송출 사건의 괴수다. 그는 코지마 히데오라는 가명을 쓰며 모종의 일을 벌이고 있는데 아무래도 사기로 추정된다. 천남건에게 협박받아 강제로 방송을 한 아나운서가 읽은 성명문에서 유추해 볼때 참칭 대한민국 임시정부인 상하이 가정부 소속임이 의심된다. 그자는 카라스마 준이치로 백작과 미쓰이 사토시 사장을 자처하는 수상한 회사를 운영하는 자들과 한패로 추정하고 있는데······.


“잠깐! 누구요? 카라스마 백작?”


후지무라 중위가 놓치지 않고 소리친다. 카라스마 준이치로의 이름이 여기서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오 경부보도 당황한 눈치다.


“카라스마 준이치로를 아십니까?”


“알다 마다요! 실은 그자가······”


후지무라 중위가 카라스마 준이치로 백작과 주리의 관계를 파해친 일을 설명해 주자, 오 경부보의 얼굴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일그러진다. 장교들은 그 얼굴이 실로 오니의 상이라고 생각한다.


망할 년 같으니라고! 집안 전체를 말아먹으려 작정했구나!


오 경부보의 손에 쥐어진 주먹이 부르르 떨린다.


“두 사건은 서로 연결되어 있군요. 카라스마 준이치로는 대체 뭐 하는 자입니까? 가짜 화족이라도 된다는 겁니까?’



“그랬다면 좋겠습니다!”


오 경부보가 이제는 하얗게 질린 얼굴이 아닌 폭발 직전으로 새빨개진 얼굴로 입을 연다. 카라스마 준이치로는 자신이 봤던 탈쓴 강도와 인상착의가 동일했다. 그자는 불온사상을 가진 화족 카라스마 세이지 백작의 양자로 조선인으로 추정되는 자다. 이자는 한패인 미쓰이 사토시란 자와 이른바 자원개발회사를 차리고, 그의 외숙부이자 중추원 참의인 한덕만을 상대로 일약 사기를 치려 하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실제 현재 그의 사무실은 텅텅 비워진 상태지만, 한 참의는 여전히 그 백작에게 속아서 고발도 하려 들지 않고 있다.


그 말을 들을 수록, 후지무라 중위의 얼굴도 무섭게 변해갔다. 이 모든게 연결되어 있었다. 두 간부(姦夫)는 그의 친구 테츠를 철저하게 농락하고 기만한 것이 유력하다. 카라스마 준이치로 백작이 보낸 사과의 편지에서 느낀 위화감도, 한주리 양이 눈물로 죄상을 고백한 이야기에서 느낀 꺼림칙함도 이제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한주리 양의 죄상 고백도 결국 약혼 상태를 무위로 돌리지 않고 아오야기 테츠오로부터 정보를 캐내기 위함이 틀림 없었다.


간악한 것 같으니! 테츠는 너의 정숙함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는데! 세츠코는 너를 친구로 여기고 있는데!


“망할 것들!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다!!”


쿠스노기 중위도 얼굴이 시뻘개져 고함을 친다. 우에스기 중위도 허리춤의 군도를 잡고 부들부들 떤다. 그 망할 년에게 놀아났다! 고 교활한 것이 우릴 농락했다! 감히 우리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리고 탄탄대로가 될 수 있던 미래를 망쳐 놓았다!


이 와중에 오 경부보는 다시 계산을 한다.


그 썩을 년을 지금 당장 체포해야 하나? 아니다. 공개적으로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나와 그년의 관계가 만천하에 드러난다. 은밀하게 해야 한다. 캐낼 걸 캐내고 입을 막아버려야 한다. 나는 경찰이다. 취조실에서 사람을 주무르다 죽었을 때 어떻게 보고서를 써서 무마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끝장내고도 어떻게 법망에서 피해 갈 수 있을지 잘 안다. 그러려면, 우선 그 년을 내 손안에 넣어야 한다!


“여러분들! 부탁이 있습니다.”


분노에 차 있던 장교들에게 오 경부보가 말한다.


“그 년은 제가 직접 체포할 것입니다. 그러니 일단 손을 대지 말아 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니, 그게 뭔 말이요? 우리도 그 여자에게 볼일이 아주 많은······.”


쿠스노기 중위가 역정을 내려 하지만, 후지무라가 저지한다.


“알겠습니다. 우리는 체포 권한도 없고, 또 사라진 현금을 회수하는 게 우리 할 일이니까요. 체포 후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 경부보는 미쳐버릴 것 같은 정신을 다잡으며 겨우 감사 인사를 건냈다. 세 장교들은 오 경부보와 몇마디 더 주고받고는 인사하고 바로 경찰서를 나왔다.


“한주리 양 집을 찾아간다. 지금 평일이니 학교에 있을 터이니, 어느 학교인지 알고 바로 가서 확보한다.”


후지무라 중위의 말에, 쿠스노기 중위가 놀라 눈이 동그래진다.


“경찰에 맡길 거라며?”


“이 답답아. 생각 좀 해 봐라.”


우에스기 중위가 핀잔이다.


“저 경부보 나리가 친척이 불령선인이라고 드러나는 사태를 바라겠냐? 체포는 고사하고 제 멋대로 취조하고는 영원히 입을 막은 뒤 시체은닉이나 그런 거 하겠지.”


“앗! 그렇군!”


쿠스노기 중위가 이제 이해하고 주먹을 탁 친다.


“우리는 경찰보다 먼저 한주리 양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진상을 파악하고 돈도 회수한다.”


후지무라 중위는 이를 악물면서도, 한 편으로는 지금도 한주리 양을 철썩같이 믿고 있을 테츠가 구출되어 돌아오면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생각하니 암담한 감정을 참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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