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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활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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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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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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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화

DUMMY

오 경부보가 혼마치 거리에서 주리와 딱 마주치기 몇 시간 전이었다. 그는 경찰서에서 바로 주리가 다니는 고등여학교로 직행하였다. 그러나 다짜고짜 주리네 반 교실로 문을 쾅 열고 들어가며 경찰수첩을 들이밀었을 때, 주리가 아예 등교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선생 외에는 금남의 구역에 갑자기 쳐들어오다시피 한 이 형사의 얼굴에 꺅 하는 작은 비명들이 교실에서 퍼져 나갔었다.


“이년 어디 갔는지 아시오?”


오 경부보는 주리네 반 담임 선생을 죽일 듯이 윽박질렀었다. 여선생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경부보를 기가 막히게 하였다. 주리 아버지가 교장 선생님에게 요청하여 저번달 말부터 최소 수업일수 채우는 조건으로 자율적인 출석을 허락했다고. 조만간 시집갈 아이니 졸업 전에 더 놀게 해주고 싶다는 이유였다.


교실에서 소란이 발생하자 교무실에서 달려와 수사협조 요청은 하고 온 거냐고 묻는 교감선생에게 헛소리 하면 사상범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협박하여 입을 닥치게 만든 경부보는 교탁 앞의 여선생을 밀어내고 올라서서 같은 반 학생들에게 거세게 다그쳤다. 이년 평소에 어디 가는지 본 사람 있냐고.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올해 새 학기 시작하고 난 후부터 친했던 애들과도 거의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어디 놀러가자는 말에도 고개를 저을 뿐이라 다 거리가 멀어졌다는 대답 뿐이었다. 반 아이들 말로는 주리는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간에 겉도는 애가 되었다. 최근 들어와서는 표정이 아주 밝아졌지만, 구태여 그들 노는 자리에 지금 와서 끼워주기도 그렇고 또 주리도 끼워달라고 하지 않아서 평소대로 있든 없든 상관 안하고 지냈다고 했다.


오 경부보는 등 뒤로 줄줄 흐르기 시작한 식은땀을 거칠게 닦아냈었다. 이 망할 년이 이것까지 의도했단 말인가? 교실에서 관심받지 못하는 공기같은 존재가 되어, 혹시 추적당하는 일까지 피했다는 건가? 이년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 붙잡아야 하나? 아니, 그럴 수는 없다. 일을 저지른 뒤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건 내뺐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디로 도주했단 말인가? 그것이 핵심이다. 그년을 잡아서 아지트를 추적해 놈들을 굴비 두름 엮듯 줄줄이 잡아들일 수 있다.


이때 오 경부보는, 평소의 자신이라면 무리수라 생각하여 함부로 하지 않던 일까지 해버리고 말았다. 권총집 속에 권총을 꺼내들어 교탁 위에 탁 하고 올려놓은 것이다. 총구 방향을 학생들에게 돌리고.


“꺄아악!”


교실에 비명이 더 크게 번져나가고 선생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이 난폭한 행위를 그 누구도 나서서 제지할 생각을 못하였다.


“다시 묻겠다. 한주리가 학교 빠지고 어디 가는지 본 사람 있나?”


오 경부보는 그러며, 육혈포의 약실을 능숙하게 열어 1발의 공포탄과 5발의 실탄이 꽉 차 있는것을 빠르게 보여주고 닫았다. 그가 온 몸에서 뿜는 살기가 조성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분위기가 교실을 꽉 채울 때, “있나 없나!”하는 고함이 다시 터져나왔다.


이때, 누군가 파르르 떠는 손을 들었다. 경부보의 무서운 시선이 손을 든 여학생에게 쏘아졌다.


“제······. 제가 본 거 같아요.”


그 대답에 오 경부보는 그 여학생의 자리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겁에 질린 학생은 이를 딱딱 떨고 있었다.


“어디서?”


“저······ 정확하지는 않은데요. 비······. 비슷하게 생긴 애를 보······. 본정통에서 봤어요.”


“비슷하게 생긴 애인가, 아니면 한주리 본인인가?”


“그······ 그게······”


“말해!”


경부보가 평소 취조실에서 용의자 대하듯 윽박지르자, 여학생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 그게요······. 걔······ 걔처럼 생기긴 했는데, 얼굴에 안경을 쓰고 옷도 달랐어요. 평소 걔 입던 옷이 아니라 흰 저고리에 깜장 치마 입고 있어서···...”


이 년이 변장하고 다닌 건가? 이 증언만으로는 너무 불확실했다. 정말 그 여자가 한주리인가? 그냥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아닌가? 다른 용의자였다면 이 증언을 불확실하다고 여기고 더 캐묻거나 다른 제보자를 찾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주리를 하루 속히 확보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경부보의 머릿속에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본정통, 즉 혼마치가 언급된 것 만으로도 뭔가 알 것 같았다. 합방 전부터 내지인의 거리였던 혼마치라면, 오히려 그곳에 불령선인의 아지트가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터였다. 딱 봐도 조선인인 사람들이 상주하기에는 너무 눈에 띄는 곳이니. 그러나 내지인 화족으로 위장하고도 전혀 의심을 받지 않을 정도로 내지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한 자들이라면, 최적의 아지트인 곳이 혼마치였다.


오 경부보는 바로 교실 밖에 몰려든 선생들을 밀치고 교정을 빠져나왔다. 이때 다급한 마음 속에서 뭔가 단단히 실수했다는 생각이 불현듯 터져나왔었다. 이 6년제 고등여학교는 내지인의 사학재단이 운영하는 곳으로 총독부 고위관리나 내지인 실업가의 여식들이 다니는 곳이자, 한 참의 같은 총독부에 지극히 협조적인 부유한 자들이 뒷돈을 주고 딸을 입학시키는 아가씨 학교였다. 그런 학교의 교감선생을 사상범으로 만들 수 있다고 윽박지르고 여학생들을 총으로 겁박했던 것이었다. 학교 재단 측에서 종로서에 항의하면 징계를 피할 수 없을 터였다.


오 경부보는 대체 뭔 짓을 한 거냐는 후회감을 없지않아 느꼈지만, 그 감정을 사촌여동생에 대한 증오로 돌렸다. 그 망할 것이 내게 이딴 짓까지 하게 만들다니! 이년을 곱게 죽이지 않겠다! 피떡으로 만들어 주마!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채 살려달라고 애원하게 해주마!


이제 오 경부보의 목적지는 명실공히 혼마치가 되었다. 전차를 타고 가거나 인력거를 타고 가는 건 너무 늦는다고 생각한 그 때, 길가에서 택시 한 대가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오 경부보는 시급히 손을 들어 택시를 잡고는, 경찰수첩을 들이밀었다.


“경찰이다! 범죄수사 관계로 이 차량을 일시 징발하겠다!”


“예? 뭐라고요?”


오 경부보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해 어안이 벙벙해진 택시기사를 확 붙잡았다.


“나와!”


경부보는 운전석 문을 거세게 열어젖히고는 택시기사를 끌어내 땅바닥에 패대기쳐 버렸다. 우당탕 바닥에 쓰러진 택시기사가 “아이고야!”하고 신음하는 그때, 경부보는 운전석에 재빨리 앉아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이 도둑놈아! 내 차 내놔라!”라고 소리지르는 택시기사를 뒤로 한 채.


경부보는 정신없이 택시를 몰았다. 택시를 잡으려던 모던보이 한 명이 현금 다발을 손에 흔드는 것도 보이지 않았다. 손님을 잡으려고 천천히 이동하는 다른 택시들에 비해 배는 빠른 속도였다. 규정된 제한속도를 지켜서 교통계 순사에게 주목받지는 않아야 한다는 이성만이 그나마 남아 있었다.


오 경부보는 청계천을 건너 혼마치에 다다랐을 때에야 속도를 줄였다. 주변을 살피며 이 망할 것이 어디 있는지 날카롭게 흩어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그 고등여학교의 하얀 세라복 블라우스와 검은 스커트가 눈에 저 앞에 있었다. 뒤로 가지런히 땋은 댕기머리도.


찾았다, 이 썩을 년!


경부보는 확 엑셀을 밟아 그녀 바로 옆까지 치달아 브레이크를 밟았다. 주리의 깜짝 놀란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그는 운전석에서 내린 것이었다.


주리는 오 경부보의 시뻘개진 얼굴을 본 순간,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려왔다. 관동군 장교들과 마주치지 않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오재두 경부보가 불쑥 나타날 거라고는 예상치도 않았었다. 그런데 이 끔찍스러운 사촌오라비가, 대백루가 바로 눈 앞에 있는 이 거리에서 자길 잡아세운 것이었다. 그것도 어디서 가져온지 모를 저 택시에 타라고.


그 날의 광경이 스치고 지나갔다. 오재두 경부보가 피칠갑이 된 자기 또래의 여학생을 경찰서 복도에서 질질 끌고 가는 그 장면. 여러 차례 악몽에서 본 그날의 광경이 다시금 떠올랐다. 절망과 고통에 끝에 달한 그 여학생의 자리에, 조만간 자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오금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수초 동안 각종 생각이 퍼져나갔다. 바로 대백루로 질주할까? 그곳에는 지부장님도, 스님도, 오라버니들도 있다. 저놈이 그 안까지 뛰어들어오면 바로 잡아서 지하실로 끌고갈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정우 오빠가 저놈을 이 자리에서 때려눕힐 수 있지 않을까? 오빠라면 분명 지부장님에게 배운 무공으로 저놈을 즉석에서 박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와 우리를 다 사로잡을 것이다. 대백루로 뛰어들 수도 없다. 저놈이 저기로 들어간 뒤 실종되었다는 제보가 나오면, 대백루가 놈들에게 노출된다.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해 봐! 제발 좋은 생각을 해내 봐, 한주리!


그런데 그 때였다. 그녀의 바로 옆을 정우가 쓱 지나갔다. 흡사 주리와는 아무 관계도 아닌, 그냥 지나가는 인력거꾼처럼.


눈 앞이 캄캄해진 주리의 귀에, 정우가 들리지 않게 나직히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 끌어 줘.”


그 순간, 주리 눈 앞을 가린 시꺼먼 어둠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를 믿어 보자. 정우 오빠라면 분명 이 최악의 위기를 타개할 멋진 계책을 마련했을 것이다. 시간을 끌자. 저 못된 놈을 계속 붙잡아 둬야 뭔가 할 수 있다!


주리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얼굴에 퍼져나갔던 절망을 쓱쓱 지워냈다. 그녀의 얼굴에 매우 황당하다는 듯 치켜뜬 눈이 돋보인다.


“아유, 깜짝이야! 왜 갑자기 튀어나와서 뜬금없는 소리여요?”


“뭐?”


오 경부보는 주리가 갑자기 고압적으로 나오니 기가 막혀 반문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제 다 죽었다는 듯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에, 어떻게 된 일인지 화색이 돌고 당당한 태도를 취하다니 대체 어떻게 된 건가?


주리는 이 틈에 따따따 따지고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택시 뭐여요? 왜 택시기사는 없고 오라버니가 운전해요? 오라버니 택시 기사로 직업 바꾸기라도 하신 거여요? 고등계 형사보다 더 많이 번데요?”


오 경부보는 일시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항상 자길 어려워하고 또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였고, 근래에는 말도 아예 안붙이려 한 사촌누이가 이런 식으로 말한 적은 실로 처음이었다.


“그나저나 갑자기 튀어나와서 차 타라는 건 또 뭔데요? 지금 오라버니 근무시간 아니여요? 누구 차인지도 모를 택시 운전하며 드라이브 할 시간 아닌 것 같은······..”


“닥쳐, 이년아!”


마구 질문공세를 퍼부어 오 경부보를 얼떨떨하게 만드려던 주리였지만, 사촌오라비의 고함에 헉 하고 말문이 막힌다. 그의 목소리가 워낙 쩌렁쩌렁 울려서, 계속 몰아붙이며 한 켠으로 치워둔 두려움이 다시 올라온다.


“입 다물고 타! 당장!”


그러나 두려움도 잠시,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다짐이 다시 치고 올라온다.


“아, 진짜! 왜 내가 타야 하는지 이유부터 알려줘야 타든말든 하죠! 집에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거예요? 이렇게 경우도 없이 다짜고짜 와서 타라고만 하면 어떡해요?”


“몰라서 물어, 이년아!”


오 경부보가 다시 버럭 고함을 친다.


“너 학교 빠지고 어디서 시간 보냈어? 네가 뭔짓 하고 다녔는줄 내가 모를 줄 알아?”


주리는 전혀 물러남 없이 거칠게 대꾸한다.


“뭐라고요? 와, 기막혀라! 오라버니 지금 내 사생활 캐고 다녔다고 밝히신 거예요? 경찰 되어서 하는 게 여자애 사생활 캐는 거예요?”


“사생활이고 나발이고! 너 그놈들과 관련 있는 거 이미 다 들었어! 당장 타!”


“그놈들? 이건 또 무슨 말이예요?”


주리는 바로 이때, 시간을 끄는 동시에 정보를 얻을 기회라고 느꼈다. 오 경부보가 자길 어떻게 의심하고 어떤 경위로 추적하게 되었는가?


“네가 관동군 자금운송 탈취에 개입한 거 다 알아! 정보 새나간 요릿집을 네가 추천했다며? 네년이 지금 집안 말아먹으려 작정했지! 당장 타! 지금 얌전하게 타지 않으면, 정말 험한 꼴 볼 거다!”


역시 그게 문제였구나! 주리는 필경 후지무라 중위가 경찰서까지 가서 이 일을 말했으리라 직감하였다. 그렇다면 종로서 전체가 자신이 이 일에 관련되었다는 걸 안다는 걸까? 그러나 주리는 바로 그것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그랬다면 순사들을 우르르 데리고 왔을 것이지, 저 혼자 택시 몰고 체포하러 오진 않았을 테니까.


주변에 종로서 소속 순사들이 깔리지 않았음을 확인한 주리는, 더욱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인다.


“와! 누굴 어떻게 한다고요? 오라버니 그 위치까지 올라간 거, 자기 혼자 실력으로 올라간 거 아니면서도 그런 말씀이세요? 우리 아버지 도움으로 경부보 자리 얻은 거 누가 모를 줄 알아요? 그런데 날 어떻게 한다고요? 험한 꼴? 기가 막혀! 아버지에게 다 이를 거예요!”


“이 년이!”


오 경부보가 귀신같은 표정이 되어 주리의 팔을 무자비하게 잡아챈다. 순간 팔이 꺾이는 아픔에 비명이 터져나왔다. 아파서 눈에 별이 보일 지경이었지만, 주리는 그 아픔도 기회로 활용한다. 그녀의 입에서 일본말이 튀어나온다.


“사람 살려어! 납치야아아! 백주대낮에 사람 납치한다!”


혼마치 거리는 밤에 북적거리지만 그렇다고 대낮이라고 사람이 없는 건 결코 아니다. 주로 일본인인 지나가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이 납치행각이 벌어지는 장소로 시선을 집중하고 몰려온다.


오 경부보는 주리의 반응에 당황하였다. 자신에 대한 두려움과 완력 때문에 입 하나 뻥긋 못하고 차에 탈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반항을 하여 주변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도움 요청도 일본말로 하는 치밀함을 보이며. 이러면 지극히 곤란하다. 소란을 일으켜 본정서 소속 경찰이라도 오면, 그녀를 조용히 처리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나 오 경부보도 주리의 순발력에 지지 않는다. 그의 손에 경찰수첩이 뽑혀 나온다.


“난 경찰이오! 이 년은 중대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요! 지금 체포하려는 데 방해하는 것이오!”


그런데 주리가 붙잡힌 채로 목소리를 높인다.


“거짓말이여요! 이놈은 납치범이에요! 저 경찰수첩은 가짜라고요!”


지나가는 사람들 눈에도 딱 웬 험상궂은 인상의 덩치 있는 사내가 세라복 차림의 갸냘픈 여학생을 억지로 끌고 가 차에 태우려는 형국이었다. 오 경부보가 “난 경찰이라니깐!”이라며 고함을 지른 그때였다. 삑 하는 호각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동작 그만!”


일본말로 날카롭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흑색 제복을 입은 순사 4명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 중 한명은 덩치가 커서 눈에 띈다.


주리는 그 순사들을 보자마자, 그들이 누구인지 바로 깨달았다. 팔에 느껴지는 아픔 때문에 웃음을 터트릴 수가 없어서 천만다행이었다.


경부보는 정말 순사들이 오자 잠깐 당혹스러웠지만, 바로 경찰수첩을 들이민다.


“본관은 종로서 고등계 1과 소속이다! 중요 사상범을 체포해 서로 압송하려 하는 것이다!”


“뭐? 종로서? 수첩 좀 봅시다.”


그 말을 한 사람은 얼굴에 곰보자국이 엿보이는 순사였다. 이 순사는 오 경부보의 경찰수첩을 유심히 보더니, 갑자기 매서운 눈을 하였다.


“뭐야, 이거? 이거 위조 수첩이잖아!”


오 경부보는 갑자기 나온 이 뜬금없는 말이 하도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위조 수첩이라니? 이 본정서 보안과 소속 순사로 추정되는 놈은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이때 얼굴이 신경질적으로 생기고 깐깐해 보이는 인상의 순사가 그의 얼굴을 쳐다본다.


“잠깐. 이놈 어디서 많이 보던 놈인데?”


이 순사는 곰곰히 생각하는 얼굴을 하다, 손뼉을 딱 친다.


“그래! 이놈이다! 그 경찰 사칭범!”


“뭐, 뭐라고?”


오 경부보가 더욱 기가 막힌 그 순간, “잡아라!”소리와 함께 8개의 팔이 그의 양팔을 잡아채었다. 하도 갑작스러워서 대항할 틈도 없었다. “어억!”소리와 함께 주리의 팔을 꺾던 그의 팔이 꺾여졌다. 몸을 뒤흔들어 벗어나려고 용을 써 보았으나, 붙잡은 팔들이 너무나도 억셌다. 삽시간에 뒤로 꺾인 양팔에 포승줄이 묶인다.


“이놈! 파출소로 가자!”


그 말 직후, 오 경부보의 눈 앞이 말 그대로 시꺼매졌다. 어디서 가져온지 모를 용수가 씌워진 것이다.


“이 망할 새끼들아! 난 종로서 소속이란 말이다!”


오 경부보가 욕설을 퍼부으며 고함을 질렀지만, “닥쳐라!” 소리와 함께 뒤통수에 격통이 일었다.


경부보는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르는 새 질질 끌려갔다. 망할 놈들이 죽으려고 환장했나? 본정서에 업무차 알게 된 형사들이 한둘이 아니다. 파출소에 끌려가 용수가 벗겨지는 그 날로 이놈들은 다 옷벗게 될 것이다. 네놈들을 공무집행 방해죄로 깜방에 쳐넣고 말겠다!


그때 어두컴컴한 시야에 빛이 확 끼치고 들어왔다. 순사들이 용수를 벗겨준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눈에 들어온 곳은 파출소가 아니었다. 어디인지 모를 조용한 뒷골목이었다. 이곳이 어딘지 파악하기도 전에, 입에 삽시간에 재갈이 물렸다.


오 경부보는 읍읍 신음하며 눈을 번쩍 떴다. 자신을 사칭범이라며 체포한 그 자들이 순사가 아니었음을 바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입에 재갈이 물려서만이 아니었다. 그의 눈 앞에서 실실 웃고 있는 한 사내 때문이기도 하였다.


“이야, 경부보 나리! 오랜만에 뵙습니다. 지난달 2일 이후로 처음 뵙네요?”


노골적으로 깐죽대는 그의 면상을, 오 경부보는 잘 기억하고 있다. 입에 재갈이 물리지 않았다면, “미쓰이 사토시!”라고 고함을 지를 뻔했다.


“아이고야. 날 알아보시는 모양이네. 그래요. 나올시다. 미쓰이재벌 관계자 미쓰이 사토시. 근데 그게 내 본명이 아니라는 걸 아무튼 알고 계신 것 같고.”


미쓰이 사토시는 낄낄 웃으며 옆으로 비켜선다. 오 경부보는 옆 골목에서 나온 흰 두루마기 차림의 사내를 봤을 때, 격노에 온 몸을 맡기고 마구잡이로 비틀었다. 물론 비틀고 꿈틀거릴 수록 양 어깨를 붙잡은 팔들에 힘이 들어가 더욱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안녕하십니까, 경부보님. 지난번 취조받은 이후로 다시 뵙네요.”


예의바르게 말을 거는 그는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무섭게 불타고 있었다.


“우리가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장소를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이제까지 경부보님이 저지른 그 숱한 만행들에 대해 추궁할게 많아서요. 훌륭한 지사이신 진사 어른과 여사님께 행한 크나큰 불효부터 방금 전에 제 안사람 될 아가씨에게 했던 무례한 행위까지 말입니다.”


재갈에 막혀서 밖으로 퍼져나오지 않은 고함이 오 경부보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자신을 지긋이 노려보고 있는 그 사내는, 카라스마 준이치로 백작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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