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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활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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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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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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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4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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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화

DUMMY

나카하라 국장은 상황실에 돌아오자마자, 걸어오면서 생각해 본걸 실행에 옮겼다. 총독이 이 황당한 사태에 고민하고 있다지만, 관동군에 불리한 처사를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 또한 육군대장 출신이기에, 그리고 또 관동군 특무기관이 주도한 아편거래 건에 대한 석연찮은 대처를 보아 왔기에 드는 확신이었다.


만약 총독이 이번에도 관동군의 손을 들어준다면, 총독과 관동군사령관 사이에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 알아야 진상을 알 수 있을 터였다 .


국장은 경무국 보안과장을 불러서 따로 집무실로 데리고 갔다. 국장이 은밀히 내린 지시에, 보안과장은 놀라 입을 벌린다.


“구, 국장님! 잘못하다가는······”


보안과장은 국장의 지시에 얼굴이 굳어지고 망설이는 낯빛을 보인다. 국장은 자기가 어쩌다가 이런 지시까지 내리게 되었냐고 자괴감을 느꼈다. 그러나 겉으로는 그 복잡한 심경이 드러나지 않는다.


“지시한 대로 하시오. 이제까지 그러한 조치가 발각된 적은 없었잖소? 발각된다 해도 책임은 본관이 질 터이니.”


보안과장은 망설이면서도, 국장의 계속되는 강권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렇게 확보한 증거는······. 효력이 없는 거 잘 아시죠?’


“알고 있소. 본관은 단지 진상을 알고 싶을 뿐이오.”


보안과장은 별 수 없다는 듯 경례를 붙이고 나갔다. 이런 방법까지 써야 한다는 데에 국장은 얼굴을 찌푸렸다. 야쿠자 조직과 거기 얽힌 관리를 한꺼번에 사로잡으려 할때나 썼던 방법인데, 그걸 엄연히 직속상관인 총독을 대상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국장은 그러던 중에 책상 위에 철도국에서 보내온 오전 약식회의 기록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헌병의 폭거로 인한 사태 때문에 잠시 제쳐두었던 일을 할 때가 디었다. 어디까지나 작은 의혹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확인해보고 싶었다. 누가 철도 운행속도를 늦추자고 했는지 말이다.


보고서 철을 들춰보자, 회의 초입부터 폭파협박을 단지 공갈이나 장난전화로 파악하는 의견이 우세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철도 운행 일정을 고안, 관리하는 운수과 간부들은 운행일정이 꼬이는 것 자체에 곤란함을 내비치고 있었고, 철도표 판매와 수익사업을 주관하는 영업과는 운행중단으로 인한 손실을 우선 고려했다.


정말 있는지도 모를 폭탄 때문에 운행 일정이 지체되어 전부 엉망이 되 버리는 사태를 바라는 철도국 관리가 얼마 없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그때, 목소리 하나가 직원들을 일깨우고 있었다.


“있는지도 모를 폭탄 때문에 일정을 재조정하고 그로 인한 손해를 우려하시는 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승객들의 생명입니다. 정말로 협박범이 폭탄을 설치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아주 약간의 가능성이라 할 지라도, 그것이 폭발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얼마나 몸서리처지는 일입니까? 열차가 탈선하고 뒤집혀지는 겁니다! 그 안의 우리 승무원들과 승객들 중 대다수가 사망자가 될 것이며, 인근 구급대가 출동하기까지의 시간 때문에 살아남은 부상자들도 목숨이 위태로워 질 겁니다.그런 상황이 발생 시, 우리가 질 수 있는 책임은 한도를 모른 채 증가할 겁니다.”


이 젊은 관리는 시급히 철도 운행을 중단하거나, 아니면 폭탄을 찾을 때까지 6시 15분발 열차의 운행속도를 늦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계속해서 폭탄이 터지고 열차가 탈선하여 사상자가 발생했을시의 책임을 철도국 전체가 짊어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이 경각심을 심어주는 강렬한 주장에, 회의에 참석한 관리들의 반응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들은 일상적인 업무가 틀어지게 되는 데에서 나오는 짜증보다는, 정말 혹시 인명피해가 발생한다면 감당할 수 없어진다는 두려움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철도국장은 나름의 절충안을 내렸다. 현재 출발해 운행중인 열차의 운행속도를 시속 30km로 낮춘다. 열차가 파주를 지나칠 때까지 폭탄을 발견하지 못하면 운행을 중단한다. 폭탄을 찾아내 제거하거나, 아니면 폭탄이 없는 것을 확인하면 다시 정상 속도로 운행한다.


이 결정에 따라 열차는 시속 30km로 서행하게 되었으며, 이 덕분에 불령선인 강도들이 현금가방을 탈취해 안전하게 트럭으로 옮기고 탈출할 기반이 마련되었다.


회의록을 모두 읽은 나카하라 국장은, 자기 손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보았다. 식은땀이 머리에서 비어져나와 목줄기를 타고 흐르는 걸 느꼈다. 입술이 떨리는 동시에 바짝바짝 말라옴을 느꼈다.


눈을 믿을 수가 없어서 꿈적거리다 뜨고 꿈적거리다 뜨고를 반복한다.


“이럴 리가 없어······.”


국장의 입에서 새어나온 신음이었다.


열차 운행속도를 줄이자고 강렬히 주장한 그 젊은 사무관은, 자신의 조카 히로요시였던 것이다.


국장은 내려앉은 가슴을 진정시키며 생각해 본다. 히로요시가 자기 소신대로 말한 것일수도 있다. 그의 자랑스러운 조카라면 다른 관리들이 폭파 협박에도 불구하고 업무가 복잡해지는 것이 싫어서 열차운행을 평소와 다름없이 하자는 타성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책임으로 사람이 죽을수도 있는 일에 눈을 돌리지 않을 위인이다. 그렇게 키우고 가르치기도 했고, 또 암암리에 영향력을 발휘할 경무국장의 친조카라는 위치도 있으니.


그러니 단지 히로요시가 운행속도를 늦추자고 한 것이, 그가 불령선인 강도들과 한통속이며 강도행위에 용이하기 위한 사전공작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번 불이 붙은 의심은 일파만파로 번져나가기 시작한다. 상하이 총영사관 경찰서에서 밀정을 통해 파악하기로는, 불령선인 가정부는 총독이 전라북도 순방에 나설 것을 알고 있었으며 전주역에 도착하자마자 폭탄을 투척할 것이었다. 총독이 철도로 이동한다는 것은 언론에 공표되지도 않았고 총독부 내에서만 아는 사항이었다. 특히 총독의 철도이동 일정은 철도과에서 비서실과 함께 작성한 것인 이상, 철도국 내에 가정부의 밀정이 있다는 추리가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나카하라 국장은 가정부에 정보를 흘린 자가 철도국에 있을 것이라고 특정했다.


그래서 종로경찰서는 철도국의 우정식 서기를 체포했다. 유력한 제보와 증거자료가 있다는 이유로. 그가 자작위에 있는 조선귀족의 자제란 이유로 정무적으로 판단할 것을 요구한 이마이다 정무총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법집행의 공정함이 조선 통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체포를 주장한 나카하라 국장 본인의 결정에 의해.


그리고 우정식 서기가 수상하다고 제보한 사람은, 바로 히로요시였다. 우정식 서기의 개인공간에 숨겨진 곳에서 불온문서들을 발견했다고.


국장의 몸에서 우툴두툴 소름이 일어난다. 이게 전부 계획된 거라면? 히로요시가 의도적으로 우정식 서기를 무고한 것이라면? 그에게 돌아갈 수도 있는 정보누수의 의심을 차단하기 위해, 일부러 희생양을 만들어 관심을 돌려버린 것이라면?


여기에 더불어 또 다른 의심이 고개를 든다. 불령선인 강도들은 자신의 집주소를 알고 있었다. 부인의 이름이 코즈에인 것도 알고 있었다. 위생검침원으로 변장하고 들어와 전화선을 끊어놓고는 수화기 속에 편지를 넣는 과감한 도발을 가했다. 저들은 코즈에가 한때 ‘불미스러운 일’을 당했다며 야쿠자들에게 납치당했던 것도 알고 있었다.


자신을 비롯한 경찰 간부들의 거주지가 범죄자들의 보복 대상이 될 위험 때문에 절대로 공개적으로 알려지지 않는데도.


처음에는 어느 부주의한 놈이 흘렸다가 돌고 돌아서 그들 귀에 들어간 줄 알았다. 코즈에가 납치당한 적이 있다고 회식 자리에서 말한 적도 있으니. 그러다가 보복당한 간부들도 없지는 않으니. 그런데······. 그런데······. 가족이라 누구보다 이 일을 잘 아는 히로요시가 정보를 넘겼다고 해도 말이 되는 것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 어떻게 키운 조카인데! 동생 부부처럼 되지 않게 하려고 얼마나 노력한 조카인데! 처음 집에 왔을 때는 반항기를 보였지만, 결국 유순해져서 그 가기 어려운 도쿄제국대학도 가고 고등문관시험도 통과한 내 자랑거리가 아닌가! 아들 같은 녀석이 이럴 수는 없다! 난 그 녀석을 그렇게 키운 적이 없다!


국장은 자신의 의심이 지나친 거라고, 과도한 거라고 믿고 싶었다. 히로요시가 불령선인들과 한패가 되어 정보를 팔아넘기고 있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하지만 그래도, 확인이 필요했다. 조카에 대한 자신의 의심을 풀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확인이 필요했다.


국장은 종로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를 넘겨받은 혼마 서장의 긴장된 목소리가 들려온다.


-국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아, 서장. 그 우정식이 말이오. 각하 암살음모에 가담했던. 아직 그쪽 유치장에 있소?”

-그렇습니다. 수사가 종결되어 검사국에 기소의견이 전달되었고, 내일 송치될 예정입니다.


“그놈 잠깐 경무국으로 보내시오. 내가 직접 알아볼 게 몇 가지 있소이다.”


-예? 하지만 수사는 이미 종결······.


“단순히 알고 싶은게 있어서 그러오. 그러니 보내주시오.”


혼마 서장은 국장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지시는 지시인 관계로 바로 경무국으로 보내겠다고 대답했다.


종로서는 총독부에서 지척인 만큼, 결박당한 채 용수를 쓰고 호송차량에 태워진 우정식은 20분 만에 총독부 건물 지하의 심문실로 끌려왔다. 경무국 차원에서 직접 수사하는 엄중한 범죄자들만이 심문받는 곳이었다.


용수가 벗겨진 우정식 서기, 아니 이제 해임당한 관계로 더 이상 철도국 서기가 아닌 우정식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체포당한 이후 한 번도 면도를 하지 못한 지저분한 얼굴에 기본적인 세면 이외에는 몸을 씼지도, 옷을 갈아입지도 못했던 관계로 구린 냄새가 진동했다. 오사카 거리에서 아버지가 자작 나리임을 뽐내며 최고급 양복을 맞춰입고 여급들과 질펀하게 놀던 모던보이가 이런 꼴이 될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누군지 아나?”


우 서기는 자신을 날카롭게 쏘아보는 나카하라 국장을 알아본다.


“겨······. 경무국장 님이십니다! 신년 축하행사에서 뵙지 않았습니까?”


“그래. 기억하는군.”


총독이 주최한 행사에서 국장도 우동기 자작과 그의 아들 우정식 서기와 악수를 나눈 바가 있었다. 우 서기는 국장을 보자마자 애걸복걸한다.


“국장님! 저 좀 살려주십시오! 저는 절대 그런 죄를 저지르지 않았단 말입니다!”


손이 결박되어 있지 않았다면 국장의 바짓가랑이를 잡을 기세였다. 그러나 국장은 차갑게 묻는다.


“그렇다면 왜 조사받을 때 범행을 시인했지?”


“그······. 그건······. 담당하신 형사님이 증거가 너무 명확해서 재판에 가면 승산이 없다, 그러니까 아예 범행을 인정하면 적은 형량만 받을 수 있다고 하셔서······. 그리고 그러면 사식과 가족면회를 허가해주고 깨끗한 독방을 쓸 수 있다고 해서 그랬습니다.”


국장은 일선 경찰들이 그런 수법을 통해 용의자에게서 원하는 답변을 받아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도 수 차례 직접 보고 보고받은 일이니.


“그런데 왜 지금 와서 범행을 부인하나?”


“그게······. 이 형사님이 독방을 쓰게는 해 줬는데, 이제까지 면회도 받지 못하고 사식 한번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얼마 후에 유치장에 자리 없다고 제 방에 다른 죄수들을 같이 넣었구요! 저는 오재두 경부보에게 속은 거란 말입니다!”


우정식은 나카하라 국장이 구원자가 될 수 있으리라고 믿으며 처절하게 울부짖는다.


“전 정말 억울합니다! 저는 충량한 황국신민이고 아버지는 합방에 공을 세워 자작위에 오르신 분이란 말입니다! 그런 제가 이렇게 되다뇨! 국장님은 절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제발······.”


그러나 국장은 “난 그런 걸 따지려고 네놈을 불러온 게 아니다.”라고 못박는다.


“너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된 결정적인 증거는 네놈 방에서 발견된 불온문서들이다. 그 망측한 외설적인 잡지들과 함께 있던 그곳에서 말이다. 그 은밀한 공간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하거나 보여준 것이 있나?”


“예? 예! 있었습니다!”


우정식은 묻는 말에 대답을 잘 해주면 혹시 득이 될 것 같아서 기탄없이 얘기한다.


“누구에게 보여줬나?”


총독은 그의 입에서, 히로요시의 이름이 나오지 않을까 바싹 긴장한다. 그렇다면 이건 히로요시가 불령선인들과 연관되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우 서기의 입에서는 예상 밖의 답변이 나온다.


“그게······. 철도국장님 직할 직원들에겐 다 보여줬습니다. 제 컬렉션하고···...”


“뭐, 뭐라?”


국장은 어이가 없었다. 그런 외설적인 잡지들을 상관과 동료들에게 보란 듯이 보여주었단 말인가?


“그런 걸 대체 왜 보여주나?”


“그······. 내지의 문화가 조선의 문화보다 우월하다고 찬사를 바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조선 문화처럼 위선적이지 않고 인간 본연의 욕구에 솔직한 것이 선진적이어서······.”


국장은 짜증이 치솟아서 “이 한심한 놈아! 내지에서 그런 걸 대놓고 보여주고 다니면 사람 취급 못받는걸 알아 몰라? 감히 야마토민족을 변태 야만족으로 보는 거냐!”라고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여하튼 우정식의 증언대로라면, 철도국장 직속 직원들은 모두 우 서기가 ‘컬렉션’을 보관하는 방바닥의 공간을 다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히로요시에게만 용의점을 특정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안도가 되면서도 이놈 때문에 괜히 히로요시를 의심했다는 생각에 매몰차게 고개를 돌려 “저놈 끌어내! 종로서로 돌려보내!”라고 지시한다. 우정식의 머리에 용수가 다시 씌워지자, 그는 몸부림치며 “살려주십시오! 전 정말 죄가 없단 말입니다!”라고 애원하지만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항상 신중한 국장은, 우정식의 증언을 교차검증하기 위해 철도국장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오무라 철도국장은 그 증언을 확인해 주었다.


-그렇습니다. 아 그녀석이 글쎄 그 망측한 것들을 자랑이랍시고 보여주며 이런 문화가 있으니 우리 일본이 선진적이라고 하더군요. 전 이놈이 간접적으로 우리 문화를 모독하려는 줄 알고 기가 막혔는데, 그렇다고 자작 나리 댁에서 대놓고 화를 낼 수는 없어서 그냥저냥 넘어갔었습니다.


“그러니까 국장님 직속 직원들은 모두 그걸 봤다는 겁니까?”


-예. 그놈이 그걸 아주 자랑이랍시고 보여주고 다녀서 말입니다. 근데 그런 놈이 불령선인과 한 패였다니, 역시 그건 우리 문화를 모독하려던 게 분명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내가 괜한 의심을 한 건가? 국장은 통화를 끊고 생각에 잠겼다. 우정식의 방에 그런 불온문서들을 집어넣을 수 있는 사람은 여럿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역시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여전히 우정식의 자리에 히로요시를 가져다 놓아도, 그리고 총독 암살부터 열차 강도까지의 사건에 히로요시가 개입했다고 가정해도 다 말이 되는 것이었다.


국장은 완전히 의심을 풀려면, 히로요시를 조사하는 것이 역시 제일이라고 느꼈다. 철저히 조사한다면 확실하게 그가 정말 불령선인과 한패인지 아닌지 가늠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이 발목을 잡았다. 그는 항상 폐하의 신하이자 국가의 봉록을 받는 자로서 나라에 대한 충성을 제1의 가치로 삼는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사상범인 동생 지로와 제수씨인 나츠미는 지우고 싶은 존재였다. 그는 동생 내외의 존재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인사상의 불이익을 언제나 감수하면서 남들보다 더한 노력으로 이 자리에 올라와야 했다. 그런 그에게, 또다른 오점이 공개적으로 밝혀질 수 있다는 것은 반복하기 싫은 일이었다.


게다가 그의 의심이 괜한 것이라면, 수사를 한다고 요란을 떨고 히로요시를 붙잡아 조사하다가 조카의 출셋길에 지장이 생기면 어찌한단 말인가? 아무 죄가 없어도 수사를 받았다는 이력이 남으면 적지 않은 흠집이었다. 조카가 무고하다고 가정할 시, 그런 흠결을 남길 수는 없었다.


결국 국장은 대안을 택하였다. 그는 머리에 쓴 경찰모를 벗어 옷걸이에 건 뒤, 흔한 중절모를 눌러쓰고 얇은 트렌치코트를 걸치며 경찰 정복을 숨긴다.


국장은 비서 무라타 경부보에게 계속되는 사건으로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서 그러니 잠깐 바람 좀 쐬겠다는 핑계를 대고 나왔다 그가 가는 곳은 하세가와마치에 있는 히로요시의 하숙방이었다.


하숙집 주인은 국장의 얼굴을 잘 알기에 보자마자 굽실거렸다. 국장은 히로요시의 방 열쇠를 요구했고, 집주인은 왜 요구하는지 의아해 하면서도 군말 없이 열쇠를 건내주었다. 국장은 2층에 있는 조카의 하숙방 문을 따고 들어갔다. 12첩짜리 다다미방은 정말 필요한 가구를 제외하고는 화려한 것이라고는 없는 매우 소박하고 단촐한 방이었다. 국장은 조카에게 항상 공직자는 검소해야 하며 나라의 녹 이외에는 받지 말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한 덕이라며 나름의 자랑스러움을 느끼지만, 지금은 그것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었다.


국장은 다 큰 조카 방에서 뭐 하는 짓이냐고 스스로 한탄하면서도, 그의 옷장을 열어젖히고, 책상 서랍을 열고, 책꽃이의 책들을 빼서 하나하나 들춰본다. 그러나 수상해 보이는 것들, 얘컨대 불온문서나 간첩들이 쓰는 난수표 같은 건 발견되지 않았다. 책들도 하나같이 실용서적이나 문학서적이었지 그 안에서 아나키즘이나 사회주의와 관련된 구절이 있는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역시 내가 괜한 의심을 한 걸까?


국장은 어지럽힌 방을 손수 정리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아직 살펴보지 않은 곳이 있었다. 다다미 아래였다. 설마 그 아래 뭔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지만, 본디 조사를 할 때는 가장 찾기 어려운 곳까지 다 찾는 것이 그가 오랜 경찰생활에서 몸애 베인 습관이었다.


그래서 그는 망설임 없이 다다미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런데 다다미를 한 장 뒤집은 순간, 펄럭 하고 그 아래에서 뭔가 날아올랐다. 편지였다.


화들짝 놀란 국장은 아래로 스르르 떨어지는 편지를 낚아채 눈 앞에 가져다 대었다.


그것을 본 순간, 국장의 얼굴이 극심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 절규 어린 분노가 뿜어져 나왔다.


“대체······.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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