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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활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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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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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4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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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224화

DUMMY

학교에서 시간이 안가던 날은 여러 차례 있었다. 애들과 모여 놀러 나가기로 약속한 날도 그랬고, 카라스마 준이치로 백작으로 알던 정우와 같이 단성사에서 채플린의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한 날도 그랬고, 위장을 위해 정상적으로 등교한 뒤 정우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도 그랬다. 그러나 오늘처럼 시간 안나는 날은 없을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앞으로는 이런 기다림 자체가 없을 것이었다.


오늘이 학교에 가는 마지막 날이었으니까.


천 지부장은 말했다. 바로 내일 상하이로 출발할 거라고. 그녀는 한 참의와 성 여사에게 오후까지 학교에 있고, 밤에는 친구 집에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너무 일찍 사라지면 경찰에 실종신고가 접수되며 추적의 대상이 될 터였다. 그럴 일은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지만, 최대한 늦추는 것이 좋은 일이었다. 그러니 오늘 만큼은 등교해야 했다.


구두를 신고 집을 나오니 기분이 싱숭생숭해졌다. 주리가 다니는 고등여학교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추억이 잔뜩 담긴 장소였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이야기였지만, 조선 아이 일본 아이 가리지 않고 뭉쳐서 수다떨고 놀러다니고, 읽고 싶은 책 도서실에서 빌려 잔뜩 읽고, 지금은 미국으로 간 선옥 언니와 같이 거닐며 손짓발짓 애교를 부리던 곳이 이 학교였다. 이제 학교와 완전히 작별하게 되는 것이다.


학교 다음은 집이 될 터이다. 저 화려한 문화주택에서의 삶도 이제는 끝이다. 자신만의 편한 방도, 책장 가득히 꽃힌 책들도,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얼마든지 먹고 입고 싶은게 있으면 얼마든지 입을 수 있던 시절은 내일로 종지부를 찍는다. 청주에 요양 갔을 때 고모 손에 이끌려 가기 전에 보냈던 시절을 생각하면,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시절의 감각이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준비는 다 되어 있었다. 마침내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선 때부터, 학교도 집도 이르던 늦던 속히 떠나보내야 할 장소가 되었다.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 이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결한 환경에 하루하루가 살기 위한 싸움의 연속일지라도, 그 어느 삶보다도 고귀한 삶이. 상하이로 가려면 어린 시절의 추억은 추억으로만 남기고, 미련 없이 끊어버려야 할 것이었다. 누군가의 착취로 이루어진, 누군가의 행복을 빼앗아 이루어진 행복 따위 더는 필요 없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은 남는다. 지금은 다 사이가 멀어졌지만,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에게 작별의 편지 한 장 남길 수 없었다. 그녀가 어디로 떠났는지 암시할 수 있는 어떠한 단서도 남기지 말아야 했다. 그래도 부모님한테는 편지를 남겼다. 한 10일 후에 도착할 일반우편으로 보냈다. 그 즈음이면 이미 딸은 어디론가 실종된 데 겹쳐서 만주 석유개발이란 게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을 쥐어뜯고 있을 것이었다. 편지에서 자기가 왜 떠나는지 충분히 썼다고 생각한다. 물론 부모님은 결코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 다 보였지만.


그러나 그 아쉬움도 끊어 버려야 한다고 마음 속으로 재삼 다짐한다. 이곳에서 보낸 생활의 미련이 남을 수록 상하이에서 힘들어질 거라는 직감이 있어서였다. 끊어야 할 것은 빨리 끊어버려야 했다.


이를 위해 주리가 마음 속에 떠올리는 건, 상하이로 가서 백범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지사들께 인사올리는 장면과 함께, 정우와 함께 단촐한 방에서 보내는 일상이었다. 임정 사람들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부두나 선창에서 하루 벌어 먹고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건물이 다닥다닥 붙은 2층 연립주택 단지에서 산다고 했다. 방 크기가 5~6평도 안되는 곳에서 혼자 살기도 하고 부부끼리 살기도 하고 애들도 같이 지낸다고도 했다. 음식은 작은 화로 위에서 겨우겨우 해야 하고, 몸을 씼고 싶으면 화로에 물을 한 바가지씩 데워서 나무 통에 계속 넣어야 그나마 씻을 수 있다고 했다. 변소는 아예 없어서 변통을 쓰거나 인근 공원의 공공변소를 써야 한다고 했다. 매일 아침마다 황푸강변에서 변통을 비우고 씼는 것도 일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런 삶이라도 괜찮았다. 정우와 한 방에서 같이 지낼 수 있다면, 정우와 한 이부자리에서 불이 타오르듯 서로를 갈구할 수 있다면,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떴을 때 잘 잤냐고 웃음짓는 정우를 먼저 볼 수 있다면, 그런 삶인들 아무것도 아닐 수 있었다.


몇몇 날을 제외하면 잠자리 옆에 그가 없으면 뜨거워진 몸을 알아서 위로하던 날은 끝나리라 생각하니, 자기도 참 음탕하다며 얼굴이 알아서 빨개진다.


주택가를 나와 길거리에 접어들었던 그때였다.


“어맛!”


주리는 누군가 자기 팔을 덥석 붙잡자 놀라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바로 직후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녀가 방금 그렇게 바라던 정우가 눈 앞에 있지 않은가. 주리는 “뭐예요? 아침부터 나 보러 온 거예요?”라며 애교를 떨려 하였다.


그러나 그때, 주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도무지 웃을 일이 아닌 사태가 일어났음을 직감한 까닭이었다. 인력거꾼의 허름한 옷차림을 한 정우의 얼굴은 심상찮게 굳어져 있었다.


“타! 가면서 설명해 줄게!”


“예에?”


주리는 영문을 몰랐다. 등교하자마자 갑자기 인력거에 타라니 이건 무슨 상황인 건가? 그러나 정우의 얼굴이 하도 급해 보여서 여하튼 인력거에 오를 수 밖에 없었다. 정우는 주리가 타자마자 바로 급하게 다리를 놀리기 시작했다. 정우가 하도 급하게 모는 바람에 인력거가 계속 덜컹덜컹 흔들렸다.


“우아아아! 좀 천천히 가요!”


주리는 거칠게 굴러가는 인력거는 처음 타보는지라 놀라서 발버둥을 칠 뻔했다. 그러나 빠르게 가는 인력거보다 더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한 마디가 정우의 떨어졌다.


“장교들이 어제 밤에 옥면옥에 왔었어! 아무래도 널 의심하는 것 같아!”


“예에에에?”


주리는 한번 쿵 하고 떨어진 가슴이 마구 요동치는 걸 느꼈다. 정우는 전날 밤에 옥면옥에서 경보가 왔었다고 알려주었다.


그날, 나카하라 가즈오 경무국장을 히로요시의 하숙방에서 설득한 천 지부장은, 주변에 분산되어 대기하고 있던 제자들을 불러모아 일이 잘 풀렸다고 설명해 주었다. 천 지부장은 자리를 떠나는 척 하며 분 밖에 서서 백부와 조카간 오랫동안 이어진 이야기를 들었다. 절박함이 가득했지만 충분히 논리적이었던 히로요시의 설득이, 그리고 관동군이 꾸미는 뒷공작을 알며 생겨난 회의감이 국장의 목소리를 잦아들게 하는 것 같았다.


국장은 끝내 자신을 체포해 보라는 히로요시의 당당한 말에, “어째서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느냐!”라고 가래 끓는 목소리로 절규하듯 대답했다. 그리고는 어깨에 힘이 빠져 축 늘어진 채 하숙집을 떠나고야 만 것이었다. 어둑어둑해져서 와사등이 켜지는 거리에서, 정우와 형제들 또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경성방송국 뉴스에 출현하여 그들을 보고 어른이 되라고 위풍당당히 선포하던 경무국장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곳에는 그저 강직한 신념에 지극한 회의를 품게 된 처량한 사내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천 지부장은 국장의 이 태도를 보아할 때, 그가 히로요시를 체포할 가능성이 지극히 낮아 보이지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국장을 계속 감시해야 한다고 하였다. 형제들이 히로요시의 안위를 걱정하며 대백루에 돌아온 그 때, 왕 채주가 긴급히 그들을 찾았다.


“대협! 큰일 났습니다!”


“또 뭔 일인데요?”


민호가 볼멘소리를 했다. 작업 대성공으로 좋아하던 차에 갑자기 경무국장이 히로요시 하숙방을 들이쳐서 난리가 났었는데 또 더한 난리가 났다니 참 오늘 하루는 일생에서 제일 길었던 하루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왕 채주의 경고는 그런 생각도 저만치로 치워버리기 충분하였다.


“여러분이 안 계셨을 때, 관동군 장교들이 옥면옥으로 몰려와 한바탕 조사를 하고 갔답니다!”


“뭐요?”


천 지부장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혜월 스님도 놀라 눈이 커다래졌고, 형제들도 숨을 헉 하고 쉬었다. 그들은 후지무라 중위 등이 계속 헌병대에 붙잡혀 심문을 당할 걸로 예상했다. 그들이 해군 예산을 빼돌린 금액을 송금하고 있었으며, 그리고 이시와라 간지 중좌의 지시를 받은 것을 한사코 숨기려고 한다면 최소 하루 이틀 동안은 강도 높은 조사 뒤에야 사건의 전모를 털어놓을 것이라 예상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헌병대에서 조사를 받고 있어야 할 그들이 풀려나서 경성 바닥을 돌아다니고 있다!


“놈들은 어디까지 알았소?”


“그 장교들 중에 대표격으로 보이는 자가 그 방을 보고 갔습니다. 사환들이 말하기로는, 병풍 뒤를 보고 축음기가 그 뒤에 있었다는 것까지 추리해 낸 모양입니다!”


“이런 괴물 같은 놈을 봤나!”


재호가 충격에 빠져 한 소리였다. 사건이 발생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거기까지 도달했단 말인가! 후지무라 중위의 추리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그들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진실에 근접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터였다. 본디 후지무라 중위가 헌병대 조사실에서 나와 돌아다니는 것 부터가 예상을 크게 벗어난 일이었다. 대체 헌병대 담당 수사관이 누구기에 이런 파행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지부장님! 그렇다면 주리가 큰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혜월 스님이 급하게 말했다.


“놈들이 옥면옥에 왔다는 것은, 필경 그곳에서 정보가 누출되었다고 판단했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옥면옥을 추천하고 예약한 주리를 의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말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그들의 해맑고 귀여운 여동생 같은 아가씨가, 적의 손아귀에 떨어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상황이 눈에 선했다. 정우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쥐어진 주먹이 떨리기 시작했다.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다 스치고 지나갔다. 당장 한 참의 집으로 가서 주리를 빼내고 도주하겠다는 충동이 두방망이질을 쳤다.


그러나 정우는 그러면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려 기를 썼다. 그가 흔들리면 형제들도 흔들릴 터였다. 마음을 고요하게, 이성을 유지하고 보다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머리로 쏠리는 피를 내리려 노력하였다.


“옥면옥에서 놈들에게 사람을 붙였소?”


천 지부장이 매섭게 질문하였다.


“그렇습니다. 그자들이 나가자마자 미행을 보냈는데······.”


왕 채주가 잠깐 침을 삼키느라 1초 정도 시간을 보냈지만, 정우 등에게는 그 시간이 수 시간은 되게 느껴졌다. 계속 참던 정우도 이 때만큼은 참지 못했다.


“놈들이 어디로 갔습니까?”


정우가 다그치듯 물었다. 왕 채주의 입에서 바로 대답이 나왔다.


“여관으로 들어갔다고 하네.”


휴우.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요행이도 이 장교들은 오밤중에 한 참의 집으로 쳐들어가 주리를 붙잡을 생각은 안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아직 여유가 있다.”


천 지부장이 말했다.


“그 애가 내일 등교하는 시간에 집 근처에서 만나 데리고 와라. 도주 일정을 더 일찍 잡아야겠다.”


물론 그 임무를 자처하며 손을 든 사람은 정우였다. 정우는 당장 혜화동의 한 참의 집으로 달려가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분명 소란을 일으킬 수 있는 일은 참아야 하였다.


그래서 정우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최대한 수면을 취해 두라는 사부의 지시를 도무지 따를 수가 없었다. 눈을 감았다가는 늦잠을 자버리고 시기를 놓칠까봐. 계속 긴장감으로 약동하는 심장 때문에. 같은 방 쓰는 민호도 마찬가지였다.


“제길. 그 망할 자식을 죽여 버리자고 건의했어야 했는데.”


민호가 이를 갈며 한 말이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새벽 5시가 되자, 정우는 인력거꾼으로 변장할 때 입는 허름한 옷차림을 한 채 대백루를 빠져나와 혜화동으로 향한 것이었다.


주리는 자신이 마침내 다 끝났다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쿨쿨 자고 있던 그때, 어떤 사태가 돌아가고 있는지 듣고 아연실색했다. 후지무라 토비자루가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의심할 거라고는 예측하고 있었다. 옥면옥을 추천하고 예약하여 정보누수를 이끈 사람이 본인이었으니. 그러나 단 몇시간 만에 풀려나와 자신을 추적하는 일은 전혀 생각치도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들켰다는 놀람과 함께 찾아온 건 안심이었다. 위기 경보는 빠르게 도착했다. 예정보다 더 빨리 빠져나가게 되긴 했지만, 어차피 하루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또, 인력거는 정우가 끌고 있다. 정우가 바로 앞에서 땀을 흘리며 같이 있어주는 한, 적에게 끌려갈 것이라는 두려움은 일시적으로만 있었을 뿐이다. 눈 앞에서 들썩이는 그의 등이 어느 산보다도 커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니 걱정이 몰려온다.


“오빠 여기까지 달려 온 거죠? 잠도 제대로 못자고.”


주리는 뒤에서 정우를 꼭 안아주고픈 심정이었다. 혜화동에서 혼마치까지의 거리는 결코 짧지 않았다. 웬만하면 전차를 타고 가야 하는 거리다. 그런데 정우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도보로 2시간은 넘을 거리를 달려와서 또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전차는 탈 수 없다. 불특정 다수에게 이동이 노출되면 안되기에. 그래서 정우는 계속 뒷골목만 골라 주파하고 있었다. 인력거 차양 밖으로 으슥한 풍경이 휙휙하고 지나갔다.


“신경 쓰지 마. 익숙한 일이야.”


정우는 비록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주리가 무사한 걸 확인하자마자 긴장이 적잖이 풀리며 전날부터 쌓였던 피로감이 몰려오기 시작한 터였다. 천 지부장 밑에서 수많은 수련과 여러 사건들을 겪은 그이기에 휴식 없이 버텨낼 수 있었다. 설령 체력이 부치다 하더라도, 인력거 위에 주리가 타고 있는 한 지친다고 느끼기도 힘들 것이다.


주리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하는 정우가 정말인지 고마워서 코가 시큰했다. 세상 어디에 나 만큼 복받은 여자가 또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한 후 거의 30분이 되자 정우의 상의는 따스한 봄날에 인력거를 지고 달리느라 흠뻑 젖었다. 주리는 정우가 너무 힘들진 않을까 걱정되어 천천히 가도 된다고 여러 차례 말했지만, 정우는 계속 괜찮다고만 하였다. 주리는 그냥 자기도 인력거에서 내려 뛰는게 어떨까 생각해 보았지만, 그랬다가 괜히 체력에 부쳐 속도가 쳐져서 민폐만 끼칠까봐 그러지도 못하였다. 상하이 가서 사모님에게 훈련을 받으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안달이 나기도 한다.


이렇게 달리고 또 달린 결과, 둘은 드디어 청계천을 넘어 혼마치 거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인적 드문 곳만 골라서 가느라 다소 돌아가는 길을 택해 시간이 꽤 걸린 터였다. 주리는 정우가 고생하는게 눈에 다 보이니 마음이 영 좋지 않았다.


“이제 괜찮아요. 거의 다 왔으니까 이만 내릴게요.”


주리가 여러 차례 애원하듯 말하자, 정우도 하는 수 없이 멈춰섰다. 주리는 내리자마자 손수건을 빼어들고 정우 얼굴을 닦아 준다. 비오듯이 흐르던 땀이 손수건에 닦여 사라진다.


“고마워. 많이 낫네.”


흐르던 땀을 닦을 새도 없이 달리기만 했던 정우는, 주리가 부드럽게 얼굴을 닦아주자 빙그레 웃는다. 주리는 아직 골목 안임을 알고 신경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까치발을 들어 정우 입술에 내내 자기 데리고 달린 보답을 쪽 하고 해 주었다.


이제 대백루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더 정우가 고생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주리는 지금 이 시간에 설마 누가 자기가 여기 있는줄 알겠냐고 생각하며, 마음이 가벼워진 채 대로변에 들어섰다.


그때였다 뒤에서 부우웅 하고 차가 고속으로 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익!


“엄마얏!”


주리의 바로 앞에서 택시 한 대가 거칠게 멈춰섰다. 브레이크를 거세게 밟았는지 타이어가 지면과 마찰하는 소리가 귀청을 찢었다.


웬 택시가 저렇게 난폭운전을 하냐고 생각한 그 순간, 주리는 안정적으로 뛰던 심장이 급격히 내려앉으며, 그 자리에 얼어붙고야 말았다.


“당장 타라.”


운전석이 턱 하고 열리더니 누군가 나왔다. 그는 택시기사가 아니었다. 거의 사람 죽이기 직전의 이글거리는 눈이 주리를 노려본다.


“당장!”


나직히 윽박지르는 그는, 주리의 사촌오라비 오재두 경부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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