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PnP의 서재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웹소설 > 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jybero
작품등록일 :
2017.07.28 19:50
최근연재일 :
2017.09.13 17:01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1,960
추천수 :
8
글자수 :
225,553

작성
17.07.29 03:57
조회
42
추천
0
글자
20쪽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2장. 사회생활부, 활동 시작합니다! 04.

DUMMY

다음 날, 예정되어 있던 주민센터 분들과의 미팅을 위해 경석과 사회생활부 부원들 그리고 사신은 미리 학교로 모였다가 센터로 향했다. 안내된 곳을 따라 약속된 회의장소로 들어가니 최 선생님과 민하가 이미 자리에 앉아있었고, 주민센터 관계자로 보이는 분도 한 분 계셨다. 예상했던 대로 다른 강영고 부원들은 오지 않은 듯 했다.

"안녕하세요, 장신고 학생들인가요?"

"네, 네...... 안녕하세요, 장신고 사회생활부 부장 김 경석입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반가워요. 저는 주민센터 대외협력부장 김 영선이라고 합니다. 일단 다들 앉아요. 담당이신 이 선생님과는 면식이 있는데 학생들은 다들 처음 보는 분들뿐이군요."

경석과 나영, 가희, 미리가 자리에 앉고 사신도 자리를 잡았다.

"모두 모였으니 시작해보죠. 오늘 여러분들을 부른 건 앞으로 여러분들이 진행하실 봉사활동에 대한 내용과 시간 편성, 그리고 여러분들이 맡으실 아이들에 대한 설명을 해 드리고자 해요. 우선......."

봉사활동에 대한 설명은 어제 미팅에서 대부분 이들끼리 다루었던 내용들이었다. 시간 편성은 주5일 하루 3시간에 한 명이 두 아이를 맡아 가르치고, 매일 오후 1시 ~ 4시 사이이므로 그 안에서 부원들끼리 합의한대로 시간을 자유롭게 편성할 수 있게 하였다. 민하 쪽은 이미 다 짜 놓은 듯 했고, 경석네도 전날 밤 단체 톡방에서 시간과 과목에 대해 토의를 했었다.

부장이어서 모범을 보여야 하고 어차피 딱히 할 일도 없었던 경석은 5일 중 4일을 참석하기로 했다. 그 4일은 세 여학생이 하루씩 돌아가면서 한 번씩 더 맡고 미리가 한 번을 더 맡았으며, 남은 1일은 가희와 나영이 나누어 맡았다. 미리는 협의 과정에서 '행복한 여름방학에 저 녀석 얼굴을 일 주일에 두 번씩이나 봐야 한다고?'라며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기색을 내비쳤지만 그 날 가능한 사람이 미리 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대로 합의했다. 이렇게 경석 4회, 나머지 인원이 2회씩 해서 일 주일간의 봉사 시간표를 채웠다. 이 부분은 두 학교 대표가 이미 시간 배치는 모두 마쳤음을 보고하여 금방 넘어갔다.

"여러분들의 봉사 활동에 대한 의지가 강렬해 보여서 기쁘군요. 그럼 이제 여러분들이 맡게 되실 이곳의 아이들에 대해 설명해드릴게요."

김 부장님이 숨을 고르더니 말씀을 이어가셨다.

"이곳의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기초생활수급자거나 차상위계층인 가정의 아이들이 대부분이에요. 일반적인 아이들처럼 학원을 다니면서 배우기는커녕 학교 다니기도 힘들 정도의 아이들도 많아요. 그런 아이들 중 이번에 저희는 특히 어려운 아이들 중에서도 공부에 어느 정도 의지가 있는 아이들을 선별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하루에 네 분씩 오시는 것에 맞추어 네 명의 아이들을 뽑아놓았어요. 한 아이들씩 자세히 설명해드릴게요."

김 부장님은 켜 놓으신 노트북을 일동에게 보여주며 말하셨다. 노트북 화면에는 한 꼬마 여자아이의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우선 이 아이는 김현숙, 현숙이고 7살이에요. 이곳 센터의 아이들은 대부분 초등학생들이기에 나이는 어린 편이지만 아이 성격이나 태도만큼은 의젓해서 이곳 센터에서 일하시는 분들 사이에서는 ‘7살 애어른'으로 통할 정도죠. 학습에 대한 의지도 강해서 많이 배우고 싶어하고 책도 많이 읽는 아이에요. 똑똑하기도 똑똑하고요. 현숙이에게는 국어와 책 읽기를 가르쳐주시면 되세요."

김 부장님께서는 노트북을 다음 화면으로 넘기셨다. 이번에는 한 남자아이의 사진이 나왔다.

"이 애는 김창석, 창석이에요. 나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고요. 놀기도 잘 놀고 공부하기도 열심히 하는, 뭐든지 열심히 하는 밝고 성실한 애에요. 머리가 좋지는 않지만 배우는 걸 좋아해서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어요. 창석이는 수학을 가르쳐주시면 되세요"

부장님께서 다음 화면으로 넘기시자 다시 남자아이의 사진이 나왔다.

"이 애는 정일혁, 일혁이고 초등학교 5학년이에요. 이곳 센터에서 제일 나이가 많고 의젓하면서도 리더십 있는 아이여서 센터 아이들의 반장 역할을 하고 있어요. 공부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배워야 한다는 책임감이 커서 이번 프로그램에 선정된 아이에요. 일혁이는 영어를 배우고 싶어해요."

마지막 화면에는 다시 여자아이의 사진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이 아이는 강희정, 희정이고 초등학교 4학년이에요.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이지만 똑 부러지는 면도 있고 현숙이처럼 정신적으로는 많이 성숙한 아이죠. 희정이는 특별히 따로 말씀드릴 건도 있지만 그건 맡게 되실 분이 결정되면 따로 말씀 드릴게요. 희정이는 과목이 좀 특별한데, 한자와 한문을 가르쳐주시면 되세요."

부장님의 설명이 끝나자 민하가 손을 듣고 질문했다.

"부장님. 그러면 저희 쪽에서 과목을 각각 누가 맡을 지 결정해서 알려드리면 될까요?"

"네, 여러분들께서 맡으실 과목과 시간표에 따라 아이들의 일정을 비워놓을게요. 어차피 아이들도 센터도 지금은 방학 기간이어서 시간들이 많으니 부담 없이 결정해주시면 되세요"

경석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경석은 따로 잘한다는 과목은 따로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 아이의 한자, 한문 과목은 조금 특별해 보였다. 보통은 수학이나 영어를 가르치는 게 일반적일 텐데, 한자를 배우고 싶어하는 초등학생이라니 조금은 특이하다고 느껴질 만은 했다.

"그럼 질문이 더 없으면 오늘 미팅은 이 정도로 할까요? 자세한 것이나 추가적인 질문은 언제든 이 번호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어차피 지금은 아직 시작 전이라 모든 게 안개 속이고, 활동을 어느 정도 하시다 보면 서서히 윤곽이 잡힐 거에요."

김 부장님이 자신의 명함을 나눠주는 것으로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생각보다 금방 끝났으나 아직 할 일은 남아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나오면서 경석이 민하에게 조용히 물었다.

"역시 너만 왔구나....... 최 선생님께는 잘 말씀 드렸어?"

"네, 뭐, 어떻게든......."

민하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보다 선배님께서도 많이 참여하시네요? 저랑 자주 보시겠어요."

주5일 중 5번을 모두 참석하는 민하였다. 역시 진심으로 봉사활동에 임하는 사람다운 자세였다.

"그러네, 앞으로 잘 부탁해. 그런데 너희는 과목도 정한 거야?"

"아직요. 이제 얘기해봐야죠."

민하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경석은 특별히 맡고자 하는 과목이 없었기에 그냥 다른 아이들이 원하는 걸 가져가고 남은 걸 맡고자 해서 딱히 걱정되지는 않았다.

"수고들 했다. 카페에서 커피나 한 잔 하고 가지들 그래?"

사신이 제안했다. 모두들 찬성했고, 최 선생님만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가셨고 일동은 근처 카페로 향했다. 경석도 다시 일어날 여학생들의 수다 타임과 거기에 끼지 못할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지만 사신의 강요로 참석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각자 누굴 맡고 싶은지 이야기를 들어볼까?"

경석은 계획대로 여학생들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선수를 쳤다.

"따로 원하는 사람 없으면 책 읽기는 내가 맡아보고 싶어!”

가희가 제일 먼저 말을 꺼냈다.

"나는 영어나 수학 중에 아무거나. 잘 하는 건 수학이야, 참고로."

미리가 이어서 말했다.

"나는, 영어가 좋아! 잘 하는 건 아닌데 가르쳐보고 싶어!”

나영도 의견을 냈다.

"저희와 의견을 맞추셔야 되니 저는 애들한테 물어볼게요."

민하도 자기 부원들에게 문자를 돌렸다. 민하와 경석의 의견 조율에 따라 각 일자에 대한 배분이 맞추어졌다. 민하네 동아리는 예상대로 민하는 5번, 다른 부원들이 다른 날들을 돌아가면서 하기로 되어있었다. 다만 민하에 따르면 자기네들은 딱히 맡고 싶은 게 없고 뭐든 다 괜찮으니 알아서 결정한 다음 남은 날들과 과목을 달라는 식으로 요청해왔다. 과목 배치에는 편해졌지만 여전히 비협조적인 태도에 경석을 포함한 일동은 눈살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식으로 과목 배치까지 완료가 되고 나서 여학생들의 수다가 시작되었고, 경석은 간간히 물어오는 질문에 간단히 답하면서 조용히 커피만 마셨다. 사교성을 기르기 위해 모인 동아리 부원들인가 싶을 정도로 무서운 친화력이었다. 나영이 처음 미리와 가희를 섭외하면서 경석에게 이야기하였듯 모두 직접 말을 섞어보면 겉으로 보이는 거와는 다르게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들 처음 마음을 여는 것은 어려울 지 몰라도, 한 번 친해지고 나면 누구보다도 그 관계를 소중히 하는, 그런 마음씨 좋고 착한 평범한 사람들일 뿐인 것이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민하가 먼저 일어나면서 자리가 파하자, 모두들 며칠 뒤부터 시작할 봉사활동에 대한 의지를 다잡으면서 헤어졌다. 경석도 어떤 식으로 아이를 가르칠지 생각하고,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제대로 못 가르치지는 않을까 걱정하여 한자에 대해 좀 더 공부하기도 하고, 자신이 맡을 아이가 어떤 아이일까 기대하기도 하는 등 여러 감정이 뒤섞인 채로 봉사활동 시작일까지의 시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부원들과 이런저런 상의도 하면서 결속력도 다잡았다. 물론 자신의 병 탓에 일어날 돌발 상황들에 대한 주의와 대비를 철저히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6일 뒤인 8월 1일 월요일, 드디어 봉사활동 첫 날이 찾아왔다.


*


첫 활동은 경석과 나영, 민하와 강영고 쪽의 여자 부원 1명이 하기로 되어있었다. 경석과 나영은 미리 먼저 만나서 같이 가기로 하였다. 나영은 일혁이라는 아이를 맡아 영어를, 경석은 희정이라는 아이를 맡아 한문을 맡기로 되어 있었다. 둘 다 어떻게 무엇을 가르칠지에 대한 계획은 철저하게 세워둔 탓에 활동 자체에는 걱정이 없었으나 경석은 여전히 자기 병에 대한 걱정이 되었다. 어린 아이들인데다 가르치려면 가까이 붙어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뭐가 그리 걱정 많은 표정이야? 애들이 처음 보면서 쫄겠다. 인상 좀 펴!”

"으, 응......."

"혹시 병 때문이야?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네. 그 이후로 뭔가 진전은 없었어?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이라던가?"

"음, 딱히...... 너 말고는 아직 면역인 사람도 없고. 다만 요즘 들어 말을 더듬거나 몸의 거부반응이 예전만큼 심하지는 않아. 익숙해진 건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건지는 불확실하지만."

"그래......생각보다 힘드네, 그치?"

위로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나영이었다. 경석은 자신을 위해 힘써주는 나영을 위해서라도-물론 반은 도시락 때문이겠지만-자신이 긍정적이고 웃으면서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저런 얘기들을 하며 센터에 도착한 경석과 나영. 대기실에는 민하가 먼저 와 있었다. 약속된 활동 시작 시간인 1시가 되려면 아직 10분 정도가 남았지만 셋은 미리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나머지 한 명은 어디 있는 거야, 민하야?"

나영이 불현듯 민하에게 물었다.

"아, 10분정도 늦는다고 하네요."

"첫날부터 지각이라니 어떻게 돼먹은 거야. 생각할수록 너무하네."

경석이 살짝 화를 내가 민하가 대신 진정시켰다.

"절 봐서라도 참아주세요, 선배. 제가 대신 사과 드릴게요."

"민하 네가 사과를 왜 하고 그래......"

경석이 머쓱해져서 말했다.

경석과 나영, 민하는 준비된 교실로 들어갔다. 그 곳에는 이미 사진으로 한 번 봤던 얼굴의 아이들과 김 부장님이 계셨다.

"오, 어서 와요! 자 얘들아, 일어나서 선생님들께 인사해야지?"

김 부장님이 아이들에게 인사를 시키자 모두들 일어나 셋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응, 그래. 반갑다. 앞으로 잘 부탁할게."

경석은 인사하면서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살펴보았다. 제일 어리지만 의젓한 여자아이 현숙, 한 눈에 봐도 활달하고 적극적으로 생긴 활짝 웃고 있는 남자아이 창석, 센터 아이들의 반장답게 떳떳하고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남자아이 일혁, 그리고.......

"응?"

경석은 마지막으로 시선이 닿은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 아이는 경석의 시선을 피하며 안절부절 못했다. 그 아이가 사진으로 본 희정이었다. 희정이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자 김 부장님이 나섰다.

"희정이가 낯가림이 좀 있고 조용한 애라, 남자 선생님이 오신다니까 긴장했나 봐요. 자, 희정아. 선생님 친절하고 좋으신 분이니까 같이 잘 수업 받자고 인사해야지?"

김 부장님에게 이끌려 희정이가 경석의 앞으로 왔다. 반 강제로 끌려온 아이는 짧은 단발머리에 초등학생다운 작은 체구지만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아이였다. 김 부장님 말씀대로 똑 부러지는 성격을 가진 것처럼 보였으나 아직까지 눈을 잘 못 마주쳤다(하지만 이것은 경석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쭈뼛거리면서 경석에게 조용하게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응, 반갑다. 네가 희정이구나? 앞으로 네게 한자를 가르칠 김경석 선생님이야. 편하게 선생님이라고 그냥 불러."

경석은 잘 모르는 아이지만 아이를 대하는 건 비슷한 나이대의 또래들이나 어른들을 대할 때 보다 병의 증세가 훨씬 약해지고 마음도 편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그 덕에 오랜만에 병에 관련해서 텐션이 오른 상태였고 오랜만에 적극적으로 나서보는 경석이었다.

그 직후 늦는다던 강영고의 다른 부원이 헐레벌떡 들어오고 4명의 선생님과 4명의 학생들의 짤막한 자기소개 시간이 있고 나서 본격적인 교육 봉사활동이 시작되었다.


*


4명의 학생들, 경석과 나영, 민하와 강영고의 부원 한 명이 진행하는 교육 봉사활동은 꽤나 커다란 교실 한 군데에서 이루어졌다. 4개의 책상을 각 코너에 배치해놓고 1:1로 집중 지도해주는 방식이었다. 민하네와 상의한 대로 매일 오는 민하와 경석은 한 아이를 매일 전담하고, 다른 아이들은 남은 인원들이 돌아가면서 맡게 되어 희정이라는 아이는 방학 내내 경석이 마주고 가르치게 될, 경석에게 특별한 아이였다.

"한자를 배우고 싶다고?"

“....... 네."

아직은 경석을 대하는 게 서툰 희정이가 대답했다.

"특이하다. 보통 이런 기회가 오면 수학이나 영어처럼 비중 있는 걸 배우려고 하는데 말야."

"......아버지가......한자를......가르치시던......분이셔서요......"

"아버지께서? 그렇구나....... 그럼 한자를 배워보자는 것도 아버지의 뜻이야?"

"아뇨....... 아버지는 이미......돌아가셨고......"

"아, 그......그렇구나......미안......."

첫 대화부터 잘못 짚어 꼬여버린 경석이었다.

"아버지가 하시던 것처럼....... 이어서 서당을....... 하고 싶어요......."

"서......서당? 요즘 시대에 서당이 있어?"

"처......청학동이라는......곳에......."

경석도 한 번 정도는 들어본 곳이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현대 사회에서 벗어나 서당에서는 경전과 한문을 공부하며 교양과 미덕을 쌓는 곳이라는 것 같았다.

"아버지께서 청학동 서당에서 한자를 가르치시던 분이시니?"

"네......"

꽤나 대견한 아이였다. 아직 초등학교 4학년에, 아버지를 여의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서당을 하고 싶다니.......

"기본은......한자니까요....... 어느 정도는....... 하는데......."

"응, 왜 배우려는 지는 알겠어. 그럼, 한자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우선 선생님한테 알려줄래?"

“....... 2급이요......."

"응? 뭐라고?"

"한자 급수 시험이....... 2급이에요....... 기본은 하고....... 있어요......."

“2......2급?"

경석은 며칠 전 한자에 대해 알아보면서 급수 시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아직 초등학교 4학년에 센터에 맡겨져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도 힘든 희정이가 한자 2급이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피는 못 속인다고, 재능이 확실히 있는 듯 보였다. 그에 비해 경석은 해남에서 살 때 근처의 나이 있으신 할아버지들께서 자주 쓰셔서 어깨 너머로 배워온 게 전부였고, 급수는커녕 이번 봉사활동 때문에 다시 책을 꺼내 들고 기초적인 부분들만 공부한 상태였다. 오히려 희정이가 경석에게 한자를 가르쳐야 될 판이었다.

"그 정도면 기본이 아니라 수준급인데......?"

경석은 당황했다. 김 부장님께서 사실 미리 귀띔해주셨었다. 희정이의 수준이 꽤 높으니 각오해야 할 거라고....... 그러나 경석은 '초등학교 아이가 수준이 높아 봤자 어른 수준 정도 하겠어?'라는 안일하고 어리석은 생각으로 초등 심화 과정의 한자들을 공부해 갔다. 희정이 앞에서 경석이 공부한 것들을 가르치려는 건 말 그대로 맹자 앞에서 글자 읽기가 될 게 뻔했다.

'어, 어떡하지......'

경석은 어리석은 자신을 탓했지만 이미 수업은 시작되었고, 그렇다고 이제 와서 과목을 바꾸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 일단 그는 첫 수업인 만큼 오리엔테이션과 서로 알아가는 데 시간을 쓰고 내일 수업 전까지 어떻게든 희정이의 눈높이에 맞게 다시 공부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기로 했다.

"오, 오늘은 우선 첫 수업이니까......."

경석은 조심스레 희정이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오늘은 희정이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공부할 지 계획을 짜는 데 시간을 써 볼까"

"네, 선생님."

그 이후로는 경석이 대하기 힘들었던 희정과 친근하게 접근하려던 경석의 입장이 뒤바뀌었다. 경석이 몇 가지 어려운 한자를 물어보자(어렵다고 해 봤자 초등학생 기준이지만) 희정은 획순 하나 틀리지 않고 멋있는 필체로 적어내었다. 일부는 한자 형성의 유래까지 설명해주는 등, 누가 제자고 누가 선생인지 분간이 안 가는 순간이었다. 경석은 급하게 좀 더 어려운 한자들을 핸드폰으로 조사해 희정의 수준을 알아보고자 했다. 그 결과, 희정은 확실히 급수로 따져서 2급 수준까지의 한자들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희정이 목표로 잡아야 할 것들은 그 위에 있는, 1급 수준의 한자들이었다.

"음, 네 말대로 2급 한자들은 다 알고 있는 것 같네. 그러면 이번 공부에선 1급 수준의 한자들을 목표로 하는 게 좋을까?"

"좋아요! 저도 빠른 시일 내에 1급을 따서 완전정복을 꿈꾸고 있었어요!”

어느덧 한문에 대한 얘기로 불타오른 희정이는 아까까지만 해도 말을 더듬던 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눈을 빛내면서 경석과 대화를 알고 있었다. 반면 경석은 7급 수준의 선생이 2급 수준의 제자에게 1급 수준을 가르쳐야 하게 된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당황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재연재 공지! 17.08.30 17 0 -
33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3장. 사회생활부 부원들의 시원찮은 학교생활 - 11. 17.09.13 23 0 11쪽
32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3장. 사회생활부 부원들의 시원찮은 학교생활 - 10. 17.09.06 37 0 9쪽
31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3장. 사회생활부 부원들의 시원찮은 학교생활 - 09. 17.08.30 39 0 11쪽
30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3장. 사회생활부 부원들의 시원찮은 학교생활 - 08. 17.07.31 66 0 22쪽
29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3장. 사회생활부 부원들의 시원찮은 학교생활 - 07. +1 17.07.30 52 1 14쪽
28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3장. 사회생활부 부원들의 시원찮은 학교생활 - 06. 17.07.30 61 0 15쪽
27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3장. 사회생활부 부원들의 시원찮은 학교생활 - 05. 17.07.30 99 0 11쪽
26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3장. 사회생활부 부원들의 시원찮은 학교생활 - 04. 17.07.30 39 0 14쪽
25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3장. 사회생활부 부원들의 시원찮은 학교생활 - 03. 17.07.29 63 0 16쪽
24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3장. 사회생활부 부원들의 시원찮은 학교생활 - 02. 17.07.29 64 0 19쪽
23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3장. 사회생활부 부원들의 시원찮은 학교생활 - 01. 17.07.29 63 0 13쪽
22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2장. 사회생활부, 활동 시작합니다! 07. 17.07.29 54 0 17쪽
21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2장. 사회생활부, 활동 시작합니다! 06. 17.07.29 46 0 16쪽
20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2장. 사회생활부, 활동 시작합니다! 05. 17.07.29 50 0 14쪽
»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2장. 사회생활부, 활동 시작합니다! 04. 17.07.29 43 0 20쪽
18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2장. 사회생활부, 활동 시작합니다! 03. 17.07.29 43 0 19쪽
17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2장. 사회생활부, 활동 시작합니다! 02. 17.07.29 41 0 19쪽
16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2장. 사회생활부, 활동 시작합니다! 01. 17.07.29 79 0 15쪽
15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1장. 여름, 시작, 성공적? 13. 17.07.29 42 0 13쪽
14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1장. 여름, 시작, 성공적? 12. 17.07.29 44 0 14쪽
13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1장. 여름, 시작, 성공적? 11. 17.07.29 64 0 14쪽
12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1장. 여름, 시작, 성공적? 10. 17.07.29 44 0 12쪽
11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1장. 여름, 시작, 성공적? 09. 17.07.29 50 0 17쪽
10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1장. 여름, 시작, 성공적? 08. 17.07.29 45 0 19쪽
9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1장. 여름, 시작, 성공적? 07. 17.07.29 50 0 17쪽
8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1장. 여름, 시작, 성공적? 06. 17.07.29 54 0 15쪽
7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1장. 여름, 시작, 성공적? 05. 17.07.29 51 0 13쪽
6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1장. 여름, 시작, 성공적? 04. 17.07.29 73 0 13쪽
5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1장. 여름, 시작, 성공적? 03. 17.07.29 65 0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