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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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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bero
작품등록일 :
2017.07.28 19:50
최근연재일 :
2017.09.13 17:01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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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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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29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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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2장. 사회생활부, 활동 시작합니다! 03.

DUMMY

"......이건 우리 계획이랑 다르잖아......."

나영이 경석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 어쩌겠어, 억지로 붙잡을 수도 없고......."

상황은 이랬다. 경석을 포함한 사회생활부 부원들은 미팅의 뒤풀이 자리에서 가볍게 저녁을 먹으며 '고교생 토크'를 하기 위해, 그를 통해 그들과 친해지고 교류를 두텁게 하기 위해, 그리고 그걸 통해 동아리 목적에 맞는 1보 전진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사신과 말을 맞추어 뒤풀이 자리를 마련했다. 그래서 그들은 계획대로 고깃집으로 향하려 했다. 그런데.......

"아, 죄송합니다. 학원이 있어서......."

"저도......"

"저는 부모님이 늦게 가면 혼내셔서요, 죄송합니다."

강영고 봉사부의 부장인 민하를 제외한 강영고 부원 3명이 모두 뒤풀이 자리에 나오지 않고 먼저 집에 가 버린 것이다. 덕분에 구성은 민하와 사회생활부 부원 4명, 그리고 사신이 되었다.

"너무들 한다, 그치?"

식사를 기다리며 미리가 민하에게 말했다.

"하하, 다들 바쁜 친구들이어서요, 제가 대신 사과 드릴게요."

민하가 어색하게 친구들을 감쌌다.

"아냐, 민하가 사과할 게 뭐 있어. 그리고 그 아이들도 바빠서 그런 거고......우리가 붙잡을 수도 없는 거고......."

가장 기대하고 있었던, 그래서 실망도 가장 큰 듯 보이는 가희가 말했다.

"그, 그래. 민하가 와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걸. 민하도 안 왔으면 우리끼리 뭘 했겠어?"

나영도 민하를 격려했다.

"그나저나......."

가만히 듣고 있던 경석이 끼어들었다.

"내 느낌이기는 한데......그 애들, 딱히 이번 활동을 반기지 않는 것 같아 보이던데......"

"나, 나도 그런 느낌이 났어!”

가희가 거들었다. 경석은 자기만 느낀 게 아니라는 점에서 자신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나만 느낀 게 아니었구나......."

심지어 나영도 그랬다. 미리도 다르진 않았다.

"눈치가 빠르시네요, 선배님들......."

민하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이건, 봉사활동이랑 좀 다른 이야기에요. 그냥 제 푸념일 수도 있지만요."

민하가 한숨을 팍 쉬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희 학교는 원래 내신을 잘 받기 힘든 사립을 피해 진학을 위해 전략적으로 오는 우수한 학생들이 많은 공립 학교에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 대부분의 생각이 입시나 출세로 가득 차 있죠."

"뭐, 그건 우리 학교도 그렇고 그게 평범한 거 아냐?"

민하가 고개를 숙인 덕에 민하를 보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경석이 말했다.

"그렇긴 하죠. 다만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도 실적을 위해서 학생들을 입시 쪽으로 밀어주고 있어서, 학업 관련 동아리가 아니면 설립 인가가 잘 떨어지지 않았어요."

민하는 물을 한 잔 들이키고 말을 이었다.

"저는 진심으로 남을 돕는 게 좋아서 중학교 때도 봉사 동아리를 했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에 오니 봉사 동아리가 없어서 학교 측에 설립 인가를 부탁했죠. 원래는....... 인가가 안 날 뻔한 걸 지금 고문이신 최 선생님께서 힘써주셔서 어찌어찌 설립은 되었어요."

"최 선생님과 얘기해보니, 그것도 우수한 학생들 스펙과 활동 내역에 내용을 채워주기 위한 뒷목적이 있어서 가능했다더군."

"......네, 맞아요. 정말 봉사하려는 동아리가 아니라,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봉사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인증해주고 생활기록부에 적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 인가가 떨어졌어요. 요즘 명문애데 들어가려면 봉사활동 같은 스펙이 필요하나 봐요....... 하지만 거기까지는 괜찮았어요, 어쨌든 제가 열심히 활동하고 부원들이 따라와준다면 본질을 잃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부원들이 저 모양이라는 거군."

경석은 그제서야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원들은, 학교 측의 목적에 맞게 우수한 아이들만 들어왔고, 걔네들도 애초부터 진심으로 봉사활동을 할 생각보다는 입시에 필요한 봉사 시간을 채워서 자기 스펙에 무언가 하나라도 더 적어보려는 목적으로 여길 들어왔어요. 그러니 활동이 제대로 될 리가 없죠."

민하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경석은 1학기 동안 민하가 얼마나 고생했을까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그래도 처음에는 애들을 믿고 열심히 했는데, 너무 비협조적이어서......생각만큼 잘 안 풀리고 요즘은 저 자신의 열의도 식어가는 것 같아 걱정이에요......"

"그건 안됐네. 상황은 대충 이해했다."

사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강영고 봉사부 담당이신 최경호 선생님께서 오실 거야. 그 때 이 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도록 하지."

"아......아니에요, 선생님께는 이 일을 알리고 싶지 않아요. 기껏 제 부탁에 힘써주셔서 겨우 봉사 동아리를 세웠는데, 활동도 이런 느낌이라는 걸 아시면 실망하실 거에요. 절 도와주신 최 선생님께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아서요......"

"그래도 선생님께서는 알고 계신 거 아냐?"

"제가 활동 내용을 선생님께 보고드릴 때.......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서 보고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진심으로 봉사 활동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려 한다고요....... 그래서 아마 모르실 거에요."

민하의 말에 다들 암묵적으로 최 선생님께는 비밀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봉사 활동에 진심으로 임하는 민하를 보고 자신들도 봉사 자체는 부가적인 목적이고 제1목적은 다른 학교의 다른 학생들과 교류를 가지면서 사회성을 기르는 것임을 떠올리고는 약간 뜨끔했다. 그래도 이들은 강영고의 다른 봉사부원들과는 달리 봉사활동에 진심으로, 적극적으로 임하려는 마음만은 진짜였다. 그 사실로 자신들을 위로했다.

"어? 선생님! 여기에요, 여기!”

다들 어색하고 민망해하는 상황에서 민하가 누굴 발견했는지 입구 쪽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다들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입구에 계씬 분은 건장하고 잘생긴 한 젊은 남성이었다. 선생님이라고 불린 그 남성은 손을 흔들며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아, 다들 있었구나! 늦어서 미안해. 난 강영고등학교 봉사동아리 고문을 맡고 있는 최 경호라고 해. 이정희 선생님은 미리 뵌 적이 있고, 너희들이 장신고등학교 사회생활부 학생들이구나? 정희 선생님한테서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잘 부탁해!”

인사하는 걸 보니 성격도 쾌활한 한창 나이대의 선생님인 듯 느껴졌다. 경석을 포함한

사회생활부 일동은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최경호 선생님. 장신고 사회생활부 부장 김경석입니다. 이쪽의 민하로부터 좋은 분이라고 이야기 들었습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해서 눈을 피해 더듬지 않고 인사할 수 있었던 경석이었다.

"오, 네가 그 부장이구나! 잘 부탁한다! 하하!”

최 선생님께서 악수를 하고자 손을 뻗으셨다. 경석은 그 순간 정말 아무 생각도 없이 최 선생님께서 뻗으신 손을 잡았다. 잡고 나서 경석은 후회했다. 그에게는 희귀병이 있어서, 악수 같은 걸 하면 상대의 손을 뿌리칠 게 뻔했다. 경석은 이미 최 선생님에게 잡힌 손을 놓을 수가 없어 큰일났다고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고 병의 반응을 기다렸다. 동시에 앞으로 민망해질 그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지 두뇌를 풀가동하여 방법을 찾았다.

“....... 어?"

경석의 손은 최 선생님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뿌리치지 못했다. 자신의 팔은 뿌리치려 움직였는데 최 선생님의 완력이 너무 센 나머지 선생님께서 악수로 흔드는 동작 때문에 뿌리치려는 게 눈에 잘 띄지 않았던 것이다. 경석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음부터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서로 최 선생님께 자기소개를 하며 인사를 마친 후, 본격적인 대화 타임이 시작되었다. 운을 먼저 띄운 건 최 선생님이었다.

"내가 오늘 일이 좀 있어서 회의에 참석 못해서 미안해. 회의 내용 좀 간단하게 브리핑해줄래?"

"네, 선생님!”

민하가 오늘 미팅에서 다루었던 내용들에 대해 보고를 했다. 최 선생님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말을 꺼냈다.

"음......뭐, 무난하게 잘 진행된 것 같네. 그런데 민하, 너 혼자야? 다른 애들은?"

"네? 아, 다들 바쁘다고 먼저 갔어요......하하."

"음, 그래? 하긴 다들 공부 잘하는 애들뿐이라 학원 가느라 바쁘겠지. 그래도 이런 자리는 시간을 내서 참석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어차피 이제 방학이고......"

최 선생님께서는 약간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으시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어서 주문이나 해요! 저 배고파요!”

나영이 분위기를 전환시켜보고자 먹는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 그래! 어서 주문들 해! 아까도 말했지만 오늘은 내가 내는 거니 내키지 말고 맘껏 먹도록!”

사신이 자신의 가슴을 팍팍 치며 자랑스레 말했다. 경석은 사신이 돈이 어디서 나서 이런 걸 사나 싶었지만 사신인 만큼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돈을 만들어내는 것쯤은 간단하겠지......라고 생각했다.

고기가 나오고 최 선생님께서 고기를 굽기 시작하면서 대화는 사회생활부 부원들이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요즘 생활이나 근황에 대한 가벼운 잡담으로 흘러갔다. 물론 대상이 민하와 최 선생님 둘 뿐이었던 건 예상 밖이었지만......

"그래서, 그 영화를 이번에 보고 왔는데 말이야....... 굉장히 좋은 결말이더라고!"

"우와! 저도 그거 보고 싶었는데!”

"민하야, 그럼 나중에 시간 내서 같이 보러 갈까? 나도 그거 보려고 했었어!”

"정말이요? 저야 당연히 환영이죠!”

분위기는 밝고 의도한대로 무난하게 흘러가고 있는 듯 했다. '근황 토크'가 사회력을 기르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었다. 걱정했던 예상과는 달리 기적적으로 순풍을 타고 있었다.

“너도 같이 보러 갈래?”

나영의 화살이 경석에게 날아왔다.

“응? 어, 어어······. 나도 그 영화 보고 싶긴 했는데, 괜찮아, 내가 가도? 괜히 여자애들 사이에 껴서 부담될 것 같은데······”

“지금도 끼어 있으면서 뭘 새삼스레 그래.”

“그래요, 선배님! 선배님도 같이 가요! 저도 봉사 끝나고 한 번 정도 시간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응? 어, 그······그래······그러······.자······.”

갑작스런 민하의 기습에 당황해서 또 더듬는 경석, 아무래도 작전은 경석 이외의 사람들에게만 성공적인 것 같았다.

"자, 그럼 오늘은 이만 하고 가볼까? 내일도 주민센터 관계자 분들과 미팅이 있으니까 너무 늦게까지 있을 수는 없지."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쯤 사신이 말을 꺼냈다.

"아, 그러고 보니 내일 미팅은 우리만 하는 건가요? 강영고 쪽 분들은 안 오나요?”

가희가 물었다. 최 선생님이 가희의 물음에 답했다.

"물론 우리도 가야지! 내일은 나 포함 봉사 동아리 전원이 너희와 같이 참석하게 될 거야."

웃으며 말하는 최 선생님이었다. 일동은 그 순간 민하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

민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표정이 밝지 않은 걸 본 장신고의 사회생활부 전원 내일 미팅도 순탄치 못하겠다는 걸 직감했다.


······뒤풀이 자리는 이런 식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돌아가는 길, 돌아가는 길, 우연히

민하와 경석이 같은 방향이었기에 경석과 민하가 같이 밤길을 걷고 있었다.

"······내일, 어떡하려고 그래?"

"네?"

경석이 둘만 남자 먼저 말을 꺼냈다. 물론 시선은 정면을 향한 채로.......

"네 표정 보면 누구라도 알겠더라, 내일 일어날 일을."

"선배님도 참, 눈치가 너무 좋으신 거 아니에요?"

"네가 표정 관리를 잘 못하는 것뿐이야. 아무튼, 어쩔 셈이야? 내일도 그 녀석들....... 그 친구들은 참석 못하는 거야?"

"네. 이미 부원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사정까지 해 보았지만 다들 바쁘다고 불참의사를 표했어요. 최 선생님께는......어떻게 잘 얼버무려서 넘겨야죠."

민하가 바닥을 보고 걸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선생님께 제대로 말씀 드려보는 건 어때? 부원들이 비협조적이라고."

"그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건 없을 거에요. 어차피 그렇게 해서 녀석들이 나가고 나면 부는 부원 부족으로 폐지가 될 거고, 그러면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갈 뿐이니까요. 걔네들도 그걸 알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거에요."

경석은 민하의 말을 듣고 조금은 강영고의 다른 아이들에게 화가 났다. 이렇게나 진심으로 봉사를 하고 싶어하는 학생이 있는데 그걸 사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진실된 마음이 위협받는 부조리에 화가 났던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이런 식으로 있을 수는 없잖아. 아직 한 학기 이상이나 남았는데......그리고 네가 2학년이 돼서도 이 동아리를 계속한다면 1년씩이나 더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참는 거에요. 정말로, 정말로 원하는 거니까. 1년 반 이상 이 동아리가 지속될 수 있다면 저 하나쯤은 어떻게 되던 상관 없어요. 그리고 활동하는 중에 혹시라도 마음이 맞는 다른 사람들을 찾을지도 모르잖아요?"

경석은 웃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민하를 보았다. 민하는 웃고 있었으나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경석의 눈에는 그래 보였다. 경석은 자신이 원하는 일에 진심을 쏟아 열정을 다하는데 타인 때문에 행복할 수 없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토록 민하의 일에 집착하는 건 원인도 알 수 없는 희귀병 때문에 친구들과 사귈 기회, 청춘의 소중한 시간들을 빼앗겨버린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잠깐 시간 좀 내 줄 수 있어?"

길을 걷다 놀이터가 보이자 경석이 민하에게 말했다.

"네, 상관 없지만......왜요?"

"그냥, 궁금해져서. 네가 왜 그렇게까지 봉사활동에 집착을 하는지. 그 이유를, 괜찮다면 들려줄 수 있을까?"

경석은 스스로도 놀랐다. 불과 1달 전 정도만 해도 아무와도 접촉하려고 하지 않으려던 그가 나서서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나영과 사신에 의한 최근 몇 주간의 변화와 사건들이 그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이 틀림없었다.

"네, 상관 없어요."

둘은 놀이터 그네에 앉았다. 살살 그네를 흔들면서 민하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몇 년 전,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져서 하루아침에 저희 가족은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되고 말았어요. 그 때 저는 완전히 어린 아이였고, 어머니는 힘든 삶에 지쳐 가족을 떠나셔서 아버지가 일일 노동으로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면서 공원 벤치나 지하철역 부근에서 신문지 2장으로 잠을 자던 그런 시절이었죠."

민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때 그 시절의 일을 회상하는 듯 했다. 여전히 그네는 앞뒤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일을 나가시는 동안 제가 혼자 있는 건 위험하니까 저를 주변 아동 보호소에 위탁하셨어요. 거기서 저는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계셨던 최 선생님을 처음 뵈었어요."

"최 선생님이랑 원래부터 아는 사이였구나......"

경석은 다소 놀랐다. 특별한 사이라고까지는 생각했는데 그 정도였을 줄은......

"최 선생님께서는 그 때 막 교생 활동으로 정식 교사가 되기를 준비하시던 중이셨어요. 바쁘신 와중에도 봉사 활동으로 제가 있던 아동 보호소에 나오셨던 거죠."

민하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아버지는 재건하겠다는 의지로 몸을 불사르며 일을 하셨고, 그 동안 저는 최 선생님 밑에서 교육받으며 자라왔어요. 제게 있어 선생님께서는 두 번째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인 분이시죠.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최 선생님께서 부임지가 바뀌셔서 제가 다니던 아동 보호소를 떠나시던 날, 저는 선생님께 여쭈어보았어요. 제가 선생님께 받은 은혜는 평생 갚아도 모자라다. 제가 어떻게 해 드리면 선생님의 하늘 같으신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느냐고, 꽤나 진심으로 여쭈어보았죠. 그랬더니 선생님께서는........."

민하가 움직이던 그네를 탁 멈추곤 말을 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제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네가 받은 은혜를 나중에 다른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살아가거라. 그게 나에 대한 가장 큰 보답이다.'라고요."

민하가 그네에서 내려 똑바로 서서 하늘을 다시 바라보면서 말했다.

"선생님께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은 저는 그 날 이후로 선생님과, 그리고 제 자신과 약속했어요. 언젠가 훌륭한 사람이 돼서 수많은 사람들을 도우며 살 거라고. 선생님처럼 훌륭한 자원봉사자가 되어 남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겠다고......."

"나한테도 지금까지 만나본 선생님들 중에 최고의 선생님이시네."

경석도 감탄해 마지 않았다.

"그래서 전 중학교 때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했어요. 아버지도 제 사연을 아시는 분이기에 틈날 때 마다 저와 함께 하시고요. 고등학교도 일부러 최 선생님께서 계신 곳을 수소문해서 지원해서 들어왔어요. 제게는 평생의 은사시기도하고, 선생님을 본받아 저도 열심히 봉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자랑스럽게 보여드리고도 싶었고요."

민하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쓴웃음을 짓는 듯 보였다,

"그래서, 선생님께 실망을 더더욱 드리고 싶지 않은 거에요. 그래서 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전 참고 있는 거고요."

경석은 민하의 사연을 듣고 민하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자신을 어려울 때 도와준 평생의 은인이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경석도 나영이나 사신에게 도움을 받고 있는 입장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이대로 갈 거야? 우리 쪽에서 특별히 액션이 없으면 걔네들은 앞으로도 비협조적일 것 같은데......."

"부장인 제가 열심히 설득해봐야죠. 애초에 봉사라는 게 남한테 강요하는 것도,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요."

민하는 그네에서 일어나 경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게다가 선배님들 같은 의지 가득한 분들과 협력해서 이번 활동을 할 테니, 조금은 무거운 마음이 줄어드는 것 같은걸요?"

"그건 고맙네. 우리는 열심히 할 거니까 믿어도 된다고?"

경석도 웃으며 화답했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민하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는데도 말을 더듬지 않았다. 그러나 경석은 너무 자연스러웠던 탓인지 혹은 분위기 탓인지 눈치채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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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1장. 여름, 시작, 성공적? 06. 17.07.29 54 0 15쪽
7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1장. 여름, 시작, 성공적? 05. 17.07.29 51 0 13쪽
6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1장. 여름, 시작, 성공적? 04. 17.07.29 74 0 13쪽
5 [희귀병과 면역인자, 그리고 사신님] - 제1장. 여름, 시작, 성공적? 03. 17.07.29 65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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