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7.03 03:25
연재수 :
359 회
조회수 :
9,385
추천수 :
772
글자수 :
3,410,230

작성
23.07.07 02:58
조회
38
추천
4
글자
28쪽

24. 메리골드

DUMMY

그래서 지금 왜 책을 읽고 있느냐.


턱.


제냐는 책을 덮었다.


얼마 남지 않았었다. 몇 페이지 정도. 집중력이 닳아 없어지는 것 같다.


잠깐 몸을 움직이고 식사도 좀 하고. 재정비를 하고 다시 와얄 것 같았다. 저녁은 먹고 게임에 로그인한 상태다.

실제 육신이 뻐근한 지는 모르겠다.

근육 결림이나 현실 신체에 이상이 있으면 게임 내에서도 알람이 울린다. 그의 신체는 편안하게 캡슐 침대형 기기에서 쉬고 있는 모양이다.


게임 내의 캐릭터는 허기를 조금 느꼈다.


덮은 책의 하드 커버에는 고서에 어울리는 글씨체가 두껍게 제목을 알리고 있었다.


‘콘란드 중부에서 산슈카와 로멜리아가 미친 영향에 대하여.’


길다란 제목이 멋들어진 글씨체로 휘갈겨 적혀 있다.

정말로 휘날리게 적은 것은 아니고, 그런 멋을 낸 것 뿐으로 글자 자체는 정확하게 읽을 수 있다. 눈을 한 번 깜박이는 것으로 번역되기 이전의 원문을 읽을 수 있었는데, 영어의 필기체처럼 부드러운 곡선이 한 번 끊어지지 않고 주욱 이어지는 모양새다.

다시 눈을 깜박이면 한글로 돌아왔다.

한글 역시, 서예가가 써 내려간 글씨처럼 힘있고 선이 정확하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책을 읽는 중이었다. 퀘스트에 있어서 그가 해야 할 행동은 두꺼운 책을 다 읽는 것 뿐이었지만.

맥락 상 필요한 정보는 정해져 있다.


‘로멜리아 가의 잃어버린 가보’.


그 보물이 무엇이며 또 정확히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그 단서를 알기 위해서 이런저런 책들을 뒤지는 것이다.


퀘스트 일람에는 단순히 해당 서적을 읽으라고 되어 있지만 대강 감이 있다면 알 수 있다. 퀘스트의 다음 진전을 위해 키 포인트가 되는 정보를 얻지 못하면 퀘스트는 진행되지 않는다.

꼭 그것을 제냐가 주도적으로 할 필요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머리는 굴려보고 또 애는 써봐야 했다. 그게 시나리오에 연기자로 투입된 플레이어의 올바른 자세이리라.


일단은, 노인이 단서이자 근거라면서 건네 준 책을 파보는 게 가장 가능성 높은 행동이다.


오래되었고, 역사가 느껴지는 듯 고급스런 재질로 만들어진 양장본은 노인 줄리앙이 준 것이었다.

작고하신 전 로멜리아 남작이 그에게 생전 마지막으로 맡겼던 물건이라고 한다. 그 책과 함께 로멜리아의 가보를 약속에 따라 반환받고, 그것을 밑천삼아 가문의 중흥을 일으키라고 명했다면서.


줄리앙 리스트는 책을 받아든 이래 쭉 읽어왔지만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했다. ‘보물’의 형태에 대해서도 크게 짐작가는 것이 없었고.


그림에 그려진 로멜리아 가의 주요 영토는 세슈칸 시가 맞았다. 거대한 도시와 성. 산슈카의 제국기 때는 로멜리아 가문이 다스리던 땅이다.

회색 석재로 지어진 거대하고 웅장한 성은 지금도 도시 중심부에 남아 있다.

지금은 작힘 가의 깃발이 걸리고, 작힘 백작이 영주이자 성주로서 머물고 있는 건축물이었다.


산슈카의 흥망성쇠와 함께 전쟁사가 담겨져 있었고, 로멜리아 가의 영웅들이 그 전쟁들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일화들이 소상하게 적혀 있는 책이었다.


로멜리아의 부흥기를 이끌던 영웅들의 전투상에서 그 보물의 흔적을 찾아보려 했지만 딱히 그럴싸한 것이 없었다.

어떤 전쟁 영웅이 쓰던 칼, 혹은 보호갑, 혹은 장신구의 형태로 거대한 초상력을 품고 있는 아티팩트?

가문의 보물이자 마을급 고유 퀘스트의 키 아이템이며, 고래로부터 이어져 온 어떤 가문이 일어설 수 있을 정도의 힘이라면 적어도 4급 아이템 수준은 될 것 같았다.


아이템의 급수는 오로지 희소성만을 따지며 그 강력함과 정확히 비례하지는 않지만, 지나치게 강력한 물건들이 많은 것 역시 게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이렇다할 정보가 없을 때 아이템의 가치를 판가름할 기준이 되어줄 순 있었다.


그 물건이 자체적인 물리력을 가지고 있을 경우도 있고, 혹은 어떤 증표로서 다른 권력을 유용할 수 있게끔 해주는 열쇠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보통 귀한 물건은 아니다. 전자의 경우라면 진지하게 플레이어들도 탐내볼 만한 물건일 수도 있었고.


책에 있으리라는 ‘단서’는 파악하지 못했다.

단순히 상징적이고 강력한 아이템인 것 외에, 그것이 후대로 전해졌다는 한 문장이라도 서술이 붙어 있어야 생각해볼 만한데.


그런 단초가 붙은 물건이 책에는 없었다. 아직 끝까지 못 보고 몇 페이지가 남은 점도 마음에 걸리긴 한다.

제냐는 방문을 열고, 단출하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목재 실내를 걸어 아래로 내려간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지만 먼지는 별로 없다. 튼튼하기도 했고.


1인실 내의 여러 가구들도 사용감이 많지만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고 하나하나 쓸 때 구조가 잘 잡혀 있는지 안정감이 있고 단단한 느낌이 들었다. 솜씨 좋은 장인이 만들어 낸 목재 가구들인 모양이다.

이 여관 건물 자체또한 그렇고.


여관 건물 자체라.


“······.”


제냐는 무의식중에 턱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3층에서 1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계속 내려갔다. 삐걱거리며 오른발이 계단 하나를 더 내려갔을 때 알람이 하나 떴다.


반투명하게 그의 시야 전방에 위치하는 텍스트 메세지 창이었다. 제냐는 그것을 응시했고, 초점이 맞자 조금 더 선명하게 드러나며 예, 아니오의 두 표시가 나타난다. 제냐가 시선으로 ‘예’를 클릭하자 메세지의 내용이 보였다. 아니오를 클릭하거나 시선을 다른 곳에 맞추면 알림창은 곧바로 사라진다.


전투 중에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아예 알림창이 뜨지 않게 설정하는 것 역시 가능했고.


[이번 주는 내가 좀 바쁠 것 같은데. 같이 사냥하는 건 나중으로 미루죠. 각자 열심히 합시다. 회사에 대량 발주가 들어와서 적어도 며칠은 저녁 없는 삶 실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개멋진나 최, 최태현의 메세지였다.


둘은 보통 정기적으로 함께 파티 퀘스트를 잡아 와서 해결하는 루틴을 반복하고 있었다. 한 번 달성하고 나면 하루 이틀은 개인 시간과 정비 시간을 보내고, 다시 괜찮은 의뢰를 최태현이 물어 오면 해결한다.


근래에 다이어 울프 무리 사냥을 한 이후 각자 플레이를 하고 있었는데 삼일 만에 온 메세지다.

딱히 약속을 한 것도 아니었고, 의무도 없었지만 정기적으로 움직이던 차에 변동이 생기니 신경이 쓰여 언질을 준 모양이었다.


게임은 게임에 불과했고. 바깥 일이 바쁘다면 언제든지 변동될 수 있는 사항이다. 제냐는 발화 방식으로 메세지를 입력했다.

여관의 계단에는 아직 아무도 없다.

그가 몇 가지 버튼을 클릭하며 조작한 뒤 답장 창을 띄웠다.


“고생하십쇼. 혼자 잘 놀고 있겠습니다.”


그 다음 마찬가지로 시선을 움직여 조작하니 메세지가 전송되었다.


그는 조명이 닿지 않는 그늘진 계단을 내려가 1층에 닿았다.


시끌벅적하던 소리가 커진다. 한낮.

식당을 겸하는 여관에는 손님이 많았다. 모두가 우락부락하거나, 또 다양한 꼴들을 하고 있었다. 아이만한 크기의··· 아이부터 레드 오크가 아닌가 싶은 수준의 거구까지.

신체 변환은 얼굴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까지만 가능하다. 체격 역시 포함된다.


그러나 그것은 최초의 캐릭터 설정이며 게임 내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다보면 캐릭터의 외향은 현실의 자신과 많이 달라지게 되어 있었다.

얼굴 외모만은 건드릴 수 없었지만 근력 수치가 높아지고 거대한 근육이 붙어 체구 자체가 달라지는 일도 있다.


갖가지 아이템과 초상 스킬 중에는 반영구적으로 키를 늘이거나 줄이는 종류가 있기도 했고.

‘변신술’ 스킬이 떡하니 초상 계열 중에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임시로 외향을 완전히 바꾸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거기다 몇 가지 특수한 퀘스트를 깨고, 남모를 특별한 플레이 스타일로 게임을 즐기다보면 다양한 종족으로 중간에 갈아타는 것 역시 가능하다.


어디까지나 ‘선’이나 인류 연합에 포함되는 한도 내에서의 변환이다. 제냐가 알고 있는 바로는.


종족이 변환될 때는 이전까지 쌓아왔던 스펙들이 전부 무효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꾸는 이유는, 스텟이 기본적으로 원초적인 10만큼의 수치에 대한 곱셈이라고 했을 때 10의 위력인 x가 크기 때문이었다.

기본값이 크면 이후 배율이 높아졌을 때 위력이 훨씬 증가한다.


여태까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갈아 넣었던 수많은 시간과 노력들을 포기하고서라도, 다른 종족으로 시작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리라 생각하기에 바꾸는 경우가 많았다.


비련의 시나리오 내의 설정에서 아무런 특징이 없는 ‘인간’보다 어디 한 구석이 뛰어난 존재들이 그런 여타 종족들의 특징이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인류’라는 테두리 내에 있으니 많은 부분들은 동질성을 형성하긴 하지만.


엘프Elf들은 예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흔한 판타지 장르 속 모습처럼 귀 끝이 가늘고 뾰족했다. 숲과 자연과 어우러지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으며 키가 큰 편이다.

팔다리가 길고 가늘지만 근육이 있어 힘이 약하지도 않다.

체력적으로도 아무런 특징이 없는 인간에 비해 강하다. 같은 치명상을 당하더라도, 외부 조건의 차이가 없다면 엘프가 더 오래 버틴다. 게임 오버까지의 지연 시간이 길다는 말이다.


치료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여유 시간이 길다는 뜻이었고, 게임의 전체적 난이도가 내려가는 수준의 특징이었다.

비단 엘프만 그런 것은 아니었고, 대개의 종족들이 약간씩은 인간보다 더 강력하며 게임으르 풀어나가기 수월했다.


아무나 그런 특수 종족으로의 변환을 해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희귀나 고유 이상의 퀘스트들을 연달아 깨내고, 개중에서도 종족 변환과 관련이 있는 시나리오의 갈래를 따라가 여러 역경을 이겨내는 플레이어들이 닿는 지점이다. 적어도 중수 이상.

레벨로 치면 100근처에서 그 이상일 테다.


그런 소수의 특수 종족들과, 육체적 단련과 여러 종의 아이템으로 다소 달라지는 경우와, 또 현실에서 이미 다양한 체격을 갖고 있던 온갖 인간들이 모여들게 되므로 시나리오 온라인 내의 인간군상은 참으로 다양했다.


왁자지껄하게 사내건 여인이건 모험자로 다니는 티를 내며 여관의 내부 자리를 그득그득 매우고 있는 홀.


그런 곳의 한 구석에 앉아 제냐는 조용히 종업원을 불러 음식을 시켰다. 투숙객들이 가장 자주 먹고는 하는 ‘된장밥 고기볶음’이었다.

현대에서 다양한 음식과 문화들을 레퍼런스로 삼아 비련의 시나리오가 만들어졌다. 게다가 주 개발진들이 한국 출신의 인간들이었다는 사실은 이런 데서 간혹 드러난다.


뜬금없이 친숙한 물질들이 여기저기 숨어 있는 것이다. 오랜 시간 다양한 문화가 자생했으리라 보는 콘란드 대륙이니 굳이 서양종의 식재와 방식으로 만들어진 음식만 있는 것은 도리어 어색하긴 하다.

그럼에도 된장을 보고 처음 그것을 시켰던 제냐는, 한국의 된장찌개 맛을 제대로 아는 양반이 만들었구나 하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맛있었으니까.


백반집 어느 솜씨 좋은 아주머니가 장인 정신으로 끓여낸 듯한 그런 된장찌개에 밥을 자작하게 말아서 나오는 음식이다. 그 위에 따로 고기 볶음을 고명으로 푸짐하게 올려서 나온다.

일반적인 된장찌개에서 약간은 다른 형태지만 맛은 정확히 그것이었다. 아마 한국인이나 동양권이 아니면 어색할 수도 있는 음식이다. 제냐로서는 아주 다행이었다. 중부 지방, 세슈칸에 그런 음식 아이템이 있다는 게.


여러 군데 음식점을 둘러봤지만 비단 이 여관에서만 파는 것은 아니었고, 다양한 곳에서 동양풍의 음식들을 팔고 있었다. 개중에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한식에서 파생된 다양한 요리들이다.


왜소하고 나이 어린 종업원이 금방 그에게 찌개밥을 가져다 주었다. 구수한 냄새가 일품이다.

여관댁 내외의 아들처럼 보이는 작은 소년은 똘망똘망한 눈에 흑발을 찰랑거리면서 홀을 누비는 일꾼이다. 열 서너살 즈음 되어 보인다. 어른들의 우렁우렁한 목소리와 말투에도 전혀 기죽지 않고 제 일을 훌륭하게 해내는 모습이 대견하다.


그래봐야 AI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AI역시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저런 소년을 모델로 삼거나, 혹은 그런 인간상이 제법 괜찮다는 사상 하에 빚어진 피조물이다.

소년은 허상이지만 그 너머에 있는 진상을 비춰보는 느낌으로, 흐뭇함을 가져본다고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거울 속의 잔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인 소년의 꿋꿋함을 보고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없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소설과 창작류들 역시 결국 무의미한 것이 되리라.

닿지 않아도 절대적인 어떤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뇌고 서로 확인해 나가면서 지어지는 게 세상 모든 창작물들의 의미였다. 작가들의 생각이었고.


어쨌건 제냐는 한구석에서, 홀쪽을 바라보는 자리에 앉아 된장밥을 떠먹었다. 스푼과 함께 포크가 나왔다. 젓가락이 있어줘야 할 것 같지만. 굳이 말을 하지 않으면 보통 스푼과 포크를 준다. 곁들여먹을 반찬도 따로는 없다.

대강 찌개밥 안에 모든 종류가 들어가 있어서 아쉽지는 않다. 야채도 푸짐하게 있고, 고기 고명도 왕창 올라갔다. 대략 대륙 주화로 동전 반 닢 정도의 가격이었다. 약 2젠 정도 한다.


1젠이 3,000원 정도였으니 5-6,000원 정도 하는 셈이었다. 정확한 주화와 젠의 환율을 따지고 가치를 나누자면 동전 반 닢이 2젠보다 약간 떨어지는 시세였으니.


동전 1닢이 대략 4젠 정도 한다.

은전 1닢이 약 6, 70젠 정도의 가치를 지녔다.


동전 반 닢은 따로 통용되는 주화 단위였고, 실제로 반쪽짜리 동전이 화폐로 쓰이고 있다. 조폐국에서 완성본을 만들어낸 뒤 다시 반으로 가른다고 한다. 깔끔하게 쪼갤 실력이 있다면, 구리판을 딱 반으로 나누어서 본인이 사용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일률적으로 세로선을 기준으로 좌우로 이등분 하는 것이 규칙이었다.


“음.”


우물거리며 밥을 퍼먹었다.

게임 내에서 불편하게 밥을 먹고 있는 것도 참 우스운 일이다. 이마저도 게임 컨텐츠의 일환이라고는 하지만.

현실에서 식도락을 즐길 수 없는 경우에는 게임 내에 들어와서 즐기는 일도 많을 듯했다.


그 밖에도 장애를 가졌다거나, 바깥에 나갈 수 없는 특별한 신변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듯 바깥 경치를 구경하기 위해 들어오는 일들 역시 많으리라.

사람은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조금 더 수명이 느는 경우가 있었다.

단순히 꿈만으로도 스트레스 지수가 내려가는 것 역시 사실이고.


닿을 수 없는 것을 간접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삶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지 모른다. 무엇이든 용법에 달린 일이니. 같은 물질도 정확한 지혜와 지식 하에 쓰이면 약이 되고, 오남용을 하면 독이 된다.

초고기능의 가상 세계 시뮬레이터 역시 그럴 지 모른다.


제냐는 된장의 짭짤함과, 적당한 구수함과 풍미, 입 안에서 가득 씹히는 야채의 질감과 고기 덩이를 맛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건 그렇고······.


정말로 시끄럽군.


제냐는 반쯤 뜬 눈으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홀을 바라보고 앉은 자리이니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테이블에 맞을까 싶은 수준의 근육질 거구 아저씨도 있다. 호쾌하게 제 몸을 드러내놓고, 방어구만 헐겁게 채워 입고 바지만 입었다.

황야의 토질처럼 보이는 누런 피부는 멀리서도 거친 질감에, 여기저기 흉터들이 있다.


비련의 시나리오에는 ‘흉터’가 있다. 캐릭터들은 기본적으로 자가 치유되지만 그 흔적이 남을 때가 있다. 주로 HP가 20%대 이하로 내려갔을 때 얻는 치명상들에 대해 흉터가 생긴다.

보통 그런 극악의 상황에서 1%단위의 HP 손실이 오는 데미지를 입으면 육신에 상흔이 남는다고 알고 있었다.


그리 비싸지 않은 방법이나 어렵잖은 수단으로 캐릭터 신체에 남은 흉터를 지울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어떤 터프 가이들은 마치 훈장처럼 자신의 상처를 남겨두곤 한다.


한 번의 게임 오버가 영원한 게임에서의 아웃Out을 뜻하는 시나리오 온라인에서, 흉터가 많다는 건 그만큼 하드하고 터프하게 게임을 즐겼다는 증거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반절 근처까지만 가도 전투 불능 상태로 보고 안전 지대로 돌아오고자 한다.


물론 그럴 수 없는 상황들 또한 많다.

세상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될 수 없듯,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공략법을 보고 따라가는 입장의 유저들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고레벨 플레이어들은 난관을 제 몸으로 직접 뚫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예상하지 못한 위험을 현장에서 맞닥뜨리면 플레이어는 전진하던가, 후퇴하던가 택해야 할 것이다.


퇴로마저 막힌 때에 도전하기 위해 전진을 선택한 게이머들 중, 실력과 운이 따르는 자들이 살아남는다.


꼭 그런 최전선에 위치한 플레이어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게임 오버의 위기에 처하는 자들은 많긴 하지만.

누군가는 실력이 없거나 멍청한 방식으로 플레이를 했다고 할 지 모르지만 어떤 이들은 누구보다 게임을 게임답게 진지하게 즐겨낸 흔적을 게임 내의 몸뚱이에 새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외관이 꼭 그 내용물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사내다움을 강조할 것처럼 생겨서 남성적인 강인함은 별로 갖추지도 못한 인간들도 있고.

그러나 대강 지켜보건데, 저 볼드Bald 헤어의 구릿빛 거한은 일류 전사같은 풍취를 내고 있기는 했다.


제냐의 자리로부터 대각선으로 몇 미터. 홀의 중앙부에 위치한 테이블의 앉은 사내다. 극동아시아, 혹은 중앙아시아 정도의 인종으로 보이는 그는 부리부리한 눈을 빛내며 테이블에 팔짱을 끼고 앉았다.


상처를 내기도 어려울 것처럼 보이는 그 질긴 피부에 커다란 자상의 흔적들이 여럿이다. 다 드러난 팔께에도 많았고, 방어구 사이로 언뜻 보이는 몸통에도 그렇다.

얼굴 부위에는 별다른 상처가 없이 멀끔했는데, 그 스스로 지웠을 수도 있고. 아니면 얼굴만 잘 피하며 플레이를 했을 수도 있고.


대형종 괴수의 발톱에라도 당했을 것 같은 느낌인데···


늘 그렇듯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니.


만약 저런 백전연마의 전사같은 꼴을 하고 흉터는 어딘가에서 위장 스킬로 외관을 꾸민 것이라면 참 볼만하기는 하겠다.

그 정도로 흉흉한 기세의 사내다. 나이는 제냐보다는 훨씬 많은, 30대 중반 이상으로 보인다.


그런 거한의 맞은 편. 원형 탁자의 반대편에 반대급부로 작은 몸집을 한 인종이 앉아 있었다. 홀을 여기저기 돌아 다니는 식당 아들내미와 비교해도 그리 다르지 않은 크기다.

성인 중에도 유달리 작은 자들이 있기는 하다. 더군다나 여성이라면 더 그럴 수 있었고. 제냐가 앉은 자리에서 그가 고개를 돌리고 있으면 잘 보이지는 않는다. 그, 인지 그녀, 인지 정확하게는 모른다.


붉은 단발 머리를 하고 있었고, 거한과 달리 제대로 된 복식의 긴팔 긴바지에 경갑옷을 착용하고 있다.

여기저기 꼼꼼하게 수납된 모험용 아이템들은 멀리서 보아도 준비가 잘 된 모험자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세슈칸엔 완전 초보자보단 중급자들이 훨씬 많기도 하지만. 개중에서도 플레이어 개인이 꼼꼼하고 노련해보이는 분위기가 있었다.

어디까지나 잘 손질되었고, 언제든 꺼내기 쉬워 보이게 하나하나 계산적으로 배치된 듯한 무구류들 때문에 드는 생각이다.


그 붉은 단발 머리 위에는 둥근 귀가 떡하니 튀어나와 있었다. 머리 위로 튀어나온 동물 귀라는 게 참······. 어떤 바보들의 로망을 자극하는 면이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저런 류의 특수 종족이 있을 수도 있지만, 대개는 그렇게 특별한 루트의 플레이를 하지 못한다. 외형 변신(환상)을 익혀서 자신이 원하는 식으로 캐릭터 디자인을 하는 게 가장 흔한 수단이었고, 혹은 그 외의 아이템을 사용해서 평범한 인형 신체에 악세서리처럼 다양한 모양을 다는 것이 또다른 방법이다.


아이템 중에는 ‘동물 귀’라는 시리즈도 있었다. 코스프레 하기를 좋아하는 인종들의 취미를 만족시키기 위한 아이템이었고, 수요에 비해서는 조금 부족한 공급량이라 약간 발품을 팔아야 얻을 수 있는 물건이다.

거기다 남다른 취향적 세밀함을 가진 인간들이라면, 제 마음에 꼭 맞는 것을 얻기 위해 그 이상의 노력도 불사한다.


이런 곳에 야수성과 짐승의 강력함을 특별하게 닮은 ‘수인’ 종족의 플레이어가 있을 리는 없다. 세슈칸은 대도시였으나 그런 특이성을 가진 플레이어의 숫자는 한 줌에서 다시 한 줌을, 그리고 그 짓을 몇 번 반복하고 걸러내서 있을까 말까한 수준이다.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이들은 아니었다.


중수급에서 상위권, 혹은 고수라 불리는 세 자리수 이상 레벨의 플레이어들과 교류가 생긴다면 조금 더 흔히 만날 수 있기는 할 테였다.


대머리 거한과 붉은 단발머리 동물귀 말고도 특색있는 자들은 많았다. 현실에서 만나기 힘들 듯한 비주얼들이다. 말했듯 게임 내에서 허용하는 외견 변화가 플레이어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한낮이었으나 마치 휴일 전 날 밤 술집이라도 찾아온듯한 소란스러움이다.

그가 묵고 있는 여관은 세슈칸의 해당 거리에서 요리를 잘한다고 알려진 곳인 모양이었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한 끼를 때우기 위해, 이곳을 들리고 사람들로 가득 차 붐비고 있었다.


제냐는 기계적으로 숟가락을 들어 두꺼운 쇠그릇에 담겨 나온 된장밥을 퍼먹었다. 겉을 만져보면 따스한 느낌이 나는 것이, 보온이 잘 되는 듯한 용기다. 여기저기 사람들은 보며 밥을 먹다가 대머리 거한과 눈이 마주쳤다.


시끄러운 사람들 속에서 또 떠들며 요란스럽게 몸동작을 하는 인간들 속에서 집중력을 가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용케도 그 어지러운 광경 속에서 구석에 박혀 있는 제냐의 얼굴을 인식한 모양이다.

그리 길지 않은 교차였고, 만일 저 터프 가이가 제 생김새만큼이나 공격적이라면 귀찮은 일이기에 눈을 피했다. 슬쩍 피한 자리에는 다른 이가 제냐를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단발 머리.

제법 미녀, 라기보다는 소녀였다. 둥근 곰인지 너구리인지 뭔지 모를 종류의 귀를 달아둔.

쫑긋거리며 움직이는 그것은 갈색 배경에 흰색과 검은 줄무늬가 있는 것이었다. 단발 사이로 보이는 틈새에는 평범한 사람의 귀가 달려 있었다.

코스프레나 설정 놀이에 심취하는 작자들은 자신만의 특별함을 추구하며, 외형 변신의 하급 스킬로 실제 귀를 감추는 경우도 있었다. 그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드러난 얼굴과 전면을 보니 여성이었다. 외견으로 보면 십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인다. 앳된 얼굴에 붉은 눈동자가 똘망하게 빛난다. 외국인······ 유럽 계열일까. 햇살이 언제나 쨍쨍한 근처 기후에도 전혀 변색되지 않은 흰 피부다. 선이 곱고 올망졸망하게 생겼다.


제냐는 일, 이 초 정도 그들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거대한 고양이 모습으로 달리던 코미어처럼, 갑자기 부닥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플레이어와 많이 얽혀서 좋은 일은 없었다.

그러니까··· 계산 밖의 상황에서 말이다.

그건 현실의 대도시에서 모르는 사람과 말을 하게 되는 일과 마찬가지로, 비련의 시나리오 내에도 비슷한 비율로 성격이 이상한 놈들이 많았으니 하는 이야기였다.


사람 간의 시비는 별 것 아닌 일로도 일어나고 이루어진다. 긁어 부스럼 만들 것 없다. 멀쩡히 있다가 지나치게 오래 응시를 하면 먼저 공격적으로 나왔다고 느끼는 부류도 있었다.

제냐는 멀리로 시선을 두며, 여관 식당 홀의 창문을 처다봤다. 입구는 어느 황야나 사막 배경의 도시를 영상 따위로 접하면 보게 되는 스윙 도어라 인도 쪽의 풍경이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들어왔다가 나갔다가.

쉼없이 문을 치고 들락거리며 여관 ‘금잔화’의 성황을 전시하고 있었다.


잠시 먼 배경을 보고 다시 다 먹어가는 국밥에 시선을 두는 제냐에게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저기······.”


어설픈 말투의 목소리에 제냐가 고개를 슬쩍 들었다.


까무잡잡한 얼굴.


그것이 가장 먼저 보이고 든 생각이었다. 흑인은 아니었다. 그저 누런 피부를 진한 갈색 수준으로 태닝을 한 동양계의 인간이었다.

체격은 제냐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작다. 나이 역시 그래 보인다.


백발을 길게 늘어뜨리고, 붉은 입술로 우물거리며 말을 하는 20대 정도의 아가씨가 테이블 바로 앞에 서서 말을 건다.


“······.”


제냐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멀뚱히 처다봤다. 자신에게 용건이 있을 일이 딱히 없다. 제냐는 뭔가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엮일 거리를 만들어낸 적도 없었다. 그녀가 구석에 위치한 원형 테이블, 그 근처의 의자를 슬쩍 끌며 말했다.

동양계로 보이지만 한국인인 지는 잘 모른다. 일본, 중국, 대만. 뭐 어느 쪽일 수도 있고 아예 아시아 인종이면서 다른 나라 국적인 사람도 많다.

어쨌건 훌륭하고 대단한 비련의 시나리오의 통역 시스템은 그녀의 말을 잘 전달해주었다. 토씨나 뉘앙스 하나 놓치지 않고.


NPC들이 듣기에는, 대륙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중부 대륙어로 들릴 것이다. 아마.


몇 종류의 언어군이 있었고, 약간씩의 차이는 있으나 사투리 정도의 차이로 그 지역 언어군 내에서는 통한다. 중부와 북부, 남부와 서부가 있었다. 개중에서도 중부 대륙어는 대륙 전역으로 봤을 때 가장 흔하게 통용된다. 사람 수가 많아서, 다른 지방에서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산슈카 왕국의 언어 또한 그쪽 계열이었고.

문자엔 조금 더 특색이 있는 편이라 지역군 내에서도 각지의 문자들을 읽으려면 스킬들을 익혀야 했다. 말 역시, 중부에서 서부, 남부, 북부 등으로 본거지를 옮기면 해당하는 언어들을 스킬의 형태로 습득해야 했고.


가끔 판타지의 설정과 재미를 진하게 느끼고 싶어하는 자들은 번역 기능을 조절해서, 비련의 시나리오 내에서 설정해 둔 가상 언어의 발음을 현실 언어와 같이 듣거나 한다.

이따금씩 판타지 언어만 들으며 플레이를 해보는 영상이 인터넷 따위에 올라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도 했다.


어쨌든 제냐는 한국말만 하면 되고, 그 이상 고민해보지는 않았다. 아직.


“혹시, 여기 앉아도?”


아.


무슨 말을 하는가 했다. 제냐는 대충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기야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 이런 구석 자리로도 앉을 곳을 찾아 올 수 있었다.

제냐의 끄덕거림에 그녀가 조심스레 의자를 끌며 앉았다.

자연스레 국밥에 고개를 처박고 마저 먹었다.


그녀는 심지어 이미 서빙된 음식을 제 손으로 들고 먹을 곳을 찾고 있었다. 사람이 많고 바쁘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가보다.

달칵. 하고 단단한 소재의 나무 식기나 쇠그릇 따위가 테이블에 올려진다. 흘긋 봤을 때 야채와 고기가 풍성하게 있는 샐러드였다. 내용물이 보울Bowl에 한가득 들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든든한 한 끼 식사처럼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냐는 식사를 마저했다. 웅성거리는 소리는 목재 건물 내에서 여기저기 반향되어서 귀를 울린다. 시끄러운 곳을 딱히 싫어하거나 못 견디는 편은 아니었으나,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올라가서 퀘스트와 관련된 역사책을 마저 읽어야 했다.


쇠그릇의 밑바닥까지 수저로 박박 긁어서 마무리하고, 그릇에 식기를 담아 들며 제냐가 일어섰다.

그녀가 마찬가지로 식사에 집중하다가 제냐를 처다봤다. 제냐 역시 그녀를 봤지만,


뭐 딱히 할 말도 없었고 인연도 없다. 이런 대도시에서 지나가는 모든 인간에게 관심을 두었다가는 몇 걸음도 제대로 가기가 힘들 테다.

제냐는 시끄럽고, 기분 좋고, 잔뜩 들뜬 주정뱅이나 모험가들의 노랫소리와 비명소리처럼 들리는 수다를 뒤로 하며 계단을 올랐다.


오르기 전에 홀과 주방을 잇는 데스크에 식기를 올려 놓는 건 이 가게의 법칙이었고.


제냐가 계단 위로 다시 사라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똘망한 총기를 눈으로 빛내는 소년이 나와 식기들을 가지고 주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서버Server가 좀 많아도 좋을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용케 소년 혼자 해내고 있었다.


*

sam-barber-Dp1oeulGWYU-unsplash.jpg


작가의말

프로 혼밥러.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29. 돌아가는 23.07.13 37 4 26쪽
29 28. 여기 있습니다. 23.07.13 38 4 27쪽
28 27. 악수 +2 23.07.10 37 4 39쪽
27 26. 솜씨 확인 23.07.09 37 4 33쪽
26 25. 퀘스트 진행 23.07.09 38 4 36쪽
» 24. 메리골드 23.07.07 39 4 28쪽
24 23. 로멜리아Romellia 23.07.05 35 4 44쪽
23 22. 세슈칸에서. 23.07.05 37 4 31쪽
22 21. 불타는 부락 23.07.03 35 4 41쪽
21 20. 불타는 숲 23.06.12 40 4 24쪽
20 19. 보법 23.06.10 42 4 23쪽
19 18. 범영웅凡英雄 23.06.10 42 4 31쪽
18 17. '취륵'은 그렇게 죽었다. 23.06.09 47 4 62쪽
17 16. 파티 플레이 23.05.29 42 4 43쪽
16 15. 멧돼지 사냥 23.05.28 52 4 34쪽
15 14. 멧돼지 23.05.26 55 4 33쪽
14 13. 마라톤Marathon +4 23.05.22 61 5 38쪽
13 12. 세슈칸Seshukan 가는 길 +2 23.05.04 66 5 29쪽
12 11. 도서관 제육 23.05.03 58 5 25쪽
11 10. 황야 지룡 23.04.30 62 5 44쪽
10 9. 붉은 날개 23.04.29 77 5 31쪽
9 8. 흰줄무늬 검은 고양이 코미어 23.04.29 87 5 29쪽
8 7. 물약 상점의 필리Philly 씨 23.04.27 96 6 30쪽
7 6. 오크Ork 사냥 23.04.16 106 6 27쪽
6 5. 이성적 파이어볼 +2 23.04.15 148 6 33쪽
5 4. 긴장성 파이어볼 +2 23.04.12 157 6 22쪽
4 3. 로그 오프Log off 23.04.12 186 7 15쪽
3 2. 개멋진나 최 23.03.12 249 7 31쪽
2 1. 파란 귀 토끼 23.03.11 452 9 30쪽
1 0. Prologue. +1 23.03.11 517 10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