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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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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7.03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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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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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62쪽

17. '취륵'은 그렇게 죽었다.

DUMMY

***


“취륵.”


오크는 어설픈 소리를 낸다. 대가리가 돼지를 닮았으니 어쩔 수 없다. 듣기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구강 구조는 아니었다.

텁, 하고 위로부터 흘러내려 덮힌 아가리의 위쪽이 하관을 누른다. 브라운 오크의 입매 근처에는 송곳니가 길게 뻗어 있었고.


어지간한 손가락만한 길이가 바깥으로 돌출되어 있었다. 여러가지 것들을 그것으로 물고 뜯고 부수었는지 많은 것이 묻었다가 지워진 흔적이 보인다. 절대로 하얀 색은 아니었고, 탁한 빛깔이었다.


브라운 오크의 짙은 갈색 거죽이 인상적이다.


오크 한 마리는, 저녁 무렵의 어둠가운데 움직이고 있었다.


부락.


얼기설기 만들어진 목책이 보인다. 대강 나무더미를 가져와 박았다. 그 외에 돌더미 따위를 가져다가 담장처럼 빙 두르기도 한다. 그 구조가 견고하다거나, 짜임새가 있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오크들에게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그것들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온갖 잡기들을 옮길 수 있는 완력이 있었고, 그 어떤 장정보다도 뛰어난 노동자였다.


단순한 일의 반복이라면 이런 오크 류의 몬스터들을 따를 이가 많이 없었다.


거기다 한 두 마리가 아니라 이십 여 마리가 넘는 숫자가 살아가는 부락이었으므로, 오크들의 마을은 자연스레 규모가 깨나 있다.


그런 부락 내부에 원시적인 움막이 지어져 있었다.


오크들은 도구를 다루고, 갑옷을 걸치며, 움막을 지어 산다. 그냥 동굴에서 기거하거나 노상에 보금자리를 틀기도 한다. 이족보행을 하고 인간을 흉내내듯이 전투하지만 본질은 짐승에 가까웠다. 그 교활함은 본능적인 영역의 것이다.


몬스터로서 설정된 괴수에게는 ‘성정性情’이라는 것이 없다.


원숭이보다도 더 발달한 지능을 가지고 도구를 다루며 문명처럼 보이는 집락을 이루지만 어디까지나 게임 내의 설정에 관한 것이었다.

현실에는 저런 동물들이 존재할 수는 없었다.


갈색 오크 한 마리.


무리들 내부에서는 '취륵'이라는 코 넘기는 소리로 불리는 개체였다.


그 외에는 '취르륵', 이나 '취라륵', '카락', '켁', '타룩'같은 개체들이 있었다.

어쨌거나, 이 개체들은 저마다의 특성들을 보유한다. AI가 따로 데이터를 보관하면서 행동에 따라, 시스템이 관장하는 한에서 보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몬스터들 역시 경험에 의해 강해진다. 그 강함을 제대로 벼려내고 사용하는가는 다시 다른 문제였으나 말이다.

태생적 한계 내부에서는 얼마든지 개체 차를 지니고, 간신히 필요한 전투력을 가꿔서 온 플레이어에게 험난한 경험을 시켜줄 수가 있었다.


땅거미가 진 어둑한 숲의 어느 한 자리.

오크들은 숲의 공터에 나무들을 꺾고, 자신들의 자리를 만들었다. 드문드문 지어진 집들이 불규칙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땅을 파고, 부수거나 꺾은 나무를 나란히 세워 그 위를 덮었다. 그 정도의 복잡한 구조체를 만든다는 건 그래도 상당한 지능이 있다는 뜻이기는 했다.


플레이어들이 마주하는 가장 지독한 종류의 몬스터들은 간혹 이런 이족 보행류이기도 했다. 무리지어 생활하며 손을 쓰고 도구를 다루는 것들이 만약 원시적인 부류라도 함정을 지어놓는다면, 플레이어가 거기에 당했을 때의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기본적으로 완력과 체력에서 질 수 밖에 없는 괴물에게 교활함까지 지고 들어간다면 설 곳이 없었다.

물론 게임 내의 인류는 곧 신체적으로 초인으로의 길이 열려 있는 가상의 것이기는 했지만. 만약 비슷하거나 조금 더 강한 수준의 몬스터를 만났을 때 그것이 그런 계략마저 보인다면 말이다.


인간이 짐승을 잡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지혜를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짐승과 머리를 맞대고 싸워야 한다면 사냥의 본질이 흐려질 수도 있는 연출이었다. 사람은 보통 사냥감으로서의 자신을 상정하지 않는다.

게임 내의 사냥과 전투는 어디까지나 현실에서 즐기는 그 레져Leisure의 연장선이었으니. 거친 게임 내의 세계관에서 괴수들에게 사냥당하는 자신은 어느 누구도 현실감 넘치는 그래픽과 연출 내에서 보고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위험 지역으로의 진행은 각오가 된 플레이어들이 하는 플레이 스타일이었다. 모두가 사냥과 전투를 업으로 삼고 경험치를 얻지는 않는다.

자유도가 높은 어떤 RPG게임들도 그런 방식을 취하지만, 비련의 시나리오는 조금 더 그 비율이 높았다. 전투 직종이 아닌 다른 직군을 선택해 게임 내의 생활을 이어나가는 플레이 방식의 비율 말이다.


다만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궁리를 짜내고, 역경처럼 보이는 짐승들을 잡아냈을 때의 쾌감은 남다른 것이었다. 그 부분이 비련의 시나리오에서 역설적으로 가장 즐거운 부분이기도 했다.


제냐는, 그런 즐거움을 딱히 포기하려 하지는 않았다.


“취륵.”


털이 없는 오크. 둔중하게 생긴 그것이 천천히 걷는다. 거구의 몸뚱이를 지녔다. 2m하고도 반은 될 것 같은 거체이다.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그 윤곽선은 사람의 것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고대 시대에 전설로 있었다나, 전해지는 거인의 풍모가 저럴까 싶다. 다만 거인과는 달리 훨씬 멍청한 짐승의 뇌를 달고 있다는 것이 사냥꾼들에게는 위안이었다.

짐승 중에서는 가장 교활하고 또 개중에서 두드러지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짐승은 짐승이었다.


땅바닥을 딛는 발은 맨 발바닥 그대로였다. 갈색 오크의 것 말이다. 다른 오크들은 해가 사라지자 일찌감치 제 움막 속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오크는 ‘야성’을 지닌 몬스터다. ‘야행성’이 있지는 않았다.


이름의 어감이 비슷해 ‘오거Ogre’와 혼동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오크와 오거 중에선 후자가 조금 더 상위종이다. 더 거대하고, 강력하며 다양한 특질을 가진 짐승이자 괴물이었다. 비련의 시나리오 내에서 후자의 것이 훨씬 더 고레벨이 필요한 사냥감이다.

오거는 야행성 속성이 있었고 ‘귀신’의 일종이기도 했다. 오크 역시 그 어원이 악마로부터 왔으므로, 귀신과 같지만 ‘야행성’ 속성이 붙어 있지는 않았다.


아마 게임의 난이도를 위해서 조정한 설정이 아닐까 싶었다. 비슷한 계통이지만, 하위의 물건들인 오크나 고블린은 야행성이 없었다. 무리를 이루며 짐승 중 가장 교활한 놈들인 녀석들을 비슷한 레벨Level의 사냥자들이 상대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순간 빈틈을 노려야만 했다.

낮과 밤 중에 놈들은 낮의 숲 속을 활보하는 놈들이었고, 밤이 되면 다른 들짐승들처럼 잠을 잔다.


물론 밤에도 여전히 강력하다. 타고난 완력과 체력이 죽는 건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야행성 속성으로 인한 추가적인 힘이 더해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무리지어서 타고난 교활함을 이용해 초보자의 악몽이 될 수도 있는 몹Mob들이 하루 시간대의 반 이상을 버프(Buff, 열광자, 애호가. MMORPG따위에선 다른 캐릭터의 능력치를 일시적으로 증가시켜주는 지원 기술을 의미한다)에 걸린 것처럼 높은 스텟으로 다닌다면 게임의 밸런스가 너무 괴악해지는 일이리라.


중후반을 넘어가면서 다양한 속성과 특성들로 난이도가 널뛰기 하는 것은 피할 수 없었지만, 뉴비들을 위한 배려 정도는 이 게임에도 있었다.

모든 게이머들을 탈락시키는 건 제작자의 제작 의도가 아니었다. 개발진들은 어디까지나 많은 수가 게임의 종지부를 찍기 원한다. 그럴 수는 없겠지만.

보다 많은 인원이 게임으로 즐거움을 느끼고 하루 여가 시간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풀어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사실, 공공연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았지만 비련의 시나리오는 개발 도중의 물건이기도 했다. 이후에 더 괜찮은 녀석을 만들기 위해서 시험작으로 내놓은 것.


개발진들은 이 게임을 모델 삼아서 다양한 데이터 값을 긁어 모으고, 차후에 진보된 녀석을 내놓기 위해 오늘도 애쓰고 있다.

그 노고를 알아주는 게이머들은 별로 없지만 말이다.


오크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눈빛이 있었다.


부락의 울타리 내부, 움막들 사이의 공터를 천천히 걷는 갈색 오크 한 마리. 거기로부터 멀리 직선을 이어보면 있는 자리였다. 오크의 시야에서 오른쪽 대각선 방향으로 쭈욱, 한 200m거리 정도 바깥.


마침 그 자리에 관측이나 저격에 좋은 높다란 수령이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숲에서도 유달리 눈에 띄는 부분이었다.

관측에는 좋으나 저격자의 위치가 너무 쉽게 노출된다는 단점 또한 있었다. 빌딩 숲에서 저격을 하려면 복잡한 공간이 필요하다. 저격의 방향과 포인트가 단숨에 노출된다면 저격자는 호위 인력에 의해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몇 가지가 필요했는데,


압도적인 화력이나 근접전에서의 전투 능력이었다.


그게 있다면 이미 저격은 단순히 암습이 아니다. 그냥 정면 대결을 해도 되는 지경이긴 하다.


기회를 노리는 은밀하고 신중한 저격과, 갈색 오크 부락을 통째로 상대하려는 정면 승부의 사이 어느 지점에서 두 사내는 총구를 디밀었다.


아니, 총구는 아니다. 화살의 촉을 그 방향으로 가늠하며 내밀고 시위를 당겼을 뿐이다.


제냐는 SP를 운용했다. 곧, MP를 말한다.


이미 시간이 어둑해졌다. 한국의 시간과 비교했을 때 비련의 시나리오 내 시간이 네댓시간 정도 더 빠르다는 걸 인지하면, 어느새 그들의 실제는 ‘밤’이었다. 이른 저녁이나 한낮 즈음에 시작했던 플레이가 몇 시간을 지났다.

굳이 퀘스트 한 개를 한 번에 깰 필요는 전혀 없었음에도 그들은 일단 그렇게 했다. 기세를 타다보니 그렇다.


이미 오크 세 마리를 전에 해치운 것 말고도, 여러 번의 전투를 겪었다. 갈색 오크 네 마리를 두 마리씩 따로 잡았고 갈색먼지 숲 남부 섹터Sector에 존재하는 다종의 몬스터들과도 마주쳤다. 에인션트 그리즐리 베어, 개중에서도 갈색 털을 가진 놈과 다이어 울프라고 하는 더럽게 큰 늑대도 한 무리를 잡아 죽였다.


그러고 나서 휴식 시간을 가지고, 나름대로 재정비의 시간을 갖추며 무장을 정리하고 다시 노려보고 있는 게 지금이었다.


경험치는 잘 오르고 있었다. 확실히 파티 플레이는 효율적이었다. 제냐 역시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혼자서 한 마리의 몬스터를 잡기 위해서 깨나 많은 품이 들게 되는데, 사람이 두 명이면 훨씬 적다. 시너지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그 또한 어느 정도 실력 수준이 맞고 합이 맞아야 가능한 일이었는데, 아마 개멋진나 최와 제냐는 제법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콤비인가보다.


우연히 평화의 숲에서 만난 게 그들에게는 다행스런 일이었다.


어쨌든, 제냐는 그 몇 번의 전투로 몇 개의 스킬적 요령을 깨달았다. 무기에 SP를 싣는 것. ‘기氣’를 다루는 요령이다. 그 강화법이 극한으로 가면 이제 흔히들 말하는 검기, 라고 하는 걸 발출하게 된다.

검사란 어쨌든 날붙이를 다루는 자들 중에서 가장 수가 많은 부류였다. 근접전에서 체력으로 승부를 보는 인간들 중 중수 이상의 플레이어들이 ‘검기’ 스킬을 갖게 된다.

비련의 시나리오 내 세계관, 곧 콘란드 대륙에서 NPC들은 중수 정도의 개체 수가 유저에 비해 적은 편이다.


전체 인구는 유저들보다 좀 더 많다. 그리고 최상위의 달인들이 훨씬 많았고.


유저들이 게임 내 설정상, 이 세계에 찾아와 보낸 수련의 시간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플레이어들은 NPC들과는 궤가 다른 성장 속도를 보인다. NPC들은 애초에 그런 이들이 아니었으니까. 세계를 정복하라고 둔 자들이 아니라, 그저 세계관을 구성하라고 설정해 둔 이들일 뿐이었다.

게임 내 세계는, 곧 그 스토리와 시나리오의 주연은 어디까지나 유저였다.


물론 그렇게 정해져 있다고 무조건적으로 단방향적인 게임 플레이가 강제되는 것도 아니었다. 유저가 고의로든 아니면 실력이 부족해서든 중도에 탈락하게 되거나, 세계관 내의 정복자로서 활약하기를 포기한다면 그저 NPC들에 의해서 시나리오 온라인 내 역사가 움직일 뿐이었다.

유저들이 게임 내 세상에서 무엇을 할 지는 본질적으로 자유였다.


기본적인 상식관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건전한 게임 플레이. 그게 비련의 시나리오가 지향하는 바였다.


‘검기’와 같은 기력 스킬들은 중수 이상이 다루는 스킬들 중에서 기본 스킬 따위로 분류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정말로 기초적이거나 쉽다는 의미는 아니었으나, 활용성과 발전도가 무궁무진하다는 점에서 그렇게 불린다.

다양한 종류의 초상 스킬들, MP를 이용하는 부류들이 극에 이르면 세계관 전체를 활보하고 오시할 수 있는 것처럼 기력 스킬들 또한 그러했다.


물리 스텟들 위주를 사용하는 근접전 등의 유저들도 후반에 가면 결국 정신력 계열의 스텟들을 찍어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물론 다양한 육성법과 플레이가 있는 시나리오 온라인 특성 상 한 쪽으로만 극단적으로 치우쳐서 끝까지 플레이하는 인간들도 있기는 했다.


어떤 식으로든, 세계관은 유저에게 문제와 난항을 선사한다. 그 고난들을 인식하고, 마치 퍼즐을 풀어나가듯 제멋대로의 답을 제시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가는 것이 또한 헤비한 게임 유저들이었고 말이다.


비련의 시나리오는 규격화된 공략법이 주어지는 게임은 아니었다. 개발진들조차, 기본적으로 광활하고 방대한 시스템 속에서 어떤 방식이 가능할 지 모두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다.

비련의 시나리오를 주관하는 것은 인간의 두뇌는 아니었고 초인공지능이었으며, 애초에 그 물건의 개발을 위해 모였던 천재들이 시험삼아서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이었으므로.


개발진들이 요구한 모든 사항들을 포함하면서 거대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고 있는 인공지능은 여태껏 역사상 존재했던 물건들 중 가장 뛰어난 녀석이었다.


현실과 닮았다,


라는 게 비련의 시나리오의 세일즈 포인트였으며 가장 놀라운 점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닮아있는지, 얼만큼의 기발한 자유도를 허용할런지는 게임사 ‘태’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어느 중년의 사내도 알지 못했다.


어쨌든 제냐는, 모두 다루기로 했다.


솔로 플레이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었다. 결국 그 길의 끝에 잡탕과 같은 흐지부지한 성장세의 캐릭터가 있을 수도 있기는 하다만. 어차피 처음 해보는 게임이었고, 그로서는 처음 가보는 길이기도 했다.

고작 게임의 세계였지만 그런 식으로 모험을 하면 즐거워 지는 법이었다. 나중에 도저히 길을 찾지 못하고 엉망이 되었다고 비련의 시나리오를 제 손으로 접는(게임을 그만두다) 한이 있어도 어쩔 수 없으리라. 그것또한 만족스러운 결말이었다.


뭐든지 뜻대로 되는 게 없는 인생인데. 게임이라고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 즐거움과 신박함을 찾아서 몰입해서 잘 즐기고, 스트레스를 풀고 새로운 경험을 해보면 될 뿐이지.


그런 점에서 시위에 건 철목시에 SP를 때려박는다. 요령은 여타의 초상 스킬을 사용할 때와 같았다. 그냥 MP를 MP지배력을 활용해 움직이고, 스킬의 도움을 받지는 않지만 손에 쥔 물체를 목표로 집약시키면 된다.


MP라는 건 찰흙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반발력이 있다가도 사용자의 의지력에 따라 움직이다 보면 관성을 갖기도 하고, 또 그런 것들을 한 데 모으면 접착력이라도 있는 듯 잘 붙고 또 한 덩어리가 되기도 했다.

모양을 자유자재로 변환시켜서 다양한 초상 스킬들을 구축하고 사용하기도 하니 그야말로 찰흙 비슷한 것이었다.


전체 MP량은 제한적이었고, 정신력 포인트를 회복시켜주는 푸른 물약을 계속해서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MP지배력이 부족하면 획기적인 공격력 상승은 없기는 했지만.

아무튼 계속해서 MP를 다루고 또 감각을 익혀나가는 건 상위의 전투직 플레이어로 가기 위한 필수적인 연습들이었다.


'기력'을 마스터하기 위해 달려가는 근접 전투 클래스들의 경우에는 물리 스텟과 조화를 이루어서, 체술과 무기술에 그것을 접목시키는 능숙함이 필요했다.

원거리 공격, 범위 공격을 주로 하는 초상 스킬 위주의 원거리 전투 클래스들은 MP만을 다루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면 되었고.


철목시의 두툼한 화살촉에 기력이 서린다. SP, 그러니까 사용자가 다루는 MP는 곧 기라 불리는 상태가 되었다.

물질에 어리는 기운이 강력하다. 초상 스킬 같은 화려한 이펙트가 곧바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물질이 담는 그릇이 되어 그 안에 들어가고 있다.

그릇이 차고 흘러 넘칠 때가 제대로 된 시작이었다.


물론 그 이전의 양으로도 기력은 충분히 전투에 유의미한 위력을 보이지만. 본격적인 스킬로써 다루어지려면 흘러넘치는 상태 정도는 되어야 한다. '스킬'로써의 기력술은 그 이후를 다루고 있는 기술이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시나리오 온라인 내에 존재하는 특수한 초상력의 입자가 철로 된 화살촉에 스며들었다. 장인이 벼려낸 마름모꼴의 화살촉 내부의 물성을 자극한다. 금속은 강화된다. 구조가 더욱 단단해지고, 질겨진다. 기력이 담긴 쇠날은 거대한 바위와 부딪혀도 잘 상하지 않는다.

기력술의 고수 플레이어들은 칼날마저 손쉽게 베어낸다. 부드럽게 말이다.


강도, 경도, 그 이상의 파괴력과 절삭력 따위를 모두 올리는 힘이었다. 촉에만이 아니라 화살대에도 깃들었다. 본디 나무였던 그것은 더욱 튼튼해져서, 그야말로 이름과 같은 질김을 갖게 된다. 철목시. 철과 같은 말이다.

그건 화학적인 변화라기보다는, 초상력으로 인해서 덧씌워지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물체의 무게가 늘어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SP를, MP를 머금은 화살은 날아가 오크의 몸체에 닿을 때까지 그것을 유지할 것이다. 화살 머리부터 시작해서 꼬리의 깃까지 충분하게 물에 적셔지듯 기가 담겨들어갔다.


무색의, 투명한 기운은 아지랑이가 되어서 그 바깥으로 넘쳐 나왔다. 우우웅, 하고 진동한다. 활대에 화살을 걸었을 뿐인데 그런 특이한 소리가 나는 상황은 다소 생경한 것이기는 했다. 무슨 미래 시대의 초전자 무기 따위를 가동할 때 날 법한 소리가 미세하게 들렸다.


어둔 밤이었고 숲은 고요했다. 풀벌레들이 우는 소리가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멎었다. 작은 짐승들이 돌아다니며 소란스럽게 구는 소리도 없다.

그것들도 시나리오 온라인 내의 생물들이라, 초상력의 변화와 전운 따위를 미리 감지했을 지도 모른다. 이곳의 몹들은 예민했다. 비단 현실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괴상한 괴수, 마수, 신비로운 기수(기이할 기)들만이 아니라도 그렇다. 실제 세상에서 MP를 다루는 일 따위는 없을 테니 혹시 모르지만.

야생동물들은 지진의 전조조차 미리 파악하고 자리를 떠난다고 하니 뭐 어느 정도 현실적인 표현일 지도 모른다.


제냐와 개멋진나 최가 준비하는 게 지진 정도의 일은 아니었다. 고레벨, 그러니까 300대 후반도 넘어서면 이론적으로 그런 것들도 발생시킬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은 턱없이 멀었다. 이론적인 스펙, 설정 상으로 현재 콘란드 대륙에서 가장 강고한 전투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NPC초인들은 그런 일이 가능했다.


고작해야 두 팔과 두 다리를 가진 인간의 형태로 대륙에서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니. 심각한 밸런스 붕괴가 아닐 수 없었지만 그들도 사람이었다. 어딘가에 치명상을 받으면 초인이건 뭐건 쉽게 절명하기도 했고. 또 단순한 전투력과 무력 이상의 사정과 정신적인 사연들이 그들을 이루고 있는 인공지능이었으므로 무차별한 악과 혼돈으로 세상을 물들이지는 않는다.


차후에 '마왕' 시나리오가 발동이 되어서 악하고 혼돈스러운 성향을 가진 몹들이 대거 등장하면 또 모르겠다.

현재 대륙에는 온갖 괴수와 마수들이 있었고, 그건 유저들이 잡아내야 할 사냥감들이기도 했다. 현재로서 유저들이 감히 도전하지 못하는 난이도의 괴수들 역시 수두룩했다.

그것들은 NPC주민들 중 최강자들이 그러하듯 국지적으로 천지를 진동시킬만한 힘과 전투력을 갖고 있었지만, 하나로 규합되는 편은 아니었다.


'마왕'이라는 극악의 시나리오는 그런 것이다. 각자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마수들, 몬스터들이 하나로 모여서 인류 세력을 치기 위해 덤벼든다.

그 때의 대항점으로 '영웅' 시나리오가 존재했고, 그렇게 되었을 때 콘란드 대륙은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져 두 세력을 이끄는 유저나 NPC 중 승리자가 아마 게임의 마지막 씬을 차지하게 될 테였다.


시나리오의 결말은 여러가지였고, 마지막 씬은 대미를 장식할만한 스케일을 만족한다면 일단 대강의 클리어 조건은 만족하는 셈이었다.

'메인 스토리'급의 퀘스트들은 대륙 전역과 관계된 임무들 중에서도 강제적인 영향력이 큰 것이었고, 대륙에서 살아가는 모든 주민들의 직접적인 사정과 엮일 수 밖에 없는 이야기들이다.


모든 대륙 주민들의 운명을 결정할만한, 그런 이야기 말이다. 영웅과 마왕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모든 인류 NPC들의 생사를 결정짓는, 인류의 적의 대두와 그것의 퇴치를 내용으로 하는 스토리는 어쩔 수 없이 메인 스토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제작 계열의 스킬을 연마하는 연구자, 와 같은 자들이 콘란드 대륙에 산업 혁명 따위를 일으킬 수 있는 물건을 발명한다면 그것 역시 메인 스토리로 취급될 테였고.


제냐가 그 만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지, 는 모르는 일이다.


이 게임이 본질적으로 서바이벌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니만큼, 다른 모든 사람들이 모종의 이유나 사고로 게임 오버가 된다면 플레이어는 그 혼자 남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세계관 전체에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만한 역량이 되지 않는다면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저 그렇게, 게임 내의 흐름에 휘말려서 살아가다가 게임을 주관하는 초AI가 연산으로 역사를 이끄는 것의 결말을 방관자로서 바라보게 될 테다, 그렇다면.


당장은 하루하루 수준을 높이는 일이 당면한 과제이다.


고작해야 게임의 일이기는 했지만.


제냐가 공격의 준비를 마치는 동안, 그 아래 아래 가지에서 개멋진나 최 또한 준비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가 하는 원거리 공격도 결국은 화살이다. 첫 번째 수는 둘 모두 같았다.


철시가 예의 그 복합궁에 걸린다. 철목시에 비해 은빛으로 빛나는 물건이었다. 그 끝만이 자연적인 형태의 깃이 붙어 인위적인 느낌을 조금 덜어준다. 장인의 손에 의해 제련된 그것에 개멋진나 최의 기력술이 스며든다.


'초기 기력술1-궁술'의 단계 역시 오늘의 사냥들로 경험치가 조금 찼다. 기력술2까지는 아직도 멀었지만, 스킬 내에서 단계를 높일 정도는 슬슬 되어간다.


철시가 웅웅거리며 MP를 받아들였다. 최태현의 MP는 제냐보다 적은 양이었다. 1,370. 기초가 1000즈음에서 시작한다는 걸 생각하면 거의 늘지 않은 양이었다. 실제로 그의 정신력 계열 스텟들은 10대 초반을 간신히 넘는다. 중반 즈음.


그런 기초 스텟들로도 그의 레벨대에서 기력술을 발휘하기에는 그다지 모자람이 없다. 푸른 물약 또한 넉넉하게 있기도 했고. 파이어 볼 스킬처럼 MP만으로 투사체를 형성하지 않기에 한 발 한 발에 대한 소모가 적다. 2, 30 정도가 적정선이었으며 과하게 투입한다면 100근처까지 갈 수는 있긴 하다.


멘탈 포인트가 많이 스며들기 위해서는 양질의 무구와 물질이 필요했다. 철시가 버틸 수 있는 한계도 그 정도 즈음이었다. 그 이상이 들어가면 공격에 제대로 MP가 실리지 않는다. 기력술로 무구가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흘러넘치며 그 주변에서도 목격되며 화살 공격의 위력이 높아지긴 커녕 MP가 자연계로 흘러들어가버린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일반적인 SP의 상태가 되고 무의미하게 소모되는 것이다.


간혹 억지로 의지력을 발휘해 하위의 물질이나 무구에 지나친 기력을 넣으면 물질이 상하는 경우 또한 있었다. 정말 초고레벨의 기력술사가 기력술을 발휘해 근접 전투를 벌이려 하는데, 손에 쓰레기같은 녹슨 무기밖에 없다면 그는 그것을 1회용으로 쓰거나, 혹은 SP만으로 기검을 형성하는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었다.

마치 초상 스킬 유저들, 초상술사들이 투사체를 비롯해 다양한 스킬을 MP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형성해내는 것처럼 말이다.


분명 비효율적인 일이긴 했지만 기력술사 역시 MP를 다루는 직종이니만큼 가능은 했다. 물리 스텟에 투자한 시간과 경험들만큼 정신력 스텟이 부족해 지속력이나 위력면에서 훨씬 짧고 덜하기는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좋은 무구는 필연적으로 또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상위의 전투에서는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있느냐, 또한 중요한 승부처였다.


비련의 시나리오 내에서는 대부분의 귀한 것들이 그러하듯, 좋은 물건들은 고된 경험을 해내야만 얻을 수 있었다.


천운으로 조금 더 일찍 손쉽게 얻을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희귀도'라는 측면에서, 확률의 고난을 뚫어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개멋진나 최는 조금 넉넉히 사용했다. 47즈음의 MP를 한 발의 철시에 넣는다. 일반적인 기력술 사격에 비해 배 가까이는 넣는 셈이다.

거리가 조금 멀기도 했고. 기선 제압을 위해서 그 정도가 좋을 테다.


어둔 밤.


활엽수들로 하늘을 가린 짙은 숲의 땅은 조금 더 빨리 어둠이 찾아왔다. 하늘을 가리는 그 활엽수종의 가장 높은 것의 틈바구니에서 두 사내가 타이밍을 재었다.


저 멀리에 있는 부락을 발견했을 때부터 조금 고민을 했고, 그냥 곧바로 해치우기로 생각해 돌입한 찰나였다.


7마리의 오크를 해치웠고, 그 갈색 오크들 모두 그들이 목표로 하는 부락에서 튀어나온 것들이었다. 그러고도 20마리가 여전히 부락에 남아 있었다.


운이 조금 더 좋지 않았다면, 부락 주위를 순찰하듯 떠도는 오크들을 다 발견하지 못했을 경우도 있었다. 뭐 물론 부락이 공격을 당한다면 주변을 배회하던 개체들도 돌아오기는 할 테였다. 오크들은 공동체마다 특유의 소리를 공유하는 녀석들이다.


긴 울음소리나, 혹은 다루는 도구를 이용해서 내는 그 소리들은 공동체를 구분하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위험 신호를 듣고 부락으로 돌아올 테니 잡을 수는 있다. 한창 앞에 있는 무리를 상대하다가 뒤에서 덮치는 원군을 맞이해야 하니 조금 귀찮긴 했을 테였다.

이토록 퀘스트 진행이 깔끔한 것은 참 괜찮은 경우였다.


어둑- 해진 하늘에 달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다 가시지 않은 햇빛의 잔여량이 있었고, 달이 흐리다.


하늘 위는 어디까지나 그러했다. 우거진 나무들 아래의 땅에서는 완연한 밤일 것이다.


어둑해질 무렵 야행성 속성이 없고 낮에 활보하는 오크들은 움막에 들어가 휴식을 취한다. 어두워지면 자고, 한 두 마리 정도만이 번을 서듯이 경계를 할 뿐이다. 이번의 대상은 한 마리였다. 덩치가 갈색 오크들 중에서는 가장 크다 할 수 있고, 손에는 거대한 할버드(도끼창)하나를 들고 있었다. 나름대로 무구의 질이 나쁘지 않았고, 어느 인류에게서 금새 훔친 듯 보였다. 그것을 휘두르기에 충분하고도 남아 보이는 팔뚝이 위협적이다.


그래서 원거리에서 치는 것이다.


번을 서는 개체의 전투력이 뛰어난 듯 경계를 혼자서 하고 있다. 오크는 예민한 감각을 가졌지만, 주의력이 떨어졌을 때 그렇게 탐지 능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전투 상태에 돌입하면 민감함을 보이면서 플레이어들의 허를 찔러 들어오기도 한다.

미리 거대한 오크 부락과 적대적인 관계가 되어서 전쟁이나 전투 상황이 벌어지면, 그 놈들은 그 주의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함정을 파거나 양동 작전을 벌이는 일마저 있지만.


어디까지나 위기를 모르고 있는 멍청한 갈색 오크 한 마리 정도는 손쉬운 상대였다.


기민하고 교활하며, 기본적인 근력 스텟이 인류보다 월등한 이족 보행의 괴수는 집중할 때와 아닐 때의 격차가 심하도록 설정값이 정해져 있었다.

빈틈을 노리란, 개발자의 친절한 안배였고


빈틈을 노리기로 작정한 제냐와 개멋진나 최가 동시에 시위에서 화살을 놓았다.


*


날아간 화살은 여정을 떠났다. 화살의 속도가, 초속 160m근처에 달했다. 한 순간 넉넉하게 눈을 깜빡거리고 뜸을 들일 즈음이면 화살은 그 여정의 반 이상을 해낸 셈이다.


그리고 다시 1초의 반. 또 그 반이면 오크는 둔감한 정신 속에서 이상이 일어남을 감지한 때였다.


옆을 바라보고 있던 민둥한 돼지의 대가리가, 오른쪽 사선 방향에서 자신을 향해 꽂히듯 내려오고 있는 검은 살을 발견한다.


어둠 속에서 그건 거의 인지하기 어려운 무언가였다. 밝은 낮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은빛의 몸체를 가지고 있는 최태현의 철시 역시 같이 날아오고 있었는데, 그 철시에 담기고 곧 바깥으로까지 넘친 희끄무레한 기력의 형체가 빛의 반사를 조금 방해했다.


어둠 가운데 안개가 퍼지듯 은밀한 모양새로 두 개의 화살이 여행을 끝마쳤고, 제 주인의 의도대로 정확한 목표지에 그 대가리를 들이 박았다.


철로 이루어졌으며 날카롭게 갈아낸 손가락만한 길이의 길다란 화살촉들이, 단단한 거죽으로 덮인 오크의 몸체를 가격했으며- 그대로 뚫어 들어갔다.


콱-! 카각! 하고, 하나는 오크의 가죽 중에서도 단단하게 단련된 흉부에 맞아 저항감을 받더니 이내 무리 없이 쑤셨다.


사격, 두 발의 화살은 목적한대로 훌륭하게 도착했다. 두 사수로서도 아주 만족할만한 결과였다. 거대한 오크의 몸뚱이를 맞추는 일 자체는 그리 불가능한 일도, 어려울 일도 아니었다. 달인에 준하는 감각을 가지는 플레이어의 육체가 스킬의 다양한 보정을 받으면서 한 일이었기에.

기계가 끌어 움직이는 대로 정확하게 사선을 맞추고 손가락을 정확한 타이밍에 놓으면 될 뿐인 일이다.

단련된 플레이어, 게임에 익숙해진 고수들은 그 감각을 체감적으로 익히며 나중에는 스킬의 보정이 그들을 인도하기 전에 이미 정확한 위치에서 기술들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 수준의 헤비 게이머가 되면 온갖 스킬을 조금 더 다변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른다. '스킬'은 플레이어의 게임 내 생애의 기록이며 그 경험에 따른 전투 스타일 그 자체가 된다고 했었는데, 고레벨임과 동시에 괴랄한 플레이어로서의 경험치를 지닌 이들은 그 전투 스타일이 난해해지는 것이다.

그런 자들은 고레벨, 랭커Ranker라 불리는 자들 중에서도 특수한 이들이며 소수이다.


몬스터들을 사냥할 때도 조금 더 틈을 노릴 수 있는 실력가들일 테고, 특히 PVP(플레이어와 플레이어가 겨루는 것)을 한다고 하면 압도적인 승률을 얻게 된다. 그러지 못하는 자들과 싸운다면 말이다.


둘은 그 감각을 익혀가는 중이기는 했다. 둘 모두 게임을 할 때의 집중력 자체는 좋은 편인 인간들이었다. 게이머, 게임을 하나의 스포츠 종목에 비유한다면 둘 다 피지컬적 재능이 나쁘지 않은 것이다.


***


그런 감각적, 미세한 재능의 존재를 입증이라도 하듯 두 발의 화살촉은 오크의 몸에서도 갑주가 가리고 있지 않은 면을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오크의 거대한 몸뚱이 중에서도 방어구로 인해서 일단 막히지 않는 부분, 갈색의 거죽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부분, 그리고 거기서 다시 그들이 오크를 바라보는 각도 외를 제한한다면 명중이라고 할 만한 부분은 그리 많이 남지 않게 된다.


그쯤 되면 확실히 기예 이상의 기예였다.


하나는 흉골을 갉으면서 명치 부근을 비스듬히 파고들었고, 하나는 앞을 바라보는 오크의 오른쪽 목덜미 살을 파헤치며 들어갔다.


목덜미는 상대적으로 부숴야 하는 뼈의 양도 많지 않았다. 면적으로 보아도 그렇고, 개수로 보아도 그렇고.

목을 파고든 철목시는 그대로 목 뼈의 외부를 긁으면서 지나가 꿰뚫었다.


갈색 돼지의 목줄기를 끊어버린 화살은 목뼈의 앞부분에 제 몸을 부딪히면서 갔고, 거기에 담긴 MP는 물질적인 화살의 면적 이상의 범위에 2차적인 충격을 가했다.


오크의 두터운 목이 반쪽이 났다. 원기둥을 앞과 뒤로 구분했을 때 앞부분이 전부 패여 사라졌다. 곧 울대가 있던 부분들이다.


신체의 파괴와 동시에 내부 기관과 피가 흘러나오는 대신 빛의 입자들이 주변으로 흩어졌다. 생물의 내부에 흐르는 '피'에 대신인 그것은 상처의 양과 심각도를 구분짓는 역할을 한다.


원래대로라면 생물의 몸에 있다가 나올 그것들이 그러듯, 입자는 처음에 흘러나오나 싶더니 곧이어 유량이 급격히 늘어나 다소 멀리까지 흘러간다.


입자 하나하나는 흰 빛, 혹은 각도에 따라서 여러가지 빛깔로 변형하면서 흩어진다. 점성이 있거나 결합력이 있어서 그것들끼리 모여 흐르지는 않았다. 메마른 모래알 가루가 떨어지듯이 그렇게 흩어졌다. 다만 자체적인 부유력이 조금 있는지, 먼지 가루가 공기중에 흩날리듯 천천히 멀리까지 뻗는다.


몹mob의 신체 내부에서 뻗어나온 것이 그리 오래까지 지속되지는 않았다. 이내 원래 없었다는 것처럼 게임 내 세계에서 그것들은 소멸한다.


죽어버린 몬스터의 데이터가 세계관에서 사라지듯이 말이다.


인류의 시체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손상을 입는다면 그 부위는 빛의 입자화를 하며 흩어지고, 결국 그것은 소멸되지만 멀쩡하게 남아있는 나머지는 오래도록 세계에 잔류한다. 올바른 장례 절차를 위한 것이기도 했고, 그 상태에서 인류 캐릭터의 시체에 손을 대어 변형시키고 조작을 할 수는 없게 만들어져 있었다.


비련의 시나리오 내부에는, ‘악’ 성향을 가지고 플레이를 하는 역할극 또한 존재했고, 마왕의 역할을 하면서 ‘어둠’과 ‘악’의 초상 스킬을 발현하는 술사들 중에는 인간의 육신을 대상으로 하는 스킬들도 물론 있기는 했다.

그건 그럴 때의 특수한 절차와 과정을 거쳐서 발현되는 이벤트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런 클래스로 캐릭터를 육성하거나 게임의 플레이 방향이 정해질 때는 여러 개의 동의 문구가 들어가게 된다.

미성년은 그런 식으로 플레이 할 수 없었고, 정신병력이 없으며 정신 상태가 건강하고 내성이 있다고 정신의학적으로 판단될 때 플레이가 가능하다.


또한 인류 캐릭터들에 대한 지나친 훼손이나 게임 내의 잔학성이 높아지는 일을 줄이기 위해 그런 플레이 시에는 마치 미성년들이 ‘데포르메 모드’를 사용해 현실성을 낮추고 생략된 그래픽으로 게임을 즐기는 것 같은 다양한 연출이 강제된다.


‘악’ 성향으로 플레이를 한다고 무조건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현실적으로도 연상이 가능할 정도로 지나친 상해와 잔인성이 플레이 시에 동반된다고 하면 그렇게 시스템이 움직이는 것이다.

게임은 여가였고, 취미에 불과하다. 그런 일을 하면서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고, 비련의 시나리오의 개발진과 운영진들이 정의하는 ‘스트레스’에는 ‘선정성’ 또한 포함되는 것이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런 연출이 필요하기는 했다. 현실에서 전쟁과 희생이 있듯이, 이 게임 내에도 이름 자체에서 암시하듯 여러 개의 비극이 있다.


저런 식의 ‘모드’가 강제되는 건 어디까지나 아주- 특수하고 특별한 경우의 일이었고, 만일 그런 게임 플레이 루트Route를 타게 된다면 플레이어는 ‘마왕’ 중에서도 지독한 종류로 취급이 되어 온 대륙의 공적으로 불리게 된다.

‘온 대륙의 공적’이라는 위명에는, 마왕과 영웅 시나리오가 발동이 될 때조차도 어느 정도 중립성을 지키는 특수 NPC들마저 그의 적이 된다는 뜻이었다.

마왕 시나리오의 플레이어로서는, 극악한 난이도의 진행이 될 테다.


빛의 입자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다시 빛의 입자로 돌려보면, 오크는 두 발의 화살을 맞고 곧이어서 상처 부위에서 빛의 가루들을 흘려대고 있으면서도 잠시간 살아 있었다. 체력을 올려주는 종류의 스킬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인 개체였다.

그것은 오크들 중에서도, 짐승의 대가리를 가진 괴수들 중에서도 유달리 터프한 녀석이었다.


한 발은 그렇게 목을 찢었고 나머지 한 발은 흉부에 틀어박혀 내부에 강한 충격을 주었다. 사선으로 꽂힌 화살은 ‘기’를 머금고 있었고, 그건 최태현이 날린 철시였다. 은빛의 화살은 그 광택이 흐려질 정도로 기력을 강하게 부여받은 물건이었는데, 기력들은 그대로 폭발력의 에너지가 되어 오크의 몸체 내부에서 터졌다.


목을 지나간 것은 완전히 뚫고 베고, 넘어가 먼 발치의 바닥에 대각선으로 박혔다. 흉부를 찢은 것은 뼈에 걸려 화살의 대가리와 꼬리가 밖으로 나온, 다소 잔혹한 꼴이었다.

상처, 피, 훼손에 대한 직접적인 연출은 없더라도 그 장면만으로 고통을 연상케 되는 것이 사람이었다. 제냐와 개멋진나 최는 모두 200여 미터 거리의 광경을 대강이나마 인지하고 있었다.


최태현의 경우에는 조금 더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정보였고, 제냐의 경우에 그의 감지 계열 기술들은 아직 고급 스킬들이 아니었기에 예측과 추론을 시각 정보로 그에게 전달해주는 정도였다.


화살의 대가 몸을 뚫고 지나간 오크는 괴로움에 반사적으로 떨었고, 동공과 홍채가 살아있고 반응을 했다. 한 걸음, 아니 반 걸음 정도는 괴물이 발을 옮겼다. 그 두터운 갈색 발바닥이 흙먼지가 묻어나는 부락 공터의 땅을 디뎠다. 질질 끌듯 움직였고, 오크는 말을 하려 했지만 말을 하기 위한 신체의 기관이 상처 입어 빛의 입자화한 상태이다.


소리는 내지 못하고, 그것의 눈빛이 서서히 꺼져갈 때 결정적으로 최태현의 화살이 쿵! 하는 폭음과 함께 기의 폭발을 만든다. 가슴팍에 있는 온갖 중요한 장기들이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오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목줄기가 날아간 것만 하더라도 이미 다운 당해야 할 상처였다.

잔여 HP나 여러 가지 특성과 상관 없이 치명상을 입으면 어떤 NPC든 플레이어든 게임 오버를 당하게 되어 있었다.

심장계가 기의 발출로 작은 칼날이나 발톱에 찢기듯이 갈기갈기 흩어졌고, 보이지 않는 내부에서 오크의 피부 아래가 온통 빛의 입자로 변하더니, 곧 오크가 체력이 0이 되었다.


몹은 그렇게 시나리오 온라인의 세계에서 퇴출되었고, 육체를 컨트롤하던 인공지능이 사라진 뒤 공터의 바닥에 천천히 둔중한 몸을 뉘였다.

앞으로 쓰러지듯 넘어가 거체에 어울리는 소리를 냈고, 흙먼지가 어둑한 가운데 피어오른다.


오크들이 밤에 둔하고 약점을 노출시킨다고 해도, 아예 못들을 정도의 소리는 아니었다. 악마나 귀신을 모티브로 한 그것들은 ‘짐승’의 특성들도 많이 가지고 있었고, 바깥에 있던 오크가 쓰러진 지점 근처 움막에서는 분명히 그것을 들었다.


잠을 청하던 19마리의 나머지 오크들 중 몇 마리가 서서히 기어나오기까지 조금의 시간이 걸렸다.


*


오크 한 마리가 눈을 떴다.


쿵!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어두운 움막 내부는 아무런 광원이 없었다. 필요 하지도 않다. 오크들은 밤에 하는 일이 없었다. 몬스터Monster, 들은 육신을 갖고 있지만 정확하게 생물로 딱 떨어지는 생태를 갖는 존재들은 아니었다. 가상의 괴물과 귀신들을 엮어 만든 유저들의 사냥감이었고, 어떤 생식 활동을 하는 장면들이 게임 내에서 목격되지는 않는다.


그에 반해 현실에도 존재하는 동물들은 평범하게, 동물 다큐멘터리처럼 움직이고 생장한다. 리젠 또한 분명히 되지만, 그 외에도 자연스런 생식 활동을 통해서 개체수가 늘어나고 유지되기도 하는 것이다.


어쨌든, 오크들은 대강 짐승들을 잡아먹으며 배를 불리고 적대적 본능이 각인되어 있는 프로그래밍 설정값에 따라 인류 캐릭터들을 보면 공격을 한다. 그리고 그것들의 무구나 다양한 장비들을 빼앗아 저들이 사용하고, 대강 휘두른다.

어설픈 수준의 지능이 부여되어 있어 마치 원숭이나 영리한 동물들이 그러하듯 무리 생활을 하고 움직였고, 종족으로서의 특징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듯 부락을 만들고 움막을 짓는 정도까지는 무리없이 해냈다.


그런 식으로 부여받은 몇 가지의 특이한 고난이도 행위들 외에는 둔한 편이다. 인류형의 캐릭터들에게 주어지는 거의 완벽한 자유도에 반해, 몬스터들의 창의성은 굉장히 제한적이다. 그것들이 돌발 행동을 일으키는 확률 역시 적으며 그 가짓수도 한계가 있다.


결국 플레이어들이 주인공이며, 그들이 게임을 끝내야 하기 때문에 적으로 설정된 것들의 돌발 행동을 줄이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다소의 멍청함을 적에게 부여한다고 하더라도, 비련의 시나리오는 충분하고도 넘칠 정도의 난이도를 이미 가지고 있었다.


오크는 광원이 없었음에도, 그 민감한 감각으로 대강 자신이 누운 자리와 집 내부의 구조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더듬거리며 금방 일어난다. 상체를 일으키고 오크가 들어와 서면 거의 닿아버리고 마는 천장 근처까지 머리를 일으켰다. 기다란 나무 따위를 가져오고 어디서 구했는지 영 모를 천 따위의 건축 자재로 주변을 둘러 만든 엉성한 집이었다.


텁텁한 내부의 공기.


출입구도 사실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서 그대로 바깥의 물체들이 안으로 굴러 들어오기 쉽다.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먼지든, 낙엽이든.

오크들이 프로그래밍된 대로 움직이고 생활하지만 그들에게 온전히 청소라는 개념이 있을 리 없었다. 구조물을 세우고 부락을 형성하는 것만 하더라도 이미 충분한 일이었다.


애초에 본성으로 설계된 것, 모티브가 된 것이 돼지의 대가리인 사실만 보더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오크는 지저분한 곳에서도 멀쩡하게 살아간다. 야생이 보다 그들에게 어울리는 곳이었다.


거친 공기를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돼지의 콧구멍이 있다. 그것은 약간 덮어진 헤진 천, 지푸라기를 엮은 것 따위를 들추면서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화살을 맞아서 절명했다.


빛살처럼 날아온 화살은 어둠을 틈타 은밀하게 전진했다.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일조차 별로 없이, 그저 어스름한 숲의 그림자들 사이에서 움직이는 안개인가 싶다.

다만 지독하게 빠르다는 것이 조금 다르다. 기력으로 감싸여 희끄무레한 겉모습으로 날아온 개멋진나 최의 철시가 오크의 안구를 파고든다. 왼쪽 눈알이 그대로 사라졌고, 컴퓨터에 의해 조직된 그 내부 기관이 그대로 망가졌다.


어떤 생물도 뇌가 거덜이 나면 움직임을 멈출 것이다. 근육 반응은 남을 지 모른다. 그리고 부위에 따라서 간혹 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저등한 생물이라면 중요 장기가 없어도 살 수 있다고도 하고. 그러나 오크는 아니었고, 살만한 분량의 손상은 아니었다.

기력의 칼날이 그 내부를 진창으로 만들었고 오크는 전원이 꺼지듯 그 시야가 사라진다.


거구를 일으켰던, 높은 위치에 머리를 두었던 짐승은 그대로 나오는 자세에서 앞으로 쓰러졌다.


이족보행 형의 몬스터들은 머리를 높이 두고 있고 죽을 때 앞으로든 뒤로든 잘 쓰러진다. 쿵, 하고 소리가 나며 그 안쪽에서 애써 잠을 계속 청하고 있던 개체들이 눈을 떴다.


한 움막에는 두, 세 개체가 같이 기거하고 있었다.


오크 부락은 27마리가 머물고 있는 곳이었다. 단순 계산으로 10개 즈음의 움막들이 있었다. 초가집처럼 지어져 있기도 하고, 질기고 통으로 된 가죽이나 천을 덮기도 한다. 거대한 짐승의 거죽을 그대로 벗긴 뒤 많은 처리를 하지 않고 그대로 덮은 집도 있었다.

어떤 곳은 어느 불쌍한 인류 캐릭터를 습격해 물자를 털었는지, 자세히 보면 구석에 국가나 도시의 문양이 작게 새겨져 있는 천도 있었다.


찌그러져 길게 뻗은 타원형의 부락이었다. 제냐와 개멋진나 최는 그 타원형의 삐죽이 뻗은 측면에서 이어지는 사선에 있었다.


타원이라곤 해도 거구 거체의 괴물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보니 제법 컸고, 일견에는 그 모양이 잘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제냐와 개멋진나 최는 '들쥐의 눈'과 '매의 눈'을 사용해서 원거리를 감지하고 있었다. 제냐의 경우에는 아직 들쥐의 눈이 없었다. 조금 더 소형의, 저레벨의 몹들을 심혈을 기울여 사냥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한다. 최태현의 말에 따르면.

제냐는 조금 일찍 레벨보다 더 강한 몬스터들을 상대하기 시작하며 다른 종류의 전투 스타일을 개발시키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쨌든, 원거리를 대강이나마 인식하는 건 다름이 없었다. 제냐의 시선에서 그는 일종의 사격 게임을 하고 있었다.


불투명한 흔적이 그의 눈에 어른거린다. 마치 투시를 하듯이, 수풀 너머로 가려져 있는 오크 부락의 모양이 대강 보였다. 스킬로 인해 집중된 시야는 그 일부 풍경을 조금 흐리게 만들었고, 목표하고 있는 오크 개체들만을 붉은 색으로 나타낸다.

그 외에 중요한 구조물이라 할 만한 움막들 따위가 보였고.


조금 흐린 화질의 표식들이었다. 제냐의 스킬이 완전하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그 정도의 모습만으로도 화살을 쏘아 맞추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눈으로 보여주는 시각 관련 스킬은 곧 사격에 관한 것이기도 했다. 사냥꾼의 자세를 비롯해 그가 익혀 온 여러가지 스킬들의 보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그를 이끈다.


정확히 어느 지점으로 자세를 조금 더 옮겨야 오크가 맞을지, 에 대한 감각이었다. 그 가상의 사격선이 시야로 보이는 것 같다. 게임 따위에서 증강 현실의 표현으로 명중률을 높여주듯이, 혹은 실제 현실에서 총을 쏘려 할 때 레이저 포인트로 착탄지를 미리 일러주듯이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제냐가 들고 있는 것이 총이 아니기에 그 가상의 사격선, 예측도는 구불지며 휜 곡선으로 나타난다. 기력을 싣는 철목시라 할지라도 총알처럼 완전하게 직선으로 날아가지는 않는다.

총알에 비하면 이십 배는 넘게 무거운 철목시를 수백 미터 넘게 일직선으로 꽂으려면 기계식의 무언가가 필요할 테였다.


아니면 그런 장대한 기계 장치를 대신할만한 초상적인 능력, 초인적인 힘과 거대한 활이나.

아직까지 제냐가 갖추지 못한 것들이었고, 제냐는 지금으로서 만족했다.


하나, 둘 오크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바깥에서 느껴지는 소란에도 불구하고 기민하게 움직이지는 않는다. 갈색 오크들은 전투 중에는 영리하나 태만할 때는 둔하다. 게다가 2m가 넘는 이족 보행의, 냉병기를 휘두르는 괴물은 이 숲에서도 강인한 존재였다.

게임 내에서 ‘몬스터Monster’라고 특별하게 분류되는 존재들은 그런 경우가 많았다. 야생동물로 치면 늘 먹이사슬 최상위권에 있는 맹수와 같았고, 그 덕분에 늘 방심을 한다.


시나리오의 컨텐츠 중 큰 갈래인 ‘사냥’이 성립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괴물들의 방심은.


제냐가 두어 마리를 죽였고, 최태현은 세 마리 정도를 없앴다.


그러고 나자 움막에서 더 이상 움직거리는 놈들이 없다. 나머지는 깊은 잠에 들었나보다. 오크들이 특별한 발악을 하기도 전에, 두 명의 화살의 명수들은 나오는 족족 그것들을 쓰러뜨렸다.


갈색 오크가 원래 이토록 쉽게 잡을 수 있는 몬스터들은 아니었다. 단단한 가죽이나 포악함은 피스 시 근처 황무지의 ‘황야 지룡’을 닮았다. 인류형이라고는 하지만 곰을 연상시키는 덩치는 강력한 완력을 보유한다.

그런 놈들에게 둘러싸이기라도 한다면 사냥은 즉시 하드한 놀이가 되어버린다. 레져라고는 말 못할 무언가다.


두 사람이 브라운 오크를 상대하는 평균적인 레벨 보다는 전투력이 높았고, 장중단 중에서 중거리 즈음의 공격력이 가장 높은 궁사들이기에 가능하기도 했다. ‘경험과 시간’의 치환인 스킬은 결국 가짓수가 제한될 수 밖에 없었고, 한 가지에 특화된다면 다른 곳에 누락이 있다.

여러 스킬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공격력을 높여주는 일정한 공격 형태가 있다는 말이었다.


최태현이 비슷한 조건에서 선제 공격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근거리에서 칼을 사용한다면 갈색 오크 한 마리를 상대로도 깨나 시간을 들여야 하리라.

레벨이나 스킬적인 강력함 이상의 피지컬도 영향을 미쳤다. 감각이나 지능이 영향을 주로 미치는 게임 내의 운동에서 둘은 재능이 있는 편이었고, 스킬로 보정되는 그 이상의 명중률을 계속해서 선보였다.


아마 급소를 제대로 찢어발기지 못했다면 갈색 오크는 살아서 그 둔중한 몸으로 발악을 했을 것이고, 연달아 이어지는 클린 히트Clean hit가 아니었다면 부락 전체의 오크들을 한 번에 상대해야 했을 테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바깥에서 일곱을 죽이고 시작했고, 밤의 어둠과 졸음을 틈타 다시 여섯 마리를 해치웠다.

오크 부락의 남은 짐승들은 14마리였다.


아직도 근접전에서 무리 없이 해치우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숫자다. 갈색 오크들의 HP가 2000부근에서 형성되고 특출난 개체들이 3000을 넘을 지 모른다.

다양한 시스템 보정이 갈수록 중첩되며 누적되는 플레이어들은 동 레벨의 몬스터들에 비해 HP 따위가 높은 경우가 많았다. 어디까지나 비슷한 체격을 가졌을 때는 말이다.


‘비슷한’이란 범위에 갈색 오크도 포함이 되었다. 체감되는 크기는 곰과 비슷하지만 체구가 다르다. 이족 보행을 하며 사람과 닮은 신체에 돼지의 대가리가 달렸을 뿐인 오크들은, 건장한 장정이 살이 조금 붙고 체격이 커진 것이었다. 신체 구조도 곰을 모티브로 하는 몬스터들에 비해 유약했다.

어디까지나 그런 몬스터들에 비해서는 말이다.


무게 역시 잰다면 200kg을 넘는 정도가 최대일 것이다. 100kg대의 개체들 역시 흔히 볼 수 있었다. 그 두터운 살에는 근육 역시 상당했고, 정면에서 순수하게 힘겨루기를 한다면 적어도 레벨이 5-60은 넘는 물리 스텟 위주의 유저들이 아니고서야 이겨낼 수 없으리라.

가장 큰 경우, 거체가 3m에 달하는 붉은 오크들 중 몇몇 특이한 개체들이 ‘중소형’의 한계를 넘볼 것이다. 종족 중에서도 비대한 몸뚱이를 갖고 체력에 관련된 스킬들을 가졌다면 물리적인 힘과 HP가 탁월하게 높으리라.


그런 경우를 제외한다면 1:1의 비교를 했을 때 HP에 있어서는 유저가 높은 경우가 많다.


최태현의 경우는 갈색 오크들 중에서 체력 관련 스킬을 가진 개체들과 엇비슷하거나 약간 높은 정도였다. 그의 근력과 지구력은 제냐보다 낮았고, 스킬이나 칭호들 역시 근접 전투를 위한 것보다는 원거리 교전과 수색 따위의 일들을 위한 부류이다.

그의 HP가 3,441이었다.


시나리오 온라인의 전체 몹들을 두고 비교한다면 오크들은 사냥중인 제냐나 최태현과 비슷한 크기였다. 같은 소형에 포함되는 이족 보행형 몬스터들이었고 구분하기 위해 ‘인류형’ 몬스터라는 말로도 불린다.

그러나 그건 거대한 분류법의 이야기였고 직접 맞닥뜨리면 그들보다는 확실히 거구에 거인이다. 근접 교전을 벌인다면 자연스레 타격전이 이어지고, 그럴 때 체적이 작은 쪽이 불리하다. 보다 손쉽게 다양한 부위에 공격을 가할 수 있었고, 그 부위에 급소가 포함되어 있다면 HP의 월등함과 상관 없이 치명상을 입을 위험이 있다는 이야기다.


애초에 제냐와 개멋진나 최가 오크들을 멀리서 잡아냈던 방법 역시 치명상을 노린 셈이니.


그래서 고레벨로 갈수록 다양한 방어구와 방어계열의 스킬 따위가 중요해진다. 급소를 피하기 위해 다양한 움직임과 전략들 역시 강구된다. 가장 흔한 해법 중 하나는 ‘보법’이라는 계열의 스킬을 극한으로 익히는 짓이다.


복싱의 풋워크처럼, 전투 시의 움직임을 보조하며 회피율에 보정을 가하는 보법은 플레이어들이 마치 스스로 소설 속 무예의 달인이 된 듯한 감각을 느끼게 해준다.


제냐는 나뭇가지 위에 구부정하게 선 채로 부락을 응시했다.


사격을 위한 목표물이 전부 다운되자 그의 시야가 조금 더 흐려졌다. 궁수로서 갖는 여러 스킬들의 연계 효과는 화살을 쏘고 공격을 할 때로 제한되는 부분이 있었다.

본격적인 기감 계열 스킬을 익힌 개멋진나 최는 조금 더 나았다.


제냐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아래 아래 나뭇가지에서 자세를 잡고 화살을 쏘아대던 최태현이 말을 받는다.


“음······ 얼추 바깥은 정리한 것 같은데요.”

“그러게요.”


순찰도 없고, 더 나올 놈도 없을 듯했다. 2페이즈Phase(단계, 국면;게임 따위에서 흔히 사냥 중 혹은 전투 중 변화하는 상황을 표현하며 자주 쓰곤 한다)로 가야 했다.


두 번째 순서는 딱히 정해진 건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양반들은 아니다. 다만 스스로 익히고 있는 기술의 정체는 각자가 파악하고 있고, 그에 맞춘 양식 정도는 서로 공유하고 있었다.

이럴 때 결국 움직여야 하는 건 제냐다. 최태현은 그보다 근접 교전이 서툴다. 가능은 하지만, 오크 떼거리 사이에 들어가서 능숙하게 사냥을 이어갈 정도는 아니었다. 그게 일반적인 그의 레벨에서의 강함이었고, 제냐가 이상한 부류다.


제냐는 더 저레벨일 때부터 묘기를 벌이며 게임을 해왔다.


익숙한 요소들만 있지는 않지만 그다지 나쁘지도 않았다. 해볼만하다, 라고 제냐는 판단했고 최태현 역시 그에 동의했다.


최태현의 레벨은 32였다. 제냐의 레벨은 26이었고. 최태현은 레벨에 비해서 대충 적절한 공격력과 전투력을 갖고 있었다. 성장세가 그리 빠르지도 않고, 아주 느린 편도 아니다. 제냐는 레벨에 비해서 강했다. 레벨을 직접적으로 올리는 일, 그러니까 몬스터의 목줄기를 끊는 것 외에 특별하게 헛짓거리를 많이 했으니.

경험치 대신 스텟 상승이나 칭호 따위로 환산이 된 시간들이다.


아주 고레벨이 된다면, 제냐가 해오는 듯한 기행奇行들을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기는 한다. 중반부를 뛰어넘고 초고레벨이 시작될 무렵 부터는, 플레이어들이 상대해야 하는 괴물들의 강함이 급격하게 올라가게 된다.

그건 일반적인 성장세나 폭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변화였고, 말로 일컫자면 ‘격’의 변화나 같았다.


어느 레벨 이상은, 몬스터도 그저 평범한 것들이 아니게 된다. 어느 시대의 전설로나 불릴법한 놈들이 나오게 되고 그만한 위용이나 특수한 능력, 그도 아니라면 그저 스텟이 말도 안되게 부풀려져서 등장한다.


그런 것들 앞에서 제대로 전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결국 시나리오 온라인 내 시스템이 이끄는 성장이 필요하고, 그런 성장만을 모아서 플레이어 역시 급격한 스펙Spec상승이 필요했다.

‘성장만을 모으다’라는 건 즉시 경험치로 환산되지 않는 다양한 기행과 고행들을 뜻했고, 가지지 못한 스킬을 디깅Digging해서 먹듯 다양한 칭호와 보정들을 얻어내야 했다.


그러한 게임 내內적 노동의 필요는 플레이어 레벨 분포도에서 주변에 유저들이 희박한 지점으로 가면 갈수록 더욱 종용된다.

게임이 그렇게 생겨먹은 탓이다.

현재 최고위라고 평가받는 300대 레벨의 플레이어들이 느끼고 있을 테였고, 그들 역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점이었다.


그런 불편한, 그러나 여가시간 내에 어떻게든 가능한 지점에 있는 다양한 작업의 결과물이 바로 콘란드 대륙의 최강자들로 평가받는 NPC들의 수준이었다. 500이상의 레벨로 환산되는 그들의 강함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것이다.

그 정도 경지에 다다른 NPC들은 모두 저마다의 특수한 스킬과 플레이 방식이 있었고, 남다른 칭호 역시 갖는다.

그런 특이성 탓에 플레이어와 NPC간의 격차가 줄며, 순수하게 레벨만큼 혹은 그 이상의 강함의 격차가 다시 생겨난다.


제 스스로는 모르고 있었지만 제냐는 잘하고 있었다.

물론 공략법이건 뭐건 전혀 활용하지 않고 제멋대로 플레이하고 있었기에, 초반부의 손실이나 무지로 까딱하면 이도저도 아닌 능력치의 캐릭터가 될 위험성은 늘 존재하고 있다.


“먼저 드갑니다. ···

원호, 지원 믿습니다.”


제냐는 그렇게 말했다. 아래에서 대답이 들렸다. “그럼요.” 게임일 뿐이었지만, 나름의 긴장감이 있었다, 이 세계는. ‘후우.’ 제냐는 한숨을 내쉬었다.


들고 있던 복합궁을 내려놓는다. 정확히는, 인벤토리를 열어 그 내부에 적재했다. 활이 없다면 화살도 무의미하다. 철목시도 전통에 담긴 채로 넣었다. 몇 개 정도는 그냥 낱개로 적재했다. 똑같은 물건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유사성이 있다면 그것들은 한 칸에 중복 적재가 가능했다.

어차피 인벤토리 내부의 적재량은 정해져 있으므로 유의미한 기능까지는 아니지만. 적재의 의미에서는.


출납할 때는 아주 편리했다.


장비를 살핀다. 등에는 비스트 슬레이어. 허리춤에 지룡의 발톱 대거. 손방패 하나를 구했다. 인벤토리로부터 꺼내서, 왼손 전완前腕부에 걸친 뒤 버클을 조정해 단단히 매었다.

제냐는 기본적으로 경장이다. 레더 아머의 일종이었고, 다양한 약품 처리나 스킬 처리가 되어 있는 물건이다. 아직까지 초보자 용이었고, 상점에서 구한 것이었으므로 그리 획기적이고 마법같은 성능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다만 생김새보다는 훨씬 튼튼했고 충격에 강했다. 갈색먼지 숲에 이르기 전에 정비를 한 번 말끔하게 했기에 깔끔한 편이었다. 세슈칸에 이르기 전에는 여기저기 헤지거나 더러운 부분이 많았었다.

세슈칸에 있는 무구 정비사의 솜씨는 피스 시보다 조금 나은 것 같았다. 실제였다. 각 시의 최고위 장인들이야 그들만의 기능을 겨루지만,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초보자 상점에서의 장인들은 도시의 평균적인 수준에 맞추어 그들 역시 능력이 설정된다.


조금 더 번화하고, 좋은 무구를 다루는 고객이 많은 곳에 조금 더 실력 좋은 업계 종사자들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제냐는 마지막으로 물약을 몇 개 꺼냈다. 필리의 물약 상점에서 예전에 산 물건들도 그대로 있었다. 노란 물약은 정신각성제였고, 붉은 색은 HP물약이 아니라 사냥용 자극제였다.

정신각성제는 감각과 정신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순발력을 소량 올려주고, 정신력 스텟에도 영향을 강하게 미친다.

사냥용 자극제는 물리 스텟들을 일시적으로 증가시켜준다. 도핑doping이었다. 실제로는 그런 일들이 어떤 부작용을 끼치는지 제냐는 알지 못했지만. 의학 종사자가 아니라서.


게임 내에서의 각종 도핑제들은 별다른 부작용이 없었다. 초인적인 캐릭터의 신체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고. 일반 NPC들에게는 또 어떻게 작용될런지.


어쨌든 몇 종류를 뚜껑을 까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양이 그리 많지 않다. 한 두 모금 정도면 사라진다. 물약 병은 그대로 버린다. ‘쓰레기’ 정도로 취급될 정도로 무한하게 생성되고 재고가 채워지는 아이템 종류였다.

이런 류가 계속해서 생성되면 종래에는 콘란드 대륙 전토가 물약 병으로 가득 찰 수도 있었으므로, 내용물 없이 플레이어에게 떨어져 버려진 물약 병 아이템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 소멸한다.


이런 설정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간혹 괴짜같은 인간들은 고레벨 플레이어가 된 뒤 막대한 젠Jen을 소모해 초보자 상점에서 무진장 생성되서 팔리는 물약 병을 사들여 정말 세계를 뒤덮었을 지도 모른다.

게임 세계란 그런 법이었다. 어딜가나 괴상한 사고를 가지고 시스템의 허점을 찾아보려는 유저들이 늘상 등장한다.


정신각성제와 사냥용 자극제 외에도 속력 증가의 주황 물약, 내구성 증가의 펜던트가 있었다. 회색빛의 보석이 달려있는 목걸이는 1회용 아이템Item이다. 필리의 물약상점에서 살 수 있는 기초용의 물건으로, 세게 쥐면 쉽게 부술 수 있다.

주먹으로 쥐고 부순 인간에게 강력한 SP가 부여된다. 보석 내에 스며들어 있던 초상력이 ‘물질’인 사용자의 육신에 머무르며 내구성을 강화시킨다.


사용자가 다루는 SP가 아니기에 기력이나 초상 스킬을 위한 정신력 에너지로 환원할 수는 없었다.


사용자의 의지력에 반응하지 않는 무기질적인 느낌의 에너지였다. 그러나 또 모른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의 세계는 깊은 시스템과 방대한 설정, 그리고 미처 겪어보지 못한 이야기들로 넘쳐나니까.

아주 고레벨이 되거나, 특질의 스킬을 익힌 뒤에 시도하면 사용자의 신체 바깥에 있는 자연계의 SP들도 움직일 수 있는 순간이 올 지도.


마치 돌의 기운이 제냐의 몸에 스며들듯이. 회색빛으로 빛나는 빛의 가루가 펜던트가 부서짐에 따라 퍼져나왔고, 그것은 허공을 휘돌다가 신체 이모저모에 붙었다. 일시적으로 회색빛의 기운이 그의 몸 전체를 감싸며 한 차례 빛났고 곧 사라졌다.


준비는 끝났다. 달려가면 될 차례였다. 제냐가 나뭇가지를 그대로 박찼다. 수 m는 훨씬 넘는 자리에 있던 그가 뛰었다. 입체적인 기동은 그의 장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평화의 숲에서 온갖 종류의 박투를 벌였다.

다양한 형태의 짐승과 괴물들을 갖고 사투를 벌이는 연습을 했다. 자신보다 월등히 강하며 거대한 개체와 싸울 때는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시간을 버는 게 필수다.


제냐가 가지고 있던 스킬 중 ‘안정적인 점프’와 ‘좁은 데 서기’라는 게 있었다. 입체 기동의 밑거름이 되는 스킬들이었고, 제냐의 운동신경보다 조금 더 나은 활약을 보일 수 있도록 그를 돕는다.

지면이 불안정한 상태에서도 힘을 실어 제대로 박찰 수 있게 해주며, 마치 중국의 무술 묘기 공연을 떠올리게 하는 기예로 이른다. 스킬의 끝에 다다를수록 말이다.


안정적인 면인 노상보다 훨씬 기형적으로 생긴 선형적인 나뭇가지들을 이리저리 밟고 뛰어 다녔기에 얻은 스킬이었고, 그런 노력을 더욱 도와준다.


제냐가 높은 나무에서 뛰어내려 몇 미터는 앞에 있는 작은 수목의 끄트머리 즈음에 착지했다. 물론, 그의 무게는 그대로였기에 콰직, 하면서 몇 개의 나뭇가지가 얽히면서 부러진다. 애초에 그가 본 건 그 아래에 있는 탄탄한 나뭇가지 하나였다.


부서지는 얇은 가지들에 능숙하게 균형을 잡으면서 떨어진다. 손을 뻗어서 나무의 몸통이나 다른 가지에 적당히 걸어 추락을 멈췄다. 간신히 얼마 떨어지지 않고 디딜만한 가지에 발을 대고 멈추었다. 제냐가 다시 한 번 나뭇가지를 박찼다.


달빛이 휘영청.


야음을 틈타 마을을 습격한다. 인간의 것은 아니었고 오크Ork, 악마이자 괴물이자 짐승의 부락이었다.


제냐는 알지 못하지만, 비련의 시나리오에는 ‘세력도’라는 것이 존재해서 유저들이 인류 세력이 아닌 몬스터들의 것, 악이나 혼돈 성향의 NPC들의 세력을 줄여나가는 게 주요한 시나리오의 요소였다.

각 세력의 분포도에 따라서 이후 발발하게 되는 메인 스토리의 향방이 달라지게 된다. 없던 게 생겨날 수도 있었고, 있던 게 사라질 수도 있었다.


뭐- 자신이 있는 곳에서 미약하게나마 힘을 발휘하며 괴물들을 처치하는 모든 헌터 유저들이 대륙의 평화와 안녕에 기여한다는, 그런 범영웅적인 이야기의 일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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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취륵은 그렇게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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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 멧돼지 23.05.26 55 4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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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1. 도서관 제육 23.05.03 59 5 25쪽
11 10. 황야 지룡 23.04.30 62 5 44쪽
10 9. 붉은 날개 23.04.29 77 5 31쪽
9 8. 흰줄무늬 검은 고양이 코미어 23.04.29 87 5 29쪽
8 7. 물약 상점의 필리Philly 씨 23.04.27 97 6 30쪽
7 6. 오크Ork 사냥 23.04.16 106 6 27쪽
6 5. 이성적 파이어볼 +2 23.04.15 149 6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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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 로그 오프Log off 23.04.12 186 7 15쪽
3 2. 개멋진나 최 23.03.12 249 7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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