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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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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7.03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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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3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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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44쪽

10. 황야 지룡

DUMMY

철목시鐵木矢가 시위에 걸렸다. 검은 광택이 흐르며 마치 철처럼 나무 중에서 단단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 재질을 다듬어 만든 검은 화살이 장궁에 걸린다.


끼릭, 하고 활대가 구부러지는 소음이 난다. 활몸에 걸리는 부하와 자극은 장비에게 부담이 가는 정도는 아니었다. 원래 이런 류의 묵직한 화살들을 마구 쏘아내라고 만들어진 특수목적궁弓이다.


장궁은 흔한 나무의 색깔처럼 갈색빛이 돌게 겉을 칠해두었는데, 원목으로만 만든 것은 아니고 다양한 재료를 섞어 만들었다. 안쪽이 쉽게 구부러지고, 바깥쪽에 단단한 강성이 부여되어 걸려있던 탄성을 발사하는 힘으로 바꿀 때의 강력함이 남다르다.


‘비스트 슬레이어’와 같이 제냐가 주로 사용하고 있는 무장이었다. 제냐는 들인 시간에 비해서는 레벨이 낮은 편이다. 그가 그 모든 시간을 경험치로 환산되는 몬스터 캐릭터의 사냥이나, 퀘스트 해결이 아니라 독자적인 훈련 따위에 시간을 할애해서 그렇다.


깨나 긴 시간동안 게임에 투자하며 익숙해져 왔다. 그의 레벨보다는 조금 더 베테랑인 것이다.


활대를 잡는 손아귀에는 단단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장궁의 이름은 그저 ‘하위 복합궁3’이었다. 어느 상점에서 취급하는 분류로, 하급 재료로 만들어낸 복합궁을 세 번 정도 추가로 손질한 물건이다. 지금 레벨에서 쓰기에는 아주 적합하고도 남았고, 제냐 역시 아무런 불만이 없는 손맛을 느끼고 있었다. 사냥 때마다. 그리고 각종 스킬을 위한 반복 동작 때마다 말이다.


순발력은 육체의 민첩성과 함께 손끝의 감각을 관장한다. 손의 정밀성 역시 늘려주게 되는데, ‘근력’이 전체적으로 강한 힘을 내는 것에 능력을 더한다면 순발력은 순간적으로 근육이 반응하는 힘을 관할한다.


일시적인 힘의 폭발력이라면 근력 만큼이나 순발력 역시 주요하게 작용하는 스텟이었고, 제냐는 그것이 높았다. 또한 손끝의 감각이 정밀하기 위해서는 결국 말단의 근육이 강하게 잡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순발력을 높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악력을 얻을 수 있었다.


제냐는 순발력이 높았고, 그로 인한 힘의 증가분은 활을 잡아 당기고 쏘아내는 정도의 동작에 훌륭하게 분배되어 사용되었다.


철목시의 무게가 약 150g정도 된다. 제대로 된 화살이라기엔 무리가 있는 무게였지만, 일반적인 장정의 배수가 되는 힘을 가지고, 몇 가지 스킬의 보조를 받아 기이한 활을 당긴다면 그것은 게임 내에서 실용적인 화살이 된다.


복합궁은 하위 재료라고는 하지만 시나리오 온라인 내에 존재하는 판타지적 생물의 뼈에 금속과 특수한 목재, 그리고 힘줄을 엮어 만들어졌다. 화학이라고는 제대로 존재할 수 없는 기이한 생태계 속에서 그가 사용하는 복합궁은 100kg을 가뿐하게 넘는 장력을 요구한다.


제정신이나 일반적인 몸뚱이로는 당길 수 없는 수치였지만 제냐는 간단하게 당겼다. 정자세로. ‘사냥꾼의 감각’이라는 스킬이 있다. 궁사로서 전투를 수행하다 보면 얻는 기초 스킬인데, 활을 장비하고 시위를 당기는 동작에 한해서 근력을 증가시켜주는 스킬이었다.


걸린 철목시가 있는 곳은 어느 바위의 틈이었다.


거대한 바위가 언덕처럼 있고, 그 주변에 자잘- 하다고 하기에는 사람보다 몸집이 큰 바윗더미가 흩어져 있다. 제냐는 바위 언덕 위에서, 다른 돌무더기에 모습을 가린 채 은밀하게 화살을 걸어 무언가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평화의 숲으로 들어가지 않고, 평야 쪽으로 주욱 걸어가다 보면 초원 지대와 암석 지대가 나타난다. 황야처럼 펼쳐진 공간에는 그 분위기에 맞는 몬스터 캐릭터들이 거닐고 있었고, 그것들을 사냥하는 것 역시 플레이어가 즐길 놀잇거리였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은 ‘인간형’의 몬스터를 만들어두지 않았다. 이족 보행을 하는 오크니- 하는 온갖 것들이 있었지만 명백하게 인간과는 다른 차이를 모두 만들어 둔다. 사람을 향한 무차별적인 공격이 놀이가 되었을 때의 심리를 걱정하는 차원에서이다.

그저 게임인데- 라고 치부하기에 이것은 지나치게 현실감이 높았고 또 몰입하다 보면 은근히 사람이라는 건 주변에 받아들이는 이미지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물론 몬스터가 아닌 NPC나 플레이어와 전투를 벌일 가능성은 여전하다. 시나리오의 개발진들이 염두에 둔 것은 게임의 방향성 자체를 악의적인 사냥에 두는 행위를 배제하고자 하는 차원에서였다.

범죄와 닮은 행위를 게임에서 하도록 유도하고 그와 같은 이미지를 플레이어들에게 공급할 이유가 없었다. 아무래도 시대가 고도화되면서 복잡 다단해지는 다양한 분야의 윤리 위원회들의 태클을 받을 수도 있었고.


게임 내부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고, NPC들과 반목하는 선택지를 가게 된 플레이어가 국가 집단과 다투게 될 수도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특수한 경우이고 일반적인 경우의 플레이 컨텐츠는 외형적으로 구분점을 둔 짐승과 괴수의 사냥이다.


“황야 지룡地龍······.”


제냐가 중얼거렸다. 비련의 시나리오에서 몬스터를 이루는 것들은 다양한 생물들이다.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현대에 존재하는 각종 짐승들의 조합이나 크게 다름이 없다. 물론, 현대에는 없는 종류도 많이 있다.

그러한 것들은 현대에까지 끊어지지 않고 다양하게 존재하는 각종 신화와 전설 따위에서 모티브를 가져오는 모습들이다. ‘오크’역시 그러하다.


기본적으로 그 근간을 따라가다 보면 ‘악마’나 같은 부류에서 파생되는 종류들이었다.


족히 십 미터는 넘는 바위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지룡의 모습은 까마득하다. 바로 아래에 있는 것도 아니고 깨나 거리가 떨어진 자리에 있어 제대로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조준조차 어렵다.

본신의 크기는 제법 거대한 편이었다. 몸통은 사자보다 조금 더 큰 정도.

황야의 색깔을 닮은 황토빛 비늘에 늘씬한 유선형 몸체를 가지고 있었고, 머리의 위로부터 시작해 등줄기까지 솟아난 털인지, 일어난 비늘인지 모를 것이 그 생물의 동선을 장식한다.


가까이 다가서 보면 길다랗게 악어의 주둥이를 닮은 입을 가지고 눈은 고양잇과의 맹수의 것이었다. 이빨은 아가리를 벌리면 작은 단검으로 써도 되겠다 싶은 비대한 형상이었다. 그것이 무수하게 입 주변으로 튀어나와 있다.

길다란 꼬리까지 치면 사자보다도 훨씬 크다고 해야 할 테다. 1m는 족히 넘는 길다란 것이 그 움직임에 맞추어서 출렁댄다. 강력한 근육으로 이루어지고 비늘에 둘러쌓인 꼬리는 이미 훌륭한 무기의 한 종류였다.


머리에는 사슴의 뿔을 양쪽으로 달고 있었는데, 철과 같은 강도를 자랑하며 근접전에서 상대의 몸통을 찍는 용도로 사용한다.


오크보다는 확실히 강력한 종류였다. 제냐가 이렇게 노리는 것도, 가까이서 전투를 시작하면 후반에는 영 좋지 못한 꼴을 당할 것이 상상돼서였다.


몬스터는 정해진 레벨이 표기되는 식은 아니었다. 실제로도 개체마다 차이가 큰 편이었고. 그러나 평균적인 괴수의 성체가 가지는 강함의 정도는 균일하고 도표로 상대적 강함을 평가해볼 수 있을 정도였다.

비련의 시나리오에 빠진 매니아들이 만들어낸 몬스터 도표 역시 인터넷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의 레벨에, 스킬들을 보유하고 있을 때 무엇을 사냥하는 것이 가장 효율 좋은 경험치 획득법인지에 대한 고찰들이었다.


인터넷에서 다른 유저들이 권장하는 사냥 레벨은 10대 후반에서 20을 넘기는 시점이다. 제냐로서는 다소 부족했지만, 그가 가진 능력치의 수준이 평균보다 높다는 점에서 해볼만한 일이었다.


거리는 대강 6, 70미터 정도 된다. 사자같은 몸통은 노리기에 적합한 크기다. 더군다나 캐릭터의 시력은 좋은 편이기도 했고, 다양한 사수용 스킬들 중에는 정확도에 보정을 걸어주고 사격시 시력을 높여주는 것도 있다.


제냐는 둘 모두 갖고 있었다. 훌륭하게 ‘궁사’로서의 육성로를 걷고 있다고 해도 좋았다. 그가 바라는 건 결국 다양한 상황에서 대처 가능한 솔로 플레이어였지만.


지룡의 다리는 악어같은 주둥이와는 다르게 제법 길었고 또 지면에서 민첩한 달리기를 보여준다. 최고 속력은 어지간한 지상의 맹수류와 같다. 둔중한 몸체를 가졌음에도 그렇다. 다만 수십 미터의 거리를 좁혀올 때까지 제냐는 확실하게 철목시를 연발로 맞출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벌인 일이었고.


무엇보다 발 디딜 곳도 별로 없는 암벽의 언덕을 등산하려면 깨나 고생을 해야 하리라. 지근 거리에 다가왔을 때는 MP를 회복시키면서 무식하게 때려박아 만든 대형 파이어볼로 지져주어야 한다.


첫 지룡 사냥이었고, 저것에 대한 세세한 데이터를 찾아본 것도 아니었다. 만일 그러고도 생명력이 남아서 제냐의 목덜미를 노려 온다면 그때는 비스트 슬레이어를 꺼내 외날검으로 근접전을 벌여야 한다. 그것 역시 그가 바라는 전투의 지향성 중 하나였다. 한 종류의 무구를 다루는 데 있어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것보다는, 다양한 종류를 다루는 제너럴리스트가 되는 것.


결국 그게 다른 한 종류의 달인이 되는 길이기도 하다.


명확한 계획과 그것들을 하나로 꿸 수 있는 직관, 영감이 있다면 사람이 저지른 노력들은 어디론가 흩어지지 않는다. 다음을 위한 발걸음이 될 뿐이고, 성장하기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여 모든 이들이 도중에 포기할 뿐이지.


제냐는 삶에서도 그런 태도를 고수하는 인간이었고, 게임 내부에서 여가 생활을 즐길 때의 성향마저 그러했다.


조금 더 품이 많이 드는 류의 육성법을 찾아 걸어가는 것이다. 마냥 쉬운 건 도무지 재미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 시대에 이렇게 불편함을 강요하는 게임이 도리어 인기를 끌었을 지도 모르고.


“···후웁.”


숨을 멈추고 완벽하게 동작을 정지한다. 생명체에게 절대적인 정지는 심장이 뛰고 내장 기관이 약동하는 한 불가능했지만, 그와 비슷한 느낌을 내볼 수는 있었다. 적당한 긴장과 탈력감이 절묘한 길항 상태를 만들어낼 때. 머리부터 손끝까지 각지의 근육들이 기묘한 일치감을 나타낼 때.


그 때를 노리던 제냐가 오른손으로 시위에 걸어 잡았던 화살의 말단을 놓았다.


복합궁이 강력한 기세로 시위를 되돌리며 온 몸의 탄력을 사용해 철목시를 날린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장력은 온전히 화살 하나에 집중이 되어 발사된다. 마치 물 안을 헤엄치는 물고기가 그러하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각종 대기류의 흐름을 헤집으며 화살이 꿈틀거린다. 유연하게 직선 방향으로 날아가는 화살이 수십 미터 거리의 지룡의 옆구리를 찍을 때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번, 숨을 토해내고 기다릴 때 화살의 머리가 지룡의 비늘 안으로 디밀어 들어간다. “끼에에엑-!” 지룡의 울음 소리를 딱히 상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대강 저럴 것 같다고 납득이 될만한 비명이었다. 무게감이 있는 울림이나 높은 고성이 허공을 찌른다. 탄탄하고 거대한 육신이 울림통으로 쓰이고 다른 소형 동물들을 압도할 것 같은 소음이다.


철목시의 끝은 제련된 강철이었고, 특수하게 벼려져 저레벨의 사냥터에서 못 뚫을 만한 몬스터의 가죽이 없었다. 3, 40을 넘어가면 조금 힘들겠지만 적어도 지룡은 아니었다.

이후부터는 이름부터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판타지 세상의 레어 메탈Rare metal을 사용하던가, 아니면 초상 스킬을 익히던가, 혹은 그런 에너지를 담은 강화 무기를 구해야 했다.


지룡의 몸뚱이 속으로 파고든 화살촉이 내부를 꿰뚫었다. 강력强力이 담긴 화살은 거의 화살대의 절반까지 깊숙이 박혔다.


지룡은 그 눈동자를 고양잇과의 맹수가 그러하듯 검은 자위를 좁게 모으며 주변을 탐색했다. 화살이 날아온 방향 부근으로 고개를 돌려 시각을 사용해 수색하는 건 AI가 멍청하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도리어 시나리오 온라인 내의 몬스터들은 교활하다는 수식어가 어울릴 정도일 때가 가끔 있다.

학습된 공략법을 가져오는 플레이어들에게 비견할 수는 없겠지만.


공격성의 증가와 함께, 그것을 표시하기라도 하듯 붉게 달아오른 눈동자가 지룡의 시야를 역시 빨갛게 만든다. 지룡은 암석으로 만들어진 언덕 위쪽에 움직이는 인형을 발견했다. 지룡의 눈은 색깔을 보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 열을 감지하는 기관으로도 쓰인다. 햇빛에 달구어진 한낮의 암석 위라 사람을 분간하는 게 어렵기에 지금은 색깔을 인식하는 것으로 사용했다.


용의 둔중한 발모가지가 그 넓은 발을 지탱한다. 단검이 아닌가 싶은 회색빛 발톱이 여럿 박혀 있는 앞발과 뒷발이 황무지의 바닥을 디디고, 박차며 나가기 시작했다. 달려 나가는 지룡의 기세가 대단하다. 코뿔소 류의 돌진을 연상케 한다.


온갖 종류의 강력한 짐승들을 배합해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현실에서 저런 괴물과 마주친다면, 총이 있어도 조금 자신이 없을 수 있었다. 어지간한 거리에서 좋은 사격 실력으로 저격을 할 수 있다면 모를까.


지금의 제냐 역시 비슷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재빨리 2차 사격을 준비한다. 꺼내어 바위 옆에 기대둔 화살통에 철목시가 가득하다. 오늘은 질릴 정도로 사냥을 할 생각이었기에 여러모로 준비를 해온 상태이다. 포션도 일전에 사둔 것이 별로 닳지 않았다.


정신각성제는 이미 사용했다. 노란 물약은 MP지배력을 높여주고 감각 계통의 스킬과 호응하며 정밀 행동에 보정을 더한다. 초상 스킬을 사용할 때나, 미세한 조작이 필요한 물리 계열 스킬을 쓸 때 좋다.

근접전의 경우에도, 속도를 중요시하는 쾌검사 따위의 스타일이라면 큰 폭의 능력 향상을 기대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고조된 정신과 감각을 침착하게 이용해서 철목시를 뽑아들어, 다시 장궁에 걸었다. 복합궁이 다시 그 몸을 굽히며 장력을 장전한다. 장력과 함께 시위에 걸린 화살이 달려드는 괴수를 노린다.


화살촉은 광택을 지운 검은 톤이었다. 자세히 보면 검은 색은 아니었고 잿빛이나 회색빛이었으나, 멀리서 보면 분간이 어렵다. 은밀 행동에 나서는 사냥꾼에게 좋은 외관이었다. 사냥보다도, 은신과 암살 활동에 좋을 것 같지만. 강력한 괴력을 보유한 몬스터 캐릭터들을 사냥하는 입장이라면 암살 역시 취해야 할 방법이다.


끼릭거리며 활대가 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소음을 낼 때, 그리고 다시 집중도가 최고조를 맞아 정확한 조준과 사격이 가능하다고 생각이 되었을 때. 제냐는 달려드는 괴물의 동선에 맞추어 조금 앞을 겨냥하며 화살을 놓아주었다.


탄탄한 힘이 그 뒷꽁무니에 실려 있던 철목시가 날았다. 그리고 역시, 순식간에 허공을 지나 괴물에 앞에 다다른다.


제냐에게 현실적으로 그런 달인의 궁술은 없었다. 다만 게임 내에서는 어떤 이들도 평등하게, 반복 행동에 따라 스킬 경험치를 얻고 ‘스킬Skill'을 익히게 된다. 다양한 보정이 걸리며, 조금의 감각만 익힌다면 마치 달인이 된 듯한 기술들을 사용해볼 수 있다.


현대에서 검술을 익힌 검술가가 게임 내에서 감각을 익히고 연습을 해보는 것도 꽤나 효용성이 있는 트레이닝 법이었다. 적어도 몸을 움직이지 않는 휴식 시간에, 고도의 시뮬레이터와 함께 하는 마인드 트레이닝 정도는 되었다.

만약 그런 이가 진지하게 게임에 몰두한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검술 계통의 스킬을 가진 최강의 플레이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은 다양한 분야에서 교육 기술로도 활용이 되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을 버무리고 방대한 데이터를 감당하며 이런 류의 게임을 만드는 자들도 있었지만. 이런 게임조차도 다음 대의 기술의 밑거름이 될 것이고, 실생활에서 유익을 주는 무언가의 원천이 될 수 있을 테다.


’현실에선 활쏘기나 배워 볼까.‘


제냐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기계적으로 옆에 놓여 있는 화살통으로 손을 옮겼다. 잔심, 이라는 말이 있었다. 궁도나 검도에서 쓰이고 다른 곳에서도 의례적으로 쓰이는 단어였는데, 대강 마음을 남겨두라는 뜻이다.

시위에 놓인 화살을 보내고, 그 화살이 과녁을 꿰뚫고, 결과가 나오고서도 한 두 호흡을 더 기다렸다가 천천히 긴장감을 푸는 형태의 마무리를 말한다.


달리기로 비유를 하자면 선수들이 100미터 결승점이 아니라 110, 120m 지점을 도착지로 보고 전력을 조금 더 쥐어 짜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급변할 수 있는 상황에서 당장 주어진 일을 했다고 끝이 아니라, 조금 더 정성을 더하라는 말도 된다.


어찌 되었든 궁도에서 사소한 방심이 마지막의 자세를 엇나가게 해 과녁을 맞추지 못하게 할 수도 있으니, 편한 것으로 가려 하는 사람의 정신 상 조금 더 긴장감을 유지하고 뒤까지 자세를 정갈하게 가다듬는 것이 좋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그따위 뒷마무리는 신경을 쓸 수도 없었고, 다행히 스킬이 보조하는 제냐의 궁술은 확실하게 선수 이상이었다.


한 발이 날아간 뒤에 다시 집어든 철목시를 부랴부랴 시위에 건다. 자세를 고치며 다시 당기기 전에, 앞서 날린 화살이 질주하는 지룡의 눈을 꿰뚫었다.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스킬이 정확도를 위해 세부 조준을 대신한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임 상에서도 자주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스킬을 마스터하는 단계에 이르면 의도적으로 얼마든지 해낼 수 있었지만.


제냐의 스킬은 ’활쏘기1‘이었고 이제 3단계였다. 좋지 않은 수준Not good치고는 훌륭한 사격이다. 게임 내의 스킬 묘사가 실상에 비해 박한 편인 걸 감안해도 그렇다.


“크에-!”


지룡의 분노는 더욱 효과적으로 돋운 모양이다. 그것은 성난 기세를 죽이지 않으며 질주에 박차를 더했다. 눈이 꿰뚫렸으나 그 깊숙한 안으로는 채 들어가지 못했다. 방향이 조금 좋지 못했고, 빗맞은 감이 있었다. 뇌가 아닌 하관쪽을 향해서 일부 들어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끔찍한 고통- 은 아니라 단순히 데이터 상의 AI 반응이었지만, 끔찍한 고통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는 것이리라.


지룡의 HP가 어느 정도 양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상당히 터프한 놈이고, 적어도 몸집이 작고 피도 살의 질량도 훨씬 소량인 제냐보다는 클 것이다.


그는 다시 시위에 화살을 건다. 집중하고, 얼마 기다리지 못하고 발사한다. 콱! 하고 박혀 들어간 것은 이번에는 등허리 위 쪽이었다. 제냐는 지룡의 기세가 줄어들지 않는 것에 약간의 초조함을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위 언덕의 바로 아래 즈음에 다다른다. 그 사이에 한 번의 화살을 더 쏘았고, 다음 화살을 준비하는 찰나였다.


철목시가 변함없는 기세로 날아 지룡의 등에 털이 아니라 새로운 장식을 만들었다. 검은 쐐기가 그 위에 처박혀서 움직임과 함께 흔들리는 꼴은 그 상처에 공감한다면 끔찍한 모습일 것이다. 괴수를 사냥하는 입장에서는 상대의 줄지 않는 기세에도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증표였다.


지룡이 암벽의 언덕에 가파른 절벽으로 머리를 처박았다. 쿵! 멍청해 보이는 움직임이지만 아마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걸 상상하면 그럴싸한 행동 방식이다. 자신에게 공격을 해대는 적을 찾아 이곳까지 달려왔으나 아마 그 기세를 제대로 줄이지 못할 정도로 상처나 고통이 있는 것이리라.

제냐로서는 호재였다.


그가 다시 한 발을 쏜다. 쉬익, 하고 묵직한 화살이 날카로운 소리로 바람을 가른다. 역시나 절묘하게 명중하는 철목시다. 이 정도면 확실히 안정적인 사냥이 가능한 수준이다. 이제 저레벨 구간에서는 불가능이라 여겨지는 정도의 몬스터는 없을 것이다. 지금 저 지룡을 별다른 피해 없이 잡아 낸다면.


화살이 다시 하나 지룡의 등을 고슴도치와 같은 꼴로 변장시켰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화살이었다. 침착하게 시위를 걸고 조준을 하기에는 다소 가깝다. 더 강한 공격력이 필요했고, 마침 화살보다는 가까운 거리에서 강력한 타격을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


“파이어 볼.”


MP가 주욱 다는 것이 느껴진다. 멘탈 포인트를 다루는 유저들은 촉감과 연계되어 그것의 흐름을 느끼게 된다. 실제하는 감각에 연계를 시켜야 MP를 다루는 술사들이 그 실력을 갈고 닦을 수 있게 되고, 게임에 보다 현실적으로 몰입이 가능하다.

가상의 에너지였으나 일정한 현실감이 필요한 것이다.


멘탈 포인트가 급속도로 빠져 나가는 건, 몸에서 무언가가 사라지는 느낌과도 비슷했다. 굳이 말하자면 빈혈기나 크게 다르지 않다. MP가 바닥이 나도 캐릭터가 쓰러지는 일은 없지만, 그 사라지는 속도에 따라 일시적으로 탈력감이나 어지럼을 느낄 수는 있었다.

이 또한 물론 고레벨에 다다르고 다양한 보조 기술을 익히고, 또 MP량 자체가 늘어나면 개선되는 악조건이다.


제냐는 후들거리는 정신머리를 붙잡으면서 파이어볼을 계속해서 시전했다. 감각적으로 3분의 1 이상이 한 번의 스킬 시전으로 사라질 때 조금 어지러운 것 같았다. 그 이상을 넘어가면 정확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현재의 MP지배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최대치를 때려 박아서, 빛나는 불의 공을 허공에 만들어낸다.


“크오아아아!”


지룡의 성대에서는 오금이 저릴만한 비명인지 괴성인지 모를 것이 울려 나왔다. 이 근방 수십 미터, 는 물론이고 수백 미터까지도 제 영역을 자처할 수 있을 정도의 울음이었다.

강력한 괴수, 그리고 집채만한 크기를 뛰어넘는 마수들은 울음 소리만으로도 일종의 초상 스킬과 같은 능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비견되는 능력치나 합당한 수준의 스킬을 익히지 못한다면 울음 소리에 섞인 위압감에 ’공포‘같은 상태 이상에 걸려 버리고 마는 것이다.


정신적인 나약함은 다양한 육체 활동에도 능력 저하를 만들어낸다. 스킬에 걸린 정확도 보정 따위가 다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지금 두려워해야 할 건 다만 제냐가 아닌 지룡 쪽이었다. 그 날카로운 발톱으로 암석의 표면을 깨뜨리듯이 찍는다. 거의 수직에 가까우나 울퉁불퉁한 표면은 잘 기어 오르면 오를 수 있을 것처럼 생기기는 했다.

일류 등반가라면 아마 별다른 장비가 없어도 금세 오를 것이다. 날렵한 사람보다는 훨씬 둔중한 육체를 가졌고, 그 신체 구조 역시 수직벽을 오르기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은 지룡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그 사이에 파이어 볼의 캐스팅Casting(빛을 발하다, 던지다, 주조하다 등의 뜻)이 끝났다.


형형하게 타오르는 광구光球이자 동시에 화염구였다. 강렬한 빛으로 눈이 조금 아플 정도였다. 세세한 설정을 다루지 못하고 그저 위력을 최대치로 한 채 만들어낸 물건이다. 그리 멀리까지, 빠르게 갈 필요도 없었다. 정확한 방향으로 내리 꽂아 폭발만 하면 된다.


제냐가 기어 올라오는 괴물의 대가리를 노려보면서, 아래를 향해 뻗은 오른 손 앞에 형성된 화염구다. 마치 작은 태양을 묘사한 모형처럼 생겼고, 실제 태양이 그러하듯 주변으로 일렁이는 불길들이 끊임없이 외관을 장식한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강력한 에너지를 짐작케 한다.


제냐가 움찔거리며 손바닥을 펴 벌려 아래로 향한 오른팔의 근육에 힘을 주었다. 필요 없는 동작이었으나 동시에 MP를 다룬다. 손 앞에 만들어진 화염구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구를 중심으로 의식을 움직이면 그에 맞추어서 반응을 보인다.


발사, 라고 요란스럽게 따로 외칠 필요는 없었고, 준비가 되고 쏘아내려 정신을 집중하자 그에 반응해서 화염구가 손 앞의 자리를 떠난다. 제법 빠른 속도로 슈욱, 하고 날아가는 붉은 화염구.


에너지가 중첩되어 마치 밀도가 높은 물질처럼 짙은 외곽선과 단단한 형체를 보유한 공이 약간 휠 정도의 속도로 공기를 가르고 날았다. 철목시와는 또 다른 강력한 비행의 기세였다.


주변으로 아지랑이가 생기고 공기가 타들어간다. 제냐에게 데미지가 올만한 피해는 없지만, 화염구를 생성하면서 주변이 약간 더워진 것을 느낀다. 초상 스킬은 사용자에게 피해를 가하지는 않지만 2차적인 현상들에 데미지를 받는 경우는 간혹 있었다.

저 스스로 파괴적인 스킬을 사용해 건물을 무너뜨리고, 그 건물 내부에서 추락하는 건축 자재에 박으면 그대로 게임 오버를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함정사, 라는 이름으로 분류되는 플레이어들은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며 게임을 플레이한다. 다양한 종류의 스킬과 노력으로 정해진 위치에 함정을 만들고 몬스터를 유인해 와 사냥을 하는 부류였는데, 잘못 꾀를 부리면 자신이 그것에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도 나오는 것이다.

특히 교활한 지능 지수의 괴물이나 혹은 인간 끼리의 전쟁에 참여할 때 그렇다.

멀리서 터져 나가는 화염구의 폭발이나, 그 폭발력에 밀려 나오는 주변 잔해들로 인한 피해는 걱정할 필요 없었다. 충분히 거리가 떨어져 있고 중력의 방향대로 암석의 파편들은 아래로 떨어지리라.


날으는 화염구가 기세 좋게 지룡의 주둥이 부근에 도달했다. 원형의 외곽선 지점이 지룡의 몸과 접촉하는 순간, 화염구는 그 내면에 잠재워 두었던 현상을 발현시켰다. 콰아앙! 폭탄 그 자체와 다름이 없었다. 무식한 폭음과 함께 화염이 크게 일어나며 지룡의 대가리 전부를 감싸안는다.

지독한 고열이 이차적인 피해로 지룡의 몸을 구웠다.


황야에 사는 지룡의 비늘은 그렇게 생긴 것처럼, 내열성이 뛰어나다. 경도와 강도 역시 만만치 않아서 어설픈 기세로 휘둘러진 창칼은 뚫는 일조차 난이도가 있다. 약간의 보조 스킬과 아슬아슬하게 올린 스테이터스를 한껏 발휘해 쏘아낸 철목시는 다행히 가볍게 뚫기는 했지만.

그리고 폭발의 여력들이 그 철목시가 박혀 생겨난 틈새로 파고들었다.


“키에에에에엑-!”


악어를 닮은 지룡이 길게 울음을 토했다. 제냐는 저것이 약간의 슬픔을 흉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철목시는 나무이지만 철의 성질을 약간 가졌다. 철처럼 단단하며, 조금의 전열성마저 지닌다.

불길이 꽂힌 화살을 타고 내부로 들어간다. 지룡의 HP가 확실하게 상당 부분 줄고 있었다. 이제야 바로 앞까지 닿기 전에 끝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한 제냐는 다음 캐스팅을 서둘렀다.


허리춤에 차서 뒤로 돌려 놓은 작은 가죽 가방에서 푸른 물약을 꺼내서 이빨로 뚜껑을 물어 빼낸다. 벌컥벌컥 마셔대고 빈 병을 대충 던진다. MP가 차오르는 게 느껴진다. 감각적으로, 대략적인 잔여량을 알 수 있었다.


“파이어 볼.”


두 번째의 시전이다. 그가 왼 손으로 오른 손의 손목을 잡고서 아래로 지룡을 겨누었다. 그것을 향해 벌려진 손바닥의 앞에 다시 MP가 모여들었다. 보이지 않는 정신 에너지, 초상 에너지는 다시금 일정량 이상이 되자 형체를 만들었다.


회오리 바람이 회전하며 모여드는 것 같은 형상으로, MP가 모이더니 점차 구심점을 잡고 응축한다.

곧 단단한 외형을 지닌 구체가 나타났고, 백열에서 작열하는 붉은 화염구로 모습을 바꾼다. 조형 이후에도 계속해서 투입되는 MP는 화염구의 크기를 키운다. 크기에 비례해서, 폭발력과 내재된 열량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농구공만한 크기에 다다른 화염구가 계속 불어나다가, 한 번 심장이 맥박에 따라 뛰듯 울컥 커지곤 반동처럼 줄어들었다. 최종적인 크기는 농구공 정도였다. 대신 이후로도 커지던 기세가 헛되지는 않았는지 시전 초기보다 더욱 견고해진 느낌이다.


화염구의 표면이 계속해서 일렁이는 불길과 함께 조금씩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 보여지는 질량감은 쇠 공이라고 해도 납득할만큼 단단한 모양새였다.


“읏차.”


별다른 말은 필요 없으나 긴박한 상황 가운데서 숨을 뱉었다. 그와 함께 편해지는 호흡과 동시에 파이어 볼이 그의 손을 떠난다.

포신도 화약도 없으나 발사되는 포탄처럼 화염구가 빠르게 직진했다. 화살의 비행처럼 슬로우 모션 효과를 걸어 지켜봤을 때도 출렁이는 식은 아니었다. 그저 공기를 가르고 직진한다. 그 열기와 화염구의 잔상이 남아 대낮의 허공에 짧은 궤적을 그린다.


비명을 지르면서도 지룡은 계속해서 암벽을 등반하고 있었다. 제냐를 물어 죽이겠다는 집념이 느껴지는 모습이다. 담력이 세지 않는다면 현실감 넘치는 괴물의 묘사에 오금이 저릴 수도 있었다.

이런 몬스터들의 외형 때문에 사냥이 어려운 경우에는, 아동들은 ’몬스터 데포르메Deformer‘버전을 사용할 수 있었다. 지나친 디테일을 줄이고 2D 만화의 캐릭터들처럼 귀염성을 더한 외견으로 시야에 잡히는 게임 모드Mod였고, 꼭 아동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취향에 따라 사용 가능하다.


제냐는 실감 넘치는 비늘의 질감과 흉흉한 눈빛을 가진 괴수를 잡아 죽이는 사냥이 즐거워서 비련의 시나리오를 하고 있는 것이었으므로, 굳이 적용하지는 않는다. 느리지만 착실한 발걸음으로 암벽을 더듬는 지룡의 오른쪽 어깨 부근에 파이어 볼 제2구가 착탄했다.


콰아아아앙! 조금 더 가까워져 폭음이 귓전을 강력하게 때렸다. 제냐는 그 폭발로 연기가 피어오르기도 전에 다시 물약을 꺼내 병의 주둥이를 입에 넣고 쏟아내고 있었다.

MP가 차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마지막 파이어 볼을 시전한다. 푸른 물약을 계속해서 마신다고 하더라도 실전에서 MP가 소모되는 속도를 따라가기는 힘들었다.

아예 후방에 자리잡고 고급 푸른 물약을 물처럼 마셔대는 것도 아니었고, 거대한 에너지를 다룰만큼 MP지배력이 아직 그리 강력한 수준도 아니다.


MP소모로 인한 탈력감과 어지러움을 방지할 정도로만 마셔주고, 파이어 볼을 세 번째 만들어낸다. 비슷한 과정으로 광구가 나타나자 지체없이 쏘았다.


지룡의 오른쪽 어깨가 너덜거린다. 낯짝을 비롯해 몸체 여기저기에서 빛의 입자가 마구 흘러내린다. ’피‘나 상처를 대신해서 묘사하는 모습이었다. 빛의 가루가 그 주변에 많이 나타나고 빛에 몸이 휩싸일수록 중상을 입었다는 표시였다.

지룡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


파이어 볼은 다시 오른쪽 어깨 부근에 부닥친다.


폭음과 함께 지룡의 오른 다리가 크게 패여 덜렁거린다. 그 내부는 생물 사전에서 볼 수 있는 묘사는 없었고, 그저 다채롭게 변화하는 빛깔이 전부다. 모자이크 처리처럼 극히 밝은 톤으로 몇 가지 색깔의 입자가 일렁거리면서 빈 자리를 채운다.


앞을 지탱하는 두 다리 중 하나가 날아갔으니 절벽을 기어 오르는 게 더 힘들어졌다. 시간이 지나면 불가능하지는 않겠으나, 그렇게 되면 사냥꾼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리라.

그 정도 시간이면 지룡의 목숨이 달아나고도 남는 여유였다.


제냐는 그 모습에 다시 어깨에 걸쳤던 장궁을 빼냈다. 그리고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철목시 하나를 집어 걸고, 쏜다.

그렇게 몇 개를 쏘아 맞추었음에도 지룡의 움직임이 멈추지 않았다. 아마 방어력과 생명력 위주로 능력치를 높여 놓은 몬스터인 모양이었다. 어지간해서는 죽을 법했는데. 그리고 또 몬스터들도 수준에 맞추어서 능력치의 총량은 대개 정해져 있고 그것을 어떻게 분배하느냐의 문제였으니 아마 다른 부분이 조금 낮을 것이다.


저 경우에는 물리적인 능력치들이 높은 대신 MP를 사용하는 부분들이 극단적으로 낮을 수도 있었다.


지루한 반복으로 사냥을 끝마칠 수도 있겠으나, 영 마무리되는 기색이 보이지 않자 제냐는 장궁을 바위에 기대 두었다. 그리고, 등에 꽂혀 있던 것을 뽑아들었다.


’비스트 슬레이어‘라는 이름의 외날검이었다. 둔탁한 모양새에 강도와 경도가 아주 높은 물건이었다.


7등급의 물건이었는데, 상당히 쓸만한 녀석이었다. 저레벨이 아니라 3, 40을 넘는 사냥꾼 플레이어들도 간간히 쓰고는 하는 아이템이다. 그만큼 내구성이 뛰어나고 잘 닳지 않으며, 야성 속성의 몬스터들에게 강력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무기이다.


묵직한 무게감은 마치 도끼와도 같은 손맛을 제공한다. 적을 때려 분쇄하기도 하고, 저지력도 훌륭하며, 베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검으로서도 기능하는 투박한 도.

제냐는 낮은 ’기초 외날검술‘ 스킬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이면 충분했다. 적어도 어느 곳으로 움직임이 가야 하는지는 자연스럽게 캐릭터의 움직임에 맞추어 일러준다.


지룡이 거의 죽어가는 것을 보고, 도저히 자신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마무리는 호쾌한 손맛으로 보기 위해서 제냐가 검을 들며 절벽 쪽으로 발을 디뎠다.


수직에 가까운 절벽이지만 몇 군데 발을 디딜만한 바위의 튀어나온 구석이 보인다. 능숙하게, 혹은 절벽지에 사는 산양처럼 굴면서 제냐가 훌쩍 훌쩍 뛰어내렸다. 몇 미터 남지 않은 시점에서는 그냥 곧바로 크게 뛰었다.

그 낙하하는 에너지를 담아서, 투박한 외날검을 타이밍에 맞추어 상단에서 내려 찍는다.


공중에서 도끼질을 하는 것이나 비슷한 일이었다. 중력으로 몸이 끌어당겨지고, 허공에서 그런 타이밍 좋은 자세 변환을 해내는 건 지독하게 단련된 선수가 아니고서야 힘들며, 그럴지라도 어려울 수 있었으나 이곳은 게임의 내부였다.


제냐는 올림픽에 출전하는 체조 선수들이 그렇게 하는 것보다 더 깔끔하고 묘기같은 타이밍으로 외날검을 휘둘렀고, 체중과 중력의 보조를 받으면서 도끼같은 도刀의 날이 죽어가는 지룡의 두개골을 때렸다.


쾅! 하고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나름대로 단단한 지룡의 머리였다. 두 뿔 사이, 정확하게 빈 공간을 때려 맞추는 묘기를 보인 제냐는 지금의 공격이 크리티컬 히트 판정이라고 생각했다.


강력한 일격을 상대의 약점 부위에 맞추었을 때 치명적인 타격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공격이 가지고 있는 수치보다 조금 더 큰 수치가 상대에게 들어가게 되고, 상대의 방어력을 일정 부분 무시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대로 짐승의 머리가 주저앉으며, 곧 상처와 함께 짐승의 두부가 빛으로 물들었다.


다이빙을 하듯이 뛰어내려 갖다 박은 제냐는 칼날로 그 머리를 치고, 한 발은 짐승의 주둥이에 두고 한 발은 조금 튀어나온 바위의 구석에 두었다. 쿵! 하고 찍고 내려올 때 발에도 분명 충격이 갔다.

찌르르하고 둔한 감각이 발을 거쳐 허리나 전신으로 퍼져오는 걸 보면 낙하 시의 충격이 데미지가 된 모양이었다.


지룡을 사냥하는 전투에서 유일하게 HP가 단 건 공격을 위한 스스로의 낙하 충격 뿐이었다.


지룡은 더 이상 시끄러운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그 긴 주둥이에서 혀를 빼어 내물며, 일격과 함께 허물어졌다. 신음을 토해내며 거구가 붙어 있던 절벽에서 떨어진다. 제냐는 그 자세에서 용케 발을 차며 뒤로 뛰었다. 절벽에 딱 달라붙는다. 칼을 놓치지도 않고 순간적인 반응으로 해내는 것을 보면 역시 게임의 캐릭터는 극상의 운동선수나, 혹은 그 이상의 초인적인 신체를 갖고 있는 것이 체감된다.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뿌연 모래 먼지가 황야의 바닥에 피어올랐다.


연기가 사라지면서 빛에 감싸인 지룡의 사체가 서서히 같이 모습을 감춘다.


슬슬, 짐승 도축 스킬을 익혀야 할 것 같았다.


점점 더 수준 높은 괴물을 사냥하고 괴물들의 몸뚱이가 보물이 될 가능성이 높아질텐데··· 그럴 때는 도축 스킬의 유무에 따라 얻는 소득이 단위가 달라지게 된다.

귀한 소재는 그만큼 확률이 낮으니, 도축 스킬로 획득률을 높여 보다 많이 얻게 된다면 플레이 시 젠Jen 수급 상황이 적자에서 흑자로 바뀔 수도 있었다.

지금은 제냐에겐 게임의 초반이고 저레벨 구간이라 적자니, 흑자니 따질 만한 규모는 아니긴 하지만.


“아따 마.”


디다, 뎌. 제냐는 어디 것인지도 모를 사투리를 중얼거리면서 한숨을 뱉었다. 게임 내부에서도 체력과 스테미너는 구현이 된다. 급격한 집중과 긴장감은 근육의 경직성을 높이고 유연성을 무너뜨린다.

과호흡을 일으키기도 하고.

아무튼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가 격렬한 상황을 이어가다 보면 탈진과 비슷한 걸 겪기도 한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었으나, 굳은 몸을 풀어줄 정도는 되었다.


탈력감과 근육의 피로나, 고통 따위를 강하게 느끼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둔한 움직임 자체는 캐릭터의 신체가 왜 이렇게 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현재 자기 캐릭터의 스테미나 한계도.


“후아아.”


크게 숨을 들이마쉬고 강하게 내뱉었다. 몇 번을 반복하면서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아, 서서히 움직인다. 그는 바위 절벽의 중간 즈음, 폭발로 부서지고 일부가 돌출된 암석의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드넓게 펼쳐져서, 인적이라고는 거의 보이지도 않는 광야의 한 가운데다. 이런 곳에 올 때는 늘 비상 식량을 인벤토리에 넉넉하게 쟁여 놓고 움직여야 했다. 하루에 세 번까지는 로그아웃으로 비상탈출이 가능했다.

로그아웃 자체를 그 이후에 못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마지막 세이브 포인트가 되는 지점으로 위치를 옮겨서 재접속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세 번까지.


본격적인 규모의 도시들에는 보통 ’세이브 포인트‘같은 장소가 여러 군데 있었는데, 이곳에서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위치를 저장해둔다.


깜박 잊고 한참을 진행하다가, 거대한 대륙의 다른 극지방에 갔을 때 로그아웃을 해야 할 처지가 온다면 지루한 고생을 다시 해야 할 수도 있었다.


어쨌든 미지의 맵에서 조난당했을 때 시스템적으로 구조를 받을 수 있는 건 하루에 세 번까지였고, 보통의 플레이어들은 굳이 그 기회를 낭비하려 하지 않는다.


제냐 역시 마찬가지로, 부지런하게 짐을 싸고 움직이는 편이다. 이 황무지 맵에는 벌써 전날 게임 접속 때 도착해서 하루가 넘게 있었다.

로그아웃을 한 상태에서 캐릭터에 이상이 생기지는 않지만, 접속시에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 굶지 않고 밥을 챙겨먹어야 했다.

전투 등을 위한 컨텐츠가 게임의 전부라면 전혀 넣을 필요 없는 연출적인 낭비에 가까웠지만 비련의 시나리오는 굳이 그렇게 한다.


게임의 템포를 조절하는 것도 있었고, 이런 다양한 불편함이 개발진들이 삶에서 의미하고 싶은 것일 지도 모른다. 인생에 쉬운 게 없어··· 라는.


어떤 이들에게는 사족이 되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불평거리가 되지만 이 정도는 제냐에게 딱 적절한 연출이었다. 어쨌거나 게임을 흔하게 하지 않는 그로서는, 롤플레잉에 몰입할 수 있게 도와주는 장치 정도로만 기능한다. 그래픽을 비롯해서 내부 세계의 구현 역시 최상급이고.


그런 의미에서 제냐는 허리춤의 벨트에 고정시켜 둔 홀더를 여닫았다. 수통을 끼워 넣는 장소다. 합금으로 만들어져 제법 단단하고, 경량형인 물통을 열어 마시자 물이 쏟아져 나왔다.

해갈은 중요하다. 격한 움직임을 하고 난 뒤에는. 그리고 이렇게 더운 황야 맵Map(지도, 를 뜻하지만 게임에서 어떤 장소를 나타내는 말로 대용된다)에 있을 때는.


제법 괜찮은 단열 기능으로 땡볕에 오래 있었는데도 물이 그다지 달궈지지 않았다. 정수에서 약간은 시원한 감이 남아 있는 정도다.

제냐는 다시금 활력을 얻고 아래로 훌쩍 날았다. 그다지 요란스런 기합도 필요 없이, 그대로 점프해서 황야 지대의 지면에 착지한다. 쿵! 하고 내려 발을 딛는 동시에 앞으로 몇 바퀴를 굴렀다.


수 미터 높이에서 하는 낙법이 그다지 효용이 있을까 싶지만, 비범한 신체 능력과 스킬의 보조가 있다면 간신히 할만한 수준이다. 데미지도 그리 크게 입지는 않는다. 그 정도는 이런 필드에서도 조금 쉬며 휴식을 취하면 자연회복 되는 폭이고.


그는 몇 가지 장비를 바위 언덕 위에 두고 내려왔지만, 일단 전리품을 먼저 챙기기로 했다. 사방에 드넓은 공간, 황무지의 바위와 황갈색의 토양, 내리쬐는 햇빛과 말라 비틀어진 나무들의 잔해, 그리고 웅웅대는 울음을 멀리서 내며 돌아다니는 몬스터들 뿐이다.

이 게임이 사람이 부족한 게임은 아니었으나, 드넓은 필드 내에서 동시에 마주치는 일이 그리 많지만은 않다.

제냐가 다른 이들에 비해 늦게 게임을 시작한 것도 있었고,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특성 상 사람들의 행동이 완벽하게 자유롭지는 않다.


고레벨 플레이어들은 공략에 따라 자신들이 해결할 수 있는 구간을 정해두고 그 궤적을 따라 움직이고, 다른 레벨의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또 새롭게 쏟아져 들어오는 시즌이 누가 정해둔 것처럼 이따금씩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고. 초보자 존 근처의 황무지는 그다지 사람이 많은 곳은 아니다.

제냐가 인적이 별로 없는 깊은 곳까지 들어와 헤매고 있기도 했고.


“이번엔.”


뭐가 나왔을란가. 제냐가 툭툭 혼잣말을 뱉으며 걸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요법인지도 모르겠다. 바깥에서나, 게임에서나. 혼자 있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면 사내라도 괴로움을 느끼는 때도 있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생물인지 모른다. 혼자서는 살아가기 어렵게 구조적으로 만들어졌을 지도.


제냐가 발치에 걸리는 작은 돌멩이를 차면서 움직였다. 결국 바위 언덕에 붙어있다 떨어진 것이라 바로 금방이다. 지룡의 시신이 있다가 사라진 자리는 말이다.


지룡의 시체는 사라지기 전까지는 물리적인 질량으로 게임 내 세계에 작용을 했다. 떨어진 자리는 강렬한 충격으로 약간 패여 있다. 얼핏 보기에도 거대했던 그 육체는, 내부는 더욱 옹골차게 들어 있었는지 톤을 넘을 지도 몰랐다. 그만큼 낙하한 자리의 균열이 상당했다.


남아 있는 아이템 박스는 푸르스름한 색깔의 디지털 컨셉의 정육면체다. 크기가 제법 크다. 제냐는 발치에 걸리는 돌멩이 하나를 툭, 찼다. 안정적으로 굴러가 돌멩이가 그 상자에 닿았다.

플레이어가 의도적으로 쏘아내거나 뿌린 암기, 투사체, 다양한 것들이 아이템 박스의 획득 조건이 되어준다. 일부러 몸을 굽힐 필요 까지는 없었다.


아이템 박스가 놓여있다가 허공으로 누군가 감추어버린 듯 사라졌다. “IV." 제냐는 곧바로 인벤토리를 열어 확인했다.


리스트업된 물자 목록이 펼쳐지고, 아래로 내리자 가장 최근에 획득한 전리품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룡의 뿔 조각‘, ’지룡의 비늘‘, ’지룡의 3번 갈비뼈‘, ’지룡의 발톱 대거‘.


쓸만한 건 대거Dagger뿐이었다. 다른 재료들은 멋모르고 들으면 굉장해 보이지만, 지룡은 그다지 높은 레벨이 사냥에 필요한 몬스터가 아니었고, 또한 재료를 토해내는 양도 굉장히 많았다.

상점가에 가져다 팔면 물약값은 조금 나오겠으나, 유의미하게 체크해야 할 아이템들은 아니다.


[지룡의 발톱 대거 - 황야 지룡의 발톱을 연마해 만들어낸 단검. 철과 같은 단단함을 가졌던 지룡의 신체로 만든 무기로, 황야 지역에 서식하는 소형 생물들에게 위압감과 공격 시 추가적인 손상Damage를 입힌다.]


10급 아이템이었다. 19단계로 이루어지는 아이템 분별표에서 중간이지만 그렇게 귀한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 무기치고는, 일반적으로 도시의 기본 상점에서 파는 보급용의 것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돈이나 품을 들이지 않고 쓸만한 발톱을 얻었다는 건 사실이다. 제냐는 만족스럽게 한쪽을 가리는 견갑 사이로 외투의 품에 그것을 넣어두었다. 재킷의 품에는 다양한 물품들을 끼워 넣을 수 있는 가죽 홀더, 가 있었고 요령 좋게 끼워넣었다.


여차 하면 꺼내들어 무엇이든 향해서 휘두르던가 던질 수도 있다. 직선적으로 제련되어 회색빛을 띄는 단검은 말하지 않으면 짐승의 발톱이었던 것이 알기 어려울 정도로 인위적인 모양이었다.


전리품에 만족한 제냐는 일단 뒤로 걸어가 바위 언덕의 아래, 폭발로 무너져 형성된 돌무더기 위에 잠깐 걸터 앉았다.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이라도 보면서 잠시 쉬었다가, 플레이를 계속할 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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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황야 지룡 23.04.30 63 5 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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