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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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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7.03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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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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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쪽

23. 로멜리아Romellia

DUMMY

둔중한 마차가 슬쩍 움직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마차는 선회를 하다가 실패한 모양새로 골목의 대부분을 틀어막고 있었다. 반대편까지 이어지는 골목길이 길다. 누군가 들어오지도 않고, 반대 방향이나 제냐가 들어온 입구에서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깨나 뛰어와야 하는 거리였다.


양 옆으로는 벽돌집. 그 아래 골목 길도 벽돌로 이루어진 포장 도로. 금속 장식이 붙고 화려한 색으로 디자인의 품격을 더한 마차를 밟아 밀며 그가 포탄처럼 쏘아졌다. 아래 대각선으로 날아간 제냐는 순식간에 거한 한 명의 근처에 닿게 된다.

사람의 모습이라기보단 날린 돌멩이처럼 탄력적으로 뛴 제냐의 손에 어느새 ‘대거’가 들려 있었다. 비스트 슬레이어는 주로 인벤토리에 넣어둘 때가 잦다. 대거는 허벅지 홀더에 적당히 끼워두고 아무 때고 쓰고는 했다.


황야 지룡의 발톱 대거. 유용하게 쓰고 있었고, 인챈트를 해서 붉은 기가 도는 검날에 열기와 함께 독이 발려 있었다. 쏘아진 화살을 사람이 채 쳐내지 못하듯, 불한당들의 우두머리처럼 생겨서 아가씨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가던 검은 머리의 거인이 제냐를 받아들였다.

제냐는 넓은 품으로 그를 받아주는 거한에게 친절하게 독날을 선사했다. 대거의 이빨이 백 수십 키로는 나갈 듯한 거한의 뱃거죽을 길게 그었다. 그 시작지는, 목 근처였다. 사람의 몸을 따라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 이어낸 그 궤적에 거한의 눈동자가 핑글핑글 돌았다.


자신이 받아들인 상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곧이어 격통이 있었고, 그 그어진 선에서 빛의 입자가 쏟아져나온다. 제냐는 쿵! 하고 땅바닥에 내려앉으며 그런 일격을 날린 뒤 거한의 몸에 툭, 붙었다. 그 뱃살에 손과 어깨를 대며 한 번 밀착하고는 그대로 그 몸을 따라 빙글 돌았다. 기둥을 붙잡고 도는 감각이었다.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관성을 한 번 죽이는 동작이다.

직진이 아니라 방향 전환이 목적이라면 이전의 관성이 빠르게 죽을수록 다음 동작으로의 쿨타임이 짧아진다.


두터운 거한. 그 키가 제냐보다 훨씬 컸다. 2m에 달하는 듯하다. 보호구에 가까워 보이는 가죽 옷을 걸쳤는데, 안쪽으로 티셔츠다. 반팔 티셔츠와 반팔 재킷을 걸친 꼴이다. 팔꿈치 아래나 목덜미 부근은 그대로 맨 살이 노출되어 있었다.

북슬북슬한 검은 털이 잔뜩 나 있었다. 하체는 깨나 질겨 보이는 가죽 바지를 입었다. 신발이 검붉고 밑창이 두터운 종류로 위협적이다. 누군가를 차서 그 피가 새어들기라도 했나.


제냐는 그렇게 관찰하며 돌았다. 거한의 몸뚱이는 거의 오크가 생각날 수준이었다.

그리고 오크라고 한다면, 그가 최근에 가장 많이 상대한 부류이며 또 잘 잡아낼 수 있는 놈들이었다.

그는 손을 짚으며 기둥 주위를 돌듯 거한을 가운데 두고 돌았고, 그 사이에 반대쪽 손에 들린 대거로 더 선을 만들었다. ‘ㅏ’자 형으로 베여버린 거한은 비명을 지르고 싶은 심정이 되었고, 그 고개를 돌려 제냐를 찾았지만 이미 치명상을 입고 난 뒤였다.


둔한 동작으로 손을 들어 제냐를 치려고 했다. 제냐는 조금 더 돌아 거한이 도는 방향 반대로 도망쳤고, 한 두 호흡 뒤에는 차라리 거리를 벌려버렸다.

그 사이에 대거가 그은 흔적이 많다. 거한은 순식간에 빛의 입자를 철철 흘리는 몸이 되었고, 골목길에 그 거구로부터 쏟아지는 빛이 웅덩이를 이룰 것 같은 기세다.


골목 벽에 기대어 앉은 노인은 눈을 크게 떴다. 헝클어진 짧은 흰 머리가 그의 시야를 가렸으나 눈 앞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일을 가릴 수는 없었다.


마차와 골목 벽 사이의 코너에 몰려 오들오들 떨고 있던 두 여인, 소녀 하나와 아가씨 하나도 드레스 풍의 고급스런 옷소매를 제 손으로 꼭 쥐고 얼굴을 가리면서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갑자기 나타난 청년 하나가 그들을 구해주고 있었다. 눈으로 잘 쫓기 힘들 정도의 검술 실력을 가지고 말이다.


거한을 제외하고 그를 바라보는 ‘적’ 포지션의 인물들은 다섯이 더 있었다. 하나같이 눈빛이 매섭다. 이런, 이건 계획된 범죄였나?

싶은 생각이 제냐의 머릿속에 들었다. 어설픈 깡패 놈들이라면 제냐 정도의 실력을 보였을 때 혼비백산을 했을 것이다.

순식간에 당해버린 거한의 모습에서 그다지 수준 높은 적이 아니란 건 알았으나 적들의 마인드 셋Mind set(ting)은 제법 정련된 느낌이 있었다.


이 골목을 거닐다가 우발적으로 범죄를 친 게 아니라, 누군가의 사주라도 받고 움직이는 놈들처럼도 보인다. 정확한 목적이 있어서 하필 이 귀족가의 자제들로 보이는 자들을 노리는 것이다.


어쨌든, 진한 희귀 퀘스트의 향기를 맡으며 제냐는 마저 달렸다.

오크들을 상대할 때와 마찬가지의 움직임이지만, 그 때보다는 훨씬 상황이 쉽다. 상대방은 짐승도, 야성을 가진 괴물도 아니었으며 몸집도 그와 비슷했다. 최초에 물리친 거한은 오크와도 비견될 만한 덩치였으나 전투와 전쟁에 익숙한 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토록 쉽게 당했으니.


나머지 놈들도 그처럼 쉽게 당해준다면 제냐로서는 편하다. NPC들에게도 대강의 레벨 수치는 붙일 수 있었다. 그들의 레벨을 플레이어들이 알아낼 방법은 없었지만, 행동을 보고 스텟을 추산하며 그로 인한 강함을 다시 레벨로 환산하는 방식이었다.

별다른 고도의 스킬도 없는, 다시 말해 그럴싸한 직군을 가지지 않은 놈들이길 바란다. 죽어가는 거한을 뒤로 두고 제냐가 달려들었다.


좁은 골목길에서 몇 명의 남자가 난전을 벌인다면 시야의 어지러움이 심하리라. 제냐는 별로 불만이 없는 환경이었다. 자신 외에는 전부 적이라고 생각하고 대거를 휘두르면 될 뿐이다. 황야 지룡의 발톱이라고 이름 붙은 대거는 제냐의 손에서 정말 발톱처럼 움직였다. 밝은 베이지 색 톤으로 형성된 도시의 건물들이다. 그 사이에 바닥은 회색, 흰색, 검은색 따위가 여기저기 섞여 있는 벽돌 바닥이고.


제냐가 뛴다. 앞에는 다섯 명이 불규칙적으로 서로 거리를 띄운 채 있었다. 앞서 한 놈을 만났다. 손에 중검을 들고 있었다. 무거운 검이 아니라, 소검과 대검 사이. 한손검 정도 길이. 잘 갈아진 양날검이었다.

그것을 든 갈색 머리의 백인 사내가 ‘어어어···’하며 손을 들어올렸다. 느리게라도나마 검으로 다가오는 물체를 베어보려는 수작이다.


제냐에게 닿기에는 기술도 근력도, 뭣도 없는 동작이었다. 캉! 하고 새된 소리가 난다. 다가가는 속도 그대로 대거의 날이 느릿하게 휘둘러지는 중검을 쳐냈다. 거한을 기둥처럼 잡고 돈 것같이, 자신과 비슷한 체격의 사내의 품으로 돌아 들어갔다.


과일 열매를 돌려 깎는 기술과 비슷하다. 제냐는 그대로 대거의 첨단을 상대의 복부 근처에 바짝 갖다 대고 찔렀다. 감촉이 둔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상대 몸에 칼날이 들어간 상태를 유지하며 뒤로 이동한다.

원기둥의 지름 중 반이 깎여나갔다. 기둥이 아니라 사람의 몸통이었고, 그대로 상대는 절명했다. 쏟아지는 빛의 입자가 튀지 않을까 생각하며 제냐는 그보다 빨리 다음 상대에게 달려간다.


“으아아악!”


이제 상대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제냐보다 키가 조금 크고 백인. 수염이 났고 머리는 짧은 편이다. 살집이 있고 소매가 없는 셔츠에 아까의 거한처럼 팔없는 재킷을 외투로 걸쳤다. 레더 아머다. 허벅지 부근에도 뭘 찼다. 빈틈이 훤히 드러나는 동작에, 저 정도 보호구를 차고 있다면 어디를 벨 지 고른 뒤에 천천히 요리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제냐는 그대로 손도끼를 든 놈에게 다가갔고, 놈이 손도끼를 비명과 함께 집어던졌다. 다가가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대거를 역수로 쥔 뒤 아래로 세웠다. 양 손으로 손잡이를 꾹 말아 쥐며 날아드는 손도끼에 정확히 가져다댄다.


쾅! 하는 감각이 손에 느껴졌다. 그대로 흘렸다. 조금 아래를 향해 빙글빙글 돌며 다가온 도끼를 오른쪽으로 흘려 보내자 얼마간 더 날아 바닥에 떨어졌다. 묘기에 가까운 움직임이다. 현실에서 이런 동작을 낼 수 있는 인간은 없다고 해도 좋았다.

시도조차 어렵거니와 근력의 문제도 있다. 단검으로 손도끼라고는 해도 묵직한 쇳덩이의 투척을 막는 일은 사람이 할 짓은 아니다.


붉은 칼날을 가진 대거, 지룡의 발톱 대거가 강력한 도구인 것도 한 몫을 한다. 이가 나가는 구석은 전혀 없다. 제냐는 붉고 독기 서린 이빨을 그대로 멈추지 않고 다가가 들이밀었다. 제냐의 근처로 나머지 놈들이 차마 다가오지 못했다.


한 호흡에 한 명씩 절명을 시키고 있는 적을 실전에서 바라보는 것은, 괴물이나 귀신과 마주하는 일보다도 지독한 것이었다. 현실감이 넘치는 형태로 구현된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는 것과도 같다. 무기를 잃은 놈이 제대로 자세를 잡고 제냐에게 달려들기도 전에 그가 달려가서 앞차기를 먹였다.


신발 끝을 세우며 그대로 찔러 넣는 프론트 킥이 그보다 키가 큰 사내의 명치에 정확히 박혀 들어갔다. 무게와 돌진력을 실어 꾸욱 누르자 상대는 컥,

하는 신음과 함께 숨을 쉬지 못하며 상체를 접었다. 제냐는 역수로 칼날을 쥔 오른주먹을 그대로 가져다 댔다. 턱을 긁듯이 쳐서 날리는 주먹이었는데, 그 주먹의 옆에는 대거의 날이 있다.

그것이 그대로 목덜미와 하관을 깊이 베었고, 사내는 다시 일어서지도 말을 하지도 못했다.


목줄기가 베인 상대는 어마어마한 양의 빛의 입자를 토해낸다. 제냐는 서둘러 몸을 굽히며 자리를 피했으나 등께에 얼마간 묻었다. 나머지가 세 놈이었다. 제냐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바라본 자리에 두 명이 있고, 몸을 돌렸으니 이제 그의 뒤쪽 방향이 된 곳에 하나가 더 있었다.


눈 앞에 보이는 두 놈다 눈빛이 흔들린다.


제냐보다는 체격 조건이 좋은 불량배들이었고, 각기 레더 아머와 커다란 도끼. 그리고 한 손 양날검을 쥐고 있었다. “흠.” 제냐는 그 와중에 입으로 소리를 냈다. 발이 멈출 필요는 없다. 도끼를 지닌 놈이 조금 더 앞에 튀어나와 그와 가까웠다. 제냐는 쿵, 하고 벽돌 바닥을 차서 제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다가오는 대시에 놈이 혼비백산하며 뒤로 물러섰다. 발까지 꼬이는지 뒤로 넘어졌다. 못 보여줄 꼴이었다. 두려움은 싸움의 승률을 획기적으로 낮춘다.

제냐는 빈틈이 훤히 드러나는 상대의 안면을 바라보고, 그냥 그대로 단검을 홱, 어깨를 서서 던졌다. 단검 투척 스킬이 적용된 동작으로, 빛살처럼 날아간 대거가 상대의 목덜미를 꿰었다.


사내는 말도 하지 못하고 게임 오버를 당했다. 게임 내의 인물이었으므로, 캐릭터에 몰입해서 말한다면 그것이 곧 죽음이다. 제냐는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그것을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나름 대담함을 발휘한 나머지 한 놈이 그에게 다가왔다. 제냐의 앞에 있는, 한손 검을 든 놈이다.


길고 고불거리는 갈색 머리를 가졌고 20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다. 피부나 행색이 지저분하고 거칠다. 어디 뒷골목의 양아치처럼도 보였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달려드는 기세는 각오를 단단히 한듯한 모습이다.


제냐는 중얼거리지도 않았고, 그대로 서서 기다렸다. 다만 오른 손바닥을 쫙 펴며 무방비하게 서 있었다. 한 호흡이 채 지나기 전에 그의 손 앞에 파이어 볼이 형성되었다.


붉은 기운이 구를 이루고 구는 화염처럼 이글거린다. 주변의 온도가 급격하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쓸데없이 소모되는 열량을 만들기보다 파이어 볼의 위력 형성에 더 큰 에너지를 쏟기 위해서, 정신력 에너지를 컨트롤하기 때문이다.


제냐는 다가오는 놈을 향해 손바닥을 폈다. 놈이 주춤거리며 돌진을 멈추지만 이미 늦었다. 제냐는 속으로 ‘발사’라고 생각했다. 의지력에 따라 파이어 볼이 날았고,


허공을 지났고,


화살보다 빠른 속도로 상대의 안면을 날려버렸다.


폭발력마저 가지고 있던 것은 별다른 특성도 고레벨도 없던 인간형 조무래기 NPC에게 막대한 신체 손상을 가져다 주었다.


그대로 게임 오버를 당했고, 다른 당한 자들의 시신이 아직 남아있는 와중에 파이어 볼을 맞은 사내는 전신이 빛의 입자로 변해 곧 사라지고 말았다.


제냐는 그동안 완성한 기감을 사용해 주변 반경을 살피고 있었다. 뒤에도 눈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들쥐의 눈과 매의 눈. 두 종류의 스킬을 모두 익히고 기력술을 단련했다. 본격적인 원시나 근접전에서의 사각이 커버가 되는 상황이다.


그의 뒤, 열 걸음이 조금 안되게 떨어져 있던 사내는 중년 정도로 보이는 탄탄한 체격의 전사다. 손에는 창을 하나 들고 있었고, 다른 이들보다 가장 그럴듯한 갑주를 입고 있었다.

단연 강력해 보이는 거한을 처음에 끝냈기에 사실 눈이 가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갑주를 가장 좋은 걸로 입고 있다면 저 놈이 대장일 수도 있었다.


제냐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몸을 돌렸다.


갈색 가죽 장화가 벽돌 바닥을 꾸욱 누르면서 빙글 몸이 돌아간다. 제냐가 검은 눈동자를 빛내며 입을 열었다.


“파이어 볼.”


그가 굳이 발음하며 스킬을 발동한 건 상대에게 협상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것은 상대의 목숨과, 제냐가 필요로 하는 모든 정보들의 무상 제공이다. 제냐가 걸어야 하는 건 그 파이어 볼로 상대의 대가리를 날려버리지 않는 것 뿐이었다.


제냐가 말했다.


“자, 얘기 좀 나눠봅시다. 암살자 양반.”


깡패 무리들치고는 움직임이 조금 계획적이었다. 깡패의 수준을 벗어나는 강함은 없었지만. 누군가에게 사주를 받고 일을 벌이는 놈들이라면 암살자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으리라.


제냐의 말에 당시 가장 멀쩡한 가죽 갑옷으로 온 몸을 가리고, 얼굴에 흉터가 있던 선이 굵은 사내는 입을 떡 벌리며 어쩔 줄을 모르더니 도주를 시도했다.


제냐는 그 등 뒤에 파이어 볼을 기어코 맞추어서, 상대의 전신을 화상으로 만들어놓은 뒤에야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전의를 상실한 깡패 두목을 두고, 그리고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던 귀족가의 인원들을 모아 그는 퀘스트를 진행시켰었다.


*


그 때의 상황으로 인해 얻은 것이 지금 그가 읽고 있는 책이었다.


“흠······.”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다. 필력이 그리 나쁘지도 않았고. 소설책이라고 친다면 말이다. 삽화도 풍부파게 들어가 있고.

게임 내의 세세한 설정을 파는 일을 그가 주도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기회가 생겼을 때 읽는 걸 못견딜 정도로 싫어하지도 않는다.


사락거리며 질감이 좋은 두께감의 종이를 계속 넘긴다. 책을 읽는 건 아주 빠른 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으니까.

내용을 전부 외워서 시험을 봐야 하는 경우도 아니었고, 단지 읽기만 하면 되었다.


‘책’은 소녀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소녀.


그가 구해줬던 세슈칸 어느 골목길에서의 그 사람들 말이다. 그 자리엔 화려하게 조각되었으며 멋들어진 흑마 두 마리가 매인 마차와, 그로부터 나왔을 인물들이 있었다.


죽어가던 노인, 쓰러진 두 청년. 그리고 제냐와 비슷해 보이는 나이대의 젊은 아가씨와 많이 쳐줘야 1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소녀.


어느 귀족가에서 나왔소 하고 광고라도 하듯이 거창한 차림새를 입은 자들이었다. 엎드러진 두 청년은 다소 평범한 복색이었지만.


그런 귀족가의 인원들이 왜 세슈칸 골목 한 구석에서 습격을 당하고 있었느냐, 하는 이야기는 깨나 긴 사연이었다.


사락.


제냐는 얼마 남지 않은 책의 페이지를 넘겼다.


옛날 화풍으로 그려진, 그리고 변색된 물감이 세월을 느끼게 해주는 듯 보이는 ‘성’이 있었다. 넘겨진 페이지에는 말이다.


성벽과 내부의 성채 모두 회색질의 돌로 쌓아 만든 듯한 그림이다.

그 터치가 아주 세밀하고, 크기를 느낄 수 있게끔 그려져 있어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웅장한 느낌마저 준다. 너른 평원에 세워진 성.


그림속 성의 꼭대기에는 깃발이 하나 달려 있다. 웅크린 사자.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듯 발을 굽히고 눈빛을 빛내고 있는 사자의 형상 주위로 붉은 원, 푸른 테두리, 녹색 배경의 깃발이었다. 사자가 원 안에 들어가 있었다. 원을 대각선으로 질러가는 검의 문양이 더해져 있다.

금빛 손잡이가 달린 바스타드 소드였다.


보통 어떤 집단, 가문의 위세나 그 대단한 용맹함을 자랑하는 깃발 따위엔 사자의 형상이 자주 들어간다. 그리고 그 때 사자의 모습은 아마 맹수의 기세가 가장 잘 표현되는 자세일 테였고.

사납게 울부짖거나 앞 발을 한껏 들어올려 제 몸을 크게 만든 사자가 아닌 웅크린 모습이 다소 눈에 띈다.

절제된 공격성과 철두철미함을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가 폄하한다면 겁먹은 꼴이라고 놀릴 수도 있는 모습이기에, 전투의 기세를 살리기 위해 내걸곤 하는 깃발에 저런 그림을 그리진 않는다.


제냐가 나무 테이블에 앉아 입을 열었다. 그는 여관에 있을 때도 불편해 보이도록 방호구를 모두 차고 있는 모습이다.

불편함은 그리 크지 않다. 캐릭터의 근력 수치가 오를수록 특별하게 무겁게 만들어진 장비가 아니라면 큰 부담이 아니었으니.

게다가 어느 정도, 계속해서 불편함과 부하가 걸리는 환경을 추구하는 게 비련의 시나리오에서 올바른 플레이 방법이고 육성법이다.


비련의 시나리오에서 가장 빠르게 스펙Spec을 올리려면 군인처럼 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캐릭터를 효율적으로 혹사시키는 것 말이다.

너무 심하게 굴리다가 HP를 관리하지 못하고 그대로 게임 오버가 되어버려선 안되겠지만. 가능한 다량의 고생을 경험하는 일이 도움이 된다.


제냐는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허기가 약간 느껴지는 것 같다. 시나리오 온라인 내에서 다양한 감각들은 한계 범위 내에서 현실과 흡사하다. 똑같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허기가 극심해지고, 장시간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는다면 부상을 당한 것처럼 체력 포인트가 줄기도 한다. 그 이전에 먼저 컨디션이 떨어지는 일도 있다.

관련한 특수 스킬이나 아이템 효과 따위를 보유했다면 그로부터 보다 자유로울 수도 있었지만.


책을 마저 읽고 일어설까, 잠깐 아래 내려가서 식사라도 하고 올까. 제냐는 고민하며 탁자를 조금 두드렸다.


그림을 유심히 살피다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


성.


그리고, 웅크린 사자.


그건 산슈카 왕국 ‘로멜리아Romellia’ 가문의 상징이었다.


세슈칸과 산슈카. 이름의 유사함에서 알 수 있듯이, 세슈칸은 산슈카 왕국의 영토이다. 오래 전부터 영토였고, 아직까지도 그렇다.

세슈칸을 다스리는 영주는 ‘작힘Jakkhim’이라는 가문의 가주였고, 곧 작힘 백작이었다.


일반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은 낮은 레벨대에서 영주 급의 인사들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보통 그런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건 못해도 100 이상의 일이다.

스텟 포인트가 50언저리에서 놀기 시작하는 때.


지금 제냐의 레벨은 35였고, 스텟은 모두 30을 넘겼다. 높은 수치는 30대 중후반에 머무르고 있다. 레벨보다 스텟이 높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고, 그런 상태는 물론 레벨이 올라갈수록 유지하기 어렵고 힘들다.

스텟이 증가하기 위해 요구되는 경험치가 기하급수적이기 때문이다. 근력 운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과부하를 걸어도 오랜 시간이 요구된다.


20에서 10때의 두 배, 30에서 네 배.


20후반부에서 순식간에 차고 올라 원점 기준으로 6, 7배 정도의 위력을 낼 수 있는 셈이었다.


이미 초인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다. 그를 지고 달렸던 코미어 또한 스텟들이 30을 채 넘지 못했다. 그 정도만 하더라도 장정을 등에 업은 채 질주를 할 수 있었는데.


최태현은 30 언저리에서 놀고 있었다. 제냐에 비해서는 다소 부족하다. 대신 다양한 스킬과 금전을 이용해 채워낸 아이템들도 전투력을 보강한다. 실전에서 싸우면 여전히, 좋은 호적수이며 까다로운 상대가 되리라.


어쨌든, 둘 다 모두 세슈칸에서 다양한 의뢰를 처리하면서 영주의 신변에 대해 고민을 해 볼 위치들은 아니다.

대도시의 영주급들과 관련된 퀘스트라면 마을 단위 퀘스트를 넘어서 지역간 퀘스트로 이어지는 교두보에 있는 것들이고, 그들보다 더 노련하며 강력한 플레이어들이 선점했기에 말이다. 이미 훌륭하게 NPC들의 사연과 고민을 해결해주고 있었기에 NPC들의 수요가 아래 급의 플레이어들에게까지 내려올 일이 별로 없다.


제냐가 만난 건, 적당한 공급자를 찾지 못한 수요자였다.


금박 장식으로 위세를 드러내는 듯한 마차를 타고 가던 인물들.


그들은 ‘로멜리아’ 가문의 일원들이었다.


버젓한 이름이 있고 멋들어진 장식과 복색으로 신분을 드러내고 있으니 아주 고귀한 위치인가 싶었지만, 그보다는 조금 상황이 안 좋은 인간들이었다.


산슈카 왕국에서 로멜리아 가문이 차지하는 위치는 상당히 주요한 부분이었다.


예전에.


역사가 오래된 왕국에서 로멜리아 가는 중기 이후부터, 지금으로 치면 백작가 이상의 작위를 유지하며 핵심 지역의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로서 그 위세를 보여왔다.

후기로 가면서 후작위까지 올랐고, 나라의 갖은 대신들과 대등하게 국사를 논하고 왕의 신임을 받아왔다. 로멜리아 가의 가주들은 말이다.


길고 긴 산슈카의 역사에선 천 여년 전의 이야기가 ‘후기’에 속한다.


산슈카의 제국기에 로멜리아 가는 국가 확장의 기틀을 마련한 공신가로서 공작가에 오르고 왕의 곁에서 그 권세를 누린다.


산슈카의 번영을 상징하는 듯 핵심적인 위치의 인물들로 늘 가문의 구성원들이 자리했다.


그러나 산슈카의 번영을 뜻했던 로멜리아 가는 마찬가지로, 산슈카의 몰락과 함께 그 높은 자리에서 내려왔다.


주변국들의 맹렬한 저항을 받고, 또 중부에 위치한 넓은 국토 내에서 다양한 변란이 일어나며, 귀족가들의 이해 관계가 달랐기에 내부적인 정쟁마저 심각해졌다.


콘란드 대륙 중심지에 위치한 산슈카 국 주변으로 적들이 무수하게 생겨났다. 문화와 문명의 발전은 적국의 발전 역시 포함하고 있는 것이었고, 답보 상태이거나 혹은 힘이 쪼개어져 약화되고 있던 제국에게 그건 치명적인 변화였다.


로멜리아는 나라의 중심지에서 여전히 왕을 보필하며 자신들의 명맥을 이어갔지만, 공신가로서 충성을 다하던 그 가풍이 도리어 이른 몰락을 가져왔다.

누구보다 앞서서 전쟁터에서 싸우던 구성원들이 죽어갔고, 패퇴를 거듭하며 제국은 왕국의 크기로까지 줄어든다.


나라 전체의 크기가 줄어들자 나라를 갈라 먹고 있던 귀족들은 죽어서 사라진 자들도 있었고, 그 전에 적국과 결탁을 해서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도 있었다.


로멜리아는 본국에 충성을 다했지만 끝이 좋지 않았다. 공신가를 경쟁자로 생각하던 국내의 귀족들이 도리어 그들에게 이빨을 디밀었다. 자신들이 영토를 잃고 입지가 불안정해지자 만만한 상대를 찾은 셈이다.

내전과 자연재해. 주변국들의 연합과 침략. 그 사이에 내부 정쟁과 음모에 휘말려 로멜리아 가문은 역사 속으로 거진 사라졌다.


산슈카의 번영기를 상징하는 로멜리아의 깃발과, 그 거대한 석조 성 역시 말이다.


가문이 완전히 사라져 명맥이 끊어지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그 후예가 제냐의 앞에 있었으니 말이다.


골목. 아직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전투의 후처리를 위해 애쓰고 있던 와중이었다.


독에 당했는지 제대로 정신을 못차리는 두 청년에게 해독 포션을 억지로 먹였다. 아가리를 벌리고 고개를 젖힌 뒤 그냥 처넣었다. 건장한 자들이니 어떻게든 되리라. 해독 포션은 플레이어들에게 효과가 있듯 NPC들에게도 똑같이 효력을 보였다. 초록빛과 푸른빛이 섞여 있는 포션 두 통을 그렇게 소비하고, 붉은 물약을 노인의 몸에 온통 뿌렸다.


정확히는 그의 몸에서 빛의 입자로 뒤덮힌 곳들을 위주로. 몸통, 팔 다리 이곳저곳에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붉은 물약이 덮자 그 기세가 주는 듯했다.

그리고 노인의 레벨이나 HP량을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일단 제냐가 먹는 수준의 붉은 물약을 그 입에 꽂아 넣어 마시게 했다.


붉은 물약이 곧바로 외상을 치유해주지는 않지만, 상처의 악화를 막아줄 수는 있었다. HP의 감소가 멈춘다는 것은 곧 죽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아무리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있더라도.

치명상에 준하는 상황에서 HP감소를 완벽하게 멈추려면 정말 고급의 HP회복 아이템이 필요하기는 하다.

다행히 노인의 상처가 그 정도는 아니었고, 제냐는 충분한 양의 물약을 갖고 있었다.


그 위에 대강 몇 가지 회복류 아이템으로 응급조치를 해보았다. 자상으로 추정되는 곳에 붉은 물약으로 도배를 하고 깨끗한 면포를 감쌌다. 그렇게 대강이나마 조치를 취하는 것도 효과가 있는 일이다.

회복을 위해서는 치료 계열의 초상 스킬을 보유한 힐러Healer를 찾아야 했다. 플레이어 중에도 있었고, NPC중에도 있다.


초상 스킬이 아니라면 약재를 사용하거나 외과 수술이 가능한 부류를 찾아야 했고. 그가 머물고 있는 거리에서 중요한 가게 따위의 위치는 알고 있었다. 제냐는 노인을 이끌고 외과 진료를 보는 병원으로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부상자들의 응급 처치를 마치고 제냐가 아가씨를 처다봤다.


다시 보니, 그림으로 그린듯한 미인임을 조금 더 잘 알 수 있었다. 현실에서 이런 미모를 가진 사람을 만나기가 쉬울까. 비련의 시나리오 내에서 NPC들의 외형은 다른 모든 물질과 마찬가지로 시스템AI가 만들어내는 조형물에 불과하다.

인위적인 의도로 인해 지어진 미녀가 가련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눈꺼풀을 떨었다.


풍성한 외견의 드레스를 입은 미인이다. 그대로 파티장에 들어간다고 해도 손색이 없으리라. 뛰는 건 고사하고 걷는 것도 불편해보였다. 에메랄드 빛이 옅게 돌고 있는 고급스런 디자인이다. 소녀와 청년기의 여인 모두 고불거리는 블론드 헤어를 길게 기르고 있었다.

노인과 엎어져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두 청년까지 모두 백인이다.

중부 대륙의 인종은 다양하다.


콘란드 대륙 전토로 보면 당연히 더 그럴 것이고.

산슈카 왕국의 영토 내에도 흑인과 백인, 황인종이 모두 섞여 있었다.


왕국 내 주류 인종은 백인이었다. 유럽 계열의, 흔히 상상하는 그런 말이다. 피부가 희고 체격이 조금 큰 편인듯 하다.

여인이었지만 제냐에 비해 그다지 작지도 않았다.


가는 선의 이목구비가 그를 처다봤다.

제냐는 일단 벌어진 상황, 조금 더 임무 수행을 위한 자세한 정보를 듣기 원했다.


뒷전에 넘어뜨려 둔 적대 NPC 한 놈은 희미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제냐가 이쪽을 선택했으니, 우호적 NPC가 된 이 귀족 일당의 이야기를 듣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깨워서 신문하면 되리라.


아가씨가 말했다.


“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아가씨. 무사해 보이니 다행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제냐가 말끝을 흐린다.


아가씨의 뒤켠에는 그녀보다 작은 소녀가 움찔거리며 그를 처다보고 있다. 겁에 질려 한 번 패닉 상태에 빠졌던 듯한 기색이다. 지금 정보를 들을 수 있는 건 아가씨, 소녀, 그리고 눈을 뜨고 있는 노인. 마지막으로 골목에 엎드린 채 등판에 화상을 입어 떨고 있는 깡패 두목이다.


제냐는 깡패가 움직이는 기색을 기감으로 확인하면서 그녀에게 말을 이어 걸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혹시 제가 자세히 들을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한 상황이라면,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고 싶군요.”


그의 말에 아가씨가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등을 기대고 있던 노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떨리고 불안한 음색으로 말했다. 노인.


“고··· 맙네. 아가씨들을 지켜주어서······. 부끄럽게도 이 내가 뒷거리의 치들에게 당하다니······.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 걸세···.”


노인의 가는 목소리다. 제냐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별 일 아니었습니다. 저에겐 그다지 힘든 일도 아니었고요. 거기다가, 우리는 혹시 구면이 아닙니까?”


제냐가 문득 말했다.

문득 떠오른 생각 때문이었다.


세슈칸으로 오는 길. 그는 그 인적 드문 황야의 가도에서 어느 마차가 달리는 것을 보았다. 그가 두 발로 세슈칸까지 여행하던 와중에 그 옆을 지난 마차다.

워낙 눈에 띌 정도로 고급스러운 마차나 흑마, 그 앞에 타고 있던 젊은 마부를 기억한다.


마부의 인상착의가 그렇게 특이하지는 않았으므로 정확한 기억은 아니었지만. 아까 몸을 뒤집어 물약을 마시게 한 청년이 개중 하나였던 것 같다.

제냐는 의외로 순간적인 기억력이 괜찮았다.

그리고, 그 마차의 창문 틈새로 보았던 인형같던 꼬맹이를 기억한다.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인상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는 외모였다. 금을 실처럼 녹이고 짜서 만들어낸 듯한 머릿결. 일부러 조형한 듯 보이는 인형같은 외모.

몸집이 작은 백인 소녀의 얼굴이 바로 저기에 있다.


사실 곧장 기억이 난 건 아니었다. 마차를 보고, 여기에 있는 인물들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고, 조금 더 생각을 하다가 떠올랐다.

당시에는 대륙 내에 존재하는 다른 무수한 NPC들과 마찬가지로 여겼고,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이렇게 다시 보니 퀘스트의 단초로서 존재하는 자들이었다. 이런 인연이 흔하지는 않다. 무작위 난수로 진행되는 시나리오 내부에서 말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제냐가 인지하지 못하는 새 어떤 퀘스트 트리거Trigger를 발동시켰을까.

그가 알 수 있는 종류는 아니었다. 그리고 아마 그러지 않으리라 추측한다. 그 짧은 사이에 뭔가를 할 수는 없었다. 시나리오 온라인 내부적으로도, 아마 우연이 아닐까.

제냐가 이들과 엮일만한 일은 그저 같은 타이밍에 같은 길을 지났다는 것 뿐이었다.

그가 아니더라도 그 날 그 시간대에 가도를 지나던 플레이어는 더 있었을지 모르고. 마차가 그보다 빨랐으니 앞서가던 행인들과 여러번 마주쳤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결정적이라고 할만한 요소는 없었다.


제냐의 말에 노인이나 아가씨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 소녀가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놀랍게도.


“어.”


말이 없이 웅크린 기색으로 있던 작은 꼬맹이가 제냐의 얼굴을 보고 소리를 냈다. 한 순간이었지만 눈이 마주친 장면을 떠올린 모양이다. 노인이 그 모습에 갸우뚱거렸다.


“꼬마 아가씨가 기억하는 모양입니다. 저도 저 마차와 소녀를 기억하고요. 세슈칸으로 향하는 가도에 있던 행인이었습니다.

정말 별 일은 아니지만. 대충 인연이라고 해두죠.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제냐가 물어보면서, 아가씨와 노인을 번갈아 처다보았다.


“······.”


노인이 그 말에 잠시 골몰하는 듯 하다 입을 연다.


“···우리는 로멜리아 가문의 일원들이라네.”

“로멜리아요?”


그게 무슨 말이람.


제냐는 딱히 게임 세부 설정에 빠삭하지는 않다. 다양한 퀘스트의 상세를 담고 있는 공략본을 미리 읽고 플레이하는 부류도 아니었고.

비련의 시나리오를 아주 깊이 파는 자들은 별에 별 설정들을 다 익히고 있고, 세계관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들을 이미 알고 있는 일을 대하듯이 처리하는 작자들마저 개중에 있었다.


뭔가 유명한 가문인 모양이다. 제냐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경청했고, 노인이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간신히 죽지 않을 정도로만 회복한 노인이 긴 이야기를 시작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는 했으나, 딱히 아가씨나 소녀가 말을 이어받지는 않았다. 노인이 사연을 풀었다.


“······


내 이름은 줄리앙 리스트라네.”


세바스찬이 아니었군. 그는 왜인지 ‘집사’라고 하면 흔하게 생각나는 이름을 속으로 들먹였다. 제냐의 마음을 읽지는 못하므로, 노인은 대꾸없이 자신의 말을 한다.


“우리는 로멜리아 가문에 속한 자들로··· 오래 전의 약속을 따라 이곳에 왔다네.

세슈칸.

산슈카 왕국의 주요 영지였으며, 아직도 대도시로서 대귀족이 다스리게 되는 이 도시는 옛날 로멜리아 가문의 영토였지.

본질적으로 모든 영토는 폐하의 것이긴 하네만, 봉신으로서 적법한 권리를 인정받아 예전 로멜리아 가문은 대륙 중부의 대국에서 상당한 땅덩이를 대신해서 다스리고 있었어.

세슈칸 역시 개중 하나였고···


혹시 산슈카 왕국이 예전에는 제국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콘란드 대륙 중부의 맹자였던 산슈카 제국··· 그 제국이 맹위를 떨칠 때 같이 힘을 더했던 가문이 바로 로멜리아라네.

역대의 가주들 중 가장 높이 올라간 작위가 공작 위였지.

벌써 역사서에만 기록된 아주 옛날 이야기가 돼버리긴 했지만···.

어쨌든 유서깊은 고국古國인 산슈카 국과 명맥을 같이하는 로멜리아 가문은 마찬가지로 오랜 역사를 지녔네.


저기에 계신 금발의 두 아가씨께서 그 가문의 적통이시고.


어린 아가씨가 아드리안 로멜리아, 그리고 어엿하게 자란 분이 헤슈나 로멜리아이시지.


세슈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로멜리아 가문의 본거지가 아직 멀쩡하게 살아 있다네. 이곳보다는 훨씬 작은 도시이며 산슈카 국에서도 변경에 가깝지만··· 어쨌든 남작 위를 가지고 영주로서 살아가고 있지.


그러나 최근 로멜리아 가의 가주께서 돌아가신 일이 벌어졌네. 비극이었지.”


제냐는 퀘스트 로그Log를 읽는 기분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노인, 줄리앙이 고개를 아래로 내리며 잠시 흐느낀다.

헝클어진 머리가 그의 어깨가 들썩일 때마다 같이 흔들렸다.

상처보다도 더 깊은 것이 마음에 남은 상흔이나 비극에 대한 기억일 테다.


제냐는 잠시 기다렸다.

기감으로 여전히 보고 있는데, 깡패 두목은 일어설 생각을 하진 않고 있었다. 제법 눈치가 좋은 놈이다.

등을 돌리고 있더래도 놈이 몇 걸음 더 가기 전에 파이어 볼을 먹여 주거나 뛰어가 잡아서 상상하기 싫은 꼴로 만들어줄 수 있었다.

그 정도 감각은 있는 놈인 듯했다. 제냐와 압도적인 전투력 차이로 제 패거리가 다 당한 것이 그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도록 막는 억제 요인이 되는 모양이다.


줄리앙이 다시금 의무적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생각보다 조금 더 정통적인 상황의 퀘스트인 모양이었다. 기반을 잃고, 명예와 전통, 그리고 혈맥만이 남은 유구한 귀족가.

저 집단의 정신은 자본을 모두 잃었어도 여전히 형형하게 남아 있는 것인 모양이지.


그리고 그런 자들의 복귀를 위해서 플레이어가 힘써야 하는 상황이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아주 간절한 상황인 모양이다. 상처 입은 늙은 노인이 쉴 새 없이 말을 토해내면서 소상하게 제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걸 보면 말이다.


“······크. 그, 미안하네.

···계속해서 말하자면. ······작년 초 남작 님께서 돌아가셨네. 원인은 불명이지만 의심가는 부분들은 있어. 주변에 로멜리아 가문을 오랫동안 시기해 온 작자들이 있으니.

로멜리아는 위세는 작아도 그 유명세와 전통만은 어떤 가문이 따라올 수 없지.

여러가지 떠도는 헛소문들 중에는 로멜리아 가가 쇠락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남겨두었던 가문의 재화나 보물이 있다는 이야기지.


고국의 역사를 그대로 이어 따라온, 로멜리아라는 집단의 정수를 품고 있는 무엇 말이야.


그네들은 아마도 남작 님을··· 암살하고 남작 가를 들쑤시려는 셈이었겠지.


인접한 몇 개 영지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있다는 첩보를 받았네.

로멜리아 가의 명맥을 지키기 위해 충성을 다하는 자들이 아직 남아 있었지.

눈이 홰까닥 돌아버린 미치광이들이 그 순간 어떻게 굴 지 알 수가 없어서··· 나는 일단 급한대로 아가씨들을 모시고 나섰네.”


줄리앙의 고개가 힘겹게 움직여서, 그의 기준에서 오른 쪽에 있는 아가씨들을 처다보았다. 개중 작은 아가씨, 아드리안의 모습을 살피며 그가 입을 연다.


“그저 세슈칸에 야유회를 떠난다는 말로 둘러댔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게 되었군.

아무튼.

······우리가 이 곳에 온 목적은 간단하네.

세슈칸은 예전에 로멜리아 가가 맹주로서 다스리던 여러 중부 지역의 영토들 중 한 곳이며, 가장 중심지가 되는 장소라네.


로멜리아의 옛 흔적이나 어떤 숨겨진 보물이나 언약이 있다면 가장 남아있을 만한 곳이지.

가주님의 마지막 말씀이 그것이셨네.

세슈칸의 작힘 가를 찾아라. 영주 성의 비밀 창고에 로멜리아의 복권을 도울만한 귀물이 있다.

또한, 로멜리아 가가 쇠락하기 전에 세슈칸의 영토를 맡게 될 이에게 약속을 받아둔 것이 있다.

로멜리아의 금목걸이를 가져다 보여주어라. 작힘 가가 약속을 이어받았다면 내치지 않고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해주리라.”


“······.”


흐음.


제냐는 턱을 슬쩍 쓸었다. 노인의 이야기는 대강 요약하자면 간단한 것이었다.

위세를 잃어버린 로멜리아 가는 존속이 어려울 정도의 위협을 당하게 되었다.

산슈카 왕국은 그럭저럭 잘 살고 있고 또 국력도 괜찮은 중견의 강대국이라고 보았는데 내부 사정은 여러모로 개판인 모양이었다.

내부에서 영주나 귀족 급의 인원들이 이런 꼴을 당하다니 말이다.


왕은 뭘 하는가, 궁금해졌지만 딱히 알 길은 없었다. 말했듯 게임 내 설정의 자세한 부분까지 파고들지는 않는다.

또한 비련의 시나리오는 현재진행형으로 바뀌고 있는 시나리오이며 영화여서, 그 세부설정을 알기 위해서는 주기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전공 공부도 손을 놓은 지 꽤 되었는데 비련의 시나리오의 역사와 정세 공부를 그 정도로 한다고?

제냐로서는 고개가 절로 저어지는 부분이다.


어쨌든, 왕이 뭘 하든 이 가문은 예전에 그들이 융성했을 때 남겨둔 저축금을 까먹으려고 이 곳에 온 모양이었다.

그 저축을 맡아 줄 친우가 여전히 약속을 기억하고 있느냐, 혹은 그 저축이 멀쩡하게 형태를 유지하고 있느냐는 불확실한 문제였지만.


그들 가문의 위세를 다시금 보여줄만한 어떤 강력한 힘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울타리가 되어주던 가주가 죽고, 그 딸들을 지키기 위해서 노인이 고생을 했겠지.


제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강 퀘스트의 내용은 알게 되었다. 세슈칸의 영주, 작힘 백작과 그 일족들을 만나 무언가 얘기를 풀어보면 되나보다.

그는 조금 더 상세한 내용에 빠트린 게 없는지, 도움이 될 만한 다른 팁이 없는지 알기 위해 아가씨들에게 물었다.


아드리안과 헤슈나, 두 아가씨가 알고 있는 것은 대동소이했다. 그들이 현재 처한 상황도 그러했고. 헤슈나는 가문의 역사나 줄리앙이 언급한 세슈칸의 보물에 대해서 알고 있는 듯했지만 아드리안은 별로 아는 게 없는 마냥 딴청을 피워댔다.


제냐가 깡패들에 대해서 물었다. 그들의 사정은 알았다. 그런데 저 놈들에게 이 골목에서 위협을 당하고 있던 이야기는 또 무엇인가.


“···글쎄······.”


노인이 말끝을 흐렸다. 그가 이번에는 엎어진 깡패 두목을 처다보았다. 그들 무리의 청년들은 끙끙 앓으면서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노인에 비해 외상은 그렇게 심하지 않은 듯하다.

일이 벌어진 모양에서 추리하건데, 위협적인 두 사내를 먼저 독극물로 무력화시키고 노인을 핍박한 듯했다.


깡패들은 보통 이렇게 전문적이고 교활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되는대로 살아온 인생이니, 되는대로 구르는 것이 그들이 일을 저지르는 방식이다.

누군가 머리가 되는 놈이 숨어 있을 테다. 독극물을 준 자도 따로 있을 것이고.


노인, 줄리앙이 입을 열었다.


“그건 우리도 정확히 알 수 없구만. 다만,

작힘 가의 영지이니 작힘 백작과 관련이 있으리라는 짐작만 할 뿐이야.

혹시나,

로멜리아 가에 전해지는 보물이 가주께 들은대로의 약속을 어길만큼 귀한 물건이라면

그걸 맡아두던 자들이 변심했어도 이상하진 않지.


세슈칸에 들어와서 혹시나 몰라 조심을 하긴 했네.

우리가 움직이는 걸 누구한테 알리지도 않았고. 도시 내부에 들어와서도 눈에 띄지 않는 장소를 위주로 거처를 옮기면서 작힘과 닿을 방법을 찾던 중이었지.


정식으로 방문을 하니 작힘 백작은 부재중이라는 핑계로 몇 번이고 만나주질 않더군.

그렇게 세슈칸에서 조심스레 떠돌고 있을 때 나타난 게 저 자들이라네.”

“흐음.”


제냐가 알았다는 듯이 고갤 끄덕인다. 다음 이야기는 알고 있는 자에게 물어봐야겠다.


그가 몸을 돌려 깡패 두목을 바라보았다.


레더 아머는 파이어볼의 기세에 타들어가 검게 그슬렸다. 등판을 비롯해서 전신에 화염으로 열상을 입은 듯 하다.

찬 골목 바닥에서 그 열기를 식히려는 듯 엎드려 움찔거리는 놈의 뒤로 저벅이며 간다.


“IV.”


인벤토리를 열어 능숙한 손놀림으로 푸른 인터페이스 윈도우의 목록 중 붉은 물약 하나를 긁어내듯 골랐다. 손가락으로 꺼내는 그 제스쳐가 푸른 창에 평면적 그림으로 있던 것이 볼록 튀어나오며 입체적인 물건이 된다.


다른 이가 보면 허공에서 물건을 꺼내드는 것으로 인지하리라. NPC들은 플레이어들이 사용하는 일종의 초상 스킬로 대강 인식한다.

한 손으로 붉은 물약을 쥐었다. 손바닥에 들어오는 아담한 크기의 목이 긴 유리병 모양이다. 실제로 유리는 아니었고.


뚜껑을 돌려 깠다. 잠겨 있던 것이 병뚜껑처럼 까락, 하고 뜯겼다. 적당히 옆에 버린다. 제냐는 그대로 뒤집어 붉은 내용물을 엎드린 깡패 두목의 다 타버린 등판에 부었다.

등 쪽의 방어구는 전면에 입은 것보다 조금 부실했다. 파이어 볼은 급조하다시피 만든 것이라 해도 그의 방어력을 훨씬 웃도는 것이었고.

아마 깨워서 일으켜도 제대로 말을 할 수 있을 상태는 아니리라.

다행히,


적에 대한 치료를 해줄 때는 붉은 물약의 HP감소 저지 효과가 더 쓸만했다. 쓸데없이 힘을 되찾으면 반항을 하거나 도주를 시도할 지도 몰랐다.

깡패 두목은 생각보다 보는 눈이 있는지 조심스러운 것 같았지만. 괜히 힘을 더해줘서 좋을 게 없다. 어차피 제냐는 한 쪽을 선택했고, 그가 선 쪽의 적대적 인물일 뿐이었으니.


주룩, 하고 물병의 아구에서 흘러나온 붉은 물줄기가 금세 깡패의 몸에 닿아 물방울이 튀었다. 사방으로 튀며 흩어지는 그것이 등줄기를 감싼다. 파이어볼이 그랬던 것처럼 붉다. 다만 포상 스킬과 달리 물약은 액체였고 시원하다.

상처의 악화를 막아주는 신묘한 효과마저 있었다.


깡패 두목은 갑작스런 물줄기에 부르르, 떨더니 조금씩 정신을 차리는 것 같다.

사실 완전히 기절하지 않은 걸 안다. 제냐의 기감은 수준급이었다. 그의 스킬 레벨 치고는 말이다.

HP가 반절 이상 한 번에 닳아서 쇼크 직전까지 갔던 모양이긴 한데.

체력 포션을 부어주었으니 잠깐 살만은 할 것이다.


제냐는 툭,


화상이 그리 심하지 않은 부위를 발끝으로 차며 불렀다. 엎드린 상대의 볼이었다.


“어이, 일어나 보쇼.”


제냐의 두드림에 문이 열리듯 상대가 이제 막 의식을 차린 척 하며 고개를 돌려 위를 슬쩍 ㅊ처다보았다.

화상으로 인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볼만하다. 눈썹도 그을렸고, 머리털도 대부분이 날아간 꼴이다.

제냐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원했다.


“아는 것 있으면 말하고, 없으면 동료들의 곁으로 가시고.”


‘파이어 볼.’


일부러 작게 중얼거린 제냐다. 그가 허공을 향해 오른 손바닥을 들어보이며 말하자 붉은 화염이 다시 모여든다.

파이어 볼을 다시 형성하지는 않았다. 완전하게 만들어버리면 다시 해체하는 데에도 MP가 소모된다.

이미 물리적으로 발현된 현상을 없애는 일이기에, 그것 역시 MP를 소모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캐스팅 되기 전의 불줄기로 요란스레 휘도는 꼴을 보여주었더니 깡패가 정직함에 대해 조금 다시 생각해 본 모양이었다.

그가 벌겋게 달아오른 안면에서 유일하게 멀쩡해 보이는 눈알을 굴리다가 입을 열었다. 다급한 톤의, 낮은 목소리였다.


“그, 잠, 잠깐 얘기하겠소······.”

“어. 시간 많아. 천천히 얘기해.”


툭, 하고 제냐가 그의 어깨 부근을 발끝으로 쳤다. 으윽! 신음을 흘리며 그가 몸을 돌려 일어나려 한다. 그 과정에서 힘이 빠졌는지 등판이 바닥에 한 번 닿아 쓸렸다. 깡패가 신음 소리를 참으면서 자세를 일으켰다. 바닥에 주저 앉은 꼴로 짧은 대담임 시작되었다.


“이름, 소속, 나이, 성장배경, 근황, 범죄 동기. 모두 말해라.”


깡패는 그 서슬퍼런 말투에 제냐를 올려다보다가, 무겁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입술이 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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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으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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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5. 멧돼지 사냥 23.05.28 52 4 34쪽
15 14. 멧돼지 23.05.26 55 4 33쪽
14 13. 마라톤Marathon +4 23.05.22 62 5 38쪽
13 12. 세슈칸Seshukan 가는 길 +2 23.05.04 66 5 29쪽
12 11. 도서관 제육 23.05.03 59 5 25쪽
11 10. 황야 지룡 23.04.30 62 5 44쪽
10 9. 붉은 날개 23.04.29 78 5 31쪽
9 8. 흰줄무늬 검은 고양이 코미어 23.04.29 87 5 29쪽
8 7. 물약 상점의 필리Philly 씨 23.04.27 97 6 30쪽
7 6. 오크Ork 사냥 23.04.16 106 6 27쪽
6 5. 이성적 파이어볼 +2 23.04.15 149 6 33쪽
5 4. 긴장성 파이어볼 +2 23.04.12 158 6 22쪽
4 3. 로그 오프Log off 23.04.12 187 7 15쪽
3 2. 개멋진나 최 23.03.12 249 7 31쪽
2 1. 파란 귀 토끼 23.03.11 453 9 30쪽
1 0. Prologue. +1 23.03.11 518 1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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