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7.03 03:25
연재수 :
359 회
조회수 :
9,381
추천수 :
772
글자수 :
3,410,230

작성
23.05.28 01:28
조회
51
추천
4
글자
34쪽

15. 멧돼지 사냥

DUMMY

‘브라운 오크’, 갈색 오크라 불리는 종을 찾기 위해서 걷는 여정이었다.


숲 속에는 다양한 짐승들이 포진해 있었고, 잘못해서 길을 들면 흉악한 몬스터의 영역을 지나가다 변을 당할 수 있었다.

움직일 때는 근처 맵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고 지도 아이템 따위를 가져다가 길을 찾아 움직이는 게 보통이었다. 다행히 이 숲에는 그들 두 사람을 일격에 격살할만한 몬스터는 없었다.

잘못 걸린다면 얼마든지 도망칠 정도는 된다, 두 사람이.


세슈칸 근처의 헌팅 맵 중에서는 난이도가 낮은 편에 속하는 곳이었다. 그들이 걷고 있는 숲은 말이다.


대도大都 세슈칸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숲이었고, 그 위치나 도시로부터의 거리가 초보자 시절 많이 겪은 평화의 숲을 떠올리게 했다.

그보다는 조금 난이도가 있었으나, 세슈칸에 처음 도착한 비기너들이 사냥하기 좋다는 점에서는 거의 같은 종류였다.


이 맵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게 갈색 오크들의 무리였다. 잘못해서 거대한 집락을 건드렸다간 어지간한 레벨이 아니고서 상대할 수가 없다. 일을 크게 키우기 전에 그냥 도망쳐야 한다.


그들 또한 적당한 개체나, 혹은 몇 마리가 모여 있는 정도를 발견하기 위해 부지런히 걷는 중이다.


짐승형 몬스터들은 다양한 감각들이 발달되어 있고 또 그 NPC몹들이 제 것으로 삼는 영역이 클 때가 많았다. 그런 몬스터들의 어그로를 최대한 끌지 않기 위해서, 미리 알아낸 안전한 루트로 두 사람은 움직이고 있었다.


현실에서 다양한 야생 동물들을 조심하며 원시림을 걷는 것이나 비슷했다. 다른 점은 총이나 현대화된 무장들이 없어도 초인적인 전투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 정도였다.


게임의 밸런스란 절묘해서 물론 그런 초인들을 곤란에 빠지게 만들만한 몬스터들이 많았지만.


개멋진나 최는 미리 세슈칸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파티 플레이를 위해서 미리 발견한 퀘스트 지점으로 제냐를 인도했었다.

숲에서 실종된 애완동물을 찾는 사연이었는데, 키우는 짐승을 위해 목숨을 걸고 몬스터가 있는 숲에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모험가들한테 부탁을 해볼 수는 있었다.


세슈칸의 외곽 거리에 사는 어느 평범한 가정 집의 소년이 사연의 대상자였고, 부탁을 해온 것은 그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였다.

산책을 하다 목줄을 놓치고 한 눈을 판 사이 작은 강아지가 숲 쪽으로 사라져버렸고, 이후 숲 근처를 헤맸으나 발견할 수가 없었다.

며칠이 지나는 동안 어린 아들은 계속해서 울며 슬퍼하고 있고 마음이 상해 제대로 된 생활이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다며 포기하라고 하던 찰나에 근처 여관에 묵던 마음씨 좋은 모험가이자 용병이 어차피 가는 길이니 수색을 도와주겠다고 한다, 라는 게 퀘스트의 흐름이었다.

그 마음씨 좋은 용병이 바로 개멋진나 최였고 말이다.


퀘스트 레벨은 ‘마을급’에 ‘희귀’였다. 도시 내부로 그 영향력이 제한되고 고작 마을 정도 안에서 벌어지는 사연이다보니 당연한 규모였다. 희귀도가 일반에서 올라간 것은 아마 개멋진나 최가 했던 행동들 때문일지 모른다.


그는 게임을 즐기고 있었고, 자신의 마음에 따라 행동했다. 고작 강아지를 찾는 일에 대단한 보수를 요구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물질적인 사례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비교적 간단한 일임에도 파티원을 만들어 둘이 움직이고 있다는 점도 보통의 선택과는 다른 면일지 몰랐다.

어쨌든, 그가 애완동물을 잃어버린 소년과 했던 대화와 교감이나 뭐 다양한 미시적 선택지들 때문에 조정이 되었을지 몰랐다.


보통 이런 종류의 사연들은 마을급에 일반인 경우가 많았다. 그다지 대단한 시나리오로 연결이 되지도 않고, 단발적이다.


이와 비슷한 형식의 퀘스트들은 세슈칸 외곽 지역에 사는 수많은 가정집에서 다양하고 또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으나, 나름의 애정을 쏟는 물건 혹은 애완동물 따위를 비기너 존이라 할 수 있는 숲에서 잃어버리고 그것을 찾지 못하는 이야기들.


대개는 엮여 있는 몬스터 무리가 있어서 그것들을 사냥하면 그 위치에서 발견이 되곤 한다. 언제나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만은 않지만, 어쨌든 그렇게 마무리가 된다.


애완동물이라면 아마 잃어버리고 난 뒤의 시점에 따라서 결말이 갈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한 달이 지난 시점에 퀘스트를 받았다면 보통은 몬스터들 부락에서 잡아먹힌 상태로 발견이 된다.

그 이내라면 아직까지 살아있는 채로 찾는 경우가 많았고.


퀘스트의 목표물로 설정된 몹들이 뜨고, 그 대략적인 위치 역시 인터페이스 창에서 설명을 해준다. 지도 상에 상세하게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수색해야 하는 구역과 범위 정도는 알려준다.


보통 하루 혹은 반나절 정도에 끝나는 퀘스트였고, 그렇게 잡은 몬스터나 그 부락은 사라지고 그 위치에서는 다시 리젠되는 경우가 없었다.


거대한 초대륙.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다양한 맵 중에서 또 이 넓은 원시림.

그 안에서 다양한 몬스터와 짐승 몹들이 다양한 퀘스트에 얽혀서 위치가 바뀌어가며 리젠된다.


[갈색먼지 숲 남부 1섹터에서 갈색 오크 부락을 없애시오. 갈색 오크 부락 구조물 0/10, 갈색 오크 0/27]


제냐나 개멋진나 최가 퀘스트 창을 띄워 바라보면 이런 문구가 적혀 있는 반투명한 푸른 창을 시야 한구석에서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세슈칸 근처, 갈색먼지 숲의 남쪽 부근이다. 세슈칸이 숲에서 벗어나 동북쪽으로 올라가면 있었고, 도시에서 남쪽으로 주욱 내려와 숲의 남쪽 입구로 들어와 헤매는 참이다.

숲에서 도시까지는 말을 타고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몰아서 한, 두 시간 이내에 도착한다. 사람의 달리기로도 비슷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현실에서는 거의 전문 마라토너에 버금가는 속력으로 쉬지 않고 달리는 꼴이었으나 게임 내의 초인적인 육체라면 실용적인 이동 수단이다.


둘은 말을 타고 왔다. ‘개멋진나 최’가 다루고 있는 개인용의 말이었다. 운좋게 테이밍 스킬을 얻어 이동을 할 때 타고 다닌다고 한다. 숲 바깥에 표식을 걸고 묶어 두었다. 개인 사유물로 인정이 되어 NPC주민이나 플레이어가 건드리면 P.K와 같은 적대적 도난 행위로 인식된다.


명예 점수가 깎이며 또 선악 수치라는 게 있어서, 범죄 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 전까지 악업 점수가 높으면 일반적인 NPC들에게 배척당한다.

개멋진나 최는 직접 스킬로 테이밍한 말의 안위나 대략적인 위치를 원거리에서도 알 수 있었고 말이다.


현실감을 강조한 시나리오 온라인에서 범죄의 대가는 제법 무겁다. 물론 그것들을 감당하고도 저지르는 이들도 있었고, 퀘스트를 수행하다보면 가끔 대역죄인의 신분도 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브라운 오크라···.”

“잡아보셨습니까?”


제냐가 혼잣말처럼 지껄이는 이야기에 개멋진나 최가 대답했다. 제냐는 고갤 저었다. 둘은 여전히 입체적인 숲길의 돌부리나 나무뿌리나 나뭇가지니 하는 것들을 밟고 넘으며 이리저리 방향을 꺾는다. 숲길은 사람이 다니도록 정비된 곳이 아니었다. 유저들이나 NPC들이 개간한 곳 역시 있었으나 그들이 가는 곳은 아니다.


그들은 몬스터들이 아직도 서식하는 원시림으로 가는 중이었고, 그 길은 짐승들에 의해 난 샛길들이 있거나 없거나 하는 환경이다.

오크들이 머무르고 있다면 그 큰 몸집을 위해 베어 넘긴 길목들이 있을 것이지만, 그 길목들을 대놓고 지나다닐 생각도 없었다. 오히려 피해서 소형 짐승들이 다니는 길 위주로 걷고 있다.


부락이던 오크 일개 개체이던 먼저 발견을 해서, 기습을 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평화의 숲 근처에는 회색 오크까지밖에 없으니까요. 그놈들도 당시에 제법 튼튼했던 것 같은데. 브라운은 좀 더 크죠? 어느 정도입니까, 체력이.”

“한··· 2,000정도는 HP가 나올 걸요.”

“황야 지룡 보다는 낮네요.”

“애초에 중대형 개체가 아니니까요.”


보통 이족보행형은 소형이나 중소형일 때가 많았다. 오크들 중 플레이어들이 자주 볼 수 있는 가장 큰 종류인 붉은 오크가 중소형이다. 사람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큰 정도까지는 ‘소형’으로 취급되었다.

숲노루도 마찬가지다. 덩치가 큰 늑대라면 중소형이었고, 곰 정도는 되어야 본격적인 중형 몬스터들이다. 황야 지룡은 개체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지만 보통 중에서 중대형이다. 크기는 극소, 소, 중소, 중, 중대, 대, 거대형으로 나뉜다.


일반적인 상식에서 ‘괴물’로 분류되는 몸집들은 중형일 때가 많았다.


‘대형’부터는 몬스터 자체의 희귀도도 있으므로 조금 발품을 팔고 고생을 해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파티를 맺고 잡기 시작하는 몬스터들이다. ‘대’라고 한다면, 그건 생물중에서 가장 거대한 것들을 떠올리면 편했다. 코끼리, 기린, 혹은 고래. 크기 분류에서 가장 광범위한 종류는 ‘극소’와 ‘거대’였다.

다양한 몬스터들 중 입자형으로 만들어진 환상종이 있었고, 또 거대형은 그 크기에 제약이 별로 없었다.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생물부터 시작해서, 그 이상이 모두 거대형이다.


‘체력’이라는 것은 어느정도 현실적인 체격에 기인하는 것이었으므로, 그 몸의 살집과 피가 많은 몹들은 체력 역시 높았다.

공격력이나 방어력 등 다양한 특수 조건들이 보잘것 없다고 하더라도 사냥하기에 극악한 난이도를 자랑하는 체력의 괴물들이 많이 있었다.

고수들 역시 그런 체력을 빨리 깎아내기 위해서 중대형 이상부터 파티 플레이를 추구하는 편이었다.


황야 지룡의 HP는 중에서 중대형인만큼, 그 체격에 대한 보정을 받고 있었고 일반적으로 5,000이상에서 심한 것들은 10,000근처까지 가기도 한다.

제냐의 체력이 초기에 1,000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차이였다. 거대한 체적과 체격을 가진 개체들은 그만큼 물리 보정이 붙어서 쉽게 닳지도 않는다. 거대한 규모를 깎아내려면 잔타로는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어 있었고, 거대한 충격량을 한 번에 주는 것이 더 나았다.


특별히 보호 능력을 스텟으로 가지고 있지 않은 개체라 할지라도 거대하다면 일반적인 물리 방어 능력이 보정으로 붙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룡의 발톱 대거’를 가지고 황야 지룡의 체력을 동낸 일이 참 지독한 짓거리로 분류되는 것이다. 한 군데를 계속해서 파낸다거나, 정확한 일격으로 약점을 공략한다거나 하지 않으면 정말 영영 끝나지 않을 수 있는 일인데.

어지간한 집중력과 근성이 없으면 잘 해낼 수 없었다.


지금 제냐의 HP는 4,251이었다. 브라운 오크보다도 훨씬 높다. 플레이어는 플레이를 지속할 수록 점점 더 다양한 칭호와 스킬들을 쌓아가기에 비슷한 수준이라 보이는 몬스터들보다 훨씬 강해지게 마련이다.

그것도 일정선이 있어서 어느 정도를 넘으면 갑자기 몬스터들의 강력함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는 하지만. 그건 아직 제냐나 개멋진나 최가 신경쓸 부분은 아니었다. 적어도 레벨이 세 자리수 근처는 가야 일어날 일일 테니까.


또, 소형과 대형의 전투에 있어서 유불리한 점은 따로 있기도 했다. 크리티컬 히트가 존재하는 게임 내의 판정에서, 아무리 막강한 체력을 가졌다고 해도 머리에 심각한 손상을 입으면 방어력이나 체력의 보정과 관계 없이 막대한 피해를 받는다. 같은 에너지도 일점 집중을 통해서 급소를 뚫어낼 수 있다면, 그 급소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중대형의 몸집을 가진 경우엔 박투전에 유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보통 소형 개체인 인류 외형의 플레이어들은 갈수록 기동력을 추구하게 된다. 데미지 딜링을 위해 육성하는 쪽이라면 범위 공격을 준비하게 되고.


어디까지나 전투를 필수로 상정하고 캐릭터를 육성해나가는 플레이어들의 이야기였다.


MP(Mental Point)의 경우에는 그보다 훨씬 낮았다. 2,221.


그리고 파이어 볼 등 초상스킬을 다루는 MP지배력, 의지력도 전에 비해 늘었다. 이전에 황야 지룡을 잡을 때보다 1.5배는 더 강력한 화염구를 만들어서 쏠 수 있었다. 3, 4발을 연속으로 사용한다면 MP고갈로 탈진 증세가 오겠지만.

푸른 물약을 섭취하면서 원거리 전투를 지속한다면 충분히 강력한 전법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초상 스킬을 상황에 맞춰서 번갈아 쓰는 전문술사들에 비하면 모자라지만 그 역시 술사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리 계열의 공격에 강한 내성을 갖고 있다면 결국 초상 스킬로 딜링Dealing(거래, 교환을 의미하나 온라인 게임 따위에서는 공격을 가해 상대의 HP수치를 떨어뜨리는 행위를 뜻한다)을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한 수단을 몇 종은 가지고 있어야 솔로 플레이라는 것이 정말로 성립이 될 테고.


“오.”


개멋진나 최, 곧 최태현이 말했다. 그는 등에 지고 있는 광택이 나는 갈색 활의 몸체를 가볍게 말아 쥐었다. 사선으로 빗겨 매고 있었는데 그 포즈가 자연스러웠다. 오른쪽 어깨에는 화살통이 들려 있다. 제법 무거운지 부지런히 걷고 있는 와중에도 많이 흔들리지도 않는 화살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제냐가 사용하는 철목시보다 한 단계 높은 종류였다. 철시鐵矢였고,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 내에 존재하는 특수한 금속성 소재를 이용해 몸체를 만들고 손가락만한 길이의 깊은 화살촉을 끝에 매단 물건이다.


몸체는 철 종류로 이루어져 있으나 마치 현실의 알루미늄처럼 가벼운 물건이었고 그 속이 비어있었다. 특수한 공법으로 만들어내는 철시는 대도시에서도 취급하는 상점이 한정되어 있다. 본격적으로 궁사로서의 길을 가는 이들이 찾는 상점이고, 플레이 루트의 일종이었다.


물론 화살통에 든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최태현 역시 인벤토리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열면 화살통을 가득 채울만한 화살들이로 반절이 채워져 있었다. 그의 가장 흔하고 효과적인 공격 수단이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몇 종의 스킬을 추가해 날리는 그의 철시들은 강력한 공격이다. 그레이 오크보다 한 단계 위인 브라운 오크의 거죽을 뚫어낼만큼 말이다.


그가 갑자기 다른 포즈를 취하며 입으로 소리를 낸 것은 일종의 알림이었다. 그가 곧이어 말했다. 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제냐 역시 그에 맞추어 속도를 줄였다.


“거의 다 왔는데요. 퀘스트 창에서 인도하는 목적지보다 조금 더 빠르네요. 부락은 아니고, 배회하는 개체들인 모양입니다.”


개멋진나 최는 레인저로서 다양한 수색 스킬들을 갖고 있었다. 제냐의 것보다 조금 더 다양한 종류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고, 레벨 역시 한 두 수 정도는 위였다. 같은 방식의 행동을 꾸준하게 반복한다면 스킬이 먹는 경험치 역시 더 높을 수 밖에 없었다.

제냐는 레인저의 일종이지만 여러가지 클래스가 섞인 아류였고, 개멋진나 최는 오직 물리 계열 공격과 스텟만을 파고 직접적인 레인저 클래스의 기본 가지들이 되는 스킬들을 익힌 정통 레인저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가 먼저 발견한 것이다. 원거리에서 움직이고 있는 세 마리의 브라운 오크들을.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거리였으나 그의 감지망에 걸린다. 미세한 흔적의 변화나,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 냄새, 약간의 소리 따위가 모두 초인적인 레인저의 판단 근거가 되어주었다.

거기에 약간의 정신 에너지, 초상력이 가미된 스킬은 물리적인 근거 외의 초자연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캐치했다.

기감氣感이라는 종류였다. 물리 계열의 스탯들을 찍어 나가는 전투 위주의 플레이어들이 가지는 초능력적인 감지 스킬이었다. 이 역시 같은 계열에 수많은 스킬들이 있었고, 희귀도와 능력에 따라 유저들이 갈라둔 도표가 있었다.


개멋진나 최가 가지고 있는 기감 스킬은 ‘매의 눈’과 ‘들쥐의 눈’이었다. 두 가지 모두 원거리 타격을 위주로 전투를 풀어나가는 레인저에게 필수적인 감지 스킬이었는데, 둘 중 하나만 가지고 있다면 그저 평범한 수색 스킬에 시력 확장의 효과밖에 없었다.

두 가지 스킬을 모두 같은 수준으로 익혀야 발휘되는 히든Hidden 효과가 있었고, 그 효과가 기감 스킬의 일종으로 취급된다.

기감 스킬들은 고급류로, 가장 낮은 것도 희귀였다.


매의 눈과 들쥐의 눈의 복합 효과로 나타나는 기감 효과는 희귀Rare에 속했다. 개멋진나 최는 두 가지 스킬 모두를 3단계로 구사하고 있었고, 그건 확실히 제냐보다 조금 더 앞선 수색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능력이었다.


제냐는 아직 기감 스킬이 없다. 부엉이의 눈이니, 매의 눈이니를 가지고 있었지만 들쥐의 눈은 아직 익히지 못했다. 숨겨진 효과의 최초 발현은 매와 들쥐의 눈이 같은 스킬 레벨을 가지고 있어야 했는데, 그는 이미 매의 눈을 3단계, Not Good으로 익히고 있었기에 효과를 얻으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리는 상황이다.


들쥐의 눈은 정밀 수색이 주가 되는 퀘스트를 받아서 숲이건 산이건 들이건, 몸집이 작고 체고가 낮은 추적 대상을 찾아서 긴 시간 추적의 사투를 벌여야 얻어지는 물건이다.

제냐는 아직 그런 경험을 하진 못했다. 정확히는 했으나 스킬이 요구하는 경험치가 부족했다. 더 많은 행위와 시간이 누적되어야 했다.


“지금 우리 바라보는 방향 그대로 200m 앞입니다. 저쪽은 아직 못알아챘을 거에요. 세 마리입니다. 남서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고요. 저격 위치를 미리 잡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옙.”


개멋진나 최는 그립을 쥔 활을 가볍게 등에서 꺼내며 앞으로 쥐었다. 본격적인 전투의 준비를 위함이었다. 그의 경장에는 여기저기 수납 공간이 되어주는 벨트나 주머니들이 붙어 있었다. 허벅지에는 소검이 있고, 등허리 부근에는 투척용 도끼가 X자를 그리며 엇갈려 매여 있다.


“공격력은 저보다 더 충실하실 것으로 알고 있고. 준비하십쇼. 저희도 남서쪽으로 크게 꺾어서 가다가 다가오는 놈들 사선에서 칩시다.”

“오케이.”


제냐는 시원스레 대답하며 'IV'라고 중얼거렸다. 인벤토리 창을 연다. 애용하고 있는, 여러 번의 수리와 손질을 거치고 손에 익을대로 익은 비스트 슬레이어를 칼집 째 꺼내서 등에 맸다. 철목시의 화살통도 하나를 꺼내 허리에서 왼쪽 엉덩이 부근으로 내려오도록 벨트를 사용해 묶었다.

그는 오른손잡이였지만 아무래도 비스트 슬레이어의 손잡이가 거추장스러우니 왼쪽에 화살통이 메어진다. 여차하고 거리를 벌려 마구 쏘아댈 때는 어차피 화살통을 어디에 기대어 두고 마구잡이로 쏴댈테니 그리 큰 문제는 없었다.


황야 지룡의 발톱 대거도 꺼내서 순식간에 익숙하단 듯 오른쪽 허벅지 홀드에 넣었다. 움직임을 위해서 무게를 최소화하던 것들을 모두 꺼낸다.


발톱 대거는 공격력을 위해서 피스 시의 여러 대장간을 찾아가 날을 갈고 독을 바르고, 제냐로서 거금을 들여 인챈트까지 맡겼던 물건이었다. 투척이나 상대의 급소를 찌르는 용으로 써먹는 비수였지만 이제는 근접전에서 상당히 치명적인 물건이 되었다.

발톱 대거의 칼날은 약간의 고온을 내면서 상대의 가죽에 열상을 입힐 수 있게 되었다. 깊이 찌른 뒤에 기능을 발휘하면 출혈을 막는 효과가 있었지만, 대신 고통은 크게 줄 수 있었다.


플레이어는 통각에 둔하나 몬스터들의 행동 원리는 통각에 예민하다. 플레이어 캐릭터들 역시 유저들은 느끼지 못하지만 강렬한 통각이 느껴질만한 상처가 있다면, 행동이 둔화되는 면이 있었다. 느끼진 못하더라도 작용은 하는 셈이다.

같은 원리로, PVP(플레이어 대 플레이어)싸움에서 같은 수를 쓰더라도 상대가 특별한 대응수가 없다면 움직임이 둔화될 테였다.


두 사내는 조금 더 잰 걸음으로 숲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이래저래 길도 없는 곳이었으나 그렇게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 평화의 숲에서 익혀낸 움직임은 여기에서도 여전히 통용된다.


개멋진나 최가 발견한 오크들의 움직임은 느긋한 산보에 가까웠다. 이 일대는 저 갈색 오크들의 영역이었고, 천적 또한 별로 없었다.

그저 저 짐승들의 영역을 재확인하기 위해 일상적인 경계를 서는 것이다. 갈색 오크들은 그다지 긴장하거나 경계심을 보이지는 않고 있었다.


개멋진나 최가 알 수 있는 건 오크들의 크기를 비롯해 대략적인 외관과 위치, 그리고 움직임 정도였다. 그것만으로도 대강의 중요 정보들을 추리해내는 건 플레이어 개인의 자질이다.

오크들은 2m가 넘는 거구들이었고, 대충 철갑옷 조각들을 걸쳐 입고 있었다. 무기처럼 보이는 거대한 철검과 철퇴 따위를 이곳저곳에 매어 두었는데, 손에 들고 있지 않고 저들끼리 특별한 커뮤니케이션을 하지도 않았다.


거구의 이족보행 몬스터가 몸집과 다리에 비해 지나치게 천천히 걸으며 움직이는 그 이동 속도나 오크의 포즈 따위를 보고 개멋진나 최는 상대의 빈틈을 확실하게 찌를 수 있겠다고 느끼고 있었다.


최태현과 제냐 킴은 거슬리는 나무 뿌리나 나뭇가지 따위에 한 번도 걸리지 않고 재빠르게 움직였다. 각기 순발력이 높은 직군들이라 그렇다. 다양한 스킬 중에는 ‘숲 보행’ 또한 있다. 레인저 직군의 필수 기본 스킬 중 하나였다.


반쯤은 뛰듯이, 빠른 템포로 둘은 쑥쑥 나아간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서 오크들의 이동 경로를 예상해 그 앞쪽 적당한 자리에 멈춰섰다.


“흠.”

“여전히 200미터 앞입니다.”


오크들은 부지런하게 걸었지만 그들이 더 빠르게 걸었다. 최태현의 말을 흘려 들으며 제냐는 적당한 나무를 찾았다. 저격 위치를 생각하는 중이었다. 제냐가 입을 열었다.


“각자 알아서 쏘는거죠? 저는 나무 위가 좋을 것 같네요.”

“오. 입체적인데요.”


섣불리 나무 위에 오르는 건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적절한 이동 스킬이 있다면 괜찮지만. 숲 보행을 뛰어넘어서, 입체적으로 날듯이 뛰어 다니며 상대의 공격을 피할 수 있을 때에 의미가 있는 행위였다.

나뭇가지 위에 간신히 몸을 기대고 있다가 위치가 들통난다면 꼼짝없이 포위당해 상대의 투척 공격 따위를 맞을 수 있었다. 제냐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황야 지룡을 비롯해서, 피스 시 근처에서 혼자 사냥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게릴라전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가 추구하는 전투 방식 역시 그런 식이기도 했고. 혼자서 더 강한 적이나 많은 적을 상대하려면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한다.

시간을 벌고 또 여러 번의 공격을 가하고. 계속되는 체력전으로 운동량을 채워야만 본인보다 강력한 적을 넘어뜨릴 수 있는 법이었다.


개멋진나 최는 적당한 수풀 속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쪼그려 앉으면 완전하게 성인 남성이 숨을 수 있을만한 오브젝트가 마침 있었다. ‘은신’ 계열의 스킬과 함께 한다면 기척을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

동물적인, 생물적인 움직임과 호흡을 최대한 죽이고 주변의 정물들과 하나가 되는 과정이었다. 아주 미약하고 가느다랗게 숨을 쉬며 필수적인 움직임마저 바람에 따른 풀잎의 흔들림 사이에 묻어버린다.


비련의 시나리오의 세계관 내에서 생물체들이 갖고 있는 ‘기氣’, 곧 초상력이 있었는데, 어느정도 그것을 조작하는 계열이기도 했다.

연기의 일종이기도 하고 말이다.


분명 수풀 속에 몸을 파묻는 것을 보았지만 제냐의 눈에도 그가 보이지 않았다. 제냐는 그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적당한 나무 하나를 골라 발을 얹었다.


‘나무타기’ 스킬은 보유하고 있었다. 적당한 곳에 가지 하나가 있었다. 잡을 곳이 없었다면 로프를 이용하거나, 혹은 상처를 내서 패인 자국을 딛고 올라가려 했는데 다행이었다.


“흡.”


제냐는 짧게 숨을 끊어 쉬며 점프했고, 2m보다 조금 더 위에 있는 나뭇가지를 쉽게 낚아채듯 말아 잡으며 위로 뛴 힘에 끌어올리는 완력을 더하며 몸을 띄웠다. 나무 둥치를 한 번 밟으면서 안정감을 더했고, 제법 굵은 나뭇가지와 나무 몸통 사이의 교차 지점에 발을 대각으로 밟으며 한 번 더 뛰었다.


곧바로 그 위에 있는 나뭇가지였다. 이제는 잡을 곳들이 많아지고 선택지가 풍부해졌다. 나뭇잎과 가지들 역시 풍성하다. 한 번, 두 번을 더 뛰자 도저히 아래에서는 닿기 힘든 지점까지 올라왔다.

순식간에 수m는 되는 준수한 크기의 나무의 위까지 다다랐다. 꼭대기는 아니었고, 적당히 굵은 나뭇가지들이 모여 있어 안정적인 자세로 저격을 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피라미드형으로 자라난 잎사귀와 나뭇가지들의 상단부 쪽 3분의 2지점 정도였다.


위로 올라오자 바람이 조금 더 부는 것 같았다. 나무가 막고 있던 하늘과 햇살 역시 아주 잘 보인다. 나뭇잎에 가려서 시야는 조금 더 제한이 되었지만,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오크가 오는 지점은 들어서 대강 안다. 방향과 거리 말이다.


‘매의 눈’을 발동했다. 자세를 잡고 사냥꾼의 감각을 비롯해 다양한 스킬 보정들이 걸렸다. 어떤 행위를 발휘할 때 자동으로 능력이 추가되는 패시브 계열을 많이 쌓아두고, 그 행위들을 위주로 플레이를 풀어나가는 것이 결국 가장 빠르다.


일종의 퍼즐과도 비슷한 것이었다. 스킬 스택Stack을 쌓아서 자신만의 전투법을 확립하는 것. 발견된 시나리오 온라인 내의 스킬들은 그 가짓수가 무궁무진해보이지만 어느 정도 계통도를 그려낼 수 있을 만큼은 파악이 되어 있다.

넓게 뭉뚱그려서 비슷한 효과를 내는 스킬들의 발동 자세들이 있었고, 한 가지 움직임으로 여러 가지의 효과를 동시에 받을 수 있는 일종의 콤보Combo(Combination, 정해진 여러 동작을 순서에 맞춰 수행하면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게임 상의 조작법, 시나리오 온라인에서는 한 가지 자세로 여러 효과를 받을 수 있는 교집합을 의미하기도 함)를 생각하면 행동의 선택지는 조금 더 일률적으로 바뀐다.


상대의 행동 패턴을 빠르게 파악하고, 그에 맞추어 자신의 전략을 수립하는 행위가 필요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에서, 고수로서 플레이어와 전투를 한다면 말이다.

단순히 플레이어만이 아니라, NPC들도 인류에 속하는 자들과 싸운다면 비슷한 전법이 유효했다. 게임 내의 시스템들은 어차피 NPC와 유저들이 공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공략법 따위를 알고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유저들과 달리 NPC 주민들에겐 인터페이스가 없다.

그 인공지능들은 자신들이 어떤 스킬을 보유했는지 일람을 알 수도 없고 자신의 스텟 윈도우 역시 열어서 본인의 능력을 확인할 수 없었다.


오픈 북 테스트를 하면서 전문적으로 시스템 내에서 육성이 가능한 유저들과는 분명한 차이였다.


그러나,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은 기본적으로 ‘현실적’을 추구하고 있었다. 다양한 행동들이 굳이 공략법을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떤 ‘장인’으로서의 길을 가는 유저가 있다면 그에게 많은 보정들이 추가될 확률이 높았다.

어떤 장인이 하나의 행동을 위해서 무수한 반복을 하고 여러가지 진리의 편린들을 깨닫고 지혜를 얻어가며 동작을 수정해나가는 그 과정이야말로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스킬 획득의 시스템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롯하게 한 분야에 몰입해서 ‘마스터’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가 된 NPC가 있다면 스텟 창이니 여러 인터페이스니 하는 것들이 다 무색해질만큼의 강력함을 얻을 수 있었다.

실제로, 게임 내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전투력의 보유자들은 일단은 전부 NPC들이었다. 선두를 달리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인간같지 않은 힘들을 이미 보일 수 있었으나 그조차 아래로 두는 이들이다.


물론 세계관 내에서 그런 강자들이 흔하지는 않다. 콘란드 대륙에서도 손에 꼽는 자들이었고, 사회적 서열을 따진다면 하나같이 수위에 드는 인간들이었으니. 그런 자들이 많다면 그것 또한 말이 안되는 일이리라.


한 가지 행위를 날카롭게 가다듬어 누가 최고의 집중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 비련의 시나리오가 추구하는 스타일은 그런 것이었다.

공략법을 가지고도 더 치열하게 전투력에 관한 육성법을 해낼 수 있겠지만은. 결국 보고 따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정신과 감각에 호응하는 게임이었으므로, 이 게임의 최고를 가리는 지점에서 한 걸음 차이는 결국 그것이었다. 정신적인 집중력. 그건 뇌의 일이었으나, 뇌도 장기 중 하나였으므로 지극히 신체와도 연관이 깊은 일이기도 하다.


제냐는 빠르게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콤보들을 연이어 사용했다. 그건 그가 말했듯 여러 이상한 행위들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쌓아올린 것이었으므로, 또 각 행위들이 목적을 위해 정돈되듯 호응하듯 매끄러운 움직임이었다.


여러 가지 스킬을 켰고, 먼 거리에 있는 오크의 위치를 추적했으며, 게임 내의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오크의 위치가 걸렸다.

수풀, 나뭇가지 따위가 일렁거리며 천장을 덮고 있었지만 그 틈바구니 사이로 오크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건 명확한 추측이었다. 여러가지 정보들이 게임 내의 제냐의 뇌로 처리되면서 그 확실한 정보를 인터페이스의 형태로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마치 야투경 따위로 열을 감지하고 어둠을 꿰뚫어 보듯 수풀 너머의 인형의 괴물들이 움직이는 게 붉은 색으로 나무를 넘어 가시화되었다. 스킬로 이루어진 눈으로 그것이 보였다.


걷는 것들의 무게와 태도, 그 성정 따위까지 파악하면서 제냐 역시 자세를 잡는다. 화살을 쏘아낼 자세였다. 가장 먼 거리에 빠르고 정확하게 꿰뚫는 초격初擊으로는 역시 활이 가장 알맞았다.


탄탄한 복합궁의 활대가 그의 손아귀에 한가득 들어왔다.


장궁의 한 종류였는데, 그새 무기 강화 과정을 한 차례 더 마쳐서 하위 복합궁4가 되었다. 이전에는 그저 나무의 색깔이었다면 약간 붉은 빛으로 윤기가 도는 광택이 겉에 있었다. 단순히 외형의 차이였으나 무기가 품고 있는 기운과 성능에도 변화가 있었다.


아이템으로서의 등급은 8등급이었다. 그리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등급은 희귀도를 나타내므로 반드시 성능을 곧이 대변하지는 않지만, 희귀도로 따져도 초보자의 손에 들리기에는 충분했다.


붉은 장궁 위에 그가 애용하는 철목시가 걸렸다. 검은 화살과 그 끝의 은빛의 촉이 있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삼각형의 촉이다. 예리하며, 꼬리 쪽으로 오면 두께감이 있게 조형되어 둔탁한 맛이 있었다.

제냐가 주로 느끼는 건 아니었다. 이 화살이 쑤셔박힐 몬스터들이 주로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멀리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공감각이라고 할까, 일종의 상상력은 그런 손맛을 가늠하게 해주었다.


제냐는 나무가지 사이에 약간은 비스듬하게 서 있었다. 땅 위에서 저격을 할 때만큼 안정적인 자세를 찾는 건 지나친 욕심이었다. 등은 나무의 몸통에 기댔고, 발은 나뭇가지들이 얽혀있는 단단한 부분에 대었다. 나무 몸통과 가깝고 가장 두꺼운 부분이다.


두 발을 슬쩍 벌려 높낮이가 다르게 밟았고, 안정적인 자세를 찾은 뒤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장궁을 쏘아낼 공간을 확보한다.

허리가 약간은 구부정한, 기형적인 자세였지만 상관 없다. 제냐는 활의 명수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실력을 갖고 현실에 나간다면 분명히 그렇게 불릴 것이다. 정말 선수급들, 명인들과 견준다면 어쩔 지는 모르겠으나 일반인이나 아마추어의 수준은 한참 넘은 것이 분명했다.


하늘이 밝다. 제냐는 나뭇잎들 사이에 제 몸을 가리고 있었지만 쏟아지는 햇살이 기어코 그 틈바구니로 기어 내려와 그의 볼을 간지럽혔다.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푸른 또 화창한 햇살 아래서 저격을 준비하는 일이라.

참으로 신나는 일이었다. 게임이었고, 또 할만한 사냥이었으니.


비련의 시나리오는 현실감을 일깨우는 제법 괜찮은 여가 생활이었다. 아직까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제냐는 철목시의 끝을 시위에 걸고 그대로 몸통 안쪽과 또 바깥쪽, 등의 모든 근육을 사용해 상체를 활짝 열었다.

그대로 한 팔만으로 시위가 끝까지 당겨진다. 장궁이자 복합궁인 이것은 괴물같은 활이었고, 현실의 어떤 인간도 제대로 다루지 못할 물건이었다. 제냐보다 몇 배는 큰 체적을 지닌 거대한 장사가 온다면 혹시 모를까.

어쨌든 제냐는 그것을 숨을 들이마시며 한꺼번에 당겼고, 철목시의 촉이 활대의 조준간에 딱 붙는다. 제냐는 한쪽 눈을 찡그렸다.


나머지 눈이 보고 있다. 여러가지 시야에 관련된 패시브 스킬들, 매의 눈이니 사냥꾼의 감각이니 궁술 스킬 그 자체까지 해서 그를 돕고 있었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 그의 손끝을 떠민다. 그건 기이한 기분이었다. 그가 조종하고 있는 스스로의 육신이었으나, 스킬 보정에 의해서 ‘스킬’이 파악하는 그 위치로의 명중을 위해서 자세가 바뀌는 것이다.


제냐는 숨을 내쉬지 않았다. 들이마신 숨이 약간은 차오르기 시작했을 때, 조준이 정확하게 맞아 들어갔다.


화살촉의 첨단이 여러가지 가상의 궤도를 그리다가, 걸어오고 있는 갈색 오크 하나의 목을 노렸다.

신체에서 가느다란 부위인 목은 이런 장거리에, 엄폐물이 많은 데에서 노리기 알맞지 않은 부위였다. 그러나 그냥 강행한다. 그가 쏘는 화살은 이미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SP가 약간 소모되는 기분이다. 강력한 물리력 이외에도 그의 화살에 초상력이 깃들었다. 구체화되지 않은 화염이었다. 아직 불꽃으로 타오르지 않으나, 화살의 주위에 일렁거리는 기운이 희뿌옇게 모였다. 그건 화살에 머무는 것이었다. 그대로 화살의 여행에 동참해, 목표물에 맞는 순간 파이어볼이 터지는 원리와 같이 상대의 신체에 손상을 더할 것이다.


큰 폭발은 아니었지만, 정확한 부위에 맞는다면 치명상을 그대로 즉사할 것으로 바꾸는 정도는 충분히 되었다.

그리고 이런 SP의 운행은 화살 그 자체의 궤적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소한 바람이나 장애물 따위를 그대로 뚫고 포물선 너머의 목표를 맞추도록 돕는 일이다.


화살에 일일이 SP를 소모해 강력한 힘을 부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확한 스킬이 아직 생기지는 않았다.

아마 이런 게 가능한 걸 보면, 게임 내에서 분명 활용하는 기술이며 스킬 또한 가짓수가 많을 법한데. 경험치를 채 다 채우지 못한 모양이다.


어쨌건 제냐는 원거리에서 일단 그가 가능한 가장 훌륭한 초수를 잡았고,


그대로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순간 쏘았다.


***

annie-spratt-3qbBwA8QCEY-unsplash.jpg


작가의말

작가의 말!


음.


주말이군요. 

어떻게들 일주일을 잘 치러내셨습니까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29. 돌아가는 23.07.13 37 4 26쪽
29 28. 여기 있습니다. 23.07.13 38 4 27쪽
28 27. 악수 +2 23.07.10 37 4 39쪽
27 26. 솜씨 확인 23.07.09 37 4 33쪽
26 25. 퀘스트 진행 23.07.09 37 4 36쪽
25 24. 메리골드 23.07.07 38 4 28쪽
24 23. 로멜리아Romellia 23.07.05 35 4 44쪽
23 22. 세슈칸에서. 23.07.05 37 4 31쪽
22 21. 불타는 부락 23.07.03 35 4 41쪽
21 20. 불타는 숲 23.06.12 40 4 24쪽
20 19. 보법 23.06.10 42 4 23쪽
19 18. 범영웅凡英雄 23.06.10 42 4 31쪽
18 17. '취륵'은 그렇게 죽었다. 23.06.09 47 4 62쪽
17 16. 파티 플레이 23.05.29 42 4 43쪽
» 15. 멧돼지 사냥 23.05.28 52 4 34쪽
15 14. 멧돼지 23.05.26 55 4 33쪽
14 13. 마라톤Marathon +4 23.05.22 61 5 38쪽
13 12. 세슈칸Seshukan 가는 길 +2 23.05.04 65 5 29쪽
12 11. 도서관 제육 23.05.03 58 5 25쪽
11 10. 황야 지룡 23.04.30 62 5 44쪽
10 9. 붉은 날개 23.04.29 77 5 31쪽
9 8. 흰줄무늬 검은 고양이 코미어 23.04.29 87 5 29쪽
8 7. 물약 상점의 필리Philly 씨 23.04.27 96 6 30쪽
7 6. 오크Ork 사냥 23.04.16 106 6 27쪽
6 5. 이성적 파이어볼 +2 23.04.15 148 6 33쪽
5 4. 긴장성 파이어볼 +2 23.04.12 157 6 22쪽
4 3. 로그 오프Log off 23.04.12 186 7 15쪽
3 2. 개멋진나 최 23.03.12 248 7 31쪽
2 1. 파란 귀 토끼 23.03.11 452 9 30쪽
1 0. Prologue. +1 23.03.11 517 10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