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7.03 03:25
연재수 :
359 회
조회수 :
9,382
추천수 :
772
글자수 :
3,410,230

작성
23.03.12 05:37
조회
248
추천
7
글자
31쪽

2. 개멋진나 최

DUMMY

2.


고요하다.


숲의 내부는 물론 온갖 잡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번잡스러운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의 호흡을 가다듬어보면 다양한 생물과 자연의 소리가 시종일관 바스락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고요하다는 느낌은, 자신의 것이었다. 호흡을 가라앉히고 주변의 움직임에 자신의 리듬을 맞춘다. 사람이 살아있는 이상 떨림은 없을 수 없었지만, 그 오르내리는 낙차에서 리듬감을 만들어낼 수는 있었다.


그렇게 숨을 멈추고 한참이나 집중을 깊이 하다보면 쓸데 없는 잔떨림이 사라지고, 고요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제냐’는 소형 석궁을 들고 풀숲 어귀, 사람의 허리 근처까지 자란 작은 나무들 사이에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무성하게 또 무분별하게 자라난 활엽수가 그의 모습을 가리운다. 적당한 거목의 나무둥치에 몸을 대고, 앞으로는 시야를 가리는 잎사귀 사이로 숨은 채 목표를 노리고 있었다.


시야가 원만하지 않지만 준비된 사냥 자세에서 조그마한 틈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노리는 건 파란 귀 토끼의 서식지에 같이 나타나는 숲 노루였다. 토끼를 사냥하다가 나타난 큰 목표물의 흔적에 숨을 죽이고, 그대로 근처에 모습을 감춘 채 한참을 기다리고서 잡은 기회였다.


제냐는 현실에서 능숙한 사냥꾼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게임 속 환경은 얼추 비슷한 짓을 해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숲 노루는 감각이 둔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우연의 일치인지 초보자인 제냐의 노림수 안쪽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


흔들리는 잎사귀와 작은 나무의 가지 사이에 빈 공간이 있었다. 그 사이로 노루를 살피며 석궁을 겨누고 조준을 한다. 석궁은 소형이었고, 팔뚝만한 길이의 것으로 그 살 역시 긴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름의 장력이 있고 잘 맞춘다면 사냥의 성공 역시 기대해볼 수 있으리라.


시나리오 온라인 내부에 존재하는 적대적 몬스터들 중에서, 본격적인 괴물 형상의 것들에게는 잘 먹히지 않겠지만 노루 정도라면 노려볼만한 무장이었다.


-컹.


짐승의 성대에서 걸걸한 울음 소리가 나왔다. 노루가 낸 소리였고, 별다른 경계를 하지 않는 듯 풀어진 모습으로 이리저리 고갯짓을 하다 땅에 떨어진 열매인지 무엇인지로 주둥이를 가져다 댄다.


짐승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는 때에 맞추어서,


퉁.


제냐가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을 눌렀고 그대로 화살이 날아갔다.


푹, 하고 충격음과 함께 살이 노루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근접 거리에서 꽂힌 촉이 깊이 박히며 그것의 내장 일부를 상하게 한 모양이다.


-끼이익!


하고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는 노루가 움직이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졌다. 다시금 재차 일어서려 하지만 헛발질을 하며 채 빠르게 회복하지 못했다. 활 솜씨는 없었지만, 어떻게 운이라도 좋게 급소라도 맞춘 모양이다.


야생 동물이란 건 어느 정도 터프함을 지니고 있어서, 상상 속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충격을 주어야 움직임을 멈추게 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IV."


제냐가 빠르게 중얼거렸고, 눈앞에 반투명한 인벤토리 창이 켜졌다. 시야에 걸리는 그것이 실제 존재하는 것인양 손이 간다. 한 손으로는 석궁 시위를 다시 뒤쪽으로 걸고 있는 와중에.


왼 손으로 푸른 창에 올라오는 리스트 중 ‘소형 석궁 화살x19'를 건드리자 양각으로 만들어진 조형물처럼 칸이 부풀어 오른다. 그대로 손가락을 놀리고 물건을 움켜쥐듯 손으로 잡자 허공의 창에서 쑤욱, 하고 화살 하나가 빠져나왔다.


게임의 인터페이스는 상황을 불문하고 언제든 사용할 수 있었고, 인벤토리는 수출납이 자유롭고 빠른 기능이었다. 잘 만들어진 몸 주위의 장구류보다는 다소 둔할 수 있지만, 가벼운 긴장감의 상황에서는 인벤토리를 직접 이용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


손에 들린 화살 하나를 그대로 석궁 몸체, 위쪽에 끼운다. 제대로 살이 들어가고 장전이 다시 되었음을 안 제냐는 수풀에서 일어서며 노루를 겨누었다.


-끼이익, 끼익!


시끄럽게 울음을 울며 노루가 허둥지둥, 자리를 피하려 했다. 낑낑대지만 아직 완전히 죽지는 않았고, 힘이 남아있다. 가속도를 받아 거리를 벌리기 전에 다행히 그가 조준을 마쳤다. 그대로 쏜다.


퉁, 하고 짧은 석궁에서 화살이 발사되었다. 마치 라이플처럼 어깨 근처에 두고 한쪽 눈을 감으며 서서 쏴로 쏴 날린 것이다. 푹, 끼이이! 화살이 한 대 더 박혀 들어갔고, 노루의 앞다리 오른 어깨 근처에 석궁살이 박혔다.


노루가 달리려다가 그대로 균형을 잃고 앞으로 한 번 넘어졌다. 안쓰러움을 느낄 틈은 사냥 중에는 없었고, 그대로 제냐는 석궁을 버려두고 허리춤에 메었던 숏소드를 뽑으며 달려들었다.


”으랴!“


평상시에 기합을 지를 일은 많이 없다.


답잖은 호기를 뽐내며 몸을 박차는데 현실의 몸보다 훨씬 더 탄력적이고 강한 힘을 받으며 몸이 튀어 나갔다. 전투 직종 성향을 선택한 제냐의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운동 체질이었고, 약간의 레벨업과 플레이를 거치며 근지구력과 순발력 따위가 늘었다.


현실의 것이었다면 그대로 발이 꼬여서 넘어질 수도 있지만, 제냐는 능숙한 전사처럼 몇 걸음에 노루의 앞에 닿아 그 기세 그대로 숏소드를 아래로 휘둘렀다. 콱!


묵직한 저항감이 조금 느껴지지만 달려든 힘과 같이 내리 그어진 숏소드의 날이 노루의 긴 목덜미를 뒤에서 사선으로 베었다. 뼈가 조금 걸린 것도 같았는데 그대로 내리 쳐졌고, 그 목이 꺾이며 곧 노루의 시신이 운동성을 잃고 바닥에 내팽개쳐진다.


쓸데없는 현실감으로, 사후의 근육 반응이나 관성 따위가 남아서 다소 움찔거리던 노루 시신의 움직임이 곧 완전히 멎었다.


여전히 피가 베어나와야 할 곳이나 상처 부위는 하얗고 또 푸른 빛의 입자로 가려져 있었고, 제냐가 짐승 해체를 시도하지 않기에 그대로 사라진다.


해체 스킬은 보통 마을 도축장 따위에서 돈을 주고 배워와서 현장에서 써먹는다. 기본적인 수준의 스킬들은 마을의 NPC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었고, 혹은 현장에서 직접 행위를 통해서 얻을 수도 있었다.


아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스킬을 배우지도 않았기에 노루를 두고 해체 행위를 몇 번이나 반복해야 익혀지리라. 현장에서 까다롭게 익히기보단 돈을 주고 배우려는 생각에, 굳이 연습을 하진 않는 것이다.


노루가 사라진 자리에 아이템 박스가 남았다. 꽂혀 있던 화살 역시 노루 시체가 사라지자 덩그러니 땅바닥에 놓여 있다. 제냐는 허리를 굽혀 화살을 줍고 박스를 건드렸다.


소유권자가 어떤 식으로든 건드리면 된다. 손끝이라도 작게 닿아도 되고, 혹은 물건을 직접 던져도 좋다. 공격 역시 건드린 것으로 판정이 되기 때문에 석궁 따위로 조준해서 쏘아도 되었고, 초상 기술로 원거리 타격을 해도 된다.


손끝으로 스치자 박스가 사라졌고, 제냐는 인벤토리 창을 열어 확인한다.


[숲노루 고기 5kg]

[숲노루 왼쪽 뿔]


리스트에 새로운 제목과 작은 사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해체 스킬을 가지고 직접 노루를 분해했다면 이보다 훨씬 많은 양을 제대로 얻을 수 있으리라. 다만 지금은 전리품이 목적이 아니라 사냥과 전투 경험이 주였기에 그냥 넘어간다. 아이템 창에 들어갈 수 있는 목록도 한계가 있었고.


”킁.“


배가 고프다면, 이렇게 짐승을 사냥한 뒤에 나오는 고기로 조리를 해서 먹어도 된다. 과한 양을 섭취하지 않는다면, 심지어 생고기도 식료로 쓸 수 있다. 어쨌거나 게임 내 캐릭터의 건강은 아주 양호였고, 질병에도 거의 걸리지 않는 편이었으니.


그러다가 간혹 ’유해한 기생충이 있음‘이라고 작게 아이템 설명에 적힌 짐승의 생고기를 섭취했다가는 곧바로 캐릭터가 이상 상태에 빠지고 만다. 굳이 세세하게 아이템을 살펴야만 알 수 있는 설명으로, 지독한 장난기가 느껴지고는 하는 불친절함이었다.


토끼는 수십 마리를 잡았고, 노루도 사냥을 했다. 시간은 RT(Real Time)으로 오후 9시 경이었고, 내일 수업을 생각하면 밤을 세는 건 못할 짓이다. 대학에 들어와 동기들은 술판을 벌이며 새벽까지 놀다가 그대로 아침 수업을 가는 경우도 있는 듯하지만, 그는 별다른 이유가 없으면 굳이 힘든 일을 자처하지는 않았다.


게임 시간으로는 한낮. 그는 몇 시간 정도는 더 즐길 생각을 하며, 버려두었던 석궁을 주웠다.


*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숲에서의 사냥은 감각이 예민해지는 경우가 많다. 잡아야 하는 야생동물을 따라가려 집중하다 보니 그렇다. 콧속으로 가득 들어오는 풀내음, 짐승의 잡내 따위 역시 구현하고 있는 점이 놀랍다.


청년은 사냥꾼 행세를 하고 있었다. 기척을 죽인다. 손에는 자그마한 도끼가 들려 있다. 근거리의 적을 처치할 때도 쓸만한 놈이지만, 가볍게 어깨를 돌려 날린다면 근방 십여 미터 정도의 목표물은 전부 쪼개버릴 수 있는 도구였다.


물론 사람을 향해 날리면 안된다··· 지만 이곳은 전근대의 중세 시대 정도의 사회상을 구현하고 있는 게임의 내부였고···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강도의 경우라면 부담없이 던지게 될 지 몰랐다.


게임 내 행위들은 현실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서, 적절히 모자이크 처리가 되는 게 많았다. 몬스터를 비롯해 모든 동물들, 혹은 사람에게 공격하는 행위와 그 피해 상태는 피나 상처가 아닌 빛의 입자로 대신된다.


동물의 신체 내부 역시 구현되지 않고, 그건 플레이어끼리도 마찬가지였다.


비련의 시나리오에서 공격 불가 대상은 없었다. 모든 상호 작용이 거의 오픈되어 있었고, 그러고자 한다면 중임을 맡은 귀족이나 왕족 NPC에게도 행패를 부리는 게 가능했다.

플레이어 간의 공격, PVP행위 역시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가능했다.


시스템적으로 행위를 막는 프로그램은 없었고, 거의 현실이나 마찬가지로 움직이는 물리 엔진 속에서 난전이 벌어지면 동료의 등 뒤를 실수로 노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했다.


자유도를 보장하는 오픈 월드 시뮬레이션이라고 하지만, 게임을 만든 이들이 일관적으로 주도하는 정서상 인격 모독적인 플레이는 패널티가 강했다. 애초에 한 번의 게임 오버가 게임을 즐길 기회를 박탈해버리는 극악한 난이도의 게임이라지만, 게임 내부에서의 패널티 역시 만만찮은 것이다.


예컨데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평화로운 상태의 마을 따위에서 적의가 없는 NPC를 습격하게 된다면, 곧바로 마커Maker가 작동해서 해당하는 캐릭터 위에 뜨게 된다. 비인격적 행위 플레이어라는 표시로, 마주하는 모든 NPC가 그의 행위를 알게 되고 그 때부터 제대로 된 상호 작용이 불가능해진다.


전투력이 있는 캐릭터라면, 곧바로 플레이어를 쫓아 공격하며, 게임 내에 존재하는 법률에 따라 처리된다.


플레이어가 이런 식의 행위를 했을 때는 가장 지독한 벌을 받게 되는데, 곧바로 국가 단위의 흉악범 수감소에 갇혀 감옥 생활 시뮬레이션 게임이 되어버리고 만다. 의도적인 비인격적 플레이라고 판단되었을 때는 풀려날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고, 해당하는 감옥의 건물이 물리적으로 날아가 버리지 않는 이상 게이머는 파괴적인 초상 현상 스킬이 차단당한 채 계속해서 그곳에 있게 된다.


다른 의미로, 게임 오버라고 해도 좋았다.


다만 시나리오 상에서 전쟁이나 전투 상황 등, 다양한 경우에 대인 전투는 발생하고는 한다. 플레이어 간의 전투는 악의적이며 인격을 괴롭힐 의도로 자행하는 플레이어 킬링이 아니고서는 대부분 용인되고, 실수라 하더라도 그대로 게임 오버 처리로 직행되었다.


그러니까, 예컨데 이런 상황이다.


손도끼를 쥐고 있는 청년은 귀를 기울인다. 회색 빛깔의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사내는 마른 체형이었고, 형형하게 빛나는 두 눈동자는 어딘지 현실감 없는 짙은 녹빛이다.


예민하게 소리를 찾는 귀가 움찔거린다.


그는 숨을 죽이고 나무의 뒤에 모습을 숨기고 있다가, 손에 슬쩍 힘을 준다.


하나, 둘, 셋.


별다른 의미는 없는 것 같지만 본인의 리듬감을 찾기 위해서인지 그는 속으로 숫자를 세다가, 그대로 몸을 돌리며 팔을 휘두른다. 손도끼를 날리는 동작은 그가 게임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이 반복한 전투 동작이었고, 짙은 익숙함이 배인 움직임이었다.


단 한 호흡에, 소리가 난 곳을 눈이 좇고 이미 손도끼가 날아간다.


”엇.“


그런데, 숲에서 그가 노렸을 터인 짐승이 생경한 소리를 낸다. 사람의 목소리였다. ’왁‘.


도끼를 날린 청년은 이미 도끼를 날린 뒤에 모습을 확인했다. 토끼는 없었다. 한참 동안 그 외에는 아무도 발견할 수 없었던 숲의 내부에 느닷없이 사람이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공중을 회전하며 날아간 투척용 손도끼는, 자신도 뭐가 날아오는지 모르는 채 반사적으로 팔을 내밀었던 상대방의 팔뚝에 박혀 들어갔다. 콰직, 하는 섬뜩한 소리는 트라우마를 일으키기 충분하다. 과한 현실감을 배제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설정에서 변경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


팔뚝에 도끼가 박힌 상대방은, 평범한 가죽 보호구로 치장한 플레이어처럼 보였다. 검은 머리칼의 동양계 남성,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의 청년.


그는 잠시 말을 잃고 시선을 돌려, 자신의 몸과 합체된 도끼를 보고 곧 반응했다.


“우아악!”


어딘지 한참이나 늦은 반응이었지만 그럴 수 있었다. 치명상으로 분류되며 체력 포인트를 갉아 먹는 공격 판정에 대해서 게임은 통감을 제공하지 않는다. 어딘가 둔한 감각과 함께, 시각 정보로 받아 들일 때 자신의 피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설정에서, 조금 더 예민한 반응으로 수치를 조절해 보지 않고도 체력 포인트의 잔여량을 가늠하는 플레이 역시 가능하다. 상대방의 반응으로 생각하건데, 아주 둔감한 수치로 설정을 해둔 듯하다.


자기 팔에 도끼가 날아와 머무는 모습은 평생 살면서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게임은 그것에 상처나 피를 나타내지 않지만, 곧 그만한 양의 빛의 입자들을 흩뿌리면서 심각성을 표현했다.


“으아악!”


도끼를 날린 쪽의 청년 역시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미안함의 발로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고, 아직 게임 내에서 누군가와 상호 교류를 하는 일이 아주 드물었던 탓이다.


-으아아악!


숲의 한 가운데 두 사내의 비명 소리가 번진다. 둘은 멍청하게 잠시 소리를 내며 게임의 적응을 해나갔다.


*






3.


“···미안하게 됐습니다.”


긴 머리칼을 늘어뜨린 청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짙은 톤의 경갑옷으로 가슴팍이나 관절부 따위 정도만 가리고 있는 가벼운 행색이었는데, 제대로 된 크기의 활을 등에 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순발력 위주로 원거리 데미지 딜링Damage Dealing을 하는 전투 캐릭터인 듯 했다.


비슷한 나이 또래의 두 사내가 함께 숲 어귀 공터에 주저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로 거리를 벌린 채 각자 나무 등치에 기대어 있는 모습이다.


팔뚝에 도끼가 날아와 박혔던 청년, ’제냐‘가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은 아직 익숙치 않지만 그런 일도 있나 보죠. 신경쓰지 마세요.”


제냐가 착용하고 있던 가죽 갑옷보다 날아든 손도끼의 위력이 훨씬 강했는지, 그 위를 파고들어 내부까지 박혀든 것이다. 실제였다면 차마 말 못 할 참상이었겠지만, 게임 내부에서는 피나 상처가 표현되지 않는다.


그저 지속적으로 빛의 입자가 흘러나오며 제냐의 캐릭터가 입은 피해를 표현하고 있을 뿐이었다.


도끼를 맞은 부위 위에는 방어구를 풀고, 상처 부위에 뿌리는 치료약을 발라 덮은 뒤 대강 붕대로 묶어 두었다. 그리고 나서 붉은 색의 체력 포인트 물약을 마시면 처치는 끝난다. 전투 중에 세세한 행위를 할 수는 없었지만, 일반 상황에서는 이렇게 하는 게 정석이었다.


’초상 기술Supernatural Skill'은 현실에서 보여지기 힘든 여러 효과들을 나타내는 것으로, 힐링Healing을 습득한 자라면 영화의 마법처럼 즉각 낫게 할 수도 있었지만 그 외의 캐릭터들은 물리적인 처치가 필요하다.


그럴싸한 내 외상 피해별로 처치 모션이 달랐고, 정확한 순서로 처치를 한다면 더 빠르게 낫고 체력 회복에 도움을 준다.


여타의 게임과 차이가 있는 점은, 체력 포션이랄만한 붉은 물약을 마셔도 체력 포인트가 올라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시간이 지나면 점차 캐릭터는 지속 데미지를 입게 되는데, 그 지속 데미지를 줄이거나 없애줄 뿐이다.


캐릭터는 전투에 들어갈 때, 자신의 총 체력 수치를 단 1회 사용해서 전투가 끝날 때까지 버텨야 하는 것이다.


이는 전투 행위에 대해 소극적이 될 수도 있는 룰이었지만 도리어 더 집중을 하게 되고, 신중하게 게임 플레이에 접근하게 되는 점이기도 했다.


비련의 시나리오의 물리 법칙은 굉장히 뛰어난 편이었고, 방어력으로 나타나는 게임 내의 맷집으로 보정되지 않는 대부분의 피해는 마치 현실처럼 나타났다. 이번처럼 팔뚝에 도끼가 꽂힌다면, 힐링이나 제대로 된 처치로 상처를 낫게 할 때까지는 팔 움직임에 제한이 걸리는 것이다.


물론 방어구나 자체 물리계 스테이터스 증가로 맷집을 키운다면 만화나 영화처럼 맨 몸으로도 창칼을 버텨내는 초인이 될 수도 있기는 했다.


체력 수치는 바닥을 보이기 전에 휴식처를 찾아가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해야만 오르게 되어 있었고, 시간에 따라 오르게 되어 있었다. 물론 게임이니만큼, 즉사 직전의 위협이라고 하더라도 게임 내 시간으로 하루 정도를 푹 쉬면 완치되고는 한다.


알맞은 처치 모션이나 힐링 스킬로 피해를 복구하지 않는다면, 체력 포인트는 오르더라도 해당 부위는 부상 상태로 움직임 제약이 지속될 수도 있었고.


제냐는 도끼를 맞은 쪽의 손을 천천히 쥐었다 펴며 움직임을 확인했다. 조금 불편하지만 아예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곧바로 처치를 한 점도 있었고, 생각보다 전투 캐릭터의 몸은 터프한 편이었다.


아예 사지가 결손될 정도로 날아간다면 ‘고급 스킬’로 분류되는 리제네레이션Regeneration을 받지 않는다면 그대로 쭉 플레이를 해야 했다.


“그래도 움직이긴 하는 군요. HP(체력 포인트Health point)도 심각하게 날아가지는 않았고요. 임무를 마저 할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물약 감사합니다.”


제냐의 말이었다. HP가 10퍼센트 정도 날아가 있었지만, 위험 수준은 아니었다. 50이하로 떨어지면 슬슬 복귀를 생각해야 하는 수준이었으니.


“그, 드릴 게 없어서 죄송하군요. 저도 아직 뉴비Newbie라서······.”


청년은 그렇게 말하면서 인벤토리 창을 열어, 소지품을 조금 꺼내 들었다. 돈을 인벤토리 창에 넣었다가 꺼내면 거래 가치가 없는 가죽 주머니가 생성되며 그 내부에 담겨 나온다. 회색 머리칼의 청년이 얼마 되지 않는 내용물의 주머니를 제냐 쪽으로 슬쩍 던졌다.


절그럭거리며 주머니가 날아온다. 제냐는 멀쩡한 손으로 어렵지 않게 받았다. 게임 내의 캐릭터 신체는 반응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운동 선수들은 전부 이런 시각으로 사는 건가, 싶을 정도의 느낌이었다. 방금도 예고 없는 던지기였고 궤적이었지만 아주 안정적으로 받아내었다.


제냐는 받은 주머니를 열어 보지도 않고 이야기했다.


“뭐, 충분합니다. 고의도 아닌데. 그런데··· 게임은 많이 해보지 않았지만 이 정도 현실감이면 확실히 감정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겠군요. 서로 전투 상황에서의 몰입도가 상당할 것 같은데요.”


청년이 입을 연다.


“그렇···죠? 아무래도. 지나친 노매너 플레이는 운영진 측에서 제제가 강력한 편이라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패널티를 감수하고 저지른다면 아마 속이 뒤틀릴 수도 있겠죠, 플레이어끼리.”

“거 참 위험하군요.”


그 말을 끝으로 제냐는 입을 닫았다. 회색빛 머리칼을 장발로 늘어뜨린 청년은 제법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사내답게 생긴 미남이었는데, 얼추 그 치렁치렁한 머리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청년은 민망하게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다가 굳이 다시 말을 걸었다.


“제 이름은 최태현입니다. 그 쪽은 동양계이신거죠?”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 Story of Tragedy에서 모든 언어는 통일된다. 다국적으로 서비스되는 전 세계적 인기 게임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로그인Log-in을 하게 마련이었고, 그건 수십에서 많게는 백여개가 넘는 국가의 다인종들이 참여한다는 뜻이었다.

그 많은 인구를 하나의 채널로 운영하는 방대한 규모의 MMORPG게임이 비련의 시나리오였고, 게임 내에서는 자체적인 번역 기능으로 ‘대륙어’로 표현되는 단일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게 된다.


대륙어는 사용자마다 각 국에 맞는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게 되어 있다.


세계화가 진행이 된 지도 1세기가 가깝게 흘러간 시간. 이전에도 그러했듯 인종이 꼭 국적과 일치하는 건 아니었으므로 최태현의 물음은 어느 나라에서 접속을 했느냐는 말이었다.


“예, 동양계이고··· 동양인이죠. 한국인입니다.”


21세기 종반을 바라보는 지점. 한국은 하나의 나라를 의미했다.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던 오랜 휴전이 끊어졌고, 남북한은 통일에 이르렀다. 물론 북한이 아닌 남한 주도의 통일이었고, 사멸되어가던 공산주의 사상은 기이하게 변질되어 독재자들을 만들어내고 세계에 폭력을 낳았지만 그 목숨이 오래가지 못하고 끊어지게 된다.


남한을 중심으로 자유주의 국가들의 협력이 공고해지고, 서방 세력의 힘과 영향력이 비대해지면서 자연스레 북한은 상대적 덩치가 점점 더 작아졌고, 종래에 이르러 남한군은 북한의 대지에 무혈 입성을 하게 된다.


장벽처럼 나누어졌던 경계가 무너지고, 독재 정권이 사멸하고, 발악을 하던 마지막 독재자가 집권층의 분란으로 유혈 정쟁이 일어나서 그 다툼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남은 고위층들이 사법부의 판례에 따라 형량을 받았고, 북한을 구실 삼아 사상과 영토 전쟁에 아귀를 벌리던 공산주의 대국들의 기세 역시 다소 잠잠해졌다.


한국이 안정되자 발전은 탄력을 받았고, 북한 지역은 남한에 비해 한참이나 개발이 늦어져 지금까지도 어딘가 이질감이 있는 지역으로 남아 있었지만 편안하게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국토가 된 것이 한참 전의 일이다.


제냐 킴, 은 게임 내의 아이디였으나 그 성은 본명의 것을 따른다. 시나리오 온라인의 통일된 작명법의 일환이었다. 아이디를 생성할 때 실제 주민 아이디 기록에 따라 본명의 성이 들어가고, 이름란을 자유롭게 적는 식이었다.


완전한 익명을 방지하는 의미도 있었다. 성만으로 게임 내에서 타인의 실제 이력을 추적하는 건 어렵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실제 정보를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약간의 부담감을 갖게 된다.


아무튼 제냐는 스스로의 이름을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대학생이었고, 피곤한 일상 가운데 여가 시간으로 이것을 하고 있었다.


“제냐, 킴입니다. 그쪽도 한국 분이신가 보네요.”


평화의 숲 옆 도시는 동양계가 많았고, 개중에서 한국인이 많이 선택하는 스타팅 포인트였다. 세계인들이 함께 즐기고 있었고 언어의 장벽이 없다지만 그럼에도 비슷한 가치관과 문화를 공유하는 국민들은 뭉치기 쉬운 편이다.


초기 유저들 중 한국인들이 많이 골라서 두각을 나타낸 포인트였고, 이후로도 많은 이들이 따라 출발하며 알음알음 돕고 플레이를 하거나 하는 식이다. 그런 식으로 나라 별로 게임 밖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만남의 장처럼 특정적인 장소들이 게임 내에 여럿 있었다.


제냐의 말에 최태현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본명을 이야기했고, 제냐는 아무리 봐도 게임 아이디로 들리는 것을 이야기한 탓이다. 온라인 상에서 대뜸 본명을 말하는 것이 애초에 유별난 행동일 지 모른다.


“아이디는 개멋진나 최 입니다. 부르기가 좀 어렵죠?”


세계적으로 성을 뒤에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보통 게임 내 아이디 역시 본명의 성이 뒤로 간다. 그런데··· 실제와 약간의 유사성이 있는 얼굴을 서로 마주하고, 마치 현실처럼 대화를 나누는 고성능 시뮬레이터 내부에서 저런 괴랄한 아이디를 만드는 사람은 분명 소수이리라.

최태현이 자신의 아이디 대신 본명으로 이야기를 튼 것도 이해가 가는 점이었다.


“어··· 예. 재미는 있겠네요. NPC들과 놀 때는요.”

“즉흥적으로 짓고 보니 게임 내에서 곤욕을 치를 때가 많더군요. 시나리오 온라인의 NPC들은 거의 유사 사람이라서, 제 이름을 듣고 혼자 웃음을 못참으면 미친 놈 보듯 볼 때도 있었습니다.”

“아··· 예.”


확실히 진중한 분위기의 게임 시나리오가 진행되는 장면에서 혼자 이름을 듣고 웃고 있으면 이상한 놈처럼 보이기는 하리라.

플레이어 캐릭터의 아이디는 딱히 번역되어 NPC들에게 전달되는 건 아닌지, 그 이름의 이상함은 플레이어들만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최태현의 곤욕은 게임 내에서 그보다 더 난감한 것이었는데, 말했듯 비련의 시나리오 내의 NPC들은 거의 사람과 유사했다. 그들과 관계된 임무, 퀘스트 스토리 진행에서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대화나 몸짓으로 해내지 않으면 제대로 된 클리어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왕의 부름’같은 임무 상황에서, 일국의 국왕의 명령을 수행하고 그 보상을 받는 자리를 가질 때 느닷없이 반말을 갈겨댄다거나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보이면 최악의 경우 보상이 날아가고 상황이 꼬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어지간해서는 돌발 상황으로 크게 비틀어지지 않지만- 즉 다시 말해 시나리오 온라인 내의 NPC들은 대부분 참을성이 많은 성격의 AI들이지만, 객관적으로 반응하기 어려운 수준의 이상함을 보인다면 스토리가 다른 길로 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태현은 스스로 게임 내의 롤 플레잉 난이도를 높여버린 경우라고 볼 수 있었다. 어려운 게임을 깨는 것을 즐기는 하드한 유저라면 할 만한 선택지이기는 하다. 그로서는 거기까지 생각해보지 못한 채 만들었던 아이디지만.


“고생이 많으시군요.”


제냐는 마땅히 할 말이 없어서 적당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우연히 만난 플레이어는 특이한 인간이었다. 재미난 구석이 있을지도 몰랐고.


“초보자 퀘스트 중이셨습니까? 파란 토끼 잡기요?”

“어··· 예.”

“그렇군요. 저는 전에 끝내고 ‘사냥꾼’ 타이틀을 받기 위해서 돌아다니던 중이었는데···. 아무튼 미안합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거시기한 인연인데 아는 유저User 등록 하시겠습니까?”


게임 상에서 친구처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서로를 확인하기 위한 기능이었다. 오른쪽 손등을 가볍게 두 번 두드리면 튀어나오는 푸른 창이 있다. ‘아는 유저 목록’.


광활한 비련의 시나리오의 세계는 실제 대륙과 같은 크기의 맵이 구현되어 있었고, 그곳에서 어떤 약속이나 게임 시스템의 기능 없이 누군가를 다시 만나기란 현실에서 그만한 넓이를 헤매이며 찾는 것과 같은 난이도였다.


대도시의 행정 체제 등을 이용한 알림이나 게시판 기능 따위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직접적인 교류는 아는 유저 등록이 간편하다.


“오, 예 뭐.”


제냐는 썩 내키지는 않지만 또 싫지도 않다는 듯 수락했다. 그가 오른쪽 손등을 왼손가락으로 두드렸고, 창이 뜬다. 인터페이스 창들의 디자인은 대부분 심플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별다른 장식도 없이, 반투명한 푸른 창 내에 여러 목록과 설명란들이 구분되어 있고 주욱 아래로 창을 내릴 수 있는 휠 표시가 있을 뿐이다.


직접 터치하며 등록란을 활성화시키고 이야기를 하던 옆에 뜨는 자판으로 입력을 하던 하면 되는 일이다.


“개멋진나 최.”

“제냐 킴.”


비슷한 때에 두 사내게 중얼거렸고 등록이 완료되었다.


게임 내부에는 캐릭터별로 ‘지문’이라고 할만한 고유 값이 있었다. 그것은 캐릭터 내부에 존재하며 자석처럼 기능하는데, 자력은 없으나 마치 그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의 범위가 있어 마주치는 캐릭터들을 ‘만난 적 있는’ 데이터로 인식하게 한다.


본명의 성과 그리 길지 않은 아이디들은 얼마든지 겹칠 수 있었고, 고유 값으로 한번 더 걸러져서 자신이 만난 적 있고 혹은 근처에 있는 캐릭터에게 아는 유저 등록 신청 메일이 날아가게 되는 것이다.


띠링, 하고 마침 제냐의 눈앞에 신청창이 하나 활성화 되었다. 작은 이메일이 온 것처럼 시야에 알림이 떴고 시선을 집중해 1초간 바라보자 터치가 된 듯 정보를 띄웠다. [개멋진나 최 님에게서 아는 유저 등록이 왔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라는 창이었는데, 그 옆에 실제 캐릭터의 사진 정보가 자그마하게 붙어 있다.


제냐가 손가락을 움직여 수락란을 눌렀고, 아는 유저 목록에 이름이 추가되었다.


‘아는 유저’끼리는 서로의 로그인 로그아웃 여부와, 대륙에서의 대략적인 위치(국가 단위)를 알 수 있었다. 텍스트 메시지를 서로 주고 받을 수 있었는데, 한 번에 300여 자로 제한되는 분량이었다.


텍스트 메시지는 상대가 확인을 했을 때 다음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고, 상대가 확인 전이라면 그 전까지는 메시지를 중복해서 보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제한이었지만, ‘적당한 불편함’이라는 것이 비련의 시나리오를 만들고 운영하는 제작진의 컨셉 중 하나였으므로 유저들은 대충 이해하고 넘어가는 편이었다.


원거리 통신은 시스템 인터페이스를 통해 직접 텍스트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 외에도, 게임 내 다양한 초상 기술과 그런 초능력이 결부된 공학을 통해 만들어진 수퍼 아티팩트들을 이용해 가능하기도 했다.


간단히 말해, 이 중세 컨셉의 대륙에 존재하는 원거리 전화기 따위였다.


근거리의 임무 상황에서 쓸만한 아티팩트들은 개인용으로 플레이어가 구비해서 들고 다닐 수 있었지만, 도시간이나 국가간 수준의 거리가 되면 그것은 게임 내 NPC들이 귀중하게 관리하는 물건이었으므로 특정한 장소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개멋진나 최, 최태현이 말했다.


“다음에 또 보죠. 즐거운 사냥 되시고.”

“예, 예.”


제냐가 고갯짓을 하며 답했고, 최태현은 곧 자리를 떠서 사라졌다.


게임 내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당한 타격이었다, 제냐에게는. 확실히 이 거대한 스케일의 고성능 시뮬레이션은 전투의 긴박감이 엄청나다. 지금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토끼나 노루 정도를 상대할 뿐이었지만, 능력치가 오르고 다양한 초상 기술들을 익히면서, 전투력이 누적되면 이후엔 거대한 괴물과도 싸운다고 들었다.


입체적으로 움직이며 대괴수와 드잡이질을 하는 것을 떠올려보면, 확실히 재미가 있을 법하다. 제냐는 잠시 움직이지 않아 굳은 것 같은 팔에 슬슬 힘을 줘보았다.


정확한 처치 모션과 체력 포션은 체력을 직접적으로 늘게 해주진 않지만, 직후에 제대로 휴식 시간을 가진다면 그때 체력 포인트가 차는 것에 가속도를 붙게 한다. 나무 등치에 앉아 시덥잖은 담소를 나누었을 뿐이지만 게임 내 시간은 꽤 흘렀다. 팔도 아예 움직이지 않진 않았고, 약간의 둔함이 있지만 가벼운 전투는 가능할 것 같았다.


잡아야 하는 토끼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오늘 내로 토끼를 전부 잡을 수 있을 듯 하다.


제냐는 몸을 일으키며 현실에서 그러하듯, 스트레칭을 했다.


***

bob-brewer-gCiES6PUBTE-unsplash.jpg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29. 돌아가는 23.07.13 37 4 26쪽
29 28. 여기 있습니다. 23.07.13 38 4 27쪽
28 27. 악수 +2 23.07.10 37 4 39쪽
27 26. 솜씨 확인 23.07.09 37 4 33쪽
26 25. 퀘스트 진행 23.07.09 37 4 36쪽
25 24. 메리골드 23.07.07 38 4 28쪽
24 23. 로멜리아Romellia 23.07.05 35 4 44쪽
23 22. 세슈칸에서. 23.07.05 37 4 31쪽
22 21. 불타는 부락 23.07.03 35 4 41쪽
21 20. 불타는 숲 23.06.12 40 4 24쪽
20 19. 보법 23.06.10 42 4 23쪽
19 18. 범영웅凡英雄 23.06.10 42 4 31쪽
18 17. '취륵'은 그렇게 죽었다. 23.06.09 47 4 62쪽
17 16. 파티 플레이 23.05.29 42 4 43쪽
16 15. 멧돼지 사냥 23.05.28 52 4 34쪽
15 14. 멧돼지 23.05.26 55 4 33쪽
14 13. 마라톤Marathon +4 23.05.22 61 5 38쪽
13 12. 세슈칸Seshukan 가는 길 +2 23.05.04 65 5 29쪽
12 11. 도서관 제육 23.05.03 58 5 25쪽
11 10. 황야 지룡 23.04.30 62 5 44쪽
10 9. 붉은 날개 23.04.29 77 5 31쪽
9 8. 흰줄무늬 검은 고양이 코미어 23.04.29 87 5 29쪽
8 7. 물약 상점의 필리Philly 씨 23.04.27 96 6 30쪽
7 6. 오크Ork 사냥 23.04.16 106 6 27쪽
6 5. 이성적 파이어볼 +2 23.04.15 148 6 33쪽
5 4. 긴장성 파이어볼 +2 23.04.12 157 6 22쪽
4 3. 로그 오프Log off 23.04.12 186 7 15쪽
» 2. 개멋진나 최 23.03.12 249 7 31쪽
2 1. 파란 귀 토끼 23.03.11 452 9 30쪽
1 0. Prologue. +1 23.03.11 517 10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