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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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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7.03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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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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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19. 보법

DUMMY

옆구리 내부, 장기와 닿아있는 그 곳, 시나리오 온라인 내에서 표현되지는 않는 빛의 입자 내부의 비가시적 공간에서 발톱 대거가 발화했고, 붉게 달아오른 칼이 무형의 화염을 토해낸다. 불꽃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으나 칼날 표면의 온도가 올라가고 그에 닿은 면이 타오른다.

그에 더해서 칼날에 최초에 발려 있던 독들이 신체 내부로 침투했다. 오크나 짐승, 각종 몬스터들에게도 효과적으로 통하는 사막 전갈의 독이었다.


피스 시와 세슈칸 사이에 있는 황야 지대, 개중에서도 물이 없고 모래로 뒤덮인 사막의 전갈은 독성이 강했다. 살아있을 때보다 죽었을 때 채취한 것이 더 강하다. 그것을 농축액으로 만들어 여러 특수 처리를 하게 되면 이제 몬스터 따위에게도 통하는 맹독이 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다운시키긴 어려웠지만, 거구의 갈색 오크를 찌릿하게 만들어주며 움직임을 둔화시킬 수는 있었다.

그나마 조금 다행이었다.

독의 독성이 돌면서 오크에게 느껴지는 격통이 다소 줄어든 게 사실이다.


다른 종류의 데미지가 서로를 상쇄시켰다. HP는 신나게 줄어들어 이내 100 근처로까지 떨어지고 말았지만. 오크가 느끼는 격통이 줄었다는 이야기다. 제냐는 대강 끝났다는 걸 깨달았다.

본능적인 깨달음이기도 하다. 칼을 꽂고 있는 오크의 움직임, 근육의 세기, 호흡 따위가 미약해졌다. 서서히 굳어간다.

살았으나 거진 죽은 몸이었다. 발톱 대거로 그 내부를 슬쩍 더 베어내며 바깥으로 호쾌하게 꺼냈다. 촤악-. 하고 돼지의 살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무기가 나왔다. 그 표면에는 빛의 입자가 묻어 발려나왔다.


한 번 허공에 자연스럽게 휘두르자 모두 떨어지고 만다. 거대한 출혈은 시각적 오브젝트였고, 때로 시야를 가리기도 한다. 그리고 소멸하기 전까지는 실체 역시 존재해서, 어떤 공격이 막히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본질적으로 ‘피’를 표현하는 것이기에 그러했다. 시각적으로는 다른 물질로 치환되었고 이내 사라지지만 그 전까지는 본질적으로 피처럼 세계 내에서 존재했다.


점성도 없으며 액체조차 아니었지만 실체로서 세계관 내에 자리를 차지했으며 충격을 받으면 더 빨리 사라진다. 그 말은, 충격량을 흡수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임시적인 질량을 가진다고 생각하는 게 간편한 이해였다.


제냐는 대거를 빼어들고 쓰러지기 시작하는 ‘카학’을 뒤로하고 다시 뛰었다. 11마리 남았다.


오크들이 어수선하게 소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저들이 시작한 소란은 아니었으니, 당황하고 있다. 각자 움막이나 주변에 두었던 무기 따위를 챙겨서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제냐가 발견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갈색 오크 열 마리라면 조금 터프한 게임 플레이였다.

제냐의 내구성이 그 정도로 좋지는 않았다.


몇 개의 물약을 먹고 피부나 뼈가 강화되었으나 방어구처럼 써먹을 수는 없었다. 게임 내에서 손상은 그대로 신체 기능 저하를 일으킨다. 위기의 순간에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안전 장치 정도로 생각하고, 가급적 맞지 않는게 좋았다.


어둔 밤, 화재로 움막이나 연소재들이 타올랐다. 붉은 빛 주황 빛 따위가 부락을 밝힌다.

바깥으로 나온 짐승들이 제냐를 보고 근처에 있던 놈들부터 달려들었다. 거리가 먼 것들은 머리를 슬슬 쓰기 시작한다. 가까이 다가갔고, 멀리 돌아서 포위를 하려고 움직이기도 한다.

그럴 때 최태현이 필요한 것이다.


최태현이 화살을 놓았고, 철시가 날았다.


1, 2초 뒤에 이미 철시가 목적지에 닿는다. 제냐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포위망을 형성하려던 덩치 큰 놈 하나의 오른 눈알에 박혔다. 삼국지에 나오는 하후돈은 왼쪽 눈알을 다쳤다고 하던가. 고대 전쟁 시대에 일어났을 법한 일화를 무수하게 만들어내는 그는 훌륭한 명사수 이상이었다.


말했듯 스킬로 보정된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 수준에서 이런 명중률은 상당히 어렵다. ‘희귀’ 스킬로 스킬 레벨도 12단계에서 중간 이상을 달성했다면 스킬 보정만으로도 가능할 지 모른다. 제냐나 최태현이 갖고 있는 스킬들은 대개가 일반이었고, 그마저 그리 높지 않다.


게임 내에서 전투력은 레벨과 그에 따른 스탯도 중요했고, 스킬의 숙련도 역시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그런 일반론의 계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게임 내부 요소로 변화시키기 어려운 게이머 본인의 감각이다. 바깥에서 궁술의 달인이나 명수가 플레이를 한다면, 그는 상위의 스킬을 더 빨리 익힐 것이며 스킬 경험치가 올라가는 속도 역시 빠를 테다.

조금 더 복잡하고 고도의, 그리고 시스템 AI가 파악하는 ‘정답’에 가까운 동작을 해낼 수록 추가적인 경험치가 부여되는 방식이었으니.


그리고 스킬은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의 행동에 더해지는 것이었기에, 아무런 스킬이 없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근력 스탯만 보유한 뒤엔 그저 바깥에서와 똑같은 명사수로서 화살을 쏠 수도 있었다.


실제의 몸과 게임 내에서 캐릭터를 다루는 감각 간의 차이만 좁힐 수 있다면, 게임에 적응하는 다소의 기간만 있다면 말이다.


현실에서의 경험은 입체로 구현된 가상에 불과한 게임 내에 유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게임에서의 경험을 그대로 현실로 가져가는 건 어렵다. 게임 내에서 실제 게이머가 사용하고 있는 건 감각과 신경, 정신 따위밖에 없었다.

실제의 몸은 그저 침대형에 내장된 시뮬레이터이든 외장형의 기계이든 사용해 편안한 자리에 누워 있을 뿐이었으니까.


실제로 게이머의 육신이 움직이는 부분은 신체의 전기 신호들 정도였다.


그러나 반대로 말한다면, 이곳에서의 ‘감각’은 확실히 바깥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간혹 그런 계통의 직군인 인간이 게임 내에서 플레이를 하며 현실에서의 직업을 연마하기도 한다. 훈련을 위해서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고, 여가를 위해 플레이를 하면서 겸사겸사 연습도 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 대장장이라는 직군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쇠를 다루고 기계를 주조하거나, 혹은 예술품을 만들어내는 장인류는 여전히 명맥이 있었다. 그런 자들도 자신의 직군과 비슷한 클래스를 게임 내에서 가지며 직업 연마의 일환으로 더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제냐는 평범한 대학생에 불과하다.


어쨌든 제냐는 뛰었고, 최태현은 가만히 있되 화살이 날게 만들었다. 먼 거리로부터 오크들이 하나, 둘 씩 쓰러진다. 그의 철시는 강력했다. 가용한 기력을 다 때려박아 한 발 한 발을 묵직하게 쏘아댔다. 급소에 맞아서 내부 장기가 박살이 나는, 크리티컬 히트가 아니라면 물론 한 발로 갈색 오크를 죽이기에 벅찼다.


기예에 다시 기예를 더한 것 같은 묘기 사격이 적중하는 대로 오크가 쓰러졌고, 그게 아닌 경우에는 몇 발이 한 마리의 몸에 꽂혔다.


갑주를 입은 곳에 화살이 들어가면 그다지 깊이 박히지 못하거나, 혹은 튕겨나가기까지 했다. 오크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 각을 뒤틀면 화살이 힘을 받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갈색 오크의 거체에 비해서 흐르는 입자는 아주 적은 양이다. 전통의 철시 30발을 모두 소모하고, 십 수 마리의 오크들 중에서 최태현이 잡은 것은 네 마리였다. 개중 두 마리는 한 발에 죽였다.


최태현이 네 마리 중 두 마리를 고역적으로 잡아내고 있을 때, 제냐도 물론 놀고 있지 않다.


제냐에게 오크들이 달려들었다.


일렁이는 화마가 무서운 짐승의 면상과 낯짝을 더욱 기괴한 각도로 비추었다. 어른거리면서 또 아래에서 솟구치는 불빛으로 나타나는 오크의 낯은 게임의 장르가 공포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의 모습이었다.


최태현의 견제 사격으로 포위망이 형성되지는 않았다. 그저 근처에 있던 오크들이 적극적으로 직진을 해왔을 뿐이었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세 마리다. 그 뒤에 몇 마리가 더 있을 것이다. 전방에서 세 개 방향으로 동시에 짓쳐든다. 앞, 좌 우.


정면에서 달려드는 놈이 가장 컸다. 투실하고. 오크가 다룰 수 있는 무구의 종류는 한정되어 있었다. 놈은 할버드를 다룬다. 할버드라고 해봤자, 도끼의 날 부분이 뭉툭하게 사라져있었다. 그냥 거대한 메이스의 끄트머리에 뾰족한 가시가 달린 것이었다. 기형의 무기이다.


좌, 우에서 덤벼드는 놈들은 조금 특이했다. 하나는 배틀 엑스를 들고 있다. 저만한 크기의 배틀 엑스를 대체 어디에서 구했는가, 하는 문제는 적절한 게임 상의 연출이라고 설명할 테였다. 어쨌든 오크들의 무장 상태는 근본적으론 나쁘지 않았다. 무기들의 내구성이 다 닳아 있을 뿐이었지. 좋은 것들을 들고는 있었다.


제냐가 바라볼 때 좌측에서 덤비는 마지막 놈은 거대한 외날검을 들고 있었다. 도, 그러니까 일본식의 카타나를 닮았다. 저런 물건이 왜 오크의 손에 있는가···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장 무구의 상태가 좋기도 했다.


그 장도는 어지간한, 체구가 작은 인간의 키만한 길이였고 다른 거병들에 비하면 조금 얇았다. 내구성이 안좋았다면 부러졌을 텐데, 역설적으로 상태로 본다면 가장 좋은 놈이었다. 오크가 최근에 얻은 전리품이 아닐까 싶었다.


셋 중 가장 먼저 닿을 건 좌측의 카타나를 든 놈이었다. 제냐는 선택을 바꾸었다. 오른 쪽으로 박차고 뛰었다. 가장 느리게 다가오던, 거대한 배틀 엑스를 든 갈색 오크에게 다가갔다. 놈은 가죽 갑옷에 이상한 짐승의 거죽을 둘러싸고 있었다. 피부를 보호하는 면적은 가장 멀쩡하다. 다른 놈들은 흉갑이니 뭐니, 몸통을 가렸지만 군데군데가 부서져 있었는데 이 놈은 적어도 몸통은 드러나는 부위가 없었다.

머리에도 이상한 가죽 모자를 뒤집어썼다. 피나 땟국물 따위가 묻었는지 색깔이 이상하게 변색되고 오래된 썩은 내가 날듯한 물건이었다.


제냐는 더 오른쪽으로 뛰었다. 세 오크를 앞에 두고 있지만 가장 빠른 건 제냐였다. 거대한 몸집을 가지고 있다면 순발력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해진다. 제냐는 이들 중에서 가장 작고, 완력도 없었으나 빨랐다.


정면에서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임전 태세의 오크들은 별로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애초에 가장 나약한 부류였던 회색 오크조차 멀찌감치서 잡지 않았는가.

다만 해야할 때는 해야 한다. 제냐는 처음 한 마리를 그랬던 것처럼, 상대가 배틀 엑스를 휘두르는 타이밍을 재었다.


위에서 내려치지 않았다. 다가오는 제냐를 보고 공격의 방향을 바꾸었다. 오크는 그대로 야구 배트로 날아드는 공을 치는 것처럼, 한껏 오른 쪽으로 배틀 엑스를 뒤틀어 뒤로 당긴 후 가로로 베었다.

파공음이 묵직하고 또 무섭다. 날이 온통 빠져있는 거대한 쇳덩어리에 맞는다면 가죽 갑옷이나 내구성 도핑 포션이 제 역할을 할 지 알 수 없었다. 못해도 치명상이고 죽지 않는다면 다행이었다.


치명상을 당한다고 해도 많은 양의 HP는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죽기 전의 마지막 발악처럼 움직이는 그 순간이 더 길어지고, 상처에도 일순간은 저항할 수 있을 테다. 그 사이에 붉은 물약을 미친듯이 들이켜야만 살 수 있다.


손도 쓰지 못하고 죽어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막대한 HP는 즉사에 약간의 지연을 더한다. 그 상태에서 회복에 필요한 아이템Item이나 적절한 조치가 없다면 곧바로 사망, 곧 게임 오버에 이르는 것이었고.


보통 유저들이 상대한 몬스터들의 경우, 이런 저레벨 구간에서 몬스터들이 그런 치료 효과의 아이템을 갖는 경우는 없었다. 몬스터들의 수준이 높아진다면, 자체적으로 회복 계열의 초상 스킬이나 특수 능력을 개체 성질로 갖고 있는 경우들이 있었다.


‘히드라Hydra’같은 놈들이 그것이다. 꼬일대로 꼬여버린 인생의 문제나 매듭, 갈등 따위를 상징하기도 하는 그 그리스 전설의 괴물은 비련의 시나리오 내부에 훌륭한 소재가 되어 재창조되어 있었다.

허구 속, 전설 속의 일화와 똑같이 비련의 시나리오 게임 내의 히드라는 그런 모티브를 갖고 끊임없이 머리가 자라난다. 도마뱀의 꼬리나, 혹은 하등 생물의 분열 재생 따위와도 닮은 모습이었다.

다만 집채가 그저 장난감처럼 보이는 크기의 괴물이 그런 분열 재생을 한다는 건 게이머로서 끔찍한 광경이긴 했다만.


제냐는 날아오는 횡베기에 피할 길을 찾았다. 순간적인 판단과 두뇌 회전은 게이머로서 필수적인 피지컬의 요구 조건이다. 제냐는 게이머는 아니었지만, 재능은 있었다. 그는 그대로 속도를 죽이지 않고 뛰기로 했다.


‘보법’이 작용하고 있었다. 전투 회피나 박투술의 몸놀림 역시 그의 움직임을 돕는다. 머릿속으로 플레이어가 상상한 최적의 움직임을 게임 내의 결과로서 도출하기 위해, 캐릭터의 신체 운동을 컨트롤한다. 근육들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제냐의 정신성에 의한 반응이기도 하지만 시스템 AI가 주관하는 스킬로서의 반응이기도 하다.


보법은 전투 시의 움직임이었고, 기예의 일종이었다. 그렇기에 레어 스킬이다. 춤보다도 조금 더 기묘하고 유연한 동작이 가능하게 해주었고, 그것은 제냐의 발상을 도왔다. 제냐의 몸이 뛴다. 생각보다 힘이 더 필요했다. 가진 근력과 순발력을 이용해서 뛰며 도끼가 휘둘러지는 그 횡베기의 높이보다 더 위로 간다.


오크는 애초에 낮게 휘둘렀다. 제냐가 자신보다 훨씬 작고 낮으며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기에, 높이만을 맞춘 다음에 거대한 범위를 그 긴 팔과 체격으로 커버하면서 배틀엑스를 휘두른 것이다.

어지간한 성인 여성만한 길이에, 다시 그 여성이 팔을 벌린 것과 같은 너비의 도끼날이 끄트머리에 달려 있었다. 제냐는 뛰었고, 앞으로 뛰었다. 다이빙을 하듯 들어간 움직임은 아슬아슬하게 도끼날을 피했다.


오크는 팔을 쭉 뻗으면서 긴 거리를 담기 위해, 야구배트를 휘두르듯 길게 움직였으므로 상체가 무방비했다. 온 힘을 다해 휘두른 공격에 몸통의 무게 중심마저 흔들린다. 제냐는 노리기 쉬운 빈틈에 속으로 환호를 했다. 그 짧은 순간에 사태를 인식하는 눈은 캐릭터에게 기본적으로 달려있는 최상급의 동체 시력 덕분이다.


캐릭터의 움직임 자체가 화살의 속도와도 같이 되어버리는 랭커Ranker수준의 플레이 때는 다시 동체시력을 위한 스킬이 따로 필요해진다.

일부러 얻으려 하지는 않아도 되는 것이, 그만한 움직임을 하기 위해 필요한 동작 스킬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움직임 스킬을 얻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력과 감각에 관한 스킬에 대한 필요 조건도 채워져서 순서대로 획득하는 게 일반적이다.


유니크, 혹은 레전드 급의 보법에는 ‘안력眼力’과 신경 반응에 대한 효과도 극소하게 들어 있고, 그것들이 모여서 별개의 감지 스킬 하나 분량 정도의 효력이 될 때 즈음이면 그런 이름의 스킬을 따로 얻게 된다.


제냐는 뛰었고, 오른 손에는 도刀, 비스트 슬레이어를 그리고 왼쪽에는 대거Dagger를 들었다. 비스트 슬레이어의 그립이나 가드 등의 장식에는 푸르스름한 도료가 발려져 있었다. 그것이 사실 도료인지는, 제냐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원래 그런 색깔의 금속이 있는 것인지 가늠할 눈이나 지식까지는 없었다.

그리고 지룡의 발톱 대거는 그 날면이 불그스름하게 색깔이 조금 변한다. 발려 있는 독기나 열기로 치환되는 SP의 작용이 그런 식으로 연출이 되는 것이다.


시나리오 온라인 내의 다양한 아이템이나 스킬들은 다양한 이펙트Effect 연출들을 갖고 있는데, 보통 직관적인 경우가 많다. 불그스름하다면 불꽃과 관련된 것이고, 푸르스름하다면 대강 바람, 물, 얼음과 관련된 힘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 상성 파악에서 지나치게 꼬아두면 게임의 난이도가 쓸 데 없이 올라간다. 개발진들이 원하는 분량의, 방향성으로의 고생과 고난이 정확하게 있는 것이다.


양 팔로 두 검을 늘어뜨린 제냐가 앞으로 날았고, 그 비스트 슬레이어의 검극 끄트머리가 휘둘러지는 배틀엑스에 아주 살짝 닿아 퉁겨나왔다. 탕, 하고 무릎 어딘가를 쳤을 때 다리가 튀어오르듯 검날이 올랐고, 그 기세가 마침 달갑다는 듯 제냐는 흐르듯 움직였다.


아주 높이 뛰어서 오른 무릎을 굽혀 오크의 안면에 갖다 박았다. 앞으로 움직이던 놈이었기에 상체와 머리가 조금 내려오면서 쏠렸고, 그 덕분에 편히 칠 수 있었다. 카운터를 당한 것처럼, 제 스스로 움직이던 에너지에 제냐의 타격이 합쳐져서 오크는 잠깐 머리가 어질거렸다.

그러고도 별반 뇌진탕이나 반응 지연을 일으키지 않는 건 짐승으로서의 터프함이다. 오크들은 하나같이 팔다리, 그리고 목 따위 연결부위가 굵고 잘 부러지지 않았다.


쇠도끼라도 가져와야 베어낼 수 있는 부분들이다. 그래서 제냐는 쇠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빠각, 하는 소리와 함께 오크의 낮고 들린 코가 망가졌다. 제냐의 무릎 보호대 주위에 빛의 입자가 흘러나와 잠깐 묻었고, 그대로 관성을 버리지 않은 채 오크의 목덜미를 팔로 껴안으며 붙었다.

남은 왼 발로 걸리는 데를 아무데나 눌렀다. 오크의 가슴께가 제대로 걸렸다. 제냐는 대거를 쥔 왼 손으로 오크의 대가리를 품에 안았고, 왼 발로 그 몸을 등산하듯 오르며 공격에 썼던 오른 다리마저 사용해 아예 올라탔다.


묘기에 가까운 동작이었으나 어떻게든 해내고 있다. ‘보법’에 필수적으로 포함되는 균형 감각의 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하리라. 그 전부터도 몬스터들을 달고 도망치는 일을 하면서, 나름대로 뛰어났든 혹은 게임 내에서 개발이 되었든 했겠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한 서커스였다.


오크의 어깨를 밟으며 일어섰다. 비스트 슬레이어는 마침 위로 올려든 참이다. 오크가 휘청거리며 앞으로 무너졌다. 배틀엑스를 날렸던 무리한 중심 이동도 문제였고 제냐에게 얻어맞은 것도 이상이었다. 제 자리에서 넘어지려는 놈의 흔들거리는 어깨를 슬쩍 차며 공중에 떴고, 그대로 비스트 슬레이어를 상체를 한껏 숙이며 아래에 갖다 박았다.


도의 칼날 끝은 날카로웠다. 유연하게 굽은 제냐의 몸처럼, 부드럽게 그것이 마침 뒤에 비어있던 오크의 등께를 찔렀다. 푸우욱, 하고 칼날이 들어갔다. 척추를 비롯해 뼈에 걸리지 않고 살과 장기만을 파먹은 비스트 슬레이어를 공중에서 제비를 돌듯 돌아 그 기세대로 꽂아 넣고, 자연스럽게 놓치며 땅에 착지했다.


오크의 어깨 위는 2m 부근이다. 그 위에서 슬쩍 뛰고 돌며 내려온 제냐가 등으로 낙법을 했다. 땅에 닿자마자 앞으로 구르면서 움직였고 턱을 최대한 당기며 약한 목이나 안면을 보호했다.

한 바퀴 반 쯤 굴러 벌떡 일어난 제냐를 기다리는 건 십 수 걸음 바깥에서 다가오는 갈색 오크들이다.


지나친 놈이 셋이었고, 한 마리가 방금 등에 칼을 박고 쓰러졌다. 죽은 건 아니었다. 제냐가 느끼기에도 아직 부족했다. 슬膝격 한 방에 도신을 등 뒤에 박아넣은 정도로 몬스터들은 잘 죽지 않는다.

체적이 클수록 그러하다. 조금 더 과감한 파손을 일으켜야 했고, 심각한 충격을 줘야 한다. 제냐는 얼른 뛰었다. 한 놈이라도 줄이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다른 놈들이 제냐에게 다가오는 것보다 제냐가 다시 돌아가 쓰러진 놈의 등에서 비스트 슬레이어를 뽑아드는 것이 더 빨랐다.


수욱, 하고 무른 것에서 나오듯 빠진 비스트 슬레이어는 확실히 명도였다. 짐승 류를 상대할 때 추가 데미지가 있었다. 오크에게 정확하게 들어가는 지는 알 수 없었다. 돼지 대가리를 하고 있었지만 일단 이족 보행을 하고 있으니.

아마 ‘야성’에도 비율이 있어서, 야성 속성을 갖고 있으며 짐승형인, 그리고 야성 속성이 몬스터의 특성값에 큰 부분을 차지할 수록 비스트 슬레이어가 강해지는 식이리라.


돼지 대가리 부분 만큼은 더 효율적이다. 제냐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리고 앞으로 엎드러진 놈의 뒷목께를 그대로 찔러 넣었다. 힘을 잃고 무방비 상태가 된 오크를 절명시키는 건 간단한 일이었다. 놈은 반항을 하지 않았고, 목덜미 부근에 별다른 방어구도 없었으며, 남다른 스킬을 보유하지도 않았다.


그대로 크리티컬 히트가 발생하면서 오크의 목숨이 끝났다. ‘지연’이 일어날 틈도 없었다. 완벽하게 몸통과 대가리를 분리시켰으니까.


HP가 100,000이 넘으면, 설령 분리된다고 하더라도 약간의 지연이 있다. 초 단위거나 혹은 더 짧을 그 시간 안에 레저렉션Resurrection따위의 치료계 최상급 스킬이 발현된다면 사는 것이다. 그와 동급의 회복 아이템이 들이부어져도 혹시 모를 테고.


일반적으로 동급이라고 한다면, 정물인 아이템보다 동물인 NPC나 플레이어의 스킬이 조금 더 급수가 높은 경향이 있었다. SP의 성질에 관한 문제였는데, 아티팩트라고 불릴만한 아이템이라 할지라도 끝없이 움직이며 운동하기 좋아하는 초상력을 아무런 의지가 없는 물건에 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어려운만큼, 손실이 일어났다.

계속해서 의지력을 발휘해 MP들을 다루어내고, 즉각적인 스킬을 다루는 플레이어의 초상 기술이 효과가 좋은 면이 있고, 아이템 류의 효과들은 아주 근소하게 급이 떨어지는 면이 있다.


물론 아이템 쪽이 확연하게 급수가 높다면 무의미한 비교이기도 하다.


비스트 슬레이어가 목줄기를 꿰뚫었고, 가볍게 기력술을 담아서 움직이는 것으로 두꺼운 부위를 갈랐다.


오크 하나가 갔고, 제냐는 앞에서 달려드는, 곧 더 가까운 카타나 오크와 할버드 오크를 향했다.


뒤에서 두 마리가 더 근접해 있었다. 아까 언뜻 보기로 두 마리가 더 있었다. 그의 시야에 닿는 부분에 있는 놈들이고, 자유롭게 그에게 다가올 수 있는 놈들이었다.


이제 여섯 마리.


최태현이 원호 사격을 해서 더 줄여준다면 좋겠지만, 아니라면 어떻게든 해야 했다.

순서가 중요하다, 순서가. 여러 마리를 한 번에 한 명의 몸으로 상대할 때는 말이다.


시간과 호흡을 이쪽이 가져오고 조절할 수 있다면 상대는 여러 명이어도 결국 일격밖에 내지 못할 테다. 그걸 위한 순발력이고, 회피율이다.


그런 전략적 생각에 따라 제냐가 쉬지 않고 땅을 굴렀다. 보법 스킬이 최고조로 발동되고 있었다. 플레이어의 전투 스타일에 따라 스킬도 영향을 받는다. 스킬을 더 잘 이용하는 인간도 있고, 같은 패시브 스킬이라 할 지라도 그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지 못하는 자들도 있었다.


제냐는 스스럼없이 전장으로 뛰어들었고, 상대의 칼날을 바라보며 정면으로 피하기 위해 움직였다. 전투 시의 회피, 전장에서의 생존을 위해 짜여진 보법 스킬의 존재 이유가 그것이었으므로, 곧 그렇게 행동할 때 보법은 최대한의 보정과 도움을 제냐의 캐릭터 신체에 부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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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5. 퀘스트 진행 23.07.09 38 4 36쪽
25 24. 메리골드 23.07.07 39 4 28쪽
24 23. 로멜리아Romellia 23.07.05 35 4 44쪽
23 22. 세슈칸에서. 23.07.05 38 4 31쪽
22 21. 불타는 부락 23.07.03 35 4 41쪽
21 20. 불타는 숲 23.06.12 40 4 24쪽
» 19. 보법 23.06.10 43 4 23쪽
19 18. 범영웅凡英雄 23.06.10 42 4 31쪽
18 17. '취륵'은 그렇게 죽었다. 23.06.09 47 4 62쪽
17 16. 파티 플레이 23.05.29 43 4 43쪽
16 15. 멧돼지 사냥 23.05.28 52 4 34쪽
15 14. 멧돼지 23.05.26 55 4 33쪽
14 13. 마라톤Marathon +4 23.05.22 62 5 38쪽
13 12. 세슈칸Seshukan 가는 길 +2 23.05.04 66 5 29쪽
12 11. 도서관 제육 23.05.03 59 5 25쪽
11 10. 황야 지룡 23.04.30 62 5 44쪽
10 9. 붉은 날개 23.04.29 77 5 31쪽
9 8. 흰줄무늬 검은 고양이 코미어 23.04.29 87 5 29쪽
8 7. 물약 상점의 필리Philly 씨 23.04.27 97 6 30쪽
7 6. 오크Ork 사냥 23.04.16 106 6 27쪽
6 5. 이성적 파이어볼 +2 23.04.15 149 6 33쪽
5 4. 긴장성 파이어볼 +2 23.04.12 158 6 22쪽
4 3. 로그 오프Log off 23.04.12 186 7 15쪽
3 2. 개멋진나 최 23.03.12 249 7 31쪽
2 1. 파란 귀 토끼 23.03.11 452 9 30쪽
1 0. Prologue. +1 23.03.11 517 1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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