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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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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7.03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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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6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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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59. 태양의 숨결, 폭풍의 한 자락

DUMMY

*


한 발, 그리고 다음 두 발이다.


릿샤 애드윈은 높은 곳에 서 있었다.


바람이 그녀의 곁으로 지나간다.


작힘 가의 고성, 그 첨단 부근이 얼추 시야에 걸리는 고도였다. 세슈칸에 작힘 성과 비슷한 건물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달리 말하면 있기는 하다는 뜻이었고, 시내 중심부 근처에 지어진 술사 길드 본부 건물의 옥상이 개중 하나였다. 비슷한 높이로 종교적 건물, 교회의 윗단이 하나 있기는 했지만 적당한 각도가 나오질 않았다.


성벽 중에 딱 부숴먹기 좋은 부근, 그리고 시내에서 잠복하고 있는 팀원들이 들어가기 좋은 포인트가 마침 하나 있다.


그녀 외에 그 고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머리 위로 드높은 태양과 하늘, 구름과 새 따위는 있었지만.

언제 보아도, 몇 번을 경험해도 생경한 경외감이 드는 그래픽이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입체적 공간 내에서 살아 움직이는 현실감이었기에 그래픽이라는 단어로 다 표현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날은 밝았다. 비가 오는 날이 그리 많지는 않다. 체감적으로, 세슈칸에 그녀가 머무는 동안에는 말이다.

백주대낮.


일을 벌이기 좋은 시간이다.


고도가 높아지면 대기의 흐름이 새롭게 다가온다. 거치는 것이 없이 밀도 높은 바람이 분다. 잘못 타기라도 한다면 균형을 잃고 날아갈 법도 하지만, 그녀는 나부끼는 머리칼과 눈을 뜨기 힘든 사정에도 아랑곳 않고 멀리를 주시했다.


길드 건물의 아래에는 시내가 형성되어 있었다. 회색의 고성을 중심으로 나무 뿌리처럼 주욱 뻗어 나가는 세슈칸 시의 가도들이 있다. 가도들 주변을 채우는 도심지의 건물들이 있었고, 그 도시는 아주 먼 곳까지 뻗는다.

이토록 높이 올라왔음에도 한 눈에 보이지는 않았다.


원형의 도시를 4분할 한 뒤 한 쪽 부근 정도만 제대로 관찰할 수 있었다. 저 끝에는 마찬가지로 세슈칸의 위엄을 나타내는 외대성벽이 있었다. 세슈칸 시 전체를 감싸는 장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로멜리아 가의 옛 고성 또한 만만찮은 건축물이다.


릿샤 애드윈은 오늘 철거공이었다.


현대 세계가 아니었기에 마땅한 폭발물도 없었고, 그녀와 같이 작업을 도울 숙련공들도 별로 없었지만, 대신하는 MP와 스킬 셋이 있었다. 막대한 에너지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현상으로 전환시켜주는 스킬의 메커니즘은 훌륭한 조력자들이다.


여러 개의 스킬들이 얽혀서 나타난다. 하나의 스킬은 지속성일 수도 있고, 휘발성일 수도 있었다. 가장 흔한 지속성의 스킬들은 플레이어의 능력치를 올려주는 버프 계열의 지원 기술들일 것이다.


혹은 적군의 움직임을 둔화시키고 약화시키는 디버프 계열의 지원 기술들.


꼭 전투에 직접 사용되지 않는 다양한 스킬들도 써먹기에 따라서 괜찮은 도구가 된다.


'매의 눈'을 비롯해서 여러 개의 감지 계열 스킬들이 투사체의 방향을 예측하여 준다. 그리고 탄착 지점의 현황도 알려주고.


술사 계열의 스킬러들이 익히는 '비가시의 눈'도 효과를 톡톡히 보인다. 초상 스킬의 파괴력이 어느 지점에 맞아야 대상물의 붕괴가 가장 잘 일어나는가, 에 대한 눈이었다.

워 메이지라면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는 스킬일 것이다.


물론 스킬의 수준과 개인의 능력, 게임 내 지식 따위에 따라 스킬의 효과와 한계는 정해진다.


잠시 한껏 폐를 늘려 공기를 들이 마시고 내뱉고, 몇 번 숨을 고른 뒤 일을 시작한다.


길드 건물의 첨단은 하늘을 꿰어 찌를듯 좁게 지어져 있었다. 그녀가 제대로 설 곳이나 머무를 자리가 많지 않았으므로, 선 자세는 다소 위태롭다.


길다란 뿔처럼 생긴 피라미드 형태의 지붕이 그녀가 있는 곳이었다. 그 돌로 지어진 피라미드의 아랫단에는 발로 밟을 만한 자리가 조금 튀어나와 있었다. 그녀의 작은 체구보다는 조금 큰 첨단의 장식물 지붕이었고, 그녀는 작힘 성이 바라보이는 피라미드의 한 면에 몸을 뉘여 기댄 채 서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으면 릿샤의 작은 발이 딱 들어가는 수준의 밟을 자리였다.


그녀는 균형을 잡으면서 양 팔을 슬쩍, 앞으로 벌려 내민다. 평소와 달리 다양한 장신구가 그녀의 몸에 더 걸려 있었다. 대개의 물건들은 보석형으로 제작된다. 희귀한 광물들은 MP를 담기에 적합한 소재였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보석도 있고, 장인과 세공사, 조합사들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합금도 있다.

검은 용이라고 불렸던 데슈칸 산맥의 거대한 흙지렁이에게서 나온 전리품도 개중 하나를 차지하는 악세사리였다.


내뻗은 팔에도 팔찌가 여러 겹, 반지가 손가락마다 줄줄이 달려 있었고, 머리에 서클릿과 귀, 목, 발목 따위에도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완벽하게 디자인을 위해 매치업한 장신구들은 아니었기에 색깔과 디자인들은 다소 어우러지지 않고 마구잡이로 뒤섞인 감이 있었다.


하나같이 원색 계열의 튀는 종류가 많았고, 몇몇 것들은 거무튀튀하거나 무색에 가까운 톤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죽인다.


총천연색의 보석, 무채색의 보석알들이 있고 그 테두리나 장신구의 몸체를 이루는 줄 따위는 보통 금색, 은색, 상아색들이다.


움직일 때마다 마침 부는 바람에 늘어진 보석알들이 흔들거리며 소리를 냈다.


릿샤는 손을 앞으로 내뻗은 상태에서 스킬을 사용했다. 트리플 캐스팅이 가능한 술사인 릿샤는 스킬의 발동이 빠르다. 지속성의 스킬들을 섞어 사용한다면, 수많은 스택들을 순조롭게 쌓아갈 수 있는데, 그 준비 작업이 훨씬 짧아지는 것이다.


초상력을 늘려주는 술사 계열의 버프기가 가만히 서 있는 동안에 몇 종 이미 발동되었다. 웅웅거리는 미세한 소리가 그녀의 곁에서 났다. 공명을 하는 듯한 소리들이다. 스킬과 아이템이 함께 움직인다.


거기에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중첩되었다. 정신력이 고조된다. 감각을 끌어 올려주는 다양한 스킬의 효과는 실제 플레이어가 느끼는 세계를 달리 보이게 해준다.

동체 시력과 운동 신경, 반응 능력을 높여준다면 실제 세계가 느리게 감각된다. 일류 그 이상의 운동 선수들이 집중의 순간에 느끼는 세계였으나, 비련의 시나리오 속에서 스킬로 비슷하게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릿샤는 그런 다양한 가상 체험의 가능성에 대해 높이 사고 있었다. 확실히 여러 종류의 기술을 익히고 수준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물론 후유증의 문제로 신경을 건드리는 기술이 제한되어 있기에 대폭적인 변화는 막혀 있다.


시간이 조금 느려지는 감각. 정신력 계열, 집중력이 높아지다 보면 어느 정도 따라오는 약소한 효과였다. 릿샤 애드윈은 동시에 여러 종류의 일반 스킬들, 하급한 수준의 버프를 겹친다.


그녀의 몸 주위로 빛의 도형이 나타났다. 콘란드 대륙 내에서 초상력의 흐름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문양들이다. 바람의 형상화, 물과 불, 온갖 속성들과 그 작용을 담고 있는 일종의 상형문자라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일종의 프로그래밍 언어처럼 정보를 담고 있다. 콘란드 대륙에서 살아가는 NPC들 중 고등의 술사라면 허공에 나타나는 문양과 문자들만 보고도 술식을 이해하고 디스펠 술식을 새로 짤 수도 있으리라.

플레이어들의 경우에 그 정도 수준은 아직 불가능했고, 몇 가지 특징적인 문양들을 현장에서 파악한 뒤 대처한다면 랭커 급의 기술이리라.


애드윈 릿샤는 마약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인생을 망치는 일이기도 했거니와. 함부로 약물을 잘못 사용했을 때의 위험에 대해서 잘 안다.

대개의 일은 기합으로 어떻게든 된다. 역설적으로, 똑똑한 편인 그녀는 대강 의지와 깡다구로 해결하는 편이었다, 대부분의 일들은.


사람의 몸이 다양한 종류의 위협에 대처하고 견디어낼 수 있도록 애초에 지어져 있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일 수도 있다.


시대가 많이 발전을 해도 현실에서 육체에 투여하는 약물들은 조심하는 게 옳다. 자신이 똑똑하고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천재들인양 구는 머저리들은 가끔 공부를 한다고 하면서 신경성 약물들을 멋대로 오용하고 몸이 망가지는 경우들이 있다.


고로 릿샤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지만, 게임 내에서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고양감과 극한의 몰입도는 마치 그런 약물의 효과를 상상해보게끔 한다.

뭐 가장 올바른 일은 그런 외적 도움 없이 스스로 그런 몰입과 집중을 발휘해서 성취를 해내는 방식일 것이다. 사람은 다 할 수 있다. 기이한 고양감 따위 없어도 세상에 이루지 못할 것이 없었고. 약을 먹어야만 이룰 수 있는 성취라면 그 따위 목표는 쓰레기라고 보아도 좋았다.


아무튼, 게임 내이기에 느낄 수 있는 인위적인 고양감 속에서 릿샤는 더욱 더 의지적으로 집중한다.

빠르게 움직이는 생각을 감각으로 표현하자면 빛보다 빠른 무언가, 이다. 상상과 발상, 아이디어의 움직임을 아직까지 잡아챌 수 있는 기술이 없다. 앞으로 몇 세기가 더 지난대도 그런 것이 가능할런지는 알 수 없다.


그녀가 발현 가능한 모든 버프 스킬이 가동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정신력, 집중력이 올라간다. MP량 역시 올라갔다. 의지력 역시 스킬의 효과로 얼마간 상승한다.

막대한 MP를 다루어야 한다. 일시적으로 뻥튀기된 의지력으로도 안정적으로 다 다룰 수는 없다. 그것으로도 훨씬 초과되는 양을 거칠게 다룰 셈이다.


릿샤의 MP는 곧 그녀의 손에 의해 훈련받은 정병들이다. 그녀의 병영에 있는 무수한 군사들은 외부에 있는 자연인들을 끌어모아 릿샤 부대로 적을 바꿔 놓은 상태이다.

거대한 병영에 모여 있는 군사들을 한 번에 지휘하기엔 릿샤의 능력이 부족하다. 그녀의 능숙함을 상회하는 수가 릿샤군으로 입적해 있는 것이 보통 초상술사들의 사정이었다.


그러나 그 명령의 도중 오류가 생겨 몇 명의 손실이 나고, 자기들끼리 진군을 하다 꼴아박고, 엉뚱한 곳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다루어야 한다.

대강의 컨트롤이고 폭급한 사용이라고 해도 애초에 쓰지 않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그 최적점을 찾는 것이 실전적인 초상술사들을 가르는 조건이었다.


후방에서 안전하게 무리하지 않는 운용만 하는 술사이냐, 혹은 벼랑 끝에서 자신의 역량을 다 발휘해 본 유능한 워메이지냐, 하는 구분 말이다.


릿샤 애드윈은 누구보다 유능한 워메이지라고 자부한다.

적어도 자신과 같은 레벨 대라면 적수가 많지는 않으리라.

아직도 수 억 이상이 플레이하고 있고 몇 명의 신규 유저가 더 생길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스스로 생각해도 확률이 낮은 게임을 몇 번이고 통과해서 얻어낸 스펙이었다.


그녀의 머리칼이 나부꼈다.


바람이 부는 방향은 그녀가 바라보는 쪽의 반대였다. 고로, 뒤로 날리는 것이 아니라 위로 들려오는 것이라면 다른 일이다. 초상력이 유형화되어 그녀의 근처에 이지러졌다.

MP를 관측할 수 없는 일반인이라 하더라도 아지랑이 같은 것이 릿샤의 근처에 생겨나 허공에 반투명한 자락들이 있는 것을 보리라.


바람은 아니며 머물러 있고, 조금 더 높은 밀도에 수족처럼 움직이는 밧줄들에 가까웠다. 불투명한 줄기들이 그녀의 곁에 마치 춤을 추듯 선형으로 움직였고, 그 기세에 머리칼이 위로 떠오른다.


릿샤의 붉은 머리 근처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콘란드 대륙 내에서 상처를 입으면 나타나는 빛의 입자같은 질감이었다. 주변에 둥둥 떠다니는 입자들은 점차 빛의 강세를 더했다.

광량이 더해지며 밝아진다. 백주대낮이기에 티가 안 나는 것이었다. 조금 어두운 하늘의 시간대에 이 짓을 벌였다면 바로 발각이 되어 견제가 왔으리라.


작힘 가의 성을 지키는 수비병들, 그 내부를 채우고 있는 여러 관리들, 가솔들은 설마 이 시간에 세슈칸 영주의 본령을 누군가 부수리라고는 생각치 못하는지, 아무런 방비도 대응도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먼저 일이 터진다면 외벽에서일 것이다.

그리고 어지간한 말썽꾸러기가 시내에 잠입해서 소란을 벌여도, 결국 산슈카 왕국군의 다른 이름인 세슈칸 치안대가 제압할 테고.


느닷없이 산슈카 국내에서 대귀족의 본성을 치는 일은 확실히 정신머리가 나간 짓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릿샤도 이게 지나친 화끈함이라고는 생각한다.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릿샤 애드윈은, 바르샤 애드윈이었다. 그러니까, 현실에 적을 두고 있는 플레이어였다. 그녀와 함께 행동하는 몇 명도 그렇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아닌 이들은, 작힘 가에 이미 씻을 수 없는 원한이 생겼다. 운트 작힘 백작은 명예를 모독했다.


어떤 가문의 수장이자, 명예로운 주장이었고, 또 고가의 정당한 후계자였으며 자비로운 아비였던 누군가를 암계로 독살했다.

또한 어떤 이의 친구이자, 오랜 동료이자, 전장터에서 함께 목숨을 걸어줄 수 있었을 전우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 죽은 동료는 어떤 부하 직원에게 정신적인 교훈과 가르침을 주던 인간이었고, 존경스러운 상관이었다.


그 외에 영락한 로멜리아 가문의 두 아녀자를 향해서 수없이 암살 공격을 감행했으며, 가문간의 정당한 계약 역시 이행하지 않는다.


그래, 다들 약간은 돌았는지 모른다.


어떻게 잘 되면 잘 풀릴 수도 있겠지만, 단지 그런 짐작만으로 벌이기에는 분명 큰 일이었다.

다들 기어코 이 정도 짓거리까지는 벌여야 할 만큼 피해를 본 것이다.


운트 작힘은 소자에게 전쟁을 걸었다.

그리고 소자는 살아남았고, 피하지 않고 정면 대결을 하려 한다.

옆구리를 찔러 값을 받아낼 것이다.


뭐- 그 과정에서 애써 가문의 일원을 죽이려는 계획이 아니라는 것만 해도 충분히 자비롭지 않은가.

그저 교만하고 잔악한 가주의 목덜미를 잡아 끌어, 정보를 토설하게 한 뒤 아티팩트만 좀 받아가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릿샤는 그런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이었다.


머리 주변으로 붉은 기가 치솟았다. 뻗어낸 양 팔에는 한기와 바람이 일렁거린다. 풍기라고 해도 좋았다.


한 손은 얼음의 술을 구현한다.


열을 빼앗는 술식은 그녀의 주변 일정 범위의 열량을 모조리 이전시킨다. 끝없이 열량을 앗아가는 현상의 발현이다. 그녀의 눈이 머무르는 높이 근처에서는 열의 술이 나타난다.


붉게 타오르는 주광빛이 웅웅거렸다.

그녀의 손발목, 목, 여기저기에 걸린 보석들이 작게 떨며 울음을 토했다. 그 내부에 담겨 있는 다양한 술식과 또한 MP들이 사용됨에 따른 연출이다.


그녀는 자신의 몸 주위로 작은 폭풍 같은 것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정밀하게 각 현상들이 맞물려 일어나는 MP의 폭풍이었다. 그 현상들은 한 가지 결론을 위해 정립되었다. 단순한 파괴력이다.


단순한 시스템 상의 오류 같은 것이었다. 릿샤가 써먹고 있는 것은. 하나의 술은 끝없이 열을 그러모으고 발생시킨다.

한 가지 술은 열을 빼앗아 한기를 만든다.


그녀는 얼음의 술이 열의 이전으로 인식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변의 열량이 한 곳으로 모였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일정 지점, 오른 손바닥 바로 앞의 반경 50cm의 구체 내부는 끝없는 한기가 밀도 있게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구체 주변의 온도 역시 계속해서 떨어진다.


숨을 불면 하얀 입김이 토해질 정도다.


또한 그렇게 이전되는 열량을, 릿샤의 얼굴 앞, 조금 떨어진 자리에 불의 구체가 형성되고 있어 그 자리에 모조리 옮겼다.

불길은 얼음의 술의 보조를 받아 더욱 활활 타오른다.


두 가지 MP를 활용한 술은 서로 한 가지 방향으로 작동하면서 더욱 큰 에너지를 축적했다. 차가움의 끝은 절대영도라지만, MP로 인해 만들어진 한기의 구체는 그 이상의 차가움을 담고 있었다. 그러니까- 보다 넓은 범위에 끝없는 추위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투사체로 바뀌어가고 있다.


길거리에서 이딴 짓을 준비했다간 사람들이 단박에 알아챘을 것이다.

점차 시전 시간이 길어지며 MP가 유동하고 있으니 도시의 플레이어들이 슬슬 아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퀘스트와 관계되지 않은 사람들은 굳이 릿샤의 행위를 막을만한 동기가 없다. 그저 어떤 플레이어가 성주와 관련된 퀘스트 진행중이구나, 하고 지나갈 뿐이다.


그들에게 콘란드는 그저 지나가는 세상에 불과하다. 정말로 기이하고 특이한 종자가 아니라면 일부러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퀘스트의 인과 관계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었다가 그대로 게임 오버가 될 수도 있으니.


다만 이 게임은 참 녹록치 않아서 언제나 변수가 있을 수 있었으나, 다행히 릿샤가 스킬 사용의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별다른 제재는 없었다.


릿샤의 뻗은 팔 한 쪽에는 한기가 가득 찬 흰 구체가 형성되어 그 내부에 흰 광선들이 휘몰아친다.


다른 한 쪽에는 바람의 술이 표현되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혹은 녹색의 선들로 연출되는 스킬이었다.

마찬가지로 구형으로 모여드는 MP의 유동성이 다채롭고 묘해서 보고 있노라면 시선을 빼앗기게끔 된다. 가끔 릿샤는 머리가 복잡할 때 비련의 시나리오에 접속해서 초상 스킬을 사용하며 그것이 휘도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한다.


완벽한 구형의 테두리 내에 갇혀 있지 않았고, 바람은 자유로운듯 그 내부의 기운이 조금 거칠게 뻗쳐 나오면서 술식이 완성 되어간다.


그 양 팔 앞에 생겨나는 투사체 위로, 불의 구체가 점점 힘을 더한다. 그것이 가장 크기가 컸고, 들어가는 MP또한 강력했다.


로웰 드버가 그러하듯이, 한 번의 스킬에 MP를 수 천 이상 때려박고 있었다. 30,000이 넘는 MP를 가졌으니 삼 천 정도는 적정량이었으나 오, 륙 천을 넘어서 만에 근접한다. 일시적으로 증폭된 의지력이 군사들을 다독이지만 쉽지 않다.


여러 개의 스킬을 동시 발현하면서 MP를 폭포수처럼 사용하고 쏟아냈다. 이 상태에 이르기 전에 푸른 물약을 한계치까지 목구멍에 때려 부었다. 위장이 푸른 색의 음료로 꽉 찬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급 포션을 들이마셨고, 그녀가 착용하고 사용하는 아티팩트 중 절반 정도는 MP에 관한 보조 도구들이다.


MP를 게이지로 시각적 표현한다면 금세 그 바닥까지 줄어들었다가, 다시 올랐다가를 수 없이 반복하고 있으리라.


계속해서 틀어진 수도꼭지처럼, 그녀의 MP가 세 종류의 투사체를 비롯해 여러 스킬들에 쓰였다. 결과적으로 세 개의 투사체는 각기 만 단위 이상의 MP를 머금은 무엇인가가 되었다.


한 가지 효과에 모조리 그녀의 명령권을 사용해야 했다. 저 드넓은 성벽의 한 구석에 갖다 박기만 해도 좋았다. 어차피 스킬의 범위 자체가 거대한 넓이를 포함하므로, 적당한 지점에만 붙여 놓으면 성공한다.


한 발, 그리고 두 발이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세 개의 투사체가 모두 합쳐 '한 발'이었다.


바람의 술은 불의 술을 돋구고 풀무질할 조력의 바람이었다. 거대한 양의 산소가 주입되며 화염의 기세를 키워나갈 것이다.


얼음의 술은 형성시에 나타나는 열 이전의 효과로 불의 술을 MP보다 더 큰 위력의 무언가로 완성시킨다.

극한의 힘과 극열의 투사체가 차례로 갖다 박으면서 성벽이 무너질 것이다. 틈 하나 없이 축조된 단단한 성벽이었다. 열과 한기 외에 그 자체의 파괴력도 만만치 않다.


그녀는 2분 정도를 길드 건물의 뾰족한 지붕 장식물에 몸을 기댄 채 그러고 있었다.


이제 작힘 성 주변을 지나는 이들 중 MP를 예민하게 다루는 자들이 그녀를 대개 알아챌 무렵, 릿샤 애드윈이 스킬을 사용했다.


먼저 열을 돋구는데 쓰였던 얼음의 술이다. '아이시 블래스터'가 직선으로 날아갔다. 강렬한 에너지체가 화살보다 느린 속도로, 팔로 집어던진 돌멩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날았다.

얼마 후 성벽의 한 구석에 갖다 박았고, 그녀는 흔들리는 조준을 예상해서 거칠게 쏘아낸 그것이 정확한 탄착지에 맞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쾅!


혹한의 기운이 돌벽을 때렸다. 순식간에 대기 중의 수분이 모조리 얼어붙었고, 파괴적인 수준의 한기가 성벽의 일각을 모조리 얼려버린다. 자연적인 원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었지만, 스킬은 애초에 그런 법이다. 이 부근의 습도로는 상상하기 힘든 견고한 얼음 장식이 순식간에 생겨났다.


한기는 끊임없이 요동쳤다.

정확하게 반대되는 역설이었지만, MP로 만들어진 '추위'라는 현상은 마치 열 에너지가 그러하듯 여기저기로 그 기운을 뻗쳐나가 더욱 적극적으로 얼어붙게 만들었다.

회색의 성벽이 얼음에 덮였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단순 무식하게 때려 박은 MP역시 충분한 기능을 해냈다.


정밀한 훈련과 지시를 통해서 전략을 수행해야 할 정병들이 그냥 몸통 박치기를 한 셈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었다.


그 뒤로 바람의 술과 불의 술은 위 아래로 움직여 그 가운데 지점에서 서로 합쳐졌다.


화염의 기운은 더욱 거세게 타올라 가시적인 불꽃을 크게 만들어냈고, 릿샤의 온 몸보다 몇 배는 거대한 불꽃이 허공에서 일렁거린다.

불꽃은 어느것도 아니었지만 비유하자면, 마치 농염한 액체가 흘러내리듯한 꼴로 자신의 흉폭함을 연출한다. 백주대낮에 보아도 기이해 보이는 빛이 허공에 나타나자 이제는 MP를 정밀하게 다루는 이건 아니건 모두가 눈길을 돌렸다.


애초에 첫 타로 인해서 거대한 폭음이 일어난 상황이다.


이러고도, 작힘 가의 병사들은 아직 당도하지 않는다.


애초에 전쟁을 상정하지는 않았던 것이지.


운트 작힘은 자신이 주도하는 전장터를 상상하고 계략을 꾸며왔던 자이지만, 아마 지금 당장 그가 노렸던 소수의 인원들이 본성을 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예상을 뛰어넘는 짓거리만이 가끔 체급이 높은 상대를 흔들 수 있는 유일한 기책이 된다.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면, 그것이 가능성 낮은 기책의 역효과라는 듯 파멸적인 결과가 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릿샤는 화염과 바람의 술을 합친 것을 자신의 아래 대각선 방향으로 내동댕이 치듯, 보냈다.


거대하며 비현실적인 불꽃의 투사체가 날아 얼어붙은 성면의 벽면을 두드렸다.


쿠르르르릉, 쾅! 하고,


거성의 일각이 무너지는 참 드물은 소리가 났다.


'태양의 숨결'과 '폭풍의 한 자락'이라는 유니크 스킬 두 종이었다. 릿샤의 주력 스킬이기도 했고, 시너지가 난다는 점에서 아주 좋은 조합이었다. 따로 사용해도 상당한 파괴력이었으나, 이렇게 여러 보조 스킬을 끼고 난폭하게 다루어낼 때 정순한 파괴력을 도출해낸다.


얼어붙은 성벽의 한 부분이, 마치 짐승이 베어 문 듯한 몰골로 부서져 사라졌다.


선전포고였다.


그 자리로 시내 근처 거리에 대기하고 있던 팀원들이 모조리 돌진했다.


로멜리아 가의 것이었고, 지금은 작힘 성 혹은 세슈칸 영주성이라 불리는 회색의 고성은 퇴락했으되 새로이 작힘 가가 만들어 둔 방벽이 근처에 있었다.

성벽은 그저 물리적으로 견고한 껍데기였지만 성벽 위쪽의 투명한 빈 자리는 아티팩트로 인해 물 샐 틈 없이 막혀 있는 곳이었다.


그냥 날아서 들어간다면 아마 마차, 슈페리얼 2호의 방벽에 막히듯 튕겨져 나갈 것이다.

대부분의 침입자는 MP를 흐트러뜨려 허공의 방벽에 구멍을 내려 하겠지만, 릿샤는 차라리 돌벽을 무너뜨리는 게 더 괜찮다고 생각했다.


유기적으로 만들어진 상대의 방어 아티팩트와 스킬들이 어떻게 연계 작용을 벌일 지도 모르고, 허공을 막는 투명한 방벽은 작힘 가가 차후에 자신들의 재력을 쏟아부어 만든 것이라 상태가 좋다.

생각보다 뚫는 일이 더 고될 수도 있었다.


반면 칙칙한 돌벽은 아주 오랜 시간 방치된 낡은 유물에 불과했고, 그것을 무너뜨리리란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상대 역시 별다른 함정을 설치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다.


돌벽의 조금 아랫단에 보기 좋은 구멍이 생겨났고, 그곳으로 여러 명의 초인들이 기다렸다는 듯 달려 들어가는 꼴이, 길드 지붕 위에 있는 릿샤의 시선으로 보였다.


그녀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의 술을 응용해 제 몸을 띄워 날렸다. MP가 많이 소모되고 운용이 까다로운 터라 장기간 사용하기에는 어렵지만 지금처럼 중요한 국면에 기동성 확보를 위해 쓰기에는 아주 좋은 스킬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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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엄.

예.

음.

뭐.

그렇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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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태양의 숨결, 폭풍의 한 자락 23.08.16 55 2 24쪽
59 58. 릿샤Rissha의 방 23.08.16 24 3 17쪽
58 57. 사연 23.08.13 33 3 24쪽
57 56. 누군가의 죽음 23.08.13 29 3 13쪽
56 55. 어느 법관의 정의正義 23.08.13 26 3 27쪽
55 54. 돌아가는 길 23.08.13 28 3 14쪽
54 53. Could you join us? 23.08.05 31 4 34쪽
53 52. 그는 그렇게 외치기로 했다. 23.08.04 32 4 35쪽
52 51. 굳세어라 안드레 23.08.04 27 4 19쪽
51 50. "허억." 23.08.04 28 4 20쪽
50 49. 달려가는 소시민들 23.08.02 33 4 25쪽
49 48. 갈색 사슴 기사단의 방어진 23.08.02 29 4 36쪽
48 47. 최태현은 빨랐다. 23.07.31 30 4 25쪽
47 46. 로웰 드버는 결심했다. 23.07.31 35 4 34쪽
46 45. 석별惜別 23.07.30 38 4 25쪽
45 44. 결정의 주체 +3 23.07.29 39 4 45쪽
44 43. 그리턴 자작가에서 그간 23.07.29 32 4 25쪽
43 42. 호아킨 팍스Joaquin Pax 23.07.25 32 3 29쪽
42 41. 사촌 형제 23.07.24 31 3 18쪽
41 40. 로키 캐슬 23.07.24 30 3 20쪽
40 39. 운트Unt의 의뢰 23.07.23 28 3 30쪽
39 38. 그리턴, 갈색 사슴 23.07.23 35 3 29쪽
38 37. 등산 23.07.23 28 3 31쪽
37 36. 트레이닝Training 23.07.23 28 3 32쪽
36 35. 제이미 숄더 23.07.20 29 3 51쪽
35 34. 전진하는 요새 23.07.19 38 3 32쪽
34 33. 강도단 23.07.19 32 3 31쪽
33 32. 붉은 다리 협곡 23.07.19 31 3 34쪽
32 31. 협곡 진입 23.07.15 34 3 31쪽
31 30. 마차 안 23.07.14 38 4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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