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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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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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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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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4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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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50. "허억."

DUMMY

***


“허억.”


거친 숨을 토해낸다.


로웰은 일반적인 사람들에 비해서는 아득히 높은 수준의 운동 능력을 갖고 있었다. 스텟으로 치자면, 뭐 10대 중후반 정도 될 것이었다.


그것만 하더라도 아주 건강한 헬스 매니아의 운동 수행 능력에서 1.x배 정도가 될 테니 준수한 운동신경의, 선수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초인들, 20이 넘어가기 시작하고 기력술이나 각종 전투직 클래스의 스킬들을 활용하는 자들에 비하면 아주 부족하다. 애초에 그가 갖고 있는 다양한 스킬들의 구성은 그의 마물술에 맞춰져 있고 아이템 또한 그러하니.


스텟, 스킬, 아이템 중에서 무엇 하나 이길 수 있는 것이 없고 그 외의 가늠 불가한 특이성도 없다면 순식간에 질 것이다. 워리어, 소드맨, 스피어맨, 아처, 레인저, 뭐 그런 류의 사람들에게는.


그의 금발 머리가 바람에 나부꼈다.


그가 입고 있는 짙은 잿빛의 로브 자락이 미친듯이 펄럭거렸고, 그것이 뛰는데 조금 방해가 되었기에 아주 거치적거렸다.

그럼에도 짜증이 치솟지는 않았다. 짜증보다는, 불안감과 긴장감 따위가 그의 마음을 채우고 있었으니까.


로웰의 머리칼 색은 각도에 따라 금발로도, 갈색 머리로도 보였다. 조금 짙은 색의 금발이었고 갈색이라기엔 옅은 면이 있어서 그렇다.


붉은 눈동자만은 어느 장소에서 보나 대강 ‘붉다’라고 할만한 색깔이다. 숨에 거칠어지고 근육의 피로도가 오를수록 인상이 찡그려졌다. 어쨌든 멈출 수는 없다. 당장 쉬고 싶었지만, 살아남아야지, 로웰 드버··· 라고 저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그가 자신이 다루는 마물들에 비해 뒤쳐져 달려가고 있을 때, 선두의 다이어 울프 무리가 대로변으로 나섰다. 빛나는 하늘 아래 검거나 잿빛이거나, 흰색이거나 갈색이거나··· 여러 종류의 다이어 울프들이 사람을 물어 뜯으러 달려 나갔다.


하나같이 공통점은 개 과의 동물이라기엔 비대한 체격들 뿐이다.


“으라!”


늑대들은 소리도 없이 달려든다.


로웰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몬스터 무리의 어그로를 반전시킬 말이다. 일단은 상황을 난전과 혼전으로 이끌어서 기사들이 암습에 참여하도록 해야 했다.

지금 어그로를 끌고 있는 대상은 운트 작힘의 병사들이었다. 자신의 평안한 노후를 위해서, 미안하다만 죽어라- 작힘의 개들이여··· 따위의 생각을 머릿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그는 자신의 긴장감을 해소해보려 했다.


잔인하고 결단력 넘치는 사내처럼 지껄여보았자 단번에 마음이 편안해지지는 않았다. 그는 간담도 그리 크지 못하고, 잘 쪼는 인간이었다.


지금도 자신의 평화와 생명을 위해 감행하고 있었지만 혹여나 기사들이 미쳐서 자신의 목을 날려버리는 데 성공하지 않을까 굉장히 쪼그라든 담력 상태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다이어 울프 무리의 움직임이 마물술사인 로웰의 기감에 선명하게 잡힌다. 그는 MP를 다루었고, 몬스터들과 MP로 연결되어 있었다. 마물을 다루며 그것들을 멀리 보낸다면 때론 로웰 드버는 감지술사와 같이 주변 상황을 분석할 수 있었다.


감지술사와 같이, 였고 전문적인 탐색자들에 비한다면 조금 모자란 면이 있기는 하다. 그가 느끼는 시야와 정보는 초음파 기술을 이용해 바라보는 세계처럼, 색깔도 없으며 형태또한 불분명하고 마물과 연결된 초상력의 흐름에 따라 느껴지는 세상이었다.


그가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개체와 가까이 있을수록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고, 거대한 범위를 한 번에 눈에 담고 감지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혼자서 유격전을 펼쳐야 한다면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하니 어떻게든 해내겠지만. 본격적으로 써먹기에는 부족한 감지술이다.


그럼에도 일단, 몬스터들의 행동을 상세 조정할 정도는 되었다.

다이어 울프가 마주한 기사들이나, 마차의 형체, 그 근처 사람들의 진형 따위는 느껴진다.


눈을 감아도 들어오는 정보였고, 그는 다이어 울프들의 움직임을 조금 둔하게 했다. 어차피 몬스터들이니, 그것들의 소모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마침 황소나 같은 거체를 지닌 다이어 울프들이다. 그 질긴 가죽에 어지간한 칼집이 나도 단번에 넉다운 되는 일은 없다. 시간을 벌기에는 딱 좋았다.


으르렁 거리듯, 배고픈 맹수가 달려들듯 가던 다이어 울프들의 움직임이 기사들의 바로 앞에서 한 템포를 쉬었다. 그대로 관성을 이용해서 박치기라도 했다면 기사들은 낭패를 면치 못했으리라.

보통 다이어 울프가 그토록 관성과 역학에 대해 잘 이해하고 무술을 하듯 제 몸을 다루지는 않지만, 질서 정연하게 달려든 무리의 모습을 본다면 그런 장면도 상상해볼 수 있었다.


다이어 울프를 마주한 기사들은 속으로 내심 안심을 했다. 조금 느리게 달려오는 거체의 괴물들을 향해서, 인마의 기세를 돋우며 한 기사는 긴 창날을 내찌른다.


그와 함께 다가오는 것들을 향해 기사들의 방진이 작동했다. 기계는 아니었고 직접 제 손으로 휘두르는 칼이 만들어내는 방진일 뿐이다. 곧 기력술이 타오르듯 쓰여지며 그들의 무술이 발휘되었다는 뜻이다.


제각기 기세를 일으킨다.

MP가 유형화될 정도의 거친 무사들의 호흡이다. 희미하게 빛깔마저 담는 종류도 더러 있었다. 고유의 개성처럼 발현되는 MP의 색깔들은 다채롭게 한낮의 거리를 물들였고, 밝게 빛나는 검날이나 창날 따위, 혹은 도끼날을 휘두르며 그들이 춤을 춘다.


고도로 단련된 무술은 춤이나 같았다. 유연하게 흐르고 멈추고 이어지는 그 구간이 다음 동작을 위해 철저하게 예비된 전조 동작이라는 점이 그러했다. 일정한 리듬감, 혹은 가끔의 변주를 만들어내면서 제각기의 자리에서 무술가들의 춤이 나타났다.


가장 앞선 자리에 있는 옌과, 가장 말단에 있는 켄의 춤이 두드러진다. 한 손검이지만 그 기세가 매섭다. 검진의 범위에 들어오면 거침없이 휘둘러지는 검날이었으며, 그 검날에 서린 기력이 어떤 기사들보다 매서웠다.

한 치 그 이상이 더욱 길어진 검날은 절삭력도 파괴력도 대폭 증가했다. 기력술의 중급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휘둘러진 검끝의 유형화되어 맺힌 검기가 날아간다.


투사체를 날리듯이 그 영향력이 흩뿌려지고, 검날의 범위 조금 넘어까지 칼날에 베이게 된다.


MP로 이루어진 검날은 그 어떤 소재의 명검보다도 날카로울 수 있었다. 검날에 쓰인 MP의 양과 질에 따라서 얼마든지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검이었고, 옌과 켄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수준의 검사들이다.

정병들로 이루어진 그리턴 자작가의 기사단에서도 부기사단장과, 검술 교관을 맡을 정도의 역량들이니.


의기와 자신들이 쌓아올린 검술의 정수를 뽐내며 다이어 울프 무리의 이빨, 얼굴 거죽, 혹은 발톱 따위를 가르고 부숴대며 그들이 자리를 지킨다.


산책로에서 느닷없이 벌어진 격전이다. 기사들은 싸우면서 약간의 의구심이 조금 들었다. 달려들던 기세나, 몬스터 구성에서 짐작가는 강함에 비해 난이도가 낮다. 다이어 울프들은 맹렬하게 짓쳐들던 것과 달리 싸움에는 그다지 맥아리가 없는 듯하다.

기사들의 공격을 제 몸으로 받아낼 뿐, 거체를 이용한 강력한 공격은 도리어 자중하고 있었다.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로까지 느껴진다. 몬스터를 다루는 고등 지능의 무언가가 있는가?


일반적으로 콘란드 대륙인들이 볼 수 있는 몬스터 이상의, 상위 몹의 경우에는 그럴지 모른다. 게임 내 준비된 ‘마왕’ 시나리오를 위해서 존재하는 무수한 몹들이었다. 인류의 최강자들이 아직까지 그 진가를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상위 몹들 또한 적극적으로 인류를 적대하지는 않는다.


숨어 있는 비처로 가서 그들의 영역을 침범한다면 무섭게 달려들겠지만, 부러 그러는 할 일 없는 자들이 많지는 않았다.

게임 서비스 초창기에는 무수한 플레이어들이 이곳저곳을 들쑤시다가 상위 몹에 게임 오버 당하기가 일쑤였고, 지금에 와서는 대략적인 전도가 완성되어 몬스터 맵에 따라 위험 지역은 기피 대상이 되었다.


데슈칸 산맥의 심처 역시 그런 위험지 중 한 곳이었다. 적어도 고수, 라고 불릴만한 건덕지가 생기는 100근처의 레벨이 아니라면 힘든 곳이었다. 살아남기에.


“크압.”


옌이 굵은 톤으로 거친 기합인지, 비명인지를 지껄이며 다이어 울프의 앞발 하나를 막아내어 밀쳐낸다. 단순히 밀치는 것만이 아니라 검에 서린 검기가 옅은 자색빛을 띄면서 크게 베어냈다. 발톱 하나의 일부가 잘려 나갔고, 발바닥도 크게 베여 피가 터져나왔다.

플레이어가 아닌 NPC, 옌의 시각에는 모자이크가 아닌 실제 짐승의 피와 상처가 보인다.


시야가 일순 가릴 수도 있지만 상관은 없다. 어차피 전투 중에 근거리 기력감지를 사용하는 건 기력술사들의 싸움법의 기본이었다. 능숙하게 말을 다루면서, 그들은 말 위에서 전투를 계속해나갔다.


사실 언제든지 말들이 당하고 그들이 땅 아래서 싸워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다이어 울프들은 으르렁거리며 순서를 지키고 달려들었다. 말들을 상하게 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사람들이 무기를 든 궤적 속으로 자기들의 몸을 집어넣을 뿐이다.


기이한 일이었다. 정말 상위 몹의 소행이라고 하더라도, 몬스터들의 희생을 유도하는 방식을 쓸 이유가 있는가?

상위 몹이 아닌, 기행을 벌이는 다른 누군가의 일이었다. 제냐와 최태현은 뒤에서 부지런하게 화살을 쏘아대고 있었다.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신명하게 쏘아댔지만 실제 물집이 잡히는 일은 없다.

비련의 시나리오 속 플레이어 신체에 물집이 잡히려면 정말 상상 이상의 고강도 트레이닝을 반복해야 할 것이었다.


초인적인 신체 능력은 강력한 회복력이 보조로 받쳐주었고, 신체 변화에는 일관성을 이겨낼 만한 강력한 자극이 필요했다. 맨손으로 터널이라도 뚫어내면 생길지도 모른다. 그 또한 적절한 휴식이나 포션 복용이 동반된다면 굳은살 따위의 변화가 생기기 전에 자연 치유, 회복과 스텟 증가로 금세 사라질지도 몰랐고.


게임 내의 플레이 타임 중 전부를 쉼 없이 수작업 노동에 투자하는 장인류, 제작 스킬을 주력으로 삼는 플레이어들의 경우가 아니면 어려운 일이었다.


어쨌든 그럴만한 느낌이 들만큼, 둘은 부지런히 화살처럼 생긴 포탄을 날려댔다.


정면에서 도끼로 내려친 수준의 충격을 주는 포탄이었다. 대단한 장사가 본격적으로 휘두른 도끼 말이다. 수준 낮은 소형 몹 정도는 한 방에 절명 시킨다. MP가 한 발 한 발 날릴 때마다 쭉쭉 달았다. 플레이어들은 기본 포션 따위가 거의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격은 있었으나 그들이 레벨 업 시 얻는 돈이나, 적극적인 사냥 활동과 전리품들을 통해 얻는 수익에 비해서 적은 것이 일반적이다. 조금 고급 종류의 포션들을 다종 복용하려 하면 그 때부터 비용이 기본 수입을 넘기 시작하지만, 아직 제냐와 최태현은 그럭저럭 수입 내의 지출이었다.


이따금씩 전리품들을 대도시에서 흥정을 통해 판매를 한다거나, 그걸로도 모자라면 보통 레벨 업 시 얻는 가상점수로 젠Jen을 환전해 사냥 비용을 충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1개의 이매지너리 포인트로 얻는 돈의 양 역시 증가했으므로, 사냥 비용 정도는 충분히 충당 가능했다.

돈을 버는 가장 쉬운 일은 명예 점수를 높이는 일이었는데,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게 된다면 경제 구조 위에서 일을 하는 것 역시 쉬워졌다. 스스로가 거상이 된다거나, 어마어마한 유명인이 되어서 그 이름값만으로 큰 재정을 무담보 대출해주는 거부들이 주변에 생긴다거나, 뭐 그런 식이다.


봉건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이 가장 일반적이었으므로, 어딘가의 영주가 된다면 그 세수만으로 부를 유지하고 불려나가는 일이 가능할 테다.


제냐와 최태현은 푸른 물약을 화살을 몇 발인가 연속해서 쏘아내다가, 그 중간에 인벤토리를 통해 꺼내 쑤셔넣듯 나발을 불어 마시고, 다시 물처럼 MP를 쓰고, 반복했다.

제냐의 경우에는 도중에 틈이 날 때마다 썬더 볼트나 파이어 볼을 섞어 난사했다.


가만히 달려드는 괴물들 무리에 화살이나 초상 스킬을 날려대고 있자니, 제냐로서는 문득 ‘꽤 괜찮은 경험치 밭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긴 했다.

생각보다 몬스터들의 공격이 교활하지 않고 공격성이 적어 피해가 적은 탓이다. 순식간에 진형이 무너지고 난전에 돌입했다면, 이렇게 편하게 사냥을 할 수는 없을 텐데.


그 때는 스킬과 스텟 증가에 더욱 도움이 되는 하드 모드 사냥이 시작되는 것인데, 지금은 안전한 장소에서 난사 공격으로 레벨 업에 도움이 되는 경험치 수급을 하고 있었다. 제냐에게는 확실히 부족한 종류의 사냥법이었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공짜로 몰이 사냥을 해주는 좋은 도우미를 만나서 이지Easy 레벨링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플레이어들 중에서는 이런 사냥 환경을 제공해주고 돈을 받는 이들도 심심찮게 있었다.


쾅, 쾅! 하고 적당한 시간마다 번개탄이나 화구탄이 날아가 몬스터들의 몸체에 처박혀, 터져나갔다. 강렬한 빛이나 소리를 동반하며 퍼져 나가는 폭발은 근처에 있는 소형 몹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다이어 울프의 경우에는 그 몸체 하나를 커버하는 것에 그쳤지만.

단단한 살가죽을 뚫고 피부 아래에 상흔과 열상, 참상 따위를 남기고 있었다. 번개의 투사체를 날리는 썬더 볼트는 맞는 순간 폭발적인 파괴력과 함께 MP로 이루어진 번개의 검이 몹들의 몸을 갈랐다.


그렇게 벌어진 상처의 틈을 통해서 폭발력이 스며들었고, 내장까지 진창이 되며 치명상을 입는 것이다. 다이어 울프를 얼마간 상대하고 있자 머지않아 고블린이나 오크들까지 등장해서 산책로의 길목을 가득 메웠으므로, 조준 따위는 필요 없었다. 마차 위에 올라타 그저 무식하게 MP를 쏟아낸다.

그것이야말로 초상술사들이 이상적으로 바라는 전투 환경이기도 했다. 안전한 포대 환경을 구추가고 MP 과용으로 스킬 난사. 포션 복용. 밍밍한 맛의 포션이 목구멍을 통해서 많이도 넘어간다.


초인적인 신체였고, 애를 쓴다면 많은 물을 마실 수 있었다. 아마 포션도 액체류이니 인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치를 넘는다면 더 이상 당분간 포션을 쓸 수 없었다. 전투 중에 소변을 누고 온다면 모르겠지만. 그도 아니라면 일부러 땀을 내는 수도 있겠다.


포션 흡수를 돕기 위해서 소화 작용에 이점을 주는 스킬이나, 수분 배출을 도와주는 패시브 혹은 액티브 스킬 류도 있었다.

다양한 스킬과 메커니즘이 시스템 속에 있었고, 그것들의 연계적인 작용과 다양한 스킬 트리Tree는 개발진들조차 다 짐작하지 못한 플레이 스타일들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전장은 기묘한 분위기였다.


여기저기서 초상 스킬의 폭음이 터져나온다.


십 여 명의 기사들은 진을 친 채 기력술의 작용으로 폭발적인 검격을 휘둘렀고, 마차의 곁에 자리를 잡은 워 메이지들이 제냐가 그러하듯 다양한 폭격을 퍼부었다. 멀찌감치 곡사로 날아가 땅바닥에 꽂히는 투사체들은 여러 종류의 원소였다.

거대한 바윗덩이도 있었고, 제냐가 그러하듯 썬더 볼트를 쓰는 자도 있었다. 둘이었지만 사용하는 원소는 네 종류다.

다양한 원소를 습득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건 뛰어난 초상술사라는 의미도 되었다.


한 가지 계통을 더 익혀내는 일은 한 가지 무기를 새롭게 다루는 일보다 조금 더 까다롭고 재능도 필요했다. 플레이어들의 경우엔 공략법과 대부분의 스킬이 습득 가능한 온전한 재능의 캐릭터가 주어지지만, NPC들은 더 많은 한계에 부딪혀야 하니.

능숙하게 전장의 흐름 속에서 공격량을 늘려가는 두 명의 워메이지는 제법 수준이 높은 자들이었다.


‘칸’이라는 이름의 워메이지 하나는 로즈와 덴드가 바라보고 있는 말머리 앞쪽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있었다. 시야가 낮았지만 그 정도 높이로도 적들의 모습은 분명하게 보였다. 앞으로 손을 뻗을 때마다 파치직, 거리면서 전기가 튀었다. 뇌전술사다. 썬더 볼트를 비롯해서 볼, 스피어 류의 다양한 형태로 번개를 다루고 있었다.


닿기만 해도 거죽이 타들어가고 감전 효과까지 있는 진짜배기 뇌전 스킬들을 다룬다. 제냐의 썬더 볼트는 아직까지 그런 다양한 효과를 내는 일이 조금 부족했다. 파괴력을 늘리다보면 결국 속성값은 낮아지고, 순수한 에너지 탄처럼 되어버린다. 단순한 폭발력은 높았지만 원소 공격으로 얻게 되는 다양한 특수성은 잃어버리는 셈이다.


피격 시 방전하는 전류의 양이나 전압을 높이다 보면 폭발력이 조금 줄어들어서 강한 신체를 가진 몬스터들에게 단번에 치명상을 입히는 일이 힘들어진다. 거대한 다이어 울프들은 ‘초월방어력’ 또한 가지고 있어서, 순수한 MP로 이루어진 원소 계열 투사체들의 특수 효과에 약간은 저항을 한다.


또한 높은 HP와 그에서 비롯되는 신체적인 터프함은 전류로 지져진다고 하더라도 죽거나 기절하지 않고 멀쩡하게 달려들기까지 했다.

마물이라고 부르기 좋은 모습이었다.


마차의 뒤쪽에 서서 양 손을 뻗은 채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워메이지 하나는 바람과 돌덩이, 그리고 불길까지 다루어냈다. 삼원소 사용자다. 개개의 속성별 능력치가 물론 중요하지만, 여러 속성을 다룰 수 있다는 건 술사로서 유틸성, 전장별로 활용도가 높아지는 일이었고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과도 같았다.


거기다 더블 캐스팅이 가능해서 복합적인 구사가 가능하다면 더할 나위 없다. 제냐는 아직 더블 캐스팅까지 써내지는 못했다. 쓴다고 해봐야 파이어 볼과 썬더 볼트가 따로 노는 일에서 그다지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 초상술은 조금 더 깊이 파보아야 하는 분야였다.


한쪽 손의 뻗은 손바닥 앞에서 바람이 휘돌았다. 뚜렷하게 구체로 형성되는 유색의 풍체風體는 작은 소용돌이를 형상화한듯한 모양새다. 그 거친 기운이 외형으로도 짐작되는 풍속이었고, 그것이 구형의 테두리 내부로 갇혀서 끊임없이 회전하고 충돌한다. 거기다 반대쪽 손의 손바닥 앞에는 불길이 나타났다.


양쪽 손 앞에 나타난 서로 다른 속성의 투사체 두 개가, 서서히 거리가 좁혀들더니 손바닥이 마주치는 것처럼 붙었다. 반발을 아주 잠깐, 미세하게 일으키나 싶었는데 다음 순간 사라지고 서로의 경계선이 허물어졌다.

두 구체는 외벽이 사라지고 그 내용물이 섞여 들어갔다. 구형의 외벽 내부에서 소용돌이치는 바람의 흐름은 불꽃의 옷을 입게 되었고, 불꽃의 소용돌이가 그의 손 앞에 생겨난다.


마크 로빌턴이라는 이름의 워메이지는, 그대로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을 먼 앞에다 투사했다. 투포환처럼 묵직하게 날아간 구체는 포물선을 그리며 기사들을 넘어, 후방의 오크 무리 즈음에 떨어졌고, 그것에 직격당한 한 마리는 그대로 어깨가 녹아내리면서 비명을 질렀다.


강력한 화염이 폭발했고, 구체의 외벽이 허물어지며 내부에 갇혀 있던 불꽃의 소용돌이가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마치 휘감는 혀처럼 채찍처럼, 불길이 주변 몬스터들을 휘감는다. 그 불길은 겉으로 보기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고온인듯, 마치 ‘용암에 닿는다면 물질이 이러지 않을까’싶은 상상처럼 몬스터들의 신체를 태우고 녹였다.


“키에에에엑!”


몬스터들이 가득 메운 산책로 후방, 그러니까 대적하고 있는 무사들에게서 먼 쪽으로부터 비명이 터져나왔다.


열상은 로웰의 지배로 인해 입을 다물고 있던 몬스터들이 허물어지듯 비명을 토해내게 되는 원인이 된다.


전장은 말했듯 기묘한 분위기였다.


달려든 몹들의 파도는 전진해왔을 때의 기세처럼 강렬하지 않았고, 거기다가 마치 무언가의 일정한 지시나 지배를 받듯 순차적으로 사람을 향해 공격해왔다. 그다지 의욕적이지 않은 전투의 장면은 이것이 현실인가 싶은 기이함이 있었고, 거기다가 소리도 잘 지르지 않는 조용한 몬스터 떼는 참기 어려운 이질감이었다.


로멜리아 일행, 그리턴 가의 병사들과 제냐를 비롯한 호위무사들이 전투의 분위기를 달구고 있을 때 그 뒤를 선두로 뒤따르던 작힘의 기사들이 기회를 엿보다, 빈틈을 노려 달려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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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58. 릿샤Rissha의 방 23.08.16 23 3 17쪽
58 57. 사연 23.08.13 32 3 24쪽
57 56. 누군가의 죽음 23.08.13 27 3 13쪽
56 55. 어느 법관의 정의正義 23.08.13 25 3 27쪽
55 54. 돌아가는 길 23.08.13 26 3 14쪽
54 53. Could you join us? 23.08.05 29 4 34쪽
53 52. 그는 그렇게 외치기로 했다. 23.08.04 29 4 35쪽
52 51. 굳세어라 안드레 23.08.04 26 4 19쪽
» 50. "허억." 23.08.04 26 4 20쪽
50 49. 달려가는 소시민들 23.08.02 31 4 25쪽
49 48. 갈색 사슴 기사단의 방어진 23.08.02 27 4 36쪽
48 47. 최태현은 빨랐다. 23.07.31 29 4 25쪽
47 46. 로웰 드버는 결심했다. 23.07.31 33 4 34쪽
46 45. 석별惜別 23.07.30 35 4 25쪽
45 44. 결정의 주체 +3 23.07.29 35 4 45쪽
44 43. 그리턴 자작가에서 그간 23.07.29 29 4 25쪽
43 42. 호아킨 팍스Joaquin Pax 23.07.25 29 3 29쪽
42 41. 사촌 형제 23.07.24 29 3 18쪽
41 40. 로키 캐슬 23.07.24 28 3 20쪽
40 39. 운트Unt의 의뢰 23.07.23 27 3 30쪽
39 38. 그리턴, 갈색 사슴 23.07.23 33 3 29쪽
38 37. 등산 23.07.23 25 3 31쪽
37 36. 트레이닝Training 23.07.23 26 3 32쪽
36 35. 제이미 숄더 23.07.20 28 3 51쪽
35 34. 전진하는 요새 23.07.19 34 3 32쪽
34 33. 강도단 23.07.19 30 3 31쪽
33 32. 붉은 다리 협곡 23.07.19 29 3 34쪽
32 31. 협곡 진입 23.07.15 31 3 31쪽
31 30. 마차 안 23.07.14 36 4 30쪽
30 29. 돌아가는 23.07.13 35 4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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