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새글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6.30 02:56
연재수 :
358 회
조회수 :
9,020
추천수 :
771
글자수 :
3,405,694

작성
23.08.04 03:41
조회
25
추천
4
글자
19쪽

51. 굳세어라 안드레

DUMMY

*


훈련 받은 작힘 가의 기사들은 상당한 정예이다.


산슈카 유수의 기사단들에 비해서도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 실력이리라. 개중에서도 십인장, 안드레 챈의 솜씨는 날카로웠다.


그가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거무튀튀한 복색으로 달려든다. 그 뒤를 마찬가지의 차림새인 부하단원들이 따랐다.


로웰의 마물들은 과연 대단한 기세였다. 이런 일을 하는 데 있어 로웰 드버만큼 쓸만한 작자도 드물리라.


안드레는 산책로와 산림의 경계지에서 기회를 살피다가, 전투가 무르익는다 싶었을 때 나섰다. 부하들은 말하지 않아도 그와 행동을 함께 했다.


로웰과 호아킨, 릿샤는 조금 뒤쳐진 모양이다.


기사들과 함께 금방 도착한 두 명의 용병들이 가세했다. 그들도 올라탄 호랑이 위의 신세였다. 이미 벌인 작전을 도중에 그만둘 수도 없었고, 운트 작힘의 지랄맞은 성정과 그 복수가 두려웠으므로 칼을 들고 뛰어든다.


나무의 중턱, 이랄만한 나뭇가지 위 즈음에서 각도를 계산한 안드레는 고블린의 어깨, 오크의 대가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이어 울프의 등께를 밟으면서, 마차를 부수기 위해 달려들었다.


몬스터들의 위를 타고 넘나들듯 달리는 초인적인 움직임에 좌중의 시선이 분산되었다. 몬스터들을 비교적 넉넉하게 상대하던 그리턴 가의 기사들이었으나, 당장 전선을 비우기는 부담이 되었다. 우선 워메이지들이 쏘아대던 초상 스킬의 궤적을 바꾸어 의문의 사내에게로 향했다.


아까 쏘아낸 터라, 약간의 시차가 있었다.


가장 반응하기 좋은 것은 아무래도 지붕 위에서 장궁을 들고 난사하던 제냐 킴이었다.


제냐는 눈빛을 똑바로 하며, 갑자기 나타난 검은 후드 로브의 사내를 처다보았다. 사내는 제냐를 노리지 않는다. 그 고개와 시선이 향하는 곳은, 마차 내부였다.

제냐는 그의 목표를 깨달았다.


운트 작힘이 보낸 정예 암살가이리라.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 더욱 확신으로 찼다. 로멜리아 가의 재흥을 위한 퀘스트는, 과연 만만치 않았다.


제냐는 들고 있던 장궁을 버렸다. 그 찰나의 순간에 비스트 슬레이어를 쥘 수 있게끔, 이미 근접전을 예상하고 꺼내두었던 상태의 손잡이를 쥐었다.

스르렁, 하고 칼날이 칼집 표면을 미끄러지며 튀어나왔다. 비스트 슬레이어의 표면은 푸르다. 전에 없던 예기를 더했고, 둔탁한 맛이 조금 사라졌다.

그러나 그건 무게감에서 파생되는 충격이 칼날로 인해 변한 것에 불과했다. 여전히 묵직한 도신의 외날도는 ‘일도양단’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무기이다.


전에는 베이지 않는 부분을 때려 부쉈다면, 이제는 온전히 칼날에 실리는 중량이 참격으로 전환된다. 쇳덩이라도 베어낼 것 같은 생김새다. 실제로, 기력술을 최대한 끌어낸다면 그럴 지 모른다. 제냐의 기력술은 궁술보다는 검술에 조금 더 적합했다.

재능의 차이라기보다, 경험의 차이였다. 그는 검술로 좀 더 많은 사선을 넘었다.


지금의 이런 아웃브레이크는, 여태껏 로키 산에서 겪었던 고난에 비해 그리 심각하지도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달려드는 로브의 사내를 두고 침착하게 비스트 슬레이어를 쥐어, 그대로 관성을 버리지 않고 앞으로 뿌리듯 꺼내고 상대를 견제할 수 있었다.


사내,


로브 속으로 눈빛을 감추는 안드레 챈은 마차를 노리고 있다. 그의 뒤에, 어느덧 따라붙은 기사단의 정예들이 발놀림 빠르게 진형을 맞추었다.


칼날에 기력술이 웅웅대며 사용된다. MP를 먹듯이 칼날이 빨아들였다. 보이지 않는 아지랑이가 일렁거렸고, 약간의 반투명한 느낌이 있었기에 칼날 주위 공기가 이지러져 보인다.


그는 허공을 날았다.


멈춘 시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안드레의 집중력은 최고조에 달했다. 로브 아래 갈색 눈동자가 빛난다.

사실 그의 홍채는 푸른색이다. 이런 일을 할 때 작힘 가의 기사들은 변장 아티팩트를 사용하고는 한다. 그다지 고기능이나 비싼 물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목구비를 약간 바꾸어 상대의 눈을 속이는데 유용하다.


다가간다.


마차가 가까워진다.


안드레는 지붕 위에 선 제냐를 보았다. 평범한 세시앙 인이다. 아니, 평범하지는 않나? 외날도 하나를 들고 자신을 향해 날을 들이미는 꼴이 제법이다. 그래도 그의 수준에서 본다면 한 두 수 확실하게 아래였다. 큰 문제까지는 아니다.


그의 목적은 검은 머리의 사내가 지키고 선, 그러며 밟고 있는 마차 자체였다. 마차에 다가갈수록 형체가 뚜렷하다.

작은 창 하나가 나 있군.

안드레는 보았고, 생각했다. 그 마차의 열린 구멍으로부터··· 화살을 겨누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석궁 종류인가? 그의 동체시력은 순식간이랄만한 순간 속에서 용케 상황을 분간해냈다.


크게 상관은 없다. 두르고 있는 로브는 십인장 이상의 단원들에게 주어지는 보급품이었고, 간단한 기능의 아티팩트다. 평범한 투사체라면 한 두 발은 능히 막고도 남는다. 이런 일이 있을까봐서였다.

달리 말하면, 두려워하지 말고 작힘 가의 목적을 위해 몸을 좀 더 내던지라는 뜻으로도 보인다. 이런 망토를 간부급들에게 주는 운트 작힘 백작의 의도는.


그래도 혹시나 해서, 심장부 따위에 기력을 조금 돌리기는 한다. 그의 기력술은 상당한 경지였고, 의지력 역시 뛰어나다. 초상스킬에서 MP를 다루는 것과 기력술의 운용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어차피 의지력이라는 수치가 쓰이기는 한다. 정신력 계열 스텟들이 증가해야 하는 건 일맥상통하다.

의지를 일깨우자마자 체내의 MP일부가 쏜살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움직여 그의 몸통, 급소 부위 따위를 보호했다. 혹시나 망토 너머로 충격이 전해질까 봐서였다.


날듯이 움직인 그의 몸에 마차에 다가간다. 움직임이나 상황의 흐름보다 그가 감각하는 신경 작용이 훨씬 예민했기에 그는 세계를 느리게 느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기사라면 모두가 함양하는 능력이기도 했다. 이런 감각의 변화가 없다면 자신의 움직임조차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할 테다.


제냐가 자신이 아닌 마차로 내려 꽂히는 안드레를 보고 지붕을 박차며 달려들기 시작했고, 그것보다 안드레가 지붕에 닿는 것이 더 빨랐다.

포탄처럼 날아온 그의 몸이다. 검격은 조금 더 날쌔다.

마차의 창 틈 사이로 석궁살이 날아든다. 안드레의 몸통을 노리는 일격이었다.


줄리앙의 손에서 발사되는 것이었고, 제냐나 최태현의 그것처럼 기력술로 강화된 궁술이 아닌 터라 견제기 이상의 효용은 크게 보기 힘들다. 방호 아티팩트를 두르고 달려드는 안드레 정도의 기사는 이미 중형 몬스터 이상의 방어력을 갖고 있었다.


줄리앙은 고민했다. 어떻게 대처할까.


창틈 너머로 빛나는 노인의 눈동자가 예리하며 예민하다. 노인이되 그 움직임이 그다지 느리지는 않았다. 경험많은 노기사는, 석궁 대신 칼을 쥐기로 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그들 사이로 안드레의 칼이 휘둘러졌다.

석궁은 로브의 겉면, 오른쪽 복부 즈음을 찔렀으나 꿰뚫지 못했다. 충격으로 자세가 약간 삐끗하긴 했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후웅, 하고 휘둘러지는 안드레의 검격이 날카로운 반월을 그렸고, 슈페리얼 2호의 외부를 강타했다. 쾅!


*


슈페리얼 2호를 감싸안은 푸르스름한 빛의 방호막이 일렁거렸다. 각도에 따라 초록빛도 얼추 보이는 것이었다.

보호막이 출렁거린 이유는 당연히 외부 타격으로 인한 것이었고, 안드레의 검격은 어지간한 바윗덩이가 날아드는 것 이상의 파괴력을 선보였다.


안드레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 기본적으로 방호 아티팩트의 방어력은 일순간의 큰 충격에 약하기 때문에 뒤이어 오는 다섯 명의 기사들이 단숨에 뛰었다. 그들 역시 안드레가 그러했듯 몬스터들의 머리를 밟고 다이빙을 하듯 몸을 날린다.


제각기 검 하나씩들을 꼬나쥐고, 그레이 하운드 기사단의 저력을 보여주겠다는 듯 기세를 끌어올렸다.

기력이 타오른다. 기사들의 싸움은 기력의 싸움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들을 막을 새가 없었던 갈색 사슴 기사단의 일원들은 머릿속으로 심히 고민을 했다. 눈 앞의 몬스터들을 내버려두고 들어가 막아야 할까.


생각을 하는 와중에 이미 다섯 명의 검사들이 푸른 빛의 방호막을 깨부수기 위해 검날을 휘둘렀다.


그 때였다.


방호막이 깨지기 전에 변화가 먼저 일어났다.


"크르르라라라!"


기성, 그리고 괴성을 지르면서 얌전히 전투를 치르던 몬스터 군단이 돌변했다.

본래 몬스터들은 그렇게 싸운다. 온갖 소리를 내고 흉포함을 드러내고 인간에게 공포를 준다. 식인을 그것들의 본능으로 설정해둔 마물들이었다.

인류의 대적자들.


그리턴 가의 기사단은 움찔하며 한 순간 긴장했다. 계속해서 느끼던 이상함의 해답처럼, 이제야 몬스터들이 본색을 드러내는 구나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좌중의 예상과는 달리 몬스터들이 갈색 사슴 기사단원들을 치지는 않았다.


다이어 울프 한 마리가, 그 몸을 웅크렸다가 재빠르게 뛰었다. 주변의 몇 마리는 동시에 그 한 마리를 보조하듯 뛰어든다.


여러 마리가 한 마리 있던 자리를 채웠고, 밀려나듯이 한 놈이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간다. 갈색 사슴 기사단의 방진이 뚫렸다. 어쩔 수 없었다.

그 거체로 들이미는데, 일격에 반토막을 내지 않고서는 저지력이 부족하다.

정 걱정이라면 자신의 몸으로라도 막을 생각이 있었지만 다이어 울프의 방향이 이상했다.


늑대의 아가리가 벌려진다. 괴물같은 크기의 회색 늑대는 장모를 휘날리며 곧장 몇 걸음을 더 걸었고, 그 앞을 막아서는 것이 없었다.


다른 몬스터들의 움직임도 이상했다. 몸뚱이를 들이미는 꼴이었으나 기사들은 한결같이 느낀다. 자신들을 향해 공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기이한 순간이 지났고,


기사들의 틈바구니를 지나갔던 다이어 울프는 그 관성 그대로 박치기를 했다. 안드레를 향해서.


*


“이런 씹?”


덤프 트럭에 치인다면 그런 기분일 것이다. 아, 물론 안드레 챈은 덤프 트럭을 모른다. 제냐는 눈앞에서 성난 다이어 울프에 치이는 사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고,


안드레는 직접적으로 후드자락 아래서 표정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욕지기를 뇌까렸다. 그레이 하운드 기사단의 십인장도 인간이었고, 다이어 울프가 지나치게 빨랐다. 전혀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순간에 날아드는 공격이 있자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손쓰기도 전에 그 몸이 부웅 떠서 다른 곳으로 날려졌다.


그가 입고 있는 후드 로브는 작힘 가에서 특별히 만들어 보급한 것이다. 투사체를 비롯해서 각종 충격을 몇 회분 막아주는 보호막이 내장되어 있다. 충격의 순간, 아티팩트의 그 효과는 빛으로 터져나오며 안드레를 지켜섰으나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어차피 중요한 건 당장의 치명상이 아니라 다음 검격을 위해 잡던 자세가 흐트러지고 멀리 튕겨 나가는 문제였으니.

안드레는 다이어 울프에 비해 아주 작았지만 초인 중에 다시 한 번 수준을 높여 걸러도 남을 만큼의 초인이었고, 정말 쉽게 죽지는 않는다. HP만 해도 20,000대에 달한다. 그러나 디딜 곳도 없이 받혀버리자 큰 저항 없이 날았다. 강렬한 기세로 마차를 향해 다가오던 것마냥 멀어졌다.


쿵, 하고 시야가 흔들림과 함께 충격이 느껴졌고 자신이 이동하고 있었다. 초인적인 감각은 다음 순간에 곧바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했다. 안드레는 걷어차인 공처럼 옆으로 이동해 바닥에 부딪혔고, 다시금 탄력적인 공처럼 일어나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의 바로 몇 걸음 뒤에 그리턴 가의 기사가 버티어 서고 있었다.


자세히 말해, ‘윤 게럴트’라는 이름의 기사였다. 갈색 사슴 기사단 중 이번 여행의 호위로 발탁된 실력자였고, 그는 마침 손이 남는 차에 괴한이 다가오자 본능에 가까운 반응으로 손에 든 장창을 찔렀다.


안드레가 발휘하고 있는 근접 거리의 기력 감지에 공격이 걸렸다. 그의 뒤통수를 꿰어버릴 기세로 날아드는 장창의 날이다. 그는 속으로 더 심한 욕지기를 뱉으며, 뒤로 쏠리며 간신히 잡았던 자세에서 무게중심을 앞으로 바꾸어 툭, 튀어 나갔다.


정면으로 뛰니 그 앞엔 자신을 바라보며 이빨을 드러내는 다이어 울프의 낯짝이다.


붕, 하고 거칠게 찔렀던 창날이 아쉽다. 허공을 베었고, 그 창날 끝에 서린 기력이 위협적으로 일렁인다. 자세히 보면 초록빛이 섞인 MP의 기력술이었다.


윤은 창날을 회수했다. 그리고 멋쩍은 그것을 빙글 반원으로 돌려 앞쪽을 크게 베었는데, 그의 앞자리에 섰던 오크 한 마리는 그것을 피하지도 않았다. 휙 베고 지나가는 창날에 가슴팍이 크게 갈라지며 피가 쏟아진다. NPC의 시선이었고, 제냐의 감각에는 흰 빛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최태현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그랬지만, 제냐나 최태현 역시 확연하게 적들의 움직임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몬스터들이 미쳤나? 싶을 지경이다.


검은 로브의 사내가 다이어 울프에게 튕겨 날아가자, 그 뒤를 잇던 비슷한 행색의 다섯 놈도 당황을 금치 못하는 듯하다. 제대로 마차에 공격을 내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섰다. 그들이 공격을 감행하려던 직전 순간의 일이었으므로, 집중력을 잃지 않은 자들이 검을 휘둘렀으나 최초에 그들이 의도했던 만큼의 충격은 전혀 아니었다.


몇 개의 맥아리 없는 검이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마차 표면의 보호막을 두드렸을 뿐이다. 줄리앙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석궁살을 날렸다. 마차의 창문 틈새로 일반적인 것보다 조금 짧은 쿼렐이 날았다.


직선으로 날린 그것은 바로 코 앞 거리에 있는 로브의 괴한을 덮쳤고, 그의 허벅지 즈음에 박혀들어갔다. “크악!”


소리를 내며 괴로워하는 꼴이다. 그레이 하운드 기사단원, 후드를 들쳐보면 곱게 기른 금발이 인상적인 젊은이는 자신의 기동력이 깎였음을 인지했다. 빌어먹을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입장에서, 더욱 빌어먹을 일은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크워어어!”


여기저기서 전투의 고양을 위한 함성을 지르며 몬스터들이 밀고 들어왔다. 여태껏 그러지 않던 놈들이 다가서자 방호진을 섰던 갈색 사슴 기사단원들이 최선을 다해 찌르고, 베었다. 자신의 근처로 넘어가지 않게 하려 MP를 남발하며 큰 공격을 감행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들의 공격이 전부 고블린이나 오크등 놈들의 급소를 베고 갈랐지만, 한 손으로 열 손을 막는 것이 힘들었다.

기사들을 바라보고 직접 달려든다면 훨씬 사정이 나을텐데 몬스터들은 그 목적이 다른 데 있다는 양, 혹은 인류를 향한 본능적 적의를 잃어버린 것처럼 그저 돌진을 해서 지나쳤다.

그만한 질량을 멈출만큼의 저지력이 없다면 본질적으로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기사들의 옆을 빠져나가는 고블린, 오크, 다이어 울프들은 마차가 아닌 다른 종류의 기사들을 덮쳤다.

하나같이 거무튀튀한 로브를 머리까지 뒤집어 쓴 작자들을 향해서였다.


“이런 썅!”


그레이 하운드 기사단원 중 하나가 입이 걸게 욕을 뱉었다. 다른 자들도 당황하며 검날을, 달려드는 몬스터들에게 맞추어 휘둘렀다.


함께 가세해 온, 조금 떨어져 있던 두 용병들에게도 몬스터가 다가가 위협적으로 이빨을 들이밀었다. 운트 작힘 가의 암살단에 고용되었던 두 전투직 클래스다.


물론 이 모든 마물의 조종은 로웰 드버의 손아귀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훌륭하게 어그로 대상 이전을 마친 로웰은 그 이상의 제어를 풀어버렸다. 공격 대상만이 고정된 채 마음껏 날뛰는 몹들은 광폭하게 적에게 다가섰다. 기사들의 손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물론 여태의 기사들과는 다른 기사단의 작자들 사정이었다.


공격조에 속해서 마차를 노리던, 그레이 하운드 기사단이 이제 저들끼리 빙 둘러선 채 몬스터들을 상대해야 했다.

따로 떨어진 그들의 리더, 안드레 챈은 더욱 상황이 급박하고 좋지 않았다. 다이어 울프가 아가리를 디밀며 그를 씹기 위해 애를 썼다. 몇 번 피하고 그 면상에 칼자국을 내주었지만, 곧바로 측면에서 다른 늑대가 이빨을 드러냈다.


“크.”


잇새에서 숨이 터져나왔다. 육체적인 피로보다는 정신적인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탓이다. 미쳤나? 그가 생각했다. 천재 마물술사라도 실수는 있을 수 있다. 테이밍 스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그는 더욱 그런 상상이 먼저 들었다.

테이밍 스킬이 오작동을 일으켜서 어그로 제어가 풀린 모양이다. 몬스터들이 적아와 상관 없이 날뛰는 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안타깝게도 틀린 말이었다.


몬스터들은 정확히 운트 작힘 가에서 보낸 암살조들만 노리고 있었으니.


몇 번인가 저항감 없는 몬스터들의 몸뚱이를 베던 그리턴 가의 병사들, 그리고 부지런히 초상 스킬로 작은 범위 위주를 초토화시키던 워 메이지들, 제냐나 최태현. 그들의 공격이 서서히 멎었다.


“······.”


특히 제냐는 눈을 가늘게 떴다. 상황이 요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 다음 반전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몇 번 숨을 고를 정도의 시간이었다. 산책로의 경계선, 수풀 속에서 몇 명의 인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둘, 아니 셋인가? 제냐의 눈이 그들을 잡았다.


수풀 속에서 튀어나와 몬스터들을 넘어 오는 재빠른 인형人形은 두 개였다. 거한, 과 붉은 단발머리의 작은 체구 소녀였다.


제냐는 낯익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히 모르는 인간들이었음에도 말이다. 구릿빛 피부에, 여기저기 흉터진 거한은 누가 보아도 전사같은 꼴이다. 놀라운 점은, 그가 오크나 다이어 울프를 짓밟고 날듯이 뛰어올 때 허공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거대한 인간의 전사는 허공에서 그 모습을 바꾸어냈다. 빛이 그의 몸을 감싸안았다. 흰 빛이 터져나오며 그의 형상이 잠시 사라졌다. MP의 유동이 느껴졌다. 저건 스킬이었다. 한 순간 사라졌던 형상이 다시 나타난다. 그런데, 마치 마술 공연처럼 사람의 그것은 아니었다. 한 마리의 사자가 나타났다.


거한의 손에는 애초에 거대한 도끼 하나가 들려 있었는데, 사자는 그것을 제 이빨로 물어 쥐고 있는 자세였다.


허공에서 몬스터들의 몸통을 밟고 뛰었다가, 마차의 근방에 사자 모습으로 내려앉는 그 모습이 심히 초현실적이다.


꿈인가, 싶기도 할만큼.

애초에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에 접속해 있는 상태는 꿈과 유사한 점이 많기는 했지만.


콘란드 대륙에서나 볼 수 있는 신기한 전투 장면이었다. 변신술사는 그다지 흔한 유형의 클래스는 아니었다.

금색의 갈기, 그리고 비슷한 톤의 털을 휘날리며 거대한 사자가 그대로, 아가리에 곱게 물은 거대 도끼 날을 휘두르며···


안드레를 덮쳤다.


같이 뛰쳐나왔던 릿샤는 조금 거리를 벌리고 어느 다이어 울프의 등께 위에 용케 서서 초상 스킬 몇 개를 캐스팅하고 있는 중이었다.


*

mike-van-den-bos-7HKdb6i3afk-unsplash.jpg


작가의말

굳셀지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9 58. 릿샤Rissha의 방 23.08.16 23 3 17쪽
58 57. 사연 23.08.13 32 3 24쪽
57 56. 누군가의 죽음 23.08.13 27 3 13쪽
56 55. 어느 법관의 정의正義 23.08.13 25 3 27쪽
55 54. 돌아가는 길 23.08.13 25 3 14쪽
54 53. Could you join us? 23.08.05 29 4 34쪽
53 52. 그는 그렇게 외치기로 했다. 23.08.04 29 4 35쪽
» 51. 굳세어라 안드레 23.08.04 26 4 19쪽
51 50. "허억." 23.08.04 25 4 20쪽
50 49. 달려가는 소시민들 23.08.02 30 4 25쪽
49 48. 갈색 사슴 기사단의 방어진 23.08.02 26 4 36쪽
48 47. 최태현은 빨랐다. 23.07.31 29 4 25쪽
47 46. 로웰 드버는 결심했다. 23.07.31 33 4 34쪽
46 45. 석별惜別 23.07.30 34 4 25쪽
45 44. 결정의 주체 +3 23.07.29 35 4 45쪽
44 43. 그리턴 자작가에서 그간 23.07.29 29 4 25쪽
43 42. 호아킨 팍스Joaquin Pax 23.07.25 28 3 29쪽
42 41. 사촌 형제 23.07.24 28 3 18쪽
41 40. 로키 캐슬 23.07.24 27 3 20쪽
40 39. 운트Unt의 의뢰 23.07.23 27 3 30쪽
39 38. 그리턴, 갈색 사슴 23.07.23 32 3 29쪽
38 37. 등산 23.07.23 25 3 31쪽
37 36. 트레이닝Training 23.07.23 25 3 32쪽
36 35. 제이미 숄더 23.07.20 27 3 51쪽
35 34. 전진하는 요새 23.07.19 33 3 32쪽
34 33. 강도단 23.07.19 29 3 31쪽
33 32. 붉은 다리 협곡 23.07.19 28 3 34쪽
32 31. 협곡 진입 23.07.15 31 3 31쪽
31 30. 마차 안 23.07.14 36 4 30쪽
30 29. 돌아가는 23.07.13 34 4 2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