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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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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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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4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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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40. 로키 캐슬

DUMMY

*


“어머, 정말 대단하군요.”

“허허허······.”


마샨 그리턴 자작 부인은 열심히 훈련하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경탄했다.

멀리, 산중성채 ‘로키 캐슬’의 한 구석 공터에서 구르고 있는 사내들이 있었다.


자작가의 병사들도 짜여진 훈련을 자기들끼리 소화하거나, 혹은 엘리트 병력들이 자유롭게 자기 단련을 하고 있었고 그런 연무장의 한 자리에서 줄리앙과 페이브, 질리언이 검을 꼬나들고 발광을 하고 있는 꼴이었다.


그리턴 부인은 머리를 길게 길러 뒤로 묶은 스타일이었다. 붉은기가 도는 갈색 머리는 흔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인처럼 생긴 외견이었고, 백인에 금안이다. 그리 화려하지 않은 단정한 디자인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발치까지 치마가 내려오고 목 위까지 천이 감싸는 따뜻해 보이는 모습이다.

제법 두께감이 있는 연두색, 회색, 갈색이 섞인 옷에 지나치게 수수하지 않게 쇄골 즈음에 자수가 고급스럽게 놓인 종류로 자작 부인의 온화한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차림새였다.


약간은 주름진 미소를 띄며 마샨이 훈련에 매진하는 남정네들을 바라보았고, 그 곁에서 자작 부인을 상대하는 건 줄리앙 리스트, 로멜리아 가의 집사장이었다.


그래도 그리턴 가에게 의탁하고 있을 때는 비교적 안심할 수 있었다. 세슈칸 시에서 고급 호텔 내부에 처박혀 있을 때보다 훨씬 운신도 자유로웠고, 일단 그들의 대적이라 할 수 있는 작힘 백작의 손아귀에서 떨어져 있다는 것이 줄리앙의 스트레스 지수를 낮춰주는 요인이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이들과 함께 있는 것만큼 불편한 것도 달리 없었다. 확실하게 적이면 적, 아니면 아군인 것을 알 때가 차라리 낫지, 작힘은 태도도 애매한 데다가 앞서서 적대하지 않으면서 뒤로 숨긴 칼로 로멜리아 가를 적대했기에, 줄리앙은 그렇잖아도 샌 머리가 빠지기까지 할 정도로 정신적 괴로움을 받고 있었다.


어떻게 행동하고 앞서 나가야 할 지, 그리턴 자작의 도움이 있다면 그래도 한결 나으리라.


작힘 백작을 공식적인 석상에 세워 로멜리아 가의 입장을 전하고 물건을 받는 것이 가장 상책이었고 분명한 해결책이었다.

그러기까지 많은 위험이 있을 수 있었고, 가문 소유의 아티팩트를 받고 난 이후의 안전까지 누군가 책임져줄 수 있느냐 하는 게 문제였다.


‘언약’을 기억하고 있다면 작힘 가는 내어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백작이 그들을 만나지 않았던 것이고.


약속을 이행할만치 최소한의 공정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보증인, 심판, 중간자가 있다면 문제가 더 수월할 것이다.

그만한 권위를 가진 자는 많지 않았다.

일단 대영주인 작힘 백작과 비교해서 그리 밀리지 않는 권력과 병력을 지닌 어떤 집단의 수장이어야 할테니 말이다.


전 남작은 그리턴 가의 하이샨이 그런 역할을 해주기 바랐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턴 역시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노라고 했지만 그 혼자만으로 작힘 백작의 의도를 꺾을 수 있을진 자신할 수 없었다.


그리턴 가도 만만한 집단은 아니었지만 작힘 가는 대도시의 영주직을 수행하며 그간 많은 힘을 축적해왔고, 작힘 백작 본인조차도 계략에 능하고 뒷처리가 되는 선에선 암살조차 서슴치 않는 괴물같은 인간이었으니 말이다.


확실하게 그의 야욕을 누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턴 가와 비슷한 세력을 가졌으며 로멜리아 가에게 우호적인 이들이 몇 명 모여서 작힘 가를 규탄한다거나, 그들에게 진정성 있는 약조의 실천을 탄원한다면 모르겠다.

그게 되지 않는다면 중앙에 속한 고관이나 왕실의 누군가가 그리턴 가의 연으로 이곳에 와서 그들을 도와줄 수 있겠는가.


줄리앙은 머리가 복잡했다.


어쨌던, 상황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던 간에 그들 일행의 사내들이 수련에 매진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었다. 그는 성채의 건물들 사이를 잇는 석재 도보에서 좀 떨어진 자리의 연무장을 지켜보았다.

훈련하는 이들의 전경이 눈에 들어와 구경하기 좋은 자리였다. 햇살이 그리 따갑지 않게 그들을 비추고 있었고, 습도도 적당하며 메마르지 않아 운동하기에 괜찮은 시간대였다.


아침 식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오전이었다.


“으럇.”


질리언의 시선으로까지 가까이 가보면, 그는 날아드는 검을 피하고 있었다.


그는 기합인지 비명인지 모를 것을 내며 제냐의 것을 피하고 있었다.


제냐는 칼집에서 검을 뽑아들지 않고, 자작가의 연무장에서 철검 하나를 빌린 걸 휘두르고 있다. 연습용의 검이라 날이 없음에도 굳이 칼집을 채운 채 흩뿌리듯 여기저기 궤적을 만든다.


무게가 상당할텐데도 전혀 부담이 없는 점은 제냐의 완력과 신체 각부의 근력이 초인적인 수준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엉성하게 대강 휘두르는 것 같아 보여도 중심이 안정되어 있고 질리언의 빈틈을 노리고 있기에 위협적이었다. 질리언이 조금만 방심해도 그의 허점으로 검극이 날아들고, 속도 또한 순식간에 빨라졌다 느려졌다를 반복하기에 타이밍을 잡기도 어렵다.


그의 시선에서는 거의 채찍이나 다름없는 선형의 움직임이었다. 유연하게 휘어대는 검격은 스쳐도 데미지가 상당해 보인다. 근처에도 걸리지 않게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고, 질리언은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거나 큼직하게 움직이느라 공격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휘휘,


적당히 무게를 잡고 칼을 휘두르는데도 제냐의 신체 능력이 그들보다 압도적이라 좋은 훈련이었다.

그로서는 ‘하류 검술’, ‘외날 검술’등이 보여주는 경로를 따라 신체를 움직이고 가끔 자기만의 변형을 섞어보는 일의 반복이었다.


어쨌든 검을 휘두르는 건 좋은 일이었고, 스킬 성장에 도움이 된다. 질리언과 페이브를 동시에 상대하면서 제냐 역시도 이득을 보고는 있었다.


아침, 오전의 공기가 적당한 온도로 다가와 몸을 쓰기에 괜찮았다. 햇살 아래 펼쳐진 너른 공터였고, 그들이 아니더라도 수십 명의 남정네들이 땀냄새를 풍기면서 수련을 하고 있다.


제식 훈련을 받는 자들도 있었고, 자기만의 검류를 수양하는 엘리트 기사들도 있었다. 캉! 빠른 속도로 춤추던 제냐의 철검이 그 검집 째로 페이브의 칼날에 부딪혔다. 페이브와 질리언은 함께 제냐를 상대하고 있다.


제냐의 칼이 주로 질리언을 압박하면서 뒤로 물러서게 만드는데, 페이브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어지자 자유롭게 움직였다. 제냐의 측면 등 사각에서 칼날을 매섭게 찔러온다. 질리언과 페이브는 칼집 없이 일반적인 철검을 들고 있었다.

평소에 그들이 쓰던 애검은 아니었고, 마찬가지로 연무장 한 구석 무기고에 있는 낡은 연습용 검들이었다.


날이 없으나 맞으면 피부는 반드시 상하고 골절도 일어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일반적인 사람의 손에 들렸다면 이미 HP가 10,000 근처에 다다르는 제냐의 몸에 큰 충격은 아니겠지만 질리언과 페이브도 기사의 일각이었다.


어쨌거나 기력술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신체를 단련한 무술가들이었고, 지금은 검날에 직접 두르고 있지는 않지만 어쨌든 신체의 속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MP들을 소모하고 있었다.


평범한 검류와 움직임에서 더욱 가속화된 휘두르기는 철검 그 이상의 위력을 발휘한다. 묵직한 통나무라도 그대로 쪼개버릴 듯한 기세로 둘의 검격이 점차 매서워진다.


페이브의 검을 한 번 쳐내고, 제냐는 질리언에게 앞서 다가가며 앞차기로 명치를 찍었다.

피하려 했지만 페이브보다는 질리언이 미세하게 실력이 달렸다. 검술의 조예는 둘 다 제냐보다 높았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그것도 질리언이 페이브보다 아래였고, 신체 능력도 그러했다.

나이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둘 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류의 검사였으니, 나이가 많은 쪽이 더 많은 훈련을 했고 높은 경지에 다다르는 건 당연스런 일이다.


햇살에 반짝이는 철검들이다. 낡고 손때 묻은 검이었지만 닦아 두기는 늘 하는지 그 쇠붙이의 겉면이 햇빛을 받아 산란시킨다. 옆에서 번뜩이는가 싶더니, 제냐의 곁눈질 시야 사이로 페이브의 검격이 뱀처럼 휘어 들어왔다.


찌르기였으나 단순한 일직선이 아니라 팔을 틀어 각도를 바꾸어대며 들어온다. 빈틈을 노리는 일격이었고 시야로 보이는 화려함에 당황해서 제대로 막기까지 반 호흡이라도 느려질만한 비기다. 제냐는 그냥 크게 몸을 움직여 피했다.


질리언을 퍽, 차버리고 든 발을 회수할 새도 없이 그냥 한 발로 뒤로 뛰듯이 거리를 벌렸다. 페이브는 허공을 갈랐으나 조금의 지연도 없이 그대로 따라 들어온다. 제냐는 MP를 사용했다.


신체 전반에 힘이 돌았다. 간단한 속력 증가, 근력 강화는 이제 순식간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기초적인 기력술이라 할지라도 MP를 때려박으면 어쨌든 헤이스트 그 이상의 효력이 나온다. 제냐는 갑자기 저 혼자 시계를 빨리 돌리는 영상 속의 인물처럼 움직였고, 페이브의 쫓아오는 검을 피해 도리어 거리를 좁혔다.


손가락 한 두 마디 정도의 차이로 날아드는 찌르기를 피했고, 일점 공격에서 페이브가 검의 궤적을 바꿔 베기로 다가오는 제냐를 크게 치려고 들었다. 가로 누인 검이 선형의 공격으로 다가오니, 제냐는 그대로 몸을 아래로 숙이며 페이브의 몸통 근처로 다가간다.


묘기나 서커스와 같은 움직임이었지만, 비인간적인 신체 능력과 그것에 동반되는 감각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순발력은 동체 시력 따위에도 어느 정도 긍정적 보정 효과를 준다. 반사 신경에도 마찬가지이다. 집중력도 영향을 미치고.


전투 감각이 발휘되며 피가 끓는다. 어떤 스킬들은 실제로 약간의 고양감을 불러 일으키면서 플레이어가 전투에 적응하기 편하도록 만들어준다.

스킬의 사용 자체는 플레이어의 선택이었고, 사용자의 성향에 맞는 음식을 추천해주듯 그의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스킬이었으니 그리 작위적인 느낌은 아니다.


정신 계열의 스킬들은 희미한 잔향 정도의 효력으로 플레이어들의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 차분해지는 효과가 있는 허브티나 향초 따위가 있듯이, 온화한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스킬 효과의 음악 연주는 그런 작용을 플레이어들에게 일으킨다.

NPC들의 경우에는 그 스킬에 포함된 MP에 따라 조금 더 극적인 효과가 연출되는 편이었고.


제냐는 고조되는 집중력 속에서 페이브의 명치 즈음을 바라보고 노렸다. 계속해서 직시할 필요는 없었고, 움직이는 가운데 슬쩍 시야에 담았으면 충분하다.

다가오는 그의 움직임을 계산해서 칼을 들지 않은 왼 손을 뻗는다.


손바닥 가운데, 펼친 왼손의 장심으로 그 명치를 찍듯이 밀었다.


보법은 그의 전투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기초적인 박투술 스킬이 세세한 동작의 호응을 돕는다.


페이브가 걸친 가죽 보호구 위로 그의 손바닥이 걸린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두께감인데, 제냐가 그대로 쿵, 찌르자 페이브의 몸이 덜컥 멈춘다.

체중은 그대로이되 근력의 양이 달랐다. 비현실적인 모습이 연출된다. 시나리오 온라인 내에서는 일정한 근육의 양이 가질 수 있는 에너지의 한계가 다소 헐거웠다.


진각을 밟듯 앞발을 세게 내딛으며 그 반탄력까지 고스란히 담아 날린 일장에 페이브는 숨이 멈추는 느낌을 받았다. 스스로 호흡을 멈춘 적은 없는데, 폐가 강렬한 압박을 받았고, 달려드는 그 기세가 타의로 멈추자 충격이 배가되었다.


마주 다가오는 사람을 들이박았을 때 당연히 충격이 더 크다. 그게 적절한 공격법이냐, 가 카운터에서 따져보아야 할 점이겠지만··· 제냐의 무식한 완력이 한 손으로 명치를 찌르는 일조차 적절한 타점을 지닌 공격법으로 바꾸었다.


숨이 눌린 페이브는 다가오던 자세 그대로 멈춰서 몇 초간 저항 상태를 가졌고, 그 뒤에 관성에서 자유로워지자 제냐가 시원하게 주욱 날려버렸다.


"컥억."


숨을 토해내면서 페이브가 뒤로 날아, 나뒹굴었다. 우스운 꿀이었지만 재밌지는 않았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땅에 발 딛고 뛰다가 갑자기 놀이기구에 올려진 것과 같은 일이리라.


페이브의 눈 앞은 거친 회전각과 속도로 반전되었고, 그는 강렬한 충격과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고, 다시 땅을 바라보게 될 때 즈음엔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쿵! 하고 연무장 바닥을 격하게 쓸었다. 인간 대걸레처럼 야외 바닥을 청소해주는 모습이 희귀한 것도 아니다.

거친 장정들이 격한 수준의 훈련을 하는 로키 캐슬에서는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일이다.


비단 그만이 아니라 여러명이 등판으로 연무장 바닥을 쓸고 있긴 했다.


페이브가 날아가는 찰나에 질리언은 자신의 자세와 충격을 회복했다. 한 방 한 방이 묵직해서 어디 거대한 짐승에 채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말 뒷발굽이라거나, 소라거나 말이다.


페이브 역시 땅바닥을 한 차례 굴렀다가 일어섰고, 예기는 없으나 검날을 곧추세우며 달려든다. 기력은 여전히 활발하게 돌고 있다. 충격의 순간 타점을 보호하기 위해 MP를 집중하는 것 역시 전투의 요점이다.


초인적인 수준까지 단련하면 사람이 닿을 수 있는 이 세계에서, 재능을 다해 스텟을 높이고 기력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게 결국 일이다. 수준 높은 공방에서 한 번의 휘두름은 가히 괴물같은 위력을 갖기에 MP가 바닥나면 결국 맨 몸과 맨 손으로 전장터에 나가는 것이나 비슷하게 된다.


점차 모든 공방에 기력술이 고정값이 되는 수준에서의 일이었다. 제냐나 질리언, 페이브같은 입문 단계의 기사들, 근접 전사들은 아직 모든 움직임에 MP를 소모하기엔 양이 좀 부족하고, 같은 양을 최대한 적당히 분배해서 오래도록 전투 호흡을 이끌어가는 게 관건이었다.


기력술 역시 초상 스킬을 사용할 때 MP를 사용하는 감각과 같이, 정확한 발상과 운용이 있다면 한 번의 사용에 쓸모없는 손실이 적다. 근력을 사용하는 운동 에너지와 같이, 물리적인 힘이기에 잘 쓰는 인간이 있고 못 쓰는 인간이 있었다.


사소한 운용의 차이는 최상위급의 경쟁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거대한 힘을 칼같이 다루는 이들이 결국 세계관의 최상위권 전투 능력자의 자리에 앉게 된다. 플레이어들은 NPC에 비해서 세심한 요령에 있어서 밀리는 경향이 있다.


이 세계가 실제라고 느끼며 오래도록 살아온 자들과 여가 시간을 활용해서 급격하게 적응한 자들의 차이였다.


페이브와 질리언이 가진 능력은 아직 제냐가 어거지로, 힘의 총량으로 깔아 뭉갤 수 있는 수준이었다.


페이브가 앞차기를 당해서 땅바닥에 엉덩이가 닿도록 넘어지고 난 다음에,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일어나서 제냐에게 직진으로 달려들 때 즈음 제냐 역시 페이브를 마무리하고 안정 상태였다.


여유롭도록 정신을 차린 제냐에게 별다른 수도 없이 달려드는 일은 자신을 다시 정통으로 걷어차달라고 부탁하는 뜻의 적극적인 표현이었다.


빠악,


소리가 났다.


별다른 차이도 없이 순식간에 다음 순간에, 제냐는 그 부탁대로 질리언을 걷어차주었다. 유연하게 휘는 돌려차기가 질리언의 턱을 갈겼고, 다행히 정통으로 맞지 않고 MP를 넣어 보호력을 형성한 뒤 맞았기에 중상을 입거나 블랙 아웃이 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얼한 기분과 함께 다시금 뺨을 흙바닥에 대야만 했다.


제냐가 한 발 한 발에 실은 힘이 만만찮고 무거워서, 둘은 그들의 생각보다 일찍 다운되었다.


제냐는 NPC들, 질리언과 페이브의 재능과 신체적 능력, 가능성에 대해서 다 알지는 못하지만 대강 콘란드 대륙임과 그들이 기사급의 인재들이란 걸 생각했을 때 더 지독하게 굴려도 좋겠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죽지만 않으면 된다, 죽지만 않으면.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지고 그 다음엔 직접 타격 없이 검격만을 나누면서 서로의 기술 교류를 했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훈련을 하고, 제냐가 하는 식의 과중량 웨이트를 스케쥴에 넣기도 하고, 또 마침 펼쳐져 있는 데슈칸 산맥이란 천혜의 트레이닝 장소를 뛰며 그들은 시간을 보냈다.

준비의 과정이었다. 결정자가 시기와 행동의 내용을 정하기까지 말이다.


줄리앙과 헤슈나, 그리고 그리턴이 머리를 굴리며 작힘을 도모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


퀘스트는 실제적이다.


가급적 게임이기 때문에 오랜 상황이나 세월을 끌지 않고 급변하는 것이 일반적인 시나리오의 진행법이었다.

그러나, 실제적이라는 말은, 최소한의 개연성을 위한 시간 지연 역시 중간 중간 있다는 말이었다.


게임적 작법으로 시간을 빨리 감듯 NPC들의 대이동이 있다손 쳐도 상황을 인지하고 대비할 만한 호흡은 계속해서 준다.


또한 게이머의 행동이 다음 상황을 지연시키는 경우 역시 있었다. 전쟁으로 이어지는 퀘스트라면 자신이 몸을 담고 있는 집단의 방비를 단단히 한다던가, 공격 측의 NPC파벌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끔 플레이어의 행동으로 환경이 변할 때 진행도가 바뀔 수 밖에 없었다.


질리언과 페이브, 제냐의 단순한 훈련이었지만 성채에 틀어박혀 준비를 하고 있는 그 행동이 그렇게 작용했을 지도 모른다.


얼마간 자유롭고 안전한 시간이 지나갔다.


그러던 사이 제냐는, 김서원은 현실에서 시험이 끝났고, 더욱 널널한 시간 속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개멋진나 최는, 바깥에서의 일이 역시 끝났다. 파티 플레이가 잠시 멈추었다가 회사일이 끝난 그가 연락을 하면서 제냐 역시 그를 반겼다.


[여.]

[시간 되십니까? 로키 산으로 오실래요? 아직도 전에 말한 퀘스트 중입니다. 끝나질 않는데요 이거. 웬 귀족가 NPC 몇 명이랑 세슈칸 시 영주한테 대적하는 내용입니다. 와서 같이 깨주시면 감사하고요. 절-대적으로 열세입니다.]


퀘스트 난이도가 상당히 빡셌다. 죽으라는 법은 없고 시나리오 온라인 역시 그러므로 적은 인원으로도 뚫고 나갈 길이 있기야 하겠지만.

일단 대략적으로 봤을 때 계란으로 바위치기 그 이상인 것이 현황이었다.


모든 상황에서 그렇지만, 특히 전투에 있어서 플레이어의 도움은 큰 힘이 된다. 죽음을 잘 두려워하지 않으며 수많은 포션을 물처럼 쓰고, 죽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는 괴물같은 전사들.

전쟁과 전투를 경험할수록 더욱 강해지기만 하는 그들은 일단 전투용 클래스의 플레이어기만 하면 도움이 되었다.

개중에서도 솜씨가 좋은 편인 최태현은 더욱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퀘스트 규모가 커질수록 NPC들만의 일은 아니게 된다. 어차피 콘란드 대륙 내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 사회 구성이었으므로. 범위가 큰 일이 되어갈수록 필연적으로 플레이어들도 얽히게 된다.


자잘하게 NPC들과 관계성을 맺지 않고 플레이하(살아가)는 유저는 없다시피 했으니까.

일이 커질수록 퀘스트는 세분화되고 다각적으로 분열되어 상대쪽 파벌에서도 플레이어가 섞여 들어올 수 있었다.


플레이어의 가장 흔한 신분은 용병이나 모험가였으니, 전쟁 중에 용병을 고용하는 건 자연스런 선택이다.

그들에게도 조력자가 붙고 용병이 추가된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오··· 아직도요? 마을급 아니었습니까? 유니크라고 했었나··· 다음 급으로 넘어가는 건가 보네요? 세슈칸 시요? 작힘 백작? 아니··· 그 양반이랑 싸운다고요? 중수 도시여도 영주인데··· 일단 알겠습니다. 로키 산이면 좀 걸리긴 하겠네요. 가는 중에 연락할게요.]

[얍. 감사합니다. 아직 절정부도 안 넘은 것 같긴 한데요. 오면 말씀하십쇼. 마중 나갈테니.]


이야기는 조금 길어졌다.


[뭐 챙겨갈 거 있을까요?]

[몸만 잘 오십쇼. 일 터질 때 도와만 주시면 됩니다.]

[얍. 오랜만에 흥미진진한 게 있네요.]

[레벨업도 빡세게 해봅시다.]


사소한 말을 조금 더 나누다가 멎었다.


최태현이 로키 산에 닿을 때 즈음엔, 그리턴 자작의 수手와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

gurpreet-singh-vcYhQi328bg-unsplash.jpg


작가의말

빠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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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56. 누군가의 죽음 23.08.13 27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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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4. 결정의 주체 +3 23.07.29 35 4 45쪽
44 43. 그리턴 자작가에서 그간 23.07.29 29 4 25쪽
43 42. 호아킨 팍스Joaquin Pax 23.07.25 28 3 29쪽
42 41. 사촌 형제 23.07.24 29 3 18쪽
» 40. 로키 캐슬 23.07.24 28 3 20쪽
40 39. 운트Unt의 의뢰 23.07.23 27 3 30쪽
39 38. 그리턴, 갈색 사슴 23.07.23 33 3 29쪽
38 37. 등산 23.07.23 25 3 31쪽
37 36. 트레이닝Training 23.07.23 25 3 32쪽
36 35. 제이미 숄더 23.07.20 27 3 51쪽
35 34. 전진하는 요새 23.07.19 33 3 32쪽
34 33. 강도단 23.07.19 30 3 31쪽
33 32. 붉은 다리 협곡 23.07.19 28 3 34쪽
32 31. 협곡 진입 23.07.15 31 3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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