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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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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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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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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9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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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쪽

34. 전진하는 요새

DUMMY

‘허공’을 ‘뚫’었으나 정말 빈 공간을 지나간 건 아니었다. 분명히 있는 누군가의 몸체를 관통한 것이다. 이전까지와 달리 박히지도 않고 그대로 날아가 절벽 위, 언덕 위쪽 어느 바닥에 포물선을 그리고 떨어져 박혔다. [칵!] 신음 소리를 내뱉으며 누군가가 심장이 꿰뚫려 절명한다.


화살비가 조금 둔화되는 것 같다. 제냐가 마부석에 앉아 MP를 마음껏 토해내고 있기에 그렇다. 제냐가 있는 상황에서, 마차는 이미 이동식의 대포차나 다름 없게 되었다. 썬더 볼트를 마구잡이로 뿌려대는 제냐는 그러했다. 기력술을 응용한 궁술과 초상 스킬의 합공은 상당한 화력을 자랑했다.


본격적으로 더블 캐스팅, 동시 영창이 가능한 시점에서 아직 멀었지만 그는 다양한 공격 옵션을 갖고 있었기에 그와 크게 다름 없는 위력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MP가 달아가는 속도는 조금 빨랐다. 한 번에 수십, 혹은 썬더 볼트를 쓰느라 수 백이 날아갔다.

위력 만큼은 확실했다. 빈 공간을 꿰뚫더라도 그것에 스치기만 해도 상대는 잠시간 멈추게 되어 있다. 전격은 사람의 근육을 비틀어 조이게 만들었고 불수의근으로 움직이는 기관들이 멋대로 날뛰게 만들었다.


그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절벽 위의 강도들이 비틀대고 떨었다. 그들은 두려움마저 느끼고 있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절벽 위에 준비했던 몇 개의 바위들이 굴려 떨어졌다. 쿠가강, 하는 소리를 내며 절벽 아래로 돌무더기가 날아온다.


“으랴! 로즈! 덴드! 가자!”


질리언은 정신없이 흑마를 몰았다.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면서 달리는 두 말의 엉덩이를 툭툭 쳐댔고, 말의 고개를 이리저리 가누게 하는 끈을 요동치게 하며 끊임없이 자극했다.

돌덩이는 위험하다. 마차의 방어벽 성능은 어설프게 알고 있었다, 질리언의 경우에.

정확히 어느 정도로 견딜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넋 놓고 있다가 방호벽이 깨지고 이 협곡 내부에서 몰살당하는 수가 있었다.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경우였다.


위기감이 더욱 쾌속한 질주를 만들어낸다.


마차는 달린다.


절벽 아래 협곡의 끝까지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


[씨발! 다 떨어트려! 뭐 해, 새끼들아!][저 마차가 이상합니다! 작힘 백작이 말한대로 한 번에 파괴되지 않잖아요!][악!][굴려, 씨발 돌무더기에 깔리면 멈추겠지! 말을 노려!]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들의 합창이다. 제냐는 소리로 위치를 가늠했다. 다양한 오감에 연결되어서 작동하는 기력 감지술은 여러 종류의 인기척을 내줄수록 정확한 위치를 특정하기가 쉬운 게 사실이었다.

시각적으로 제냐의 기술 수준에서 정확한 핀포인트 좌표를 잡기에 오차가 생기는데, 저쪽에서 소음으로 정보를 추가해준다면 검색 조건에 소리를 넣어서 더 세밀한 위치 추적이 가능하다.


콱, 하고 화살 한 대가 날아 그 머리를 상대의 가슴팍에 밀어 박았다.

쇠날로 지어진 화살의 대가리는 대포와 같은 기세로 쏘아진 것이라, 레더 아머를 몇 겹으로 두르고 있던 한 도적의 명치를 정확히 꿰뚫었다.

내부 장기가 있을 곳을 파헤치고 충격이 가해졌다. 기력으로 강화된 철시의 촉은 상대의 신체 내부에서도 폭발적인 파괴력을 발휘해서 HP를 0으로 만든다.


한 놈이 또 쓰러졌다.

제냐와 줄리앙 모두 상대의 얼굴도 크기도 정확한 숫자도 알 수는 없지만, 기감으로 탐지했을 때 대강 움직이는 희끄무레한 기척이 서서히 줄어드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마차를 전속력으로 몰아대는 질리언의 솜씨는 나쁘지 않았다.

울음 소리를 토해내며 달려대는 두 마리 흑마의 기세가 대단하다. 제냐는 아마 일반적인 말이 아니리라고 생각했다. 두 마리, 그러니까 질리언이 말하길, 로즈와 덴드라고 한 짐승들 말이다.


현실의 종자와 조금 상이한 근력을 가진 말들인 모양이다. 그도 아니면 특수한 아티팩트나 스킬이 짐승에게 걸려서 영향을 미치거나. 그만큼이나 빠른 속력이었다. 뒤에 커다란 짐을 하나 끌면서도 얼추 느껴지기에 육상 선수의 전력질주에 버금가는 속도로 나아가고 있으니까.

초인적인, 은 아니고 초마馬적인 각력이 아닐 수 없다.


덜컹거리는 마차 또한 외부의 화살 따위를 막아내는 메커니즘이 동일하게 발동되는지, 협곡 바닥에 그 바퀴를 비비면서 나는 온갖 충격이 상쇄되며 객실 내부 인원과 마부석의 두 명을 지켜내고 있었다. 초상 스킬로 이루어진 보호막이나, 복합적 효과가 아니었다면 예전에 튕겨나갔을 수도 있다.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화살 쏘기가 가능하다는 점은 확실히 놀랍다. 제냐는 생각을 조금 다시 해야 했다. 단순히 원시적이고 기본적인 마차로 보였지만, 이건 그런 모습을 했을 뿐 본질적으로 탱크나 비슷한 물건이었다.


상대의 원거리 공격에 대한 방호력과 안정성, 내부자들이 대응 사격을 할 수 있게끔 모든 요건이 갖추어져 있다면 그렇게 말해야 하리라. 물론 탱크의 포탄이 되는 탑승자들의 화력이 또 중요하기는 했다만.


“썬더.”


화살촉을 위로 겨누면서


“볼트.”


전류의 빛줄기를 생성해내는 제냐는 지금 이 상황에서는 충분한 포대의 역할이 가능했다. 그의 MP가 깨진 둑 안의 물처럼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마부석 벤치에 앉아, 한 발을 발 디딤대에 강하게 대고 그 몸을 벤치 등받이에 딱 붙여 흔들림을 최소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차가 움직이고 있으니 자신이 가늠하는 궤적이 변하는 것이 어쩔 수 없다만, 스킬의 보정은 그를 초인적인 수준의 궁술가로 둔갑시켜주고 있었다.


제냐는 아직 궁술가로서 이렇다 할 깨달음이나 노하우가 없었다. 그저 사냥꾼의 자세나 감각,

새롭게 얻은 스킬인 ‘궁도가의 마음’ 같은 스킬이 인도하는 자동 유도의 감각 그대로 자신의 자세를 바꾸어내며 최종 타이밍에 시위만 놓고 있을 뿐이지.


이미 전통 하나를 다 썼고, 인벤토리를 불러 화살통 하나를 더 꺼냈다. 대강 벤치 아래 밑 공간에 처박아놓고 급하게 화살을 꺼내어 잰다.


푸른 물약 하나도 겸사겸사 출납한 뒤 이빨로 물어 뚜껑을 돌려 까고, 대강 주둥이에 쑤셔넣어 마셨다. 유리처럼 생겼지만 그 정도의 경도는 아니었다. 약간은 물렁한 감도 있어서 이빨로 씹듯이 잡고 삼켜도 그리 불편하진 않다. 내용물을 다 마시자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뱉어냈다.


마차의 옆으로 날아간 물약병이 협곡 땅바닥에 부딪혀 몇 번 튕기고 구른다. 흑마의 전진 곁으로 떨어진 것이라 빠르게 뒤로 사라진다.


마차는 전진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절벽 위의 도적들도 자신들의 목적과 생존을 위해 바위와 화살을 던지고 쏘아냈다. 마차에 맞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원래 그들의 계획과 상상은 이런 방식이 아니었다. 군대의 행렬이 아닌 단순한 마차 한 대의 지나감이었다. 협곡은 충분히 길었고, 그들이 있는 곳은 아득하게 높았다.

거기다 모습도 소리도 드러내지 않는 아티팩트로 보호받는 스물 여섯 명의 강도단이다.


그들은 산슈카 내의 황야 야지를 떠돌며 여행자들을 수탈하는 도적 무리였는데, 세슈칸 근처의 평지에서 활약하는 일이 잦았다. 그들에게 있어선 ‘활약’이었지만 당하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있어 악몽이었고, 그것이 반복되자 작힘 가의 토벌자가 와서 그들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다. 세슈칸 근처에서 너무 까불다보니 기사 급의 인력이 와서 그들의 목숨을 위협했다.


그대로 죽으리라 생각했던 작센 숄츠, 라는 이름의 머리가 벗겨진 사내였다. 지금 절벽 위에 올라서 도적단을 지휘하고 있는, 한 1m 80cm정도는 되는 장한의 이름은 말이다. 백인, 푸른 눈동자에 얼굴에는 도적임을 자랑이라도 하듯 칼자국이 흉악스럽게 난 인간이었다.

중년 정도의 사내로, 야성적인 가죽옷을 걸쳐 입고 하의는 사슬 갑옷으로 둘러 보호하고 있다.


근육질의 사내였고 탄탄하다. 그가 걸걸한 목소리를 토해내면서 자신의 목에 걸린 펜던트를 움켜쥐었다. 이런 빌어먹을! 작센이 욕을 토해냈다.


작힘 백작의 기사라고 스스로를 밝힌 인물은 예전 어느 날, 평야에서 그들을 제압한 뒤 죽이지 않았다.


칼집에서 꺼내들지도 않은 칼, 그러니까 쇠몽둥이 하나로 짐승을 패듯 흠씬 두들겨서 전의를 상실시켜두고 작힘 백작의 전언이라며 종이를 하나 꺼내들어 내용을 읊었다.


백작의 숨은 칼로서 몇 번 더러운 일을 해주면 그들의 죄를 묻지 않고 풀어주거나, 혹은 도리어 세슈칸 영지의 도시병으로 고용해주겠다는 말이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솜씨 좋은 강도 새끼들이었어서, 금전적으로 아쉬운 게 없었으므로 사병으로 고용해주겠다는 말이 탐스러운 제안은 아니었으나 기사의 실력을 생각했을 때 목숨을 살려주겠노라 하는 이야기는 거절할 수 없었다.


그 날 부로 작센의 목에는 펜던트가 걸렸다. 은줄로 이어진 물건이고, 그 가운데 커다란 자색의 수정이 달려 있었다. 자색 수정의 겉에는 쇠를 녹여 바른건지 기이한 문양의 테두리 장식이 있었고, 몇 가지 기능을 담고 있는 아티팩트였다.


특수한 능력을 가진 아티팩트 중에는 ‘저주의 물건’이라 불리는 종류가 있었다. 모든 초상 스킬이 언제나 유익한 방향으로 결과를 도출하지 않듯, 스킬이 담긴 아티팩트 역시 그러하다.

저주의 물건들은 사용자에게 도리어 악영향을 끼치곤 하는 아이템들을 뜻하는 이름이었다.

어떤 이들은 누군가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서 그런 아이템을 모아 사용하곤 했다. 혹은 직접 만들기도 했고.


작힘 가의 솜씨 좋은 인챈터, 초상술사의 실력으로 만들어진 펜던트는 강도단에게 꼭 필요한 능력과 기능이 있었다. 강도단의 두목인 작센을 비롯해서 약 이, 삼십 여 명 정도의 인원들에게 투명화 스킬을 일시적으로 걸어주는 능력이다.

모습뿐만 아니라 소리도 없애주고, 더욱 놀라운 것은 기력 감지 따위의 스킬로도 그들을 쉽사리 발견할 수 없게끔 하는 점이었다.


다른 스킬보다 상위에 있거나, 적어도 대항할 수 있도록 해주는 스킬은 분명 고급의 종류였고 그만큼 그것이 들어간 아티팩트의 가치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고급스런 아티팩트였지만 독도 함께 발려 있는 물건이었다. ‘쉼페터의 목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펜던트는 은줄에 자수정이 걸린 아름다운 보석이었고, 사용자의 모습을 감춰주는 물건이었지만 동시에 족쇄의 역할도 했다.

목걸이를 목에 건 인간의 위치를 ‘주인’ 역할을 하는 누군가에게 실시간으로 전송한다. 목걸이의 착용자는 그것을 멋대로 뺄 수도 없었다. 그랬다가는 보석에 저장되어 있는 막대한 MP는 순식간에 착용자를 공격하는 스킬로 변형해서 짜릿한 전류를 흘려 보낸다.


강력한 공격 스킬이 착용자를 향해서 방출되도록 설계된 물건이었고, 일반적인 인간이 지나치게 노출되면 죽음에 이르는 것도 어렵지 않다.


작힘 백작의 공공연한 개가 되어버린 작센은 울며 겨자먹기로 그의 명령을 따라야만 했다. 어차피 세슈칸 근처 평야나 황무지에서 계속 떠돌이 생활을 해나갈 것이라면, 근처를 지배하는 영주와 연이 있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작힘 가의 명령이 그들 강도단의 안위를 위협할 정도로 지나치지만 않으면 말이다. 가끔은 가혹할 정도로 부려먹혀지긴 했지만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번의 일도 그러하다. 그들은 미리 로키 산 근처 협곡의 위쪽으로 올라가서 오리라고 전달받은 누군가를 기다렸다.


로멜리아 가의 일원들이 세슈칸을 떠났을 때부터, 미리 작힘 백작은 전령을 통해 도시 바깥의 병사를 부렸다.

설령 잡힌다고 하더라도 물질적으로는 그다지 증거가 없는 더러운 칼이었다. 작센과 그 일당들은 말이다.

작센이 갖고 있는 자수정 목걸이, 쉼페터의 목걸이가 증거가 될 수 있겠지만 여차하면 터뜨릴 수 있었다. 원거리에서. 애초에 그런 용도로 만든 물건이기에 말이다.


제작 의도와 용법 자체가 지독하게 악랄한 것이었으나 작힘 백작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는 건장한 체격에, 온갖 무기를 다루는 무가의 후계자이며 산슈카의 백작이었다. 고위 귀족으로서 가문과 영지를 이끌고 또 대도시인 세슈칸의 관리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더욱 탐나는 욕심이라는 것이 있었고, 그것은 더욱 커져갔다.


작힘 백작 그 스스로가 검술을 뛰어난 수준까지 익힌 인간이라서 그럴지도 몰랐다. 로멜리아 가와 오랜 세월 전부터 엮여있는 언약은 작힘 가의 가주들에게 은밀하게 전해져 오는 전승이었다.

로멜리아 가로부터 대여한 보물이 있으며, 언약의 대여 기간이 끝났기에 그 후예가 찾아와 반환을 요구하면 언제든지 돌려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대여하고 있는 기간 중에는 얼마든지 유용 가능하다.


산슈카 왕국의 기준으로 제국기 1급 아티팩트에 해당하는 물건이었다. 산슈카는 어마어마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중부의 고국古國이었고, 아이템 기준은 나라의 역사와 관련지어 만들어져 있었다.


근 1,000여 년 정도의 역사 내인 ‘왕국기’가 아티팩트의 앞에 붙어서 9급부터 1급, 그 위의 특급이 있었다. 왕국기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지금으로부터 1,000여 년 전부터 시작해 3,000여 년 전까지 이어지는 ‘제국기’라는 형용사가 있었는데, 보통 같은 급수라면 왕국기보다 제국기의 단어가 붙은 것이 더 강력하며 귀한 아티팩트이다.


그 시기 산슈카의 역사를 따져 보았을 때 영향력을 짐작하여 정해진 기준이었으니 말이다. 제국기 1급이라면 산슈카 제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역사에서도 방점을 찍을만한 위력의 아티팩트였다.


제국기보다 위에 있는 단계로 ‘고국古國기’라는 단어가 있었다. 수 천 년의 역사 중 제국기 이전의 이야기는 남아있는 것보다 소실된 내용이 훨씬 많았다. 고국기는 중부 대륙 전반에 걸친 이야기였고, 제국기보다도 더욱 광범위한 지역의 역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 를 따졌다.


고국기 1급이라고 한다면 현재 산슈카 왕국의 국력이 바뀔 수도 있을 정도의 아티팩트이다.


제국기 1급의 아티팩트, 로멜리아의 펜던트와 손방패 두 종은 전투자를 위한 도구였다. 끊임없는 SP를 사용자에게 공급하며 막강한 회복률을 보이는 배터리가 달려있었다. 기력술을 비롯해 초상력을 사용하는 모든 기술에 SP, 곧 MP의 양이란 절대적인 위력의 기준이었다.

단발적으로 그 힘을 다 다룰 수 없다고 하더라도 힘의 부침 없이 기술을 연발할 수 있다면 사용자의 전투력은 당연히 대폭 증가하게 마련이다. 3발 발사가 가능한 대포를 갖고 있던 인간이 수십 발을 쏴댈 수 있으니, 시간과 요령만 있다면 얼마든지 전장을 지배할 수도 있게 된다.


손방패 역시 펜던트와 엮여 있는 물건으로, 두 종의 아티팩트는 서로 공명하며 강력한 위력을 더욱 발휘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SP를 실시간으로 끌어들여 막대한 양을 품고, 근접전에서 날뛰는 기력술사에게 최고의 방어막을 제공했다.


넉넉한 포탄과 무게도 없는 최고의 방패를 얻은 기력술사는 그야말로 전장을 종횡무진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아티팩트의 위력이 최고조의 효율을 발휘하는 것은 ‘기력술’을 사용하는 이들에 한해서였다.

MP를 기력으로 변환해 다루는 것에 가장 적합한 효과를 보였고, 다른 종류의 초상술사가 그것을 사용한다면 몇 단계 아래의 아티팩트로 쓰는 것이 고작일 테다.


두 물건은 한 쌍이었고, 함께 다룰 때 최고의 능력을 보인다. 기력술에 가장 적합하며 마스터의 수준에 달한 기사에게 간다면 전쟁사의 일각을 바꿀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막대한 MP가 내재되어 있는 아티팩트였고, 그것을 제대로 다루어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기력술사이며 무술가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아티팩트의 사용자로 선택되는 것이 ‘소드 마스터’의 칭호를 받은 당대 초일류의 무술가들이었고, 천 수백여 년 전 로멜리아 가에는 이제 없었으나 작힘 가에 소드 마스터가 있었기에 산슈카의 번영을 위해 빌려주었던 귀물이었다.

그 아티팩트를 가지고 산슈카 왕국의 기틀을 세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오랜 시간이 지나며 작힘 가의 위세 역시 다양한 등락 곡선을 지나며 현재는 백작 가에 머무르고는 있었지만.

로멜리아 가의 영락만큼 심한 축소기를 거치지는 않았다.


현재 중부 대륙의 역사는 안정적이었고, 별다른 전쟁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는다. 산슈카의 외적이 분명히 있다면 그곳에 나가 전공을 세울 수 있을테지만.

작힘 백작은 자신, 아니라면 혹은 근시일 내에 백작가에 충성스러운 소드 마스터를 양성해서 아티팩트를 제대로 유용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작힘 백작가는 이대로 머물러선 안된다. 산슈카 왕국 또한 마찬가지였고. 백작에게 어떤 애국심이 있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가문과 영토, 번영과 위세가 더 높아지는 것만은 간절하게 바라는 열망이 있었다.

그를 위해선 그의 조국이 커져야 했다. 그리고 그 번영을 위해 전쟁이 일어나는 것또한 나쁘지 않았고.


그런 작힘 백작의 대계를 위한 첫번째 희생이 바로 로멜리아 가의 잔당들이었다. 대여한 물건이 반납의 걱정 없이 완벽히 작힘 가의 소유가 되게 하기 위해서, 반납권자의 입이 사라지면 된다.

이미 한 명은 사라졌다.

로멜리아 남작.

자힌 로멜리아, 작힘 백작을 친우라고 말하던 그 올곧은 눈동자의 사내는 이미 주변 영지의 소귀족들의 손을 통해 없앴다.


얼마 남지 않은, 약화된 로멜리아 가의 명맥 중 두 딸만 처리하면 이제 거리낄 것이 없다. 다른 자가 로멜리아의 이름을 잇는다고 하더라도, 고대의 언약은 그 혈족과 맺은 것이었다.

물리적으로 로멜리아 가의 인재가 사라진다면 제국기 1급의, 후작가가 전쟁 중에 공신으로 일어설 정도의 위력을 가진 아티팩트 두 종이 확실하게 자신의 것이 될 것이다.


후작의 계획은 전도유망했다. 작힘 가에게 있어서. 로멜리아 가에게 있어서는 절망스런 길이었는데,

거기서 퀘스트가 발생했다.

플레이어는 어떤 갈림길에 보통 투입된다. 시나리오 온라인 내부, 콘란드 대륙의 역사의 갈림길 속에서 플레이어가 어느 방향으로 선택을 하고 자신의 힘을 내보이느냐에 따라 시나리오의 다음 씬이 달라진다.


작힘 가가 번영하는 길과 로멜리아 가가 재흥하는 길.

짧은 장면으로 제냐에게 정보가 주어졌고, 제냐는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골목길의 그 씬에서 로멜리아 가의 편을 들었다.


“썬더 볼트.”


협곡 저 한 구석 아래에서 제냐가 중얼거리며 외웠다. 시동어, 스킬 명을 읊는 것은 스킬이 아직 완벽하게 손에 익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스킬 시스템에 의해 나타나는 스킬들은 그 형식이 정해져 있다.

초상 스킬 하나에 들어가는 MP량, 위력과 형태, 전류라면 어느 정도의 전압을 가질 것인지, 어떤 방향과 속도로 투사될 것인지 등.

스킬의 기본형이 있었고, 그것을 상황에 맞게 조금씩 변형해서 사용하는 것이 노하우였는데, 제냐는 썬더 볼트는 자동 생성되는 형태와 형식으로 일단 발동시킨 뒤 자신이 후에 조금 변용하는 방식을 취했다.


쏘아내기 전에 들어가는 MP를 조금 삭감한다던가, 방향과 위력, 속도 따위를 조금 더 조절한다던가.

기성품을 사와서 그것을 바탕으로 요리를 하는 작업과 비슷했다.


채 몇 초가 걸리지 않고 완성된 길쭉한 번개의 석궁살이 아래, 제냐의 활 근처에 머물다가 빠르게 튀어올랐다.

전류가 번쩍이듯한 기세로 날아오른 그것은 착잡한 표정으로, 펜던트를 꽉 말아쥔 채 욕설을 지껄이던 작센의 눈에 들어온다.


[“억.”]


대머리의 강도가 별다른 말조차 내뱉지 못하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준비는 확실히 미흡했다. 이 정도로 상대가 대단히 저항을 할 줄은 몰랐다.

이토록 높은 절벽 위에서 바위를 굴리고 화살을 쏘아내는데 죽지 않고 계속해서 피해낸다니. 스물 몇 명이 되는 그의 부하들이 지나치게 느려터진 탓인가? 흑마에게 날아가는 화살들은 기묘한 보호막에 의해 튕겨져 나왔다.


바위더미를 피해서 달아나는 흑마는 묘기를 부리듯 뛰고 있었다. 심지어 장애물이 있을 때는 뒤에 달린 것이 없다는 듯 두 마리가 신묘하게 뛰어넘었고, 그 뒤를 마차가 크게 흔들리며 넘는다.

마차의 바퀴도, 프레임도 이상했다. 평범한 물건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그들이 던져댄 돌덩이가 낙하 속도를 받아 몇 개 정도는 충돌한 것 같은데, 아직도 살아있다니.


싱,


하는 가느다란 소리가 작센의 귀에 머물렀다. 파지직! 하고 강렬한 파열음, 충돌음, 폭발음이 들렸다. 작센의 옆에 서 있던, 강도단의 부두목이라고 할 만한 놈이 있었는데, 멀대처럼 키가 크고 제 키만한 창을 손에 든 채 부하들을 진두지휘하던 놈이다.

그 놈에게 번개가 가 닿았다.

작센이 정확하게 본 것은, 그저 빛살이 그의 시야 내부에서 반짝거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부두목의 몸이 푸른 번개와 함께 작살나는 꼴이었다.


[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요동치는 놈의 눈깔이 뒤집혔다. ‘어이, 괜찮···’아, 라고 그의 입이 내용을 담기도 전에 앞서 들었던 가느다란 파공성의 정체가 그를 습격했다.


작센의 오른쪽 가슴 위쪽에, 석궁의 화살 하나가 날아와 절묘하게 틀어박혔다. [“컥.”]작센은 펜던트를 쥐고 있던 팔을 더 들어올려 그것을 막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날아오는 화살에 반응하는 건 적어도 기사에 준하거나, 기력술의 기초라도 쓰는 자들이 할 일이었다.

작센은 고작 거대한 신체와 그로부터 타고난 용력을 기초해 약자를 괴롭히는 강도에 불과했다. 그의 무술적 스킬이라고는 야지에서 구르며 익힌 하류 검술의 기초가 전부였고, 그나마도 2, 3단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다만 옆에 거꾸로 박아둔 거대한 배틀 액스Axe만은 희귀하고 날이 상하지 않는 보구였는데, 그것을 써먹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의 의식이 흐려졌다. 팍! 하고 무언가 터지는 듯한 느낌이 시야에서 났다.

뭐지,

작센이 고개를 돌리고 시야를 회복하려 할 때, 그의 안면을 삼키는 번개의 빛줄기가 있었다.


썬더 볼트의 빛줄기 하나가 그에게 날아들어 그대로 지져버렸다.


*


“오······.”


제냐가 입을 열었다.


숨가쁘게 MP를 소모하면서 위에 있을 놈들을 저격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생각보다 마차를 보호하고 있는 보호 아티팩트의 위력이 강력해서 놀랐다.

이 정도의 마차라면 확실히 여행을 자신할 만하다. 이런 아티팩트를 가지고서 발동시키지 않은 채 먼 거리를 여행했던 줄리앙의 솜씨도 대단하고.


아마 두 청년, 개중에서 제냐의 옆에 앉은 질리언도 이 방어막 모드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제냐가 속으로 바윗덩이 따위가 근처에 날아와 맞을 때 움찔거리는 것처럼, 그 역시 티를 내지 않으려 했으나 놀라는 기색이 보였다.


사각형의 방패 하나를 든 질리언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위, 양 옆 등을 주시하며 날아드는 바위나 화살을 노려보았다. 자신의 손에 닿는 곳이라면 직접 쳐내리라는 의지로 보인다.

그의 눈에는 제냐와 줄리앙이 겪고 있듯 희끄무레한 연기의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쏟아지는 화살이나 돌덩이 속에서 꺾이지 않는 정신이 대견하다.


제냐가 굳이 그를 평가할 만한 자는 아니었지만.


마차는 전장을 누비는 탱크처럼 협곡을 끊임없이 진격했고, 그 좁은 길 속에서 두 마리의 흑마는 위용을 뽐내며 마차를 몰았다. 어떤 장애물이 있던 흑마의 다리보다 낮은 것이라면 뛰어넘었다. 마차 역시 크게 덜컹거리며 몰아졌지만 내부에 있던 자들이 튕겨나가는 일은 다행히도 없었다.


어린아이만한 바위덩이 하나를 그대로 뛰어 넘었을 때는 제냐 역시 식겁했지만, 서둘러 마차의 프레임, 벤치 한 구석에 몸을 기대어 손잡이처럼 간절히 잡아 위기를 넘겼다. 객실 안쪽에서는 아마 페이브와 줄리앙의 진두지휘로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다.

요동치는 마차 속에서 아드리안이 다치지 않았는가가 조금 신경쓰였지만, 괜찮겠지. 줄리앙이 곁에 있으니 괜찮을 것이다. 그 노인은 자신이 죽기 전에는 두 후계자가 상처 입는 꼴을 보지 않으려 했던 양반이니까 말이다.


제냐가 한숨도 아닌 기묘한 감탄을 입 밖으로 꺼내든 이유는 자신이 날린 썬더 볼트가 확실하게 무언가에 맞은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각에 걸리는 희끄무레한 허공의 한 부위를 타격한 빛줄기가 그 자리에 머물며 전류를 방출했다. 푸른 불꽃같은 번개가 튀어대며 비참하게 떨리는 반투명한 무언가를 감쌌다.


제냐는 그 옆에 자신의 기감으로 덩치가 큰 누군가가 있는 것을 발견했고, 곧바로 썬더 볼트를 장전시킨 뒤 날렸다. 화살 전통은 세 통 째를 비워내고 있었다. 한 통에 서른에서 마흔 발 정도가 들었는데, 적중률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견제 사격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차의 부담이 줄어들기에 마구 날리고 있었다.


뒤쪽에서 지원 사격을 하는 줄리앙 등의 처지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 고속으로 달려 나가는 마차 속에서 절벽 위를 맞추는 일이나, 그 반대의 일이나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마차에 타고 있는 이들이 공격적으로 훨씬 고수였기에 적중률이 좋기는 하다.


날아간 썬더 볼트가 절벽 위의 한 놈을 맞추었다.


푸른 번개가 튀며 보이지 않는 적을 하나 더 지져댔고,


줄리앙과 제냐의 기감에 살을 째는 듯한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다.


["으아아아아!"]


호기롭게 외치는 기합성과는 달리 의지를 잃고 내뱉는 절규였다. 그러면서, 서서히 절벽 위에 있던 투명한 형체가 드러난다.

먼 거리였으나 제냐의 여러 개로 분할된 시야 속에서 정확하게 보였다.

비명 소리가 연기를 걷어내는 일을 하는 것처럼, 투명한 장막 속에 가리워 있던 사내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희끄무레한 형체로 그 자신의 위치를 간신히 알리던 존재였으나 이제야 실체가 나타났다.

아래에 있는 페이브와 질리언의 눈, 헤슈나와 아드리안의 시야로도 이제 볼 수 있게끔 되었다. 사람이었다. 대머리, 가죽옷 따위를 대충 걸쳐 입고 전류로 인해 감전되어 부들부들 떨어대는 백인. 거구.

근육질로 이루어진 그는 그렇게 몸을 떨더니, 곧이어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중심을 잃었다. 절벽 위에서 감전되어 발을 헛디뎠고, 바위 덩이나 굴려대던 낭떠러지에서 제 몸을 그대로 굴려버렸다.


"오우."


제냐가 탄성을 질렀다. 상상되는 장면은 별로 보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아마 실제로 볼 수도 없을 테다. 비련의 시나리오는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잔인한 장면들을 알아서 모자이크 처리해주는 친절한 게임이었다.

사용자들의 연령과 일반적인 정서를 고려해서 말이다.


그러나 우회적인 표현이라 할 지라도 먼저 상상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아무래도 사람이다.

스쳐 지나간 상상을 지우며 제냐가 계속 그러했듯 시위에 화살을 걸어 겨누었다.


그 대머리 사내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 결정적이었다. 절벽 위에 몇 명의 인형이 더 분명하게 나타났다.

이제까지 비가시화 스킬로 보호받던 강도단들의 모습이었다.


마치 유령처럼 모습도 없이 절벽 위에서 마차를 공격하던 자들이었다. 초상적인 현상이 비교적 빈번하게 일어나곤 하는 콘란드 대륙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음은 곧 두려움의 다른 말이기도 했다.

감각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 자신을 노린다는 게 얼마나 큰 공포가 되는가.


심지어 아드리안도 그런 점 때문에 조금 더 두려움에 떨었던 것 같다. 전투가 지속되며 오히려 어린 소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공포감을 조금씩 떨쳐냈다. 대단한 일이었다. 도저히 소녀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만큼.

달리 말하면 로멜리아 가의 피가 맹장, 용장의 가계로서 그런 기질을 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사실 헤슈나도 이제야 성인으로서 삶을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아가씨였다. 몇 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강인한 정신력으로 전투를 마주하며 마차 내부에서 단도로 원거리 사격을 쏘아내는 건 아직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는 자로서의 담대함인지, 로멜리아 가의 기질인지. 둘 다 일지도 몰랐다.


웅크린 사자.


산슈카 왕국 내부에서 늘 외적을 주시하며 다가오는 마수의 목덜미를 물어 뜯고자 하는 수호자가 로멜리아의 정체성이었다.


작힘과 로멜리아는 이전 제국기의 말엽에 산슈카를 지탱하던 큰 두 축이었으나 지금은 둘 다 위세를 잃고 많이 영락한 모습이었다.

개중에서 더 심한 퇴락을 꼽으라면 단연 로멜리아를 선택해야 하리라.몇 번의 보상받지 못하는 희생을 거치고 나서 가문의 위세가 점차 꺾여 나갔다. 중부 대륙은 많은 왕국들이 난립하는 치열한 격전지였고, 콘란드의 어떤 대륙도 평화기만 지속된 곳이 없었을 것이나 중부의 가혹함은 개중에서도 손꼽을만한 것이다.


두 가문 중 어떤 곳이 더 일어나 영락한 산슈카의 이름을 빛낼 것인가.


예전의 동화책 속 언약으로 시작된 두 가문 이야기는 나아가 산슈카의 이야기가 되고, 거기서 더 범위가 커져 중부 대륙의 역사를 결정짓는 갈림길이 될 테다.


······쿵-!


거친 낙하음이 들렸다.


돌덩이가 떨어지며 낸 묵직한 소리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조금 무른 것이다. 피와 살, 그리고 뼈로 이루어진 인간의 몸덩이가 절벽 끝으로부터 땅에 닿는 소리였다.

그만한 위치 에너지를 당연히 견디지 못한 작센 숄츠의 몸뚱이는 산산이 부서져 비산했다.


끔찍한 꼴이 나오지는 않았다. 바닥에 닿는 순간 '상처'를 표현하는 빛의 입자가 그의 몸뚱이를 대신 그려냈다.

빛이 산란한다. 진짜 빛은 아니었다. 아주 작은 입자, 빛의 알갱이가 흩어진다. 떨어진 자리의 물방울이 튀며 사라지듯이.

흩어진 빛가루로 표현된 작센은 그렇게 끝을 맞이했다. 잠시간 남아있는 흰 빛이 그가 떨어진 자리를 중심으로 사방에 퍼져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멸하리라.


제냐는 그가 두목인 것을 몰랐지만, 결과적으로는 알게 되었다. 거대한 남성 하나가 떨어진 뒤에 다른 잔당들이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말이다.

투명화 스킬은 제법 고급스런 스킬이었다. 일반, 희귀, 유일, 전설에서 최소한 희귀 급의 스킬이다. 기감계 탐지 스킬로도 어느 정도 잡아내기 어려운 것을 보면 희귀 중에서도 상위에 랭크된 스킬이리라.


떨어져 게임 오버 당한 NPC가 가지고 있던 스킬이었든, 혹은 그가 아티팩트로 유용하던 기술이었든 급수가 높은 물건이다.

황야의 강도 무리가 그런 물건을 갖고 있는 것이 당연히 자연스럽지는 않다. 누군가 뒷배가 있으니까 전쟁터에서도 요긴하게 쓰일만한 전략 자원이 강도들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겠지.


제냐는 흩어지는 빛의 가루와 그 자국을 슬쩍 바라봤고, 이내 달려나가는 마차의 마부석에서 다른 자들을 조준해 화살을 날렸다.

뚜렷하게 보이는 덕분에 쉬웠다.


“으아악!”


저들도 초상 스킬의 효력이 풀린 것을 눈치챘는지 위에서 비명을 지른다. 이제 질리언과 페이브도 그들을 노려볼 수 있었다. 헤슈나의 시선에 노출되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 가장 안타까운 변화일 것이다. 그녀에게는 작은 단도가 하나 있었다.

평범한 검이 아니라 MP를 먹고 초상력으로 만들어진 화살을 던질 수 있는 아티팩트였다.

먼 거리였지만 약간의 유도 기능도 있었다. 고급 인챈터가 만들어낸 물건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스킬만이 아니라, 그 스킬의 작용을 고려해서 사용자에 대한 배려까지 주입된 물건이었으니까.


조준에 미숙한, 원거리 공격의 달인이 아닌 사용자의 손에 들릴 경우를 생각해 마치 제냐가 사냥꾼의 감각 같은 스킬로 궁술의 보정을 받듯, 헤슈나 역시 어느 정도 자동 조준이 되고 있었다.

완벽한 자동까지는 아니었지만, 그 근처에 가져다 대었을 때 적중을 위해서 미세하게 칼끝이 스스로 움직이는 변화가 있었다.

헤슈나는 그 움직임을 느끼고 그대로 따르는 훈련을 많이 했고, 스킬의 능력을 100% 끌어내는 것에 집중했다. 그 이상을 생각하는 건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난 다음에 할 일이리라. 아직은 가지고 있는 도구의 온전한 분량만큼도 능력 발휘를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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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당신의 삶은 평안하십니까.

저는 뭐...

나쁘지 않군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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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3. 강도단 23.07.19 30 3 31쪽
33 32. 붉은 다리 협곡 23.07.19 29 3 34쪽
32 31. 협곡 진입 23.07.15 31 3 31쪽
31 30. 마차 안 23.07.14 36 4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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