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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姸 님의 서재입니다.

운명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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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저편
작품등록일 :
2015.04.20 20:43
최근연재일 :
2015.04.30 23:36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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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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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30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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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28화

안녕하세요?^-^공모전 소식을 알게되어 쓰던 소설을 한꺼번에 업로드 하느라 양이 들쭉날쭉입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




DUMMY

1부 28화



황녀일행이 비나스로 떠난 지 이주가 지나는 무렵이었다. 워낙 소수인원이 길을 나선 상황이라 중간에 일정보고를 할 수 없어 황궁에서는 마냥 황녀일행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총 일정을 한 달하고도 열흘로 잡았기 때문에 아무리 빨리 돌아온다 하더라도 아직 돌아오려면 시간이 꽤 남았기도 했다.

오늘은 정기 국무회의가 있는 날로 구휼(救恤)에 대한 논의 중이었다. 지난해 발데르 전체로 보자면 풍년이었으나, 곤크강 상류는 때 아닌 추위로 역대 최악의 흉년을 겪었다. 국가에서 많은 지원을 했으나, 당시 에토노므로 인한 난민 수용까지 감당해야했던 탓에 주민들은 종자로 쓸 작물까지 모두 먹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었다. 때문에 그들에게 올 한해의 농사를 책임질 종자와 당장의 구휼작물을 보내야 하는 논의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국고(國庫)의 현재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는데 조심스럽게 시종장이 다가왔다.

“전하. 황성 입구에 삼백에 달하는 무리가 죄를 고하겠다며 찾아왔습니다. 자신들이 데메테르 시의 주민이라고 주장하여 가서 확인했사온데, 데메테르 백작이 있었습니다.”

보고를 잠시 중단시킨 황제가 의아한 눈으로 시종장을 봤다.

“데메테르 주민? 백작?”

“그렇사옵니다. 거기에 서쪽지방 마을의 약탈을 일삼던 무리들까지 죄를 고하겠다며 찾아왔습니다.”

“데메테르 백작이라면 죽었지 않습니까, 폐하.”

사비에르 후작의 말에 황제가 시종장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소인도 그렇다고 생각하여 직접 확인을 했사온데…….”

“그랬더니.”

“확실히 데메테르 백작이셨습니다.”

“죄를 고하겠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현재 1성 수비대에 잡혀있습니다.”

“황궁내로 모두 압송해라. 직접 봐야겠다.”

시종장이 재빨리 사라졌다.

“데메테르 백작이 살아있었다니. 무슨 일일까요.”

“그자가 도대체 왜…….”

“서쪽 무장집단이라면, 그 슈바키라라는 놈을 필두로 하는 그 집단이지요?”

“예, 예. 그렇지요. 그 집단까지 함께……?”

잠시 중단된 구휼논의를 뒤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저마다 각자의 추측을 내놓고 있는데, 사비에르 후작이 나지막하게 오만 공작에게 속삭였다.

“데메테르 시라면, 황녀전하의 루트에 포함되어 있지 않나.”

정확한 지적이었다.

“그렇지. 헌데…죄를 고한다? 죽음까지 거짓으로 연기 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이제 와서? 이상하기 짝이 없군.”

오만 공작이 힐끔 황제를 바라보았다. 다소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그는 말없이 생각에 잠겨있었다.

제임스 황자는 말없는 아버지를 응시했다.

사론 백작은 그 날 이후 황자를 대하는 것이 여간 어려웠다.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오산이었다. 한치 앞도 헤아릴 수가 없었다.

“황자전하, 무슨 일일까요.”

간신히 물은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결국 백작이 말을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

시종장이 돌아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황제는 묵묵히 시간을 기다렸다.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두고 고민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윽고 시종장이 돌아왔고 황제가 보고를 받았다.

드디어 황제가 입을 열었다.

“들으시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닿아있자 말을 이었다.

“구휼 논의는 잠시 미루겠소. 빠르다면 오늘 저녁, 늦어도 내일 아침에는 다시 회의하도록 합시다. 시간이 정해지는 대로 기별을 넣도록 하지. 지금은 논의주제를 잠시 바꿔야 하겠소.”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궁 입구에 있다고 하니 그리로 자리를 옮기지.”




수비대들도, 근위기사들도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거의 삼백에 육박하는 인원이 제 발로 찾아와 스스로의 죄를 고하겠다며 아우성이었다. 거기에 모두 무엇인가에 쫒기는 사람처럼 좌불안석,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죄를 고하고 싶어 안달인 사람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황제폐하는 아직 이신가. 어서 내 죄를 고하고 싶네!”

죽었다고 생각했던 데메테르 백작은 1분에 한 번씩 폐하를 만나고 싶다고 난리였다. 그리고 곧, 그가 그토록 만나 뵙고 싶어 했던 폐하가 등장했다.

“황제폐하 납시오!”

죄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숙였다. ‘황제’라는 이름 앞에 그 동안의 압박과는 또 다른 종류의 압박이 찾아왔다. 어찌되었건 이들은 평생 황제의 근처에도 못 가봤을 일반 평민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엎드려 떨고 있는 무리 앞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무리를 훑어보던 황제의 시선이 한 곳에 머물렀다.

데메테르 백작은 자신에게 꽂히는 황제의 시선을 느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황제의 검은 두 눈이 그의 두 눈을 뚫을 기세로 쳐다보고 있었다. 데메테르 백작의 주먹이 하얗게 변해 덜덜 떨렸다. 막상 죄를 고하자니 두렵기 짝이 없었다.

“데메테르 백작. 살아있었군.”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엄청난 압박이 밀려들었다.

“그래. 이제 와서 이렇게 찾아온 용건이 무엇이냐. 죽음을 거짓으로 고한 뒤, 숨어서 지어야만 했던 죄가 무엇이기에!”

죽음을 위장하고 해야만 하는 일. 질이 나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폐하!”

두려움에 덜덜 떨던 백작이 결국 반쯤 흐느끼며 죄를 고하기 시작했다. 그의 입장에서 작금의 상황은 어디로도 피할 곳이 없는 진퇴양난이었다. 이 순간에도 자신의 팔다리가 썩어 들어갈지 모를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말하기 시작했다. 슈바키라 무리와 어떻게 만나게 되었으며, 어떤 계획을 짰고, 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까지.

그의 말을 듣던 신료들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오만 공작은 종국에 이르러서는 곧 백작을 찢어 죽일 것 같은 태세로 거친 말을 쏟아냈다.

“이 버러지만도 못한 자가! 그러고도 그대가 국가의 녹을 먹는 신료란 말이더냐!”

노도(怒濤)같은 외침에 이백의 무리가 모두 움찔했다.

백작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황제는 다시금 죄인의 무리를 천천히 훑었다. 날선 시선이 모두를 벨 것만 같았다.

“그럼 이제 와서 모든 죄를 고하는 이유가 무엇이더냐.”

“…….”

이미 세상 모두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백작이 굳이 찾아와 죄를 고할 이유는 없었다.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죽은 사람으로 여길 테니, 그를 찾아 죄를 묻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찾아왔을까.

“이렇듯 죄를 고한다고 해서 그대들의 죄가 없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렇듯 찾아와 죄를 고한 까닭이 무엇이냐. 그리고 네가 말한 그 ‘슈바키라’는 어디에 있느냐.”

모두가 궁금했던 부분이 그것이었다.

황제의 시선이 백작에 닿아있었다. 숙였기에 표정이 보이지는 않으나, 그의 두 어깨와 새하얗게 변한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벌에 대한 떨림이라고 보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다. 허면 무엇에 그는 이토록 두려워하는가.

“사, 살려주십시오, 폐하!”

느닷없이 누군가 외쳤다.

시선을 돌리자, 백작 바로 뒤에 한 남자가 있었다. 팔에 상처를 입었는지 붕대로 팔을 동여맨 남자였다. 그는 절박한 얼굴이 되어 빌듯이 말했다.

“슈바키라는 죽었습니다! 저희는 화, 황녀전하를 만났습니다. 슈바키라는 황녀전하의 손에 죽었고, 저희의 죄도 그분께서 고하라 명하셨기에 왔습니다!”

“황녀전하를 너희가?!”

제임스 황자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데메테르 시에서 황녀전하 일행을 만났사온데…….”

그리고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만나서 무엇을 어찌했단 말이더냐! 어서 고하지 못할까?!”

드물게 제임스 황자가 소리쳤다. 항상 평온하기만 한 황자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성이 난 얼굴로 남자를 노려보고 있는 황자를 황제가 부드럽게 제지했다. 제임스는 그제야 뒤로 물러났다.

“백작, 그대가 고하라.”

황제는 이성적으로 대응했다.

백작은 차마 자신들이 황녀일행을 공격했다는 말을 한동안 하지 못하다가 결국 실토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뒤에 있던 남자가 자신들은 그 일행이 황녀전하의 일행이라는 것은 추호도 모르는 사실이었다고 절박하게 외쳤으나, 황제의 차가운 표정은 풀릴 줄을 몰랐다.

“그대들의 죄에 황족 시해미수까지 포함이 되어야겠군.”

사비에르 후작의 차가운 한마디에 모두 처참한 심정이 되었다.

“저 자들을 지금 당장이라도 죽여 효수(梟首)해야 합니다, 폐하!”

제임스가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죽음을 사칭해 사람들을 노예로 판 것으로도 모자라 황녀를 시해하려 했습니다. 지금 당장 명을 내려주십시오, 폐하!”

“황자, 잠시 물러나라.”

황자의 갑작스러운 분노에도, 이들의 죄에도 황제는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사자 왕이자 철의 군주라는 칭호가 과연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황제는 천천히 다가왔다.

“황녀를 만나 죽이려 했으나 실패했다. 누가 죽이라 명했는지 따위는 차후에 묻지. 그런데 황녀가 따라오지 않았음에도 충성스럽게 그 명을 이행하러 여기까지 왔단 말이더냐. 명예를 스스로 저버렸던 그대가?!”

데메테르 백작은 황제의 발끝을 보며 떨리는 손길로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그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그것을 황제에게 받쳤다.

그것은 황녀의 전서였다. 황제는 전서를 펼쳤다.

“…….”

가만히 글을 읽어 내려가던 황제의 입 꼬리가 순간 하늘로 향했다가 내려왔다. 오만 공작이 궁금해 하며 다가오자 전서를 그에게 넘겼다.

전서를 받아든 공작은 모든 글을 읽은 후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사비에르 후작이 그 다음으로 받아 읽었고, 전서는 신료들에게 차례로 전달되었다.

전서를 읽은 귀족들은 저마다 얼이 빠진 얼굴이 될 수밖에 없었다.

“허…참…….”

“놀랍군요.”

그들은 새삼 삼백에 달하는 무리를 바라보았다.

황녀일행은 고작 열다섯. 이들은 못해도 삼백. 황녀일행이 무사하게 덫을 빠져나갔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랄 일인데, 이들이 직접 죄를 고하게 만들었다. 신료들 사이에서 감탄 섞인 말들이 터져 나왔다. 순수하게 감탄하기엔 거리가 먼 이들이었지만, 이 일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삼백에 달하는 무리를 순식간에 제압하고, 각자의 사정을 고려해 공포를 심어주었다. 그들이 스스로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그야말로 순식간에 생각해낸 것일 텐데 무서울 만큼 치밀하고 주도면밀했다. 심지어 전서에는 이자들의 수가 모두 몇 명인지 까지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황녀가 이렇게 약조를 하였더냐.”

“그, 그렇사옵니다, 폐하!”

황제의 입가에 비뚜름한 미소가 걸렸다.

“그렇다면 아비 된 자로써 그 약조를 지켜주는 것이 옳겠지. 전서에는 그대가 독약을 마셨다고 했다. 제대로 죄를 고했다면 해독제를 주라고. 무슨 독을 마셨느냐.”

“저희가 마신 독약의 병입니다. 이것을 보여드리면 무슨 약인지 아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해, 해독제를 부디……!”

데메테르 백작이 기다렸다는 듯 품에서 병을 꺼내며 간절하게 말했다.

바로 옆에 있던 오만 공작이 그 병을 받아 황제께 건넸다. 병을 가만히 둘러보던 황제가 결국 피식, 웃었다.

“이 독을 마시면 어떻게 된다고 하더냐.”

“사, 사지가 썩어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모든 혈관이 고사(枯死)하여 종국에는 심장까지 멈출 것이라고…….”

데메테르 백작은 그 말을 하는 와중에도 사지의 피가 멈추는 것 같았다. 이미 손발이 차가워진지는 오래였다.

“폐하, 부디 해독제를…….”

그가 애원했다.

리오넬은 돌아섰다.

“기다려라. 해독제는 지급해주마.”

그 말에 독약을 마신 두 사람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폐하!!!”

“공작, 이 자들을 모두 지하 감옥에 가두게. 처분은 논의를 해야겠군.”

“알겠습니다!”

리오넬 황제는 공작에게 지시한 뒤, 먼저 자리를 옮겼다. 그의 손에는 자신이 딸에게 준 약병을 손에 쥐어져 있었다.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영민하다. 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논의 중이었던 구휼 문제는 다음 날 아침으로 미뤄졌고, 대신 갑자기 등장한 죄인들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논의는 금방 끝이 났다. 발데르는 법률이 굉장히 세분화 되어 있었고, 법률에 따른 처벌이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이 논의에서 이변이라 한다면, 황녀가 했다는 그 ‘약조’가 문제가 되겠으나,

“놀랍습니다. 황녀전하께서 했다는 그 ‘약조’가 법에 하나도 저촉되는 것이 없으니 말입니다. 약조는 모두 지키면서도 처벌을 경량화 시키지 않는군요.”

외무대신 닐바도르 폰 슈비엣이 벌써 수십 번도 더 읽은 전서를 들여다보며 감탄했다.

“애당초 저들의 형량 감량은 염두 하시지도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초점이 ‘살려주겠다.’에 맞춰져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신 것일까요.”

주민들과의 약조했던 가족들의 생계 건은 가장이 없는 경우 당연히 지급 되는 보조금이 있었다. 보통 가장이 범죄를 저질러 죄인이 되는 경우, 그 가족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았으나 리오넬 황제 이후로 연좌제를 폐지하면서 그들에게도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주민들과의 약조를 이행하는데 법에 저촉되는 부분은 없었다.

무장 세력의 경우 지금까지의 모든 죄를 밝혀 처벌해야겠지만, 모두가 사형을 집행 받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도 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없다.

마지막, 해독제 부분. 이것이 조금 묘했다.

“폐하. 황녀전하의 전서에는 해독제를 주라는 부분이 있사온데, 무슨 독을 먹이신 것일까요. 궁내에 해독제는 몇 종류 되지 않는데…….”

재정대신 카일 폰 브하람슈트가 조심스럽게 묻자 황제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부분은 걱정 말게. 내가 알아서 하지.”

논의는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끝이 났다. 죄를 하나하나 명명백백히 밝히는 일이 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회의가 끝이 나고 하나, 둘씩 회의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황제도 회의장을 나가려다 문득, 제임스를 응시했다. 황자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채였다.

“제…….”

그를 부를까하다가 말을 흐렸다.

리오넬은 시선을 거두고 황제만이 출입할 수 있는 문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제임스는 신료들이 회의장을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런 그의 옆을 쿠론 후작과 사론 백작이 지켰다.

눈치 빠른 시종들은 얼른 자리를 비우고 회의장의 문을 닫았다. 완전한 밀실이 되어서야 황자가 눈을 떴다.

“해결하셔야 할 겁니다.”

“걱정 마십시오, 전하.”

“생각보다 쉽지 않군요.”

“죄송합니다.”

제임스 황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가…아니, 내가 무엇을 했기에 그대가 죄송합니까.”

사론 백작은 황자의 얼음장 같은 말에 답을 찾지 못하고 당황스러워했다. 그 모습에 황자는 혀를 찼다.

“쿠론 후작, 잘 해결하리라 믿겠소.”

그 말을 끝으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후작. 황자님께서…많이 변하셨습니다.”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리는 백작과 달리 후작의 얼굴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서류 가방에 자신의 물건을 챙겨 넣으며 냉정하게 답했다.

“원래의 얼굴이 가짜라는 것을 지금까지 모르셨던 백작의 무지(無知)지요.”

백작이 아연한 빛이 되어 후작을 올려다보았지만, 후작은 그런 그를 뒤로 성큼성큼 회의장을 빠져나갈 뿐이었다.

한편, 오만 공작과 사비에르 후작은 황제의 집무실로 향했다.

“올 것이라 생각했지. 행선지는 같으면서도 우리는 참 피곤하게 사는군.”

“격식이라는 것은 필요하면서도 때로는 피곤한 것이지요.”

사비에르 후작이 부드럽게 웃으며 예를 갖췄다.

황제의 허락이 떨어지자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았다.

“기분이 어떠십니까, 폐하.”

“무엇을 말이오, 공작?”

“유능한 황녀전하를 두신 기분 말입니다.”

오만 공작의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황제가 그의 농담에 결국 웃었다.

“역시 황후폐하의 따님답다고나 할까요. 율리아스와 이엘이 돌아오면 현장의 상황을 꼭 전해 들어야겠습니다.”

후작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런데 폐하, 그 독약은 무엇입니까?”

“아, 이것 말인가.”

그러면서 약병을 만지작거렸다. 쿡쿡 웃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회복제네, 회복제. 내가 친히 건넸던 것을 ‘독약’이랍시고 먹였단 말이지.”

오만 공작과 사비에르 후작은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무섭도록 영악하고, 놀라울 만큼의 기지였다.

“이런 부분은 황후폐하보다 훨씬 정치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그렇지. 황후는 어떤 부분에서는 좀 꽉 막힌 부분이 있었으니까. 어찌되었건 거짓말이라면 하지 않으려 들었을 거야.”

“어느 만큼의 두려움을 주었기에 정말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이 죄를 고했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오만 공작이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황제가 사뭇 진지한 어조로 낮게 부탁했다.

“공작, 후작. 데메테르 백작의 신변에 신경을 써주게.”

공작과 후작은 사족을 덧붙이지 않고 침묵했다.

“제임스 황자 쪽 사람들이 움직이는지도 은밀히 알아봐주고.”

사비에르 후작은 황제의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황위를 염두하고 그들이 움직였다 생각하시는 겁니까, 폐하.”

턱을 매만지던 리오넬이 그를 마주보았다.

공작과 후작은 그가 어떤 고뇌를 하는지 짐작은 갔으나 현명하게 말로 옮기지 않았다.

“백작은 데메테르를 지나가는 이들을 처리하라는 명을 누군가에게 받았다고 했었지. 매복을 하려면 정확한 시간을 알아야 했을 거네. 누군가 황녀를 노리고 수를 쓴 행동이야. 그러니 황녀가 죽으면 유리해지는 집단을 생각했을 뿐이네. 그리고 황위는…….”

“…….”

“…….”

“앞서 말했듯이,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자가 이어야겠지.”

담담하게 말하지만, 검은 두 눈에는 많은 고뇌가 가라앉아 있었다. 황제임과 동시에 아버지이기 때문에 짊어져야 하는 필연적인 고뇌. 그가 짊어진 왕관의 무게였다.

그 날 저녁.

애석하게도 황제의 부탁은 이뤄지지 못했다. 오만 공작과 사비에르 후작이 데메테르 백작의 신변을 신경 쓰기도 전에, 백작은 ‘처벌을 감당하기엔 두렵다.’는 유서와 함께 자결한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죽음이었지만 유서는 틀림없는 그의 필체였기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의 죽음은 자살로 처리되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단락단락 올리다보니 양이 일정하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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