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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姸 님의 서재입니다.

운명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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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저편
작품등록일 :
2015.04.20 20:43
최근연재일 :
2015.04.30 23:36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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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2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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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1부 18화

안녕하세요?^-^공모전 소식을 알게되어 쓰던 소설을 한꺼번에 업로드 하느라 양이 들쭉날쭉입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




DUMMY

1부 18화



난민촌을 지나, 베른 시의 주민들이 사는 외성을 지나자 내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도에 비하면 낮은 성이지만, 그래도 구색은 제법 갖추고 있었다. 내성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입구에는 여러 명의 사람이 서있었다.

일행이 다가가자 누군가가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깊게 고개를 숙였다.

남자치고 제법 긴 황토색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그는 숙인 상태로 인사를 했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황녀전하. 베른 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환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화답하자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있는 얼굴에, 연한 하늘색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베른 시 영주 뵨 폰 베른입니다. 여기는, 부인인 사샤 폰 베른입니다.”

그가 옆에 선 부인을 소개하자, 푸근한 인상의 영주부인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안으로 드시지요.”

영주가 안을 향해 몸을 틀자 가득 메웠던 사람들이 양쪽으로 갈라져 일행이 지나갈 길을 만들었다. 영주는 걷고, 시안은 말을 탄 채 내성으로 들어섰다.

내성의 이미지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붉다’였다. 성을 짓는데 사용된 벽돌의 색이 붉어서인지 온통 붉은 느낌이었다. 내성 안에서도 영주가 머무는 곳까지는 조금 더 들어가야만 했다. 그리 크지 않은 저택에 당도하자 준비하고 있던 시녀와 시종들이 고개를 숙이며 예를 올렸다.

저택에 당도해서야 일행은 말에서 내렸다. 말을 받으러 대기했던 시종이 재빨리 풍을 데려갔다. 풍 위에 얹힌 짐도 시종과 시녀들이 알아서 챙겨갔다.

단출한 모습으로 저택 내부로 들어서자, 다소 소박했던 겉모습과는 달리 화려하게 꾸며진 실내가 인상적이었다. 수정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샹들리에가 머리 위에서 반짝이고, 곳곳에 조각상이며, 그림이 가득했다.

“황녀전하. 목욕물과 저녁이 모두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떤 것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베른부인이 사근사근한 어조로 물어왔다.

시안이 뒤를 돌아 일행을 바라봤다.

“씻고 먹는 쪽이 좋겠죠?”

“좋습니다, 전하.”

율리아스가 쾌활하게 대답했고 다른 이들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먼저 씻고, 저녁을 먹겠습니다.”

“전하의 방은 이쪽입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베른부인이 시안을 안내했고, 일행들도 시종들의 안내에 따라 각자의 방으로 이동했다.

시안의 방은 2층 가장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큰 방이었다.

베른부인과 시안이 다가가자 뒤따르던 시녀가 재빨리 문을 열었다. 높은 천장과 큰 창 덕분에 넓은 공간이 더 넓게 느껴졌다. 민트색과 녹색이 주를 이루는 방은 화려하고 고풍스러웠다.

“이 아이들이 시중을 들것입니다. 불편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베른부인이 친절하게 웃어보였다.

“신경을 많이 쓰셨군요. 고마워요.”

“황공하옵니다, 전하. 그럼, 편히 씻으십시오.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두겠습니다.”

깊게 고개를 숙이더니 방을 나갔다. 윗사람에 대한 친절이 몸에 밴 사람인 것 같았다.

함께 들어온 시녀 두 명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한명이 망토를 받아들고, 다른 한명이 욕실로 안내했다.

뿌연 수증기가 가득한 욕실입구에서 옷을 모두 벗고 탕에 들어가자 문득 노곤한 피로가 몰려들었다. 여러 번의 전쟁과 원정, 그리고 수많은 노숙을 해봤었지만 횟수가 는다고 피곤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머리를 감겨드리겠습니다, 전하.”

오랜만에 받는 목욕시중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가만히 몸을 맡긴 채 눈을 감았다.




한편, 이엘과 율리아스도 방으로 안내되었다. 보통의 경우 이엘과 율리아스가 영지를 방문한다면 방 하나를 통째로 내주어야 했지만, 이번의 경우 저택이 그리 크지 않은데다 방문인원이 많아서 두 사람은 하나의 방에 배정되었다. 때문에 영주는 직접 따라와서 양해를 구했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이엘 경, 율리아스 경. 집이 남루하여 두 분을 한 방에 모시게 된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아버지뻘의 그가 머리가 땅에 닿을 만큼 고개를 숙여대자 이엘과 율리아스도 편하지는 않았다.

“괜찮습니다.”

율리아스의 말에도 몇 번을 더 사과한 끝에야 그는 돌아갔고, 그가 가고 나서야 둘은 방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사실 안내 받은 방은 황녀의 방에 비해서도 결코 작지 않았다. 두 사람을 따라 네 명의 시녀가 함께 들어섰다.

“목욕물이 준비되어있습니다.”

시종이 따라오더니 들어온 것은 예쁘게 생긴 시녀들이었다. 요염한 얼굴로 욕실을 가리키자 이엘의 얼굴이 미미하게 굳었다.

“됐다. 알아서 씻을 테니 갈아입을 옷이나 준비해라.”

얼음장같은 말에 시녀의 얼굴이 당황으로 가득 차올랐다. 이런 반응은 예상치 못했었다.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금발머리의 잘생긴 남자가 한 번 더 말했다.

“목욕시중은 필요 없다고 전해. 갈아입는 것도 알아서 할 테니 옷만 준비하고.”

깔끔하게 정리하고는 가만히 바라본다. 나가라는 무언의 압력이 느껴지자 시녀들은 다시 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탁, 하고 문이 닫히자 이엘은 그제야 굳은 표정을 풀고 소파에 앉았다.

“참, 이런 것을 배려로 안단 말이지.”

낮게 중얼거리는데 맞은편에 율리아스가 앉았다.

“보통은 좋아하지.”

“…좋으면 다시 불러.”

율리아스가 대답 없이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잘생긴 미간을 손으로 꾹꾹 누른다. 이엘도 율리아스가 하는 모양을 가만히 보다가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둘 사이에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얼굴로 올렸던 손을 내리고 율리아스가 입을 열었다.

“이엘.”

“…왜.”

“…….”

“왜.”

“…아니야.”

불러놓고 말이 없다. 감았던 눈을 뜨고서 푸른 눈으로 율리아스를 바라봤다. 고개를 젖히고 천장을 바라보던 율리아스가 작게 한숨을 쉬더니 다시 이엘을 봤다.

“이엘.”

“…….”

“너도 그랬나?”

“…뭐가.”

율리아스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나는 아까, 움직일 수가 없었어.”

황녀가 검을 치켜드는 것을 보면서도, 그 강렬한 기백 앞에 꼼짝도 못했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고, 이렇게 말을 하니 부끄러운 감정이 앞섰다. 그럼에도 확인하고 싶었다. 이엘도 그러했는지. 어렵게 말을 꺼내고 이엘을 보자 벽안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윽고 입을 연 이엘의 목소리가 낮았다.

“…그래. 그랬지.”

“그런 느낌, 너는 받은 적이 있었어?”

이엘이 한숨을 크게 쉬더니 벌떡 일어났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율리아스도 고개를 저었다. 많은 말이 오가지는 않았지만 그의 마음에 손에 잡힐 듯 보였다. 머리 뒤로 팔베개를 하고 천정만 보던 율리아스는 문득, ‘나는 시안이란다.’라고 말하던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갑작스런 웃음에 이엘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그는 피식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어떤 사람일까, 이엘. 신분에 대한 자각이 없는 것도 아니야. 그런데 ‘나는 시안이란다.’라니.”

이엘도 그 모습을 떠올렸다. 옆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내려다보는 눈길이 부드럽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사신 같은 얼굴과, 평민 꼬마에게도 웃어주는 자비로운 얼굴. 어느 쪽인지 판단이 안 서는군.”

“…아버지 말씀이 이런 것이었군.”

“……?”

“깜짝 놀랄 것 정도는 각오하라고 하셨지. 출발한지 이틀 만에 절실히 깨닫고 있는데, 여기서 더 얼마나 놀랄까.”

율리아스는 복잡했던 생각을 싹 밀어버리고 다시 여유로운 얼굴로 돌아왔다.

일어나더니 수건을 가지고 욕실로 향했다.

“생각 말고 씻자, 이엘. 생각한다고 답이 나올 것 같지 않다.”

욕실로 들어서는 율리아스를 보다가 이엘이 창밖을 바라봤다. 붉은 빛이 가득하던 하늘은 어느새 칠흑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한편, 이델리오와 제라드도 같은 방으로 안내받았다. 두 사람의 분위기는 매우 무거워서 함께 들어온 시종은 눈치를 보면서 짐을 날랐다. 이윽고, 시종이 물러가고 시녀들이 들어왔다. 영주는 그들에게도 시녀를 배정하여 시중을 들게 한 모양이었다. 시녀들이 들어왔음에도 말없이 소파에 앉아있던 이델리오에게 제라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말…그렇게 하실 생각입니까?”

“…무엇이.”

“정말, 그러니까…그…짐을 들던, 음식배식을 하던…그런 일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제야 이델리오가 제라드를 바라봤다.

이엘과 같은 벽안이지만, 이엘이 코발트블루에 가까운 벽안이라면 이델리오는 아이스블루 같은 벽안이었다. 시린 푸른빛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델리오도, 제라드도. 오늘 일생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이델리오는 황녀에게 간청하던 자신이 떠오르자 수치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토록 절박하게 외치는 순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따라가야 한다는 일념이었다.

떠오른 기억에 몸서리치다가 문득 쿠론 후작의 얼굴이 떠올랐다. 등골을 따라 싸한 기운이 지나갔다. 수치스러워 견딜 수 없던 기분에 찬물을 끼얹은 것 같았다.

시린 벽안이 절박한 빛을 띤다.

“…해야지. 절대 먼저 귀환할 수는 없다.”

제라드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간다면, 너와 나는…….”

이델리오와 제라드에게 침묵이 찾아왔다.




목욕을 마치고나자 시녀들이 알아서 몸을 닦아주고, 머리까지 말려주었다. 시녀 중 한 명은 시안의 매끄러운 피부에 화장수를 바르고, 가볍게 입술화장을 해주었다. 나머지 한 명이 잠시 사라지더니 옷장에서 무엇인가를 가져왔다.

“황녀전하, 어떤 옷을 입으시겠습니까?”

꺼내드는 옷이 하나같이 고급이었다.

아직 이곳의 물가개념이 부족하지만 황성에서 봤던 드레스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으니 값이 꽤 할 것이라는 추측은 할 수 있었다.

“베른 부인이 준비해둔 것이냐?”

“예, 그러하옵니다. 혹,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이쪽 세계의 의복은 지나치게 여성의 허리를 죈다. 거기에 가슴언저리가 과하게 파인 옷이 많아서 불편했다.

됐다고 할까, 하다가 어쨌든 자신에 방문에 부랴부랴 준비했을 것인지라 거절하기가 난감했다. 쭉 훑어보다가 그나마 가장 간소한 것으로 골랐다.

“거기, 연두색옷으로 하지.”

시녀들의 도움을 받아 입다가 문득, 그냥 바지나 입고 갈 걸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간소해보여도 기본적으로 이곳의 의복자체가 활동성이 매우 부족했다. 꽉 조이는 속옷을 입고 그 위에 비단 같은 재질의 옷을 입었다. 시녀가 치맛단까지 정리해주고 나서야 옷 입기가 끝이 났다.

“…어머나! 너무너무 아름다우세요.”

“정말요! 정말로 잘 어울리세요!”

두 명의 시녀는 드레스를 입은 황녀를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소맷단부터 어깨에 이르는 팔 부분은 팔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타이트했고, 어깨와 이어지는 넥라인이 삼각형으로 파여 있었다. 골반까지 타이트하게 붙었다가 골반 아래로는 자연스러운 주름이 잡히며 넓게 퍼졌다. 연두빛 드레스는 치마 끝단에 가서야 진한 쪽빛으로 물들어 있을 뿐 아무런 장식이 없었다.

이 드레스는 옷감의 고급스러운 느낌과 입는 사람의 몸매가 시너지를 발휘하는 옷이었다. 때문에 시안이 옷을 입었을 때, 시녀들은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등 아래까지 내려오는 순금 같은 머리카락과 선명한 금안, 그리고 목에 걸린 붉은 목걸이가 드레스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가만히 보던 본인은 정작 감흥이 없는 듯 시큰둥한 얼굴로 주문했다.

“머리는 그냥 가볍게 묶어줘. 배가고파서 빨리 가고 싶군.”

시녀들은 재빠른 손놀림으로 머리를 연두색 리본으로 묶은 뒤, 그녀를 식당으로 안내했다. 가는 길 곳곳마다 한눈에도 비싸 보이는 조각이나 미술품이 가득했다. 작은 저택에 크게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 시안은 옆에서 길을 안내하던 시녀에게 물었다.

“베른 영주는 조각이나 미술품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지?”

“아, 최근에 자주 이런 것들이 저택 내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최근?”

“저택이 이렇게 아름답게 꾸며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최근에 좋은 일이 많았나보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시녀가 불쑥 말을 꺼냈다.

“데메테르 난민을 수용하는 공로를 인정받아 하사받으신 것이 많다고 하셨어요.”

그 말에 시안은 걸음을 옮기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대장군에게 들은 설명 중 그런 내용이 있었던가? 들은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굳이 이야기 할 이유가 없었나, 라고 생각하는데 옆에서 시녀가 작게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활짝 열린 문 너머로 긴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고, 상석을 제외한 자리가 모두 차 있었다. 그녀가 들어서자 테이블에 자리 잡고 있던 이들이 재빨리 일어났다.

시안은 비워진 상석으로 걸어갔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모두 앉으시죠.”

시안의 오른편에는 영주와 영주부인, 그리고 중대장 이든이 차례로 앉아있었다. 이든의 옆자리에는 함께 왔던 근위기사단 소속 기사 다섯 명이 차례로 앉아있었다.

시안의 왼편에는 이엘, 율리아스, 이델리오, 제라드를 비롯한 일행들이 앉아있었다.

일행 중에 복장을 갖춘 것은 시안뿐이었다. 아, 굳이 입을 필요 없었는데 입었을까, 괜히 입었군, 이라고 생각하는데 영주 부인이 기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황녀전하! 저는 들어오시는데 미의 여신이 오신 줄로만 알았습니다!”

“대륙 제일의 미녀라는 빌키르 제국의 아델도 전하께는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정말 잘 어울리십니다!”

영주부부가 서로 앞 다퉈 칭찬을 퍼부었다.

“괜한 신경을 쓰게 해드렸군요. 감사합니다.”

“그 방에 있는 옷은 모두 전하를 위해 준비한 옷들이니 부족하나마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실 것 없습니다.”

“받아주세요, 전하. 딸은 이미 시집을 가버린 데다가 체형이 전하와 전혀 달라서 입을 사람도 없습니다. 꼭 받아주세요, 전하.”

“고맙지만 마음만 받겠습니다. 일정이 긴데 저 옷들을 들고 갈 일정이 아닙니다.”

“걱정 마십시오, 전하! 황성으로 보내놓겠습니다.”

“…….”

이쯤 되자 더 거부할 수가 없었다. 시안은 결국 허락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감사히 받지요. 고맙습니다.”

영주내외가 환하게 웃었다. 영주가 뒤에선 시종에게 음식을 내오라고 지시하는 사이 시안은 왼쪽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문득 고개를 돌렸다.

이엘은 시안이 휙, 돌아보자 곧바로 시선을 반대쪽으로 돌려버렸고 율리아스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시안이 지지않고 그의 암녹색 눈동자를 바라보자 율리아스는 이내 씩, 웃더니 시선을 돌렸다. 다른 기사들도 힐끔힐끔 그녀를 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는 편이 전혀 아닌데, 이 옷은 고민하다 입고 와서인지 신경이 쓰였다.

‘괜한 짓을 한 모양이군.’

꽉 조이는 허리가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어서 벗어버리고 싶다고 느끼는데 다행히 음식은 미리 조리가 된 상태였는지 이내 나오기 시작했다. 곧, 상다리가 휠만큼 많은 음식이 식탁을 꽉 메웠다. 훌륭한 음식이었던 데다가 시장하기까지 해서 시안은 불편함도 잊고 맛있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돼지고기 한 덩이를 앞 접시에 놓더니 야무지게 먹기 시작했다.

“입맛에 맞으십니까, 전하.”

영주가 상석에 앉은 시안에게 질문하자 시안은 음식을 삼킨 뒤 답했다.

“훌륭하군요. 황성에서 먹었던 음식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과찬이십니다.”

“최근에 요리사를 바꿨지요. 아주 훌륭하게 요리를 잘한답니다.”

영주부인이 말을 보태자 영주가 슬쩍, 부인을 쳐다보며 눈치를 줬다.

그 모습을 정확하게 포착한 시안이 문득 질문했다.

“난민촌 정비가 아주 훌륭하더군요.”

“모두 여기계신 중대장 이든 경이 신경써주신 덕분입니다.”

“모르고 보면 난민촌이라고 생각하기 어렵겠더군요.”

이든에게 공치사를 돌리던 영주는 황녀의 날카로운 한마디에 문득 당황했다. 영주가 살짝 당황하자 그 모습을 유심히 보던 율리아스가 날카로운 한 마디를 던졌다.

“난민촌이라기 보단 마을이더군요. 이곳에 난민들을 정착시키기로 결정하신 겁니까.”

“아, 아비를 잃은 가정이 대부분인지라…여자와 어린 아이들만 남아서 다른 곳에 정착하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정부 지원금이 상당히 많았던 모양이군요.”

이엘도 한마디 던졌다.

영주는 슬쩍 시안의 눈치를 보더니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예, 예. 황제폐하께오서 여러모로 난민에 대해서 많은 신경을 써주신 터라…거기에 저들이 올 때 가지고 온 재물이 있어서 두 가지를 모두 합해서 집을 지었습니다.”

말 한마디를 해놓고 시안과 이엘, 율리아스를 번갈아 바라본다.

시골 변두리 귀족이 만나기 힘든 신분의 사람들이라 그러한가. 갑작스러운 모습에 시안의 금안이 가늘게 변했다. 그녀는 시선을 고정한 채 다정한 어조로 말했다.

“훌륭하신 일을 해놓고서 많이 당황하십니다.”

다정한 어조인데, 말에 뼈가 있었다.

영주는 선명한 금안을 조심스레 쳐다봤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과, 과찬이십니다, 전하.”

생각을 하는지 먹지 않고 검지로 식탁을 톡톡, 두들긴다. 금안이 영주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적막함이 내려앉은 식당에 일정하게 톡톡 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그 소리가 은근히 모두를 긴장시킨다.

영주부인은 남편의 모습에 덩달아 당황하여 주눅이 들어있었다.

영주부부를 가만히 바라보며 식탁을 두들기던 시안이 시선을 거뒀다. 그러더니 사람들을 둘러보며 환하게 웃었다. 목소리도 쾌활하게 바꾼다.

“긴장하지 마세요. 칭찬 들으실 일을 하셨으니, 이런 공치사에 그렇게 겸손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나저나 요리들이 정말 맛있네요. 특히 이 고기요리는요.”

그 웃음에, 목소리에 영주는 긴장이 풀렸는지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 요리가 맛있습니까? 저도 한 번 맛을 봐야겠군요.”

율리아스 역시 영주의 반응을 날카롭게 바라보면서 시안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영주부부는 식욕을 잃었는지 그 뒤로 음식에 전혀 손을 대지 못한 채 저녁식사를 끝마쳤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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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부 10화 15.04.20 86 0 12쪽
9 1부 9화 15.04.20 128 0 16쪽
8 1부 8화 15.04.20 46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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