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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동서남북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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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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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7.08.19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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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글자
9쪽

191. 결심決心

DUMMY

“정신이 드는가?”

“예···”

침상에 누워있던 주은백이 몸을 일으키자 교주가 상태를 묻는다. 목소리에 주은백의 건강을 걱정하는 자상함이 어려있다.

갑자기 스승의 얼굴이 떠올랐다.

수련을 시작한 초창기에는 자주 앓아 누웠었다. 그리 강인한 체질이 아니었던 주은백이 힘든 수련을 견디지 못하고 자주 앓았던 것이다.

‘이놈아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 할 것 아니냐? 고얀놈···”

주은백은 아파도 아프다 말하지 않았다. 열이 펄펄나도 쓰러질 때까지 수련을 했다. 무공이 재미있어서가 아니다. 스승이 자신을 버리고 떠날까 걱정되어서다. 아버지, 어머니, 고모 모두 돌아가시고 세상천지에 혼자 남았다. 어린 주은백은 스승마저 떠나면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스승의 자상함이 진정임을 느끼면서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기 시작했던 주은백이었다.

이제 그런 자상함을 교주에게서 다시 느끼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큰 내상은 없다고 하네. 며칠 요양하면 움직이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걸세.”

“크게 다치신 게 아니라니 다행이에요.”

교주가 몸 상태를 말해주었고, 교주 옆에 있던 서설란도 인부를 전한다.

주은백이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결렸지만 뼈가 부러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곳은?”

“태원 외곽의 장원이네.”

주은백의 물음에 교주가 답한다.

마교는 중원 곳곳에 비밀 장원을 가지고 있었다. 교주가 주은백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무한 장원에 주은백이 편지를 남겨 놓았을 뿐만 아니라, 마교 정보망이 주은백을 계속 확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깨어 나신걸 봤으니 저는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어요.”

서설란이 교주와 주은백을 바라보며 말한다. 주은백이 잠들어 있는 동안 서설란은 간단히 동서남북에 대한 얘기를 교주에게 해줬다. 동서남북은 서로 사형제간이었는데 북천의 욕심으로 갈라서게 되었다고. 자신과 주은백간의 관계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주는 주은백이 사랑하는 그녀의 아버지다. 주은백과 자신이 함께 있었던 것을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해명이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동서남북에게 남겨져 있는 유훈과 그들간의 갈등과정에 대해서는 함구했지만.

“어떻게 하실 생각이오?”

주은백이 두루뭉실하게 묻는다. 서설란은 당연히 남천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그 다음 행보를 묻는 것이다.

“스승님과 상의를 해봐야겠어요.”

서설란으로서는 당연한 얘기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서설란이 공손하게 교주에게 작별인사를 겸한 감사인사를 올린다.

“만나서 반가웠소. 서소저.”

교주가 따뜻한 눈길로 웃으며 인사를 받는다. 자상한 웃음이다. 서설란은 정보를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버릇을 들였고, 마교에 대한 세간의 선입견을 그리 깊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도 세상의 평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마교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교주를 만나곤 마교에 대한 인상이 바뀌었다. 지금의 마교는 아마 선한 집단일 것이다. 그것이 서설란의 결론이었다.

“어떻게 하면 다시 연락할 수 있소?”

“저희가 항상 주공자님을 감시하고 있을 거예요. 필요하면 연락드리도록 하겠어요.”

서설란이 짐짓 짓궂은 표정으로 감시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교주와 주은백은 빙긋 미소를 지을 뿐이다. 그녀의 본심을 알기에.

“다시 만날 때까지 조심하시오.”

주은백의 인사에 서설란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곤 자리를 떴다.

“좋은 아가씨로군. 예쁘기도 하고 무공도 대단하고.”

교주가 짐짓 천장을 둘러보면서 한마디 했다.

“···”

그렇지만 주은백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황야를 만나봐야겠어.”

뒷짐을 진 채 벽에 설치된 난로 속의 장작 불꽃을 바라보고 있던 교주의 난데없는 말이다.

주은백은 별다른 대꾸 없이 교주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다음 말을 기다리는 것이다.

“목걸이를 찾아야겠네. 그렇지 않으면 북천과의 승부를 장담할 수 없으이.”

교주가 뒤를 돌아 주은백을 바라보며 말한다. 주은백도 목걸이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유긍연을 통해 목걸이에 대한 사정을 들었던 것이다.

교주는 북천과 단 일합을 교환해봤다. 물론 주은백을 구하려는 개입이었기에 직접적인 대결對決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북천의 강함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물론 생사를 걸고 지금이라도 일대결전을 해볼 수 있다. 제압하지 못할 지라도 양패구상兩敗具象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선대의 유훈은 지킬 수 없다. 교주로서는 그럴 수 없었다. 그것은 경솔한 결정인 것이다. 북천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목걸이를 찾아야 했다.

주은백은 교주의 마음을 이해했다. 목걸이를 찾아 선대先代가 안배해 놓은 비장의 무공을 익혀야만 북천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고 선대의 유훈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황야와 접촉할 수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주은백이 말한다. 공녀와 접촉할 수 있는 남궁이현을 떠올린 것이다.

“그 친구가 나를 믿어주겠는가?”

교주가 되묻는다.

이황야를 만나려면 교주임을 밝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믿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중간에서 소개를 해주는 사람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이황야와 접촉 가능한 인물은 정파인일 것이고 정파인은 마교를 벌레 보듯 하기 때문에 적당한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것이다.

“선입견으로 세상을 보는 친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만나보도록 하세.”

“잠깐 다른 일로 무한을 떠났지만, 이미 돌아와 있거나 곧 돌아올 것입니다.”

주은백의 말에 교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또 다른 두 거인의 만남이 시작되려 하는 것이다.



조부태감은 오늘도 자신의 집무실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곽태감의 죽음은 복상사腹上死로 결론이 났다. 황궁의 어의御醫가 다시 한번 검시檢屍했지만 독毒도 검출되지 않았고 몸에 아무런 외상外傷도 발견되지 않았다. 현장에 직접 있었던 자신마저도 복상사란 결론에 이견을 제기하기 어려웠다. 늙은 곽태감이 술을 마시고 젊은 여인과 잠자리에 들었으니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꺼림직했다.

자신이 술을 먹고 곯아떨어진 것부터가 의심스러웠다. 그 정도 술에 곯아 떨어질 자신이 아니다. 그런데 그날은 언제 쓰러졌는지 기억조차 없다. 그러나 의심은 의심일 뿐. 아무런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의 문제제기는 자신의 목숨마저도 위태롭게 만들 것이다. 조부태감도 그 정도는 꿰뚫고 있었다.

생전에는 수십 년간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자리에서 나는 새도 떨어트릴 권세를 누려온 사람이었지만 그의 죽음은 너무나 초라하고 쓸쓸했다.

장례는 형식적으로 대충 치러졌고 곧 잊혀졌다. 요즈음은 실권을 잃어버린 동창이라 태감의 죽음은 조정에 조그마한 소용돌이 조차 일으키지 못했다. 오히려 조롱거리였다.

그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사람도, 진심으로 울어주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오히려 뒤에서 웃음을 흘릴 뿐.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그렇게 살았으니. 하지만 수십 년을 동고동락해 온 조부태감으로서는 마치 자신의 일인 듯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운 동창의 태감은 강부태감으로 정해졌다. 일사천리였다. 자신의 오른팔이라고 믿어왔던 정조장은 대주로 승진했다. 어느새 강부태감의 오른팔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조부태감은 몇 일째 자신의 집무실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 난국을 타개할 것인가?’

조부태감이 붙들고 있는 화두話頭였다.

‘후배인 강부태감에게 붙어 충성을 맹세할 것인가? 아니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을 볼 때마다 조롱하듯 히죽히죽 웃는 강부태감 밑에서 알랑방귀를 떠는 자신을 상상할 수 없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 괴로웠다.

조부태감이 그렇게 고민에 휩싸여 있을 때 방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정조장이었다. 아니 이제는 정대주였다.

“잘 지내십니까?”

인사부터가 달라졌다. 히죽 웃는 얼굴에는 조부태감을 비아냥거리고 조롱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하지만 뭐라 그럴 수 없었다.

얼굴에 그런 뜻이 쓰여 있는 것도 아닌 마당에 뭐라 그러면 언제 그랬냐고 달라들 것이고, 그러면 자신만 초라해지는 것이다. 권위는 자신이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리와 상황이 세워주는 것이지.

“무슨 일인가?”

어서 들어오란 말이 아니다. 사무적인 인사다.

“강부태감, 아니 강태감님께서 오라고 하십니다. 곽태감 관련 자료들 모두 들고요···”

“모두? 왜?”

“그걸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그럼 저는 이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얼굴에는 비아냥의 웃음이 그대로 걸려있다.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방문을 닫고 나간다. 굳이 대주가 된 정조장이 올 필요도 없는 일인데 일부러 온 것이다. 조롱을 위해.

“알겠네.”

조부태감이 고개까지 끄덕인다. 곽태감의 자료를 뒤지면 자신의 허물도 어떻게든 딸려 나올 것이다. 털어서 어떻게 먼지가 나지 않을 것인가?

‘그래, 이황야를 찾아가자.’

정조장의 방문이 조부태감의 결심을 굳히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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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 결심決心 +3 17.08.19 2,240 45 9쪽
191 190. 빚을 돌려받다 +3 17.08.17 2,234 52 11쪽
190 189. 떨어지는 늙은 별 +3 17.08.15 2,249 47 9쪽
189 188. 두 거인巨人 +5 17.08.13 2,351 46 10쪽
188 187. 마지막 질문 +3 17.08.11 2,220 48 11쪽
187 186. 초대招待 +4 17.08.09 2,225 48 11쪽
186 185. 찾아 나서다 +3 17.08.07 2,200 44 9쪽
185 184. 남천南天까지 +2 17.08.05 2,273 42 10쪽
184 183. 지원 요청 +3 17.08.03 2,346 46 10쪽
183 182. 계약이행契約履行 +3 17.07.31 2,182 44 10쪽
182 181. 북천과 서천 +4 17.07.30 2,140 49 10쪽
181 180. 불광불급不狂不及 +4 17.07.28 2,184 44 11쪽
180 179. 계약契約 +5 17.07.26 2,095 47 10쪽
179 178. 발톱 +4 17.07.24 2,058 48 9쪽
178 177. 발각發覺 +3 17.07.22 2,302 47 8쪽
177 176. 낙찰落札 +3 17.07.20 2,284 45 9쪽
176 175. 옛 터 +3 17.07.18 2,259 44 10쪽
175 174. 애증愛憎 +3 17.07.15 2,222 48 11쪽
174 173. 반가운 만남 어두운 얼굴 +3 17.07.13 2,482 47 10쪽
173 172. 목걸이를 찾아라 +4 17.07.11 2,308 46 10쪽
172 171. 삼별조三別組 +3 17.07.09 2,282 44 8쪽
171 170. 입장 변화 +4 17.07.07 2,350 48 9쪽
170 169. 숨결 +5 17.07.05 2,272 52 10쪽
169 168. 기다림 +5 17.07.03 2,363 49 9쪽
168 167. 탈출脫出 +3 17.07.01 2,284 46 11쪽
167 166. 신세계新世界 +3 17.06.27 2,369 44 9쪽
166 165. 야망野望 +3 17.06.26 2,308 41 9쪽
165 164. 산기창공散氣創空 +3 17.06.24 2,353 43 9쪽
164 163. 함락陷落 +3 17.06.22 2,441 43 10쪽
163 162. 와해瓦解 +3 17.06.20 2,408 4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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