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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동서남북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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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7.08.13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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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88. 두 거인巨人

DUMMY

까라라라랑~ 괴애앵앵~

허공을 쏜살같이 날아가던 붉은 강기의 륜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급속한 회전을 한다. 막힌 것을 뚫고 돌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것이다. 륜이 막아선 것과 부딪히면서 비명을 지르듯 날카로운 굉음을 토해낼 때마다, 마치 저녁인 듯 새벽 여명속에 노을 빛 섬광이 허공 곳곳에서 번쩍인다. 그런데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푸른 거대한 파도가 붉은 색 강기를 덮치듯 휘몰아치면서 륜을 뒤로 밀어내려 한다.

장관이다.

세 사람의 싸움은 거대한 바다 위에서 붉은 해가 서산으로 기울며 노을 빛으로 하늘을 물들이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아름다웠다.

붉은 색과 노을 빛, 푸른 색이 각자의 색으로 진하게 빛나면서도 한편으론 서로 섞여 또 다른 색을 하늘에 뿌리고 있었다. 하늘은 온통 색의 향연이었다.

하지만 땅 위의 세 사람은 사정이 달랐다.

주은백의 입에서는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북천의 륜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풍정이 막고 있지만, 무리한 풍정의 시전은 주은백의 내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서설란도 힘겹기는 마찬가지였다. 주은백이 서설란 앞을 막아서면서 충격을 먼저 받았기에 내상을 입진 않았지만 이미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이마에서 여전히 땀이 비오 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른 순간, 다른 공간에서 지금의 서설란을 보았다면, 흠뻑 젖은 옷이 온몸에 감기어 숭고하면서도 육감적인 태초의 자태를 마음껏 뽐내고 있는 광경에 입가에 침이 흐르는지도 모를 정도로 무아지경에 빠졌을 것이나 지금은 그것을 음미할 경황이 아니었다.


아~

멀찍이 떨어져서 세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던 황장로의 입에서 다시 한번 감탄음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그런 감탄음은 또 다른 곳에서도 흘러나왔다.

역시 멀찍이서 세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던 오의붕경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어찌 저런 무위武威가 있단 말인가?”

황의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실로 대단하군. 회주의 무공이 하늘에 이르렀다 들었지만 저 정도일 줄이야···”

추란이었다.

오의붕경은 먼발치에서 회주의 얼굴을 한번 본적이 있기에 북천을 알아봤다.

“나는 저 젊은 사람들이 더 대단하군. 우리를 도와줬던 저 여인이 단 일수로 가시위학과 흑죽장창을 처리할 땐,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가 하고 놀랐는데 지금 보니 그것은 놀랄 일도 아니었군.”

백의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마 묵대협처럼 서천이나 남천의 제자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나저나 젊은 두 사람이 위험해 보이는데 어쩌지?”

적의의 추측에 추란이 동의하면서 걱정을 한다.

하지만 다른 네 사내는 말이 없다. 자신들이 나서본 들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다름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가 될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러니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대단하구나. 네놈의 풍정이 이 정도라니 믿기 어렵구나. 서천이 살아있었다면···”

북천이 풍정을 칭찬하면서 서천을 떠올리다 말을 잇지 않는다. 주은백의 풍정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위력이었다. 서천이 살아 있어 풍정을 시전했다면 훨씬 더 대단한 위력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동천, 서천, 남천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뿐. 이 것도 한번 받아 보거라.”

북천이 다른 한 손을 들어 올리자 순식간에 검의 형상을 한 붉은 색 강기가 타오르듯 이글거렸다.

북천이 평소와는 다르게 제법 빠른 속도로 손을 내뻗자 검이 섬광과 같은 속도로 주은백과 서설란을 향해 날아 온다.


아~

서설란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그 소리는 황장로가 내쉰 감탄음과 동일했으나 목소리에 묻어있는 감정은 전혀 달랐다. 탄식이다. 감탄이 아니라 절망의 소리였다.

륜 하나를 두 사람이 겨우 막고 있었다. 그마저도 두 사람의 내공은 빠른 속도로 소진되고 있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또 다른 검이 날아오고 있으니···


속수무책이었다.

자신들은 또 다른 절기를 펼칠 여력이 없었다.

서설란이 주은백을 흘깃 쳐다본다. 주은백의 입가에 흘러내리는 피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그만큼 그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그런데도 두 눈은 빛나고 있다. 형형한 안광이 쏟아지고 있다. 한 점 두려움이나 갈등이 없는 무아지경의 상태였다.

‘저 사람에게 저런 진정성이 있었나? 지금까지의 모습은 위악僞惡이었군’

서설란은 이제야 주은백이란 사내를 온전히 알 수 있을 듯했다. 평소의 그의 싸늘한 눈빛은, 그의 차가운 태도는 위악僞惡이다. 뜨거운 진정眞情을, 솟구치는 사랑을 스스로 감당할 수 없어 둘러놓은 위장막.

서설란의 입가에 살포시 미소가 어렸다. 그의 여인은 아니지만, 그에게는 이미 다른 여인이 있지만, 그와 함께 저승으로 간다니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이 있으니. 허나 그의 눈에 그런 번뇌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내인 모양이다.

서설란이 다시 한번 싱긋 웃었다. 죽어가는 마당에 이제야 사내라는 존재를 이해하게 되다니···

역설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또한 인생임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한다. 서설란이 두 눈을 감았다.


꽝~콰콰콰쾅~

경천동지할 굉음이 들려왔다. 굉음과 함께 후폭풍이 해일처럼 밀려와 자신의 몸을 하늘로 붕 띄운다. 하지만 충격은 그리 심하지 않다. 특별한 고통도 없다.

이것이 죽음인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설란은 감았던 두 눈을 떴다. 똑똑히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생生에서 사死로 넘어가는 경계를.

하지만 눈 앞에 보이는 광경은 상상했던 것과 달랐다. 나무와 바위가 보이고 주은백이 보였다. 주은백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연신 입으로 피를 토하고 있었다. 서설란이 정신을 차리곤 공중제비를 하며 땅으로 내려앉자마자 주은백에게로 달려갔다.


크윽~

주은백이 신음과 함께 다시 한번 한 모금의 선홍색 피를 왈칵 토해냈다. 형형하던 눈빛을 뿜어내던 두 눈이 급속히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맥마저도 힘겨운지 점점 가늘어지고 있었다.

서설란이 주은백을 바닥으로 뉘이며 상태를 살피려 하는데, 갑자기 한 가지 의문과 한 가지 깨달음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우리가 어떻게 살았지?’

자신이 본 북천의 마지막 공격은 워낙 강력해서 주은백과 자신이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의당 자신들은 죽었어야 했다. 그런데 살아있다. 북천이 실수를 했을 리는 없다. 갑자기 든 의문이었다.

한가지 깨달음은, 지금 자신이 주은백을 돌볼 여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북천과 싸워야 했던 것이다.

그때 강인한 북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북천의 말은 자신의 머리 속에 순간 든 의문을 풀어주는 말이었다.

“누구냐?”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 그 사람 덕에 자신들이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서설란이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자 어느 틈에 나타났는지 담담한 뒷모습의 사내가 자신과 주은백 앞에 서서 북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이 북천이시오?”

뒷모습의 사내가 대답 대신 북천에게 되묻는다.

“그렇다. 아마 자네는 교주일 테지?”

북천이 짐작을 말한다. 자신의 적멸기赤滅氣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아니 거의 없다. 동서남북이나 그와 비슷한 수준 정도만이 막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동서남북과 비슷한 수준의 인물이 강호에 누가 있단 말인가? 있다면 단 하나. 마교의 교주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적멸기를 막아내는 무공에서 마기魔氣가 느껴졌다. 그런데 그 마기는 극렬하다기 보다는 현묘玄妙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렇소.”

“언제고 내 앞에 나타날 줄 알았지만 그때가 지금인지는 몰랐군.”

“이 아이와 인연이 조금 있소.”

교주가 고개를 뒤로 돌려 주은백을 잠깐 봤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북천을 바라본다.

서설란은 그때 교주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잘생기고 중후한 장년인이었다. 조금 마른 듯한 체격이었지만 장년인의 중후한 느낌을 감소시키지는 않았다.

“허허. 인연이란 추측할 수 없지. 그래, 내게 빚을 받으러 오셨는가?”

북천은 서천의 후예가 어떻게 마교의 교주와 인연이 닿아 있는지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그렇소. 하지만 오늘은 어려울 것 같소.”

쓰러진 주은백을 돌보아야 하는 것이다. 시간을 끌다간 자칫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었다.

“이해하네.”

교주의 말에 북천이 고개를 끄덕인다. 북천은 교주의 의도를 충분히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 아이들을 데려 가겠소. 우리의 만남은 다음으로 미루도록 합시다.”

“데려가게.”

북천이 교주의 제안을 순순히 허락한다. 그리곤 서설란을 바라보며 한마디를 덧붙인다.

“이것으로 옛 벗에 대한 사과를 대신한다고 자네 스승에게 전해주게. 그리고 다음에는 내게 자비를 기대하지 말게.”

북천은 마음속에 남아있었던 지난날의 찜찜함을 주은백과 서설란을 살려줌으로써 홀가분히 털어내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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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190. 빚을 돌려받다 +3 17.08.17 2,233 52 11쪽
190 189. 떨어지는 늙은 별 +3 17.08.15 2,249 47 9쪽
» 188. 두 거인巨人 +5 17.08.13 2,351 46 10쪽
188 187. 마지막 질문 +3 17.08.11 2,220 48 11쪽
187 186. 초대招待 +4 17.08.09 2,225 48 11쪽
186 185. 찾아 나서다 +3 17.08.07 2,200 44 9쪽
185 184. 남천南天까지 +2 17.08.05 2,272 42 10쪽
184 183. 지원 요청 +3 17.08.03 2,346 46 10쪽
183 182. 계약이행契約履行 +3 17.07.31 2,182 44 10쪽
182 181. 북천과 서천 +4 17.07.30 2,139 49 10쪽
181 180. 불광불급不狂不及 +4 17.07.28 2,183 44 11쪽
180 179. 계약契約 +5 17.07.26 2,094 47 10쪽
179 178. 발톱 +4 17.07.24 2,057 48 9쪽
178 177. 발각發覺 +3 17.07.22 2,302 47 8쪽
177 176. 낙찰落札 +3 17.07.20 2,283 45 9쪽
176 175. 옛 터 +3 17.07.18 2,259 44 10쪽
175 174. 애증愛憎 +3 17.07.15 2,222 48 11쪽
174 173. 반가운 만남 어두운 얼굴 +3 17.07.13 2,481 47 10쪽
173 172. 목걸이를 찾아라 +4 17.07.11 2,308 46 10쪽
172 171. 삼별조三別組 +3 17.07.09 2,281 44 8쪽
171 170. 입장 변화 +4 17.07.07 2,350 48 9쪽
170 169. 숨결 +5 17.07.05 2,272 52 10쪽
169 168. 기다림 +5 17.07.03 2,363 49 9쪽
168 167. 탈출脫出 +3 17.07.01 2,284 46 11쪽
167 166. 신세계新世界 +3 17.06.27 2,369 44 9쪽
166 165. 야망野望 +3 17.06.26 2,307 41 9쪽
165 164. 산기창공散氣創空 +3 17.06.24 2,352 43 9쪽
164 163. 함락陷落 +3 17.06.22 2,441 43 10쪽
163 162. 와해瓦解 +3 17.06.20 2,407 4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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