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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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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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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7.06.24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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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64. 산기창공散氣創空

DUMMY

“물이라도 마르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인가?”

백의가 물배를 채우며 히죽 웃는다. 이끼를 먹는 주기周期가 두세 번 지나갔다.

주기가 바깥 세상에서 어느 정도 시간인지 정확히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아마 하루나 이틀 정도 될 것이다. 점점 먹는 주기를 늘여온 탓이다. 즉, 이미 며칠을 굶고 있는 셈이었다.

이끼가 다시 자라기 위해서는 제법 시일이 걸릴 것이다. 굶어 죽기 전에 이끼가 자랄지 어떨지 알 수 없었다.

“이끼가 자라는 게 먼절까? 묵대협이 먼절까?”

흑의가 백의에게 묻는다. 자신들이 굶어 죽기 전에 두 가지 중 한가지가 달성되어야만 했다.

“자네가 깨달음을 얻는 것이 빠를까, 이끼가 자라는 것이 빠를까?”

“당연히 이끼가 빨리 자라겠지. 하지만 묵대협이잖아?”

“그렇긴 하지. 그래도 나는 이끼에 걸겠어.”

“그럼 나는 묵대협에 걸지. 이끼에 내 인생을 걸고 싶진 않아.”

백의와 흑의의 얘기를 듣던 추란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이끼보다는 묵대협에 인생을 건다는 흑의의 말에 묘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렴 사람이 사람보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이끼에 자기 인생을 걸겠는가? 하지만 많은 경우 스스로 의식하지도 못한 채 사람보다는 미물에게 인생을 거는 게 또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은 그보다 더 못했다. 무엇에도 인생을 걸지 않았고 무엇도 믿지 않고 살아왔지 않았는가?

“나도 묵대협에 걸지.”

추란이 백의와 흑의의 얘기에 끼어든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

백의가 눈빛을 반짝이며 나머지 사람들을 둘러본다.

“어떻게?”

흑의가 궁금하다는 듯이 다른 사람을 대신해 묻는다.

“내기를 하는 거야. 이끼에 거는 사람은, 이끼가 먼저 나면 사형이 되고, 묵대협에 거는 사람은 만일 이끼가 나기 전에 묵대협이 출구를 찾아 나가면 그 사람이 사형이 되는 거지. 어때?”

백의의 눈에 빛이 난다. 대등한 동료 관계였지만 알게 모르게 막내 취급을 받아온 백의였다. 이 참에 사형 노릇을 할 수 있을 지 모른단 기대에 눈이 초롱초롱해진 것이다.

“좋아. 나는 좀 전에도 말했듯이 묵대협”

“나도 묵대협”

흑의와 추란이 백의의 제안을 받았다.

“자네들은?”

흑의가 적의와 황의에게 묻는다.

“나도 묵대협에 걸지”

추란을 보며 말하는 황의다. 추란도 황의에게 미소를 보내준다.

반면 적의는 선뜻 대답하지 않고 고민에 잠긴 듯했다.

“왜 그리 뜸을 들여? 할거야 말거야?”

백의가 재촉하자 적의가 백의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나도 묵대협에 건다.”

적의마저 묵대협에 걸자 이끼에 건 사람은 백의밖에 없었다.

“모 아니면 도군. 모두 약속을 지켜야 해. 이끼가 먼저 나면 내가 최고 사형이 되는 거야.”

백의가 나머지 네 사람에게 못을 박듯 말한다.

“자네도 분명히 약속을 지키게. 묵대협이 먼저 출구를 찾으면 자네는 우리 중 제일 어린 사제가 되는 거야.”

“좋아.”

백의가 흔쾌히 대답한다. 이미 이끼는 파릇한 색깔을 띠기 시작했다. 며칠만 기다리면 그런대로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백의의 입가에는, 배고픔에도 불구하고 사형 노릇할 생각에 미소가 걸렸다.


묵진휘가 눈을 감고 좌대 위 공중에 떠있다. 이젠 자신 한 몸은 상당시간 공중에 떠 있을 수 있었다. 즉, 밑으로 잡아 당기는 근원적인 힘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 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공간을 창출해야 한다. 그런 공간 속에서 북천을 상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승산이 있다.

묵진휘가 계속 사유思惟를 이어간다.

근원적인 힘을 느끼진 못하지만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자신의 기氣인 묵운기도 존재한다. 근원적인 힘도 기氣와 같은 방식으로 작용할 것이라 전제하고 기와 기를 대응시킨다. 두 기氣 사이에 경계가 생기고, 경계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있지만 한편으론 경계를 기준으로 서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다. 묵진휘는 근원적인 힘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공중 부양이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공간을 창출하긴 어려웠다. 묵운기를 넓게 펼쳐 근원적인 힘에 대응시킬 순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일시적으로 가능할 것이나 무리가 따랐다. 마치 흐르는 물을 막으려 하는 것과 같았다. 물을 칸막이 같은 것으로 아무리 막는다 한들 계속 흘러오는 물을 어찌 모두 막을 것인가? 결국 물은 넘쳐 칸막이를 넘어 흘러올 것이다. 그것이 근원적인 힘의 위대함이다. 멈추지 않는 것. 일시적으로 막을 수 있으나 결국에는 그 힘에 정복당할 수 밖에 없다.

묵진휘가 흐르는 물을 비유로 사유를 이어가다가 갑자기 눈을 떴다 다시 감았다.

‘그래, 흐르는 물이다.’

흐르는 물을 어찌 모두 막을 것인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방향을 바꾸거나 흩어지게 할 순 있다. 그것이 치수治水다. 요, 순 임금과 같은 성인들이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주력한 사업, 치수治水.

기氣는 물과 같다. 흩어버리면 된다.

흐르는 물 사이에 삼각형 쐐기 모양의 물체를 놓으면 물은 양갈래로 흩어져 흘러간다. 쐐기 모양의 물체 뒤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 공간이 생긴다.

조그만 쐐기 하나로 도도하게 흐르는 물의 흐름을 바꾸어 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다.

묵진휘가 기氣의 흐름을 생각한다. 어떻게 흘러오는 물을 흩듯이 기를 흩어지게 할 것인가를 궁구하는 것이다. 기의 흐름 역시 물의 흐름과 동일하다. 뒤의 물이 앞의 물을 밀며 나아가는 것처럼, 연못에 고인 물에 돌맹이를 던지면 동심원이 번져가듯, 영향을 받은 물이 뒤에 있는 물을 밀어내는 것과 동일하게 기가 공기 중에서 파장波長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 파장을 특정 유형으로 형상화하고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초식이다.

근원적인 힘의 파장을 흩기 위한 쐐기를 놓으면 된다. 동심원이 번져오면 또 다른 돌맹이를 던져 또 다른 동심원을 만들어 번져오는 동심원을 막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묵진휘가 군데 군데 묵운기를 돌맹이처럼 던져본다. 근원적인 힘을 흩트려 자유로운 공간을 창출하기 위함이다.


산기창공散氣創空···근원적인 기를 흩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다.


묵진휘는 이 새로운 방식을 산기창공이라 부르기로 했다. 산기창공은 직접적인 무공은 아니다. 적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공이기도 했다. 그 공간 속에서 묵진휘는 자연의 근원적인 힘을 주재하는 절대자가 될 수 있었다.

묵운외기를 통해 창출했던 공간과 다르게 근원적인 힘까지도 완전 배제시킨 자신만의 절대공간. 그것이 산기창공散氣創空인 것이다.

묵진휘의 수련은 이제 뚜렷한 목적과 이치를 확보했다. 산기창공을 만들 수 있는 요소를 찾고 그것에 익숙해지면 되는 것이다.



무한 외곽의 작지만 아담한 장원에도 벌써 가을이 완연했다.

“바람이 제법 선선해졌어요. 벌써 가을이 왔나 봐요.”

“청해는 이미 가을이 깊어지고 있겠구나.”

유혜연의 말에 교주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못해 강물을 이루고 있다.

“언제쯤 돌아가시려오?”

파파 서은후가 교주에게 묻는다.

“이제 돌아가야겠지요. 그런대로 볼 것도 다 봤으니.”

“안돼요. 가을까지 여기 있다 가요.”

교주의 대답에 유혜연이 때를 부리기 시작한다.

“청해로 가는 길에 느긋하게 구경하다 가면 되지 않겠느냐?”

“돌아가는 길과 여행하는 길은 다르잖아요? 아빠~”

유혜연이 다시 소녀가 되어 아빠를 보채기 시작했다. 주은백과 헤어진 후 성숙한 여인으로 변모했던 유혜연이 아빠가 오자 다시 소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주은백이 그런 유혜연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본다. 삶이란 어쩌면 저렇게 때를 부리며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스쳐갔다.

그때 교주가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잠깐 뒤뜰에 다녀오마.”

교주가 모현이 근처에 왔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런데 모현의 기색이 다급하게 느껴졌기에 얼굴에서 웃음을 지운 것이다.

당연히 주은백과 유긍연도 모현의 출현을 알아 차렸다.


“갈군사로부터 긴급 전서가 왔습니다. 일정령주가 죽고 신기령주가 팔 하나를 잃었다고 합니다.”

모현이 두 영주의 소식부터 전했다.

“뭣이?”

웬만한 보고에는 미동도 않던 교주였다. 모현은 교주가 놀라는 모습을 처음 보곤 속으로 놀랐다.

“노인 하나가 본산으로 쳐들어와 두 영주님과 대결을 벌였다고 합니다.”

“왜?”

“노인의 제자가 마교인의 손에 죽었다고 그 목숨 값을 받으러 왔다 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자 일행이 일정령주의 손에 죽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두 영주가 노인과 직접?”

“노인이 정문에서 소란을 부려 처음에는 경비부대가 나섰으나 밀렸습니다. 그 다음 지주대, 천주대가 차례로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 영주께서 직접 나서셨지만 막지 못하고 그만···”

보고하던 모현의 말이 끝을 맺지 못했다.

“누군가? 그 노인은?”

“스스로 북천이라 했다 합니다.”

“북천?”

교주가 북천을 되묻는다. 들어본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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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190. 빚을 돌려받다 +3 17.08.17 2,233 5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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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187. 마지막 질문 +3 17.08.11 2,220 48 11쪽
187 186. 초대招待 +4 17.08.09 2,225 48 11쪽
186 185. 찾아 나서다 +3 17.08.07 2,200 44 9쪽
185 184. 남천南天까지 +2 17.08.05 2,272 42 10쪽
184 183. 지원 요청 +3 17.08.03 2,346 46 10쪽
183 182. 계약이행契約履行 +3 17.07.31 2,182 44 10쪽
182 181. 북천과 서천 +4 17.07.30 2,139 49 10쪽
181 180. 불광불급不狂不及 +4 17.07.28 2,183 44 11쪽
180 179. 계약契約 +5 17.07.26 2,095 47 10쪽
179 178. 발톱 +4 17.07.24 2,057 48 9쪽
178 177. 발각發覺 +3 17.07.22 2,302 47 8쪽
177 176. 낙찰落札 +3 17.07.20 2,283 45 9쪽
176 175. 옛 터 +3 17.07.18 2,259 44 10쪽
175 174. 애증愛憎 +3 17.07.15 2,222 48 11쪽
174 173. 반가운 만남 어두운 얼굴 +3 17.07.13 2,481 47 10쪽
173 172. 목걸이를 찾아라 +4 17.07.11 2,308 46 10쪽
172 171. 삼별조三別組 +3 17.07.09 2,281 44 8쪽
171 170. 입장 변화 +4 17.07.07 2,350 48 9쪽
170 169. 숨결 +5 17.07.05 2,272 52 10쪽
169 168. 기다림 +5 17.07.03 2,363 49 9쪽
168 167. 탈출脫出 +3 17.07.01 2,284 46 11쪽
167 166. 신세계新世界 +3 17.06.27 2,369 44 9쪽
166 165. 야망野望 +3 17.06.26 2,307 41 9쪽
» 164. 산기창공散氣創空 +3 17.06.24 2,353 43 9쪽
164 163. 함락陷落 +3 17.06.22 2,441 43 10쪽
163 162. 와해瓦解 +3 17.06.20 2,407 4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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