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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동서남북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연재수 :
252 회
조회수 :
778,539
추천수 :
12,451
글자수 :
1,158,507

작성
17.08.15 20:14
조회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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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글자
9쪽

189. 떨어지는 늙은 별

DUMMY

“어서 오십시오. 곽태감”

“오랜만에 보오이다.”

“조부태감도 오랜만에 보는구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인사를 마친 세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일전에 한번 온 적이 있는 북경 외곽의 장원이다. 사 승상이 종종 이용하는 북천회 소유의 장원이었다.

조부태감은 장소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곽태감이 개의치 않으니 무어라 그럴 수 없었다.

“그동안 격조했소이다.”

사승상이 술병을 들어 곽태감의 술잔에 술은 따르더니 조부태감에게도 술을 따라준다.

“바쁘시면 그럴 수도 있지요. 허허. 충분히 이해합니다.”

곽태감이 사승상의 인사를 받는다. 속으로는 사승상을 괘씸하게 생각하겠지만 말로는 그럴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사과의 의미로 지난날 약조했던 것을 오늘 지키려고 태감 어른을 모셨습니다. 허허. 이리 들어오너라.”

사승상이 태감을 바라본 후 밖을 향해 소리치자 문이 열리며 아름다운 여인 하나가 사뿐한 걸음걸이로 들어온다.

“거기 앉거라.”

사승상이 곽태감 옆을 손으로 가리키며 여인에게 말하자 여인이 다소곳이 곽태감 옆자리에 앉는다.

화용월태花容月態의 미모다.

일전에 이곳 장원에서 잠깐 본적이 있는 여인이다. 당시 곽태감이 이성을 잃을 정도로 반했던 여인이었다. 조부태감은 여인의 얼굴을 보자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곽태감이 사승상의 초대를 쉽게 허락한 것도 이 여인 때문이다. 사 승상의 화해를 믿어서가 아니라 여인을 보고자 초대에 응한 것이었다. 사 승상이 곽태감이라는 칼날을 무디게 만들려고 준비한 것이 저 여인이다.

조부태감은 여인의 얼굴을 보자 더욱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우려만으로 이 자리를 박찰 권한이 자신에게는 없었다.

술잔이 돌고 돈다. 평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곽태감이 술잔을 기울인다. 이내 혀가 꼬이기 시작하는 곽태감이다.

“태감 어르신께서 벌써 취기가 오르셨습니다. 허허허”

사승상이 사람 좋은 웃음으로 태감을 은근히 바라보더니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럼 자리를 봐드릴 테니 들어가 쉬시지요. 허허”

“그래도 되겠소? 내가 늙어가니 술이 예전만 못하구려. 하하”

혀가 살짝 꼬였지만 아직 자리에 들 정도로 취하지 않은 곽태감이다. 그러나 취한 척 한다. 자리에 들고 싶은 것이다.

“네가 어른을 모시고 가거라.”

승상이 곽태감 옆에 앉은 여인에게 곽태감을 모실 것을 지시하자 곽태감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핀다. 조부태감은 곽태감의 웃음꽃만큼이나 마음에 어둠이 일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이미 경계심이 완전히 사라진 버린 곽태감이었다.

곽태감이 여인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우리끼리 한 잔 더 합시다.”

곽태감이 자리를 뜨자 사 승상이 웃음을 지으며 조부태감에게 술잔을 권한다. 그의 웃음이 전에 없이 조부태감의 비위를 긁었지만 조부태감도 웃으며 술잔을 마주 들었다. 조부태감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조부태감··· 조부태감 어서 일어나 보시오. 큰일 났소.”

사승상의 호들갑 뜨는 소리에 조부태감이 눈을 번쩍 떴다. 주위를 둘러보니 술을 먹던 방이다. 술에 취해 그대로 뻗었던 모양이다.

머리가 욱신거렸고 속이 메스꺼웠다. 평소의 숙취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지만 그걸 따지고 있을 겨를은 없었다.

조부태감이 눈으로 무슨 일인지 물었다.

“곽태감께서··· 곽태감께서···”

사 승상이 말을 잇지 못했지만 조부태감은 큰 사단이 났음을 알아차렸다. 지난 밤 자신의 좋지 않던 예감이 현실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방바닥을 딛고 있던 팔이 잠깐 꺾였다가 도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무슨 일입니까?”

“어서 가봅시다. 곽태감께서···”

사승상이 대답대신 조부태감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조부태감은 사승상의 팔에 기대 자리에서 일어섰다. 곧 사승상이 방문을 열고 나갔고 조부태감이 뒤따랐다.


사승상과 조부태감이 어느 방 앞에 도착하자 이미 그곳에는 호위무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고 시중드는 여인 서너 명이 불안한 듯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사승상이 방문을 열고 들어갔고 조부태감이 따라 들어갔다.

방은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고 싱싱한 꽃들이 화병에 꽂힌 탓에 향기로운 냄새가 방안 가득했다.

침상 모서리에 화용월태의 여인이 작은 어깨를 한껏 웅크린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고 곽태감은 옷을 모두 벗은 채 침상에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아니 죽어 있었다.

조부태감은 곽태감의 얼굴을 보자 올 것이 왔음을 알았다. 창백한 듯하면서도 어두운 기운이 서려있는 얼굴은 이미 산 자의 것이 아니었다.

“어찌된 일이오?”

조부태감이 사승상을 돌아보며 놀라 소리쳤다.

“나도 좀 전에 얘기를 듣곤 조부태감을 부르러 갔던 거요. 어찌된 일이냐?”

사승상이 침상 곁에 있는 여인에게 정황을 묻자 화용월태의 여인은 어깨만 더욱 오들오들 떨 뿐 입을 열지 못했고 방 밖에 있던 시중드는 하녀 하나가 방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갑자기 방에서 까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려 달려왔습니다. 그랬더니 태감 어르신께서 침상에 누워계셨고 여인은 울고 있었습니다. 여인의 말로는 태감 어르신께서 갑자기 호흡 곤란을 일으키시더니 곧 숨을 거두셨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우선 의원을 불러라.”

“이미 의원을 부르러 갔으니 곧 오실 것입니다.”

사승상의 말에 어느새 밖에 염소수염의 사내 하나가 서있었다. 장원의 총관인 모양이었다.

“의원 외에는 어느 누구도 방안에 들이지 말고 아무 것도 손대지 말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총관이 허리를 숙이곤 방을 나섰다.

조부태감은 현재의 상황을 더듬어보기 시작했다.

자신이 보기에는 다른 외상이 없다. 심장마비 같아 보였다. 물론 독약 같은 것을 먹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독은 검출되지 않을 것이다.

사승상의 계획일수도 있었고 우연일수도 있다. 하지만 사승상의 계획일지라도 우연의 탈을 덮어쓸 것이다. 증거가 발각될 리 없을 테니까.

“우리도 옆 방으로 가서 기다립시다.”

사승상이 조부태감을 이끌고 방을 나가 옆방으로 들어갔다.



“대답이나 하라.”

묵진휘가 수호법에게 다시 한번 대답을 촉구한다.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하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묻는다면 없소.”

대답하는 수호법의 얼굴에서 웃음이 지워졌다. 상대는 동천의 후예다. 여유를 잡을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묵진휘가 검집에서 조용히 검을 빼들었다. 그것으로 장내의 공기는 빠르게 얼어붙는 듯했다.

“놈을 쳐라”

천형환 전주가 뒤에 서있던 호위무사들에게 큰소리로 말하자 호위무사들이 묵진휘 곁으로 다가가려 했다.

“그만.”

수호법이 손을 들어 호위무사들을 제지한다. 그들로 어찌해볼 상대가 아닌 것이다. 해정 장원에는 무인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수익사업을 주임무로 하는 횡일수전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북천회의 주력 무력부대는 강남과 강북으로 흩어져 중소문파와 표국들에 대한 습격을 벌이고 있었다. 빈도가 잦은 편이 아니어서 일반 백성들은 그리 큰 혼란을 느끼지 못했지만 강호무림에는 상당한 긴장을 조성하고 있었다.

“태상호법께서 주의하라 당부하셨지만 나는 사실 동천의 후예니 서천의 후예니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인정할 수 없었는데 오늘에야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었구려. 부디 나의 기대를 외면하지 말았으면 좋겠소.”

수호법이 말을 하면서 동시에 검을 빼 든다. 화려한 손잡이에 유려한 검신이 상당한 보검寶劍임을 말해주고 있다.

수호법이 천천히 검 끝을 눕히면서 묵진휘에게로 검 끝을 향한다.

그리곤 이내 신형을 날리며 검을 어지럽게 휘두른다. 수호법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검의 잔상이 오래도록 남아 마치 몇 개의 검이 동시에 묵진휘에게로 향하고 있는 듯 보인다.

화려한 변검變劍이다. 순간적으로 검면에 빛을 모아 검의 잔상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유연하다. 물이 고요히 흐르는 듯하다.

화려하면 유연하기 어렵고 유연하면 화려하기 어렵다. 그래서 검법은 두 가지 중 하나의 특성을 극대화한다. 화산의 검이 화려함을 특성으로 한다면 무당의 검은 유연함을 특성으로 한다.

그런데 수호법의 검은 화려하면서도 유연하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고수인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몇 개로 보이는 수호법의 검이 화려하면서도 유연하게 묵진휘의 주위를 휘감고 있지만, 묵진휘는 담담하게 수호법의 눈을 응시할 뿐 그의 검은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


쐐애애액~

묵진휘의 주위를 휘감고 돌던 검이 어느덧 부드럽지만 재빠른 파공성을 내면서 묵진휘의 가슴과 허리, 얼굴과 다리로 파고들어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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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190. 빚을 돌려받다 +3 17.08.17 2,234 52 11쪽
» 189. 떨어지는 늙은 별 +3 17.08.15 2,250 47 9쪽
189 188. 두 거인巨人 +5 17.08.13 2,351 46 10쪽
188 187. 마지막 질문 +3 17.08.11 2,220 48 11쪽
187 186. 초대招待 +4 17.08.09 2,225 48 11쪽
186 185. 찾아 나서다 +3 17.08.07 2,201 44 9쪽
185 184. 남천南天까지 +2 17.08.05 2,273 42 10쪽
184 183. 지원 요청 +3 17.08.03 2,346 46 10쪽
183 182. 계약이행契約履行 +3 17.07.31 2,182 44 10쪽
182 181. 북천과 서천 +4 17.07.30 2,140 49 10쪽
181 180. 불광불급不狂不及 +4 17.07.28 2,184 44 11쪽
180 179. 계약契約 +5 17.07.26 2,095 47 10쪽
179 178. 발톱 +4 17.07.24 2,058 48 9쪽
178 177. 발각發覺 +3 17.07.22 2,303 47 8쪽
177 176. 낙찰落札 +3 17.07.20 2,284 45 9쪽
176 175. 옛 터 +3 17.07.18 2,259 44 10쪽
175 174. 애증愛憎 +3 17.07.15 2,222 48 11쪽
174 173. 반가운 만남 어두운 얼굴 +3 17.07.13 2,482 47 10쪽
173 172. 목걸이를 찾아라 +4 17.07.11 2,309 46 10쪽
172 171. 삼별조三別組 +3 17.07.09 2,282 44 8쪽
171 170. 입장 변화 +4 17.07.07 2,351 48 9쪽
170 169. 숨결 +5 17.07.05 2,272 52 10쪽
169 168. 기다림 +5 17.07.03 2,364 49 9쪽
168 167. 탈출脫出 +3 17.07.01 2,285 46 11쪽
167 166. 신세계新世界 +3 17.06.27 2,370 44 9쪽
166 165. 야망野望 +3 17.06.26 2,308 41 9쪽
165 164. 산기창공散氣創空 +3 17.06.24 2,353 43 9쪽
164 163. 함락陷落 +3 17.06.22 2,442 43 10쪽
163 162. 와해瓦解 +3 17.06.20 2,408 4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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