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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동서남북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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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7.08.09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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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86. 초대招待

DUMMY

“사 승상이 우리를 초대했구려.”

곽태감이 얼굴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갑자기 왜?”

조부태감의 반문이다. 근래의 일들을 돌이켜보면 이미 동창과 승상부는 갈라선 것이나 다름 없었다. 대리청정을 임의로 추진하고, 동창의 예산을 삭감하고···

그런데 갑자기 곽태감을 초대하다니 당연히 이상한 일이다.

“혹시 근래의 일들에 대한 사과의 의미 아니겠소? 일종의 화해의 표시 말이오.”

곽태감의 해석이다. 그러나 조부태감은 곽태감의 해석에 의문이 일었다.

갑자기 화해를?

승상부의 패권적인 일련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동창은 이렇다 할 반격 한번 하지 못했다. 애초 동창 자체는 명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정치집단이 아니기에. 따라서 모든 정치공작은 황제를 통하거나 대리代理를 통해서 했다. 그런데 지금 황제도 없고, 지난날 대리 역할을 했던 승상부도 주객전도主客顚倒의 양상이었다. 이제 동창은 이빨 빠진 호랑이인 것이다. 종이호랑이.

그런데 이제 와서 화해를?

이상했고 수상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자기 멋대로 일을 진행하고 나서 이제 화해라니요? 수상합니다.”

“물론 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오. 허나 초대를 거절할 수도 없지 않소.”

조부태감의 우려에 동의하면서도 결론은 달라지는 곽태감이다. 평소의 신중하고 예민한 곽태감치고는 너무 편하게 상황을 받아들인다.

사람은 갑자기 불리한 환경이 도래하면 이를 완전히 인정하지 못한다. 명백한 불리함 속에서도 한 가닥 유리한 조각을 찾으려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한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계속해서 불리함이 조성되어도 버티고 버티면서 안간힘을 써서 유리한 조각을 찾으려 한다. 그러다 종국에 가서야 이미 대세가 기울었음을 깨닫지만 그땐 이미 늦는다. 늦어도 너무 늦는 것이다. 그래서 몰락한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서까래로도 못 막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생각할 땐 주위에서 아무리 말리고 알려주어도 듣지 않는다. 오히려 말해주는 사람을 미워한다. 머리가 좋고 나쁘고, 돈이 있고 없고를 불문하고 적용되는 법칙 같은 것이다.

지금 곽태감이 그러했다.

조부태감은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 알고 계시오.”

다시 한번 곽태감이 당부하듯이 못을 박는다.



헉 헉···

비록 애써 숨기고 있지만 서설란의 숨결이 가쁘다. 단정하게 묶여 있던 머리카락이 조금씩 삐져나와 바람결에 흩날리고 몇 가닥은 얼굴의 땀에 묻어 있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면사포는 날아간 지 오래였다.

주은백의 사정은 더욱 힘겨워 보였다. 서설란보다 주은백이 앞장서 북천과 싸웠기 때문이다. 군데군데 옷이 찢어져 있었고 사이사이로 핏자국이 보였다.

“과연···”

북천은 수시로 감탄사를 토해내고 있었다. 북천의 소매도 너덜거리고 있었지만 호흡이 가쁘거나 하지도 않아 보였고 다른 매무새도 단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서로 손을 겨루기 전에 솟아올랐던 분노는 싸우는 과정에서 이미 많이 가라앉은 듯했다. 주은백과 서설란의 무공에 대한 관심이 분노를 몰아낸 것이다. 뼛속 깊이 무인의 기질을 가진 북천이었다.

사실 동서남북은 서로의 무공에 대해 그런대로 잘 알고 있었으나, 서로 생사를 놓고 겨룬 적은 당연히 없었다. 심각한 비무마저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실전과정에서 서로의 무공을 겪어보기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북천은 지금 주은백과 서설란에 대한 분노도 잊어버리고 서천과 남천의 무공을 견식하고 있는 셈이었다.

‘서천과 남천의 무공이 대단했구나.’

북천은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북천은 동서남북간에 서열이 있지는 않았지만 내심 무공으론 자신이 최고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동천의 무공이 현묘하기론 최고라고 하나 그 현묘함은 완성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여겼다. 전대前代의 동천들 중 어느 누구도 그 현묘함을 완성한 이가 없다는 사실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었다. 천고의 기재奇才들이 완성을 위해 도전한 동천의 무공이었지만 그 끝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이미 각자의 무공에 십성 가량 도달한 수준이지만, 아직 주은백과 서설란은 스승들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현묘한 무공일수록 그렇다. 십성十成이 최고의 경지이지만 대성大成은 또 다른 문제였다. 누구는 대성이 십이성十二成이라고 표현하나 단계로 나타낼 수 없는 경지가 대성이었다.


대교약졸大巧若拙···

큰 기예는 오히려 졸렬한 듯 보인다. 그것이 대성의 경지다.

어쩌면 최고의 경지는 최정상을 지난 바로 아래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연륜이 필요하고 지속적인 공부와 깨달음이 필요하다.

주은백과 서설란은 젊고 똑똑하며 타고난 자질을 갖춘 천고의 기재들이다. 그들이 스승을 만난 것은 우연이지만, 그들 스승은 한눈에 그들의 자질을 알아보고 그들을 제자로 삼은 것이다. 가엽고 불쌍해서 거둔 것 아니다. 지금 그들은 이미 그들 스승으로부터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스승과 동일한 수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스승들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그들이 이미 완성한 무공을 다듬고, 손보고, 더 깊이 이해하고, 느끼고, 체화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화려함을 줄이고, 변화를 줄이고, 초식을 줄임으로서 졸렬한 듯 보이겠지만 오히려 그 정수精髓를 단단히 하는 것이다. 그것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스승은 늙어감에 따라 근력이 떨어지고 반응이 느려지며 젊은 날의 총명을 잃고 혼미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제자가 스승을 넘어설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공부 과정에서 새로운 단계, 새로운 질을 획득하는 경우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지만.


[지금의 우리로는 도저히 북천을 이길 수 없소. 이 곳을 벗어나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것이 낫겠소.]

북천이 감탄하고 있는 사이 주은백이 서설란에게 전음을 보내왔다.

서설란은 조금 놀랐다. 주은백이 이런 생각을 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 주은백은 북천으로부터 도망가자고 하고 있는 것이다.

[설사 도망가려 해도 저 노인네로부터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서설란의 답이다. 서설란도 주은백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무인의 자존심 이전에 세상을 걱정해야 한다. 그것이 대인大人이다. 소인은 자신의 자존심을 생각하지만 대인은 세상의 자존심을 생각한다. 북천을 제거하지 않으면 세상이 그에게 지배당한다. 막아야 한다. 그러려면 이대로 죽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벗어나기는 어렵겠지만 한 사람쯤은 벗어날 수 있을 것이요. 내가 공격을 해 보겠소. 서소저도 공격하는 척하다가 이곳을 벗어나시오.]

주은백은 애초 자신이 도망갈 생각이 없었다. 서설란이라도 살려 보내려는 것이다.

[그럴 수는 없어요. 주공자를 두고 혼자 갈 수 없어요.]

[나는 홀몸이요. 하지만 서소저는 스승도 계시고 상정문이라는 식솔들도 있소. 그들을 보살피면서 기회를 노리는 것이 합당할 것이오. 주저하지 마시오. 이 기회마저 놓치면 다시 기회를 잡긴 쉽지 않을 것이요.]

주은백이 강한 어조로 전음을 보내왔다. 주은백의 견고한 결심이 보였다. 서설란은 망설였다. 주은백의 얘기대로 자신은 스승과 상정문 식솔들을 돌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주공자를 혼자 두고 간다면 평생을 가슴저리며 살 것이다.

그렇게 서설란이 망설이고 있는데 북천의 목소리가 들렸다.

“살고 싶다면 두 놈 다 보내주마. 네 놈들 스승에 대한 옛 벗으로서의 마지막 남은 정情이다.”

마치 북천이 주은백과 서설란의 전음을 듣기나 한 것처럼 말했고 두 사람은 흠칫 놀랐다.

“하하하. 당신이 옛 벗으로서의 정을 말하니 지하에 계신 스승님께서도 웃으시겠소.”

주은백이 호탕하게 웃으며 북천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리곤 서설란을 본다. 서설란을 보는 눈동자에는 재촉이 담겨 있다. 이 자리를 벗어나라는.

하지만 서설란은 희미하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천의 제자 놈처럼 묻어주마. 나를 원망하지는 말거라.”

북천이 한 손을 다시 앞으로 내민다. 그러자 손에서 뭉게뭉게 붉은 색 강기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보통 강기는 빛처럼 보인다. 그래서 투명하지만 단단한 금속 같은 느낌이다. 검에서 강기가 뿜어지면 마치 검이 길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이다. 내공에 따라, 숙련도에 따라 검에서 뿜어지는 강기의 길이가 달라지고 강도强度가 달라진다.

하지만 북천의 손에서 뿜어지는 강기는 안개처럼 피어난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했다. 딱딱한 금속같은 느낌이라기 보다는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구름처럼 부드럽다기 보다는 불꽃처럼 강렬하다는 느낌이었다. 금속에 불이 붙은 것처럼.

북천의 손에서 피어난 붉은 색 강기 덩어리가 이번에는 검과는 조금씩 다른 형상을 갖추어가기 시작했다.

북천의 초기 공격에서 강기 덩어리는 그냥 무정형의 덩어리 모습이었다. 그러던 것이 중간 즈음에는 검劍의 모습을 취하기도 했고 도刀의 모습을 취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강기 덩어리들의 공격특성이 달라졌다. 검처럼 빠르게 찔러 오는 듯도 했고 도처럼 거칠게 베어오는 듯도 했다. 지금은 검도 도도 아닌 다른 모습으로 형상화되고 있었다. 둥근 달처럼.

“네놈들에게는 이것이 마지막일 것이다. 두 눈으로 마지막 세상을 잘 보아두도록 하거라.”

북천의 말이 끝나자 강기 덩어리가 마침내 분명한 형상을 드러내면서 하늘을 날았다. 날카로운 륜輪이었다.

쇄애애액~

륜처럼 생긴 강기 덩어리가 정말 륜이 허공을 날 때 내는 날카로운 금속성을 내며 주은백과 서설란에게로 날아들었다.

주은백은 마치 눈 앞에 아무도 없는 듯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느릿하게 검을 가슴께로 들어올렸다. 풍정風精을 펼치려는 것이다.

“네놈이 벌써 풍정을 얻은 게로구나. 시천이로서는 어쩔 수 없었겠구나. 어디 풍정 구경을 해보자. 껄껄.”

북천이 주은백의 자세를 보더니 풍정을 알아본다. 풍정이라면 자신의 제자였던 차시천의 죽음이 충분히 이해되었던 것이다. 북천의 얼굴에는 긴장보다는 강한 호기심이 어렸다.

서설란 역시 자신의 최고 절초를 가다듬었다.

거경창파巨頃滄波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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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 초대招待 +4 17.08.09 2,226 48 11쪽
186 185. 찾아 나서다 +3 17.08.07 2,201 44 9쪽
185 184. 남천南天까지 +2 17.08.05 2,273 42 10쪽
184 183. 지원 요청 +3 17.08.03 2,346 46 10쪽
183 182. 계약이행契約履行 +3 17.07.31 2,183 44 10쪽
182 181. 북천과 서천 +4 17.07.30 2,140 49 10쪽
181 180. 불광불급不狂不及 +4 17.07.28 2,184 44 11쪽
180 179. 계약契約 +5 17.07.26 2,095 47 10쪽
179 178. 발톱 +4 17.07.24 2,058 48 9쪽
178 177. 발각發覺 +3 17.07.22 2,303 47 8쪽
177 176. 낙찰落札 +3 17.07.20 2,284 45 9쪽
176 175. 옛 터 +3 17.07.18 2,259 44 10쪽
175 174. 애증愛憎 +3 17.07.15 2,223 48 11쪽
174 173. 반가운 만남 어두운 얼굴 +3 17.07.13 2,482 47 10쪽
173 172. 목걸이를 찾아라 +4 17.07.11 2,309 46 10쪽
172 171. 삼별조三別組 +3 17.07.09 2,282 44 8쪽
171 170. 입장 변화 +4 17.07.07 2,351 48 9쪽
170 169. 숨결 +5 17.07.05 2,273 52 10쪽
169 168. 기다림 +5 17.07.03 2,364 49 9쪽
168 167. 탈출脫出 +3 17.07.01 2,285 46 11쪽
167 166. 신세계新世界 +3 17.06.27 2,370 44 9쪽
166 165. 야망野望 +3 17.06.26 2,308 41 9쪽
165 164. 산기창공散氣創空 +3 17.06.24 2,353 43 9쪽
164 163. 함락陷落 +3 17.06.22 2,442 43 10쪽
163 162. 와해瓦解 +3 17.06.20 2,408 4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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