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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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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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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0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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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68. 기다림

DUMMY

“벌써 가을이 깊어지는구나.”

중후한 목소리에 공녀가 뒤를 돌아본다. 아버지 이황야다.

공녀가 다른 대답 없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올린다.

“무얼 하고 있느냐?”

“달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달이 참 밝습니다.”

“그래, 달이 밝구나. 달 구경한지도 오랜 만이구나.”

“밤에 산책을 많이 하시길래 달 구경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산책을 나가도 고개를 들어 달을 보진 않는다. 습관이다. 허허”

“습관이요?”

“그러고 보니 이제는 기억도 가물거리는구나. 네 모친이 죽고 의도적으로 달을 보지 않았다. 달을 보면 네 모친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습관이 되어 달을 보지 않게 된 것이지.”

“어머니께서도 달을 좋아하셨나요?”

“그럼, 달을 닮았고 달을 좋아했지.”

“어머님을 보고 싶으시면 달을 보시지 왜 달을 피하셨어요?”

“그게 지금 너와 나 차이다. 나는 네 엄마를 그리워해도 다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었다. 그래서 잊으려 했지. 그러니 달을 멀리할 수 밖에. 하지만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달을 보며, 달을 추억 삼아 기다리는 거지.”

“그 사람도 잊어야 할 사람일지 모르겠어요. 확신이 없습니다.”

이제 아버지 앞이지만 스스럼없이 묵진휘에 대해 얘기하는 공녀였다.

“기다림을 포기하는 것은 인생을 포기하는 것이다. 확신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기대로 기다리는 것이다. 죽은 것이 명백하지 않으면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기대할 수 있다면 기다리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달을 보는 것이다. 얘야, 달을 보며 기다리거라. 그러다 보면 새로운 기대와 희망이 샘솟을 것이다. 슬퍼하지 말거라.”

이황야가 딸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자애로운 눈으로 딸의 눈을 응시한다.

아버지의 손길이 너무 따뜻하다. 아버지의 눈빛이 자신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진다. 딸의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이내 방울져 떨어진다.

이황야가 딸을 가볍게 안더니 등을 두드려준다.

“울지 말고 달을 보거라.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거라. 확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공녀가 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고개를 돌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올려다 본다.



객잔 안뜰에서 묵진휘가 달을 보고 있다. 공녀와 머물던 객잔이다.

객잔에 오기 전 무림맹 정주지부에 들렀다. 남궁이현이 남긴 편지를 봤다. 무한으로 오라는 편지였다. 객잔 주인은 공녀의 전갈을 전해주었다. 남경으로 꼭 오라는···

추란이 오던 날 밤에 공녀와 달 구경을 하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지금쯤 공녀도 남경에서 달을 구경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던 공녀를 향해, 걱정은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란 말을 했었다. 하지만 자신은 믿음 대신 걱정을 줬다. 마음 아파하고 있을 공녀의 마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노산에서 스승님과 지낼 때 느껴보지 못했던 마음 아픔이 하산 뒤론 여러 번 겪는 일이 되었다.

할아버지와 부모님의 죽음,

자신의 배에 화약통을 찔러 넣었던, 자객으로 나설 수 밖에 없었던 이름 모르는 소년의 죽음,

소노의 죽음,

공녀의 마음 아픔,

이 모든 것들이 묵진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픔 뒤에는 분노가 뒤 따른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분노할 일에는 침묵대신 분노해야 한다. 이제 묵진휘의 생각은 그러했다.

아픔과 분노를 가슴에 안고 묵진휘가 다시 하늘에 떠있는 달을 바라본다.

오의붕경과는 지금 막 객잔에서 헤어졌다.

그들은 북천회의 행방을 찾아 보겠다고 했다. 묵진휘는 남경으로 갔다가 무한으로 갈 것이라 했다.

무한의 무림맹 현무당 삼조를 연락망으로 삼기로 했다. 오의붕경은 무악산 접전 때 삼조원들을 잠깐 봤다. 잠깐이지만 삼조원들의 기개가 드높았기에 깊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오의붕경에게 안전을 우선하라고 몇 차례 당부했다. 그들은 그러마 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목숨을 도외시하고 북천회의 행방을 찾을 것임을 안다. 자신이라도 그럴 것이다.

묵진휘가 객잔 안뜰을 휙 둘러본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이유는 없었다.

묵진휘가 갑자기 땅을 박차며 객잔 담장을 넘어 날아갔다. 공녀가 그렇게 하염없이 바라보던 객잔 담장 너머 하늘을 향해 묵진휘의 신형이 쏜살같이 날아가더니 이내 점이 되었고 종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남궁이현은 어디 있어?”

두원이 집무실로 들어오면서 실내를 휙 둘러보더니 남궁이현이 보이지 않자 묻는다.

“어딘가에서 무공 수련 중이겠죠. 그 친구가 대낮에 기루에 갈리는 없으니.”

“큭큭”

항백의 대답에 경표가 큭큭거린다.

“남궁이현 앞으로 서신書信이 왔더군.”

두원이 품에서 서신 하나를 꺼내 남궁이현의 책상에 놓는다.

무림맹 소속 개인 앞으로 오는 서신은 무림맹 서신 담당 부서에 일괄적으로 모였다가 해당자에게 배분되는데, 두원이 삼조 집무실로 오다가 서신 배달 담당자를 만났기에 대신 들고 온 것이다.

서신은 표국이나 장사치 등을 통해 가는 방향이 맞으면 약간의 수수료를 지급하고 부탁하는데, 대도시간에는 서신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도 있었다.

남궁이현 앞으로 온 서신이라기에 당수진이 남궁이현의 책상으로 가서 서신을 살핀다. 차마 열어보지는 못하고 누가 발신자인지 보려는 것이다.

“해정海汀? 남태혼?”

당수진이 서신의 발신지와 발신인을 혼자 소리처럼 읽는다. 하지만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정도의 크기였다.

당수진의 소리에 당수진보다 서홍이 먼저 반응한다.

“태혼 그 친구가?”

서홍이 말과 함께 일어서 남궁이현의 책상으로 다가온다.

“그렇죠? 해정의 남대협이죠? 동해상단?”

당수진이 서홍에게 확인 차 되묻는다.

“그 친구가 왜?”

“안부 서신이겠지.”

경표와 항백도 큰 관심을 드러낸다.

남태혼이 어떻게 사는 지 궁금하기도 했고, 아무 일도 없어 무료하던 참이기도 했다.

그때 마침 삼조 집무실 문이 열리며 남궁이현이 들어왔다. 가을이라 선선해 땀이 날일이 없건만 남궁이현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무공수련을 한 것이다.

당수진이 대뜸 서신을 남궁이현에게 내민다. 삼조원 모두가 남궁이현에게 몰려들자 남궁이현이 약간 놀라며 삼조원들을 둘러본다. 이유를 묻는 것이다.

“해정의 남태혼에게서 온 서신일세. 어서 읽어보게.”

서홍이 재촉한다. 그제서야 남궁이현이 서신의 발신자를 보며 급히 봉투를 개봉한 후 서신을 꺼내 읽기 시작한다.


남궁이현이 편지를 다 읽자 삼조원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편지의 내용은 해정에서 다시 밀염 조직이 득세하며 시장이 문란해졌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노골적으로 밀염 거래를 하고 있는데, 관에 밀염 거래를 신고한 사람이 다음날 살해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동해상단도 무척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데 무림맹의 도움을 요청한다는 내용이었다. 묵진휘나 서홍은 공식적으로 무림맹 사람이 아니기에 남궁이현에게 대표로 보낸 서신이었다.

“허허, 완전히 원점이로군. 곳곳에서 습격과 기습이 판치는 바람에 어수선한 분위기인데 밀염조직까지 다시 나타난 셈이군.”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악화되었어. 무림맹은 그때 보다 더 무기력해졌잖아?”

항백의 탄식에 경표가 오히려 빈정거리기까지 했다. 경표 말대로 상황이 더 나빠진 것이다.

“어쩌죠?”

당수진이 모두를 둘러보며 묻는다.

“지금 무림맹이 공식적으로 지원을 승인하긴 어렵잖아?”

“그렇겠지. 그럼 어쩐다?”

경표의 말을 항백이 받는다.

“나는 공식적으로 무림맹 사람이 아니니 해정으로 가는데 문제가 없지. 나라도 우선 가보겠네.”

서홍이 마치 지금 바로 출발하려는 사람처럼 서두는 기색으로 말한다. 사실 남태혼과 가장 친하고 오래된 친구가 서홍 아니겠는가? 서홍은 자신이 그리 큰 힘이 되지 못함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인 남태혼의 곤란을 모른 척할 순 없었다. 묵진휘가 없는 것이 참으로 아쉬웠다.

“나도 같이 가지.”

남궁이현이 서홍을 보며 말하자 모두 어떻게? 라고 눈으로 묻는다.

“세가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거죠. 아니면 휴가 신청도 좋고.”

남궁이현이 뭐가 문제냐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렇지. 무림맹 승인을 왜 받아? 모두 자기 사문으로 돌아가는 것이 허락되고 있는데. 우리도 사문으로 돌아가면 되는 거지.”

항백이 손으로 머리를 치며 말한다. 습관적으로 조직적 절차를 먼저 떠올리고 있었던 자기 머리를 자책하는 것이다.

“그럼, 바로 짐을 꾸려 떠나도록 하세. 오래 끌게 뭐 있겠나?”

두원이 지시처럼 말한다.

“조장님께서도 가시게요?”

“그럼 나는 사문도 없겠나?”

경표의 물음에 두원이 목소리를 높여 되묻자 모두 싱긋 웃는다. 모두 이번 일이 상당히 위험할 수 있음을 알지만 누구도 해정으로 가는 것을 주춤거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삼조의 의리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어 기쁜 것이다. 하지만 경표는 입을 삐죽 내민다.

‘사문도 없으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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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190. 빚을 돌려받다 +3 17.08.17 2,234 52 11쪽
190 189. 떨어지는 늙은 별 +3 17.08.15 2,249 47 9쪽
189 188. 두 거인巨人 +5 17.08.13 2,351 46 10쪽
188 187. 마지막 질문 +3 17.08.11 2,220 48 11쪽
187 186. 초대招待 +4 17.08.09 2,225 48 11쪽
186 185. 찾아 나서다 +3 17.08.07 2,200 44 9쪽
185 184. 남천南天까지 +2 17.08.05 2,273 42 10쪽
184 183. 지원 요청 +3 17.08.03 2,346 46 10쪽
183 182. 계약이행契約履行 +3 17.07.31 2,182 44 10쪽
182 181. 북천과 서천 +4 17.07.30 2,140 49 10쪽
181 180. 불광불급不狂不及 +4 17.07.28 2,184 44 11쪽
180 179. 계약契約 +5 17.07.26 2,095 47 10쪽
179 178. 발톱 +4 17.07.24 2,058 48 9쪽
178 177. 발각發覺 +3 17.07.22 2,303 47 8쪽
177 176. 낙찰落札 +3 17.07.20 2,284 45 9쪽
176 175. 옛 터 +3 17.07.18 2,259 44 10쪽
175 174. 애증愛憎 +3 17.07.15 2,222 48 11쪽
174 173. 반가운 만남 어두운 얼굴 +3 17.07.13 2,482 47 10쪽
173 172. 목걸이를 찾아라 +4 17.07.11 2,309 46 10쪽
172 171. 삼별조三別組 +3 17.07.09 2,282 44 8쪽
171 170. 입장 변화 +4 17.07.07 2,350 48 9쪽
170 169. 숨결 +5 17.07.05 2,272 52 10쪽
» 168. 기다림 +5 17.07.03 2,364 49 9쪽
168 167. 탈출脫出 +3 17.07.01 2,285 46 11쪽
167 166. 신세계新世界 +3 17.06.27 2,369 44 9쪽
166 165. 야망野望 +3 17.06.26 2,308 41 9쪽
165 164. 산기창공散氣創空 +3 17.06.24 2,353 43 9쪽
164 163. 함락陷落 +3 17.06.22 2,441 43 10쪽
163 162. 와해瓦解 +3 17.06.20 2,408 4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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