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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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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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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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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7.07.05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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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69. 숨결

DUMMY

“동창 무사 삼할이 금의위로 전환배치 되었습니다.”

조부태감의 보고에 곽태감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야금야금 자신의 아성牙城을 허물고 있는 것이다. 조정에서는 승상부의 금번 조치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곽태감은 그것에 더욱 분노하고 있었다.

‘간신배 같은 놈들···’

곽태감이 입술을 질끈 씹는다. 평소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배속의 간이라도 꺼내줄 것처럼 굴든 것들이 이제 승상부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쁘다. 하지만 곽태감은 긴 한숨을 내뿜을 뿐이었다. 자신이 그들을 중용重用했다. 자신이 그들을 간신배로 만든 것이다.

옛말에 하늘이 만든 굴레는 피할 수 있어도 자신이 만든 굴레는 피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딱 맞는 말이다. 자신이 만든 간신배들로 인해 곽태감은 이제 조정에서 외톨이 신세가 된 것이다.

황제는 누워있고, 이황야와는 수십 년간 척져왔고, 사승상은 홀로 야망을 불태우고 있고, 조정에는 간신배들뿐이다.


휴~

다시 한번 곽태감이 긴 한숨을 내쉰다. 어찌 생각하면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어도 아쉽지 않을 나이다. 수십 년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며 잘 지냈다. 이대로 은퇴해도 전혀 아깝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아쉽고, 사 승상의 배신에 분노가 솟아 오르고, 가졌던 권력이 더욱 값지게만 보였다. 이대로 그냥 물러설 수 없다. 더욱이 사 승상이 자신을 이대로 가만 두지 않을 수 있다. 토사구팽이라고, 언제 제거하러 들지 모른다. 그렇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곳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다. 근래에 너무 나약해졌다. 곽태감이 다시 한번 주먹을 꽉 진다.

‘이대로 주저 앉진 않을 것이다.’

조부태감이라고 곽태감의 심사心事를 모르겠는가? 곽 태감이 긴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며, 한편으론 지난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안하무인眼下無人, 오만방자傲慢放恣 하던 모습을 생각하곤 고소하단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측은해 보였다. 갑자기 곽태감의 주름살이 도드라져 보였다.

‘이렇게 늙었었던가?’

한숨을 쉬는 곽태감을 보며 조부태감이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곽태감의 눈빛이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야망에 한번 불이 붙으면 저절로 꺼지는 법은 없었다.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순 없지. 상황을 뒤집기 위해선 놈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패가 필요해?”

조부태감이 곽태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멍하니 곽태감을 바라만 본다. 이해하지 못하니 대꾸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황야 측을 알아봐~”

곽태감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부태감은 어리벙벙하다. 이황야측을 알아볼게 뭐 있는가?

“그들은 이미 모두 사직하고 남경에 웅크리고 있지 않습니까?”

조부태감이 당신도 알고 있지 않냐는 얼굴로 말한다.

“이황야 측과 접촉할 방안을 모색하란 말이오.”

곽태감이 과거처럼 조부태감에게 갑자기 하오체를 쓴다. 자신의 마음을 다시 다잡고 있다는 말이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기조를 취하겠다는 의사표시다.

“적의 적은 친구인 법.”

곽태감이 조부태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한번 설명한다. 그제야 조부태감은 곽태감의 생각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 어둠에 잠겨 있는 이황야의 장원이 바라다 보이는 나무 가지 위에 한 인영이 새처럼 가볍게 내려섰다.

나무 가지에 내려선 인영이 천천히 이황야의 장원을 훑었다.

장원에는 이십 여명의 호위 무사들이 조그만 횃불을 밝힌 채 경계를 서고 있었고, 네 명의 고수들도 별도로 몸을 숨기고 은신해 있었다. 그리고 네 명의 고수들 외에 또 한 명의 고수가 은신하고 있었는데 그 은신 수법이 사뭇 정교해 웬만한 고수라도 그의 은신을 알아 채기 어려웠다.

‘특이호로군’

나무 가지 위의 인영이 다시 몸을 날려 이황야의 장원 속으로 사라졌다.


[걱정을 끼쳐 미안하오.]

꿈인지 생시인지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묵진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공녀 주여전이 잠자리에서 눈을 뜬다. 요즘 깊이 잠들지 못한다. 하지만 깜빡 깊은 잠에 빠졌던 모양이다. 그런데 묵진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 속에서도 꿈이라도 여겼다. 하지만 너무 생생했다.

눈을 뜬 공녀가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미 잠은 깼다. 아직 새벽은 멀었지만 그렇다고 한밤 중은지났다. 인시寅時 중간을 지나고 있을 것이다. 다시 잠들긴 어렵다. 잠이 들기 위해 뒤척이기는 해도 자다가 깨고 난 후 잠자리에서 뒤척이지는 않는 공녀였다.

공녀가 머리를 빗어 넘기고 옷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묵진휘의 목소리가 너무 생생하다. 울컥 울음이 나오려 하지만 목 깊은 곳에서부터 꾹꾹 눌러 가라앉힌다.

침상에서 일어나 탁자에 가서 앉는다. 등불을 켜곤 탁자에 놓여 있던 책 하나를 집어 든다. 산만한 생각을 책으로 달래려 하는 것이다.

[창문을 열어 보시오.]

다시 머리 속을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공녀가 머리를 흔들어 목소리를 털어 내려 한다. 번뇌 같은 상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의 목소리라면 귀에 들릴 것이다. 그런데 이 목소리는 귀가 아니라 머리 속에서 울리고 있다. 진짜 목소리일 리 없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생생하다.

책을 펼치다 종내 의자에서 일어선다. 시원한 새벽 공기라도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창문을 연다. 창문을 열라는 목소리 때문에 창문을 여는 것이 아니다.

창문을 연 주여전이 창 밖을 훑어본다.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마당의 작은 횃불 몇 개만이 가물거린다. 공녀가 창문에서 뒤돌아 다시 탁자로 걸어갔다. 그런데 뒤에서 바람이 일렁이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창문을 닫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을에 접어 들면서 새벽 바람도 차가웠다. 공녀가 다시 창문을 향해 뒤돌아섰다. 그런데···

뒤돌아선 공녀가 무릎을 꺾으며 휘청거렸다. 창문을 등지고 한 사람이 눈 앞에 서있었다. 익숙한 사람이다. 꿈에도 그리던 사람이다. 순간 모든 감정이 놀라 사방으로 튄다. 놀람도 솟아 오르고, 기쁨과 감격도 뛰어 오르고, 섭섭함과 원망도 솟구친다.

공녀 주여전이 무릎을 꺾으며 앞으로 쓰러지려 하는데 창문을 등지고 있던 사람이 쓰러지는 공녀를 받아 부축한다.

“놀라셨소?”

익숙한 음성이 귀에 들린다. 생생하다. 묻는 말에 대답을 해야 하는데 여러 감정들이 눈물부터 밀어낸다. 그리곤 팔에 힘을 주어 앞에 있는 사람을 끌어 안는다.

그러자 그 사람도 주여전을 가슴에 깊숙이 끌어 당겨 안는다.

두 사람이 서로를 깊이 끌어 안은 채 움직이지 않는다. 두 사람을 둘러싼 모든 것이 정지한 듯하다.


“진정하시오. 조금 늦었소. 미안하오.”

묵진휘가 주여전의 등을 토닥이며 주여전의 귓가에 속삭이자 한 순간 공녀의 떨림이 더욱 커졌다. 묵진휘는 공녀의 떨림에 당황했다. 그래서 더욱 강하게 공녀를 끌어 안았다. 떨림을 진정시켜주고 싶었다.

“어찌 이제 오십니까?”

“미안하오.”

묵진휘가 다시 미안하다 말하며 공녀를 끌어안고 있는 팔을 풀어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는 공녀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아 얼굴을 들여다 본다. 그러자 공녀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다.

“얼굴을 들어 보시오. 보고 싶었소.”

묵진휘의 말에 공녀가 얼굴을 묵진휘의 가슴에 더 깊이 박는다. 그녀의 숨결이 묵진휘의 가슴에서 느껴질 만큼.



“준비가 다 되었으면 출발하세.”

두원의 얘기에 삼조원들과 서홍, 관지선이 고개를 끄덕인다. 출장 준비에는 도가 튼 삼조원들이었다. 당연히 이번에도 관지선이 함께 했다.

“해정으로 가는 길에 남경에 들렸으면 합니다.”

서홍이 두원에게 건의한다. 공녀를 찾아보고 안부를 물을 생각인 것이다.

“당연히 그리해야지. 모두 공녀께 인사를 드려야지?”

두원이 흔쾌히 대답하며 삼조원들을 둘러보자 삼조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서홍은 자신만이 잠깐 들러 공녀에게 인사를 할 생각이었으나 삼조원 모두가 공녀에게 인사하겠다는 말에 순간 목이 매였다. 삼조원들이 고맙기도 했고 묵진휘도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슬픔에 잠긴 공녀의 얼굴도 떠올랐던 것이다.

“남태혼, 그 친구 제수씨 이름이 뭐였더라?”

항백이 큰소리로 화제를 바꾼다. 서홍의 기분을 전환시켜 주려는 것이다.

“예... 뭐였는데?”

경표가 기억을 더듬는 듯 눈을 천장으로 향한다.

“예소저 이름은 유선이예요. 동해상단의 예..유..선···”

“그래, 동해상단, 예유선.”

관지선이 또박또박 이름을 말하자 항백이 머리에 담으려는 듯 따라 말한다.

“주대협이 무한에 있다 했는데, 같이 가자고 해볼걸.”

“그러게. 주대협이 같이 가면 든든할 텐데.”

경표의 말에 항백도 남궁이현의 얼굴을 보며 거들고 나선다.

“그럴까 하다가 하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 나름대로 다른 할 일도 있는 듯 했습니다.”

남궁이현의 대답이다.

사실 남궁이현도 해정으로 함께 갈 것을 제안하려고 주은백을 만났으나 주은백의 표정에서 다른일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마교에서 일어난 일을 전해 들었다. 주은백은 중원에서 북천회를 탐문할 생각이었기에 해정으로의 동행을 제안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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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190. 빚을 돌려받다 +3 17.08.17 2,234 52 11쪽
190 189. 떨어지는 늙은 별 +3 17.08.15 2,250 4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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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187. 마지막 질문 +3 17.08.11 2,220 48 11쪽
187 186. 초대招待 +4 17.08.09 2,225 48 11쪽
186 185. 찾아 나서다 +3 17.08.07 2,201 44 9쪽
185 184. 남천南天까지 +2 17.08.05 2,273 42 10쪽
184 183. 지원 요청 +3 17.08.03 2,346 46 10쪽
183 182. 계약이행契約履行 +3 17.07.31 2,183 44 10쪽
182 181. 북천과 서천 +4 17.07.30 2,140 49 10쪽
181 180. 불광불급不狂不及 +4 17.07.28 2,184 44 11쪽
180 179. 계약契約 +5 17.07.26 2,095 47 10쪽
179 178. 발톱 +4 17.07.24 2,058 48 9쪽
178 177. 발각發覺 +3 17.07.22 2,303 47 8쪽
177 176. 낙찰落札 +3 17.07.20 2,284 45 9쪽
176 175. 옛 터 +3 17.07.18 2,259 44 10쪽
175 174. 애증愛憎 +3 17.07.15 2,223 48 11쪽
174 173. 반가운 만남 어두운 얼굴 +3 17.07.13 2,482 47 10쪽
173 172. 목걸이를 찾아라 +4 17.07.11 2,309 46 10쪽
172 171. 삼별조三別組 +3 17.07.09 2,282 44 8쪽
171 170. 입장 변화 +4 17.07.07 2,351 48 9쪽
» 169. 숨결 +5 17.07.05 2,273 52 10쪽
169 168. 기다림 +5 17.07.03 2,364 49 9쪽
168 167. 탈출脫出 +3 17.07.01 2,285 46 11쪽
167 166. 신세계新世界 +3 17.06.27 2,370 44 9쪽
166 165. 야망野望 +3 17.06.26 2,308 41 9쪽
165 164. 산기창공散氣創空 +3 17.06.24 2,353 43 9쪽
164 163. 함락陷落 +3 17.06.22 2,442 43 10쪽
163 162. 와해瓦解 +3 17.06.20 2,408 4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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