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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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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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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7.07.28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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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80. 불광불급不狂不及

DUMMY

“새외쌍검과 동해상단 무사들간의 비무를 보러 가시겠습니까?”

후명신이 전주 천형환에게 묻는다.

요 며칠 동해상단의 낙찰 건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는데 어제 수하가 와서 염풍상단과 동해상단간의 내기 소식을 전했다. 후명신의 속이 후련해졌다. 새외쌍검이 동해상단 정도의 무인들에게 절대 질리 없다고 생각한 탓이다.

새외쌍검이라면 회가 초빙하여 빈객으로 모시고 있는 새외의 고수들이었다. 피를 나눈 형제들은 아니었지만 피를 나눈 형제들 이상으로 항상 붙어 다니며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장년인들이었다. 말이 별로 없는 성격이었다. 말이 많으면 내공이 불순해진다고 믿는 골수 무인들이었다. 그만큼 고강한 무공을 소지하고 있었다. 빈객청에서도 상위의 인물들이었다. 그들이 고강한 이유는 낯선 새외 무공 덕분이기도 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검만 하더라도 검신이 도처럼 휘어져 있는 것이 도인가 하면 양면에 날카로운 날이 서있고 얄팍한 것으로는 검이었다. 그들과 마주선 중원 무인들은 이제껏 접해보지 못한 새외 무공과 무기의 모습에 당황하여 손발이 흐트러지기 일쑤였다.

“글쎄. 생각 중이오. 부전주는 어찌하실 생각이시오?”

”볼 필요 있겠습니까? 설마하니 새외쌍검이 시골 상단의 경비무사들을 당하지 못하려고요.”

“그건 그렇소만, 새로운 동해상단의 단주가 덥석 염풍상단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 조금 미심쩍기도 하오.”

역시 전주 자리에 운으로 오른 것만은 아니었다. 천형환은 너무 쉽게 상황이 풀려가는 것이 약간 미심쩍다고 느꼈다.

“소문에 돈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돈으로 돈을 먹는, 한마디로 장사꾼의 전형인 듯합니다. 그래서 동해상단도 인수했겠지요. 풍부한 자금력으로 밀어 부치면 될 거라 생각한 것이겠지요. 아마 어디서 돈푼 좀 주고 무사들을 고용했으니 시골에서 그 정도면 충분하다 믿은 것 아니겠습니까? 너무 염려 마십시오.”

후명신은 마치 오래 전부터 새로운 동해상단의 단주를 알고 있는 것처럼 얘기했다. 하지만 그의 얘기는 천전주에게 충분히 설득력 있게 들렸다. 자신이 알기에도 돈만 믿는 놈들은 그러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렇겠구려. 그렇다면 가볼 필요가 없겠지. 이번 일이 끝나면 이런 기발한 생각을 한 염풍상단 총관에게 특별 상이라도 내려야겠군. 허허”

천형환도 후명신 부전주의 말을 믿어버렸다. 사실 의심하면 일이 많아지고 피곤해진다. 그렇다고 달리 다른 좋은 방안도 없다. 그러면 믿어버리자. 믿어버리면 만사가 편안해진다. 그저 좋은 소식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사는 그런 마음을 시샘하기라도 하는 듯 믿고 싶은 마음과 반대로 돌아가기가 십중팔구였다. 천형환은 오히려 미심쩍은 마음이 생기는 자신의 감각을 믿고 후명신에게 그래도 제이, 제삼의 대책을 수립하라고 했어야 했다. 그게 상급자의 일이다. 그런 지시를 한다고 자신이 피곤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쫄다구들이 피곤할 뿐이다.



“날씨가 무척 좋군요. 하하”

마치 청명한 가을하늘이 자기 것인 양 자랑하듯이 손천기가 하늘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늦가을의 쌀쌀한 바람이 조금 불어왔지만 날씨는 손천기의 말대로 좋았다.

“그렇군요.”

서홍이 걱정스러운 듯 받는다. 서홍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손천기에게는 승리에 대한 담보처럼 보인다.

“괜히 일이 번거롭게 되었구려. 괜히 낙찰을 받으시는 바람에···”

염풍상단의 단주가 두원에게 웃는 얼굴로 말하지만 말은 두원을 나무라는 것이었다.

“괜한 일인지 아닌지는 두고 봐야겠지요.”

“하하하, 단주께서 그리 생각하시니 저도 오히려 마음이 편하오이다. 난 괜히 우리가 너무 윽박지른 것은 아닌지 걱정했었소이다. 하하”

염풍상단 단주에게 두원의 말은 얄팍한 자존심에 기반한 오기로 들렸다. 자신의 자만이 그리 해석하도록 시키는 것이다.

“이대이二對二로 붙는다. 어떠한 방법을 사용해도 좋다. 단, 목숨을 보장하지 않는다.”

새외쌍검 중 야율천이다.

야율천의 얘기에 묵진휘가 간단히 고개만 끄덕였다. 더 이상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원래 무인간의 비무는 목숨을 보장하지 않는다. 다만, 상행위에 연관되어 있다 보니 다시 한번 확인하는 셈이었다.

묵진휘가 남궁이현을 가만히 바라보자 남궁이현이 씩 웃음 짓는다. 자신을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다. 자신을 걱정해서 묵진휘가 흐트러지지 말라는 뜻이다. 묵진휘도 웃음으로 답했다. 백마디 말보다 한번의 웃음이 더 진정을 가지는 때가 있다면 지금이 그러한 때일 것이다.

둘은 비무를 앞두고 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다. 소위 사전 작전을 짜거나 하지도 않았다. 묵진휘도 묻지 않았고 남궁이현도 어떻게 할 것인지 묻지 않았다. 무인이 검을 사용하는데 무슨 작전이 있을 것인가?

당수진이 그런 남궁이현을 걱정스러운 듯 바라본다. 당수진이 보기에도 새외쌍검은 대단한 고수로 느껴졌다. 당수진도 오대세가 중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는 사천당가의 장녀였던 것이다.

“걱정하지마. 묵대협도 있고.”

항백이 곁에서 당수진을 위로한다. 묵진휘를 믿는 것이다.

항백의 위로에 당수진이 가만히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그리 믿고 싶은 것이다.


새외쌍검이 서로 몇 발짝 옆으로 움직이며 거리를 벌린다. 이대이 대결이지만 일대일로 비무를 하겠다는 생각인 모양이었다. 상대가 그러하니 남궁이현도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남궁이현을 묵진휘가 다시 한번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곤 그도 옆으로 몇 발짝 움직였다.

선공은 남궁이현을 마주한 야율격이 했다. 야율격의 선공에 남궁이현이 응수해가는 것을 묵진휘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 바라본다.

상대를 앞에 두고 옆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에 눈길을 돌리고 있는 사내를 보며 야율천은 잠시 울컥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무시하는 것인가?

하지만 사내의 눈빛에서, 따뜻함과 걱정스러움을 느낀 야율천은 이내 사내의 마음을 이해했다. 친구를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믿는 것이다. 자신도 야율격을 그리 생각한다. 형제는 아니지만 형제와 다름 없었다. 야율천도 가만히 고개를 돌려 야율격을 바라본다.

상황은 이상한 모습이 되었다. 야율격과 남궁이현이 일대일 비무를 벌이듯 싸우기만 할 뿐 야율천과 묵진휘는 구경꾼처럼 둘의 싸움을 바라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수진의 마음이 더욱 초조해졌다. 그래도 묵진휘를 믿고 있었는데 이리 되면 온전히 남궁이현의 싸움이 되는 것이다. 초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당수진의 초조한 마음을 반영이나 하듯, 둘의 공수는 벌써 뜨겁게 달아올라 이미 십여 합 이상 진행되었다. 팽팽했다.

당수진이 초조한 마음이라면 야율천의 마음은 놀람이었다.

남궁이현의 정순한 눈빛을 보면서 이류 뜨내기가 아님은 알았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저리 대단한 고수일거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반면 야율격은 새외에서도 알아주는 고수로 산전수전 다겪은 무인이었다. 실력이나 경험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둘의 승부가 벌써 오십 합을 넘고 있다. 여전히 팽팽하다.

남궁이현이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던 삼조원들은 별다른 말을 입밖에 내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매우 놀라고 있었다. 남궁이현의 실력이 저 정도인 줄은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분명 처음 봤을 때 남궁이현의 실력은 저 정도가 아니었다. 물론 틈나는 대로 열심히 수련도 했고, 실전도 많이 겪었다. 무악산 등에서 싸우던 모습을 보면, 분명 장족의 발전도 있었다. 하지만 그 또한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모습을 보니 절정고수의 경지 이상이었다. 이제는 자신들과 아예 부류가 다른 무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남궁이현은 묵진휘의 조언을 통해 안목이 달라졌었다. 개안開眼의 기회를 가진 것이다. 보는 눈이 달라지면 세상이 달라지고 자신도 달라진다. 막힌 벽이 무너지면 거침없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다음 벽을 만날 때까지.

지금 남궁이현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북천회와의 여러 번에 걸친 싸움을 통해 다양한 자양분도 흡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궁이현은 여전히 배가 고픈 상태와 비슷했다. 싸우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고수와 맞붙게 되었으니 얼마나 바라던 기회인가? 진정으로 비무를 즐기고 있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그런 의미로 남궁이현은 지금 무공에, 싸움에 미쳐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태임을 알고 있었기에 묵진휘가 남궁이현의 일대일 싸움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저울의 팽팽함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균열을 알아차리기 어려웠지만 묵진휘와 야율천의 눈에는 그 균열이 보였다.

야율격은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초조함이 다급함으로 변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놈이다. 저놈 태어났을 때부터 자신은 검을 잡고 피를 맛보았다. 당연히 쉽게 이길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쉽지 않다. 처음 몇 합을 겨뤄보곤 놀랐다. 상대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경험이 많은 자신이 유리할 거라 여겼다. 그런데 검을 섞을수록 놈은 물을 흡수하는 솜처럼 조금씩 배워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아니다. 놈이 한수 한수 배워갈수록 자신의 내공이 한줌한줌 소모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조급해졌다. 유리하다 여겼던 시간이 적의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빨리 결론을 봐야 했다.

야율격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회심의 일격을 준비하려는 것이다. 남궁이현도 호흡을 가다듬고 검을 새로 고쳐 잡는다.

‘좋지 않다.’

야율격이 한발 뒤로 물러서며 회심의 일격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야율천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야율격의 초조함을 읽은 것이다.

야율격 정도 되는 고수는 쉽게 흥분하지 않고 웬만한 경우에도 냉정을 유지한다. 몸이 그리하는 것이다. 숱한 경험이 몸에 냉정이라는 습관을 심어 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날이 있다. 그렇지 않은 날이 있기 때문에 죽는 것이다.

매일이 어제와 완전히 동일하다면 사람은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일 것이다. 변한 것이 없기 때문에 자신도 변한 것이 없다. 늙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와 완전히 동일한 오늘은 없다.

완전한 반복은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변화는 항상 존재하고 그 변화가 표면화되는 날 새로운 운명이 찾아 오는 것이다. 그런 날이 야율격에게는 오늘이었다.

야율격이 오른 팔을 쭉 뻗어 검을 수평으로 눕힌다. 그러더니 천천히 회전을 한다. 점점 회전의 속도가 빨라진다. 회전의 속도가 빨라 지면서 야율격을 둘러싸고 회오리 바람이 일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바람에 말려 올라간 먼지로 인해 야율격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먼지로 둘러싸인 회오리 바람이 이번에는 남궁이현이 있는 방향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한번 전진하기 시작한 회오리 바람은 이내 점점 빨라지더니 주위의 먼지를 먹으면서 더욱 커지고 더욱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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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190. 빚을 돌려받다 +3 17.08.17 2,234 52 11쪽
190 189. 떨어지는 늙은 별 +3 17.08.15 2,249 4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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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187. 마지막 질문 +3 17.08.11 2,220 48 11쪽
187 186. 초대招待 +4 17.08.09 2,225 48 11쪽
186 185. 찾아 나서다 +3 17.08.07 2,200 44 9쪽
185 184. 남천南天까지 +2 17.08.05 2,273 42 10쪽
184 183. 지원 요청 +3 17.08.03 2,346 46 10쪽
183 182. 계약이행契約履行 +3 17.07.31 2,182 44 10쪽
182 181. 북천과 서천 +4 17.07.30 2,140 49 10쪽
» 180. 불광불급不狂不及 +4 17.07.28 2,184 44 11쪽
180 179. 계약契約 +5 17.07.26 2,095 47 10쪽
179 178. 발톱 +4 17.07.24 2,058 48 9쪽
178 177. 발각發覺 +3 17.07.22 2,302 47 8쪽
177 176. 낙찰落札 +3 17.07.20 2,283 45 9쪽
176 175. 옛 터 +3 17.07.18 2,259 44 10쪽
175 174. 애증愛憎 +3 17.07.15 2,222 48 11쪽
174 173. 반가운 만남 어두운 얼굴 +3 17.07.13 2,482 47 10쪽
173 172. 목걸이를 찾아라 +4 17.07.11 2,308 46 10쪽
172 171. 삼별조三別組 +3 17.07.09 2,282 44 8쪽
171 170. 입장 변화 +4 17.07.07 2,350 48 9쪽
170 169. 숨결 +5 17.07.05 2,272 52 10쪽
169 168. 기다림 +5 17.07.03 2,363 49 9쪽
168 167. 탈출脫出 +3 17.07.01 2,284 46 11쪽
167 166. 신세계新世界 +3 17.06.27 2,369 44 9쪽
166 165. 야망野望 +3 17.06.26 2,307 41 9쪽
165 164. 산기창공散氣創空 +3 17.06.24 2,353 43 9쪽
164 163. 함락陷落 +3 17.06.22 2,441 43 10쪽
163 162. 와해瓦解 +3 17.06.20 2,408 4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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