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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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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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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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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0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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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70. 입장 변화

DUMMY

“고생이 많았군. 하지만 고생이 많은 만큼 얻은 것도 적지 않을 테지.”

이황야가 묵진휘의 얘기를 모두 듣고 의미심장하게 한마디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평범한 진리를 말하는 것 같지만 어찌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얘기다. 대부분 고생이 많으면 얻는 것이 많다. 뒤집어 얘기하면, 고생하지 않고 얻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이황야의 말은 이런 당연한 얘기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황야의 눈빛은 그런 당연한 의미의 눈빛이 아니었다. 이황야는 무공을 모르는 사람이다. 무공에 있어 지하동굴에서 얻은 묵진휘의 성취를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묵진휘가 지하동굴에 빠진 것과 갇혀 있다가 어떻게 탈출하게 되었다는 얘기만 했을 뿐 적대강 사숙조의 안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묵진휘의 성취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묵진휘의 성취를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다.


만류귀종萬流歸宗···

한 분야에 일가를 이룬 사람은 다른 분야의 고수를 알아보는 눈이 생기는 것 같았다.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묵진휘가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을 얘기한다.

“내게 그럴 필요는 없네. 걱정은 저 아이가 많이 했지. 하지만 비 온 뒤 땅이 더욱 굳어지는 법이네. 지금의 일이 자네 두 사람에게 좋은 추억이 될 것일세. 허허”

이황야의 얘기에 공녀 주여전이 딴 곳을 보는 듯 고개를 돌린다. 부끄러운 것이다.

“이제 어찌할 생각인가?”

“무한의 무림맹으로 가볼까 생각 중입니다. 그곳에 가면 그래도 놈들에 대한 정보가 조금 있지 않을까 합니다.”

지난 가을, 노산에서 내려와 이곳에 온 묵진휘가 이황야에게 대답한 얘기와 똑 같은 상황이었다. 일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한편으로 상황은 제자리였다.

“그렇겠지. 무진신개가 있었다면 도움이 되었겠지만 그도 지금은 이곳에 없으니. 자네가 있었다면 사람들을 북경에서 퇴진시키지 않아도 되었을 테지만 이미 대부분 이곳에 내려와 있으니 이제 이곳에 급한 일은 없는 셈이야. 놈들을 찾아 기반을 와해시키는 것도 좋은 일이지.”

이황야의 말에 아쉬움이 묻어있지만 그리 깊지는 않다. 지난 일을 깊이 후회하거나 아쉬워하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곳에서 조금 쉬다가 가게. 바쁘다고 서두르는 것은 좋지 않아.”

“그리 하겠습니다.”

이황야의 당부에 자상함이 어려있다. 물론 그 자상함이 묵진휘에 대한 것인지 공녀 주여전에 대한 것인지는 알기 어려웠지만.



객잔 이층은 때늦은 시간이라 조용했다.

주은백은 객잔 이층의 창가 자리에 죽립을 쓴 여인이 혼자 앉아 있음을 본다. 저 여인일 것이다.

어제 마교의 무한 비밀장원 정원에서 주은백이 상념에 잠겨 한가한 오후를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날카로운 파공성破空聲과 함께 화살 한대가 날아왔다. 하지만 화살에 살기殺氣는 없었다.

주은백이 손을 뻗쳐 화살을 잡았다. 화살에는 종이 하나가 묶여 있었다.

주은백이 종이를 풀었다. 글씨가 적혀 있었다. 내일 무한 외곽의 어느 객잔에서 만나자는 내용의 서신이었다. 서신의 말미末尾에는 상정문주 서설란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랜만이오.”

“오랜만이군요.”

주은백의 인사에 서설란이 죽립을 벗어며 인사를 한다. 죽립을 벗은 서설란은 화용월태花容月態의 자태를 보이고 있었다.

주은백을 따라온 점소이가 서설란의 얼굴을 보곤 멍한 표정으로 그대로 서있다.

서설란의 미모에 순간 넋을 놓은 것이다.

“만두와 소면 괜찮지요?”

서설란이 주은백을 바라보며 묻자 주은백이 고개를 끄덕인다. 서설란의 말에 정신을 차린 점소이를 향해 서설란이 눈으로 주문을 하자 점소이가 고개를 연속해서 주억거리더니 재빠르게 일층으로 내려간다.

“저번에는 고마웠소.”

주은백이 감사 인사를 한다. 적발인 차시천의 북경행에 대한 정보를 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다.

“인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일이기도 하니까요.”

서설란이 약간 차가운 얼굴로 인사를 받는다. 원래 차가운 기운을 풍기는 서설란이기도 했지만 예전 주은백이 보인 입장에 대한 반감도 묻어 있었다. 공동으로 대응하자는 서설란의 제안을 주은백이 거절했던 것이다.

“마교분들은 청해로 돌아가셨지요?”

서설란의 물음에 주은백은 속으로 놀랐지만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상대는 남천의 제자이기도 했지만 중원 최고의 정보상인집단인 상정문의 문주였던 것이다. 자신이 마교 교주 일행과 어울리고 있음을 충분히 알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동태를 알고 있음이 그리 기분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청해로 돌아갔소. 그 일도 알고 있소?”

주은백이 마교에서 일어난 일도 알고 있는지 물었다.

“알고 있습니다.”

“대단하군.”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시작부터 냉기가 감돌며 둘 사이에 순간 침묵이 흐른다. 서설란이 잔기침으로 침묵을 깨려 한다. 이러려고 주은백을 만나자고 한 것은 아니었다.

“만나자고 한 용건이 뭐요?”

서설란이 말을 하려는 순간 주은백이 먼저 입을 열고 묻는다. 주은백의 목소리에도 온기보다는 냉기가 묻어있다. 그 역시 서설란에 대해 미운 감정은 없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이상하게 그리 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첫 단추가 중요한 모양이었다. 이미 두 사람 사이의 첫 단추는 제안과 거절이라는 어색함으로 채워졌던 것이다.

“그들의 일부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요.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그들을 저지하는 것은 상정문의 큰 목적 중에 하나예요. 지금 상황은 급박해요. 무림맹은 와해지경이고 마교는 어수선해요. 그들을 막을 세력이 없어요. 우리가 나서야 해요. 주대협께 다시 한번 제안을 드리려고 연락을 드린 거예요. 같이 싸우자고.”

서설란이 단도직입적으로 빠르게 얘기하곤 주은백을 응시한다. 이번에도 주은백이 거절하면 다시는 주은백을 만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스승님께서 아쉬워할 것이지만 어쩔 수 없다. 강제로 데려갈 수는 없으니까.

“좋소.”

서설란은 주은백의 대답을 내심 긴장하면서 기다렸다. 하지만 주은백은 너무나 쉽게 제안에 동의했다. 오히려 서설란이 주은백의 빠른 대답에 당황했다.

“좋다고 했소.”

주은백이 다시 한번 의사를 표명한다. 서설란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기에 한번 더 대답한 것이다.

“아~ 가.. 감사해요.”

서설란이 더듬거린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오?”

“그전에 한가지 여쭤볼 게 있어요.”

“내 입장이 왜 변했는지 묻고 싶은 것이요?”

주은백이 되묻는다. 사실 묻고 싶었다. 하지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다. 남자로부터 다른 여인에 대한 사랑을 굳이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에요. 혹시 동천의 전인傳人을 아시나 싶어서 그랬어요.”

“만나보지는 못했소. 묵빛 강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동천의 전인이라면 그에 대한 얘기는 들었소. 내 친구가 그의 친구이기도 하기 때문이오.”

“그 사람은 어디에 있죠?”

“실종되었소. 정주에서 그 놈들의 함정에 빠진듯하오.”

“아~ 정주에서 이황야측 젊은 무인 하나가 실종되었다는 정보가 있었어요. 그가 바로 그 사람인가요?”

서설란이 이전에 들었던 정보 하나를 기억해내며 짧은 신음소리 같은 탄식을 터트렸다.

“아마도···”

주은백의 대답에 서설란이 한숨을 내쉰다. 스승님의 안타까워하는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스승님은 동천과 서천을 만나고 싶어했다. 그들이 죽고 없다면 그들의 제자라도 꼭 만나고 싶어했다. 그런데 동천의 후예가 놈들의 함정에 빠져 실종된 것이다. 놈들의 함정에 빠져 실종되었다면 십중팔구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쉬운 것이다.

“놈들은 어디에 있소?”

“그들 모두가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요. 다만 강북지역에서 중소문파와 표국들을 습격하고 있는 무리들이 어디 있는지는 알아요.”

“어디요? 그곳이?”

“태원이에요.”

태원이라면 정주 북쪽에 있는 도시로 산서성山西省의 성도省都였다.

“태원으로 갑시다.”

이번에도 주은백이 서설란의 기대보다 빠르게 반응한다. 주은백의 입장이 많이 변한 것이다.

그때 점소이가 만두와 소면이 든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아직 주문한 음식이 나오지도 않았었는데 주은백은 마치 태원으로 바로 떠날 거처럼 서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서설란이 점소이가 내려놓은 음식과 주은백을 번갈아 본다. 음식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이었다.

“아~, 시킨 음식은 먹읍시다.”

주은백이 젓가락을 집어 들고 자신의 소면 그릇을 들어올리며 크게 한 젓가락을 뜨더니 입으로 가져간다.

서설란이 그런 주은백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사랑해 본 적이 있느냐?’

예전에 스승인 남천이 서설란에게 물었던 말이다. 동서남북간의 갈등에 대한 말을 시작하면서였었다. 아니라고 대답했다.

지금 주은백을 보니 스승께서 왜 그런 질문을 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은 사람의 입장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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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190. 빚을 돌려받다 +3 17.08.17 2,234 5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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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187. 마지막 질문 +3 17.08.11 2,220 48 11쪽
187 186. 초대招待 +4 17.08.09 2,225 48 11쪽
186 185. 찾아 나서다 +3 17.08.07 2,200 44 9쪽
185 184. 남천南天까지 +2 17.08.05 2,273 42 10쪽
184 183. 지원 요청 +3 17.08.03 2,346 46 10쪽
183 182. 계약이행契約履行 +3 17.07.31 2,182 44 10쪽
182 181. 북천과 서천 +4 17.07.30 2,140 49 10쪽
181 180. 불광불급不狂不及 +4 17.07.28 2,184 44 11쪽
180 179. 계약契約 +5 17.07.26 2,095 47 10쪽
179 178. 발톱 +4 17.07.24 2,058 48 9쪽
178 177. 발각發覺 +3 17.07.22 2,303 47 8쪽
177 176. 낙찰落札 +3 17.07.20 2,284 45 9쪽
176 175. 옛 터 +3 17.07.18 2,259 44 10쪽
175 174. 애증愛憎 +3 17.07.15 2,222 48 11쪽
174 173. 반가운 만남 어두운 얼굴 +3 17.07.13 2,482 47 10쪽
173 172. 목걸이를 찾아라 +4 17.07.11 2,309 46 10쪽
172 171. 삼별조三別組 +3 17.07.09 2,282 44 8쪽
» 170. 입장 변화 +4 17.07.07 2,351 48 9쪽
170 169. 숨결 +5 17.07.05 2,272 52 10쪽
169 168. 기다림 +5 17.07.03 2,364 49 9쪽
168 167. 탈출脫出 +3 17.07.01 2,285 46 11쪽
167 166. 신세계新世界 +3 17.06.27 2,369 44 9쪽
166 165. 야망野望 +3 17.06.26 2,308 41 9쪽
165 164. 산기창공散氣創空 +3 17.06.24 2,353 43 9쪽
164 163. 함락陷落 +3 17.06.22 2,441 43 10쪽
163 162. 와해瓦解 +3 17.06.20 2,408 4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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