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신세계新世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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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해.”
흑의가 손톱으로 이끼를 쥐어 뜯는 백의를 나무란다.
백의가 손톱까지 세워 이끼를 뜯어보지만 손톱 속만 초록색으로 물들뿐 손에 잡히는 거라곤 없었다.
밖이 가문지 지하동굴로 흘러 들어오는 물도 거의 없다. 그렇다 보니 이끼가 자라는 속도도 늦어지는 것이다.
다행히 아직 샘은 마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백의가 샘으로 가서 물을 마신다. 사실 물은 조금 전에도 마셨다. 물을 마신다고 허기虛飢가 달래지는 것은 아닐 것이지만 공복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사흘을 굶으면 누구나 도둑이 된다. 굶어본 사람은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무림인이라도 마찬가지다. 절대고수라면 자신의 신체와 기를 일정 정도 조절할 수 있지만 일반 무인이라면 먹어야 되고 자야 했다.
“왜 물도 못 먹게 해?”
백의가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인다. 허기가 신경질의 자양분이 되고 있는 셈이다.
“진정해. 묵대협은 우리보다 훨씬 이전부터 전혀 이끼를 먹지 않았어. 나보다 더한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도움이 될 거야.”
황의가 어른스럽게 얘기하자 백의도 묵진휘를 한번 쳐다본다.
“미안해. 확실히 내가 어려.”
백의가 사과를 하자 추란이 피식 웃는다. 사과하는데 나이가 왜 붙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백의의 말은 그런대로 납득이 됐다.
묵진휘가 좌대에서 공중부양한 채 산기창공散氣創空을 하고 있다. 다가오는 동심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흩트리면서 나만의 초월공간을 창출해야 한다.
묵진휘의 마음은 다급했다. 오의붕경이 허기에 허덕임을 알기 때문이다. 오의붕경이 모두 죽은 다음 이곳을 나간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다급하다 보니 산기散氣를 위해 묵운기를 두서없이 쏟아대고 있었다. 궁즉통窮側通이라 여겼기 때문에 다급함을 조절하지 않았다. 일전에도 궁즉통이 깨달음을 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여야 한다는 생각이 감각적으로 얼핏 들었다. 다급할 때는 오히려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묵진휘가 눈을 감은 채 긴 호흡을 했다. 다급함을 지워보려는 것이다. 그리고 변화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끝까지 한가지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 궁즉통의 의미는 아닐 것이다. 변즉통變側通, 막혔을 때 변화를 시도하는 것도 어떤 의미에선 궁증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묵진휘는 하나의 개념이 한가지 의미만 가지고 있지 않음을 지하동굴의 사유에서 깨달았다. 대부분의 개념은 양의적兩意的인 의미가 있었다. 상황에 따라 의미는 변화는 것이다. 선명한 개념이 상황이 바뀜에 따라 어느덧 흐려져 또 다른 형상을 취하고, 그러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달관達觀의 경지에 다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묵진휘가 다급함을 지우고 변화를 마음에 그리며 묵운기를 주위 몇 군데에 놓았다. 흐르는 강물에 쐐기를 놓듯.
갑자기 묵진휘가 눈을 떴다. 가볍게 묵운기를 놓았을 뿐인데 공중부양하고 있는 자신의 몸이 너무 가벼워 진 것이다. 전혀 자신의 무게를 느낄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이 근원적인 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음을 느낀 것이다.
묵진휘가 다시 묵운기를 거둬 들였다. 그러자 다시 자신의 무게가 느껴졌다. 물론 공중부양에서 내려온 것은 아니었다. 근원적인 힘에 대항하던 묵운기가 있기 때문이다.
묵운기가 자신의 몸을 떠 받치고 있던 묵운기를 거둬들였다. 그러자 공중부양했던 몸이 좌대로 내려앉았다. 당연했다. 근원적인 힘에 대항하던 묵운기를 거둬들였으니 근원적인 힘의 영향을 받아 내려 앉을 수 밖에.
묵진휘가 다시 묵운기로 공중부양했다. 그리곤 좀 전과 같이 몇 군데 묵운기를 펼쳤다. 쐐기를 놓듯이. 그러자 다시 몸의 무게를 느낄 수 없었다. 이번에는 그 상태에서 근원적인 힘에 대항하던 묵운기를 거둬들였다. 당연히 몸이 좌대로 내려앉을 것이다. 하지만 묵진휘의 몸은 좌대로 내려앉지 않았다. 근원적인 힘에 대항하던 묵운기를 거둬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몸은 그대로 공중에 떠 있었다. 이번에는 산기를 위한 묵운기를 거둬 들였다. 이내 몸이 내려앉았다.
이번에는 산기를 위한 묵운기를 시전했다. 물론 근원적인 힘에 직접 대항하던 묵운기는 펼치지 않았다. 그러자 몸은 그대로 좌대에 있었다. 그때 묵진휘가 마음속으로 떠오르려고 하자 몸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의념만으로 몸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다.’
묵진휘는 드디어 산기의 맥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묵진휘가 산기에 성공한 것을 바탕으로 점차 공간을 늘여 갔다. 산기창공을 더욱 폭넓은 범위에서 펼쳐보고 있는 것이다.
“묵대협이 조금 이상해”
흑의가 묵진휘를 바라보더니 나머지 사람들에게 조금 큰 소리로 말한다.
“뭐가?”
백의가 되묻는다.
“자꾸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해.”
흑의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이 묵진휘를 바라본다. 묵진휘가 좌대에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 있었다.
“그게 뭐?”
“지금까지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진 않았잖아?”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는 거지.”
백의가 편하게 생각을 말한다. 하지만 그게 설득력이 있었다. 오의붕경의 나머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묵진휘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묵대협이 좌대에서 내려왔네?”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묵진휘로부터 고개를 돌렸는데도 흑의는 계속 묵진휘를 보고 있었다. 묵진휘가 좌대에서 내려 큰 석실로 걸어오고 있었다.
흑의의 얘기에 나머지 사람들이 다시 고개를 돌려 작은 석실 쪽을 바라본다. 정말 묵진휘가 좌대에서 내려와 큰 석실로 걸어오고 있었다.
묵진휘가 가볍게 손을 흔들어 몇 군데 묵운기를 놓았다. 석실 전체를 근원적인 힘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려는 것이다.
“이게 왜 이래?”
묵진휘가 큰 석실로 나오자 반가운 마음에 묵진휘에게로 걸어가던 흑의가 갑자기 공중으로 두둥실 날아올랐다. 경신술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오의붕경의 나머지 사람들이 그런 흑의를 신기한 듯 바라본다. 그냥 경신술을 사용해 허공으로 도약하려면 제법 속도를 내야 했다. 하지만 지금 흑의는 느린 속도로 두둥실 허공으로 솟구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백의가 묵진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백의도 흑의와 같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어···어~”
백의가 비명도 아니고 탄성도 아닌 묘한 소리를 내지른다. 자신의 몸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이상해”
“나도···”
적의와 황의가 동시에 외쳤다. 사실 추란도 동일한 생각이었다. 갑자기 몸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약간만 몸을 움직여도 그쪽으로 몸이 쏠려갈 것 같았다.
추란을 제외한 나머지 네 사람은 이미 자기 몸을 통제하지 못한 채 허공 중에서 붕붕 떠다니고 있었다. 묵진휘가 그런 사람들을 향해 가볍게 다시 한번 손을 내저었다. 손에서 미약한 바람이 불어 네 사내를 향해 날아갔는데 네 사내는 그 바람에 밀려 석실 벽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게 왜이래?”
“어···어···어”
만일 묵진휘가 조금 강하게 바람을 일으켰다면 네 사내는 빠른 속도로 벽으로 날아가 벽에 부딪혀 큰 부상을 당했을 것이다.
네 사내들은 당혹스런 신음을 내뱉으며 손발을 이리저리 흐느적거리고 있었지만 자기 몸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근원적인 힘으로부터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생활도 무공수련도 근원적인 힘의 지배공간 아래서 행해왔다. 그런데 그 힘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자기 몸하나 통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묵진휘가 다시 가볍게 손을 흔들어 몇 군데 흩어 놓았던 묵운기를 회수하자 네 사내가 순식간에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쿵~털썩~
“어이쿠”
“에구 허리야.”
제각기 비명을 지르며 땅으로 떨어져 내린 네 사내가 쓰러진 채 고개를 들어 묵진휘를 바라본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이오?”
“우리가 신세계를 왔나?”
땅에 떨어져 내린 오의붕경이 묵진휘에게 해명을 요구한다. 하지만 묵진휘는 입을 닫곤 다시 한번 묵운기를 시전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넓고 높게 그 힘이 작동하도록.
묵운기를 시전하는 것만으론 오의붕경의 몸에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백의가 땅바닥에서 일어서려고 팔을 뻗어 힘을 주는 순간 엎드린 채로 백의의 몸이 다시 허공으로 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이어서 네 사내 모두 엎드린 채 허공으로 두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모두 팔을 뻗어 몸을 일으키려 했기 때문이다.
“에구,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백의가 큰소리로 외친다. 그때 석실 천장에서 서서히 굉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드르르르륵~크르르르릉~
굉음에 묵진휘가 천장을 바라본다. 천장에서, 동그란 모양의 추 같은 것이 점차 올라가면서 나는 소리였다.
‘저것 봐~”
추란이 큰 소리로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작은 석실을 가리킨다. 작은 석실의 천장에서 동그란 모양의 추 같은 것이 점차 내려오고 있었다.
마치 큰 석실의 추와 작은 석실의 추가 도르래에 묶여 있는 것처럼. 하나가 올라가자 하나가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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