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동서남북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연재수 :
252 회
조회수 :
778,509
추천수 :
12,451
글자수 :
1,158,507

작성
17.07.18 21:51
조회
2,258
추천
44
글자
10쪽

175. 옛 터

DUMMY

은천銀川과 태원太原 중간 즈음에 위치한 도시인 유림榆林 근처에 있는 백운산白雲山 중턱에 한 노인이 서있다.

노인이 서있는 산 중턱 부근에는 제법 너른 공지空地가 있었는데 한때 사람이 살았던 듯 아직도 집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물론 지붕은 날아가 버리고 담은 무너져 내려 비를 피할 수도, 바람을 막을 수도 없었고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해 지난 날의 애처로움만이 남아있었지만.

‘벌써 사십 년이 다되어 가는군.’

노인은 지난 날을 회상하는 듯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다들 살아 계신가?’

노인이 날이 저물어 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묻는다. 물론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답해줄 사람은 근처에 없었다.

아마 살아 있을 것이다. 자신이 더 이상 손을 쓰지 않았으니. 아니다. 분명히 살아 있다. 근자에 그들의 후예들이 나타나지 않았던가? 아직 남천의 후예가 나타났단 얘기는 없었지만 동천과 서천의 후예가 있다면 분명 남천의 후예도 있을 것이다.

‘원망이 많았겠군.’

노인이 다시 한번 하늘에 대고 묻는다.

노인은 북천이다. 과거 남천이 살던 집터에 찾아온 것이다. 청해에서 태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것이다. 정주의 거처는 임시로 폐쇄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황장로가 이끄는 세력이 태원에 있다. 회주는 그곳을 들러 태상호법이 있는 곳으로 가려는 생각이었다.

“그때 결정이 잘된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아직도 알지 못하겠다네. 하지만 그땐 마음을 다스릴 수 없었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이네. 아무튼 자네들에게는 미안하네. 이건 진심이네. 하지만 그것이 그때 결정을 후회한다는 뜻은 아니네.

나는 결과로서 모든 것을 판단하기로 마음 먹었네. 내가 세상을 장악한다면 그때의 결정이 옳았음을 뜻하고, 내가 실패한다면 그때의 결정이 틀렸다고 생각하기로 말이야. 그러니 자네들과 자네들의 후예들이 내 일을 방해하더라도 섭섭해하지 않을 것이네. 그것도 하늘의 뜻일 테니까 말일세. 가다 보면 만나게 되겠지. 그때 다시 보도록 하세.”

말을 마친 후 뒤돌아 서는 노인의 어깨에는 어떠한 감정도 묻어 있지 않았다. 지는 노을 빛을 묵묵히 담아내는 화폭이 된 흰구름처럼, 모든 것을 보류하고 있는 듯한 일체의 무심無心만이 엿보일 뿐이었다.



“동해상단의 주인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수하의 보고에 장부를 뒤적이던 후명신이 고개를 돌려 수하를 바라보며 되묻는다.

“주인이 바뀌어?”

“그렇습니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상단을 팔아버린 모양입니다.”

“크흐흐. 제깟 놈들이 그러면 그렇지.”

후명신이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의 예상이 맞은 것에 대한 흐뭇함 때문이다.

“그래, 누가 상단을 샀다던가? 쭉정이 밖에 남지 않은 상단을?”

스스로 말을 해놓고 보니 이상했다. 망하기 일보 직전의 상단을 누가 샀단 말인가? 동해상단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해정 관아에 등록된 염상이란 자격뿐이었다. 물론 자격이 있어야 소금 입찰에 참여할 수 있으니 적지 않은 사업권이라 할 수도 있었으나 요즘 같은 상황에서야 자격이 있다고 입찰을 받을 수 없을 터였다. 입찰 가격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아직 상단을 산 놈들에 대한 정보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상당한 부호란 소문입니다.”

“그래? 내일 진행될 입찰은 어느 상단 차례지?”

“염풍상단 차례입니다.”

“차질 없도록 하게. 이할이야.”

“걱정 마십시오. 분명히 일러 두었습니다.”

밀염 사업의 실무를 총지휘하고 있는 횡일수전 부전주 후명신은 동해상단을 새로 인수한 사람들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빈껍데기 뿐인 상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상 변수는 가능성이 없다고 여긴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내일 있을 입찰에 동해상단도 참여합니다.”

“참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입찰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놈들은 예정가격보다 이할 높은 가격을 제출합니다. 이할이면 오히려 손해입니다. 통상 입찰가격은 예정가격보다 일할 높은 가격에서 형성되어 왔습니다. 왜냐면 소금 사업의 이익이 대략 일할 오푼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관지선의 말에 남태혼이 답했다.

“아닙니다. 내일 입찰물량은 우리가 받습니다. 왜냐면 이할 보다 높은 가격을 적어낼 테니까요.”

관지선의 말에 남태혼과 예유선이 깜짝 놀란다. 이할 보다 높은 가격이라면 당연히 손해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금 조달도 여의치 않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금은 어음으로 제출할 것입니다.”

“입찰을 받아도 현금 납부가 원칙입니다. 동해상단이 발행하는 어음은 신용도가 떨어져 낙찰 대금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남태혼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관지선이 너무 물정을 모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삼조가 도착한 후, 동해상단의 사정을 듣곤 관지선이 골똘히 생각에 빠졌었다. 그러더니 대뜸 동해상단을 매각하라고 했다. 물론 가짜 매각이다. 남태혼과 예유선이 빠지고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관지선이 수립한 작전이 더욱 설득력이 있어진다고 했다. 그리고도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뭔가를 준비하는 눈치였다.

동해상단의 새로운 단주는 두원이 맡았고 서홍이 총관이 되었다. 관지선은 예전 해정 작전 때 동해상단의 총관을 맡아 입찰에도 나서는 등 얼굴이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표면에 나설 수는 없었다. 두원과 서홍도 그 작전에 참여했지만 별다른 역할이 없었기에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듯했다. 그리고 해정 관아의 관원들도 밀염에 관계된 인물들이 대거 동창에 잡혀갔기 때문에 대부분 바뀌어 있었다. 그래도 두원은 머리를 하얗게 물들였고, 서홍도 수염을 붙여 나이가 들어 보이게 변장을 하곤 해정 관아를 방문해 상단 매입에 대한 신고를 진행하고 소금 담당 관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당연히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던 관지선이 오늘 대뜸 입찰에 참여해 낙찰을 받겠다고 하니 남태혼과 예유선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동해상단 어음이지만 중원 최고 전장 중 하나인 장백전장이 보증한 어음이라면 가능할 테지요?”

관지선이 남태혼을 바라보며 자신 있게 묻는다.

“당연히 가능합니다. 하지만 장백전장은 동해상단의 어음을 보증해주지 않습니다. 보증을 받으려면 보증 받을 금액보다 더 큰 담보를 제출해야 될 텐데···”

예유선의 걱정이었다. 그만한 담보는 동해상단 소유의 이 장원이 전부였다. 자칫 잘못 이 장원이라도 날리게 되면 아버지 볼 면목이 없어진다. 그게 걱정인 것이다.

“담보는 제출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담보를 제출하지 않는단 관지선의 말에 예유선이 놀라 되묻는다. 자신이 아는 한 장백전장은 절대 담보 없이 보증을 서지 않는다.

“그건 다음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관지선이 설명을 해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공녀 주여전이 이런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장백전장을 움직인 것은 공녀였다. 장백전장은 물밑에서 이황야를 지원하고 있었고, 공녀가 장백전장에 보증을 부탁한 것이다.

“만일 내일 입찰물량을 동해상단이 낙찰 받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다들 놀라겠죠. 아마 동해상단이 미쳤다고 생각할 겁니다.”

“내일 입찰을 받기로 내정된 상단이 있겠죠?”

“당연히 있을 겁니다.”

“그들에게는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아~그들이 곤란해집니다.”

옆에서 듣던 예유선이 조금 놀란 듯 목소리가 높아졌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통상 낙찰 물량과 밀염 물량이 일대일 비율로 구성되어 소매상으로 팔려나갑니다. 만일 낙찰 물량이 없다면 물량 부족으로 곤란을 겪게 되죠. 소금은 대부분 예약제로 이미 소매상단들과 판매계약이 대부분 맺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물량이 없으면 상당한 곤란을 겪게 되죠. 우리도 낙찰을 받지 못하면서 그런 곤란을 겪었습니다. 그나마 동해상단은 이곳 해정에서 오래되었고, 또 저번 밀염 사건을 해결하면서 신망이 높아져 위기를 버텼습니다만 다른 상단이라면 훨씬 고통스러울 겁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밀염 조직이 밀염을 더 제공해주지 않을까요?”

관지선이 물었다. 혹시나 해서였다.

“그건 곤란할 겁니다. 원래 소금 생산량은 일정합니다. 특별히 장마가 지속되거나 하면 생산량이 줄 수는 있어도 갑자기 생산량이 늘어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밀염 물량도 한정적입니다. 만일 소금 생산량이 많다면 어쩌면 밀염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소금 생산량이 적기 때문에 국가가 독점하는 것이고, 그래서 밀염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말은 밀염 조직이 밀염 물량을 쉽게 늘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예유선의 말은 관지선이 예측한 대로였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낙찰을 받아야 합니다.”

관지선이 얼굴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옆에 있던 남태혼이 길게 감탄을 터트렸다. 이제야 관지선의 계획을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이번 입찰을 낙찰 받으면 내일 낙찰 받기로 예정된 상단은 물량이 부족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밀염 조직에게 밀염을 더 달라 그러겠죠. 밀염 조직이 짜준 각본대로 입찰에 응했기 때문에 책임은 밀염 조직에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밀염 조직은 제공할 물량이 제한적입니다. 그렇다면 둘간에 다툼이 생기고 신뢰가 깨지기 시작할 겁니다. 당연히 다음 입찰을 받도록 내정된 상단에게 동요가 생기겠죠. 결국 밀염 조직이 마각을 드러내고 우리에게 접근할 텐데 그때를 노리는 것이군요?”

남태혼이 스스로 추리한 내용을 말하자 관지선의 얼굴에 웃음이 더욱 짙어진다.

“바로 그겁니다. 일종의 낚시 미끼인 셈이죠. 낙찰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동서남북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92 191. 결심決心 +3 17.08.19 2,239 45 9쪽
191 190. 빚을 돌려받다 +3 17.08.17 2,233 52 11쪽
190 189. 떨어지는 늙은 별 +3 17.08.15 2,249 47 9쪽
189 188. 두 거인巨人 +5 17.08.13 2,350 46 10쪽
188 187. 마지막 질문 +3 17.08.11 2,220 48 11쪽
187 186. 초대招待 +4 17.08.09 2,225 48 11쪽
186 185. 찾아 나서다 +3 17.08.07 2,200 44 9쪽
185 184. 남천南天까지 +2 17.08.05 2,272 42 10쪽
184 183. 지원 요청 +3 17.08.03 2,345 46 10쪽
183 182. 계약이행契約履行 +3 17.07.31 2,182 44 10쪽
182 181. 북천과 서천 +4 17.07.30 2,139 49 10쪽
181 180. 불광불급不狂不及 +4 17.07.28 2,183 44 11쪽
180 179. 계약契約 +5 17.07.26 2,094 47 10쪽
179 178. 발톱 +4 17.07.24 2,057 48 9쪽
178 177. 발각發覺 +3 17.07.22 2,302 47 8쪽
177 176. 낙찰落札 +3 17.07.20 2,283 45 9쪽
» 175. 옛 터 +3 17.07.18 2,259 44 10쪽
175 174. 애증愛憎 +3 17.07.15 2,222 48 11쪽
174 173. 반가운 만남 어두운 얼굴 +3 17.07.13 2,481 47 10쪽
173 172. 목걸이를 찾아라 +4 17.07.11 2,308 46 10쪽
172 171. 삼별조三別組 +3 17.07.09 2,281 44 8쪽
171 170. 입장 변화 +4 17.07.07 2,350 48 9쪽
170 169. 숨결 +5 17.07.05 2,272 52 10쪽
169 168. 기다림 +5 17.07.03 2,363 49 9쪽
168 167. 탈출脫出 +3 17.07.01 2,284 46 11쪽
167 166. 신세계新世界 +3 17.06.27 2,369 44 9쪽
166 165. 야망野望 +3 17.06.26 2,307 41 9쪽
165 164. 산기창공散氣創空 +3 17.06.24 2,352 43 9쪽
164 163. 함락陷落 +3 17.06.22 2,441 43 10쪽
163 162. 와해瓦解 +3 17.06.20 2,407 43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